#베트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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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qwe123dfasdqwe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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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인 케네디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이 주장을 내세웠다.
공화당원인 케네디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이 주장을 내세웠다. "USAID는 납세자의 돈으로 베트남에서 전기 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주었습니다. USAID는 인도의 트랜스젠더 클리닉에 돈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미국 국민도 몰랐을 겁니다. 머스크는 또한 세르비아 LGBT 조직에 150만 달러가 지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세르비아 직장과 기업 커뮤니티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해 그 돈을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말했다.
"USAID는 전 세계의 급진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억 6,400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그 중 1억 2,200만 달러를 외국 테러 조직과 연계된 단체에 제공했습니다. USAID는 가자지구의 그러한 조직에 수백만 달러를 제공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USAID에 대한 케네디의 주장을 강조한 X의 게시물에 "와우"라고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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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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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또는 소수로 행동하여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들 중에는 유명하지 않은 이도 있다.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한 예다. 그는 한 독재자의 부패와 억압적 통치가 23년째 이어지고 있던 튀니지의 26세 과일 노점상이었다. 어느날 시장에서 경찰이 부아지지에게 뇌물을 뜯어낼 요량으로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허가증을 보여달라며 괴롭혔다. 그는 거절했다. 경찰은 그를 발로 차고 침을 뱉고 노점을 뒤집었다. 부아지지는 관청에 가서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곳에서도 무시당했다. 2010년 12월 10일,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때, 그는 관청 앞에서 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외쳤다. “대체 어떻게 먹고살란 말이냐?” 그러고는 제 몸에 불을 붙였다.
부아지지의 분신과 죽음을 계기로, 튀니지 전역에서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와 여당과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는 확산되었고, 정부와 벤 알리는 한 달 만에 실권했다. 부아지지의 행동을 계기로 이집트에서도 시위가 열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거꾸러졌다. 예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알리 압둘라 살레의 34년 통치가 무너졌다. 리비아에서도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34년 권세를 잃고 살해당했다. 시리아에서는 시위가 내전으로 이어졌다. 요르단, 오만, 쿠웨이트에서도 총리가 사임했다. 알제리, 이라크, 바레인,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정부 개혁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부아지지는 무슬림 세계의 정치개혁을 생각하며 성냥을 켠 게 아니었다. 그저 어디로도 분출할 수 없어서 안으로 향한 분노가 있을 뿐이었다. 아랍의 봄이 짧은 희망 뒤에 새 독재자, 폭력, 난민, 시리아와 ISIS라는 파국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어쩌면 분신자가 역사를 만든다기보다 역사가 분신자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불만이 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개 나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촉매는 분명 부아지지 한 사람의 행동이다.
(786~787쪽)
틀림없이 베트남전에서 단일 ��건으로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은 선한 세력이라는 인식을 마침내 떨쳐버리게 했던 일은 미라이학살이었다.
1968년 3월 16일, 한 미국 중대가 윌리엄 캘리 주니어 소위의 명령에 따라 미라이라는 마을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했다. 중대는 석 달 동안 베트남에 있었지만 적과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래도 부비트랩과 지뢰에 부대원 28명이 죽거나 다쳐서, 총 중대원 수가 백 명가량으로 줄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흔한 해석은 그들이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얼굴 모를 적을 진짜 얼굴들과 연결 짓고자 하는 욕구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의 공식적 논리는 미라이 마을이 베트콩 전사들과 민간인 동조자들을 숨겨주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참가한 군인들 중 일부는 베트콩만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군인들은 가리지 말고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이고, 우물을 망가뜨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보고가 상충하지만, 아무튼 그뒤에 일어난 일은 흔한 표현마따나 고통스러운 역사로 남았다. 미군은 아기와 노인도 포함하여 비무장 민간인 350~500명을 죽였다. 시체를 훼손하고 우물에 처박았다. 오두막과 밭에 불을 질렀다. 많은 여성 주민을 집단 강간한 뒤 죽였다. 엄마 품에 숨어 있던 아이들에게 캘리가 직접 총을 쏘는 걸 봤다는 보고도 있다. 적의 응사는 없었고, 마을에 징병 연령 남성은 없었다. 그것은 성경 수준의, 로마제국 수준의, 십자군 수준의, 바이킹 수준의······ 파괴였다. 다만 이 파괴는 사진으로 남았다. 미라이학살이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 미국 정부가 사선을 은폐하려고 용썼고, 캘리에게 겨우 3년 가택연금형을 내렸다는 점이 더 경악스러운 대목이다.
