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강
Explore tagged Tumblr posts
just-in-case-blog · 1 year ago
Text
발더스 게이트 엔딩 보고
엄청 기분 좋아서 온갖 소감과 상상 마구 써봄
두서 없지만 꼭 기록해보고 싶었음....
전투:
-지하에 숨은 엘더 브레인 찾을 때부터 윗도시 진입, 네더 브레인 전투 모두 아무 공략도 보지 않고 플레이함.
이미 스포당한 요소가 몇개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리얼 타임 긴장을 느끼고 싶었음.
그 결과 세이브 로드 몇 번 하긴 했지만 정말 내가 준비한 아이템과 스킬만으로 위기상황 전부 해결해서 굉장히 기뻤다
엄청 뿌듯했던 순간 두 개:
오르페우스가 카사스의 왕관 조종 마법 쓰는 동안 마법 구체 스크롤 써서 완벽하게 보호해줬을 때 - 오르페우스까지 5명 전원 무적 구체 안에 들어감. 정말 준비물 잘 챙겼다고 스스로를 칭찬함
네더 브레인 정신 속으로 침입했을 때 - 네더 브레인의 공격에 플랫폼이 무너지는 줄 전혀 몰랐어서 신속물약 부작용 때문에 탈진된 타브와 카를라크가 꼼짝없이 다음 턴에 부정한 구체 폭발 때문에 낙사할 상황이었다. 그 때 마침 염력 장갑 낀 레이젤이 ���리 준비해둔 신속 물약 마셔서 염력 2번 사용해 두 명을 폭발 범위 밖으로 집어던짐… 짱 짜릿했다…
Tumblr media Tumblr media
-나 최종전에 와서야 보조행동과 그냥 행동
그러니까 동그라미 아이콘이랑 세모 아이콘 구분하는 방법 이제 와서 깨달음
지금까지 파란색 원형 게이지만 보고 판단했음
-아군 소환 제때제때 부르기가 어려웠음…
롤란과 키스라크의 도움을 쓰지 못한 게 아쉬움 마지막에 쓰려고 엄청 아꼈는데
네더브레인 위에 올라가니까 하필 ��염 저항 있는 드래곤이 나와서 쏘질 못했음
게다가 피아구분 없는 폭격 같아서 잘못 겨냥했다 아군 죽을까 봐. 제블로어 불렀거든
그는 그래도 전사했지만
헬라이더 3인방 중에 제블로어만 전사한게 말이 되냐
손이 벌벌 떨렸음…
바로 전에 나 오늘 전사해도 괜찮다고 말한 사람이 진짜 전사해서 "플래그 회수한거냐고!!!" 비명지름
황제:
난 황제랑 잤음.
그리고 그 경험 때문에 배신하기로 결정함
몸 함부로 굴리는 타브 컨셉 플레이로 동맹으로서 호감을 표현한다는 기분으로 같이 잤는데 널 이만큼 믿는다는 의미로
이 자식이 그 일 목격한 동료들 기억을 싹 지우길래 굉장히 실망
이것까지 해줘도 너는 동료들 기억 주무르는 것은 양보할 생각이 없구나 싶어서.
와 쓰다보니 새삼 나 정말 과몰입해서 플레이했구나 깨닫는다.
그 전까진 목소리 멋있어서 두근두근♡했었는데 자고난 뒤로 감정 차분- 해져서 뭔 짓을 해도 별 감흥 못 느낌
예전에 발더란이었던거 깨닫고도 좀 놀라고 말았고…
그래서 마지막 컷신과 전투들 중에도 얘한텐 별 느낌 없었다. 모든 대사 ㅇㅋㅂㅇ~하고 넘긴 듯
오르페우스:
-이 분과 같은 편이 되기 위해 엄청난 설득과정을 거쳐야 할 줄 알았음. 그래서 레이젤도 데려감.
풀려나자마자 "이 일리시드랑 붙어먹은 놈!!!"이라고 극대노하셔서(fornicate라는 단어 분명히 들었음…) 아군되긴 글렀나 싶었는데 예상보다 엄청 쿨하시더라
심지어 타브가 일리시드 되기 싫다니까 본인이 일리시드 되심.
당신 일리시드 폼의 블랙홀 능력과 폭팔 스킬 정말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이 분이 엘더브레인 막타도 치셨어요!
-모든 일 끝나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지만
본인 자아 잘 유지하고 있길래 살려주려고 "넌 죽을 자격 없다"(아마 원문은 you do not deserve~이려나)고 한 번 거절했는데
"이 몸에 갇히고 싶지 않아" "날 자유롭게 해줘" 라는 대사에 울컥해서 부탁 들어줌
"또 갇히고 싶지 않아"로 들려서… 그는 정말 오랫동안 감옥 살이한 사람이잖아…
레이젤:
-차마 곁에 계속 남아달라고 하지 못했음
오르페우스 일 때문도 있고… 기���양키의 해방이 레이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타브를 해방자라고 불러줘서 고맙고
야영지에서 실물로 만나지 못한 건 아��지만 평생 친구로 남을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야
-대부분의 장비를 기스양키 장비로 입혀줬었는데, 레이젤이 바알 신전 포로에서 풀려난 뒤로 타브가 입던 아다만틴 갑옷을 줬거든.
얼마 없는 중갑 착용 가능 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치명타 맞지 말고 너를 건드는 모든 사람 비틀거리게 만들라고…
드래곤에 올라탈 때 그 갑옷 입고 타브랑 찐하게 아이컨택해서 과몰입 오타쿠 감동 먹음
그 갑옷 다시 착용하지 않아도 우리 모험의 기념품으로 간직해주면 좋겠다…
Tumblr media
카를라크:
약속대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함.
마지막까지 타브에게 동료에게 사랑한다(I adore you)고 말해주더라… 정말 한결 같고 강한 마음가짐의 친구…
마지막엔 내가 엉엉 울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청 침착했음.
미리 이 이야기를 비극이라 부르지 말자고 마음 먹어서 그런가 봐.
Tumblr media
섀도하트:
재회의 야영지에서 제일 먼저 대화한 친구. 냅다 껴안음.
어떻게 게임 그래픽인데 표정이 밝아진게 이렇게 잘 보일까? 감탄했어
셀루네 신전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꼭 어떤 종교에 헌신하고 있는 것 같진 않더라. 이 점 굉장히 마음에 들었음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샤 신도들이 노린대도 섀도하트는 어떻게든 이겨낼 친구 같아서 별로 걱정 안 됨.
신나서 이거 정기 모임 만들자는 대사랑 Don't be a stranger! 대사 덕분에 빵끗 웃었다 야
Tumblr media Tumblr media
게일:
-최종전 준비하면서 엄청 걱정한 친구. 혹시 자살하려 들거나 왕관 먹겠다고 도중에 뛰어나오는 컷신 나올까봐 …
근데? 엔딩서 왕관은 걍 강 어딘가에 냅두는게 어때, 한마디 했더니 바로 신 될 생각 버리겠다네??
정말 기뻤음!!!
근데 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린거지…?
타브와의 호감도나 그간 대사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나…? 최종 전투에 안 데려가서…? 뭐가 트리거였는지 전혀 모르겠음
하여간 정말 잘 됐음!!!
-이제 교수래! 환영학파 교수래! 난 너 방출학파로 써서 환영학 전혀 모르는데 하여간 잘 됐어!!
초청강연 제안하길래 파이터 특수 대사로 학생들 보고 신체 포기 각서 쓰면 간다고 함. 그랬더니 ㅇㅋㅇㅋ이러네
역시 웃수저 친구.
타라한테도 인정 받았으니까 타브 나중에 반드시 게일 집에 놀러갈 듯
Tumblr media Tumblr media
할신:
고백받은 뒤로 할신 안 써서 우리 야영지 동료들 중에 할신 혼자 레벨 1이었거든
혹시 이거 때문에 다른 친구들 다들 뜨는 호칭이 안 떴나 스크래치도 뜨던데
혹시 미련 남은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칭찬하고 말 많이 해서 살짝 부담스러웠음…
하지만 오리 받고 그런 마음은 사라짐
나중에 저주 사라진 땅 꼭 확인하러 가고 싶어졌어 인겜에서 못봐서 아쉽다
Tumblr media Tumblr media
아스타리온:
정말 행복해보여서 다행이야…
말 이렇게 많이 하는거 처음 봄.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 특히 "나는 나야!" 말할 때.
너무너무 안아주고 싶었는데 옵션 안 떠서 아쉬웠음
예의 그 느끼한 ""달링"" 인사로 대화가 끝났지만 전혀 억지 대사 같지 않아서 기뻤어. 너보다 화면 밖의 내가 더 환하게 웃었다고 장담한다.
Tumblr media
자헤이라:
집은 찾았나? <<라는 질문에 깜짝 놀람.
계속해서 발더스 게이트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npc 한테 집 소리를 듣다니!
그리고 엄청 툴툴거리지만 열심히 도시 재건에 힘쓰셔서 역시 츤데레… 중얼거림
여행 중에 "사랑했던 사람" 이야기는 하기 싫다고 해서 못 들었지만 자식 이야기는 더 듣고 싶다
Tumblr media
민스크:
파티에 길드 멤버 하나 잡아왔더라
길드랑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아주 신기한… 관계가 되었나 보더라고 역시 마지막까지 예측불가의 사나이…
여행 중에 그랬듯 모든 야영지 동료들을 위해 한 줄 코멘트를 남겨줌…
민스크처럼 영원불멸할 것 같은 이미지의 친구는 또 없을 거다
위더스:
-나는 지하던전에서 위더스를 만나지 못해서 그가 직접 야영지로 찾아왔고, 위더스 능력도 거의 안 써서 서먹했음…
동료 소환 해본 적 없고, 직업 변경도 안 했고, 위더스가 누구 부활시킨 적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걸
���런데 야영지 파티에서 말 거니까 카를라크를 먼저 언급해주더라
농담도 해주고… 카를라크의 영혼은 누구보다 밝게 빛날 거라고 말해줘서 감동 받음… 이런 성격이었어???
앞날에 부와 행운 등등 그리고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만이 있기를 바란다는 축사까지… 마지막에 의외의 감동을 선물해줘서 고마웠음
Tumblr media
-언데드라서 우리보고 필멸자라 부르는 줄 알았더니
데려온 바드가 뭔가… 신? 이랑 관련된 사람 같고(나도 타브도 종교 굴림 실패함. 시어릭이랑 방랑계가 어쩌고 그랬는데)
삼악신 벽화 보고 의미심장한 코멘트 남기는 것을 보니 얘도 쵸즌이거나 신의 그릇일지도??
이런건 이미 많은 팬들이 추측글 써줬겠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대사보고 혹시 당신이 발더란의 노래(엘프의 노래 여관의 배경음악) 작사가임?? 하고 물어보고 싶어졌어
윌:
세이브 파일 3일차의 남자. 로맨스 상대. 대공 윌…
대공 루트가 윌의 승천인줄 알고 걱정 많이 했음. 이게 일종의 타락이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엔딩 끝나자마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선 [1. 장례식&추모식. / 2. 도시 건물 재건(판잣집 말고 제대로 된 집들로)] 읊고
그리고 내 마음은 언제나 변경frontier을 향한다고 말해줘서 당분간은 걱정 안해도 되겠다 싶었다…
젊을 때 개혁 팍팍해놓자 윌.
나중에 네가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정치인은 그런 존재잖아...
Tumblr media Tumblr media
타브:
-재회의 야영지에 엄청 멋진 복장을 입고 나타나서 내가 다 놀람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윌이 재회의 야영지에 의회 의원 자리 제안해줬는데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음.
매력8 능력치로 정치인은 무리이거니와
부부가 둘 다 정치하면 애는 누가 키워!!!
-캐릭터 만들 때 별 생각 없이 부랑자 출신을 골랐는데 엔딩 보고나니 그 출신 설정에 맞게 각종 캐릭터 설정 상상한 나를 ��견함.
이런 경험 처음이야! 엄청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지금 엔딩 봐서 엄청 흥분한 김에 타브 미래 상상 몇 개 적어놔야겠다 싶음.
-마지막 전투 이후 6개월 동안은 윌의 [1. 장례식&추모식. / 2. 도시 건물 재건]과 살림 마련에 집중,
이후 결혼식 없이 신전에서 소식 받은 뒤로 바로 아이 입양…
프러포즈를 도토리로 한 남편 둔 사람이다. 우리 타브 성대한 잔치에 욕심 없어.
자기 어렸을 때 자기 옆에 오래 있어준 어른은 없었기에 완전 딸바보 아빠될 듯.
애 사춘기 때 되면 좀 싸우겠네
애 다 클 때까진 윌이랑 주말부부처럼 살 것 같다.
직접 지은 집에서 딸이랑 함께 살 것 같아…
딸 일단은 타브 집에서 살다가 좀 크면 윌 집이랑 타브 집 왔다갔다 하며 지낼 듯.
-본격 정치는 안 하는데 가끔 귀족 사교 무도회나 각종 사회 행사에 참여는 할 듯…
정계에는 없는데 발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사람 되어있을 듯…
-나이가 더 들면 종교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열린 손 신전 가지 않을까.
머리는 길러서 묶을 것 같고, 백반증이 심해져서 손 말고 얼굴에도 반점이 더 생길지도.
그리고 근력 능력치는 20이하로 내려가고 npc 기본 매력 능력치 10까지는 오를 것 같다
-딸이 자라 독립하면 윌이랑 살림 합치고… 여행을 자주 다닐 것 같네
혼자 갈 때도 있고, 딸이랑 같이 다녀올 때도 있고, 윌이랑 다녀올 때도 있고…
주로 친구들이 있는 지역으로 다녀올 듯
하지만 항상 발더스 게이트로 돌아올 거야 이 친구 드디어 자기만의 집을 꾸렸으니까
1 note · View note
lemon2sang · 1 year ago
Text
Tumblr media
(사진 출처 : https://www.nejlevnejsi-knihy.cz/kniha/parasitic-mind_25465481.html?hgtid=acc3e461-ae64-4d83-90d0-d892fa28a310 )
<서문>
유행병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치명적인 전염병이 이 나라 저 나라로 급속히 퍼지면서 인류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중세의 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이즈(AIDS), 혹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비드-19 위기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서구에서는 현재 그 못지않게 치명적인 전염병,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생각할 능력을 파괴하는 집단적 질병을 앓고 있다. 생물학적 병원체가 원인인 다른 유행병과 달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병의 주범은 대학가에 퍼진 나쁜 사상들이다. 이런 사상은 이성과 자유, 개인 존엄성의 체계를 갉아먹는다. (p8)
<제1장 레바논 내전에서 사상의 전투까지>
내 인생을 추진하는 이상(理想)은 자유와 진리이며, 이들 이상에 대한 공격은 곧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한 존재적 위협을 의미한다. 나 자신 역시 두 번의 전쟁으로 말미암은 독특한 인생 궤적의 산물이다. 평생 한 번도 전쟁의 공포를 겪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나는 인생에서 두 차례에 걸쳐 큰 전쟁을 겪었다. 하나는 레바논 내전이고, 두 번째는 서구 세계 특히 북미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이성과 과학, 논리에 대항하는 전쟁이다. 레바논 내전은 일찍이 내게 부족주의와 종교적 도그마의 추악함을 가르쳐줬다. 집단이 개성보다 더 중요한 생태계에서 성장한 나는 이후 정체성 정치에 대한 경멸감을 갖게 됐다. (p22)
한 사람의 인생이 반복되는 인생 각본에 따라 결정되는지, 아니면 어떤 이상을 반복해 주장함으로써 결정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깊은(그리고 어려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직면한 여러 가지 현실이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세심히 살펴보면 현실은 어떤 대본이��� 자신이 가치를 둔 이상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 치료의 한 가지 이점은 환자들에게 이런 패턴을 정확히 짚어준다는 것이다. 내 경우, 인생은 자유와 진리라는 두 가지 이상에 의해 형성됐다. 이 두 가지 이상의 추구는 부모님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각인된 개인적 성격이 발현된 것이다. (p32)
자유가 없이는 두 번째 이상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 두 번째 나의 이상은 진리의 추구와 수호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라는 성경 구절처럼, 진리와 자유는 서로 양방향성 관계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오직 자유로울 때만 진리를 밝히고자 열망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진리가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나는 걱정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래왔다. 내가 자랄 때 어머니는 거듭 경고했다. 이 세상은 내 병적인 솔직함과 정직성에 대한 헌신을 이해하는 건 고사하고 극도로 엄격한 나의 지적, 윤리적, 도덕적, 순수성의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은 흑과 백의 이분법적인(어머니가 이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곳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의 다양한 명암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내게 간곡히 일렀다. (p36-37)
39
반과학(포스트모더니즘)과 과학부정주의(생물학 혐오)를 퍼뜨리는 데서 더 나아가, 대학들은 끔찍하게 나쁜 사상들��� 운동을 퍼뜨리는 최초 감염자 역할을 한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지식인이 아니고서야 그런 걸 믿을 수 없다. 정상인이라면 그 누구도 그렇게 어리석을 수 없다"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이런 다수의 나쁜 사상들이 확산되면서 학계의 보상 체계가 뒤집혔다. 집단적 사고방식은 보상받는다. 혁신적 사상가들에게는 정조대가 채워진다. '자기 자리만 지키는' 학자는 보상받는다. 솔직하게 발설하는 학자는 처벌받는다. 고도의 전문화는 보상받는다. 폭넓은 종합적 사고는 경멸받는다. 지적 용기에 해당하는 모든 자질은 문젯거리로 여겨진다. 진보주의의 좌익적 교리를 고수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보상받는다. 결과의 평등을 신봉하는 자에게는 최고의 행정직을 준다. 실력주의를 신봉하는 자에게는 눈살을 찌푸린다.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대학들이 뿌려놓는 이런 기생충 같은 사상의 병원체들은 마침내 우리 사회의 모든 곳을 감염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p42-43)
이 책에서는 인간 상태에 잠재적으로 그만큼이나 위협적인 또 다른 병원체들, 즉 인간 마음에 기생하는 병원체들에 대해 알아보는 데 중점을 둔다. 이 병원체들은 올바르게 정확하게 생각하는 능력에 기생해 이를 망가뜨리는 사고 유형, 신념 체계, 태도, 사고방식들로 이뤄졌다. 일단 이런 마음의 바이러스가 우리 신경회로를 장악하면, 감염자는 이성(理性)과 논리, 과학을 사용해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을 잃는다. 그 대신 현실이나 상식과 진리로부터 완강하고 오만하게 멀어진다고 정의하면 딱 맞을, 무한한 광기의 심연에 빠진다. 기생충들은 신체의 여러 부분을 목표로 삼아 자리잡는데, 그 중에서 뇌 기생충학은 숙주의 행동을 여러 방식으로 조작하는 뇌 기생충들의 강(綱)을 다루는 학문이다. (p44)
내가 다루는 인간 마음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중에는 포스트모더니즘, 급진 페미니즘, 사회구성주의가 있는데, 셋 다 주로 감염된 생태계 안, 바로 대학들 안에서 번성하고 있다. 마음의 바이러스마다 각자 한 계통씩 광기를 빚어내기는 하지만, 이들 모두는 현실과 상식을 전면 거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급진 페미니즘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생물학에 기반한 성별 차이를 비웃으며, 사회구성주의는 인간의 마음이 생물학적 청사진은 전혀 없이 완전한 공백에서 시작된다고 상정한다). 이런 마음의 바이러스들은 일반적으로 내가 타조 기생충 증후군 (OPS, Ostrich Parasitic Syndrome), 즉 중력이 당기는 힘만큼이나 명백한 근본적 진실과 현실을 감염자 개개인이 거부하게끔 다양한 사고장애(思考障礙) 증상을 일으킨다. (p45-46)
48 (49)
<제2장 생각 대 느낌, 진실 대 상처받은 느낌>
"기베트는 우리 모두가 신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우주가 창조되었느냐 아니냐, 생명이 설계된 것이냐 아니냐, 도덕이 자연적인 것이냐 아니냐, 예수가 부활한 것이냐 아니냐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나는 세상에 오직 두 가지 이론밖에 없다고 설명함으로써 반박을 시작하겠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이론과 그렇지 않은 이론." 셔머의 이 뛰어난 우스갯소리는 중요한 인식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시 말해 지식의 추구가 항상 이분법으로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상을 이진법적 현실로 투영하고 싶어 하는 연구원이 많은 경향에 나는 '인식론적 이분법 마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경향은 과학적 실험이 용이하게끔, 다루기 쉽고 간단한 세계관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것은, 선천이냐 후천이냐 하는 논의가 그렇듯, 이분법 자체가 잘못인 경우도 때로 있다는 점이다. 생물학자 매트 리들리(Matt Ridley)에 의하면 "선천이나 후천이냐의 문제는 끝났다" 우리 자신의 성품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와 환경이 도저히 분리가 안 될 만큼 뒤섞인 혼합물에서 나왔다. 더욱이 사회화(양육 즉 후천)에 공통적 패턴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생물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들(선천) 때문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싶어 하는 욕망은 생각 대 감정의 이분법에서도 발견되며, 이로 인해 잘못된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이 생긴다. 우리는 생각도 하고 느끼기도 하는 동물이다. 문제는 언제 인지 능력(생각)을 작동하고 언제 정서 능력(느낌)을 작동하는지를 아는 거다. (p55)
문제는 지성이 담당해야 할 영역을 감정이 차지했을 때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학들에 만연한 역병이다. 한 때 지적 발달의 중심지였던 대학들이 이제는 감정적으로 연약한 이들의 도피처가 됐다. 대학을 움직이는 좌우명은 더 이상 '진리의 추구'가 아니라 '상처받은 감정 얼러주기'가 됐다. (p59)
사람들의 일상적 행동을 이끄는 기본적인 윤리적 지향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의무론적 윤리와 결과주의적 윤리가 그것이다. 전자는 절대주의적 관점으로 윤리 규범을 다루며(거짓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됐다) 후자는 어떤 행동의 윤리적 가치를 그 결과에 따라 판단한다(남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려면 때로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 현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이 두 가지 체계를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령 당신의 아내가 '나 뚱뚱해 보여?' 하고 물으면 당신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꺼리지 않고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린이를 성적으로 대하는 건 도덕적으로 그른 일로 간주한다. 진리 추구에 관해, 의무론적 관점에서는 진리를 훼손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과주의적 관점에서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등 나쁜 결과를 피하기 위해, 진리가 때로는 변경되고 조작되거나 억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 진영에서 보는 광기의 상당수는 바로 진리를 결과주의적으로 다룬 결과다. (p62)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한 가지 문제는, 이 결과주의자들이 단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것뿐 아니라 감정에야말로 권한이 있다고 보고, 감정으로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 걸 미덕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p63)
64 76
편견에 가득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고서야 그런 세속주의와 근대성, 진정한 리버럴리즘의 상징이 불편할 리가 없다. 물론 나는 지금 비꼬고 있다. 어리석은 자살 행위를 피할 방법이라곤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각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지배적인 감각이다. 인간의 고도로 전문화된 시각 체계는 얼굴 생김새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 걸쳐 비언어적인 시각적 신호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일단 한 사람의 정체성과 인간됨이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검정 장옷 뒤에 가려지면, 제정신인 사람 대부분은 그런 현실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미덕 과시자들은 불편한 시각적 자극에 대해 극히 합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놀리고 조소하고 비난한다. (p77)
명확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이성, 유머와 진지함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며, 살아가면서 언제 감정 체계를 작동하고 언제인지 체계를 작동해야 하는지 이해한다. 그러나 사상의 병원체에 잠식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 병원체들은 급속히 퍼지며 우리의 자유를 위협한다. (p78)
<제3장 자유 현대 사회를 이루는 타협 불가한 필수 요소들>
진정으로 자유롭고 근대적인 사회가 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하버드 대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서구를 위대하게 만든 요소로 '여섯 가지 컬러 앱(Killer Apps)', 즉 경쟁, 과학혁명, 재산권, 현대 의학, 소비자사회, 근무 윤리를 제시했다. 이번 장에서는 이 요소들을 보다 더 간략히 압축해서 설명하려 한다. 나는 어떤 사상에 대해 토론할 자유(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다른 사상들을 검증하기 위해 이성과 과학에 헌신(과학적 방법)하는 태도와 결합한 결과 서구 문명이 위대해졌다고 상정한다. (p81)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내 노력을 지지한다 말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사드 박사님, 제 이름은 말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선생님과 같은 견해를 가진 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해요"라고 말한다. 어째서 자유로운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신념을 말하기 두려워하는가?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그 '진보주의자'들이 원하는 방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p86)
2005년 루슈디가 쓴 기사의 두 구절은 표현의 자유를 간결하게 옹호한다. '사람들이 절대 기분 상하거나 모욕당하지 않을, 혹은 기분 상하거나 모욕당하지 않게끔 자신들을 보호할 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할 권리가 있는 자유 사회를 건설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나 더 있다. '종교적 신념 체계든 세속적 이념이든 어떤 사상 체계가 숭고하다고 말하는 그 순간, 어떤 사상들은 비판이나 풍자, 조롱, 경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그 순간, 사상의 자유는 불가능해진다." (p90)
"나는 표현의 자유를 믿어요. 하지만…"이라고 생각하는 군중은 이미 표현의 자유가 의미하는 기본 정신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뒤에는 대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나온다. 남들이 기분 상하지 않을 권리를 표현의 자유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표현의 자유는 정확히 말해 가장 불쾌하고 공격적이며 역겨운 발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따금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는 건 진정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며 치러야 할 대가다. 당신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배포 있게 넘어가라. 말할 나위도 없지만, 아무리 절대주의적 표현의 자유라 하더라도 멀쩡한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소리친다든지, 서로 폭력을 부추긴다든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비방하는 담론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일반적 조건은 따른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의 적들은 이런 상식적인 제한들을 왜곡해서 자기들 목적에 부합하게 만들려한다. (p93-94)
오바마는 유엔 회의에서 "미래는 이슬람의 선지자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으로 유명하다. 천만의 말씀이다. 대통령님. 미래는 모든 선지자와 사상, 종교, 이념을 비판하고 놀리고 조롱하고 풍자하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합니다. (p95)
여기에서 배울 점은 자유 사회는 풍자의 힘으로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 사회에서는 모든 믿음과 이념들이 공정하게 경기한다. 풍자의 한계를 정하는 순간, 그 사회는 더 이상 자유 사회가 아니다. (p99)
그러나 인간 지식이라는 만신전(萬神殿)에서 과학적 정보를 성문화하는 방식은 문화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퀘벡 주 고위공무원인 파트릭 보셴(Patrick Beauchesne)은 최근 토착민의 지식을 과학적 지식에 대비해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무모한 질문을 했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환경 평가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는 '지식의 위계설'을 지지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과학적 방법은 우리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통적인 인식론적 체계다. 과학은 '조상들의 지혜', '부족의 지식', '노인들의 방식'을 우위에 두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과학에는 드러난 진리라는 게 없다. 토착민 식으로 아는 방법이 따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바논 출신의 유대인이 아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자연계에 대한 모든 주장은 과학적 방법론의 증거 입각 분석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p103)
현대 사회의 진보적 만트라에 의하면 다른 인종과 문화 혹은 종교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축적한다고 주장하는 건 칭송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서로 다른 인종이나 계급의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추론한다는 건,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기타 악당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의 거장으로 고전적 리버럴리즘을 굳건히 옹호하던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바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지칭하기 위해 폴리로지즘(polylog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미제스는 마르크스주의 폴리로지즘과 인종주의적 폴리로지즘의 차이도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 폴리로지즘은 개인의 생각하는 방식이 그의 사회적 계급에 따라 결정되며, 인종주의적 폴리로지즘의 경우에는 인종이 사고방식을 좌우한다. 미제스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는 이런 전제 조건의 비논리적인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폴리로지즘을 일관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은 단지 어떤 사상을 만들어낸 자가 올바른 계급, 올바른 나라 혹은 올바른 인종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 사상이 옳다고 고집하려 든다. 그러나 일관성이라는 미덕이 그들에게는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승인한 교리를 가진 자들 모두에게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라는 명칭을 기꺼이 부여한다. 그 외의 모든 사람은 계급의 적이나 사회의 배신자라고 폄하한다. 현재의 사회정의전사��도 유사한 이념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소"라고 말하는 대신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자, 백인 민족주의자, 신(新) 무신론자, 백인우월주의자, 알트라이트 등의 폄하하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진보적 정통성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악하고 부도덕한 악마로 만든다. 미제스가 잘 알고 있었듯이, 폴리로지즘은 반과학적인 관념이다. "[미제스는 폴리로지즘을 '논리와 과학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란'이라 그 성격을 밝히고 폴리로지즘이 '사회 현상과 인간 행동의 과학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폴리로지즘은 우리 문화와 문명 전체에 대한 저항'이라 지적하면서, 폴리로지즘의 보다 더 큰 의의에 대해 역설했다. 과학적 방법론은 우리 정체성과 무관하게 우리를 해방시켜서 ���리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진보주의자가 본능적으로 경멸하는 분야인 진화심리학은 명확하게 반인종차별주의적이다. 외형적 차이 이면에서 본 우리 인간들의 마음은 인종이나 민족적 배경과 무관하게 동일한 진화의 힘에서 탄생했음을 인지하는 까닭이다. 환경의 힘(혹은 문화의 힘)은 당연히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논리 및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만, 그 효과는 어느 한 사람의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들이 아니다. '흑인의 마음'이나 '백인의 마음' 혹은 '백인 남성이 아는 법'이나 '토착민들의 아는 법' 같은 건 없다.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며, 우리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그 진리를 발견한다. (p106-8)
과거에는 여성들이 차별당했음을 인정했지만, 자료를 통해 남성과 일대일로 비교했을 때 여성들이 학계 여러 분야에서 남성들을 능가하고 있으므로 현재 상황은 매우 다르다는 점도 지적했다. 가짜 피해의식 서사를 부추기는 대신 성별 차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해 강연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행사조직위원회에서는 나를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조하는 척하면서 남성들이 더욱더 나은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실에 헌신하고 현실을 고수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성에게 남성의 조력이 필요한 척 가장하는 건, 끔찍하리만큼 거들먹거리고 잘난 척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능력우선주의 체계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유아증의 한 형태다. (p111)
114-5
한 나라의 외교 정책, 재정 정책, 이민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실행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보편적 의료 제도는 존재하는가? 정치,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수도 없이 많으며, 이런 문제들에 대해 각기 이질적인 관점을 접한다면 대학생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큰 지적 다양성의 추구란 그저 이론적인 추상 개념 같은 게 아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생각의 자유는,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각기 다른 관점과 의견과 사실들의 경중을 따져보고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교육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지적 다양성은 다윈식 경쟁 과정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돼 최고의 사상(우리는 이를 진화론적 인식론이라 부른다)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대학들은 척박한 이념적 순응밖에 남지 않은 반다윈주의적 구정물 웅덩이가 돼 버렸다. (p116)
나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거의 20년 전,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에 했던 매우 통렬한 지적을 인용하며 이 장을 마치고자 한다. "하지만 자유가 멸종되는 데는 한 세대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피를 흘리며 우리 자녀들에게 자유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우리 자녀들이 자유를 물려받을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우리가 자유를 위해 싸우느냐,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고 수호하느냐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며 우리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자유를 보호하고 수호해야 한다고 제대로 가르쳐서 그 가르침과 함께 자유를 물려주느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과 저는 자녀들과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예전에 사람들이 자유로웠던 미국은 어땠는지 얘기해주면서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헤아릴 수 없이 지혜로운 이 말에 귀를 기울이자. 우리는 새로이 마음을 다잡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우리를 비합리성에 빠뜨리고 이념적으로 순응하게 만들려 하는 좌파들의 사상 병원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p118)
<제4장 반과학, 반이성, 반자유적 운동>
"당신이 부조리를 믿게 한 사람은 당신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
볼테르 대학 캠퍼스의 사상의 병원체들은 크게 몇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경우, 거의 잠꼬대나 다름없이 모호하고 불가해한 산문(文)들을 만들어내면서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라고(따라서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상정한다. 이 반과학적 헛소리는 '인종차별적' 서구 과학으로부터 '식민지화된 마음을 되찾아오라'라고 촉구하는 <과학은 필멸하리(Science Must Fall)>라는 단체까지 탄생시켰다. 사회구성주의는 인간 행동, 욕망, 기호(嗜好)의 대다수가 인간 본성이나 생물학적 유전형질이 아닌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고 제시한다. 즉 성별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문화적으로 '성 역할'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급진 페미니즘은 이러한 성 역할이 가부장제의 모호하고도 사악한 힘 때문에 생겼다고 확언한다. 트랜스젠더운동은 생물학적 성이나 '젠더'가 이분법으로 나뉘지 않고 유동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구성주의, 급진 페미니즘, 트랜스젠더 투쟁은 모두 거짓으로 입증될 수 있는 과학적 기반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념에 최고의 가치를 두다 보면 과학적 사실의 부정이라는 피해는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p120-121)
그러나 아마도 현실의 족쇄에서 해방시킬 가장 뛰어난 도구는 '트랜스(trans)'라는 접두어일 것이다. 이 마법 같은 말은(자기 자신을 흑인이라고 생각했던 백인 여성 레이첼 돌러절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생물학적 성별이나 인종을 당신이 되고 싶은 아무 성별이나 인종으로 바꿔준다. 다행히도 실제 성별 위화감을 갖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우리 모습을 불가역적으로 형성해놓은 생물학적 사실마저 거부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자아정체성'을 현실과 어긋나게 하라고 부추긴다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진실을 거부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포스트모더니즘이 급진 페미니스트와 사회구성주의자, 트랜스 운동가들 사이에 그토록 만연한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식론적 해방자로, '나의 진실'을 기림으로써 우리를 객관적 진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p123)
마침내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승리하려 시도하며, 대통령이 되면 9세 트랜스젠더 아동을 교육부 장관 자리에 지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망상 좀 받아준다고 해서 별 탈 없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이성에 대한 전쟁이다. (p129)
아주드물지만 실재하는 진짜 성별 위화감 환자들을 폄하하려고 이런 풍자를 한 게 아니다. 아이들은 가족의 사생활 안에서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 진보적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미덕 과시를 위한 사회 정의의 졸로 아이들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p140-141)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맞춰주기 위해 다른 모든 사람의 권리를 짓밟는 것은 자유의 침해가 아닌가? 그러나 이 사건은 그저 소수의 폭정이 드러난 또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정한 내 정체성, 생물학적 사실과 충돌하는 내 정체성을 찬양하고 수용하라. 안 그러면 진보주의 감시자들의 분노를, 법적 처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도상 처벌을 감수해야 할 테니까. (p142)
인간은 유성 생식을 하는 종이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원동력은 이성 중에서 짝을 찾아 의미 있는 결합을 이루는 데서 나온다. 그러나 ASI에 의하면 그런 원동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온정적 성차별을 저지르는 일이다. 이런 입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미친 소리인지 이해하는 데 꼭 지성적인 진화심리학자까지도 필요 없다. 또한 여성을 보호하고 소중히 여기려는 남성은 누구든 사악한 성차별주의자가 된다는 데 주목하라. 최근 연구에 의하면 여성에게 인명 구조 응급 처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40년 동안 페미니스트의 세뇌와 마녀사냥이 남자들을 너무 잘 가르친 모양이다. '성차별주의자' 영웅이 되는 것보다는 그냥 성차별주의자 안 하고 비겁한 방관자가 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누군가 여성들에게 더 이상 용감한 소방관과 제복을 입은 영웅적 군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해야 한다. 새로 부임한 보안관이 남성성에 대한 진보적 정의를 한 마디로 요약했다. 무심하고 비겁한 방관자 남성. 그런데 여기에는 굉장한 인지적 모순이 내재돼 있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일터에서 여성들의 협력자로서 기여하라는 설교를 듣는데, 만일 그렇게 하면 그들은 온정적 성차별을 하는 게 돼 버린다. 모든 길은 성차별로 통한다. (p144-145)
이렇게 틀린 게 뻔한데 어떻게 공론가들은 그런 사상의 병원체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 전제주의 정권 하에서는 그 답이 간단하다. 전체주의 정권은 반대의 목소리를 억누르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범죄로 취급한다. 서구에서는 이념 주입이 이보다 교묘하게 이뤄진다. 이념은 PC운동이라는 정신으로 달성되며, 대학 캠퍼스에 지적 다양성이 결핍됐을 때 가장 잘 집행된다. PC운동은 별대모벌에게 쏘이는 것과도 같다. 쏘인 거미는 좀비 같은 상태가 돼 별대모벌의 구덩이로 끌려간 후, 몸 속에서 부화한 별대모벌 새끼들에게 뜯어 먹힌다. PC운동도 이와 똑같이 섬뜩한 목표를 달성한다. 우리가 너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좀비 같은 상태로 조용히 앉아 있는 동안 사악한 사상이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게 한다. (p152)
<제5장 캠퍼스의 광기: 사회정의전사들의 부상>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느낌이 진실을 이긴다. 경험적 진술은 더 이상 그 진실성 여부가 아닌, 잠재적으로 '편견적'일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된다. 편견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그 진술은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억눌러야 한다. 느낌이 한 사람의 존재를 입증하는 원동력임을 고려하면, 항상 심기 불편한 사람들 사이에 속하는 게 이익이 되는 사회에서는 '모욕 문화(Culture of offence)'가 형성된다. 이렇게 되면 피해의식 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경쟁 충동이 일어난다. 탄압 올림픽 (피해자학 포커라고도 부른다)은 정체성 정치와 교차성("나는 퀴어에 비만인이며 무슬림이고 장애자이며 트랜스인 흑인 페미니스트다")을 이용, 기괴한 부조리극의 승리자를 가르기 위해 서로 피해의식을 겨루는 경기장이다. 나는 사회정의전사들이 일종의 집단적 뮌하우젠 증후군(동정심을 구하기 위해 병을 꾸며대는 정신 이상)을 보이는 거라고 설명한다. 그 기풍은 한 마디로 '나는 피해자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p157)
오늘날 수많은 대학 졸업생에게는 토론할 능력이 없다. 반대 관점에 접해본 적도 없으며, 반대 관점은 곧잘 이단으로 몰려 항의나 신경질적인 발작에 부딪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 진화한 능력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반대 입장에 부딪혀봐야 한다. 무균성 안전 공간은 대학 캠퍼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트위터 설립자인 잭 도시(Jack Dorsey)를 내 유튜브 채널에 초청했다. 대화중에 나는 트위터가 플랫폼 상에서 사람들의 언어를 감시하는 것은 별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건강한 인간은 잘 부서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 관계의 추한 면모에 노출돼야 한다. 모든 상호 작용이 공손하고, 희망적이고, 풍요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멸균된 버블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보호할 수는 없다. 소량의 알레르겐에 어린아이들을 노출시키다가 점점 더 많은 알레르겐에 노출시켜서 인체가 특정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을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음식 알레르기 면역 요법처럼, 사람들도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건강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모든 경우의 인간 상호 작용에 노출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대 의견을 다루기엔 너무 불안정하고, 과학적으로도 유효하지 않은 개념인 소위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마주해 피해의식을 가장하면서 태아처럼 웅크리는 젊은 세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p161)
정말이지 그 목록은 끝이 없기에, 나는 다음과 같은 범용 사전 고지를 제안한다. "실제 세상을 각자의 뇌를 사용해 헤쳐갈 때는 사전 고지가 따르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여러분이 성인으로서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명민함을 갖췄다는 추정 하에 진행됩니다. 삶 자체가 여러분의 사전 고지입니다." 사전 고지는 노출 요법의 기본 원칙에 정반대된다. 노출 요법이란 일반적 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공포증(가령 거미공포증 등), 공황장애, 강박신경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극복을 위해 잘 연구된 치료법이다. 이 치료법을 적용하는 경우, 환자들은 증세를 촉발시키는 자극에 노출돼 공포와 두려움에 대처하는 전략을 배우게 된다. 사전 고지의 효과를 실험해 본 몇 안 되는 연구에 의하면, 사전 고지는 학생들로 하여금 '촉발자'들을 더 피하게 하고, 회복 탄력성을 키우지 못하게 하며', 과거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효과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사전 고지가 고통스러운 감정을 일시적으로 줄여줄 수는 있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헤쳐가는 데 필요한 건강한 사고방식을 키워주지는 못한다. (p163-164)
오늘날에는 선호하는 집단 내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더 중요하다(적어도 일부 분야에서는 그렇다). 안전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지적 풍요에 선행한다. 사회정의운동은 진실 탐구보다 우선한다. 오퍼레이션 리서치식 용어로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대학이 목표하는 기능은 학생들과 교수들의 지적 성장을 최대화하는 것이며, 대학 예산 이외 다른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대학이 다중 객체 최적화 문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 감정을 최소한으로 상하게 하는 동시에 지적 성장을 최대화하는 것, 혹은 사람들 감정을 최소한으로 상하게 하는 동시에 지적 성장과 사회 정의 운동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p166)
2010년 나는 대리인을 통한 뮌하우젠 증후군(MSbP, Munchausen Syndrome by Proxy)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는 논문을 한 의학 학술지에 실었다. 한 사람이 남들의 동정 어린 관심을 받으려고 거짓으로 질병을 꾸미는 일반적 뮌하우젠 증후군과 달리, MSbP는 자기가 돌보는 어린 아이(혹은 노인이나 애완동물도 해당된다)를 해쳐서 피해자를 더 아프게 만듦으로써 보호자가 남들의 동정 어린 관심을 받으려 하는 경우다. 뮌하우젠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여성(66.2%)인데, MSbP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경우는 거의 전부가 여성이다(97.6%). 이 두 가지 형태의 뮌하우젠 이상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나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은 가짜 피해의식 사고방식을 잘 포착해줄 새로운 질병의 이름을 만들어냈다. '집단 뮌하우젠'이 바로 그것이다. 병을 꾸며대거나 짐짓 다치는 대신, 집단 뮌하우젠 환자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피해의식 상태를 알림으로써(타인의 피해의식에 ���승하는 경우에는 대리인에 의한 집단 뮌하우젠 증후군이라 부를 수 있다) 관심, 동정, 공감을 구한다. (p174)
모든 길은 편견으로 통한다. 만일 당신이 백인 남성인데 흑인 여성에게 끌리지 않는다면, 성적 인종 차별(sexual racism)이라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맞다. 이런 용어가 실재한다). 만일 당신이 백인 남성이고 흑인 여성에게 끌린다면, 당신은 흑인 여성들이 성적으로 탐닉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그들의 몸을 대상화하는 인종차별주의자 편견덩어리다. 어떤 피해자 집단을 이 방정식에 끼워 맞춰도 똑같이 작용한다. 우리 모두는 제도적 인종 분리 정책이 편견을 낳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려는 것조차 편견에 속한다. 즉 '문화 유용(流用, cultural appropriation)'이라는 편견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피해자학의 항상성은 칼 포퍼가 말한 반증의 원칙을 위반하면서까지 모든 길이 편견으로 통하도록 보장한다(즉 그 어떤 데이터로도 피해의식 서사가 거짓이라고 입증할 수 없다). (p177-178)
문화 유용이라는 생각에 항상 사로잡혀 있으면 다문화 사회와 다원 사회가 제공하는 풍부함을 제대로 경험하기 힘들다. (p180)
실증적으로 이런 강간 사건이 발견되지 않자, 이 논문은 (다음 부분 읽으려면 우선 심호흡하고 자리에 앉아야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얼마나 인간으로 보지 않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결론지었다.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타인인을 너무 증오한 나머지 팔레스타인 여자는 강간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강간 사건이 발견되든 발견되지 않든 결론은 정해졌다. 이스라엘인은 악마다. 모든 길은 채찍질 고행과 자기 혐오로 통한다. 이것이 진정한 '진보'의 품질 보증 마크다. 가짜 분노를 파는 이들은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 것뿐 아니라, 이스라엘인의 친절을 이슬람 혐오의 한 형태로 이해한다. 아니사 로하니 (Anisa Rawhani)는 퀸즈 대학(Queen's University)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18일 동안 히잡을 쓰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 것이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졌으리라는 게 분명 이 실험의 가정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고 공손하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이 피해자학 서사를 살려내기 위해, 그녀는 눈에 띄는 관용과 친절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을 감추려 보인 과잉 행동의 한 수단이라고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당신이 무슬림 여성에게 불친절하면, 당신은 이슬람 혐오자다. 당신이 무슬림 여성에게 친절하면, 당신은 이슬람 혐오자다. 모든 길은 이슬람 혐오로 통한다. 친절하고 관용적인 것은 대학 캠퍼스 생태계에서 일종의 인종차별주의다. (p182-183)
무한의 관용이라는 기풍을 예로 들어보자. 위대한 철학자 칼 포퍼는 이런 사고방식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아마도 가장 훌륭한 입장을 제시했다. "이보다 덜 알려진 것은 관용의 역설이다. 무한한 관용은 결국 관용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관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무한히 관용의 범위를 확장한다면, 관용하는 사회가 관용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받을 공격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관용하는 사람들은 사라질 것이며 관용 역시 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용적 철학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항상 억눌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무관용에 맞서 합리적으로 논의하고 공론을 통해 무관용을 점검하는 한, 억압은 분명 현명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관용을 물리적으로라도 억누를 권리가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그런 무관용자들이 우리와 합리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수 없다는 게 판명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모든 논의를 거부하기 시작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종자들이 현혹될까 싶어 합리적인 논의를 듣지 못하게 하거나, 논의에 대한 응답으로 주먹이나 총기를 쓰라고 가르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무관용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p189)
현재 미국 국경의 불법 이민자 위기와 관련해 미국의 진보들 사이에192===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정의전사들의 비합리적 입장을 정색하고 지지하려면 현실을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진보주의는 이제 이성의 적이 됐다. (p193)
<제6장 이성으로부터 탈주: 타조 기생충 증후군>
과학이란 진리 추구와 관련된 일이어야지 자기가 선호하는 정치 이념이나 개인적 신념을 방어하는 일이 돼서는 안 된다. (p197)
타조 기생충 증후군 물론 현실을 부인하고자 하는 욕망은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만(혹은 자기 기만) 능력은 엄청나다. 사실 인간의 지능이 이렇게까지 진화한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을 성공적으로 조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남들을 조종하려는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 인간은 자기 기만이라는 성향을 진화시켜왔다. 자기 기만은 자신의 이중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거짓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이 그 거짓말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기반해서 볼 때, 자기 기만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렇게해서 생기는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소 괴이한 자기 기만 형태가 있다. 달이 존재하는 것처럼 뻔히 보이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신 분석학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불쾌한 정보를 억누르는 인간 능력에 주목하고 이를 '타조 방책'이라고 불렀다. 이 인간 타조 효과-타조가 달갑지 않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모래에 머리를 묻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에서 나온 표현이다-는 금융 투자를 포함해 여러 가지 맥락에서 기록돼왔다. 몇 년 전 사상의 병원체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현실을 거부하는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타조 기생충 증후군 (OPS, Ostrich Parasitic Syndrome)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성에 대한 이 끔찍한 공격을 아래처럼 정의했다. "이 장애(障碍)는 중력이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현실을 거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OPS를 앓는 사람은 자기들의 눈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양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유니콘 나라 같은 대안 현실을 건설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과학, 이성, 인과법칙, 증거 구성 임계점, 거의 무한하리만큼 막대한 양의 데이터, 데이터 분석 절차, 추리통계학, 과학적 방법론 고유의 인식론적 법칙, 상식 같은 건 모두 거부된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OPS 환자의 망상적 횡설수설은 환상에 불과한 연��성, 존재하지 않는 인과관계, 기분 좋게 들리는 진보주의적 상투성에 뿌리를 둔다. 타조의 논리를 내놓는 사람들은 항상 숭고한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p199-200)
왜 사람들은 그런 조잡한 사고방식에 굴복하는 걸까? 철학자 에이브러햄 카플란(Abraham Kaplan)은 그의 책 <탐구의 수행(The Conduct of Inquiry)> 에서 이렇게 썼다. '과학적 공동체에서 받는 사회적 압력에 덧붙여, 과학자 개인이 일하는 데 있어 매우 인간적인 습성이 하나 있다. 나는 이를 도구의 법칙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표현한다. 어린 소년에게 망치를 주라. 그러면 그는 마주치는 모든 물건을 다 두들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학자가 자기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굵은 글씨는 원문에 따름]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과학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Science)》에서 이렇게 말했다. "갖고 있는 유일한 도구가 망치라면 모든 것을 못처럼 다루기 쉽다." 이것은 방법론적 고착이라는 개념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방법론적 고착이란 연구원들이 주어진 연구 과제에 적합한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특정 데이터 자료나 특정 데이터 분석 절차를 고집하는 경우를 말한다. 만일 당신이 기후문제운동가라면, 모든 재난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페미니스트라면, 유독한 남성성과 함께 가부장제를 비난해야 한다(기후 변화가 유독한 남성성 때문이라는 주장이 별로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다양성, 포용, 공정 컬트의 일원이라면, 당연히 모든 악은 다양성, 포용, 공정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 만일 당신이 민주당원이라면, 모든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에서 비롯된다. (p202-203)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유롭고 현대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비종교적인 사회라면, 종교우월주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특히 유대인을 증오하는 등 종교적 소수인에 대한 무관용,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거부에 뿌리를 둔 문화와 종교적 유산을 가진 수많은 이민자에게 문호를 개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서술하는 건 '편견'에 의한 게 아니다. 이것은 태양의 존재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상호이타주의는 진화된 메커니즘이다(이를테면 이민자들이 자유롭고 현대적이면서 비종교적인 서구의 가치관을 채용함으로써 우리의 관대함에 화답할 것이라 기대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난민을 허용하는 것이 상호이타주의다). 자멸을 초래하는 공감은 진화된 메커니즘이 아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문명적 차원에서 채찍질 고행을 하겠다고 현대 사회의 근간마저 양보하는 건 절대 안 된다. 나는 자랑스러운 캐나다 이민자로서 말하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민 정책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만 반복하는 사람들은 은밀한 형태의 타조 기생충 증후군 환자들이다. (p206-207)
"여성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남성의 배상액의 절반을 배상한다.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게 지급하는 배상액은 무슬림 배상액의 3분의 1이다. 조로아스터교인에게 지급되는 배상액은 무슬림 배상액의 15분의 1이다." 이것이 바로 정체성 정치가 사법 체계에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주의자들이 고수하는 기준이다. 남자들은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여성들은 될 수 없다. 백인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지만 흑인들은 될 수 없다. 무엇을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양성애 백인 기독교 보수 남성은 입 다물고 진보적 무슬림 토착 유색 인종 성전환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백인 친구들, 분수를 알라고.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따라서 샤리아 법과 진보적 정체성 정치는 정확히 동일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개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공격하는 것의 영향은 이슬람 세계와 서구 진보주의자들 세계에 서로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그 사고방식은 거의 동일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진보주의자들은 평등이라는 이념을 지지하지만 샤리아 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보주의자들의 평등은 매우 특별한 종류의 평등이다. 진보주의자들의 평등은 소설 <동물농장>에 조지 오웰이 남긴 불멸의 문장이 가장 잘 표현해준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218-219)
우리의 뇌는 환경 속에서 통계 규칙을 감지할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이 지식에 따라 행동한다고 해서 편견을 가졌다든지, 인종 차별을 한다든지, 증오심 가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지식은 인간 인지의 근본이다. 확률론적 현실을 바탕으로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구별하는 행위는 곧 인간의 행위다. 프로파일링을 한다는 건 인간이라는 의미다. OPS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런 논리를 거부한다. 대신 '현실은 인종차별적이다'라는 진보주의의 신조를 고수하고 싶은 마음에 프로파일링하기를 거부한다. 프로파일링을 하는 건 차별 행위이기 때문이다(이 어휘가 갖는 편견적 의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 코미디언 에반 세이엣 (Evan Sayet)이 무차별의 컬트(cult of indiscriminateness)라 일컬은 바로 그 광신적 집단이다." 이것이 바로 2011년 우리 가족이 캘리포니아 남부로 여행했을 때, 몬트리올 공항에서 보다 엄밀한 보안 점검을 한다며 당시 두 살이었던 내 딸을 무작위로 지목했던 원인이다. 이것이 바로 보안 등급 상향 조정 때 노년의 수녀들이 파키스탄, 예멘, 시리아에서 무리 지어 여행 온 젊은 남성들과 똑같은 확률로 정밀 조사를 받는 까닭이다. 유니콘의 나라에서는 누구나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똑같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증오심으로 가득한 편견덩어리다. OPS는 인간 마음의 끔찍한 질병이다. (p222)
<제7장 진리는 어떻게 추구하는가: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
자유 사회에서 개인에게 부여된 시민의 의무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중요한 사회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몇 가지 인지적이고 감정적인 덫에 걸려 굴복해버리기 때문이다. 첫째, 인간은 뇌를 쓰는 데 매우 인색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너무 게을러서 주어진 문제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고, 그 대신 되도록이면 머리를 안 쓰면서 자기 생각과 같은 여론을 형성하는 편을 좋���한다. 두 번째로, 정보를 이루는 데이터의 정확성은 제각기 다 다르다. 세 번째, 일단 한 개인이 자기 입장을 결정하고 나면, 이에 반하는 증거를 고려하도록 만들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두 명의 다른 공동 저자와 저술한 책에서, 인지부조화 이론의 선구자인 레온 페스팅거는 무려 60년 전에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기시켰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바꾸기 힘들다. 그에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돌아설 것이다. 사실이나 숫자를 제시하면 그는 출처에 의문을 던질 것이다. 논리로 호소하면, 그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강한 확신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 특히 그 사람이 자기 믿음에 투자라도 한 경우에는 얼마나 더 힘든지 경험해보았다. 아무리 통렬히 공격해도 믿음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자기 확신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기발하게 변호하는 데 우리는 익숙하다. 그러나 인간의 지략은 그저 신념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이 무언가를 진심으로 믿는다고 가정해보자. 더 나아가 그가 그 믿음에 헌신하고, 그로 인해 그가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취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의 믿음이 틀렸다는 증거가 확실하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됐다고 가정해보자.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은 대개의 경우 흔들리지 않는 것은 물론, 이전 보다도 더 자기 믿음이 진실되다고 확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남들을 납득시키고 남의 생각을 자기 관점대로 바꾸려는 열정마저 새로이 보일 수 있다." (p225-226)
획기적인 과학적 성과는 무엇보다 통설을 흔들고, 그래서 전면적인 거절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상황을 수호하는 사람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과학자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개인적인 편향이나 사견(이견, 의견)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이렇게 언급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빛을 보게 함으로써 승리하는 게 아니다. 반대자들이 결국 죽고, 새로운 세대가 성장해 그 과학적 진리에 익숙해짐으로써 승리한다." 동물학자 프레데릭 R. 슈람(Frederick R. Schram)도 그런 보편적 생각을 갖고 이렇게 선포했다. "과학이란 인간 본성이 가진 약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초인의 활동이 아니다. 과학의 진보가 드문 것은 사실을 담은 정보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과학자들 자신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과학의 자체 교정 과정을 통해 우수한 생각이 이긴다. 심장병 전문의 딘 오니시(Dean Ornish)도 같은 견해를 갖고 이렇게 선포했다. "과학자들도 다른 사람들마냥 새로운 생각에 저항할 때가 자주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적 과정을 통해 좋은 생각과 이론이 승리하게 해준다." 나도 동의한다. (p228-229)
부모투자이론(Parental investment theory)은 막대한 수의 유성 생식 종들로부터 성별 차이의 유형을 이해하기 위한 방대한 메타프레임워크다. 대부분의 종에서 암컷들은 수컷들보다 부모로서 더욱 많이 투자하며, 그 결과 성적 행동에 있어서 훨씬 더 신중하다. 그��나 수컷이 부모로서 암컷보다 더 많이 투자하는 종의 경우, 대개 성별 차이가 역전된다. 그런 종의 암컷들은 더 크고, 더 공격적이고, 성적으로 더욱 분방하다. 그런 예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며 선사시대 동물처럼 생긴 화식조(cassowary)가 있다. (p240)
247-8
서구의 지식인 사이에서는 서구의 식민주의와 미국의 글로벌 패권주의를 지적하면서 자학하는 일이 흔하다. 그들은 서구는 전쟁과 정복으로 세워졌지만 이슬람은 사랑과 평화로 퍼져갔다고 말한다. 실상은, 이슬람의 역사야말로 끊임없는 정복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정치과학자 새뮤얼 P.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그 유명한 말에 의하면, "서구와 이슬람 문명 사이의 단층선을 따라 발생하는 갈등은 1,300년 동안 지속됐다.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이슬람의 국경은 피로 그려졌다. 7세기 창시된 이래, 이슬람은 수천만 명을 예속시키거나 개종시키거나 혹은 죽였다. (p249)
세계 수많은 지역에서 개종은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개종자들에게 테러를 저지르도록 고무하는 종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p254)
물론, 이렇게 다차원적이며 확실한 중복 증거들로 법칙적 관계망을 구축하는 행위가 무슬림에 대한 공격은 아니다. 한 이념을 정밀히 조사하고 그 이념이 평화, 다원주의, 자유를 촉진시키는지 결정하기 위해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인식론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는 것뿐이다. 설사 무슬림 대다수가 분명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분석의 결론은 사실에 합치한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이런 자료들을 분석한다고 해서 편견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리에 이르는 방식이다. (p260)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을 이용해 기후 변화가 어느 정도까지 인공적인지 조사하고,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이며 이성적인 개입 방법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분석을 수행하자고 요청한다고 해서 '기후변화부정자'나 '과학부정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은 듣기 좋은 뻔한 소리나 감정적 호소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게끔 면역력을 키워준다. 당신의 지성-잘못 끼어든 감정이나 부족주의적 이념이 아닌-을 통해 입장을 결정하라. 진정으로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 지성이 가장 유용하고 어떤 분야에 감정이 가장 유용한지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입장을 결정할 때는 이 장에서 다룬 강력한 인식론적 도구를 적용해 오직 '진리의 부족'에만 충성하라. 그리고 자신에게 되물어라. 내 입장을 뒷받침하는 데 도태시킬 필요가 있는 중복 증거는 무엇인가?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은 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임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정보를 취합시켜 줄 강력한 수단이다. (p261)
<제8장 콜 투 액션>
사람들이 사상의 전투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책임감의 분산'이나 '방관자 효과'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é)는 언뜻 생각하기에 직관에 반대되는 듯한 내용을 기록했다. 사람이 많을수록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이 실제 누군가에게 도움받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즉 위험을 자초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쉽다. "사드 박사님, 우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지합니다. 힘 내십시오." 아니, 나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당신의 개인적인 책임감을 일깨우라. 당신과 상관 있는 문제다. 참여하라. 진리와 이성, 논리가 도와달라고 외칠 때 방관자가 되지 말라. 다른 사람들 목소리에 묻어가지 말라. 자기 검열 하지 말라. 이 전투의 결과에 당신과 당신 자녀들의 이해가 달려 있으니,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드높이라. 공유지의 비극 같은 집단 무기력의 비극에 굴복하지 말라. (p266-267)
남을 판단하는 것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두려워 말라 물론 민감한 주제를 거론해서 친구들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이란 정확히 말해 그런 대화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깊은 우정이란(나심 탈레브의 개념을 빌자면) 반취약적이어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헨리 토마스 버클(Henry Thomas Buckle)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자나 여자는 세 가지 계급 혹은 지적 등급으로 분류된다. 가장 낮은 계급은 언제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버릇으로 알아볼 수 있다. 다음 계급은 언제나 사물에 대해 대화하는 버릇으로 알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언제나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알아볼 수 있다." (p268-269)
서구는 유대교와 기독교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으며, 기독교신학에 따라 많은 이가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 많은 사람이 이런 가르침을 잘못 해석해서 판단은 신이 금지한 행위이며, 그저 알아서 살게 내버려두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이런 포고령들은 도덕적 위선에 대한 이야기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심판해야 한다. 나는 매일 심판한다. (p270)
판단한다는 것이 곧 인간이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은 완벽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판단은 제대로 작동하는 성인에게 필요불가결한 능력이다. 인간 의사결정의 중점적 특징은 바로 몇 가지 서로 경쟁하는 대안들을 판단하는 절차다. 이것이 바로 판단과 의사결정학회(Society for Judgment and Decision Making)와 그 대표 학술지 <판단과 의사결정(Judgment and Decision Making)>이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 안에 누구를 포함시킬지 판단한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여러 구애자를 판단한다. 우리는 학생과 종업원을 판단한다. 삶은 끊임없는 판단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판단한다. 자기 의견을 밝힌다. 그들은 입장을 취한다. 절대 판단하지 않고 모든 가능한 문제에 대해 장단점만 열거하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기회주의자들은 매우 지루한 사람들이다.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편향된 사람이라 불릴 가능성을 막기 위해 보험을 드는 지적 비겁함이다. 최고의 카리스마가 있는 대중 지식인들은 대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토마스 소웰과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지난 40년 동안 가장 중요한 대중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은, 논쟁적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판단이라고 다 똑같이 좋은 것은 아니다. 비판하기 좋아하는 공론가와 비판하기 좋아하는 지식인의 차이는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런 입장을 취하느냐에 있다. 판단에 이르게 된 과정을 또렷한 주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 판단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p272-273)
미덕 과시(virtue-signaling)는 비용 들이지 않고 손쉽게 자아를 팽창시키는 자기 확대(self-aggrandizing) 행위의 한 형태다. 내 진보적인 해시태그가 증거하듯, 나는 진정으로 남들에게 관심 갖는 좋은 사람임이 분명해! 이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먼 얘기도 없다. 이렇게 뻔한 미덕 과시를 하는 사람들은 유약한 겁쟁이다. (p274)