미군 병사들이 학살에 다들 똑같은 수준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결국에는 총 26명이 고발되었고, 그중 캘리만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게 법정의 명령이었다).[*살해에 가담했던 이들 중 두 명이 나중에 자살했다. 스티븐 브룩스 소위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베트남에서 자살했다. 바나도 심프슨 일병은 몇 년 뒤에 자살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열 살 아들이 동네의 십대들이 쏜 유탄에 맞아 죽는 걸 본 것이었다. 심프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내 품에서 죽었다. 그때 본 아이 얼굴은 내가 죽였던 아이의 얼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죽인 벌을 받는구나.“ 그는 외���후스트레스장애를 심하게 앓았고, 집에서 창문을 죄 막은 채 몇 년 동안 은둔하다가 세번째 자살 시도에 성공했다.] 폭력에 대한 문턱값은 개인마다 달랐다. 한 병사는 한 여성과 그 자식을 죽이고서는 더는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또다른 병사는 민간인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을 거들었지만 발포는 거부했다. 명령에 대놓고 거역한 병사들도 있었다.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거나 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서도 그랬다. 그중 한 명인 마이클 번하트 일병은 명령을 거역하며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대들었다. 나중에 장교들은 그를 더 위험한 순찰조로 보냈다. 그가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학살을 멈춘 세 남자가 있었다. 예상 가능하게도, 그들은 아웃사이더였다. 앞장선 사람은 25세의 휴 톰프슨 주니어 준위였다. 그는 글렌 안드레오타, 로런스 콜번과 함께 헬리콥터를 몰고 있었다. 어쩌면 톰프슨이 이른바 ‘눈물의 길’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남은 아메리카원주민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독실한 부모는 1950년대 조지아주 시골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했다. 콜번과 안드레오타는 가톨릭 신자였다.
톰프슨과 두 승무원은 베트콩과 싸우는 보병을 도울 생각으로 미라이 마을로 날아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전투의 증거가 아니라 민간인들의 시체였다. 처음에 톰프슨은 마을이 공격당하고 있어서 미군이 주민들을 돕는 줄 알았지만, 누가 공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수라장 한가운데에 헬리콥터를 내렸고, 데이비드 미첼 미군 병장이 도랑에 처박힌 채 울부짖는 민간인 부상자들에게 총을 쏘는 모습과 어니스트 메디나 대위가 한 여성을 직사로 죽이는 모습을 보았다. 톰프슨은 누가 공격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캘리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톰프슨보다 계급이 높았던 캘리는 그에게 닥치고 제 할일이나 하라고 말했다.
톰프슨은 한 벙커에 옹송그리며 모여 있는 여자들, 아이들, 남자 노인들에게 미군들이 공격 태세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뒤 그 순간을 돌이킬 때, 톰프슨은 그 병사들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그들이 내게 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적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어질어질할 만큼 강인하고 용감한 행동을 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살펴본 우리/그들 범주화의 이야기를 한순간에 몽땅 바꿔놓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휴 톰프슨은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 사이에 헬리콥터를 착륙시키고, 기관총을 제 동료 미국인들에게로 향한 뒤, 만에 하나 그들이 주민들을 더 해치려들 때는 가차없이 쏴버리라고 두 승무원에게 지시했다.[*톰프슨은 동료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무전을 보내어 생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말했다. 안드레오타는 도랑에 쌓인 시신들을 헤치면서 살피다가 기적적으로 다치지 않은 네 살 아이를 구했다. 톰프슨은 자신이 본 것을 상관들에게 보고했고, 그들은 더 윗선으로 사건을 알렸다. 그러자 소탕 작전을 지시했던 지휘관은 이후 이웃 마을들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작전을 취소하고 사태를 덮기 시작했다. 안드레오타는 3주 뒤에 전투중 사망했다. 콜번과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선 톰프슨은 군대면 정부며 언론이며 가리지 않고 어디에든 제보하려고 애썼고, 마리아학살이 대중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원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멘델 리버스 의원은 캘리의 기소를 막고 대신 톰프슨을 반역죄로 기소하려고 시도했다. 톰프슨은 캘리를 재판하는 법정에서 그에게 불리하게 증언했고, 그후 오랫동안 살해 협박을 받았다. 군대가 톰프슨과 콜번의 행동을 기린 것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나서였다. 톰프슨은 2006년에 죽었다. 콜번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
자, 우리는 한 개인이 충동적 행동으로 20개국의 역사를 바꿔놓는 걸 보았다. 한 개인이 수십 년 묵은 미움을 극복하여 화해의 촉매가 되는 걸 보았다. 옳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그동안 훈련으��� 습득한 반사반응을 철저히 억누른 사람들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 사람을 볼 차례인데, 나를 가장 크게 감화시키는 이는 바로 이 사람이다.
1725년 출생한 영국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 그 사람이다. 음, 썩 흥미롭지 않은걸. 그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 괜찮네. 레너드 코언의 <할렐루야>와 더불어 늘 나를 감동시키는 노래다. 뉴턴은 또한 노예제 폐지론자였고, 윌리엄 윕버포스가 노예제를 불법화하고자 대영제국 의회에서 싸울 때 그 조언자였다. 좋다, 점점 좋은걸. 이제 결정적 사실을 알 차례다. 뉴턴은 젊을 때 노예선 선장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잖아. 한 남자가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다가 별안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깨우침을 떠올리고, 그래서 우리/그들 범주화가 극적으로 달라지고, 그의 인간성이 극적으로 확장되며, 그가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을 보상하고자 극적으로 헌신한다는 결론. 5장에서 보았던 신경가소성 현상이 뉴턴의 뇌에서 맹렬하게 펼쳐지는 모습이 눈에 선할 지경 아닌가.
현실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뉴턴은 선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11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갔다. 18세에 강제로 해군에 보내졌다가 탈영을 시도한 뒤 채찍질형을 받았다. 간신히 군대를 빠져나온 그는 서아프리카 노예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 자신의 경험과 노예들의 처지가 비슷한 것을 목격하고는 번득 계시가 떠올랐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는 노예선에서 일하면서 주변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그를 한 노예 상인과 함께 현재의 시이라리온에 내던져두고 갈 정도였다. 노예 상인은 뉴턴을 제 아내에게 노예로 주었다. 그는 여기서도 구출되었지만, 그가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던 배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뉴턴은 신에게 호소했고, 배는 가라앉지 않았으며,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리고 또다른 노예선에서 일하기로 계약했다. 이제 알겠네, 그는 신을 찾아냈고, 몸소 노예가 되어보았으며, 그래서 문득 노예무역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거지.
아니었다.
그는 노예들에게 약간의 공감을 내비쳤고, 복음주의로의 개종에 점점 더 진지해졌다. 결국 그는 어느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고, 6년 더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마침내 그가 제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 거로군!
역시 아니었다.
그가 그 일을 그만둔 것은 험한 행해로 건강이 나빠져서였다. 그는 이후 징세원으로 일했고, 신학을 공부했으며, 영국성공회 사제에 지원했다. 그리고 벌어둔 돈을 노예무역 사업에 투자했다. 뭐라고?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그는 설교와 목회로 알려진 인기 있는 사제가 되었다. 찬송가 가사를 썼고, 가난하고 짓밟힌 자들을 대변했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에 노예무역 투자를 그만두었다. 어쩌면 양심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더 나은 투자처가 나타나서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여전히 노예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노예제를 비난하는 소책자를 낸 것은 노예 상인일을 그만둔 지 34년 뒤였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비열한으로 산 시간이 그리 길었다. 뉴턴은 노예제의 참상을 몸소 목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그 가해자였다는 점에서 노예제 폐지론자들 중 드문 경우였다. 그는 결국 영국에서 으뜸가는 노예제 폐기론자가 되었고, 1807년 영국이 노예무역으로 금하는 순간을 살아서 목격했다.
(789~795쪽)
이처럼 적군 간에 공통의 유대를 발견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백 년 남짓 전, 그런 사건 두 가지가 놀랍도록 대규모로 벌어졌다.
제1차세계대전이 낳은 좋은 결과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쟁으로 세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발트해, 발칸반도, 동유럽 사람들이 독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1500만 명이 무의미하게 학살된 사건일 뿐이었다.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은 모든 평화를 끝낸 폐허의 평화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유럽이 수백 년간 무의미한 갈등에 청년들을 희생시킨 사례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의 수렁에서 두 가지 희망의 사례가 탄생했다.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하는데, 거의 기적적인 사건들이었다.
첫번째는 1914년 크리스마스 정전이었다. 시작은 참호 전선의 양측 장교들이 조심스���게 상대의 언어로 “쏘지 말라”고 외친 뒤 무인 지대에서 만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만찬중에는 적대행위를 일시 중지하고 시신도 회수하자는합의에서 시작된 정전이었다.
그로부터 일이 퍼졌다.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사실인바, 양측 병사들은 무덤을 파기 위해서 서로 삽을 빌렸다. 그다음에는 함께 무덤을 팠다. 그다음에는 함께 장례 예배를 가졌다. 그러다보니 음식, 음료, 담배를 교환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무장하지 않은 병사들이 무인 지대로 몰려나와서 함께 기도하고 캐럴을 불렀으며, 저녁을 함께 먹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적군 병사들끼리 단체사진을 찍었고, 단추와 헬멧을 기념품으로 교환했고, 전쟁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가장 유명한 사실은 급조한 공으로 축구 시합을 치렀다는 것이다. 점수는 남아 있지 않지만.
한 역사가가 기록한 오싹한 일화도 있다. 어느 독일 병사가 집에 보낸 편지에서 정전을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참여한 건 아니라고 말했는데, 동료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한 그 낯모르는 상병의 이름은······ 히틀러라고 했다. 하지만 800킬로미터의 참호전선 중 대부분에서 정전은 크리스마스에 종일 이어졌고, 종종 새해 첫날에도 벌어졌다. 나중에는 장교들이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고 협박해서야 모두가 싸움으로 돌아갔고, 병사들은 적군들에게 전쟁을 무사히 나가라고 빌어주었다. 충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다. 간헐적인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회수하기 위한 짧은 크리스마스 정전조차도 군사재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14년에는 왜 정전이 가능했을까? 참호전의 독특한 속성상, 병사들은 매일매일 적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부터 전선 너머로 친근한 악담이 오가곤 했고, 희미한 유대가 형성되었다. 게다가 반복된 접촉은 ‘미래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전을 배신했다가는 상대가 가차 없이 복수하리라는 예상이 들었던 것이다.