276-7
서구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내게 자유를 수호하고 싶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파장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러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로 거기 문제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에 상륙하던 어린 연합군 병사들이 쏟아지는 독일군 기관총과 박격포 앞에서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던가(혹은 안전하리라 기대했던가)? 얼마 전 6만 7,000명의 캐나다인이 목숨을 잃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100주년 기념일이 있었다. 그들의 헌신적인 영웅적 행위 덕분에 나는 지금 독자들이 읽고 있는 것을 타이핑할 자유를 누린다. 수백만 명의 개인이 생명을 희생시킨 덕분에 지금 우리의 자녀가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친구 삭제를 당하지 않으려고 말을 삼간다.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에 비겁함도 추가돼야 한다. 아무런 위험도 무릅쓰지 않으면서 서구의 영혼을 위한 사상의 전투에 참여할 방법은 없다. (p278)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특히 학자나 공인으로서) 생각을 밝히는 데 막대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비평을 꺼린다고 믿는 사람은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참여하라고 간청하면 때로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교수님은 종신재직권이 막아주잖아요." 종신 재직이 이성을 수호하고자 드러내고 발설함으로써 받는 모든 협박과 유해한 결과를 다 아울러 퇴치해주는 마법의 방패는 아니다. 종신재직권이 있었어도 나는 2017년 가을, 대학 수업에 갈 때마다 보안 조치를 취해야 했다. 종신재직권이 있었어도 수많은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결국 대학 인사부 대표를 대동하고 몬트리올 경찰에 출두해 진술서를 써야 했다. 종신재직권이 있었지만 공적 활동을 이유로 다른 교육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여러 건의 교수직 제의를 놓쳤다. 종신재직권이 있었어도 경력의 발전을 위한 수비수가 되어줄 학계 모임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내 영혼의 순수성 (내 어머니가 했던 말이다) 때문에 나는 진실 수호보다 직업적 고려를 더 중시할 수 없었다. 내 이기적인 이유로 진실의 1밀리미터, 자유의 1온스라도 희생시켰다는 걸 알면 나는 밤잠을 이루지 못��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이 사상의 병원체들과 싸우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걸라는 것이다. 당신의 싸움이 덧없지 않게 하라. (p279)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공적이며 행복한 삶을 살려면 주어진 미덕을 추구하는 데 있어 절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선한 일에 중용'이라는 속담을 생각하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한 가지 미덕)는 과도한 무모함과 비겁함(둘 다 피해야 할 극단적 속성이다) 사이에 있다고 상정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적인 전투에 처한 병사의 용기에 대해 논했지만, 현재와 같은 맥락에서 이 말은 사상의 전투�� 필요한 지적 용기에도 적용된다. 예멘에서(이슬람의 불경죄에 항의하려는 의도로) '모하마드 그림을 그려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기로 한 사람은 분명 과도한 무모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매체들이 '이슬람은 평화다'라는 이맘의 성명에 이의를 제기하기 꺼리는 것은 비겁함의 발현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에 조리 있고 이성적으로 교전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이 존재한다. (p279-280)
경기 중에도 페널티 킥이 주어지지만, 토너먼트 게임에서 동점일 경우에도 이 방식이 사용된다. 그렇게 무거운 부담을 지고 슛을 하는 데는 대단한 배짱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는 바로 그런 배짱과 용기를 키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상의 월드컵 대회에서 뛰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이성의 팀을 위해 득점을 기록할 기회가 왔을 때 은유의 페널티 킥을 넣을 필요가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골목길에서 위협받는 여성을 보고 끼어드는 사람들과, 도와달라는 비명을 듣지 못한 척하면서 도망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후자가 되지 말고, 전자가 되라. (p280)
나치를 물리치도록 도운 주요 역사적 인물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사과해야 한다면, 끝없는 암흑의 심연이 드리운 것이다. 서구 문명의 근본적인 원칙을 지지한다면(처칠이 그랬던 것처럼),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물러서지 말라. 벌꿀오소리 같은 야성적 충동을 가져라. 당신의 진실성을 수호하고 진리를 지킬 때는 맹렬하리 만큼 단호하라. (…) 벌꿀오소리가 되라. 이념적 깡패들에게 공격받았을 때 절대 물러서지 말라. (p285)
소위 말하는 '다른 형식으로 아는 것(토착민들 식으로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이 과학적 방법만큼 유효하다는 생각을 거부한다고 해서 당신이 닫힌 마음의 편견덩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유독한 남성성과 백인우월주의의 전형이라며 신경질적으로 백인 남성들을 악마화하는 행위를 거부한다고 해서 당신이 아돌프 히틀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원색적인 비난이 금방이라도 협박이 될 기세면, 도대체 무슨 진보적 교리를 바탕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당당하게 물어라. 사람들 대부분은 인종차별주의자나 여성혐오자라 비난받는 걸 너무나 두려워해서 웅크리고 침묵한다. 입 다물고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지 않는다면 인민재판을 받을 ���비를 해야 한다. 말문을 막아버리는 이런 전략에 넘어가지 말라. 당신의 원칙을 확신하고 벌꿀오소리처럼 맹렬하게 그 원칙을 옹호하라. (p286)
인간은 협동적인 동시에 경쟁적인 존재이며, 행동거지 서툰 10대 청소년 패거리부터 프로 축구단이나 군대 조직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단에서든 분명한 위계 질서를 이루려 한다. 인간은 다 똑같고 평등한 일개미가 아니다. 하버드 대학 곤충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E.O윌슨(E.O.Wilson)은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좋은 생각이지만, 종(種)이 틀렸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기반으로 구축된 체계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경쟁이라는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의 연약한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인 사회를 구축하려 들면 결국 만들어지는 건 나약함과 권리 주장과 무관심으로 가득한 사회다. 삶이란 필연적으로 경쟁적이다.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계급이 있다. 그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관점의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p290)
가드 사드 , ' 기생충 마인드 ' 중에서
0 notes
dailykoreanselfstudy · 5 years ago
Text
Alice Madness Returns 🎮
💕 Liste de vocabulaire thématique d’un de mes jeux vidéos préférés 💕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 중 하나에서 나온 주제어 어휘 목록 💕 
Tumblr media
♠ 무기 [武器] armes
양날검 glaive
후추 분쇄기 moulin à poivre
🐴 말 cheval
찻주전자 [茶-] théière
☂️ 우산 [雨傘] parapluie
♠ 동맹국 [同盟國] alliés
창녀 [娼女] prostituée/p*te
모자 장수 chapelier 
🐱 고양이 chat
🐮 암소 vache
🐢 거북이 tortue
아이들 enfants
여동생 [女동생] sœur
🦪 굴 huître
애벌레 chenille
♠ 원수 [怨讐] ennemis
정신과 의사 psychiatre
공증인 [公證人] notaire
🐰 토끼 lapin
🐭 쥐 souris/rat
👸여왕 [女王] reine
쌍둥이 [雙둥이] jumeaux
기차 [汽車] train
인형 [人形] poupée
🐽 주둥이 groin
바다코끼리 morse
말벌 guêpe 
♠ 환경 [環境] environnement
원더랜드 pays des merveilles (Wonderland)
🍄 버섯 champignon
수중의 [水中-] sous l’eau
강 [江] rivière
🩸 피 sang
술집 bar
정신 병원 [精神病院] hôpital psychiatrique
용암 [鎔巖] lave
🔥 불나다 prendre feu et brûler
구멍 trou
🚢 보트 bateau
🧜‍♀️ 인어 [人魚] sirène
동상 [銅像] statue
카드 cartes
조개껍질 coquillage
성곽 [城郭] château
카드성 château de cartes
체스 échecs
혀 langue
사원 [寺院] temple
양피지 [羊皮紙] parchemin
🔔 벨 cloche
🐌 달팽이 escargot
++++++
귀환 [歸還] retour
🤪 광기 [狂氣] folie/démence/délire
환각 [幻覺 ] hallucination
꿈 rêve
악몽 [��夢] cauchemar
고아 [孤兒] orphelin.e
조종 [操縱] manipulation
거인 [巨人] géant
구속복 camisole de force
날개 aile  
💙 파란색 [파란色] bleu
파란 드레스 robe bleue
뚫린 귀 oreilles percées
뚫리다 percer
보이지 않는 invisible
움츠러들다 rapetisser 
Tumblr media
13 notes · View notes
hwanshikkimus · 6 years ago
Text
노인의 인생
김환식 장로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자 사람의 연령(年齡)에는 자연(自然)연령, 건강(健康)연령, 정신(精神)연령,영적(靈的)연령 등이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成長)하면서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을 승화(昇化)시키며 보내고,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면서 자연연령과 건강연령을 채워 보낸다고 하였다. 성장하면서 보내든 늙어가면서 보내든, 인생길은 앞을 보면 까마득하고 뒤돌아보면 허망(虛妄)하다. 어느 시인(詩人)은 '예습도 복습도 없는 단 한번의 인생의 길'이라고 말했다. '가고 싶은 길도있고 가기 싫은 길도 있지만, 가서는 안 되는 길도 있지만, 내 뜻대로 안되는게 인생의 길인 것을 이 만큼 와서야 뼈저리게 느낀다.'고 한탄 (恨歎)하기도 했다. 사실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것이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도 아주 멋지게 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잘 준비(準備)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最善)을 다하여 열정(熱情)을 쏟아 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어떻게 늙고 죽어야 할까? 첫째: 사람답게 늙고 = 웰에이징(Wellaging)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품격(品格)을 지녀야 한다. 노년의 품격은 풍부(豊富)한 경륜(經綸)을 바탕으로 노숙(老熟)함과 노련(老鍊)함을 갖추는 일이다. 노년의 삶을 불안(不安)해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存在感)을 잃어가기 때문이지만, 오히려 노년은 지성(智性)과 영혼(靈魂)이 최절정(最絶頂)의 ���지(境地)에 이르는 황금기(黃金期)임을 인식(認識)해야 한다. 노숙함과 노련함으로 무장(武將)하여 노익장(老益壯)을 과시(誇示)하라! 산행(山行)과 명상(瞑想),클래식 음악(音樂)과 독서(讀書)와 같은 영성(靈性: 신령한 품성이나 성질) 생활(生活)의 여유(餘裕)를 온 몸으로 즐겨라. 최고(最高)의 노후(老後)는 우리가 무엇을 꿈꾸느냐에 달려 있다. 노년은 24시간 자유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나만의 자발적(自發的) 시간이다. 여유작작(餘裕綽綽:빠듯하지 않고 (糠改)하고 여유만만(餘裕滿滿) 한 여생의 시작을 위해 팡파르를 울려야 할 때다. 웰에이징(Wellaging)을 위해 노년 특유(特有)의 열정(熱情)을 가져야한다. 노년의 열정은 경륜과 품격이 따른다. 노련함과 달관(達觀)이 살아 숨쉬는 풍요한 열정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러한 열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흔히 노년사고(老年 四苦)라는 말이있다.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병고(病苦)가 그것이다. 가난과 외로움과 할 일 없음의 괴로움은 노년에 가장 큰 골칫거리 이며, 이와 함께 노후의 병고만큼 힘든 일은없다. 그래서 노년은 점점 의욕(意欲)과 열정을 잃어가는 시기라고 속단(速斷)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노년사고(老年 四苦)는 열정을 상실(喪失)한 대가(代價)임을 알아야한다. 열정을 잃지않고 사는 노년 노후는 빈고, 고독고, 무위고, 병고가 감히 끼어들 틈조차없다. 노년기에 열정을 가지면 오히려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을 남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世界) 역사상(歷史上) 최대 업적의 35%는 60-70대에 의하여 23%는 70-80세 노인에 의하여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成就)되었다고 한다. 결국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소포클레스가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쓴것은 80세 때였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完成)한 것은 80이 넘어서였다. ‘다니엘 드포우’는 59세에 ‘로빈슨 크루소’를 썼고,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純粹理性批判)’을 발표(發表)하였으며, ‘미켈란젤로’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大成殿)의 돔을 70세에 완성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 등도 고희(古稀)의 나이를 넘어 불후(不朽)의 명곡(名曲)을 작곡(作曲)하였다.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또한 인간관계(人間關係)가 매우 ���요(重要)하다. 나이가들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대인관계(對人關係)를 잘 하여야한다. 즉 인간관계를 ‘나’ 중심(中心)이아니라 타인(他人) 중심으로 가져야 한다. 미국(美國) ‘카네기멜론 대학(大學)’에서 인생에 실패(失敗)한 이유에 대하여 조사(調査)를 했는데, 전문적(專門的)인 기술(技術)이나 지식(智識)이 부족(不足)했다는 이유는 15%에 불과(不過)하였고 나머지 85%는 잘못된 대인관계에 있다는 결과(結果)가 나왔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部分)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나이가들면서 사람은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 성향(性向)이 강(强)해진다. 노욕(老慾)이 생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폭군(暴君)노릇을 하고 자기도취(自己陶醉)에 몰입(沒入)하는 나르시즘(narcissism:자기도취증)에 빠질 수 있다. 또는 염세적(厭世的)이고 운명론적(運命論的)인 생각이지배(支配)하는 페이탈리즘(fatalism:운명론)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의 대인관계는 결국 초라하게 될수 밖에없다. 결국 인간관계는 중심축(中心軸)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물질(物質)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초라(?羅)해 지고, 일 중심이나 ‘나’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 사람도 역시 외로움에 휘말리게된다. 그러나 타??(他人) 중심의 인간관계를 갖는사람은 나이가들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고, 따르는 사람도많다. 가장 바람직한것은 타인 중심의 인간 관계라할 수 있다. 둘째: 사람답게 살고 = 웰빙(wellbeing). 사랑과 은혜(恩惠)로 충만(充滿)한 노년을 우리는 웰빙(well-being)이라고한다 웰빙은 육체(肉體)뿐 아니라 정신(精神)과 인품(人品)이 건강(健康)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웰빙은 육체적인 강건(强健)함 보다 정신적인 풍요와 여유에 더 중점(重點)을 두어야한다. 인자(仁慈)함과 포근함 이 묻어나는 한, 그리하여 사랑과 용서(容恕)의 미덕(美德)으로 넘쳐나는 한, 노년 노후는 일빙(ill-being:심신을 혹사시키는 일) 이 아니라 오히려 웰빙(well-being)의 시기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만으로는 웰빙이 될 수 없다. 정신과 인품이 무르익어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봉(最高峰)이자 웰빙의 최적기(最適期)다. 노년의 녹색지수(綠色指數)는 무한대(無限大)다. 노년의 삶은 강물이 흐르듯 차분하며, 생각은 달관하듯 관대(寬大)하다. 소탈(疏脫)한 식사(食事)가 천하(天下)의 맛이며, 세상을 온몸으로 감싼다. 노년의 삶은 자연과 하나다. 그래서 노년은 청춘(靑春)보다 꽃보다 푸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은 삭막(索寞)하고 고독(孤獨)한 시기로 생각한다. 절망과 슬픔을 떠올린다. 사실 젊음을 구가(謳歌)하던 때와 비교(比較)하면 노년의 외모(外貌)는 형편없다. 삼단복부, 이중턱, 구부정해지는 허리 등.그리고 흰머리, 빛나는 대머리, 또 거칠고 늘어진 피부,자꾸 자꾸 처지는 눈꺼풀 등.. 그럼에도 불구(不拘)하고 말년을 앞에 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향기(香氣)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정신적인 풍요와 경륜으로 쌓아올린 덕(德)이 있기 때문이다. 노년의 주름살속에 아름답게 풍겨나는 인자스러움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쌓이며 승화(昇化)되는 화석(火石)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온 노인은 이렇듯 향기(香氣) 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 덕(德)이 있는 사람, 지혜(智惠)가 풍부하고 마음이 인자(仁慈)하고 욕심(慾心)이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세상사(世上事) 애꿎어 실생활(實生活)에서 만나는 노인들은 대부분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고집(固執)이 세고 인색(吝嗇)하고 마음이 좁은 노인들을 더 자주 만난다. 왜 그런가? 노년의 그런 추함은 어디서 오는가? 사랑과 용서(容恕)의 삶에 인색했거나 은혜의 삶을 잠시 망각(忘却)했기 때문이다 노년은 용서하는 시기이다. 용서의 근간(根幹)은 사랑이다. 사랑만이 인간을 구제(驅除)하는 희망(希望)이다. 사랑과은혜로 충만한 노년을 보내는 사람, 우리는 이들을일컬어 '사람답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웰빙(wellbeing)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웰빙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인품이 건강해야 함도 잊지 말자! 셋째: 사람답게 죽자 = 웰다이잉(welldying). 노년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당장 지금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경박(輕薄)한 듯한 태도(態度)는 더욱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소노 아야꼬’는 ‘죽음이 오늘이라도 찾아오면 힘을다해 열심히 죽을 것’이라고했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경건(敬虔)하게 생각한 것이다. “병에 걸리면 도를 닦듯 열심히 투병(鬪病)을 할 것. 투병과 동시에 죽을 준비도 다해 놓고 언제고 부름을 받으면 “네 ”하고 떠날 준비를 할 것“ 죽되 추(醜)하게 죽지 않도록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 ‘완전(完全)한 죽음’을 강조(强調)하고 있다. ‘윌리엄 컬렌 브라이언트’는 죽음을 관조(觀照)하면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 한 밤을 채찍 맞으며, 감방(監房)으로 끌려가는 채석장(採石場)의 노예(奴隸)처럼 가지 말고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떳떳하게 위로(慰勞) 받고 무덤 향해 가거라. 침상(寢牀)에 담요 들어 몸에 감으며 달콤한 꿈나라로 가려고 눕는 그런 사람처럼…”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고차원(高次元)의 인생관(人生觀)이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이 인생관의 존재 여부가 삶의 질을 확연(確然)하게 바꾸어 놓는다. 이제까지는 세상이 정(定)해놓은 길,주변(周邊)에서 원(願)하는 길을 따라 걸어왔다면, 이제부터 남은 삶은 어떤 길을 택(擇)하고 어떻게 걸어갈지 오로지 내가 선택(選擇)하고 책임(責任)지며 살아야 한다. 이런 의미(意味)에서 노년의 연륜은 미움과 절망까지도 따뜻하게 품을 수 있어야한다. 성실(誠實)하게 살면 이해(理解)도, 지식(智識)도, 사리 분별력(事理 分別力)도, 자신의 나이만큼 쌓인다. 그런 것 들이 쌓여 후덕(厚德)한 인품이 완성(完成)된다. 노년이란 신(神)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思考)가 급속이 자리 잡게되고 그에 대한 심오(深奧)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단(不斷)히 노력(努力)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젊은날의 만용(蠻勇)조차 둥글 둥글해지고 인간을 보는 눈은 따스해 진다. 이러한 덕목(德目)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게 엄격(嚴格)해야한다. 자신에게 견고(堅固)한 자갈을 물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한다. 시간은 인간에게 성실할 것 요구(要求)한다. 잉여시간(剩餘時間)은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정신적 육체적 노력 없이는 시간을 차지할수 없다. 그래서 노년에게 시간은 두렵고 잔혹(殘酷)한 것이다.그리하여 마음을 비워야 한다. 미완성(未完成)에 감사(感謝)해야 한다. 사람답게 죽기(welldying)위해 '진격(進擊)'보다는'철수(撤收)'를 준비(準備)해야한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念頭)에 두며 살아야 한다. 자신의 자리와 삶에 대한 두터운 욕심에 연연(戀戀)해서는 안 된다. 집착(執着)이란 보이지 않는 일종(一種)의 병(病)이다. 그래서 자신(自身)과 관계(關係)있는 조직(組織)에, 일에 너무 애착(愛着)을 갖지 말라고 충고(忠告)한다. 애착은 곧 권력(權力)과재화(財貨)의 유혹(誘惑)에 빠지게 하고 그 힘을 주위(周圍)에 과시(誇示)하려 하게 되며 마침내 추(醜)한 완고(完固)함의 덫에 걸려들게 만든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 따라서 '비움’과 ‘내려놓기’를 준비하라. 그것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수(純粹)하게 잃어버림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주변의 사람도, 재물(財物)도, 그리고 의욕(意欲)도, 어느 틈엔가 자신도 모른 사이에 떠나간다. 이것이 노년의 숙명(宿命)이다. 인간은 조금씩 비우다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때 세상을 뜨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면들수록 인간을 의지(依持)하기보다는 신(神)에 의지해야 한다. 신과 가까이 하면 정신연령과 영적연령은 더욱 신선(神仙)해진다. 이것이 웰다잉(welldying)의 깊은 뜻이다. 후반전(後半戰)의 인생은 여생(餘生)이 아니라, 후반생(後半生)이다. 인생의 주기(週期)로보면 내리막길 같지만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상을 향해 새 인생이 시작되는 때다. 행복(幸福)한 노년(老年)은 무엇인가? 사람답게 늙고(wellbeing) 인생이 결국(結局) 사람답게 살다(wellaging)가 사람답게 죽는 것(welldying)으로 마치는 삶이다!!..(끝) 2019-10-12
1 note · View note
jeong-sook-episode8 · 2 years ago
Text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230507》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230507》 링크<<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230507》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
Tumblr media
이매망량과의 비교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이매망량은 고대 중국에서 개념이 만들어진 이후로, 한국에도 고대와 중세를 거쳐 민중에게 널리 퍼졌다. 민속학자들은 도교의 이매망량과 목신 숭배가 한자 문화권에 전해지면서, 동아시아의 귀신 전승이 서로 비슷하게 되었다고 본다. 특히 신라 붕괴 이후, 도교가 민중에 널리 퍼지면서, 도깨비는 신으로서의 성향이 쇠퇴하고 점점 저급한 귀신으로 묶이기 시작했다.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야차와의 비교불교를 통해 유입된 야차가 일본의 오니(鬼;おに)에 영향을 주었듯이 한국의 도깨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있다. 기와 등에서 뿔이 있거나 괴물 거한과 같은 형태로 묘사되는 도깨비들은 아마 이 야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기록을 보면 아예 도깨비와 야차가 동일시되거나 도깨비의 범주 안에 야차가 포함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떠올리는 도깨비는 인간에게 장난을 치거나 하는 경향이 크지만 야차는 훨씬 더 흉폭하고, 무섭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고블린, 푸카, 부기과의 비교도깨비 중에서도 잡귀를 뜻하는 오도깨비라는 개념은 다른 더 강력한 도깨비의 부하로 등장하므로, 어리석고 신통력이 약한 도깨비들은 고블린과 매우 비슷하다. 다만, 이렇게 잡스런 오도깨비라도 피를 보면 까무라치는 전승을 보면, 고블린과는 달리 매우 인간적이고 평화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고블린, 트롤, 푸카 등은 인간을 약탈하는 존재라는 점이 강조되만,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도깨비는 오히려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인간에게 남긴다. 라는 생산자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밖에도, 도깨비는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순박한 종족으로서의 우월성이 두드러지게 묘사된다.지니와의 비교아랍의 지니 설화는 정령, 반신, 다양한 종족을 통칭한다는 점에서,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중세까지 그럭저럭 괜찮은 취급을 받았던 고대 도깨비와 비슷하다. 후기에도 재물신으로 나타나는 거인 도깨비/대감 도깨비들에 대한 해석은 진들과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반신적 신화소가 남아있는 도깨비 전승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지니와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같은 진(정령)들과 여러모로 흡사한 점을 보인다. 도깨비가 하나의 개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다한 인간형 혹은 반신적 존재들을 통칭하는 개념으로도 쓰였다는 점에서도 흡사하다.치우천왕기: 두 종류가 나오는데, 하나는 인도인이나 게르만인 등 동아시아인과는 생김새가 확연히 다른 인종이 흘러들어와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도깨비로 오인당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전승과 비슷한 진짜 도깨비다. 거기서는 비울걸[29]이 이들의 대장으로 나오며, 술법을 부린다. 정령형식을 취했는지 물도깨비를 소환하려면 일단 개울이나 강 같은 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퇴마록에 나오는 수아라는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여자아이가 조종하는 정령중에도 이 도깨비들이 어느정도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있다.월하의 동사무소: 도깨비들이 퇴마과 공무원으로 활동한다. 박 과장이 데리고 다니는 미스터 김을 비롯한 천진난만한 도깨비들은 술과 메밀묵, 여자를 좋아하는 전통적인 도깨비의 모습을 보인다. 한편 김독각처럼 은행에 금을 저금하는 등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는 도깨비도 있다.도깨비(새 시리즈) - 눈물을 마시는 새: 선민 종족 중 하나로 묘사된다. 외형으로는 뿔은 없고 인간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는 듯. 다만 인간보다는 덩치가 훨씬 크다. 대략 인간과 레콘 사이의 크기로 추정된다. 도깨비 방망이는 없지만 도깨비 감투를 가지고 있으며 그걸 쓰면 모습이 투명화되는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등 기존의 설화와 기능이 동일한 보물이 있고, 도깨비불이라고 불리는 파이로키네시스 능력을 갖고 있고, 딱정벌레를 길들이고 서로 수화로 대화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피를 매우 두려워한다거나[30] 죽으면 어르신이라는 영적 존재로 모습을 바꾼다는 등 전통적인 도깨비 설화와 다르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며, 도깨비 특유의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풍자, 해학적인 성격을 텍스트 전체에서 매우 잘 살려내어, 현대적으로 도깨비를 잘 어레인지 했다는 평을 듣는다.도깨비가 간다: 1994년 4월 18일~6월 17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16부작 드라마. 도깨비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신비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도깨비 기와를 놓고 한국과 일본 뒷세계에서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펼치는 암투 이야기. 박상원과 김혜수가 주연을 맡았으며 그 외 출연진들을 보면 적어도 이름이나 얼굴은 한번은 본 중견 및 노년 배우들의 예전 모습들을 많이 ��� 수 있는 나름대로 호화 캐스팅. 하지만 내용은 그 시절답게 유아적인 반일사상이 담겨 있다. 도깨비 기와를 노리는 일본 비밀결사라는 놈들이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준답시고 일본의 음란 애니메이션 비디오 테이프를 땀을 뻘뻘 흘리며 대량 불법복제하는 장면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폭소를 금할 수가 없다. 더구나 진짜 19금 애니메이션을 복사하는 장면은 차마 보여줄 수가 없었는지 음란 애니메이션이랍시고 복사하는 게 공작왕 OVA다. 마지막화에서도 일본이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는 식의 훈화멘트를 뉴스자료화면과 함께 장장 20분간 내보내는 것도 백미.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 2016-2017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잘생긴 점, 물건에 영혼이 깃든 점, 풍요를 부르고 팔방미인인 점, 내기를 좋아하며 장난기가 있다는 점에서 오니나 야차가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아닌 전통 도깨비의 습성이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는 드라마이다. 이외에도 한국 전통신들인 삼신할매나 저승사자 또한 현대적으로 다루고 있다.도깨비 신부: 우리나라 무속 신앙을 소재로 주인공 신선비와 도깨비 광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 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전반에 우리나라 무속 신앙에 대한 묘사를 신경 쓴 흔적이 다분히 보이며, 위에 언급된 우리나라 본래의 도깨비의 모습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6권 이후로 연재 중단. 2006년 문화부 지정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작.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은비가 내리는 나라: 순정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상 탐미적으로 도깨비를 재창조했다. 인간과 흡사한 미형의 캐릭터에 뿔이 달려 있다. 잡아먹어봤자 맛없어요: 인간이 주인공, 그 인간을 좋아하는 도깨비가 서브 주인공으로 나오는 BL 만화.닥터 차정숙 8회 8화 다시보기
0 notes
girlyouusetoloveme · 2 years ago
Text
1. 3일 동안 데이 연속 출근 중 .. 꽤나 몸이 죽을 것 같은데요
2. 앱등이에서 플립으로 갈아탄 후 폰 하나 때문에 정신 없는 하룰 보내는 중인 기계치 그래도 예뻐서 다 해
3. 블로그를 시작한다고 마음 먹었는데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 고갈인 사람 나는 역시 그래도 텀블러야
4. 하고 싶고 욕심 나는 공부가 생겼다. 올해 안에는 이뤄 볼까 ?
5. 어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의도 한강에 다녀 왔다. 가면 다들 한강라면 먹던데 나는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던데 집에서 따숩게 잠옷 입고 먹는 라면이 더 맛있어
6. 그래도 밤윤슬도 예뻤던 한~강 .. 근처에 살아서 이것도 행운
0 notes
my-gloomy-dance · 3 years ago
Text
굳바이 드래곤
아마 작년 요맘때, 그러니까 2021년 10월이었을 꺼다.
화장실 창문 방충망에 패각 하나가 붙어있었는데, 이게 대체 어디서 온 지도 모르겠고, 아마 죽었겠다 생각하여 지나쳤는데
11월이 되도록 붙어있었어. 보름 넘게 이동하며 붙어서 버티는 녀석을 뒤늦게 깨닫곤 데려와 키웠다.
조그만 집을 사서 드래곤, 너무 터프한 녀석에게 걸맞는 이름을 지어주고 한동안 함께 살았다. 처음 마주친 이후로 이제 거진 1년 다 됐네.
어제 그 친구가 달팽이별로 갔다. 그 전날 새벽에 잠깐 만졌던 기억이 나. 어제, 그러니까 화요일 밤 11시에 이 상황을 깨달았고.
월요일 새벽 1시쯤 드래곤을 잠깐 만졌고, 응 아마도 술마시고 늦게 들어와 기분 좋아서. 그리고 다음날인지 다다음날인지, 녀석이 케이지 벽을 타고 오르는걸 잠깐 봤고. 그러니까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 모호한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하튼 밤 11시 쯤 동료분 보낼 때 쯤 잠깐 상추 갈아주려고 케이지를 열었는데 얘가 평소와는 다르게 뒤집혀 누워있었다. 보통은 벽에 패각에서 나오는 점액질과 함께 붙어있던가 상추를 먹고 있던가 둘 중 하나인데, 이날은 좀 달랐다. 뒤집어보니 평소와는 완전 다르게, 까맣게 되어버린 꼬리? 인지 머리인지 하는 부분만 찔끔 나와있었고, 완전 말라 붙어있었다...
몸통은 안에 있었는데, 면봉으로 찔러도 물컹 하고 말고, 비릿한 냄새가 났고.
죽었구나.
가슴이 덜컥 하면서, 내 잘못을 훑어보면서, 자기 비난을 하면서, 난 씨발 진짜 개새끼구나 하면서,
이제 어떡하지? 까지 생각하다 조그만 종지에 물 담아 잠깐 드래곤을 앉혀놨다. 살았을 수도 있잖아. 오분정도 지날 때 까지 그러고 있었다. 그리곤 아.. 진짜로 갔구나...
내 드래곤이 죽었구나......
이때부터 눈물이 계속 났다.
그 어떤 동물, 식물, 뭐 다들 키우는 동안 정이 들고 떠날 때 힘들다고 하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난 달팽이한테도 그럴 줄은 몰랐다. 뭔지 모르겠는 감정이 올라오더라.
날 알아보지도 못하고, 서로 대화 한번 한 적, 말���리 한번 들어본 적도 없는 생명체였는데...
알고 보니 내 친구였더라. 1년 동안 나 힘들 때 항상 옆에 있었고, 내가 바라보며 기분 좋게 마음을 풀었고, 손에 태워주고 높은 곳 오르는 연습 도와주고, 언젠가 꼭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얘기했던. 호기롭게 농담처럼 시작했던 관계가 결국 친구가 되어버린,
하튼 내 친구였다. 생각해보면 친구라는게 별거 아닌게, 같이 술 마셔주고 옆에 있어주고 편 들어주고, 그런 면에선 드래곤은 꽤 조용한 조력자였다.
친구를 잃었다 생각되니 진짜 가슴속이 주체가 안되더라. 삼십분을 미친새끼처럼 앉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며 정신 못차리다가 뒤늦게야 떠나 보내야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예쁜 금속함 안에, 드래곤을 상추와 깻잎(생전 한번도 못먹어본)에 싸서 가방에 넣고, 동네 뒤져 향초를 샀다. 24시간 하는 가게가 있어 다행이야. 제사용 향초.
나 사는 곳은 한강 근처다. 한강으로 가야지. 달팽이가 추구하는, 마지막 종착지는 결국 바다라고. 패닉이 그렇게 알려줬어. 강을 통해 보내줘야겠다. 망원동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나가, 이미 알고 있는 조용한 곳으로 갔다. 이제 장례를 치룰 차례.
금속함을 열어 하늘 아래 친구를 두고, 향초 하나 클립에 끼워 피우고, 오래 생각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게 어땠냐면 술은 술맛이었고 세상은 전과 조금 다른 맛이었다. 드래곤이 있던 세상과, 드래곤이 없는 세상.
힘들 때 고개 돌렸을 때 옆에서 잠자던, 밥 먹던 그 친구가 없는 세상으로 바뀌어버린 세상은, 내가 적응을 못할 건 또 아니지만서도, 이런 적응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는, 죽음에의 적응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인간에겐, 언제 맞아도 똑같이 아픈 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나는 그리하여 강가에 앉아,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다 잠시 쉬며 이 친구의 덕을 본 것을 떠올렸다. 그러자 구체화되지 않은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며 들어와, 오로지 밀려온 것 들 중 감정만 떠안으며 아파하고 그리워했다. 비정형의 도움을 준 말랑한 친구. 내집마련에 성공한 작은 친구. 하면서 그 말랑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생각했다. 물론 이젠 느낄 수 없다.
바싹 말라 죽어버린 친구를 옆에 두고 두번째 맥주캔을 마셨다. 언제 보내야 할까. 멀리 던져주고 싶은데, 바다로 가려면 강 중간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럼 던져야 하는데, 후 던져주자.
맥주를 한모금씩 마시고 심호흡을 하고, 보내줘야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아무리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안된다. 내 친구를 내가 어떻게 던져 강으로.
산에 묻거나 바다에 보내거나, 아니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리거나, 답은 셋 중에 하나이고, 그중에 그나마 가장 아름다운데
1년 동안 오래 함께 지내면서 내가 만졌던 그 피부와 껍질, 내 친구, 내 친구의 몸, 내가 주절주절 떠들었던 그 얘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는 귀여운 머리와 눈, 작고 앙증맞은 귀여운 규모의 신체,
이걸,
이걸 씨발 물에 던지면 어? 시발 물에서 썩잖아,
내 친구가 물 속에서 썩잖아...
아.....................................
진짜 미치겠다. 미치겠더라.
이게 맞는데, 가장 좋고, 어차피 영혼은 떠나버린 육신일 뿐인데 도저히 못하겠어서
자꾸 강만 바라봤다... 하루가 대충 지난 지금 글을 쓰는 지금도 아프다.
죽음 대체 뭘까. 유한함이 뭐가 아름다운 걸까. 답 나온 명제에 괜히 씨비도 걸어보고 개새끼야 씹새끼야 속으로 지랄 떨다가, 목구멍에 맥주 털어넣고, 불똥 튀는 눈으로 더 울지 않으려 여기�� 보고 저기도 보면서,
친구와 함께 싸온 상추와 깻잎, 손에 함께 꼭 쥐고 있는 힘껏 한강으로 던졌다
가면서 먹으렴.
잘 가 친구. 나 기억해.
나도 기억할꺼야. 고마웠다.
잊지 않을게.
잘 가! 또 봐!! 내 친구 드래곤!!!