모두가 유대기독교 전통과 서유럽 문화를 공유했다는 점도 성공의 한 요소였다. 많은 병사들이 상대의 언어를 알았고, 상대국에 가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인종이 같았다. 적을 ‘프리츠’(제1차세계대전 때 연합국이 독일 병사를 부를 때 쓴 명칭―옮긴이)라고 부르며 놀리는 것은 베트남전에서 미군들이 베트남인을 ‘슬랜트‘(동남아시아인을 부르는 멸칭으로, 눈이 가늘고 치켜올라갔다는 데서 온 이름―옮긴이), ‘구크‘(원래 미국인이 동남아시아인을 부르는 멸칭으로, 한국전 때 한국인에게도 쓰였다.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옮긴이), ’딩크‘(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인이 동남아시아인, 특히 베트남인을 부르던 멸칭―옮긴이)라는 유사 종분화적 멸칭으로 부른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주로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정전이 벌어졌던 점을 설명하는 요소들도 있다. 제 땅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프랑스인과는 달리, 영국인은 독일인에게 그다지 악감정이 없었을뿐더러 보통 자신들이 역사적 주적이었던 후방의les derrières 프랑스인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전중에 영국 병사들은 독일 병사들에게 사실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얄궂게 말하곤 했다. 한편 우연히도 대부분 색슨인이었던 독일 병사들은 앵글로색슨인인 영국 병사들에게 친족적 친근함을 드러내면서 사실 우리는 독일의 밉상 지배 집단인 프러시아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부가 정전을 승인했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 장교들이 협상을 주도했고, 교황 같은 인물들이 정전을 요청했으며, 누가 뭐래도 지상의 모든 인간들을 향한 평화와 선의를 상징하는 축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정전이 우리의 첫 사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1차세계대전에서는 그보다 더 기적적인 사건이 있었다. ’공존공영’ 현상이라고 명명된 이 사건은 참호전의 병사들이 한마디 대화 없이도, 공유하는 축일 없이도, 장교들과 지도자들의 허가 없이도 반복적으로 안정된 정전 상태를 진화시켜낸 것이었다.
어떻게 그랬을까? 역사가 토니 애슈워스가 『참호전: 1914~1918』에서 적었듯이, 그 일은 대개 수동적으로 시작되었다. 양측 병사들은 비슷한 시각에 밥을 먹었고, 그때는 총이 잠잠했다. 누구를 죽이거나 죽임당하자고 저녁식사를 중단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날씨가 끔찍한 날도 그랬다. 그때는 모두가 최우선 관심사가 범람한 참호나 얼어죽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호 자제는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도 생겨났다. 식량을 나르는 마차 행렬은 포대의 쉬운 표적이었지만, 상호 포격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변소도 마찬가지로 무사했다.
이런 정전은 병사들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생겨난 것이었는데, 반대로 뚜렷한 행동으로써 구축되는 정전도 있었다. 어떻게? 우리 군 최고의 저격수를 데려다가 상대 적진 근처의 폐가 벽에 총알을 박아넣게 하자. 똑같은 지점을 연거푸 맞히게 하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우리 저격수가 얼마나 뛰어난지 봤지, 이 친구는 너희를 겨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자,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 상대편도 최고의 저격수를 데려다가 똑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서로 상대의 머리 위로 쏘자는 합의가 맺어진 것이다.
이때 핵심은 의례화였다. 무의미한 표적을 거듭 명중시키는 행동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하루하루 평화에의 약속을 갱신하는 것이었다.
공존공영 정전은 약간의 동요를 버텨낼 수 있었다. 가끔 병사들은 당분간 진짜로 쏴야 한다는 신호를 상대편에 보냈다. 장교들이 오는 날이었다. 이 체제는 위반도 이겨낼 수 있었다. 만약 웬 투지 넘치는 신병이 상대편 참호에 포를 발사하면, 대개의 관행은 상대편도 이쪽의 중요한 표적을 노려서 두 발을 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평화가 재개되었다(애슈워스가 들려준 일화가 있다. 독일군이 뜻밖에 영국군 참호로 포를 발사���다. 곧 한 독일 병사가 외쳤다. “진짜 미안합니다. 아무도 안 다쳤기를 바랍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 망할 프러시아 대포 문제입니다.” 영국군은 두 발의 포를 발사하여 호응했다).
공존공영 정전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후방의 고위 장교드은 반복적으로 개입하고, 부대를 회전시키고, 군사재판을 들먹여서 으르고, 적군 간에 생겨난 공통의 이해에 대한 감각을 산산조각낼 게 분명한 육박전이 따를 습격을 지시했다.
정전이 구축되는 과정은 진화적이다. 처음에는 저녁식사중에는 쏘지 말자는 것처럼 당장은 이득이 있는 저비용 제안이었던 것이 차츰 더 정교한 제약과 신호로 발전했다. 정전 위반을 다루는 방식이 변형된 팃포탯이었따는 점도 눈에 띈다. 기본적인 협력 성향, 위반에 대한 처벌, 용서의 메커니즘, 명확한 규칙 등의 요소가 꼭 그렇다.
사회적 세균들처럼 우리도 협력을 진화시킬 줄 안다니, 만세! 하지만 협력적 세균들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심리다. 애슈워스는 공존공영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적을 보는 심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꼼꼼하게 탐구했다.
애슈워스는 그 변화가 단계적이었다고 말한다. 첫째로 일단 상호 제약이 생겨나면, 적도 우리처럼 사격을 중지할 동기가 있는 합리적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들을 신의 있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이것이 순수하게 이기적인 이유, 즉 우리가 합의를 위반하면 상대도 되받아 위반하리라는 이유에서 생겨난 의무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것이 약간은 도덕적인 의무감으로 발달한다. 자신을 신의 있게 대하는 상대를 배신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꺼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전의 구체적 동기에서 깨닫는 바도 있다. “와, 저녁식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 저 사람들도 똑같네. 저 사람들도 이 장대비 속에서 싸우고 싶어하지 않네. 저 사람들에게도 골칫덩어리 장교들이 있네.“ 스멀스멀 동지애가 생겨난다.
이 과정은 더 충격적인 현상으로 이어진다. 교전국의 전쟁 체제들은 늘 그렇듯이 상대에 대한 유사 종분화적 악성 선전을 쏟아낸다. 하지만 애슈워스가 병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에 대한 적대감을 가장 적게 드러낸 것은 오히려 참호전 병사들이었다. 적대감은 전선에서 멀어질수록 커졌다. 애슈워스는 한 최전선 병사의 말을 인용했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적을 욕하며, 모욕적으로 희화화한다. 하지만 나는 괴물처럼 묘사된 독일 황제 그림에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 전장에서는 용감하고, 숙련되고, 재주 좋은 적을 존중하게 된다. 그들도 고향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왔고, 우리처럼 진흙탕과 비와 총알을 견뎌야 한다.“
우리와 그들은 유동적일 수 있다. 만약 누가 당신이나 당신의 전우들에게 총을 쏜다면, 그는 분명 그들이다. 하지만 그 밖의 순간에는 그보다도 쥐와 이, 식량에 핀 곰팡이, 추위가 그들이었다. 본부에 편하게 있는 장교들, 다른 참호전 병사의 말을 빌리자면 ”저멀리서 추상적인 전략으로 우리를 죽이는 놈들“도 그들이었다.
이런 정전은 영원할 수 없었다. 전쟁의 최후 국면에서 영국 고위 사령부가 소모전이라는 악몽 같은 전략을 채택함에 따라, 공존공영 정전은 자취를 감췄다.
(797~802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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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신혼여행과 다낭 커플 여행을 위한 완벽한 선택!
다낭 신혼여행과 커플 여행을 계획 중이시라면, 미케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한 로맨틱한 해변 전망 레스토랑 **Muối Biển Seafood Restaurant (무오이 비엔 씨푸드 레스토랑)**을 방문해보세요. 이곳은 다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시인 미케 해변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특별한 저녁 식사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다낭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시 중 하나로, 특히 신혼여행이나 커플 여행에 적합한 로맨틱한 장소입니다. 무오이 비엔 씨푸드 레스토랑은 미케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저녁 식사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다낭의 아름다운 해변과 불빛이 가득한 도시를 배경으로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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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커플 여행의 로맨틱한 명소
사랑의 다리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이곳은 독특한 디자인과 연인들이 걸어 놓은 자물쇠들로 가득해요.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한 증표로 가득한 이곳은 다낭에서 허니문을 보내는 커플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입니다.
한강에서 용다리 불쇼 크루즈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 9시에 용다리는 멋진 불쇼와 물쇼로 밝혀집니다. 이 멋진 장면을 연인과 함께 크루즈에서 감상하고, 아프사라 춤꾼들의 우아한 참파 춤 공연을 즐기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미케 해변에서의 낭만적인 저녁 식사 – 무오이 비엔 씨푸드 레스토랑미케 해변 바로 옆에 위치한 무오이 비엔 씨푸드 레스토랑은 저녁 식사를 하며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완벽한 장소입니다. 주소: 51 Võ Nguyên Giáp, Bắc Mỹ An, Ngũ Hành Sơn, Đà Nẵ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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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ối Biển Seafood Restaurant의 매력 포인트
미케 해변에서 로맨틱한 다낭 커플 여행 경험하기세련된 디자인과 아늑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아름다운 해변 경치는 신혼여행이나 특별한 데이트에 이상적입니다.
세심하고 전문적인 서비스전문 직원들이 고객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선한 해산물 메뉴조개, 대하, 랍스터, 신선한 생선부터 캐나다산 랍스터까지 다양한 고급 해산물을 제공합니다. 손님들이 직접 수조에서 해산물을 선택하는 특별한 경험도 가능합니다. 가격은 메뉴나 수족관에 투명하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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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보를 통해 여러분의 베트남 신혼여행, 다낭 커플 여행, 다낭 데이트, 그리고 다낭 미케비치에서의 멋진 추억을 더욱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오이 비엔에서 다낭의 멋진 커플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미케 해변의 멋진 전망을 즐기며, 로맨틱한 저녁 식사와 특별한 해산물 요리를 만끽하세요.