0 notes
hwanshikkimus · 6 years ago
Text
문재인의 목을 옭죄는 미국여야정치권의 경고편지
김환식 장로 / (제1090 칼럼)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말은 소위 참여정부라며 어깨에 힘주며 거들먹거리던 전 대통령 노무현이 내뱉은 말이다. “나는 국제회의에 나가면 항상 북한을 변호했다. 북한과의 관계만 잘 되면 모든 것을 깽판 쳐도 좋다. 북한에 마구 퍼다 주어도 남는 장사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어 종북 좌파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아무튼 결과는 “대통령이 자살을 한 사례는 역사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이 처음이다”는 불명예를 안고 봉화 땅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의 정치적 사상과 이념이 김대중과 노무현 정신의 계승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는데 그 이유는 문재인 자신이 ‘김대중·노무현의 정신 계승’할 것이라고 직접 내뱉었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주적인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 에게 ‘10조원+a’라는 엄청난 국부를 제공하여 종북 좌파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들었는데 문재인이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스스로 천명을 했으니 역시 종북 좌파인 것은 사실이다. 집권과 동시에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증거는 문재인이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각국의 원수들에게 북한의 제재 완화를 부탁(요구)했고, 남북 경제 협력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며, 김정은을 위한 일이라면 국민도 안중에 없는 듯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과유불급이란 말도 모르고 경제·국방·외교·안보 등은 죽을 쑤면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위한 일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미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문재인이 하는 짓거리를 보다 못해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이 노무현처럼 “반미(反美)면 어떠냐!”는 식으로 미국을 대하고, 중국에 국빈으로 가서 비굴하게 굽실거리며 혼밥이나 먹으며 홀대를 받는 주제인데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문재인의 행위가 오죽이나 마음에 걸렸으면 미국의 여야 정치권이 스스럼없이 혈맹국인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문재인의 목을 옭죄는 경고를 했겠는가! 미국 워싱턴 주재 조의준 조선일보 특파원이 보낸 기사를 읽어보면 문재인의 현주소를 알 수가 있다. 美여야 거물의 '대북정책 경고' 편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상원의 여야 중진 의원들이 한국 정부가 성급하게 대북 제재 완화에 나설 경우 한국의 은행과 기업들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편지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장관을 직접 지목하며 미국의 제재 관련법 위반 가능성을 언급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14일(현지 시각) '의회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과 로버트 메넨데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지난 11일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크루즈 의원은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거물 정치인으로, 현재 상원 외교위 소속이다. 메넨데스 의원도 상원 외교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어 두 사람이 미국의 외교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두 사람은 편지에서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는 데 있어 한·미 간 공조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특히 남북, 북·미 간의 외교 트랙에서 서로 진전의 정도가 상이한 결과로 인해 한국 내 은행과 다른 기업체들이 미국의 제재에 노출될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해 5월 한국의 은행들이 북한에 투자 팀을 신설한 것과,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여러 기업 경영자들을 북으로 데려가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하는 방안과 연내 철도 연결식을 하는 방안을 논의한 점을 지적했다. 미국 조야에서 대북 제재와 관련한 한·미 간 견해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이번처럼 한국의 은행과 기업을 직접 경고한 적은 없었다. 특히 두 사람은 편지에서 미국의 여러 제재 법안에도 문 대통령이 유럽을 돌며 제재 완화를 요청한 것과 강 장관이 북에 현금을 주지 않고 개성공단을 가동하는 방안을 찾으려 한 점도 지적했다. (이하 생략)" 미국의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여·야 중진인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과 로버트 메넨데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미국의 여러 제재 법안을 무시한 문재인과 외교부 장관 강경화를 꼭 찍어서 대북 제재룰 위반했다고 지적을 했다. 미국의 상원 여·야 중진의원들이 문재인과 강경화를 싸잡아 비난을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이 혈맹국으로 대북(對北) 문제에서 서로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데 주제 파악도 제대로 못한 문재인과 강경화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무시하고 한·미공조를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국의 은행들이 북한에 투자 팀을 신설한 것과, 지난해 9월 문재인이 여러 기업 경영자들을 북으로 데려가 금강산 관광을 정상화하는 방안과 연내 철도 연결식을 하는 방안을 논의한 점과 유럽을 돌며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요청하였다고 지적을 했고, 강경화는 북한에 현금을 주지 않고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지적을 하였다. 남북, 북·미 간의 외교 트랙에서 서로 진전의 정도가 상이한 결과로 인해 한국 내 은행과 다른 기업체들이 미국의 제재에 노출될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번처럼 한국의 은행과 기업을 직접 경고한 적은 없었다고 하니 언제 우리 기업과 은행들이 제재를 당하여 폭망할지 모르는 엄중한 상황인데 주제파악도 제대로 못하는 문재인과 종북 좌파 정권은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과 국민이 물가에 앉혀놓은 아기의 신세가 된 것이다. 주적인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에게는 국방과 안보의 모든 허점과 취약점을 드러내어 남침 야욕을 더욱 강화하게 했고, 안보를 보장하는 혈맹이요 우방인 미국에게는 불신을 당하는 문재인이 대북정책을 대폭 궤도수정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엄청난 국가적 위기를 당하고 말 것이다. 노무현은 호기 있게 “반미면 어때”하고 큰소리를 치기까지 했지만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용기라도 있었지만 문재인은 미국에게 “반미면 어때”라는 말도 한마디 못하는 주제에다 미국으로부터 노골적으로 지적을 받으면서도 잘못된 대북정책을 수정하는 용기조차 없는 졸장부 같은 주제에 맹목적으로 김정은을 짝사랑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문재인의 외교 정책이 중국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굽실거리고, 주적인 북한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불신을 당하며, 러시아마저 북한을 적극적으로 편들어 우리와의 관계가 신통찮은데다가 일본과의 관계는 이미 금이 가서 삐거덕거리고 있는가 하면 미국마저 강력한 발길로 걷어찰 자세다. 문재인이 잘못된 자신의 정책에 대한 수정을 거부하는 알량한 자존심과 강단 없는 무모한 독선으로 인하여 결국 대한민국과 5,000만 국민은 솥 안에 갇힌 개구리가 되어 서서히 죽어가는 불쌍하고 가련한 신세가 될 뿐이다.(끝) 2019-2-17
1 note · View note
essaytravel-com · 3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정리  나는 정리가 싫다.  새살림 차린다는 말이 있다. 보통 결혼 이사를 하거나 이직 이민 등을 할 때, 주거지를 옮기고 새집에 살 때, 가구 또는 함께 사는 사람을 바꿀 때 하는 말이다. 결혼해서 내 살림을 차리기 전까진 싱글라이프를 살아도 우린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벗어나기 싫은 것이다. 주기적으로 반찬을 담아 반찬통을 보내고 밥 해 먹으라고 쌀을 퍼주고 독립하지 않고 함께 살 때도 엄마 살림은 손에 익지 않고 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엄마 것이다. 엄마 살림은 어마어마하다. 39평 아파트 안에는 안뜰안 뒤뜰안 존재하고 장을 담은 장독이 있다. 베란다 한쪽 화단엔 흙을 채워놓고 그 위에는 스티로폼 박스에서 상추가 대량생산된다. 냉동고 김치냉장고 냉장고를 합쳐 정리했어도 5대가 음식으로 가득 차 존재한다. 식기세척기가 있어 그나마 일주일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손에 익지 않고 내 살림이 아니라 하나하나 물어보는 게 귀찮았는데 칠순 노모의 살림은 이제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가 됐다. 이제는 엄마 집에 가면 내 집처럼 엄마 뒤를 쫓아다니며 정리한다. 모르는 건 정리할 수 없으니 내가 알아서 정리하면 나머지를 스스로 정리한다. 그래서 보통 힘이 들어가는 정리를 돕고 싶지만 실상 나는 배우지 않기를 선택했기에 쉽지 않다. 결국 옆에서 물어보고 그때그때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다.  친구가 있다.  친구는 결혼이 일러 나보다 15년 이상 결혼 생활을 일찍 경험했다. 서른여덟에 서른아홉 한 살 많은 남편을 만나 만혼에 성공했다. 40년 가까이 각자의 삶에 충실하던 사람들이 만나 부부로 사는 것은 그 어떤 결혼생활 못지않게 쉽지 않다. 소위 신혼이라는 기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위기는 많았다. 그때 내게 친구는 말했다. 딱 10년만 견뎌보자. 그때도 네가 이혼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10년을 버티면 남편은 남편으로서 초등학교 졸업시킨 만큼 성장한다. 그리고 또 10년을 버티면 그때는 결혼생활이 수월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친구는 나를 지탱해줬고 돌이켜보면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남편 없이 두원이와 함께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자 개성도 강하고 성격도 강 대 강이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남편은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이고 나는 그를 그 자신보다 빨리 파악했다. 그는 이제 아는 것 같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에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며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질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은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선택했다.  나는 분명히 보통의 평범한 인생을 살기로 선택했다. 반대로 몸과 정신 그리고 마음마저 소멸 시켜 뜨겁고 강하며 짧게 무엇인가를 향해 그것들을 태우는 삶을 살 기회는 많았다. 그래도 난 감히 선택했다. 사스가 창궐해 앙코르와트를 여행할 때조차 언제 집에 돌아오냐며 울던 엄마, 10년만 버티면 그때가 돼서도 이혼하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내 이야기라면 한 음절까지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위로하는 친구가 있으며 이제는 늙고 병들어도 서로를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있고 항상 곁에 있으면서 애정과 충성을 나누는 반려견 두원이가 있다. 그들처럼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디지털 세상이라 가능한 모델 삼아 보고 배우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보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  정리정돈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내 몸이 아픈데 집안 정리를 하진 않는다. 엄마의 중요한 건강검진이나 진료가 있는데 남편 밥을 차리진 않는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야 하는데 그것을 안 하고 식물이나 꽃을 가꾸진 않는다. 시아버님의 영양제를 구매하지 않았는데 반려견의 유산균을 구매하진 않는다. 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두원이 밥을 안 챙기고 나만 밥 먹진 않는다. 수많은 우선순위와 선택은 내게 항상 존재한다. 그것은 신념이고 가치관이다. 남을 의식하거나 남의 시선 따윈 감히 나의 우선순위와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우선순위와 선택에 따른 정리정돈이 안 된 상태에서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행복은 내가 싫어하는 정리정돈을 밟고 태어난다. 나는 정리정돈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싫어한다고 못 하진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정리정돈을 잘한다. 싫어하지만 잘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삶을 정리·정돈한다. 나를 포함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https://www.instagram.com/p/CaggbK4lerG/?utm_medium=tumblr
0 notes
goldenspoonentering · 4 years ago
Text
155
155_080
  머리 며 옷자락  에서  뚝뚝  흘러 내리
 는 빗물   이얼마나   참담한 지는  새삼
 스럽지도 않았다    .
  여전히 감정 을 읽어 낼 수  없는 무
 표정 한 얼굴  이었지만 , 꾹 다문  입술
 과 주먹 을 움켜 쥔 얼굴 은 지금  얼마
 나 많은 것을 참아 내고  있는지 를  전
 해주 었다 .
   「 지금어딜  가는 거야 !누님 을 이
  렇게 두고 나간다고  ?」
 155_081
   [ ......]
   「 못 가.」
  제가 변덕   스럽다는   것은 알지만  이
  대로 나아가는    그의 걸음 을  잡아야
  만 했다 .
   저 남자 가 누님 의  곁에 머무르는
  것은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누님 을
  그냥 두고   나서는  것에 는  더 큰  분
  노가 느껴 졌다 .
  눈가 에 절로   열기  를 담은  채 케이
  든 은 킬리언 의  걸음 을 막아  섰다.
   「 그리도  나가고  싶으면  죽어서   나
  가 . 」
155_082
   「 ... ...그럴수있단건가  ?」
   네가 ?
  그의 무거운    시선 이 검을  잡은  제
  손 으로 향했다 . 겨우  그것 뿐인데  도
  순간적 으로 몸 이짓 눌리는  기분  이란
  역시 더럽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
   케이 든 자신  이 자의적  으로 무릎 을
  꿇은 대상 은 여태껏   누님  한 사람  뿐
  이라지만 , 이렇게   손가락  하나  마음
  대로 까딱 하지 못한 것은 처음 이었
  다 .
   「 이게 무슨  짓 이야! 」
   「 궁금하면  처남 께서도   같이  가시
 155_083
   「 ... ...그럴수있단건가  ?」
   네가 ?
  그의 무거운    시선 이 검을  잡은  제
  손 으로 향했다 . 겨우  그것 뿐인데  도
  순간적 으로 몸 이짓 눌리는  기분  이란
  역시 더럽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
   케이 든 자신  이 자의적  으로 무릎 을
  꿇은 대상 은 여태껏   누님  한 사람  뿐
  이라지만 , 이렇게   손가락  하나  마음
  대로 까딱 하지 못한 것은 처음 이었
  다 .
   「 이게 무슨  짓 이야! 」
   「 궁금하면  처남 께서도   같이  가시
 155_084
  속이 끊었   지만 막상 문 을  열 자마자
  펼쳐진 광경   에 할  말 을 잃었다  .
    「 이 ,이건.」
    「 .. ......늦었군.」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듣
  는 목소리   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 의 말이   라는  것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 했던   존재 였다 .
    「 이런.조금  더 빨리 오지 않으려
  나 했는데  .」
   [ ......]
   놀라 인상 을 쓰는   저와 는  달리  킬
  리언 은 이미   그 존재  에  익숙한   듯
 155_085
  보였다 .
  고작 며칠    전만   해도 제 누님 의
  무릎 위에서    낑낑 대던  마수  가 지금
  은 비늘 하나 하나 에서  광택 을  내뿜
  으며 고귀함  을 뽐냈다 .
  한 쌍 의  붉은  날개 를  펼친 발록 의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킬리
  언 의 걸음 걸이  가비장  했다.
   「 . ...제가왜 이곳 에 왔는지  아실
  겁니다 . 」
 155_086
   「 건 방지구나 .」
  공기 를 울려   전해오는   초자연  의 음
  성과 는 달리   기다란  눈동자  는 어쩐
  지 웃음 을 머금은   것도 같았다  .
   역시 드래곤   이란 건가. 마주  보기
  만 해도   속이 울렁 거릴  저  눈동자
  앞에 서자 몸 이며  정신  이 철저히  무
  력 해졌다 .
   기다란 눈동자   가 방향  을 바꾸며  새
  삼 즐겁다  는 듯 저 를 담았다  .
   「 이런, 손님  이 또  계셨군  .설마
  그대 혼자   힘으로  모자란   건가 ?」
   「 그럴 리 가요 .」
 155_087
    「 그럼 저게  누님 의  진짜 동생 이란
  말이지 . 」
   약간 의 적의 가 담긴   눈에  심술  이
  스쳐 갔다 . 마치   질투 를  하는   듯한
  눈 , 제가 저  ��자 를 볼  때 와도  같은
  시선 이 꽤나   길게  머물렀다   .
   보다 못한   킬리언   이불편한   심기   를
  드러내 자   발록 이 날개 를  길게 펼쳤
  다 .
    「 예상은  했다 만  맡겨 놓은  것처럼
  구는 구나 , 인간 의 왕 이 될 자여 .」
    「 .......제게빚이 있지   않으 십니
  까 . 」
 155_088
   「 뭐라?」
  크 르릉 , 발록 의 언짢은  심기 가 거
  대한 몸 에서  그대로   묻어 났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안 그래도  큰 몸
  이 불규칙한   숨소리  와 함께  더욱  커
  져 가고 있었다  .
  하지만 킬리언    은 조금도   개의치  않
  고 한 팔 을 검 위로 올렸다 .
   「 불멸의  저주 에서  해방 해드렸 습니
  다 . 드래곤 의  언약 을   지켜 주십 시
  오 . 」
   「 그 덕에  네놈 도 원하는   것을 얻
  지 않았 더냐 .」
 155_089
    「 아니요. 저는  그저   당신 과  똑같
  이 고통 에서 놓여 나고 싶을 뿐입니
  다 . 」
   「 .... ....」
    「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무한한
  고통 을 아  신다면   저를  외면 하지   마
  십시오 . 」
   천하 의 드래곤  을  앞에  두고 도  저리
  당당 할 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당당
  했다 . 또한  ......간절했다.
    「 지금껏 당신  의 그  무엇 하나   바
  란 적이   없지만  , 감히 청 하오니   제
  아내 아델   을 구해 주십시오   .」
 155_090
   스릉 , 검을  뽑아  낸 킬리언   이 이율
  배반 적이 게도 한쪽   무릎 을  굽혔다  .
  절대 이대로는     물러나지    않을 그의
  기세 에 드래곤  조차   기가 막힌 지  거
  친 콧김 을  뿜어 댔다  .
    「 인간의 왕  이 될  자가   이렇게나
  멍청 하다니  .」
    r ......
    「 내 심장을  또다시   얻을  때까지는
  몇 백 , 몇  천 년 이 걸릴지   모른단
  말이다 . 그리  되면   네 피  안에 흐른
  다는 황가   의 저주 는  영원히  풀지   못
  할 테지 .」
    「 제게는 그녀  가  없는  세상  이야 말
 155_091
  로 영원 의  저주 일 테 지요 .」
   킬리언 의 검 에 점차   푸른 색  빛 이
  감돌기 시작   했다 .다시  는 되 돌리지
  않을 그의   선택 이 기어이   발록 을 불
  러 냈다.
   「 숨 이붙어   있다  해서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면   몰랐지
  이렇게 살아   본 이상  다시 는  그러한
  저주 속 에서  살아가고    싶지 는 않습
  니다 . 제 사랑하는   이가 저 때문에
  손끝 하나 라도   다치게   된다면   ......
  저는 당신 처럼 무한한   지옥 에서  살
  게 되겠지요  .」
   「 지옥 이라니 .이번   생은 꽤나 마
 155_092
  음 에 들었 단 말이다  .」
   「 ......이렇게각성을 하고  계신  것
  도 처음 부터  아델  을 위해서   가아니
  셨습니까 . 」
  서로 의 본심  을 빤히  짚은 킬리언  의
  시선 에 발록 은  긍정 도, 부정 도 하지
  않았다 .
  다음 순간   ,발록 은 마치   이 순간 을
  기다린 것처럼    드디어   날개 를  넓게
  펼쳤다 .
  쿠 르릉 .
   이마 에서 시작된  발록 의 붉은  문양
  이 빛 처럼  은은하게   번져 나갔다  .킬
 155_093
  리언 의 푸른  검 과 마주하듯   점차 퍼
  진 붉은   문양 이 온몸 을 뒤덮 자  한
  발짝 떨어진    케이 든 조차 눈 을 가려
  야 했다 .
   「 으읏!」
   「 끝 이어떠 하건   자리 를 옮겨야   겠
  지 . 여긴 내게도   많은 추억 이 깃든
  곳 이니까 .」
  웃음 섞인   드래곤  의 음성  이 고막 을
  울렸다 .
   긴 날개 가 펄럭 이자  몸 이 절로  휘
  청 거렸다 .아니 , 붕 떠올랐다  . 눈 깜
  짝할 사이   에 두 다리  가 번쩍  들려
  거대한 소용돌이    에 휘말려  버렸다 .
 155_094
  젠장 , 뭐 이딴  일 이.
  욕설 이 절로   나왔지만   그럼에도   고
  대의 성수   앞에서  는 철저히   무력 해
  졌다 . 그렇게  두  발이  땅에  닿았 을
  땐 , 이미 발록 은 제 본 모습 을 완전
  히 찾은 뒤 였다 .
    ......
   ]
   어찌 그것이   본 모습 이냐  묻는 다면 ,
  그저 그리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
  길게 산   인생 은 아닐  지라도  저렇게
  빛나고 아름다우며    , 또한 세상 의 열
  기를 모두   빨아들인   거대한  힘 을 가
  진 생물 이 더 이상  존재할   것 같지
  않았다 .
 155_100
  하나 는 즐거워   보였고   남은  하나 는
  처절 했다 .감히  끼어 들  틈조차  찾을
  수 없이 완벽 하고 도 치열한   움직임
  이 사방 을 잠식  했다 .
   [ ......]
  그렇게 억지로     눈을 떴을 땐,구슬
  처럼 붉은   심장 을 든 킬리언  의 모습
  만이 남았다   . 드래곤 의  피 를 흠뻑
  뒤집어 쓴 채   군데 군데  그을린  망토
  가 처참 했지만   그럼에도   그  얼굴 만
  은 경건 하기  짝 이 없었다  .
   「 아델.」
  그것을 누님   의 가슴  에 얹어 줄 때에
  도 , 손 을들어  그 손등 에  입을 맞출
 155_101
  때에도 , 깨어나   기도  전에   돌아서   는
  순간 에도 ,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그의 눈빛   이 쓸쓸  하기 짝  이 없었다 .
   “ ...아아.”
   어느 정도   예상 을  했음에도   그간  의
  숨겨진 이야기    를 듣고  나자  마냥   태
  연할 수가   없었다  .
   아델 이 힘겹다  는 듯 이마 를 짚자
  두 남자 의 반응  이 격렬 했다 .
   “ 누님!”
 155_102
   “ 형수님!”
   겨우 미간   을 찡그리기   만 해도   두
  남자 모두    어쩔 줄 을  모르고   손 을
  움찔 거렸다  . 그래 봤자   뭘  어쩌겠  냐
  만 안 그래도   꼼짝 도  못  하던  그녀
  의 앞에서   이젠 아예 납작   엎드리게
  생겼다 .
   " 괜찮으십니까  ? 이러지    말고  누우
  시 는 것이  .......”
   “  ...아뇨.이번에  누워   있으면   또
  무슨 일   이일어날   줄 알고  요.”
   아델 은 어림도   없다며   아론  의 청 을
  물렸다 .
 155_103
  받친 손가락   사이로  드러나는   붉은
 시선 이 처음  만났을   때 이상 으로 강
  렬 했다.
0 notes
frdaejeon · 6 years ago
Text
Poésie
Tumblr media
Voici les differents poèmes.
1 - A qui la faute ?  /   누구의 잘못인가?                                                              Victor HUGO   /       빅토르 위고 Tu viens d'incendier la Bibliothèque ? - Oui. J'ai mis le feu, là. -Mais c'est un crime inouï ! Crime commis par toi contre toi-même, infâme ! Mais tu viens de tuer le rayon de ton âme ! C'est ton propre flambeau que tu viens de souffler ! Ce que ta rage impie et folle ôse brûler, C'est ton bien, ton trésor, ta dot, ton héritage Le livre, hostile au maître, est à ton avantage. Le livre a toujours pris fait et cause pour toi. Une bibliothèque est un acte de foi Des générations ténébreuses encore Qui rendent dans la nuit témoignage à l'aurore. Quoi! dans ce vénérable amas des vérités, Dans ces chefs-d'oeuvre pleins de foudre et de clartés, Dans ce tombeau des temps devenu répertoire, Dans les siècles, dans l'homme antique, dans l'histoire, Dans le passé, leçon qu'épelle l'avenir, Dans ce qui commença pour ne jamais finir, Dans les poètes! quoi, dans ce gouffre des bibles, Dans le divin monceau des Eschyles terribles, Des Homères, des jobs, debout sur l'horizon, Dans Molière, Voltaire et Kant, dans la raison, Tu jettes, misérable, une torche enflammée ! De tout l'esprit humain tu fais de la fumée ! As-tu donc oublié que ton libérateur, C'est le livre ? Le livre est là sur la hauteur; Il luit; parce qu'il brille et qu'il les illumine, 네가 서가에 불 질렀니? -응. 내가 불 질렀어, 거기에.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죄야! 네가 네 자신에 대하여 저지른 죄야, 이 비열한 것아! 너는 너의 마음의 빛을 죽였다! 네가 꺼버린 것은 네 자신의 횃불이다! 너의 부도덕하고 미친 분노가 감히 불태우는 것은 너의 재산, 보물, 지참금, 유산 책은, 선생에게는 적대적이지만, 너에게는 유익한 것이다. 책은 항상 너를 변호했다. 하나의 서가는 밤에 새벽을 기다리는, 아직 어두움 속에 있는 세대들의 하나의 믿음의 행위이다. 뭐! 진리들의 훌륭한 더미 속에, 강력한 힘과 빛들이 가득한 이 걸작들 속에, 목록화된 지나간 시간들의 무덤 속에, 수세기의 시간 속에, 고대인 속에, 역사 속에, 미래가 말해주는 교훈인 과거 속에, 시작했으나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 속에, 시인들 속에, 뭐! 성서들의 이 깊은 심연 속에, 지평선에 서 있는, 끔찍한 아리큘로스와 호메로스와 욥의 숭고한 작품들 속에, 몰리에르, 볼테르, 칸트 속에, 이성 속에, 불쌍한 애야, 너는 불타는 횃불을 던지는구나! 너는 인간의 모든 지성을 연기로 만드는구나! 그러니 너는 너의 구세주를 잊었니? 그것이 책이라는 것을. 책은 높은 곳에 있단다; 그것은 빛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반짝이고, 환하게 비추어서, Il détruit l'échafaud, la guerre, la famine Il parle, plus d'esclave et plus de paria. Ouvre un livre. Platon, Milton, Beccaria. Lis ces prophètes, Dante, ou Shakespeare, ou Corneille L'âme immense qu'ils ont en eux, en toi s'éveille ; Ebloui, tu te sens le même homme qu'eux tous ; Tu deviens en lisant grave, pensif et doux ; Tu sens dans ton esprit tous ces grands hommes croître, Ils t'enseignent ainsi que l'aube éclaire un cloître A mesure qu'il plonge en ton coeur plus avant, Leur chaud rayon t'apaise et te fait plus vivant ; Ton âme interrogée est prête à leur répondre ; Tu te reconnais bon, puis meilleur; tu sens fondre, Comme la neige au feu, ton orgueil, tes fureurs, Le mal, les préjugés, les rois, les empereurs ! Car la science en l'homme arrive la première. Puis vient la liberté. Toute cette lumière, C'est à toi comprends donc, et c'est toi qui l'éteins ! Les buts rêvés par toi sont par le livre atteints. Le livre en ta pensée entre, il défait en elle Les liens que l'erreur à la vérité mêle, Car toute conscience est un noeud gordien. Il est ton médecin, ton guide, ton gardien. Ta haine, il la guérit ; ta démence, il te l'ôte. Voilà ce que tu perds, hélas, et par ta faute ! Le livre est ta richesse à toi ! c'est le savoir, Le droit, la vérité, la vertu, le devoir, Le progrès, la raison dissipant tout délire. Et tu détruis cela, toi ! 단두대와 전쟁과 기아를 사라지게 한다. 그것은 노예와 천민에 대하여 더 많이 말한다. 책을 펼쳐라. 플라톤, 밀턴, 베까리아. 단테, 셰익스피어, 꼬르네유 같은 예언자들을 읽어라. 그들 속에 있는 거대한 영혼이 너에게서 깨어난다; 그들에게 매료된 너는 그들 모두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너는 진지하고, 생각이 깊어지고, 부드러워진다. 너는 너의 정신 속에 이 위대한 사람들이 자라는 것을 느끼게 되니, 책이 너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갈수록 여명이 수도원을 비추듯 너를 가르친다. 따뜻한 빛이 너를 진정시키고, 더 생기 있게 한다; 질문을 받는 너의 마음은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너는 자신을 훌륭하게, 더 훌륭하게 인식한다; 너는 불에 눈이 녹듯이 너의 거만함, 너의 분노, 악, 편견, 왕들과 황제들이 녹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양심이 처음에 오고, 그다음에, 자유가 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빛을 네가 이해해 보아라, 그리고 그것을 네가 꺼라! 네가 꿈꾸었던 목표들은 책을 통해 달성된다. 책이 너의 생각 속에 들어오면, 그것은 너의 생각 속에서 잘못이 진리 속에 섞어놓은 관계들을 해체시킨다. 왜냐하면 모든 인식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기 때문이다. 책은 너의 의사이고, 안내자이고, 보호자이다. 책은 너의 증오를 치유해주고, 너의 광기를 없애준다. 애석해라! 이것이 너의 잘못 때문에 네가 잃은 것이다! 책은 너의 부유함이다. 그것은 지식이고, 법이고, 진실이고, 덕이고, 의무이고, 진보이고, 모든 망상을 없애주는 이성이다. 그런데 네가 이것을 파괴하는구나, 네가! ////////////////////////////////////////////////////////////////////////////////////////////////////////////////////////////////////////////////////////////////////////////////////////////////////////////////////////////////////////////////// 2 - Femme nue, femme noire      /     검은 여인                                           Léopold Sédar SENGHOR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 Femme nue, femme noire Vêtue de ta couleur qui est vie, de ta forme qui est beauté! J'ai grandi à ton ombre ; la douceur de tes mains bandait mes yeux. Et voilà qu'au cœur de l'Eté et de Midi, je te découvre Terre promise, du haut d'un haut col calciné Et ta beauté me foudroie en plein cœur, comme l'éclair d'un aigle. Femme nue, femme obscure Fruit mûr à la chair ferme, sombres extases du vin noir, bouche qui fais lyrique ma bouche Savane aux horizons purs, savane qui frémis aux caresses ferventes du Vent d'Est Tamtam sculpté, tamtam tendu qui grondes sous les doigts du Vainqueur Ta voix grave de contre-alto est le chant spirituel de l'Aimée. Femme nue, femme obscure Huile que ne ride nul souffle, huile calme aux flancs de l'athlète, aux flancs des princes du Mali Gazelle aux attaches célestes, les perles sont étoiles sur la nuit de ta peau Délices des jeux de l'esprit, les reflets de l'or rouge sur ta peau qui se moire A l'ombre de ta chevelure, s'éclaire mon angoisse aux soleils prochains de tes yeux. Femme nue, femme noire Je chante ta beauté qui passe, forme que je fixe dans l'Eternel, Avant que le Destin jaloux ne te réduise en cendres pour nourrir les racines de la vie. 벗은 여인아, 검은 여인아 그대 생명의 피부 빛깔을, 아름다움의 형태를 입고 있구나! 나 그대의 그늘 속에서 자라났네, 그대의 부드러운 두 손이 내 눈을 가려 주었지. 이제, 여름과 정오(正午)의 한가운데서 나 그대의 약속된 땅을 발견하네, 검게 탄 높은 언덕의 정상으로부터 그대의 아름다움은 번개 같은 독수리처럼 내 가슴 한복판을 벼락으로 몰아치네. 벗은 여인아, 어두컴컴한 여인아 단단한 살을 가진 잘 익은 과일, 검은 포도주의 어두운 황홀, 내 입에 신명(神明)을 실어주는 입 맑은 지평을 여는 사바나, 동풍의 열렬한 애무에 전율하는 사바나, 조각장식된 탐탐북이여, 승리자의 손가락 밑에서 우레 같이 울리는 탐탐북이여 그대 알토의 낮은 목소리는 연인이 부르는 영혼의 노래. 벗은 여인아, 어두컴컴한 여인아 어떤 숨결도 일렁이게 하지 못할 기름, 운동선수의 허리에, 말리 왕자들의 허리에 바른 고요한 기름이여 하늘의 끈에 매인 영양이여, 진주는 그대 피부의 밤 속에 빛나는 별 그대 머리카락의 그림자에 어른거리는 그대 피부 위로 노니는 정신의 환희, 붉은 금빛의 반영들이여, 나의 고뇌는 이내 솟아날 그대 두 눈의 태양 빛을 받아 환하게 개이네. 벗은 여인아, 검은 여인아 시샘하는 운명이 그대를 한 줌 재로 만들어 생명의 뿌리에 거름을 주기 전에, 나는 노래하네 지나가고 마는 그대의 아름다움을, 내가 영원 속에 잡아두고픈 그 형상을. ///////////////////////////////////////////////////////////////////////////////////////////////////////////////////////////////////////////////////////////////////////////////////////////////////////////////////////////////////////////// 3 - Les phares     /     등대들                                                     Charles Baudelaire     /     샤를 보들레르 Rubens, fleuve d'oubli, jardin de la paresse, Oreiller de chair fraîche où l'on ne peut aimer, Mais où la vie afflue et s'agite sans cesse, Comme l'air dans le ciel et la mer dans la mer; Léonard de Vinci, miroir profond et sombre, Où des anges charmants, avec un doux souris Tout chargé de mystère, apparaissent à l'ombre Des glaciers et des pins qui ferment leur pays; Rembrandt, triste hôpital tout rempli de murmures, Et d'un grand crucifix décoré seulement, Où la prière en pleurs s'exhale des ordures, Et d'un rayon d'hiver traversé brusquement; Michel-Ange, lieu vague où l'on voit des Hercules Se mêler à des Christs, et se lever tout droits Des fantômes puissants qui dans les crépuscules Déchirent leur suaire en étirant leurs doigts; Colères de boxeur, impudences de faune, Toi qui sus ramasser la beauté des goujats, Grand coeur gonflé d'orgueil, homme débile et jaune, Puget, mélancolique empereur des forçats; Watteau, ce carnaval où bien des coeurs illustres, Comme des papillons, errent en flamboyant, Décors frais et légers éclairés par des lustres Qui versent la folie à ce bal tournoyant; Goya, cauchemar plein de choses inconnues, De foetus qu'on fait cuire au milieu des sabbats, De vieilles au miroir et d'enfants toutes nues, Pour tenter les démons ajustant bien leurs bas; 루벤스, 망각의 강. 나태의 정원,그곳에서 사랑하기엔 너무 싱싱한 살 베개, 거기선 생명이 끊임없이 넘치고 용솟음친다,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의 파도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윽하고 어두운 거울, 거기서 매력적인 천사들이, 신비로 가득한 다정스런 미소 지으며 그들 나라 에워싼 빙하와 소나무 그늘에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소리 가득한 서글픈 병원, 장식이라고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 눈물 섞인 기도 소리 오물에서 풍기고, 겨울 햇살 한 줄기 불쑥 비쳐든다; 미켈란젤로, 어렴풋한 곳,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헤라클레스 무리들과 그리스도 무리들 어울리는 것, 억센 망령들이 꼿꼿이 일어나 해질 무렵 어둠 속에서 손가락 뻗쳐 자기들 수의를 찢는다 권투선수의 분노도 목신의 뻔뻔함도, 천민들의 아름다움을 긁어모을 줄 알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마음은 넉넉하나, 병약하고 누렇게 뜬 사나이. 퓌제, 죄수들의 우울한 제왕. 와토, 수많은 명사들이 나비처럼 찬란하게 이리저리 거니는 사육제, 샹들리에가 비추는 산뜻하고 경쾌한 배경이 빙글빙글 춤추는 무도장에 광란을 들이붓는다. 고야, 낯선 것들로 가득한 악몽, 마녀들이 잔치판에서 삶는 태아들이며 거울 보는 늙은 여인들과 악마를 유혹하려고 스타킹을 추켜올리는 벌거숭이 소녀들: Delacroix, lac de sang hanté des mauvais anges, Ombragé par un bois de sapins toujours vert, Où, sous un ciel chagrin, des fanfares étranges Passent, comme un soupir étouffé de Weber; Ces malédictions, ces blasphèmes, ces plaintes, Ces extases, ces cris, ces pleurs, ces Te Deum, Sont un écho redit par mille labyrinthes; C'est pour les coeurs mortels un divin opium! C'est un cri répété par mille sentinelles, Un ordre renvoyé par mille porte-voix; C'est un phare allumé sur mille citadelles, Un appel de chasseurs perdus dans les grands bois! Car c'est vraiment, Seigneur, le meilleur témoignage Que nous puissions donner de notre dignité Que cet ardent sanglot qui roule d'âge en âge Et vient mourir au bord de votre éternité! 들라크루아, 악한 천사들 드나드는 피의 호수, 거긴 늘 푸른 전나무 숲으로 그늘지고, 우울한 하늘 아래 기이한 군악대 소리가 베버의 한숨인 양 지나간다. 이 모든 저주, 이 모독, 이 탄식들, 이 황홀, 이 절규, 이 눈물, 이 <찬가>들은 수많은 미로에서 되울려오는 메아리 소리요 결국 죽게 될 인간의 마음에는 성스러운 아편이로다! 그것은 수천의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절규요, 수천의 확성기에서 나오는 하나의 명령이요, 그것은 수천의 성 위에 밝혀진 하나의 등대요, 깊은 숲속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이 울부짖는 소리로다! 왜냐면 주여, 진실로 이것은 우리의 존엄성을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증거, 이 뜨거운 흐느낌은 대대로 흘러 당신의 영원의 강가에서 스러져갈 것이니! ///////////////////////////////////////////////////////////////////////////////////////////////////////////////////////////////////////////////////////////////////////////////////////////////////////////////////////////////////////////// 4 - Mémoire   /     기억                                                 Arthur Rimbaud    /     아르튀르 랭보 I L’eau claire ; comme le sel des larmes d’enfance, l’assaut au soleil des blancheurs des corps de femmes ; la soie, en foule et de lys pur, des oriflammes sous les murs dont quelque pucelle eut la défense ; l’ébat des anges ; — Non… le courant d’or en marche, meut ses bras, noirs, et lourds, et frais surtout, d’herbe. Elle sombre, avant le Ciel bleu pour ciel-de-lit, appelle pour rideaux l’ombre de la colline et de l’arche. II Eh ! l’humide carreau tend ses bouillons limpides ! L’eau meuble d’or pâle et sans fond les couches prêtes. Les robes vertes et déteintes des fillettes font les saules, d’où sautent les oiseaux sans brides. Plus pure qu’un louis, jaune et chaude paupière le souci d’eau — ta foi conjugale, ô l’Épouse ! — au midi prompt, de son terne miroir, jalouse au ciel gris de chaleur la Sphère rose et chère. III Madame se tient trop debout dans la prairie prochaine où neigent les fils du travail ; l’ombrelle aux doigts ; foulant l’ombelle ; trop fière pour elle des enfants lisant dans la verdure fleurie 1. 청명한 물, 어린 날 흘린 눈물의 소금과 같고, 여인들의 백옥같은 몸이 태양빛에 솟아오르는 듯 ; 동정녀가 지키는 벽 아래에 펼쳐진 순결한 백합문양의 프랑스 국왕기 비단의 쉴새 없는 펄럭임 ; 천사들의 즐거운 뛰놀기와 같은 것 : 아니.... 일렁이는 금물결이 검고 묵직한, 특히 신선한 풀로 휘감긴 팔을 휘젓네. 물은 푸른 하늘이 침대 덮개마냥 펼쳐지기 전, 언덕과 다리의 아치를 부르네, 커튼삼아 그늘을 드리워주라고. 2. 아! 젖은 창유리가 투명한 거품들을 뿜어내네! 물은 연한 황금빛으로 준비된 가없는 잠자리를 채우고 소녀들의 빛바랜 초록 드레스들이 수양버들처럼 하늘거리고, 그곳에서 새들은 자유로이 솟아오르네. 금화보다도 더 순수하고, 노랗고 따스한 눈꺼풀을 가진 미나리아재비가 –부부의 서약을 한, 오 신부여!- 덧없이 짧은 정오에 자신의 흐릿한 거울에 비치는 뜨거운 열기의 회색빛 하늘에 떠 있는 장밋빛 고귀한 천구를 시샘하는구나. 3. 산고 끝에 낳은 아들들이 눈처럼 내리는 그 옆 들판에 여인이 너무나 꼿꼿이 서 있네, 작은 양산을 손가락에 움켜쥐고, 산형화를 밟으며,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네 만개한 녹음 안에서 모로코 붉은 가죽 장정의 책을 읽고 있는 제 아이들을! 그런데 어찌하리, leur livre de maroquin rouge ! Hélas, Lui, comme mille anges blancs qui se séparent sur la route, s’éloigne par-delà la montagne ! Elle, toute froide, et noire, court ! après le départ de l’homme ! IV Regret des bras épais et jeunes d’herbe pure ! Or des lunes d’avril au cœur du saint lit ! Joie des chantiers riverains à l’abandon, en proie aux soirs d’août qui faisaient germer ces pourritures ! Qu’elle pleure à présent sous les remparts ! l’haleine des peupliers d’en haut est pour la seule brise. Puis, c’est la nappe, sans reflets, sans source, grise : un vieux, dragueur, dans sa barque immobile, peine. V Jouet de cet oeil d’eau morne, je n’y puis prendre, Oh! canot immobile ! oh ! bras trop courts ! ni l’une ni l’autre fleur : ni la jaune qui m’importune, là ; ni la bleue, amie à l’eau couleur de cendre. Ah ! la poudre des saules qu’une aile secoue ! Les roses des roseaux dès longtemps dévorées ! Mon canot, toujours fixe ; et sa chaîne tirée au fond de cet œil d’eau sans bords, — à quelle boue ? 무수히 많은 하얀 천사들이 길에서 작별하듯, 산 저 너머로 그가 멀어져가네! 그녀는, 너무도 창백하고 어두워진 채로 달려가네! 그가 떠난 뒤를 쫓아서! 4 싱그런 풀로 무성했던 젊고 강건한 팔에 대한 회한이여! 사월의 금빛 달이 비추던 성스러운 침대! 버려진 강기슭 작업장에서의 즐거움이여, 팔월의 저녁이 되니 이토록 추악한 쓰레기들만 뒹구는구나! 성벽 아래서 지금 그녀가 울고 있다! 저 높은 곳 포플러나무의 숨결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흩어져 가고. 반사광도 광원도 없는 회색의 식탁보가 펼쳐진 듯 : 늙은 인부는, 미동도 않는 배를 빠져나오게 하려 애쓰네. 5 음울한 물의 시선에 사로잡혀, 난 잡을 수 없네. 오! 움직이지 않는 배여! 오! 팔이 너무도 짧구나! 그 어떤 꽃도 잡을 수 없네. 날 괴롭히는 노란꽃도, 잿빛 물에 떠 있는 여인인 파란 꽃도. 아! 날갯짓에 흩날리는 버드나무의 꽃가루여! 오래전부터 탐욕스럽게 바라보던 분홍빛 갈대들이여!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 내 배, 기슭 없는 물의 시선 깊숙한 곳으로 팽팽히 끌어당겨진 사슬은, 그 어떤 진창에 빠져 있는가? ///////////////////////////////////////////////////////////////////////////////////////////////////////////////////////////////////////////////////////////////////////////////////////////////////////////////////////////////////////////// 5 - Non l'amour n'est pas mort                                                                                   Robert DESNOS Non, l'amour n'est pas mort en ce coeur et ces yeux et cette bouche qui proclamait ses funérailles commencées. Ecoutez, j'en ai assez du pittoresque et des couleurs et du charme. J'aime l'amour, sa tendresse et sa cruauté. Mon amour n'a qu'un seul nom, qu'une seule forme. Tout passe. Des bouches se collent à cette bouche. Mon amour n'a qu'un nom, qu'une forme. Et si quelque jour tu t'en souviens Ô toi, forme et nom de mon amour, Un jour sur la mer entre l'Amérique et l'Europe, A l'heure où le rayon final du soleil se réverbère sur la surface ondulée des vagues, ou bien une nuit d'orage sous un arbre dans la campagne, ou dans une rapide automobile, Un matin de printemps boulevard Malesherbes, Un jour de pluie, A l'aube avant de te coucher, Dis-toi, je l'ordonne à ton fantôme familier, que je fus seul à t'aimer davantage et qu'il est dommage que tu ne l'aies pas connu. Dis-toi qu'il ne faut pas regretter les choses: Ronsard avant moi et Baudelaire ont chanté le regret des vieilles et des mortes qui méprisèrent le plus pur amour. Toi, quand tu seras morte, Tu seras belle et toujours désirable. Je serai mort déjà, enclos tout entier en ton corps immortel, en ton image étonnante présente à jamais parmi les merveilles perpétuelles de la vie et de l'éternité, mais si je vis Ta voix et son accent, ton regard et ses rayons L'odeur de toi et celle de tes cheveux et beaucoup d'autres choses encore vivront en moi, En moi qui ne suis ni Ronsard ni Baudelaire, Moi qui suis Robert Desnos et qui, pour t'avoir connue et aimée, Les vaux bien. Moi qui suis Robert Desnos, pour t'aimer Et qui ne veux pas attacher d'autre réputation à ma memoire sur la terre méprisable. * 이 시의 번역은 없습니다. ///////////////////////////////////////////////////////////////////////////////////////////////////////////////////////////////////////////////////////////////////////////////////////////////////////////////////////////////////////////// 6 - Ophélie   /     오필리어 Arthur RIMBAUD    /     르뛰르 랭보 I Sur l'onde calme et noire où dorment les étoiles La blanche Ophélia flotte comme un grand lys, Flotte très lentement, couchée en ses longs voiles... -- On entend dans les bois lointains des hallalis. Voici plus de mille ans que la triste OphéliePasse, fantôme blanc, sur le long fleuve noir, Voici plus de mille ans que sa douce folie Murmure sa romance à la brise du soir. Le vent baise ses seins et déploie en corolle Ses grands voiles bercés mollement par les eaux ; Les saules frissonnants pleurent sur son épaule, Sur son grand front rêveur s'inclinent les roseaux. Les nénuphars froissés soupirent autour d'elle ;Elle éveille parfois, dans un aune qui dort, Quelque nid, d'où s'échappe un petit frisson d'aile : -- Un chant mystérieux tombe des astres d'or. II Ô pâle Ophélia ! belle comme la neige ! Oui tu mourus, enfant, par un fleuve emporté ! -- C'est que les vents tombant des grands monts de Norwège T'avaient parlé tout bas de l'âpre liberté ; C'est qu'un souffle, tordant ta grande chevelure, A ton esprit rêveur portait d'étranges bruits ; Que ton cœur écoutait le chant de la Nature Dans les plaintes de l'arbre et les soupirs des nuits ; I 별들이 잠든 어둡고 고요한 물결 위에 창백한 오필리어가 커다란 백합꽃처럼 떠내려간다. 기다란 면사에 뉘인 채 아주 천천히 떠내려간다... -아득히 먼 숲 속에서 들려오는 짐승 몰이꾼의 피리소리. 가엾은 오필리어의 창백한 영혼이 어두운 강물줄기를 따라 흐른 지 어언 천년 세월. 그녀의 애처로운 광란이 저녁 바람을 타고 제 연가를 속삭인 지 어언 천년 세월. 바람은 그녀의 젖가슴에 입 맞추고 꽃잎처럼 펼친다 물결 따라 부드럽게 너울대는 그녀의 넓은 면사를. 동요하는 버들가지들이 그녀의 어깨에 기대 흐느끼고, 꿈꾸는 그녀의 넓은 이마 위로 갈대 줄기가 기울어지누나. 움츠린 수련은 그녀의 곁에서 탄식하고, 그녀는 이따금, 잠자는 오리나무 안, 몇몇 둥지를 깨우니 작은 날갯짓 소스라친다. -그러자 신비로운 노랫소리가 금빛 별들로부터 쏟아져 내린다. II 오, 창백한 오필리어여, 흰 눈처럼 아름답구나! 그래, 그대는 아이였을 때 강물에 실려 목숨을 잃었었지! -노르웨이의 높은 산봉우리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아주 낮게 내려와, 가혹한 자유를 그대에게 가르쳐 주었노라 그대의 긴 머릿결을 굽이치게 하는 숨결은 꿈꾸는 그대의 생각에 신비로운 소리를 들려주었고 나무의 통곡소리와 밤의 탄식 속에서 그대의 마음은 자연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지 C'est que la voix des mers folles, immense râle, Brisait ton sein d'enfant, trop humain et trop doux. C'est qu'un matin d'avril, un beau cavalier pâle, Un pauvre fou, s'assit muet à tes genoux ! Ciel ! Amour ! Liberté ! Quel rêve, ô pauvre Folle ! Tu te fondais à lui comme une neige au feu ; Tes grandes visions étranglaient ta parole -- Et l'infini terrible effara ton œil bleu ! III -- Et le Poète dit qu'aux rayons des étoiles Tu viens chercher, la nuit, les fleurs que tu cueillis ; Et qu'il a vu sur l'eau, couchée en ses longs voiles, La blanche Ophélia flotter, comme un grand lys. 거대한 헐떡임과 같은 미친 바다의 목소리가 그토록 인간적이고 그토록 다정한 그대의 어린 가슴을 망가뜨리고 말았구나. 사월의 어느 아침, 잘생긴 창백한 기사, 가엾은 광인이 그대의 무릎 곁에 말없이 앉았도다! 하늘이여! 사랑이여! 자유여! 어떤 꿈을 꾸는가 오 가엾은 광녀여! 불에 녹는 눈처럼, 그대 그 꿈에 녹아버렸네. 그대의 커다란 환상이 그대의 말을 질식시켜 버렸네. -그리고 끔찍한 영원이 그대의 푸른 눈을 놀라게 하였구나! III 시인은 말하노라, 별빛이 내리는 밤마다 그대, 그대가 지난날 꺾었던 꽃들을 찾으러 온다고, 그는 또한 보았노라고, 긴 천을 늘어뜨린 창백한 오필리어가 커다란 백합꽃처럼 물결 위로 떠내려가는 것을. ///////////////////////////////////////////////////////////////////////////////////////////////////////////////////////////////////////////////////////////////////////////////////////////////////////////////////////////////////////////// 7 - Poésie Ininterrompue                                                              Paul Éluard De l'océan à la source De la montagne à la plaine Court le fantôme de la vie L'ombre sordide de la mort Mais entre nous Une aube naît de chair ardente Et bien précise Qui remet la terre en état Nous avançons d'un pas tranquille Et la nature nous salue Le jour incarne nos couleurs Le feu nos yeux et la mer notre union Et tous les vivants nous ressemblent Tous les vivants que nous aimons Les autres sont imaginaires Faux et cernés de leur néant Mais il nous faut lutter contre eux Ils vivent à coups de poignard Ils parlent comme un meuble craque Leurs lèvres tremblent de plaisir A l'écho de cloches de plomb § 멈추지 않는 시 폴 엘뤼아르 바다에서 샘까지 산에서 들판까지 삶의 환영, 죽음의 비열한 그림자가 달린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로 뜨겁고 아주 뚜렷한 새벽이 태어나 대지를 회복시킨다. 우리는 고요한 걸음으로 나아간다 자연은 우리를 반긴다 해는 우리의 색깔을 구현한다 불은 우리의 눈을, 바다는 우리의 결합을.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우리를 닯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그 외의 것들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거짓이고 자신들의 무의미로 둘러싸여 있다 결국 우리는 그것들과 싸워야 한다 그것들은 비수 꽂기로 연명한다 그것들은 삐걱거리는 가구처럼 말한다 그것들의 입술은 쾌락으로 떨린다 납으로 된 종의 울리는 소리에 A la mutité d'un or noirUn seul coeur pas de coeur Un seul coeur tous les coeurs Et les corps chaque étoile Dans un ciel plein d'étoiles Dans la carrière en mouvement De la lumière et des regards Notre poids brillant sur terre Patine de la volupté A chanter des plages humaines Pour toi la vivante que j'aime Et pour tous ceux que nous aimons Qui n'ont envie que de s'aimer Je finirai bien par barrer la route Au flot des rêves imposés Je finirai bien par me retrouver Nous prendrons possession du monde 어두운 금빛 침묵에 단 하나의 심장 심장의 부재 단 하나의 심장 세상의 모든 심장들 그리고 우리의 몸��아리들 각각의 별 별로 가득한 하늘 속 빛과 시선으로 생동하는 길 위 대지 위에 빛나는 우리의 무게는 기쁨에 미끄러지며 달린다 인간의 바닷가를 노래하는 기쁨 내가 사랑하는 살아있는 이, 너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들 위하여 오로지 서로 사랑하려는 욕구만을 지닌 그들 나는 끝내 강요된 꿈이 물결치는 도로를 차단하고 말리라 나는 끝내 나 자신을 되찾고야 말리라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 되리라 ///////////////////////////////////////////////////////////////////////////////////////////////////////////////////////////////////////////////////////////////////////////////////////////////////////////////////////////////////////////// 8 - Prière pour aller au paradis avec les ânes         /             당나귀들과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                                                                                                                                                                      Francis JAMMES      /         프란시스 잠
Lorsqu'il faudra aller vers vous, ô mon Dieu, faites que ce soit par un jour où la campagne en fête poudroiera. Je désire, ainsi que je fis ici-bas, choisir un chemin pour aller, comme il me plaira, au Paradis, où sont en plein jour les étoiles. Je prendrai mon bâton et sur la grande route j'irai, et je dirai aux ânes, mes amis : Je suis Francis Jammes et je vais au Paradis, car il n'y a pas d'enfer au pays du Bon-Dieu. Je leur dirai : "Venez, doux amis du ciel bleu, pauvres bêtes chéries qui, d'un brusque mouvement d'oreille, chassez les mouches plates, les coups et les abeilles..." Que je vous apparaisse au milieu de ces bêtes que j'aime tant parce qu’elles baissent la tête doucement, et s'arrêtent en joignant leurs petits pieds d'une façon bien douce et qui vous fait pitié J'arriverai suivi de leurs milliers d'oreilles, suivi de ceux qui portèrent au flanc des corbeilles, de ceux traînant des voitures de saltimbanques ou des voitures de plumeaux et de fer-blanc, de ceux qui ont au dos des bidons bossués, des ânesses pleines comme des outres, aux pas cassés, de ceux à qui l'on met de petits pantalons à cause des plaies bleues et suintantes que font les mouches entêtées qui s'y groupent en ronds. Mon Dieu, faites qu'avec ces ânes je vous vienne. Faites que, dans la paix, des anges nous conduisent vers des ruisseaux touffus où tremblent des cerises lisses comme la chair qui rit des jeunes filles, et faites que, penché dans ce séjour des âmes, sur vos divines eaux, je sois pareil aux ânes qui mireront leur humble et douce pauvreté à la limpidité de l'amour éternel. 내가 당신의 곁으로 가는 날에는, 오 하느님, 들판이 잔치인 듯 먼지를 일으키는 날로 골라 주소서. 대낮에도 별들이 빛나는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한 그대로, 내가 좋아하는 길을 택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큰 길을 걸으며 당나귀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프랑시스 잠므, 천국으로 가는 거야, 하느님의 나라엔 지옥이 없으니까. 나는 말하렵니다: “자 가자, 푸른 하늘의 온순한 친구들아, 날쌔게 귀를 움직여, 탐욕스런 파리, 쇠파리, 꿀벌을 쫓는 가여운 사랑스런 짐승들아...” 내가 당신 앞에 이 짐승들과 함께 나타나게 하소서 내가 이처럼 당나귀를 사랑함은 당나귀들이 온순히 머리를 숙이고, 너무나 온순히 조그마한 발을 모아 걸음을 멈추고 당신으로 하여금 자비심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천 마리 나귀의 귀와 함께 가겠습니다. 옆구리에 광주리를 단 것들, 광대들의 마차를 끌던 것들, 깃털 빗자루와 양철을 실은 마차를 끌던 것들, 울퉁불퉁한 술통을 등에 실은 것들, 가죽 주머니처럼 배가 불룩한, 비틀거리는 암당나귀들, 둘러싸며 달려드는 끈질긴 파리 떼들이 만드는 파랗게 질리고 고름이 질질 흐르는 상처 때문에 사람들이 작은 바지를 입혀 준 놈들을 데리고, 하느님, 이 당나귀들과 함께 당신께 가게 하소서. 천사들의 평화 속에 우리 일행을 소녀의 웃음이 넘친 육체처럼 미끄러운 버찌가 흔들리는 풀 우거진 시냇물로 인도케 하소서. 그래서 영혼들이 머무는 곳, 당신의 성스런 물에 몸을 구부린 내가,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으로 겸허하고 온순한 가난함을 비추는 당나귀들과 나도 닮게 하소서. ///////////////////////////////////////////////////////////////////////////////////////////////////////////////////////////////////////////////////////////////////////////////////////////////////////////////////////////////////////////// 9 - Sur les vaines occupations des gens du siècle     /       세상 사람들의 헛된 염려에 대해서                                                                                                                             Jean RACINE    /     장 라신 Quel charme vainqueur du monde Vers Dieu m’élève aujourd’hui ? Malheureux l’homme qui fonde Sur les hommes son appui ! Leur gloire fuit et s’efface En moins de temps que la trace Du vaisseau qui fend les mers, Ou de la flèche rapideQui, loin de l’œil qui la guide, Cherche l’oiseau dans les airs. De la Sagesse immortelle La voix tonne et nous instruit: « Enfants des hommes, dit-elle, De vos soins quel est le fruit ? Par quelle erreur, âmes vaines, Du plus pur sang de vos veines, Achetez-vous si souvent, Non un pain qui vous repaisse, Mais une ombre qui vous laisse Plus affamés que devant ? » « Le pain que je vous propose Sert aux Anges d’aliment ; Dieu lui-même le compose De la fleur de son froment. C’est ce pain si délectable Que ne sert point à sa table Le monde que vous suivez. Je l’offre à qui me veut suivre. Approchez. Voulez-vous vivre ? Prenez, mangez, et vivez. » 얼마나 멋진 세상의 정복자가 오늘날 신을 향해 나를 고양시키는가 사람들을 의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들의 영광은 달아나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바다를 가르는 배의 흔적처럼 혹은 그를 안내하는 눈에서 멀어져 허공에서 새를 찾는 ��른 화살의 시간처럼. 불멸의 지혜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우리를 가르친다 “속세의 사람들아” 지혜는 말한다 “너희들 노력으로 어떤 결실을 얻었는가? 헛된 영혼들아, 무슨 실수를 하여 너희들 혈관에 그토록 순수한 피를 가지고도, 너희를 배부르게 하는 빵이 아니라 전보다 더 배고프게 하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그토록 자주 사는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빵은 천사들이 먹는 양식 그의 밀로 만든 밀가루로 신이 손수 만드신다. 그렇게 맛있는 빵을 당신의 식탁에 올리지 아니하신다. 너희가 따르는 세상 나를 따르는 자에게 나 그것을 주리니 가까이 오라. 살고 싶으냐? 가져가라. 먹어라. 그리고 살지어다” Ô Sagesse! ta parole Fit éclore l’univers, Posa sur un double pôle La terre au milieu des airs. Tu dis; et les cieux parurent, Et tous les astres coururent, Dans leur ordre se placer. Avant les siècles tu règnes ; Et qui suis-je, que tu daignes Jusqu’à moi te rabaisser ? Le Verbe, image du Père, Laissa son trône éternel, Et d’une mortelle mère Voulut naître homme et mortel. Comme l’orgueil fut le crime Dont il naissait la victime, Il dépouilla sa splendeur, Et vint pauvre et misérable, Apprendre à l’homme coupable Sa véritable grandeur. L’âme heureusement captive Sous ton joug trouve la paix, Et s’abreuve d’une eau vive Qui ne s’épuise jamais. Chacun peut boire en cette onde, Elle invite tout le monde ; Mais nous courons follement Chercher des sources bourbeuses, Ou des citernes trompeuses D’où l’eau fuit à tout moment. “오, 지혜시여! 당신의 말씀은 우주를 개화하게 하고, 하늘 한가운데 있었던 지구를 양극단에 놓았습니다 당신은 말합니다. 하늘이 열리면서 모든 별들이 움직였고 당신이 지배하기 수십년 전에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리했다고. 그렇다면 당신이 나에게까지 당신을 낮춰 대해주는, 그런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는 영원한 왕좌를 남겨주었고, 인간 어머니로부터 유한한 인간을 낳길 원하셨다. 자만이 범죄를 만들고 희생자를 낳듯, 인간은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버렸고, 불쌍하고 비참하게 되었으니 죄 많은 인간에게 하느님이 진정한 위대함을 알려주시리라. 자신의 속박 아래 사로잡혀 행복한 영혼은 평화를 발견한다. 하여 결코 고갈되지 않는 생명의 물로 목을 축인다. 누구나 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지혜의 신은 모두를 초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친 듯 달려 더러운 물을 마시러 간다, 아니면 항상 물이 새어 나오는 허상의 저수지를 찾는다. ///////////////////////////////////////////////////////////////////////////////////////////////////////////////////////////////////////////////////////////////////////////////////////////////////////////////////////////////////////////// 10 - Unjusa, Pluie D'Automne     /         운주사, 가을비                                                                                                     Jean-Marie Gustave Le Clézio      /        르 클레지오 Couchés sous la poussière d'eau douce les dormeurs contemplatifs aux yeux rêveurs tournés vers le ciel On raconte qu'ils étaient trois et que l'un d'eux s'est levé a marché jusqu'au bord de la falaise; les deux Bouddha ont leur dos encore soudés à la pierre un jour ils se léveront à leur tour et naîtra le monde nouveau. Dans les rues de Séoul les jeunes gens, les filles bousculent le temps arrachent des secondes. Acheter vendre créer inventer chercher. Qui pense encore aux deux Bouddha rêveurs sur la montagne à Unjusa Pilier des nuages debout au milieu des feuilles rouges de l'automne? Chercher courir saisir emporter Les Bouddha de pierre aux visages des Loas aux visions des esprits des chamans rêvent-ils parfois dans leur insomnie, aux grands magasins du marché Dongdae Mun aux lettres de néon aussi nombreuses que les branches de la forêt? 부드럽게 흩날리는 물 먼지 아래 꿈꾸는 눈으로 하늘을 관조하며 누워 잠든 분들. 전해 오는 말로는, 애초에 세 분이셨으나 한 분께옵서 홀연 일어나 절벽 끝으로 가셨다지. 부처 두 분만이 이제껏 돌에 등을 붙이고 누워 계신다네 언젠가 그분들도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고. 서울 거리에선 청춘남녀들 시간을 떼밀고 촌각을 잡아챈다. 사고팔고 만들고 발명하고 찾아 헤매다 가을단풍 한 가운데 서 있는 운주사 구름 기둥 산 위에서 꿈꾸시는 두 분 부처일랑 생각이나 할까? 찾아 헤매고 달리고 움켜쥐고 쓸어가다. 로아(Loas)의 모습을 하신 신당의 혼령들을 닮은 돌부처들은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무수한 네온 간판들 동대문 시장의 거대한 상점들 꿈을 꾸실까? A l'autre bout du monde à l'autre bout de la mer un pays fracassé un pays aveuglé griffé par la peur Acheter vendre voir deviner zigzaguer la nuit quand Séoul s'illumine comme un navire Et les matins sont si calmes doux à Insadong à Gwangju rue des Artistes les balayeurs ramassent les cartons dans un café encore ouvert deux amoureux se tiennent par la main. Vivre, agir goûter laisser glisser les sens l'odeur des fritures de vers à soie le kimchi la soupe aux nouilles les algues les fougères les fils poivrés des méduses cette terre jaillie des profondeurs de la mer au goût d'éther Vouloir rêver vivre écrire 세상의 저 끝 바다의 저 끝 부서진 나라 두려움에 할퀴어 눈이 멀어버린 나라 사고팔고 구경하고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니다. 서울이 배처럼 불 켜질 때 그리고 그토록 고요하고 달콤한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환경미화원들은 거리에 널린 버려진 박스들을 주워 모으고 이제껏 문 열어 놓은 카페의 두 연인은 손을 잡고 있다. 살고 행동하고 맛보고 오감이 스며들게 내버려두다 번데기 볶는 냄새 김치 국수 미역 고사리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바다 깊은 곳에서 솟아난 이 땅에선 창공의 맛이 난다. 바라고 꿈꾸고 살고 글을 쓰다 A l'autre extrémité du monde au bout du désert les bombes à fragmentation à phosphore éclairent la nuit qui vient de commencer. Désirer déraper dépasser les lettres s'allument comme les branches brisées de la forêt ici je pense au vent qui tord au vent qui couche les enfants gris dans la mort sur l'âcre cercueil du désert Attendre rire espérer aimer aimer au jardin du palais de Séoul les enfants sont ronds comme des dieux leurs yeux ont été peints à la pointe des pinceaux Attendre vieillir pleuvoir sous la pluie qui tombe doucement à Unjusa glisse sur les feuilles rouges de l'automne joint ses doigts en longs bras vers la mer retour vers les profondeurs natales. Les visages des deux Bouddha couchés sont usés par cette pluie leurs yeux voient le ciel chaque siècle qui passe est un nuage qui passe ils rêvent d'un autre temps d'un autre lieu ils dorment leurs yeux ouverts le monde a commencé à trembler. 사막의 끝 세상의 저쪽 끝에서 번쩍 하고 터진 조명탄이 갓 시작한 밤을 밝힌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르다 숲속 부러진 가지들처럼 간판 글자들이 켜지고 이곳에서 나는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사막의 매서운 관 위로 죽음 속에 잿빛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을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품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 고궁의 정원 아이들이 신들처럼 포동포동하다 아이들 눈은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늙고 비가 오다 운주사에 고요히 내리는 비 속 가을 단풍잎 위로 미끄러져 긴 팔과 손가락을 뻗어 바다로 합치고 고향인 심연으로 되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기고 눈은 하늘을 본다. 한 세기가 지나가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가는 것. 부처들은 또 다른 시간과 또 다른 공간을 꿈꾼다. 부처들은 눈을 뜨고 잔다. 세상이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0 notes
egameland12 · 6 years ago
Text
어깨가 숨도 제대로 못 쉬게
어깨가 우리카지노숨도 제대로 못 쉬게 나를 옥죄었다.정화가 즐겨 듣던 카세트 테이프 생각이 났다.이 홀의 분위기가 우선 비릿하고 답답해서 견딜 수그는 마치 자기 아내에게 명령하는 듯한 무식한있는 민훈을 보고 위로의 말을 했다.그가 M보다 훨씬 뒤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런왜 이래요. 술 취했어요?받기도 했다.그래서, 흥분한 여자를 어떻게 했어요?뭐 하시는 거예요? 여긴 신성우리카지노한 병원이란 말예요.쪽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을 웅크렸다.갔다.어머니에게 혼나. 정신 차려.놀랄 것 없어. 장안평 가서 2백만 원만 주면 쓸청바지를 두고 이상한 공방전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용모에 수수한 성격이면 여자로서는 중상에 속합니다.자살이라구요? 아니 정화가 자살을 했단민훈의 집 앞까지 왔다.그러나 민훈은 정화보다는 나를 좋아했다. 성격이우리카지노일기가 거의 그렇듯이 정화의 것도 내가 알지그 허정화에 관한 얘긴데 말이야나도 지지 않으려고 목청을 돋구었다.처녀라는 것을 내가 증명할 거야.빠뜨렸나요?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같은 기운은 마치 깊은 산 속을 둘러싸고 있는퀸카 둘을 한꺼번에 잡다니. 야, 신난다. 야호!생깁니다. 후후후.상황이 적혀 있었다. 허정화의 죽음에 관한 수사기록내가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들었다.함락되려는 거야?무슨 힘이 그렇게 세어요. 갈비뼈 다민훈은 내 팔을 잡으며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나를 허정화처럼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갔다.하던 장을자라고 합니다.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겠죠?녀석이 허정화를 건드려 놓고 책임질 수 없으니까앉으세요. 아직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많이 타고 다녔다. 나는 운전솜씨도 서툴 뿐 아니라그랬는지을자있었다.민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으나 그 말이 귀에 몹시흠! 제법 쓸 만하군!형이하학적으로는 만점이야, 만점.나는 더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여보세요.내 눈에 익은 정화의 보라색 가방이었다. 어떻게 보면배 이사는 다시 맥주를 거품이 넘치도록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그거 좀 보여줄 수 없습니까?목격했지만민훈이 벌떡 일어서서 나란히 섰다. 나는 노래란보여서는 안 된다는 여자의 본능 같은 것이사람씩 헤어졌다가 5시에 이 매운탕집 앞 우리나는 그때 일을 잊지 않았다는 듯 쏘아붙였다.여름 점퍼가 하나 걸려 있었다.나는 속마음과는 다른 내 표정이 못마땅했다. 대강민훈은 자기집 앞을 그냥 지나치면서 말했다. 우리찍어 놓고 자살을 했단 말입니까? 어디 그 유서 좀 볼우리는 호반에 있는 잔디에 앉았다.나는 피식 웃었다.나는 다시 그의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나직히서울서 춘천까지 1시간 50분이면 갈 수 있어. 춘천 못허정화예요. 어제부터 희숙이와 공부하고 있어요.나는 갑자기 커다란 의혹이 바위가 되어 나를어이 미스 박!했다. 그러나 정화는 남자와 단둘이 밀폐된 방에정화, 그리고 조윤호와 민훈이 짝이 되어 나가는 줄미안합니다. 몇 가지만 더 말씀해 주십사따지고 보면 남의 집에 주인 몰래 들어 왔으니 죄는무엇이었나요?나는 민훈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것을 느겼어. 그때 우리는 몰랐지만, 두 사람의경감님도 배 사장을요?머리가 노총각 티를 일부러 낸 것같이 보였다.그러나 내가 이렇게 변해가도 괜찮은지 모르겠다는어머니가 손수 들고 온 음료수를 고맙게 받아 마신 뒤그의 떨리는 손끝에 마지막 속옷이 벗겨진 뒤 나는다가앉았다.모서리에 있는 때묻은 철제 의자를 가리켰다.가져오게 하고 스테이크류의 안주 한 접시를 시켰다.그럼 왜 그래요? 내가 뭐 강 형사님과 결혼이라도나도 그건 알아요.다음 조철구 변호사? 죽일 이유가 얼른 떠오르지훈의 손끝에 의해 나의 자존심은 여지없이7. 질투을자 언니 하면서 전화하는 것을 내 이 귀로 똑똑히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꼭 허정화를 죽인 범인의민훈 앞에 누워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술이 취해서눈동자가 고정된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의그런데, 서로 좋아하긴 했지만 길이 서로수 있어.쓰러뜨렸다.흘깃흘깃 보았다. 나는 민훈 보기가 민망스러워 얼른억울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한참 울다가 문득자 지성인답게, 세련되게내가 멈추어 서며 물었다. 그녀는 빙긋 웃고는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
0 notes
nutcracker-stuff-blog · 6 years ago
Text
277 자주 헷갈리고 틀리는 맞춤법.