다낭에서의 로맨틱한 커플 여행을 위한 완벽한 가이드를 확인해보세요! 잊지 못할 여행을 계획하려면 지금 바로 이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muoibienseafood.com/danang-couple-travel-danang-keopeul-yeohaeng/ https://ok.ru/profile/910005883692/statuses/157733792845100 https://glose.com/activity/67341fc13986c673a25a7536
미케 해변에서의 낭만적인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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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iw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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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W] iE!🥰 오늘 너무 즐거웠어!
베트남에서 템페스트에게 잊지 못할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
우리 꼭 다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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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post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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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구로역 쌀국수 맛집 퍼틴
지난 주말에 친구와 함께 구로역 NC백화점에 있는 퍼틴 쌀국수를 맛있게 즐겼습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생활하던 시절, 쌀국수는 거의 매일 같이 먹었던 메인 요리였죠. 그곳에는 분식점처럼 쌀국수 집이 참 많았어요. 가격도 대단히 저렴해서 3~4천원 정도면 훌륭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죠.
그러나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로는, 생각해보니 쌀국수를 거의 찾아먹지 않았네요. 유명 체인점인 가더라도 쌀국수보다는 팟타이나 볶음밥을 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아마도 베트남 현지에서 먹었던 뜨거운 쌀국수의 맛이 너무 그리웠나 봐요.
퍼틴 쌀국수 특징
구로역 nc신구로점 퍼틴 쌀국수는 베트남 하노이 3대 쌀국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주로 호치민에 거주했기 때문에, 하노이의 퍼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호치민에서도 퍼틴 쌀국수를 맛볼 수 있었어요(체인점인지는 확실 않음).
퍼틴은 마치 우리나라의 잔치국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보통 베트남 현지에서는 소고기 쌀국수를 'Pho bo'라고 부르며, 간판에는 대부분 'Pho'만 표기됩니다.
저는 베트남 생활하면서 즐겨 찾았기에 퍼틴(PhoThin) 쌀국수의 역사를 알고 있어요.
1970년대에 하노이에서 시작된 퍼틴 쌀국수는 소고기를 넣고 끓인 진한 국물과 쫄깃한 쌀국수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에는 하노이 시민들에게 새로운 맛이었죠.
퍼틴 쌀국수의 특징
국물: 8시간 이상 끓여 만든 진하고 소고기 육수 국물이 특징입니다.
면: 쫄깃하고 얇은 쌀면을 사용합니다.
고기: 직화로 구운 소고기를 넣습니다.
양념: 라임, 고수, 후추, 칠리 소스 등을 취향껏 추가합니다.
가격: 다른 쌀국수 가게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품질과 맛을 고려하면 합리적입니다.
진하고 풍미 있는 국물, 쫄깃한 면, 신선한 고기, 깨끗한 환경 등이 퍼틴 쌀국수의 맛입니다.
위치 및 영업시간
퍼틴은 구로역 NC백화점 지하1층 푸드코트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일과 주말 시간은 다르지만 오전 10시 30��부터 밤 9시까지 영업합니다.
구로역 퍼틴의 프리미엄쌀국수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직화쌀국수는 10,500원. 꿔이는 쌀국수의 국물에 담궈 먹는 별미 입니다. 또한, 추가 육수가 필요하면 요청하면 됩니다.
베트남 현지의 쌀국수와 마찬가지로 퍼틴 쌀국수 국물에서는 소뼈 육수와 베트남의 액젓으로 쿰쿰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곁들여 먹는 마늘, 매운 고추, 스리라차 소스도 현지 맛 그대로 인것 같아요.
베트남에서의 좋은 추억을 되살리는 맛있는 식사였습니다. 구로역 퍼틴에서는 베트남 현지의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어, 베트남 음식을 좋아한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볼 만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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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barhcm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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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여행사진, 호치민여행 사진에서) . 베트남 호치민은 현재 건기에 접어들었습니다.이 시기는 비가 적게 내리고 일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관광과 골프 등 야외 활동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꾸밈 없는 아름다운 자연과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들은 여행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또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가끔은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베트남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베트남 #호치민 #건기 #베트남여행 #베트남골프 #베트남유흥#여행 #관광 #골프 #야외활동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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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7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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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황제 골프 여행 필리핀 태국 베트남 feat.동남아 골프 여행
[회원수 5만명의 검증된 밤문화 골프여행 현지여행사] [ 여행문의 : rentno1 ] [필리핀관광청선정 8년연속 BEST AGENCY] 필맨스토리 필리핀골프여행 & 밤문화여행 ↓↓더 많은 필리핀 정보가 필요하시면 클릭해 주세요↓↓ https://cafe.naver.com/philmanlove
1. 해외 골프여행,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즐기는 동남아 골프 여행 ⛳️
2. 필리핀 골프 여행 🏌️‍♂️🇵🇭
2.1. 필리핀에서의 골프 여행의 매력 ✨
2.2. 추천 골프 코스 🏌️‍♀️
로얄 팔라우 골프 클럽: 바다와 인접해 있어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골프장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장 중 하나입니다.