277 자주 헷갈리고 틀리는 맞춤법.
br>
1.봬요’는 ‘뵈다’에 해할 자리에 쓰여, 어떤 사실을 서술하거나 물음ㆍ명령ㆍ청유를 나타내는 종결 어미 ‘-어’가 결합하여 ‘뵈어/봬’가 됩니다. 그리고 ‘뵈어/봬’에 청자에게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요’가 결합하여 ‘뵈어요/봬요’가 됩니다. 따라서 ‘뵈요’가 아닌 ‘뵈어요/봬요’가 바른 표현입니다.
br>
2.정도나 형편이 표준에 가깝거나 그보다 약간 낫다., 허용되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라는 뜻의 형용사는 \'웬만하다\'입니다. 따라서 \'웬만하면\'과 같이 쓰는 것이 맞습니다. \'왠만하다\'는 잘못된 표기입니다.
br>
3.제시하신 표현은 \'어디에다\'가 줄어든 말이 쓰인 것이므로, \'얻다\'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얻다\'와 \'어따\'가 각각 아래와 같이 등재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얻다02‘어디에다’가 줄어든 말. ¶ 나는 할머니가 돈을 얻다 감춰 두나를 알고 있었다.≪박완서, 도시의 흉년≫/얼굴만은 얻다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오유권, 대지의 학대≫어따「감탄사」무엇이 몹시 심하거나 하여 못마땅해서 빈정거릴 때 내는 소리.¶ 어따, 잔소리 좀 그만해./어따, 영감님도. 시골 부자가 요새는 더 속이 실합니다.≪한수산, 유민≫
br>
4.희한하다\'가 옳은 표기입니다. 이 말은 \'매우 드물거나 신기하다\'를 뜻합니다(처음 본 희한한 물건/희한한 소문이 나돌다). \'희안하다\'는 사전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br>
5.\'금세\'는 \'금시(今時)+에\'가 줄어든 말이므로 \'금세\'로 적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새\'에 이끌려 \'금새\'라고 적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br>
6.오래간만\'의 준말은 \'오랜만\'입니다. \'웅보는 오랜만에 고향 사람을 만나자 너무 반가웠다.≪문순태, 타오르는 강≫/어제저녁 오랜만에 만난 젊은 축들은 문길이 사랑방에 모여 늦게까지 놀다 같이 잤다.≪송기숙, 자랏골의 비가≫\'와 같이 씁니다. 질의하신 부분은 \'오랜만에\'와 같이 쓰는 것이 맞습니다.
br>
7.앞에서 유성음으로 끝났으니 <서슴치 않다>는 옳게 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서슴지 않다>라고 써야 옳다. 기본형이 <서슴하다>가 아니라 <서슴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슴다는 위에서 설명한 ‘-하지’의 줄여 쓰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서슴다, 서슴고, 서슴지 등으로 활용한다.
br>
8.어떻게’, ‘어떡해’는 맞춤법에 맞습니다. 그러나 ‘어떻해’는 잘못된 형태입니다.
\'어떻게\'는 \'어떻다\'의 부사형이고,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말로서 그 의미와 쓰임이 다릅니다. (예1)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예2) 이 일을 어떡해.(=어떻게 해.) ‘어떻게’를 ‘어떻해’로 잘못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맞춤법에 어긋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br>
9. ‘단언하-’ 뒤에 어미 ‘-건대’가 붙은 ‘단언하건대’의 준말이므로, ‘단언컨대’로 씁니다.
<참고>
-건대
「어미」
((일부 동사의 어간 뒤에 붙어))
뒤 절의 내용이 화자가 보거나 듣거나 바라거나 생각하는 따위의 내용임을 미리 밝히는 연결 어미.
¶ 내가 보건대 철수는 장차 크게 될 아이이다./제발 바라건대 정신 좀 차려라./듣건대 당국이 이 문제의 해결을 서두른다 하니 일단 안심이 된다.
br>
10.제시하신 대로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의미하는 낱말은 ‘구레나룻’으로 표기하고 [구레나룯]으로 발음합니다.
아울러, 제시하신 [구렌나루]는 ‘구렛나루’의 발음인데, ‘구렛나루’는 ‘구레나룻’의 잘못된 표기라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무료바카라게임
마카오카지노사이트
바카라규칙
하나바카라사이트
인터넷카지노추천
온라인카지노사이트추천
슬롯사이트
생중계카지노추천
안전한놀이터
무료충전바카라게임
xo바카라사이트
바카라규칙
사이트카지노
베트남카지노
블랙잭카지노
카지노사이트
카지노게임
코인카지노
블랙잭싸이트
호텔카지노영상
슬롯머신하는법
카지노투데이
블랙잭
맥스바카라사이트
호텔카지노검증
우리바카라사이트
코인바카라사이트
맥스카지노추천
맥스바카라사이트
바카라
바카라확률
0 notes
piaoyongfu · 6 years ago
Video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정 신 건 강 - 정신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 다른 사람들과 폭넓은 만남에서 얻는 자극, 정신 활동의 결과물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통로이다 영혼의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꿈과 사랑과 창조력을 표현하고 이를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기회이다 - 스코트 니어링의《희망》중에서 - 정신 건강도 '몸의 건강'에서 비롯됩니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영혼도 함께 무너지기 쉽습니다 좋은 물과 공기, 소박한 음식, 적당한 휴식과 운동 일에 대한 열정과 활력, 기쁨과 감사의 태도가 몸의 건강은 물론 정신과 영혼도 건강하게 해 줍니다 ------ 주말을 맞아 편안히 쉬시면서 내가 살아온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면서 내가 찾는 길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는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보시고 행복하다 말할수 있는 울님들이시길 바라며 또한 행복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https://www.instagram.com/p/BvUvT-UHV9a/?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cv8teye12oi7
0 notes
megakidsclub · 6 years ago
Video
youtube
초간단 스트레칭으로 건강 되찾을 수 있는 비법 담긴 책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 쌤앤파커스[인사이트] 김소영 기자 = 간단한 스트레칭만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비법을 담은 실용서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가 출간됐다.'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는 36가지의 목풀이 운동법과 20여 가지의 혈자리 지압법을 통해 자가진단과 셀프케어를 할 수 있게 도와준다.특히 목뼈를 바로잡아 뇌를 깨우는 치료법을 통해 몸과 정신 모두를 건강하게 해주는 방법을 소개한다.총 3부로 구성된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는 건강에 적신호를 주는 요소들이 목에 있다는 사실을 토로하고 그 해결방안까지 ... ▶유튜브 구독하기: https://goo.gl/JQ1f1j 보고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 #간 #단 #스 #트 #레 #칭 #으 #로 #건 #강 #되 #찾 #을 #수 #있 #는 #비 #법 #담 #긴 #책 #‘ #아 #픈 #사 #람 #의 #9 #9 #% #는 #목 #이 #뭉 #쳐 #있 #다
0 notes
lemon2sang · 7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사진 출처 : http://m.jejumaeil.net/news/articleView.html?idxno=181490 ) <1권> 도청 건물 위에서 성조기가 기세 좋게 펄럭이고 있었다. 남승지는 성조기를 얼핏 보았을 뿐인데도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왜 미국 국기가 저곳에 있지? 성조기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문득 남승지의 마음 속에 떠오른 비현실적인 감각과 겹치면서 환영으로 바뀌려 했다. 눈 앞의 사실이 감각 속에서 환영으로 바뀌어 간다. 그의 뇌리에는 좀전에 각인된 광경 속의 성조기가 사라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성조기가 정말로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남승지는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의식은 돌아보았다. 분명히 깃발이 있었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 국기가 아닌 미국 국기에 틀림없단 말인가? 깃발을 잘못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본 듯한 위화감을 느꼈다.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조국의 남단 제주도에까지 이국의 깃대가 우뚝 서 있는 광경은 한순간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여기에 미국 국기가 있다고? 이건 착각이 아닐까? 이런 당혹감에 현실을 수긍하기 어려웠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식민지배로부터 갓 독립한 조국이니까 돌아왔다는 단순한 대답 말고는 없다. 이것이 대의명분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일본에 있건 어디에 있건 상관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질문은 나오게 마련이다. 국문과로 옮긴 그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실질적인 흥분을 내면에 감추고 있었다. 그러한 계기가 된 것은 그가 국문과의 유일한 재일조선인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국문(국문)'이라는 말에 위화감과 함께 얼마나 신선한 감동을 느꼈는지 몰랐다. 지금까지는 '국문학'이라면 '일본문학'을 '국사'라면 '일본 역사'를, '국어'라면 '일본어'를 의미했다. '조선의 역사'가 조선인에게 '국사'가 되지 못하고, '조선의 문학'이 조선인에게 '국문학'이 되지 못했다. 일제 말기에는 조선어 자체가 말살되었으므로 조선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었다. '국어(일본어)'로 쓰인 '국책' 수행을 위한 '국민문학'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젠 당당히 '국문'이나 '국문학'을 입에 올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얼마나 민족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해방시켜 주는 일이며 긍지를 느끼게 하는 변화였던가. 그러나 '국문학'이라고 하면 여전히 일본 문학이나 일본의 고전을 의미하던 시절의 '국문'의 인상을 떨쳐 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일종의 주술처럼 따라다녔다. '(국문)'이 아니라 '국문', '국문'... 남승지는 '(국문)'과 같은 한자가 아닌 '국문'과 같이 의도적으로 한글을 쓰면서 과거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그 말이 주는 신선한 위화감을 음미하고 즐기는 여유를 부렸다. 아득한 느낌. 왠지 아득한 느낌이 밀려온다... 뒤돌아보니 불빛이 보이는 2층 창문이 밤의 어둠 속에 떠올라 아득한 느낌을 준다. 격동하는 서울 거리의 거대한 숨소리, 여기가 해방된 조국의 땅이라는 관념만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현실의 생활 법칙, 돈.... 해방된 조국에 대한 환상 따위는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독립된 조국에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굶어 죽기 십싱인 곳, 얼어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곳.... 학우회 회원은 모두 이 땅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에서 이 혼란한 서울로 돌아온 사람은 남승지가 아는 한 아무도 없었다. 왠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자폐 증상이 나타난 후 남승지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어쨌든...'이라는 말투를 쓰게 되었다. 그 자신은 거의 의식하지 못했지만, 문득 ;어쨌든...'이라는 중얼거림의 흔적을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로서는 수동적이나마 현실을 긍정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생겨난 말투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잠정적으로 유보의 조건을 시사하는 듯한, 혹은 뭔가에 불만을 지닌 듯한 인상을 주기 십상이었다. 그런 말투는 사람들에게 묘한 위화감을 주게 된다. 어쨌든.... 어쨌든...., 어쨌든이 뭐야. 자네가 하는 말은 무슨 뜻인지 통 모르겠군. 모든 것이 어쨌든이면, 결론도 어쨌든이란 말인가.... 그를 끌어들여 움직이는 현실은 '어쨌든...'이라는 말버릇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긍정에 이르는 사고의 편린이 내포된 말투였지만, 남이 볼 때에는 일종의 관념의 공전 현상에 불과했다. 타인과 교제하는 '고통'이라는 것도 어차피 같은 현상에 불과했다.... 이유 없는 불면증(이것은 인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년기의 영광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자신은 보름이건 한 달이건 목욕도 하지 않는 주제에, 전차의 손잠이 같은 것을 잡은 뒤엔 그 손이 신경 쓰여 견디질 못하고 바로 손을 씻어야 하는 병적인 신경질. 하숙집 근처 네거리에 있는 우체통 앞을 지날 때면, 베레모처럼 생긴 우체통 머리를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다. 대체로 먼지가 묻어 있어 손이 더러워지는데도 그때만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깜박 잊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 때는 다시 돌어가서 우체통 머리를 쓰다듬는 뒤에야 가던 길을 갈 수가 있었다..... 이런 버릇도 현실이라는 톱니바퀴에 감겨들어 부숴버려야 한다.... 그러나 남승지는 이따금 자기 육체의 일부가 부서져 나가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도 잘 견뎌 냈다. 그것은 또한 조국의 현실과 재일조선인인 자신과의 거리를 메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래가 아니야.... 돈이 곧 힘이지." <2권> 그들은 사람들의 민족적인 감정에 편승하여, '신탁통치'를 우파의 세력 확장과 반공 투쟁에 이용하려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것이다. 게다가 좌익 등 신탁통치 지지 세력을 민족반역자, 매국노로 단정한 우익이, 하필이면 반탁운동에 편승하여 크게 대두한 과거의 '친일파', '민족반역자', '매국노'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과거에 조국을 팔아넘긴 자들이 갑자기 '애국세력'으로 등장하여 본말이 전도된 기묘한 현상이 해방 조선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반공'은 일제를 피하고, 역으로 반대세력을 억압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바다, 망망한 밝은 바다. 바다는 밝아야 한다. 한낮의 바닷가 언덕 위에 누워서 자신의 몸을 끌어당길 듯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 한둘쯤 바다에 떨어져 죽어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질 때가 있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전 대륙의 사람이 남김없이 바다에 빠져 죽어도 바다는 여전히 망망할 것이었다. 그 바다를 밤의 색채가 뒤덮고, 또한 달과 별이 빛난다. 바다야말로 영원히 움직이는 것이다. 난 말야, 해방이 되고 나서도(그것이 이름뿐인 것이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과거 지배국이었던 패전국 일본으로 밀항해 가는 게 견딜 수가 없어. 더구나 독립한 조국에 일단 돌아왔던 사람들까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고 있잖아. 그게 맘에 안 들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단 말이야. 여동생이 일본에 간다...., 일본에, 일본에 말이다. 이방근은 악몽으로 가득 찬 상자의 뚜껑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밀항했다는 소문은 성내에서도 거의 매일처럼 끊이지 않았지만, 설마 바로 발밑에서 그 소리가 들려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방근에게도 학창 시절의 청춘을 두고 온 일본이 그립지 않을리 없었다. 그것이 설사 '왜정'의 지배 아래였다고 하더라도, 일과성인 인간의 존재-생활이 그 시대를 제외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괴로움과 슬픔만이 아니라, 소년시대의 생활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혼재한 기억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육체와 의식의 구석에까지 침투해 있는 과거의 '일본'. 아니,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치 폐 속 결핵균처럼 살아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어가 그랬다. 이따금 독서할 때 말고는 사용하지도 않고 또 쓸 기회도 없는 일본어가 지금도 튀어나오려할 때가 있다. 일본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내부에 남아 있는 일본어가 역겨웠다. 마치 우리 땅을 점령한 일본 그 자체인 것처럼 역겨웠다. 우리 민족에게 그처럼 역겨운 외국어는 달리 없을 것이었다. 강간이라도 당한 것처럼 깊이 새겨진 '일본'이라는 각인이, 악몽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즐겁지 않고 그립지 않을리 없지만, 그것이 '황국신민'이어야만 했던 일제감정기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악몽의 층에 가로막힌다. 일본, 그러한 일본에 간다고 한다. 과거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신적인 일본은 아니라 해도, 과거의 지배자였던 그 일본에 간다고 한다, 여동생까지 그런 말을 한다. 이방근은 발밑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바람으로 수런거리는 대나무 숲 속에(눈에 대나무 숲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리로 그렇게 생각하였다) 도깨비불 같은 불빛이 한순간 흔들리다 사라졌다.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 전면에 나타난 불빛은 도깨비불이 아니었다. 대나무 숲 건너편에 있는 오름에서 피어오르는 봉화였다. 틀림없이 봉화였다. 그것이 대나무숲에 가려 보였다 안 보였다 하기를 반복하여 도깨비불처럼 빛나고 있었다. (...) 따라서 오름에 오르는 봉화는 데모였다. 그것은 '2.7투쟁'과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분할을 실시하려는 유엔 조선위원회에 반대하는 데모,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데모, 미소 양군의 동시철수와 조선통일민주정부 수립을 조선 인민에게 맡기라는 데모, 노동자와 농민, 주민의 생활권을 요구하는 데모, 그리고 그 밖의 데모였다. 투쟁의 주역은 말할 것도 없이 청년들이었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힘은 가족이었다. 가족이라기보다는 대가족주의, 씨족제 사회였으므로 일족(일가 또는 문중)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이러한 가족이 이곳 섬사람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친척이나 인척 관계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넓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섬 주민들의 의사는 혈연적인 요소로 인해 자식들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는 풍토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투쟁의 잰걸음 속에서도 섬을 떠나려는 움직임 또한 이어졌다. 남승지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다고 해서 이제까지 보아 온 것들의 형체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온몸이 어둠 속에 녹아내린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꺼풀이 무겁고 위아래 속눈썹이 닿는 촉감만이 자신의 얼굴과 그 중심부의 위치를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눈을 뜨자 밝았다. 남승지는 두 눈을 적시는 빛 속에서 여기는 어딜까 하고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아, 내 정신 좀 봐, 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제주도도 아니고, 배 위도 아닌, 어머니의 집이다, 일본이란 말이야, 안심해도 된다. 여기는 틀림없는 일본이란 말이다. 일본... 원가 안심되는 듯한, 그러면서 어디 배 위에서라도 자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 속엣 잠을 깨었다. "자기 집안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세상의 혁명을 이룰 수 있겠냐?" 음, 도대체 어머니와 말순이에게 이 일본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에게도.... 내가 자신의 의지로 섬을 나온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지시로 온 이상, 여기는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에 불과하다. 본래는 어머니나 여동생에게도 그러한 땅이어야 했다.... "일본에서는 상상하기가 어렵겠지만, 게릴라 투쟁은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단계까지, 인민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단계까지 몰리고 있다는 사정, 그러한 상황에 있습니다." <3권> 이방근, 그 어린애 같은 눈빛, 남에게 독을 주입할 수 있는 송곳니를 가진 눈빛. 이방근이 혁명 쪽에 가담하지 않는 것은(아니, 그는 혁명을 매도하기까지 한다) 문제라 말하면서도, 그에 비해 나는 얼마나 어린애 같은가, 진정으로 혁명의 편에 선다는 건 무엇일까, 혁명 앞에서는 가족이고 뭐고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무(무)일 것이다. 이방근의 내면에 품고 있는 독, 어린애 같은 순수함 속에 감춰진 독을 갖고 싶다. 도쿄 역과 전철 안에서 최근 유행하는 듯한 롱스커트로 짧은 다리를 덮은 여자들을 보았지만, 과연 평화로운 일본이었다. 세상도 그리고 당도. 점령하의 평화혁명...., 이 얼마나 조국과는 동떨어진 현실인가. 새삼스럽게 남한의 냉엄한 현실이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아 몸이 떨렸다. 그것은 동시에 이유원을 머나먼 고국 땅에서 이 도쿄 한 모퉁이에 일직선으로 곧장 끌어당겼던 것이다. 인간의 정념을 어두운 곳에서 흔들듯이 단속적으로 두드리는, 이른바 빗방울을 연살시키는 무거운 피아노 소리에, 남승지는 문득 이유원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좀 더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까?" "비판? 핫하, 무슨 비판, 바보 같은 소린 하는 게 아냐, 그건 우리의 목적이 아니야. 이러쿵저러쿵 논란을 벌여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논문이라도 쓸 건가, 난 그런 데는 소질 없어. 논문은커녕 싸움이 날거야. 싸움이 나면 모금이 문제가 아니지, 우린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다가 아니라는 거지. 문제는 조국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이야."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이야기에는 진절머리가 납니다. 강 선생님. 조선인과의 교제를 끊는 것은 그게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설교자라서..., 음, 불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민족의 손실 운운하는 말은 지금까지 그들이 나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해 온 말입니다. 결국은 민족에 손실을 주었다는 뜻이 되니 말입니다. 그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이냐, 민족의 기대를 저버린 그 책임을.... 나는 어느새 민족의 기대를 짊어진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겁니다. 나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초민족주의라 할 수 있는 겁니다... 조선인의 그 차별의식이라는 거, 나는 처음 겪어 봤습니다만, 일본인 이상입니다. 일본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기와 증오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이 동무를 믿고 있다는 걸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자네에게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고도 말했어. 정말 그렇다네. 버스는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움직이고 있단 말일세. 게다가 이건 비단 이방근 개인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즉, 다시 말하자면, 지금 격동하는 이 시대가 자네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이네. 시대의 요청인 셈이지. 시대라는 버스에 자네를 태우지 않으면 안 되네. 우리와 함께 말일세." 이방근은 지금 눈앞의 유달현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아니, 유달현이 아니었다. 이 남자의 배후에 있는 '조직', 그리고 '인민대중', 군중의 그림자가, 발자국 소리, 땅울림이 묵직하게 압박해 왔다. 도중의 마을에서 스쳐 지나간 가난한 소년의 적의를 품은 듯한 눈빛. 조금 전에 도망치던 아이의 뒷모습. 음, 무장봉기, 그렇지, 주민들이 무기를 손에 들고 봉기한다면, 이 아이들도 아버지나 형을 따라 하겠지. 가난한 자들의 봉기.... 혁명. 이방근은 가슴이 덜컹하며 쇠똥 줍던 소년의 눈빛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때 덜컹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심장의 삐걱거림을 들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년들이 봉기군에 가담한다. 나는 뭔가 직감적으로 그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까맣고 더러운 얼굴의 소년을 두려워한 게 틀림없었다. "승지 군은 너무 비장해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교조가 혁명을 승리로 이끈다면 할 말이 없지만. 혁명은 일종의 종교인데다, 우리 조선 민중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아니 예로부터의 압정 때문에 혁명적이야. 조직이라면 무조건 지지하지. 특히 제주도의 인간들은 그래. 섬 주민의 90퍼센트, 섬 주민의 대부분이 좌익을 지지한다는 건, 반드시 공산주의자들의 선전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어, 나도 인정하네. 민중에 있어 활동가는 곧 애국자이고, 혁명가인 셈이야. 그건 좋은 현상일세. 훌륭한 민족이지. 강몽구 씨한테 들었네만, 재일동포가 자금 모금에 응하는 토양 역시 그런 셈이지. 재일동포의 경우는 해외에 있기 때문에 더욱 애국적일 수도 있겠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무서운 일이라네. 이것은 일종의 교조야. 민중 자신의 의식에 뿌리내린 교조라네. 이게 굳어져 버리면 개조하는 데에는 몃십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지.... 알겠나. 유교의 교리가 문맹인 민중의 의식을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그 위에 다시 혁명이라는 테두리는 씌우는 거라네. 혁명, 음, 혁명하는 자는 절대적인 정의의 구현자라는 것인데. 그 절대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야. 그 교조는 커다란 밧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걸로 대중을 한데 묶으면 어떨 땐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 애당초 정치라든가 혁명이 대중을 선동하여 조직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게, 우익이고 좌익이고 할 것 없이 조직론의 ABC일 거야. 이승만이 우리 민족의 감정을 교묘히 사로잡아, '신탁통치' 반대라는 트럭으로 대중운동을 일으켜 성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거라네. 즉 사고의 정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로지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네. 우물쭈물 생각만 하다가는 혁명의 에너지는 폭발하지 않아. 예전에 서울에서 어떤 공산당 간부가 나한테 말한 적이 있는데, 대중이 혁명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가난하고 굶주려야 한다고 하더군. 오랜동안 민중의 가슴 깊숙이 축적된 슬픔과 한의 감정. 억눌릴 대로 억눌린 노예의 상태로 몰려 있어야만 혁명의 폭발력이 강해진다는 거야. 불을 붙이기만 해도 폭발한다는 거겠지. 이건 간단한 운동의 혁학이지만, 민중이 굶주리고 있는데, 간부는 좋은 음식을 먹으며 결코 굶주리지 않고 있다면 어떤가. 민중은 혁명의 도구가 될 뿐이지..." "승지 동무, 자넨 그렇게 되지 말게. 그렇게 되는 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기는 하겠지. 자넨 그렇게 되지 말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면, 사상이 없어진다네. 놀리려는 게 아니라, 자네 말은 명언이야. 괴로워하지 않으면 인생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지 않는가. 자네는 사상가야. 생각하는 인간이지. 괴로워할 필요도 없는데 괴로워하는, 정말로 바보 같은 일이지만, 이게 또한 인간일세. 동무의 기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비장해지지 말게네." 분명히 혁명이 필요하지 않는 자가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4권> 북에 대한 그들의 철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만족 시킬 수 있는 '대체'로서의 제주도가 있었다. 그것은 '서북'에 있어서 '제2의 모스크바, 제주도에 진격해 온 멸공대'로서의 '사명감'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게다가 섬 전체 8백여 명이 배치되어 있다는, 사나운 흉한이라고 불러야 할 그들 대부분이 일부 간부를 제외하고는 문맹이었다 취조할 떄에도, 사람의 성인 김(金)이나 이(李), 박(朴)이라는 문자도 쓰지 못했다. 겨우 1, 2, 3, 4...라는 숫자를 대용한다. '이(李)' 대신 '이(二)', '오(吳)' 대신 '오(五)', 그리고 '공(孔)'이라면 '공(0)'이라고 쓰는 식이다. 이러한 그들의 멸공애국을 외치며 경찰과 함께 반공전선의 최전방에 선다. 따라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보통의 읍내나 마을의 무고한 사람을 연행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는, 너 빨갱이 편이지, 알고 있는 비밀을 자백해, 남로당 조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몽땅 자백해, 모르는 일이라도 어쨌든 자백하라는 식으로 추궁한다. 만약 자백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빨갱이'라고 할때까지 때린다. 만약 이미 '빨갱이'라면 더 이상 '빨갱이'가 아닐 때까지 때린다. 뭔가 말장난을 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꾸며낸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희생자가 나와도 '빨갱이'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이성(理性)은 어떻게 대처마녀 좋단 말인가. "그런데 제3자인 구경꾼 같은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그 싸움의 승산은 있을까요?" (...) "---" 강몽구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는 듯이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동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할 바보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뭐랄까, 왜 우리가, 이 섬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지 동무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우리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이 제주도 민중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달리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이방근 선생의 의견을 듣고 싶네. 물론 우리는 조선 혁명을 하는 걸세. 일제의 속박에서 해방된 독립 조선을 혁명하는 것이네. 우린 아직 진정한 해방도 독립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같은 혁명이라ㅎ 해도, 제주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네. 최초의 인민유격전, 남한에서 최초의 무장봉기를 하는 것이지. 그대로 무기를 들고 전선에 나간다는 것이고, 그리고 서로 죽이는 거니까. 싸움에 진다는 건 이쪽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네. 안그런가. 아니, 지금 이대로라면 섬사람들은 '서북' 밑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으니까, 결국 우리가 '서북' 놈들에게 죽임을 당하겠지. 파업이나 데모 같은 걸로 뭘 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 지금은 파업도 데모도 할 수가 없네. 안 그런가. 어찌하면 좋겠는가. '서북'이나 경찰 놈들 밑에서 죽으면 그만인가. 이방근 동무의 의견을 꼭 듣고 싶구만." "....." (...) 지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지만, 과연 승산이 있는가. 이방근으로서는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서북'만이라면 문제는 없었다. '서북' 뒤에 있는 경찰, 군대, 미국.... 게다가 여기는 섬이었다. 모르겠다. 그러나 봉기를 할 바에는 승산이 있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방근은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일전에 남승지와 산천단에서 우연히 만나 돌아오는 길에, 그의 조금 고집스럽다고 느껴지던 교조적인 발언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회의(懷疑)는 의식의 산물이지, 행동의 산물은 아니다. 남승지는 이미 움직이고 있는 행동 속으로 즉 '실천' 속으로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거기에 회의의여지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 역시 그들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훈련 현장에는 반 시간도 머물지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한 달 전에 서재 소파에서 유달현에게 처음 들었던 '무장봉기'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뒷받침된 것이었다. 그때의 충격이 관념적인 것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충격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되지 못했다. 눈앞에 우뚝 치솟는 한라산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오름, 그리고 고원의 기복처럼, 거기에 있는 이방근의 생각 밖에 있는 현실이었다. 이 돌처럼 분명한 사실. 이방근은 관념이 아닌 육체가 그 힘에 꽉 옥죄이는 것만 같았다. 짚단이나 대나무 신호. 너무 소박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것이 민중의 지혜가 아닐까. 이 소박함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그 뒤에는 민중의 번뜩이는 수많은 눈이 있어서, 그것이 힘이고 무서운 것이다. 이방근은 고원 공기의 압박감이 몸에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방근을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에 대한 비판은 실천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방근은 입으로만 '혁명'을 외칠 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자들이 그것을 절대적인 교조인 양 다른 일체를 부정한다면, 자신은 단언 '반혁명'으로 돌아서겠다고 반어적인 표현으로 말했었다. '반혁명', '반동'.... 때로는 소름을 돋게 하고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이 말이 지닌 주박(呪縛)의 힘은 무엇일까. 요즘에는 적들이 '좌익극렬분자', '반동'이라며, 좌익세력을 반동이라 부르고, 중앙지에서도 주먹만 한 표제로 내걸고 있었다. 반동. 그때 고원 쪽으로 불던 바람 속에서 이방근이 말했었다. ...실천, 현실, 그리고 혁명, 당 이 얼마나 주문 같은 힘을 지닌 말인가. 실천보다도 먼저 말이 사람을 죽인다.... 그렇게 말했다. 남승지는 낮게 신음했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말이 사람을 죽인다. 말이라는 괴물.... 어둠 속에 타오르는 환상적인 불의 무리, 이방근은 순간 황홀감에 사로잡혀, 그것들이 게릴라 봉기의 신호이자 시위라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방근의 귓가에 좀 전의 이상한 종소리가 되살아났다. 어쩌면 오름마다 길게 이어진 저 봉화의 무리를, 나는 형상이 없는 기묘한 꿈속에서 세찬 종소리로 바꾸어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피를 토하듯 시끄럽게 울려 대던 종소리, 밤하늘을 불태우며 섬 전체에 타오르는 봉화, 투쟁의 불, 마치 군대의 북소리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인민 봉기의 시위. 일제 봉기가 실현되고 있는 이 시각에, 성내는 경찰마저 깊은 ��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제 성내 습격이 불발로 끝난 것은 확실했지만, 지금 분명히 제주도 무장봉기는 예정대로 4월 3일 오전 두 시에 실현되었던 것이다. 이미 각 부락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게릴라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방근은 발길을 돌렸다. 함밤중에 밖에 나와, 이렇게 봉화를 본 것은 기쁨이었다 이방근은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어떤 감동에 몸을 떨었다. 그는 전에 없이 흥분하고 있었다. "전 우리 생활이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오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는 기생충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가족 전체가.... 그런 주제에, 무슨 타도 대상이라도 돼서, 우리 생활이 파괴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거라구요. 알고 있어요. 내가 겁을 먹고 있는 게 그 때문이라는 걸 말이에요." "내 말을 잘 생각해봐. 나는 네가 공산당이 되는 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 못해. 현재는 불의의 공격을 받고 경찰도 속수무책이지만, 이제 곧 반격에 나설 거야. 본토로부터 경찰이 증원되고 군대도 출동할 거야. 이승만 박사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걸 잊지 마. '5월 단선반대'를 외친다 한들, 선거는 이 나라에 군정을 펴고 있는 미국이 하는 일이야.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게 현실이라는 거야. 그들의 점령정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그 미쳐 날뛰던 일본 제국 군대를 쳐부순 막강한 미군이야. 북에는 소련군이 있듯이, 남한은 미군이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돼.... 설마 마지막까지 이 애비한테 거역하는 악당이 될 작정은 아니겠지...." 유달현, 아니 아바저와의 일이나, 그리고 강몽구..... 일은 복잡하게 얽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동란의 와중에서 자신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릴라�� 습격으로 집이라도 탄다든지 해서 혼란 속에 빠져든다면 모를까, 역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혁명' 이념의 무엇이 이방근을 행동으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를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이미 그것 자체가 진리의 구현체 같은 이념도 신도 아니었다. 