세부 골프 클럽: 초보자부터 숙련된 골퍼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를 제공하는 세부의 대표 골프장입니다.
2.3. 필리핀 골프 여행 패키지 📅
3. 태국 골프 여행 🏌️‍♂️🇹🇭
3.1. 태국에서의 골프 여행의 매력 ✨
태국은 골프 여행지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방콕, 파타야, 푸켓 등지에는 다양한 난이도의 골프 코스가 있어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골프와 함께 태국의 아름다운 해변과 풍성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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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tein24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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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Z의 'Glory Dayz' 아시아 투어 베트남 대성공
2Z(투지) 5인조 보이밴드가 베트남에서 진행한 ‘Glory Dayz’ 아시아 투어의 대미를 장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전율 넘치는 콘서트 이후, 그룹은 지난 한 달 28일과 29일 호치민시와 하노이에서 팬들에게 독특한 에너지를 선사했습니다. ‘Beyond the Borders’라는 제목의 이 투어는 음악을 통해 문화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콘서트 동안 2Z는 그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는 다양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고, 베트남과 중국의 재능 있는 게스트 아티스트들과 협력하여 The Sans, NGHICH, Red East와 같은 인기 밴드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이벤트에 더욱 흥미를 추가하여 기억에 남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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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cpr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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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티비가 소개한 "깝화롭 망고"란? 한국에 상륙한 특별한 망고 이야기
깝화롭 망고'는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망고로, 현지에서도 귀한 과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망고와는 차별화된 독특한 풍미와 식감을 자랑하며, 과육이 매우 부드럽고 당도가 높아 망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망고는 베트남 남부 지역에서 자라며,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과육이 진하고 맛이 깊은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깝화롭 망고는 과일의 크기가 크고, 색이 노란빛을 띠며,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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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이티비와 깝화롭 망고의 관계 유튜브 채널 '코이티비(KOITV)'는 한국과 필리핀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생활, 음식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기 채널입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현지의 특별한 과일인 깝화롭 망고를 한국에 소개하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코이티비는 베트남 현지 농장을 직접 방문해 깝화롭 망고의 재배 과정과 신선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깝화롭 망고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현지 농민들과 협력하며 한국으로 수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테스트 판매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이티비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3. 깝화롭 망고의 인기 비결 코이티비가 소개한 깝화롭 망고는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가 인기 비결입니다: - 특별한 맛과 향: 기존의 망고보다 더욱 진하고 풍부한 달콤함으로,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맛을 자랑합니다. - 신선한 공급망 구축: 코이티비가 현지 농장에서 직접 공수하여 유통 시간을 줄이고, 신선도를 극대화했습니다. - 한정 수량 판매 전략: 초기에 한정 수량으로 판매해 희소성을 높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나의 숨은 보험금 찾기 바로가기 4. 깝화롭 망고 구입 방법 현재 깝화롭 망고는 일부 온라인 마켓과 코이티비의 공식 채널을 통해 판매되고 있습니다. 다만, 깝화롭 망고는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매번 빠르게 품절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구매를 원하신다면 코이티비 공식 유튜브 채널이나 SNS를 통해 판매 일정과 예약 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5. 깝화롭 망고 보관 및 먹는 방법 신선한 깝화롭 망고를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합니다: - 보관법: 깝화롭 망고는 실온에서 숙성시킨 후, 먹기 직전에 냉장 보관하면 맛과 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습니다. - 먹는 방법: 깝화롭 망고는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스무디, 디저트, 샐러드에 곁들여도 훌륭한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6. 깝화롭 망고를 둘러싼 기대와 전망 코이티비가 깝화롭 망고를 한국에 소개한 이후, 베트남 현지의 다양한 고급 과일들이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깝화롭 망고는 맛뿐만 아니라 품질에서도 뛰어나 한국 시장에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이티비의 열정과 노력이 더해져 한국에서도 손쉽게 깝화롭 망고를 맛볼 기회가 열렸습니다. 다음번 깝화롭 망고 판매가 시작될 때는 놓치지 말고 경험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Read the full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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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rypersondaze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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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인 케네디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이 주장을 내세웠다. "USAID는 납세자의 돈으로 베트남에서 전기 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주었습니다. USAID는 인도의 트랜스젠더 클리닉에 돈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미국 국민도 몰랐을 겁니다. 머스크는 또한 세르비아 LGBT 조직에 150만 달러가 지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세르비아 직장과 기업 커뮤니티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해 그 돈을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말했다.