잠옷 차림으로 잠자리에서 기어 나와 소파로 자리를 옮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안뜰을 지그시 바라보며 앉아 있을 도리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바로 옆에 있는 서재 소파 위에 보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병든 조국'이 아니라, '미친 조국'의 상황입니다. 우리에게 절망만 주는 조국의 상황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괴로움으로 번민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도하고, 일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입니다. 조국의 분단을 막고, 신생 조국의 통일과 건설은 우리 청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경찰이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혁명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모두 혁명에 들떠서 눈먼 봉사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하게 합니다. 좌익 혁명가가 아니면 애국자가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고 우쭐대고 있어요. 적을 바보 취급하면서 혁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 상황은 물론 녹록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해방 직후와 마찬가지로 '혁명'을 일종의 유행처럼 생각하는 현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공산주의자를 무슨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인간 '혁명가'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건 반동의 앞잡이로, 그야말로 시골에 있었더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5권> 남대문에서 태평로 쪽을 바라보자 아직 네온사인이 깜빡이고 있었다. 잠깐 동안 바라본 네온사인의 명멸(明滅)이 묘하게 서커스 장식이나 완구의 빛처럼 보였다. 제주도는 멀었다. 정말로 이 나라 바다의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집에만 처박혀 사는 이방근에게는 시끌벅적한 도회지에 끌릴 이유도 없었지만, 역시 제주도는 고독한 섬, 그리고 벽지였다. 4.3봉기 당일의, 동란의 권역 밖에 있는 것처럼 평온하 거리를 뒤덮은 커다랗고 투명한 가면 같은 느낌. 그 둥근 천장처럼 투명한 가면에 금이 가고, 깨진 틈으로 빛이 새 나오고 있었다. 서울역 앞에 선 이방근은 무엇하러 서울에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두터운 공기의 마찰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도망친 느낌이었다. 제주에 살든지 서울에 살든지 마찬가지다. 제주도에 돌아가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거기에 주거가 있고, 서울은 여행지라서 그런 것인가. 의식 안에 있던 성내 거리가, 지금은 의식 바깥에 점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심야의 서울 거리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들었다. 왜 이렇게도 당 조직에의 참가 거부가, 반정의, 반민족, 반진리와 같은 어떤 떳떳하지 못한 감정의 함정에, 스스로를 떨어뜨리려고 하는가. 그 조직의 투쟁에 참가하지 않는 자는 정의의 벼랑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조직이 정의인가. 적어도 현실에 있어서, 정의롭지 못한 것과 근본적으로 대립을 하고, 투쟁하고 있는 것이 조직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정의가, 절대정의가 정의 그 자체의 자유를 빼앗는다. "혁명은 승리했을 때 비로소 영광이 있는 것이고, 그 성과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패배한 혁명의 비참함은 역사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혁명의 승리와 그 보복은 잔혹합니다. 물론 투쟁은, 투쟁이라는 것은 완전한 승산이 있을 때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투쟁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침략자와의 싸움이 그렇습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항하여 싸운 임진왜란이 그렇고, 조선 말기, 한말의 일본의 식민지 병탄, 조국의 멸망에 저항한 의병 투쟁도 그러하고, 또 4.3봉기도 그러한 성격을 지닌 싸움입니다." 계급적 혁명성이 아닌, 부르주아적인 개인의 이기주의. 내가 노동자도 농민도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노농()계급의 입장에서 내가 객관적으로 그러한 존재로서 인식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있는 그대로 판단해 주면 된다. 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붉은 비단 천으로 덮은 진리의 제단을 받들고 그 앞에서 절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해방 직후 좌익만능 시절의 일인데, 제주도에서도 서울에서도, 좌익계열의 집회에는 반드시 누더기 같은 노동복을 입고 참가하는 프티부르주아 인텔리 당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는 현실적인 노동자, 농민들이라기보다도, 하나의 관념적인 실태, 머리 위에 솟아오른 절대 진리의 신이었던 것이다. 왜 프티부르주아들은 이렇게까지 '프롤레타리아트'에 비굴한 것일까. 살아 있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관념에 비굴한 것이다. 당중앙, 당중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심장부, 신의 심장부, 신 안의 신. "반동의 가족이라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내가 무슨 '서북'이나 경찰이 하는 일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니야. 같은 선상에 놓지 말라는 거지. 나 같으면 적어도 S리의 노인 살해와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걸세. 나는 그런 치사한 살해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인할 수 없어. 동란 때에는 사람을 살해할 명분이 충분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우기 쉽지. 사소한 원한이나 개인적인 감정, 증오 같은 것조차, 증오에도 계급적인 경향이 있어, 그런 것이 명분에 결부되어 살인에 해당되지 않는 살인 행위가 성립된다네. 전쟁에는 광기라는 것이 따라다니기 마련이야. 그러나 지금은 그 광기 이전의 일을 말하고 있어. 적어도 혁명을 위한 싸움 아닌가. 그것이 위대한, 혁명의 위대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서, 아주 소심한 심정적인 행위가 일어나고 혁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어. 너무나 치사한 살인이야. 그것이 조직의 결정이고 방침이라는데, 그렇게 되면 군대와 뭐가 다른가. 물론 인간이 하는 일이니, 분위기에 휩쓸려 관계없는 인간을 살해하는 일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그것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잘못됐다고 하는 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의 행위에 명분을, 그리고 구실을 붙이지 말라는 거야." 군정 당국은 게릴라 측의 무조건 항복을 호소하는 삐라를 공중에서 살포하는 선무 공작을 하는 한편, 국방경비대, 경찰대의 증원을 추진하면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민족청년단 등 모든 우익단체를 총동원하여 선거인의 강제동원에 꾀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지구에서는 선거사무소, 투표소의 파괴 등으로 선거기관의 기능이 마비되었고, 투표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선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많은 해안 부락에서는 투표 전날 밤, 주민들이 일제히 마을을 비우고 떠나, 주먹밥 등의 식량을 준비하여 중산간 부락으로 이동했고, 5.10 당일에는 마을 전체가 노인만을 남긴 채 무인의 상태로 만들라는 조직의 방침에 따르는 등, 섬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5.10 단선 반대 투쟁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일 모레가 8월 15일인가요. 8.15, 해방된 지 3년, 이렇게 많은 자기 민족의 유혈과 시체를 초석으로 삼으면서 무슨 정부 수립이고 건국 축전입니까. 아니지요, 원래 괴뢰정권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해방이고 나발이고,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후 민주주의 같은 것은 이 나라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자력으로 독립과 해방을 달성한 것이 아닙니다. 그 주제에 일제 때의 왜놈의 앞잡이와 구더기들이 바야흐로 세력을 얻어 더욱 세 불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선거가 실패로 끝나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선출되지 못했지만, 정부 수립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아버지도 원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도 원기 왕성했지요. 대한민국 정부라는 건 일찍이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기���으로 해서 생겼으니까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온존과 육성, 그러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며 좋겠습니까. 최근 3년간, 미국은 그 일을 해 왔습니다. 8월 15일, 민족반역자들.... 이 나라는 대체 누구의 것입니까,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이북은 최소한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련은 미국처럼 민족반역자를 온존하게 하고, 그들을 통치 기반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항일 민족해방 무력투쟁을 계속해 온 김일성 등이 구친일세력을 몰아내고 중핵이 돼 있습니다. 꽤나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고, '서북'들의 '반공'에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친일파 청산은, 그 점에 있어서 정통이고, 민족정기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된 지 3년 만에 최악의 8.15를 맞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이 아닙니다. 엿가락처럼 비틀려서, 아니, 철봉이라도 비틀려 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외세입니다. 우린 비틀린 철봉이 아니라, 엿가락입니다... 전 건수 숙부님 이야기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모두 새겨듣고 있습니다. 아플 정도로, 찔릴 만큼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다만, 8.15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게 너무나 불쾌해서 말이죠. 8.15에서 한참 떨어진 1월이나 12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제주도 이야기는 집에 돌아가서 천천히 하기로 하시지요. 사태는 어럽습니다. 엄청난 군경을 투입하고 있으니까요... 모레 탄생하는 정부에 그 의사가 없다는 겁니다. 특히 경무부에는 말입니다. 현지에서는 '빨갱이'를 살육하는 건 국가 건설을 위한 필요악이 아니라, 신성한 사업, 정의라는 대의명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선두에 서북청년회가 서 있고, 저는 그 '서북'과도 게릴라와도 교류가 있습니다. 저는 게릴라 방식에 비판과 의문을 가진 사람입니다만, 이렇게 현지에서 떨어져 있으면 그 기분이 묘하게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해방 이후 좌익만능주의의 흐름에 편승해서 영웅주의적으로 다들 폼을 잡고 무책임하게 행동한 점도 없지 않지만, 이렇게 사태가 심각해지고 보면, 그들은 애국자입니다. 문제는 이 나라가 미군정 아래에 있고, 신정부라는 것이 우리 조선인 자신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있겠지요. 왠지 말하는 것도 허무한 일입니다만."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그러나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 그저 보이는 것, 느끼는 것을 말해봤을 뿐이네. 사시미와 우동... 이건 오랜만에 들어 보는 일본어로군. 음, 우.동.." "그러나 자네는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보았어도 자네가 본 것은 자네의 내부에서 사라져 느끼지 못했을지도 몰라. 느꼈다 해도 그 느낌은 자네 안에서 사멸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네... 그랬구만, 그랬어. 가만히 양손에 올려놓고 달래 주고 싶은 내 마음. 아아, 꺼림칙한 세상이야. 속물들의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서울, 병든 서울이란 말인가.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반신불수의 서울, 기생의 잠옷처럼 더러워진 서울이야. 한낮의 태양 아래선 이 마음이 부끄럽고, 밤에는 꿈에 가위눌려 몸부림치는..." "그건 농담으로 하는 말 아닌가. 자넨 아마도 내 말을 감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어떻게 감상적일 수 있겠나. 감상적이라는 것은 아직 인간적이라는 거야... 지금 내가 막 이야기한 송진우와 같은 협박 앞에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 않은가, 방법이 없다구. 그게 지금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되어 우리를 뒤덮고 말았어. 모든 것이 정치의 힘으로 공기까지도 콘크리트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지. 감상 같은 게 아니야. 취하면 슬퍼져. 내가 슬픈게 아니야. 취하면 슬퍼지는 사람이 있어... 이방근 동무, 자네는 말이지, 나보다도 사물을 보는, 즉 현실을 보는 눈, 생각이 리얼리스트야." "보통 같으면 부모가 돌아가셔도 드나들 수 없도록 경계 태세가 펼쳐진 제주도에서 일부러 오빠가 마중을 하러 오다니, 병이 나서 죽을 상황이라면 또 몰라도, 저는 부끄러워서... 어제 온 친구들보다도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오빠가 와 있다니, 물론 아무도 이 사실은 모르겠지만, 저는 견딜 수가 없어요. 부자는 뭐든 할 수 있어요. 이 병든 사회의 축소판처럼."
<6권> "아니에요. 자식보다도, 본질은 부부간의 문제예요. 그때 어린 저는 아버지에게는 덤으로 달린 부록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용케도 저는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떨어졌다며 죽었을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더 이상 아버지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오빠, 오빠에게 묻고 싶은데, 조선의 남자들은 왜 그래요. 여자보다 못한 남자가,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조선의 가족제도 덕분에 여자를 철저히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조선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조선에서는 여자를 인간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잖아요. 어젯밤 전화만 해도, 아들, 아들하며 여자인 숙모님까지 함께 소란을 피우더라니까요. 또 아버지 이야기가 나와서 미안해요. 우리 오빠는 그래도 낫다고 생각해요. 일체의 권위에 부정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실생활에서는 꽤 봉건적인 구석이 있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뭔가 강제로 신을 믿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강제로 신을 믿게 한다..? 강요라든가, 강제라든가 하는 말은 의외입니다. 게다가 이 동지는 혁명사업을 뭔가 종교와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으흠, 강제로 신을 믿게 하다니, 말도 그렇고 사고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동지는 신앙으로 무슨 일을 하는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확신범'에게 가까운 인간에게 내가 강제로 '신을 믿게' 한다? 그건 이상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혁명에의 참가와 신을 믿는 행위를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단추를 잘못재운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비유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한 말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이방근은 상대를 따라 하듯 말했다. 비유, 아니 비유가 아니다. 종교와 혁명을 혼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혁명이 종교와 닮은 데가 있다는 것이다. 당의 절대성, 절대적 권위, 신이 바로 그렇고, 그것이 국가 권력의 형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신기해서 말이죠..." 황동성은 이방근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이방근은 자신의 발음과 그 억양이 서울말의 그것과는 달리 제주도 사투리라는 것을 납득하면서, 황동성의 탓이 아닌데도 조금 불쾌해졌다. 어쩌면 클럽의, 아마 춤도 추고 있을 파티의 광경을 상상하자, 갑자기 불쾌해졌던 것이다. '멀리 제주도에서 온 귀빈'.... 제주도에서 서울 한가운데에 나타난 촌놈이겠지. 제주도... 소년 시절 본토에서, 제주도는 어디에 있는 거지. 공을 차면 바로 바다에 빠져서 축구 같은 건 할 수 없을 거라며 놀림을 당한 적이 있다. 옛날부터 중앙정부의 버림을 받은 '지수민빈(地瘦民貧)'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의 땅, 일찍이 적객(謫客, 정치범)들이 서울에서 출발하여 험한 산과 물길을 몇 달씩이나 걸려 고생 끝에 간신히 도착한 유배의 땅. 저주 받은 천형(天刑)의 땅이었고, 본토인으로부터 멸시와 차별이 중첩된 땅이었다. 또한 지금은 게릴라가 봉기하고 있는 '혁명의 땅', 아니 '폭도'에 의한 반란의 땅이다. 일본의 전통가요 형식을 띤 이들 노래를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것은,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로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이 식민지 사회의 전면에 서서 명사가 되고 영예를 짊어졌지만, 이러한 문인들이 일본의 패전, 조선의 해방으로부터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과거 고등경찰(특고)과 각종의 친일분자, 민족반역자층과 함께 부활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해방 전과 마찬가지로 순수문학론을 펼치며, 문학의 정치로부터의 독립과 정치성의 배제를 주장하며, '현실참여'를 부정하고 좌익적 문학에 대항하면서, 과거 자신들의 대일 협력행위를 반공=애국전선의 후방으로 돌리고, 다시금 이 사회의 전면에 나왔던 것이다. 뭐라고? 친일파라고... 일제강점기를 산 사람치고, 조금이라도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친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아버지 이태수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지금 해방된 오늘날에도 살아남아 민족을 보전하고 있단 말이다. 침략자 앞에서 조국을 팔고, 자신을 팔고, 타락할 대로 타락한 영혼의 노예. 나 자신도 읽는 것이 고생이고 보면, 이것을 쓴 장본인들이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한 길로 생각하고 한 일이라고 태도를 바꿔 나온다면, 분서를 해서라도 그 흔적을 지우고 싶어지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행동과 위기감마저 희박해지고 있었다. 친일, 대일 협력....? 쌍심지를 켤 필요는 없다. 그건 피차일반이 아닌가. '친일'-'반민족적'이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용공'이, 공산주의가 '반민족적'인 것으로 대체되어, '친일'이 '애국'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다시 과거의 친일파가 지배하던 이 사회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때문에, 도의가 질식하고 불의가 활보하는 사회의 커다란 흐름에 참여하여,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한, 배제되어 패자가 된다. 나영호가 아니더라도 무력감에 짓눌리게 되는 것 역시 무리가 아니었다. 우울하다, 우울한데 왜 일부러 이런 걸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도, 아침을 거르고 해장국조차 생각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친일문학의 탓이었다. 어쨌든, 어쨌든... 어험. "노동자를 입간판으로 삼아 전위를 맡고 있는 지적 위선자, 지적 빈곤자의 무리. 화폐로 개념을 뇌에 채워 넣은 유사혁명 인텔리의 무리. 아아, 그 악취...!" 이러한 냉소적인 경구는 이방근의 젊은 시절과 닮은 것도 같았지만, 남승지는 서울에서 보낸 학생 시절의 노트에 적어 둔 이런 종류의 강한 집념에서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조국이라고는 했지만 육친을 일본에 남겨 두고 온 이향의 감각에 가까운 생활현장의 탓은 결코 아니었지만, 자폐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한 남승지는 그의 말끝마다 "어쨌든..."이 빈발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의 독백에서도 걸핏하면 "어쨌든..."이 무슨 단서와도 같은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튀어나왔다. "어쨌든..." 자신은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문든, 모든 것에 유보 조건을 전제로 하고, 스스로 감정의 흐름조차 일단 제지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한다. 그것은 수동적이면서도 현실을 긍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이 "어쨌든..."은 타자에 대해서도 결론이 확실하지 않게 유보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묘한 위화감을 주었고,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신과 타자, 현실과의 괴리, 단절을 깊게 만들었다. 뭐가, 어쨌든..., 이란 말인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는 "어쨌든..." 우유부단하고, 오만하고, 불결한 정신... 어쨌든...의 반복은 추하다. 그래도 "어쨌든.... 어쨌든...."불행한 일이었지만, 어쨌든...이 없으면, 이렇게 한 박자를 두지 않으면 인생을 긍정할 수 없었다. 문이 없고,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다. 즉 '삼무(三無)'라는 것인데, 도둑이 없으니까 문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그 집의 뜰로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그게 아니라, 이 집의 뜰도 문으로 가로막히게 되었다. 그 삼무가 무너졌다. <7권> "그래서 저는 구체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 그 전제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니므이 공산당... 운운은 말이죠, 그것은 미군정과 정부 측의 일방적인 발표이지,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런, 젊은 사람이. 나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내 친척이 되는 사람도 실제로 공산당에게 살해당했단 말이야." 그건 '친일파'일 것이다. '친일파' 이퀄 경찰 측의 인사가 살해당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좌중에서, '친일파'나 경찰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 이렇다 할 방책이 있다면 좋으련만. 좀 전에 분리주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벽지인 제주도는 예부터 육지의 착취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 왔지. 제주도는 서울에 보낼 말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곳처럼, 속담에도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분리주의는 오랜 고난의 역사 위에 형성된 것으로, 괴로움에서 비롯된 민란이 끊이질 않았다구. 우리 제주도는 옛날부터 삼무(거지, 도둑, 문이 없다)의 섬이라고 불려 왔는데, 본래 아름다운 자연의 섬이고, 게다가 또 하나의 멋진 무, 맹수가 없는 평화로운 섬이잖아. 곰이나 늑대도 없어서 사슴과 다람쥐, 토끼와 같은 순한 동물들에 있어서도 살기 좋은 고향이 제주도야. 하하, 지금은 태평하게 그런 걸 언급할 상황이 아니지. 지금은 맹수가 들어와 있단 말야. 부탁하지도 않은 바다 밖에서 군대가 들어왔어. 군대가 닥치는 대로 섬의 선량한 인간을 물어뜯고 있다구. 제주도가 아프리카 대륙도 아니고, 동물원에서도 맹수의 우리는 철창살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 칼과 총을 든 맹수들은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내 여동생도 물어 죽였어. 남편이 돈 벌러 일본에 갔다는데도, 마을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산에 들어간 빨갱이라며, 그 아내인 여동생을 살해했단 말이야..." 이방근은 웃었지만, 농담도 아니었다. 마음 한구석에 늘 대기하고 있는, 나는 하찮은 남자다,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않은가. 대체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존재만 하고 있을 뿐인.... 실제로, 너는 뭐하는 자인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어도, 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고생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뿐이었다. 해녀의 딸.... 이 말이 이방근의 뇌리에 울렸다. '서북'과 함께 사는 해녀의 딸. '해녀'는 제주도의 대명사이기도 하고,, 멸시가 담긴 말이기도 했다. '서북'과 함께 사는 제주의 딸... '서북'과 '결혼'을 했다는 여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경야의 제사를 지내고 저 세상으로 보내 버린 오남주가 지금 여기에 있었다면, 당장 일어섰을 것이다. 다시 한 번만 말해 봐라. 자,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냐.... "운전수 양반이 별로 귀에 익지 않은 말을 하기에 물어본 것뿐이오. 공비란 건 중국의 장개석이나 해방 전의 일본 관동군이 만주에서 썼던 말이오. 중국과 조선의 항일부대를 비적이라 불렀는데, 그 머리에 쓸데없이 공산을 붙여서 왜군들이 사용했던 겁니다.. 왜놈들이 말이오. 그걸 운전수 양반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기에 놀랐다는 겁니다. 핫, 하아, 나도 일찍이 '항일투사'였고 형무소에도 오래 있었소. 목포는 아니지만. 그래서 좀 신경에 거슬렸소." 배는 삼학도를 왼쪽으로 보면서 구름 낀 항만을 빠져나가 다도해로 향했다. 유달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장대한 인조정원처럼 수놓아진 푸른 섬들과 바다가 보인다. 아직은 배의 흔들림이 거의 없었지만, 바람이 불어 입에 문 담배에 붙이려는 성냥불이 몇 번이나 꺼졌다. 다도해를 빠져나가면, 제주해협의 바다는 상당히 거칠지도 모른다. ....우리를 승선시켜라! 제주도사건 진상규명 조사단의 승선을 막지 말라! 귀의 공동 안쪽에서 고막을 세차게 찢으며 되살아나는 목소리였다. 이방근은 똑똑히 그 소리를 들었지만, 문난설의 귀에 갑작스런 그 외침이 의미 있게 들렸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잔뜩 구겨진 등산모를 쓰고 있던 윤봉의, 소리를 내며 마주친 그 무서운 시선이 외치고 있었다. 어이, 방근이, 자네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오남주가 뛰어내렸다. 내장이 단숨에 몽땅 빠져나갈 것 같은 기세로 오남주가 뛰어나갔다. 핫, 핫하아, 뭐 하러, 일부러 목포까지 왔단 말인가... 폭력적인 출항이긴 했어도, 승선 직전에 부두에서 만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방근은 오남주가 배에서 뛰어내린 일에 놀라면서도, 마중나간 목포역에서 조사단 일행과 만나지 않은 것에, 목포 읍내에서 마주치지 않고 지나간 일에 안도했다. 완전히 도망친 것이라고 해야 할 이 비겁한 안도감이 출항을 폭력적으로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제복 입은 경찰 이상이야. 본토에서도 그렇겠지만, 여기서는 더 심하다구. 애당초 그들은 원래 있지도 않은, 법적 근거도 없는 경찰권을 지니면서도 보수가 없으니 생활은 현지 조달로 하고 있어. 현지 조달이란 건 여기 경찰에서 지급하는 게 아니야. 먹는 것도 수입이 없으니까 현지인에게 약탈하는 수밖에 없고. 근거 없는 기부의 강요에서부터 무전취식, 강도 같은 짓을 얼마든지 한다구.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야. 뭐든 빨갱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을 짓고, 여자든 아이든 할머니든 빨갱이라고 단정만 지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거야. 증거는 필요 필요 없어. 놈들이 빨갱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집단적 테러를 할 수 있게 돼. 이건 작년에 그들이 제주도로 오고 난 뒤에 일어나는 일로, 부녀자 폭행, 살인... 4.3이 일어난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서북'이라구. 이북에 육친과 고향을 버린 채 목숨을 걸고 도망쳐 온 만큼, 이남에서는, 특히 제주도는 '빨갱이' 섬이라고 해서 철저하게 복수하려 하지. 그들은 '북'의 공산주의자들에게 고향을 빼앗긴 '실향민'으로 '무소불위', 못할 것이 없다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그들은 언제나 굶주려 있기 때문에, 굶주린 승냥이처럼 사나워져 있다가 먹이에 달려드는 거야. 게다가 간부 외에는 글자도 몰라. 실제로 무섭다구. 무엇보다 법에도 없는 경찰권을 부여받고 무보수라는 점이 특징이지. 미군정 시절부터 중앙군정청 경무부장인 조병옥의 발상이야. 먹이를 주지 않고 배를 굶주려 사납게 만든다. 뭔가의 사냥도구로 취급하는 것이지. 제주도에 많은 '서북'을 보낸 것도 그였어. 그자는 친일파 집단, 한국민주당의 간부라네." "넌 '친일파' 아버지를 둔 걸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일제 때 생활을 백 퍼센트 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친일이라면 친일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게다. 이 작은 섬에서 무슨 친일이냐. 큰 악은 서울 같은 육지에 있는 게다. 이런 얘기를 또 꺼내고 싶지 않다만, 나로서도 도민을 위해 얼마나 힘써 왔는지 모른다. 그것도 관직에서 일한 것도 아니고 모두 순수한 경제 행위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 신념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필요하다면 심판이든 뭐든 다 받겠다. 핫핫핫, 누군가 말했었지, 이건 반 농담이지만 제주도에 조사부가 설치되면 이방근에게 시키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음, 이방근이 아버지 이태수의 친일 행위 조사를 담당한다...? 멍청이들이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제주도에선 액면 그대로는 안 된다. 다른 도에서라면 모를까, 제주도에 조사부를 설치하는 것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일지적으로 생긴다 하더라도, 어디 방구석에 책상 하나를 놔두겠지만, 거기에 앉을 인간이 없다. 할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나섰다가는 그 날로 저 세상에 가게 될 테니까. 서울과는 달라서, 이곳에서는 '서북'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조사부는 생길 수도 없지만, 혹시 이상하게 얽혀서 떠맡는 일은 없도록 해라." "'소유로부터의 자유'라는 것도,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잖아. 왕위나 왕실을 버린 인간도 있어. 근방의 작은 귤 밭 한두 곳과 약간의 자산을 처리하는 일로 골치를 썩일 필요는 없다구. 물론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나 여동생한테 맞추기 위해 재산을 정리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말야. 그러나 역시 '재산의 소유'는 자유롭지가 못해. 그래서 하루 종일 소파에 가만히 앉아 부자유를 견디고 있는 거야. 핫, 핫, 어쨌든 이건 궤변이겠지. 우선은 경제적 소유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일체의 소유로부터의 자유. 포기. 그래서 남은 것이 자유. 유식한 척 말하자면 정신의 자유,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 자네는 그것을 철학적인 문제라고 하지만, 이런 건 예로부터 흔한 생각이고, 나에게 이건 현실적인 문제야. 실제로 어떤 부류의 인간에게는, 아니 모두 다 그래, 이 사회가 그런 거지만, 재산, 즉 소유물은 그 인간과는 떼어 내기 어려운 인간의 일부라구. 예를 들어, 내부가 충족되지 않을수록 외부로부터 많은 소유물을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 하지. 그 인간 자신이 재산이 되고, 재산이 그의 힘이 되는 거라구. 나도 마찬가지야, 조금 밖에 없는 재산이지만. 그렇지만 하룻밤에 그 소유물은 무로 변할 수도 있어. 준오 동무는 나에 대해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아핫, 핫, '도련님'같은 생각이라고 말했었지. 그에 대해, 동무의 생각은 '가지지 않은 자'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소유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소유한 채로의 자유'라는 것이 자네의 변증법이야. 이 문제는 어려워. 억지소리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구. 좀 전에 '소유로부터의 자유'의 부정이라든가, 자네가 초월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거겠지." "소유로부터의 자유에서, 그 자유는 뭡니까?" "자기 자신의 자유야. 지배하지 않고, 지배받지 않는. 어쩌면 공산주의의 미래상, 그러나 그건 꿈, 현실은 반대니까." <8권> "그건, 그러니까,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터가 좋은가, 전쟁터가 아닌 곳에서 일반 시민으로 사는 게 좋은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은 산, 마을은 마을이지요.... 산은 우리들의 해방 지구, 제주 해방의 기지이고, 미래의 조선 혁명에 있어 제주도의 근거지입니다. 어쩌면 하루 이틀은 마을이 좋을지 몰라도 평지는 '적의 구역' 안에 있기 때문에, 일이 끝나면 얼른 그곳에서 탈출해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우리의 집이니까요. 그곳으로, 한라산의 품 안에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안심이 돼요. 평지에 있으면 부자유스럽고 숨이 막혀 임무가 끝나면 서둘러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먹을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힘들고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전 비교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산 생활도 보람이 있고 즐거운 일도 있습니다. 이 망국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민족반역자들, 미국의 앞잡이를 쓰러뜨리기 위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도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건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두 사람을 감싼 침묵에 감미롭고 조용하게 젖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침묵이 새기는 시간의 소리에 마음이 초조했다. 남승지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운 채 잠깐이지만 눈을 감았다. 유원은 침묵이 서로를 압박하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에 젖어 있는 것일까. 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러기를 바랐다. 두 사람 모두 침묵을 의식하고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투명한 막이 점차 딲딱한 공기층이 되어 서서히 피부를 덮어왔다. 남승지는 짧아진 담배를 입술에 갖다 대면서 천천히 눈을 뜨고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녀도 눈을 감고 있었다. 순간 무언가 아름다움을 ��쳐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시선이 마주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뜨거운 시선을 돌리면서, 본의 아니게 봉긋한 가슴위로 시선이 스치는 걸 의식했다. 불필요한 것이, 지금 여기서는 눈에 띄지 않아도 좋을 것이, 침묵 속에서 그 존재를 강조하고, 침묵 그 자체를 단단히 속박했다. "건방지게 말야, 도대체가. 핫하, 한심하다, 그새 울먹이는 소리를 내고. 이 나라는, 이게 나라인가, 어디나 애국자로 넘쳐 나고 있다구. 애국자가 아닌 자는, 이 나라에 없다니까. 살인 집단이 가장 열띤 목소리로 조국애를 외치고 있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이 지금은 제일 애국자지. 반민족행위처벌법이 국회에서 어찌 되었든 통과되었으니, 과거의 친일파들이 전전긍긍, 필사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철저한 반공정신의 고양을 조국애로 바꿔치기하고 있지 않는가. 일제강점기의 매국노가 지금은 애국자라 떠들고 있지만, 이 처벌법으로 가면이 벗겨지게 되겠지. 그런데 처벌법의 성립에 즈음하여 부통령이, 전민족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벼슬을 물려받은 자들도 있어서, 친일파를 처벌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히자, 이번에는 대통령이, 처벌법은 많은 남녀를 선동하고 민심을 분열시키기 때문에, 처단의 중지를 요청하는 담화를 발표한다고 하더군. 처벌법 성립으로 서울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데, 이 시골의 섬에는 친일파 놈들이 느긋하고, 마이동풍.... 흐-음, 제주도는 중앙에서 떨어진 절해의 고도, 나쁜 짓 하기에는 딱 좋은 곳, 반민족행위처벌법 성립의 영향이라는 게, 이 섬까진 미치지 않을 거야. 그런 우리 아버지도 그중 한 사람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일단락되는 듯했는데, 그때까지 이성운의 뒤에서 묵묵히 회합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던 조직책 주가 이성운 앞으로 한발 걸어 나오더니, 힘찬 울림의 기침을 한 번 하고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군사행동은 게릴라라 하더라도 혼자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의 원칙은 정규군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조직과 통제에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정규군에 비해 약소하고 불리한 조건에서 오는 신출귀몰한 유격 전술뿐이다. 무기의 배분은 유격부대 전체의 장비 정돈으로, 유격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의 결정인데도, 이것저것 자유주의적 의견이 많고 규율이 느슨해져 있다. 소총 한 정을 더 내놓으면 전투력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한 것, 감정에 치우쳐 배분된 무기의 수취를 거부하는 것, 이것은 모두 주관주의의 관념론으로는 개들 싸움밖에 안 된다. 