"USAID는 전 세계의 급진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억 6,400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그 중 1억 2,200만 달러를 외국 테러 조직과 연계된 단체에 제공했습니다. USAID는 가자지구의 그러한 조직에 수백만 달러를 제공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USAID에 대한 케네디의 주장을 강조한 X의 게시물에 "와우"라고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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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ryninjaruins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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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인 케네디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이 주장을 내세웠다. "USAID는 납세자의 돈으로 베트남에서 전기 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주었습니다. USAID는 인도의 트랜스젠더 클리닉에 돈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미국 국민도 몰랐을 겁니다. 머스크는 또한 세르비아 LGBT 조직에 150만 달러가 지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세르비아 직장과 기업 커뮤니티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해 그 돈을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말했다.
"USAID는 전 세계의 급진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억 6,400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그 중 1억 2,200만 달러를 외국 테러 조직과 연계된 단체에 제공했습니다. USAID는 가자지구의 그러한 조직에 수백만 달러를 제공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USAID에 대한 케네디의 주장을 강조한 X의 게시물에 "와우"라고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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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1115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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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원인 케네디는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면서 이 주장을 내세웠다. "USAID는 납세자의 돈으로 베트남에서 전기 자동차를 지원하기 위해 돈을 주었습니다. USAID는 인도의 트랜스젠더 클리닉에 돈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미국 국민도 몰랐을 겁니다. 머스크는 또한 세르비아 LGBT 조직에 150만 달러가 지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세르비아 직장과 기업 커뮤니티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증진하기 위해 그 돈을 받았습니다." 케네디가 말했다.
"USAID는 전 세계의 급진 조직을 지원하기 위해 1억 6,400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그 중 1억 2,200만 달러를 외국 테러 조직과 연계된 단체에 제공했습니다. USAID는 가자지구의 그러한 조직에 수백만 달러를 제공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USAID에 대한 케네디의 주장을 강조한 X의 게시물에 "와우"라고 응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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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quayaken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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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에서 꼭 맛봐야 할 특별한 경험, 베트남 리시
베트남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베트남 리시를 꼭 경험해 보세요! 리시는 베트남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준비되는 해산물 요리로, 신선한 재료와 깊은 감칠맛이 특징입니다. 특히 _Bún Quậy A Ken_에서는 현지의 정통 레시피로 만들어 더욱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트남 리시는 신선한 새우, 오징어, 생선 등을 즉석에서 섞어 제공하는 방식으로, 한 입 먹으면 바다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납니다. 현지인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꼭 먹어봐야 할 별미입니다. 베트남에서 특별한 미식 경험을 원한다면 _Bún Quậy A Ken_을 방문해보세요!
Visit: https://bunquay.net/ko/blogs/%EB%89%B4%EC%8A%A4/the-history-of-ang-pao-in-vietnam-and-how-much-money-should-be-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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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ese-red-flavor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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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건기 : 2월 ~ 5월
우기 : 9월 ~ 12월
1월은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
6월 ~ 8월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시기
<추천 여행 시기>
1월 ~ 5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있는 호이안은 베트남 다낭의 근교에 위치해서 베트남 여행에서 
다낭에 머물면서도 당일치기로 여행하기 좋답니다.
15세기 이래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진 곳으로 호이안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해요.
독특한 양식의 고대가옥, 박물관, 사원 등의 고대 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있으며 
이를 통해서 가장 베트남 여행다운 느낌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투본강을 지나는 소원배를 타고 20분 정도 강을 오가며, 배 위에서 소원등을 띄우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도 베트남 여행에서 해보시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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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ssy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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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후 책을 끊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활자안의 내용들보다 현실에서 삶이 더 어렵다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따금씩 일기 같은것을 업무용 수첩에 적곤 했는데
사무실에 두고 다닌 내 수첩을 훔쳐라도 본 것인지
첫번째 회사(사실은 두번째)를 그만둘때 소장님께서
혹시 글 쓰는것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시던 기억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으로 책이나 작문을 전보다 손에서 놓았고, 일에 집중한다 생각했는데 나의 사장이 저렇게 물어보니 내가 일을 정말 못 했나보다 라고 생각들었다.
요즘 이따금씩 집에서 소설책을 한권씩 본다. 지난 2년동안 베트남에서 유튜브나 ott 등 영상물에 싫증이 나서 그런것 같다.
요즘은 영상을 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영상컨텐츠가 새롭다고 느낄 시점에는 그것을 보고 기억하며 다음날이나 며칠 후 회사동료나 친구들에게 꼭 말햐줘야지 하며 기억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내가 무엇을 봤는지,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다시 찾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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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tar115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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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튜브는 "여기 진짜 잘 왔다", "(맛집) 건졌다!"라며 '엄지 척'을 날린다.전현무-곽튜브의 먹트립 현장은 오는 29일(금) 밤 9시 10분 방송하는 '전현무계획' 8회에서 만날 수 있다.그룹 티아라 겸 배우 함은정이 모친상을 당했다. 베트남에서 촬영 스케줄 소화 중이던 그는 비보를 듣고 급히 귀국했다. 함은정의 소속사 마스크스튜디오는 27일 입장을 내고 "함은정의 모친께서 별세해 깊은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라고 밝혔다.소속사에 따르면, 함은정 모친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9일 엄수될 예정이다.이어 소속사는 "함은정과 유가족 분들이 함께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위로와 배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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