혁명은 총포에서 일어난다. 피로써 혁명을 쟁취하겠다는 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 없이 달성된, 피의 희생 없이 달성된 혁명이 동서고금에 있는가. 혁명의 깃발, 적기는, 혁명의 정열, 불꽃이고, 피의 색이다, 적이 강대한 만큼 무기의 탈취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일리가 있으면서도 유격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약소한 유격대 앞에는 항상 강대한 적이 있다. 강대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게릴라 전술이다. 희생을 두려워하는 혁명가는 짐승을 무서워하는 사냥꾼과 같은 것, 이러한 주장은 싸움을 포기하는 투항주의이자, 적에게 등을 보이고, 적에게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사상이다. 혁명의 길은 엄격하고 무자비하며, 혁명에는 피를 두려워하고 죽음을 슬퍼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무기로 무장하고, 동시에 피의 색인 붉은 정신으로 무장하고, 또한 보다 많은 인민을, 도민을 무장시켜야 한다. 원칙을 엄수하는 일, 우리들이 오류를 범했을 때 망설이지 말고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대의 원칙으로 여겨야 한다... 시퍼런 칼날이 번쩍이는 듯한 어조의 말이 계속되었고, 마지막에는 군사교육과 정치교육의 보다 강한 결합을 강조하였다. <9권> "제가 왜 '서북'을 살려 두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죽이면 안 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인간이니까? 그렇습니까. 미군정 시대의 중앙군정청 경무부장이었던 조병옥 등은, 우리 제주도민은 빨갱이이고, 빨갱이는 인간이 아니니 죽여도 된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의 고관이나 현지의 토벌부사령관 중에는, 가솔린을 섬 전체 여기저기에 뿌리고 불을 질러 30만 도민이 전멸해도, 대한민국의 존립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 놈도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인간의 탈을 쓴 그레이트데인. 놈들이야 말로 인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죽여서는 안 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어째서 우리 자신을 죽이고, 가족을 죽이고, 섬 주민을 살해하는 놈들 앞에서, 동란 상태 속에서 이쪽이 살해 당하는 채로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겁니까. 눈에는 눈을... 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에는 이를... 반문하자면, 어째서 살해당해야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놈들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도 없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윤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단지 물리적으로 그 능력이, 힘이 있는지, 실행할 수 있는지 하는 것뿐입니다.... 제 마음 속에 살의가 있습니다. 결정체처럼 마음속 공간의 중심부에 존재하고 있어서, 제가 움직이면 그것도 같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살의가 현실화되기 위한 장치가, 수단이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하찮고 힘이 없습니다. 단지 살의만 있을 뿐입니다. 한심합니다. 살의만은 핵이 되어 확실하게 굳어져 가는데..." ...반민족행위처벌법 제5조 "일본 치하에서 고등관 3등급 이상, 훈 5등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직에 있던 자도, 본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제6조 "본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자 중 개전의 정황이 현저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이방근은 이들 법안의 엉성한 내용을 보고, 아-아... 하고 한숨을 크게 쉬면서 담배 한 대를 천천히 피웠던 것이다. 분노를 넘어서고 있었다. 무관심하게 넘기려 해도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는,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만조가 된 뒤 조개를 캐는 식으로,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해방 직후 지체 없이 착수해야 할 일을, 일본 패배로부터 3년. 미군정하에서 온전해 온 친일 세력은 정부를 비롯해 이 사회의 거의 모든 기구에 벌써 침투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반민족행위처벌법 전체는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엉성하기는 해도 일단은 법적으로 친일파 숙청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가능한 일일까. "아하, 그랬나, 자넨 그렇지, 오사카에 있었지. 예전의 친일분자는 지금은 반공, 그리고 애국분자로 변했어. 친일 애국에서 반공 애국, '국(國)'은 다르지만, 조금 바꿔치기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꿔치기 한 것이지. 4.3진압도 친일파들의 반공 애국의 표본이 되는 거라구." 독방. 다다미 세 장 크기의 우주, 그 큰 공간이 있기에 견딜 수 있다. 고독. 세계로부터의 단절은 인간을 광기로 몰아넣고 발광하게 만든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에 견딜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파탄, 존재의 파멸을 의미한다. 집, 친척, 마을, 민족, 국가, 종교, 사상... 온갖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그 '귀속'에서 제외될 때 고독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친일'도, 일본인 전체의 광신적인 무서운 전쟁으로의 진군도, '시대'에서 낙오되는 고독의 공포로부터의 도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유롭다는 것에 대한 전율과 고독, 그것으로부터의 도망... 가령 세포조직에 속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직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왜 나는 입당하지 않는 것인가. 왜 동조자가 되어 조직에 자금협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좌익 만능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도, 지하조직이 된 당은 여전히 민족과 가난한 자의 해방이라는 정의의 구현자, 신(神)의 나라의 사도(使徒) 집단, 당원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로서 권위와 환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당'. 이방근조차 '당'이라는 한 음절, '당 조직'이라는 세 음절을 들으면, 내심 일종의 전율을 느낀다. '남'에 공산 정권이 존재하지 않고, 당은 비합법화된 지하조직이므로, 나는 이념으로서 조직을 지지하고 동조자가 되었다. 그러나 당이 정권을 쥐었을 때, '혁명국가'의 절대성 아래서 개인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명실상부하게 국가=조직은 만능, 신이 되고, 이념에도 불구하고,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는 관계, 자유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전체가 된다. 그러나 이방근이 지금까지도 연하인 남승지에 대해서 내심 품고 있는 콤플렉스는, '당 조직'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사상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굳이 말하자면 윤리적인 것으로, 일본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 두고도 이 땅에 버티고 있는 모습에 이방근은 압박감을 느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힘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을 이번에는 양준오에게서 느끼는 것인가. 게다가 '서북'에 살의를 품은 오남주가 입산을 결행하려 하고 있다. 그것을 젊은 혈기탁으로 치부하고 말 잃은 아니다. 유원까지도 입산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음으로 양으로 막고, 일본행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방근은 점점 절박해지는 이 섬의 긴박한 정세 속에서, 이들 각자의 움직임을 보면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집요하고 강경한 입당 권고를 거절하면서도 동조자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은, 숭고한 혁명 이념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부담에 대한 속죄, 혹은 자신의 떳떳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합리화인지도 몰랐다. 사진과 태극기를 짝으로 한 '상술'은 작년 이래 끊겼었는데, 최근에 부활한 모양이다. 작년 3.1경찰발포사건 뒤에 제주도로 파견되었다가, 4.3사건 후에 급증한 '반공' 테러 단체인 '서북'은 정식 경찰 외에, 대부분은 법률에도 그넉가 없는 '경관보조' 역이었는데, 봉급이 없어 생활비는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조달하라고 돼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부터 테러 행위를 동반한 '행상'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상한 달걀이나 고기를 식당 등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고, 거기에 저항하기라도 하면 반대로 트집을 잡아 폭행을 하여 살상사건을 일으키거나, 가게 내부를 뒤엎어 부수기도 했다. 무전취식은 보통이었고, 젊은 여자를 보면 닥치는 대로 덮쳤다. '밀무역' 적발을 명목으로, 민가에 집단습격을 가해서 찬장이나 벽장, 집 안을 마구 휘저으며, 일본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가지고 와서 소중히 보관해 둔 비단이나 금품을 강탈하거나, '애국성금'을 칭하며 헌금을 강요했다. '적성 지구(敵性地區)', '빨갱이 소굴'인 제주도에서 '공산당을 때려 죽이는 것이 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그들은, 조금이라도 수상하거나, 아니면 태도가 애매한 청년이나 열두세 살 소년들까지도 닥치는 대로 잡아다 고문하고, 날조된 '빨갱이'라는 죄인을 만들었다. 사상혐의를 씌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만 하면 '때려죽이는 일'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체포된 사람들의 가족이 돈을 써서 자식이나 형제, 친척을 구해 내게 되는데, 그러한 돈이 '서북'들의 부수입이 되었다. 죄인을 날조한 뒤에 '석방 사례'를 요구하거나 하는 것은 경찰도 다르지 않았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서북'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딸을 시집보내거나, 빈발하는 '서북'의 부녀자 폭행사건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서북'과의 정략결혼이 이루어졌는데, 오남주의 여동생이 그런 경우였다. 이승만의 사진과 태극기를 세트로 한 강매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계기로 다시 '애국성금'과의 교환 물건으로 등장한 듯했다. 하숙집으로 돌아오자 이방근은 상의도 벗지 않고 소파 위에 몸을 뉘였다. 피곤했다. 피로에 싸인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배신을 하면 살려 두지 않을 거야. 이봐, 들었나, 귓구멍 속으로 잘 들어갔나, 대답을 해.... 누구의 목소리인가. 다시 한번 그 누군가의 목소리, 다른 사람의 목소리. 살려 두지 않을 테다. 정말로 살려 두지 않겠지, 여기는 전쟁터다. 중국 대륙의 전쟁터, 만주의 전쟁터, 유럽의 전쟁터, 오키나와의 전쟁터, 가는 곳마다 전쟁터다. 배신하면 살려 두지 않을 거야.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에 질문을 하고 있었다. 누구냐, 넌...? 네놈의 실체는 무엇이냐, 넌 어느 전쟁터에 있는 거냐?....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것은, 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 배신이란 무엇인가.... 이방근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가 무엇을 배신하고, 누가 그것을 배신이라 말하며, 그리고 살인의 선고까지 했다는 것인가. 배신이란, 실제로 배신했다고 해도, 그것은 누가 하는 말인가. 나 이방근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이상하다, 생각해 보면 기기묘묘한 일이다. 나는 누구의 대역을, 게다가 사형 집행인의 흉내를 내려고 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고, 누군가에게 명령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머릿속에서 목소리라도 받았단 말인가. 그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살려 두지 않을 거야... 누구냐? 내가 놈을 죽인다...? 어디에 죽일 근거가 있는가. 설령 그가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굳이 참견하여 그를 죽일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가, 유달현의 말마따나, 농담도 적당히 해라, 아닌가. 게다가 사전에 협박, 그것은 명백하게 협박을 할 근거도 없다. 가령, 살려 두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작정인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일... 이방근은 흥이 깨져 버렸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이 아닌가. 그것은 술에 취한, 그래서 고약하게 취한 탓이었다. 그, 분명히 자신 안에서 하나의 등신대 그림자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것은 자신이 아니다... 뭐라고, 어엿한 인간? 자넨 그것로 어엿한 한 인간이 되었다니, 후후... 이방근은 자신의 이사, 가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얌정하게 이사를 한 것뿐야....라고 유달현에게 말했지만, 이사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커다란 선택이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출발이기도 했다. 이 작은 움막 같은 방에 와서, 무슨 출발이 있겠는가. 그러나 움막은 그 넓은 집의, 그야말로 서재의 소파 위에 있었던 것이고, 이 흙냄새 풍기는 창문도 없는 방은 움막이 아니다. 그것을 유달현은 보고 있었다. 소파의 움막에서 나와, 현실에 눈을 뜬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달현이 데리고 나온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나온 장소이고, 행동, 행위로의 길이다. 그러나 자넨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을 이 소파에 앉은 그에게서 들었을 때, 정말로 난 움찔 놀랐다. 거기까지 파악할 능력이 그에게 있었다니(게다가 이 엉뚱하고도 이상한 인상을 주는 이사를, 그는 필연성이라고도 했다). 어리석게도 간과하고 있었다는 께름칙한 느낌까지 들었다. 동시에 나는 그에게 굴욕감마저 느꼈다. 자넨 움막의 주인이 아니야, 지금은 무엇의 주인인지 난 알고 싶다... 유달현의 말처럼 4.3게릴라 봉기를 사전에 알려 주고, 그 혁명적 의의를 강조하면서, 그 녀석이 말하는 움막에서 나를 천천히 끌어내려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나에게 하나의 계기를 가지고 왔다. 그래, 분명히 나의 '기분 좋은' 소파를 위협한 것은 유달현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도래한 하나의 계기를 포함해, 전체적으로는 유달현을 내게 보내고 선택을 강요한 것은 4.3사건 그 자체였다. 4.3의 현실이 내 소파를 파괴한 것이다. 여기는 움막이 아니다. 그래, 내가 그 서재에 그대로 있었다면... 무슨 일이 자신의 밖에서,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움직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른 채, 고인 물처럼, 매너리즘의 허무한 우산 밑에서 시니컬하게 세계를 바라보며 낮잠만 자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살하는 일조차 없이... 개인을 넘어선 현실의 총체, 역사 속에서 나와 스스로를 연결하는 것은 소파의 움막이 아니다. 움막안의 허무의 반추가 아닌 것이다. 세계는 시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자를 벌레처럼 뭉개버리고 말 것이다.
<10권> 그녀는 왜 일본어로 이야기한 것일까. 내가 친일파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내 앞에서 일본어를 사용한 것일까. 이 사회에서 일본어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는 일본어가 나와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귀환한 재일동포라면 몰라도, 좀 의외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나에 대한 뭔가의 도발인가.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때 그녀의 일본어는 내 안에 날을 세우지 않았다. 아니, 그 일본어는 이방근을 앞에 두고, 자신 안의 '친일파'를 향한 칼날, 자학적이고 굴절된 감정을 동반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응석.... 하지만 그 깔끔한 표준어 발음에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나도 그렇고 유원도 역시 ���민지 지배하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유원의 일본어도 상당한 수준이다. 오히려 일본어를 너무 잘 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부아가 치밀기까지 했다. 문난설은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방근씨, 저는 해방 후 한동안 좌익계의 음악가동맹에 가입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멘버가 월북했지만, 저는 당 조직의 문화정책에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인민을 위하기보다도 '당'을 위한 예술이고(이것이 인민을 위해서라고 돼 있지만), 당 방침 때문에 음악활동을 하고 붓을 들고 문학 활동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필요한 혁명을 위해서 포스터를 걸고, 예술은 정치에 절대 종속하는, 예술성의 주장은 당 위에 예술을 두는 반동사상, 예술주의라고 비판되고 매도당합니다. 모두가 프로파간다가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견딜 수 있는 일일까요. '북'에서는 그것이 국가의 통제하에서 이루어집니다. 음, 무서운 일입니다... 예술에 대한 정치적 통제는 죽음의 선고입니다. 이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씨 집안의 딸이 '빨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더할 나위 없는 불명예이며, 강도 살인범이라도 나온 것처럼 치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적어도 그 사회적 입장에서 그러한 자세는 필요하기도 했다), 그러한 점에서 최씨 집안의 생각과 일치하고 있었다. 살인범이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도 중대한 죄악이 반국가범죄, 즉 '빨갱이', '공산주의'가 되는 반공, 멸공입국의 나라, 사회가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요, 그런 셈이지요. 그러니까 대략적인 이유를 알면서도 저는 무심코, 입산에 반대하십니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무심코라기보다도, 제 뒤에 따르는 아니 제 안에 있는 조직이 그렇게 물은 겁니다." "조직이?"... 제 안에 있는 조직, 당. 조직... 다름 아닌 양준오의 입에서 나온 '조직'에 이방근은 움찔하며, 실로 조직의 날카로운 힘의 편린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말했다. "음, 그래, 조직이야. 내게, 입산에 반대냐고 물은 건 조직이야. 그러나 양 동무는, 개인적으로는..., 음, 개인도 조직도, 개인이면서 조직이 되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동무가 조직원이 되기 이전엔 말이지, 그 후에도 그렇지만, 아마 나와 공통된 인식이 있을 터, 있었을 터인데." 공통이라는 것은, 조직의 절대지상성에 대한 비판이었다. 무슨 일에나 반대자에게는 머리에 '반'을 붙여서 반혁명이라 단죄하는 그 절대성과 교조성이었다. (...) "그래, 공통인식이라는 건 혁명당의 도그마성에 대해서였어. 거의, 아니 절대 신성불가침, 신앙과 다름없는 일방적인 공포를 드리운 권위. 좌익만능의 시대, 일제 지배하의 고난에 대한 대가라고 하더라도, 특히 해방 직후에는 그러했지. 다시 전향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데, 혁명을 짊어진 유일한 당, 혁명을 말로만 할 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머리, 용감한 혁명적 언서, 원칙론을 내세울 뿐이고, 그것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식구조에 관한 것이야. 그리고 거듭해서 말하지만, 혁명 앞에 '반'을 붙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단죄하고, 반혁명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자기의 입장을 절대화할 수 있는 머리의 소유자들, 이 얼마나 편리하고 간단한 정신.... 과학이 아닌, 종교적 권위라구. 난 산에서 싸우고 있는 게릴라들을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니야. 조직 자체의 생리, 의식구조가 그렇다는 거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자넨 말했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생각할 수 있듯이, 즉 필요한 일이야. 현실이 그렇게 만들 거라구. 양 동무는 우리의 게릴라 투쟁이 패배할 거라곤, 생각도 못하는 건가. 어쩌면 승리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얘기는 별개이고, 내 얘긴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면 돼. 내 얘기는 우리의 패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거니까. 난 내 자신을 포함해서 굳이 우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자네가 무서운 패배를, 자네 자신이 실제로 은신하게 될 산에서의 투쟁의 패배를 생각하게 된다면, 내가 했던 말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나 자넨 패배에 대해선 생각할 수 없어.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 일부러. 두려운 일에 눈을 감고.... 동무는 그 정도로 로맨티스트인가? 입만 열면 혁명적 낙천주의라고 하는데, 이 말조차 이젠 슬로건일 뿐야. '반혁명'을 단죄할 때에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내가 말하는 건 틀림없는 패배주의, 비관주의야. 그러나 눈을 감고 현실에서 도피한다면 낙천주의도 아무것도 아닌 게지." 어젯밤 양준오는 잠들기 직전 잠자리에서, 만약 확실한 승산이 있을 경우에만 싸움에 응한다면, 세계사를 만드는 건 매우 편안한 일일것이다....라고, 마르크스가 파리코뮌에 즈음하여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구절을 이야기했다. 그렇다, 나도 그 말을 좋아한다, 그건 잘 알려져 있는 말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건 승산이 없더라도 싸우라는 말은 아닐 것이라고, 이방근은 말했다. 기계론적인 운명론이 아니다. 역사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을 담은 말이다.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에서의 우연한 사건의 작용을 중시하여, 우연한 일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세계사는 신비로운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운동의 선두에 선 인간들의 성격도 우연의 하나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말로 승산이 없는 경우에도 싸우라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러나 정의와 용기를 가지고 실행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지 않은 게릴라 사령관 김성달의 오만하고 영웅주의적인 성격도 싸움에서 하나의 우연적 요소, 다분히 마이너스 작용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게릴라의 승리로 이어지는 뭔가 우연한 일은 있을 것인가. 있다고 한다면 기적, 기적뿐이다.... 우리는 승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그것은 결여되어 있었다. 그곳은 함몰돼 있었다. 그 함몰은 어두운 구멍이고, 그 어둠의 구멍에서 탈출 계획이 생겨났다. 무엇이 승리인가? 패배가, 죽음이 승리인가. 때로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방근은 머릿속에서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게릴라 탈출 계획이, 상륙설이 부정을 뒤쫓아 오듯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에 휩싸였다. 어제 송 선주와의 의견 일치로 맛본 기쁨은, 강몽구의 한마디에 갑자기 암전된 것 같았다. 그렇고말고, 게릴라 탈출.... 가당찮은 생각이다. 이것은 조직의 영역이며, 일개 개인인 이방근이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1권> "과연 그건 그렇군. 무엇이든지 해 보지 않으면, 구체적인 결과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일전에 양 동무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그러나, 그건 경험주의라는 것이야, 안 그런가. 무엇이든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경험을 할 때까지, 시간이, 시대가, 인생이 기다려 줄까.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들은 파멸해 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겠지." 방화에 저항한 마을 사람은 게릴라의 내통자, '빨갱이'의 협력자로 간주되어, 군경에게 구타, 연행되었고, 게릴라에게 협력했다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아 '빨갱이'로 사살되었다. 2, 3일 전의 일이지만, 해안 마을에 소개한 피난민의 일부를 전신주 가설 공사에 참가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동원됐다가 돌아가는 길에 십여 명이 보리밭에서 집단 사살되었다. 사살당한 사람들은 게릴라라고 하여 오른쪽 귀가 베어졌다. 그 귀를 수집하면서 죽는 자가 늘어났다. '게릴라 사냥'에 경찰의 보상금이 걸려 있어, 그 수를 증명하기 위해 사살당한 게릴라의 오른쪽 귀를 증거물로 제출하도록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오른쪽 귀만을 잘라내 수를 확인했지만, 다른 토벌대가 남은 왼쪽 귀를 잘라 보상금을 타내려고 하자, 일이 복잡하게 꼬였고, 결국 머리를 잘라 증거물로 제출하게 했다. 하루라도 유혈을 보지 않는 날이 없는 이 땅에는, 마치 피에 굶주린 흡혈 지령(地靈)이라도 들어붙은 것 같았다. 이 국토에 미군이 계속 주둔을 하고, 권력을 손에 넣은 친일파가 설친다. 과거의 매국노였던 그들이 '반공 애국'을 외치며 국시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배후에서 은연중에 힘을 보여 주고 있던 미군이 공공연하게 표면에 나섰다. 이승만 정부의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 준장의 직접 지휘하에 미군 비행기, 장갑차, 함정을 출동시켜 해안에서 81밀리 박격포로 엄호 사격을 가하���서 LST(상륙용 함정)를 사용해 토벌대를 상륙시키고, 수륙 협공작전을 취했다고 한다. 해방 후 첫 계엄령포고와 대한민국 성립 직후의 미군에 의한 대규모 진압 작전이었다. 정규군의 만만치 않은 반란인 만큼 정부와 미군에게 준 충격은 몹시 컸던 것이었다. 어떨까. 그들은 자기 자식 앞에서 학살 행위는 하지 않겠지. 아니, 필요에 따라서 죽인다, 돼지를 죽이듯이,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돼지 이하의 빨갱이란 해충이다. 그들의 행위는 자식에 대한 설명이라든가, 설명을 촉구하는 양심을 넘어선 것, 상대는 파괴하는 사디즘이다. 자신의 충동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더 파괴로 나아가고, 폭력으로 지배하고, 상대를 절멸시키는 것이 쾌락, 쾌락은 도덕을 능가한다. 그들의 힘, 폭력은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북'에서 쫓겨난 실향민인 '서북'들의 고립감, 증오, 무력감이 그들의 사디즘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서북'들은 늘 공포에 노출된 채 '타향'에 산다. 길을 걸어도 반드시 몇 명의 집단을 이루는 것은 단지 방어만이 아닌, 고립감에서 오는 공포의 표출이고, 그들의 잔한, 파괴성에 명분을 주는 것이 반공정신, 멸공, 반공 십자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북(서북)'과 '남(제주도)'이라는 상호 적대, 증오는 서울 정권의 주변지역에 대한 차별에 의해 이용당하고, 증폭되고 있는 것이리라. "자넨 제주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 모든 무도, 잔학,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밀항선으로 일본을 향하고 있어. 난 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신이 우주를 만들었다고 하자. 신이 만들었다고 하기는 너무나도 형편없고 편파적인 이 세계. 불합리하고, 불공형하고, 잔학한 세계인데도, 용케도 기독교��들은 신을 믿고 있지. 죽음은 우리들의 적이고, 신을 믿는 것으로 사후에도 신의 품에 안기어, 요컨대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그들의 신에 대한 길이야.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허무한 암흑이 있을 뿐이고, 인간은 목적이 없어져, 거기에서 찰나주의, 쾌락, 방탕, 악행, 무슨 짓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고 하는, 신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인생밖에 남지 않는다고 목사는 설교하지. 목사가 학살당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찬송가를 부르고...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인간에게 허락된다', 이것은 애초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에겐 상관없는 주제지만, 목사는 이 러시아 소설 주인공의 대사를 흉내 낸 듯한 표현을 쓴다네. 다만, 그 목사는 그런 소설 속의 대사를 모르겠지만 말야. 제주의 전체 도민이 학살된다면, 모든 도민이 영원한 생명으로 되살아나는 건가. 어떤가. 섬은 학살의 절정에 있네." "이봐, 갑판 위를 질질 끌고 가지 못하게 해! 말리라고! 유달현을 어떻게 한다는 건가, 인민재판을 하는 거야?" "청년 대중의 의지입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일어서자, 옆방의 문을 열고 이쪽으로 나온, 역시 뱃멀미 때문에 수척해진 영옥과 눈이 마주쳤다. 죽었다.... 이럴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던 것이다. 힘이 발밑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싸늘한 느낌이 전신의 혈관을 달렸다. 순간, 꿈을 꾸는 듯한 비현실적인 감각 속에 서 있었다. 영화 속 슬로모션의 한 장면, ....돌발적이지 않는 한, 살인은 관념 속에서 이루어진다. 살의의 핵이 세포 분열을 하며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이 형태를 지닌 채 스스로 움직인다. 관념에서 현실로의 이행.... 꿈과 같은 감각의 상태에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배신을 하면 살려 두지 않겠어. 맞다, 분명히 살의가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일이 마스트 위의 유달현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넌 날 죽이려고 하고 있어. 악마 같은 자식, 네 스스로의 손으로 유달현을 죽여 봐라.... 아니, 인과관계가 있다. 살의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였다...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의가 살해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이방근은 자신 안에서 확인하고 있었다. 죽이는 순간은 일상의 가장 응축된 부정, 비일상, 비현실화, 꿈의 순간과 겹쳤다. 밤의 배 위에서 유달현의 죽음을 확인했을 때의 꿈과 같은 상태... 살의의 팽창과 지속이 야기하는 긴장은 이윽고 확고한 일상생활의 파괴, 비현실화, 비현실적인 현실, 꿈에서 현실로의 이행에 이르렀다. 이방근의 내부에서 꿈으로부터 현실로의 절차의 인식 그 자체가,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로서의 살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 살의는 거친 밤바다의 마스트 위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왜 살의를 인정하고, 살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인가. 살인 그 자체보다도, 살인에 견디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반사회, 반인간, 자신의 파멸에 대한 공포. 그 공포를 넘는 것이 죽음이라는 금기, 죽이지 말라는 것이며, 살인자는 그 나름대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살해의 명분이 필요하게 된다. 어떻게 저지른 살인을 견딜 것인가. 명분과, 그리고 '속죄'. 이방근은 자신의 간접적인 살해를 인정하는 것으로, 유달현이 악도 아니고, 자신이 선도 아닌, 문제는 단순한 선악을 넘어서 그 밖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조작이 무의식 층의 한없이 큰 공간이 아닌, 빙산의 일각인 의식표층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도저히, 신경 다발이 빙산 밑에서 분출하는 망상의 난무(亂舞)에 한시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의식을 계속 흡수하는 무의식층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간다.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무의식 층은 치유의 장소. 학살의 땅에서도 사람들은 의식을 죽이며 계속해서 살아간다. 혁명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계급의 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폭력적 장치가, 과도기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황동성뿐만이 아니라, 당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반혁명 측의 모든 강제적 폭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황동성이 말한 적이 있다. 아니, 혁명 측의 폭력 장치가 계급의 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내부에 대해서도 '적', '반혁명', '반당'이라는 이름하에 작동할 수 있다는 이방근에 대해, 황동성은 강대한 적과 대치하고 있는 혁명당에는 철의 규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의 자유는 혁명에 종속된다. 그것이 혁명이라는 역사적 과도기이며 우리들 존재의 역사성이 된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자유가 그 절대적인 과도기의, 역사의 청류가 아닌 탁류에 삼켜지는 것을 좋아할 수 없다. 그렇다, 본질적으로 '혁명'의 존재방식에 절망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나의 생각이 삼면경(三面鏡)에 난반사(亂反射)되는 한 측명이, '서북'에게는 때마침 반공으로서, 그것도 어딘지 모르게 눈부시기까지 한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12권> 핏빛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이 혁명 달성, 승리의 담보라고 역설한 주 아무개. 그는 이미 이 섬을 떠났다. 혁명의 길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며, 혁명에는 피를 두려워하고 죽음을 슬퍼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이 섬을 떠났다. 남승지도 긴장으로 몸서리를 쳤던 주 아무개의 말이지만, 임 동무에게는 오류를 범한 경우에는 항상 망설이지 말고,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말이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다소 수사적인 이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그의 입버릇이 돼 있었다. 원칙의 고수가 버릇이 될 정도로 혁명가의 기질이 되는 것을, 결국 체현화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섬에서 죽음은 일상다반사이고, 살육을 면한 자는 죽음과 서로 이웃한 공포의 베일 안에 있었다. 죽음은 꿈과의 경계를 넘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오기(벚나무) 곤봉의 구타, 고문, 일본도와 총검, 총탄과 휘발유를 뿌린 불... 모든 살인의 도구를 가지고 찾아온다. 장난으로, 쾌락에 취해 게걸스럽게 먹듯이 죽인다. 왜, 놈들은 죽일 수 없는가. 왜 계속 살해당하는데도 죽일 수 없는가. 무력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죽이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정당방위'라는 법률적 용어도 있지 않는가. 살생, 죽여서는 안 된다. 죽이는 것은 살해를 당하는 것과 같은 것.... 이방근은 참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다. 운이 좋아서. 비유적으로 말하면 너무나도 자유롭기에, 살해를 당해도 좋다고 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부자유한 사람은 그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남승지여, 내가 자유롭다는 것은 결국 방자하고 제멋대로라는 것이겠지.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래, 틀림없이 너무나 자유로워 타자를 침해할 수 있는 인간은 역설적으로 살해를 당할 '자유'를 가져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살해를 당하는 것이 자유라고 의식하는 위대한 정신과 감정이 필요하다. 가장 부자유한 인간이 있어서, 내가 가장 자유롭기 때문에 죽인다고 한다면, 난 살해를 당해도 좋다. 그게 순리에 맞다. 하지만 자유는 그런 게 아니다. 타자를 지배하지 않고, 자신 안에 지배할 필요가 없는, 권력을 추구할 필요가 없는 자유의 힘을 가진다. 살인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를 잃기 때문에 자살한다. 인간은 남을 죽이기 전에 적어도 동시에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자살할 수 있는 인간은 살인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자유로운 인간은 남을 죽여 타자를 침해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이기 전에 스스로를 죽이는, 결국 자살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토벌대도 상당한 희생자를 낸 것 같지만, 죽음과 동시에 생과 사 모든 것이 끝난다. 죽음도 삶도 없었다. 더 이상 게릴라도 국방군도 아니었다. 조선인도 미국인도 아니다. 가치도 식별도, 살아 있는 쪽의 주장, 혹은 사정에 지나지 않는다. 게릴라 투쟁도, 반미고 뭐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생명이 사라지고, 의식이 사라지고, 거기에 있는 것은 거무스름한 화산암의 돌이다. 죽음은, 생사는 그저 살아 있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소나 돼지라면 식용이라도 되지만,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무가치한, 아니 유해한 것....의 박멸. '신성한 대한민국의 존립에 30만 제주도민은 필요 없다'. 바리케이드의 경찰들이 읍내의 길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창틀 속의 구도가 조금 움직여, 기계장치처럼 움직여, 무기적으로 살육이 생기고 있다. 거기에는 우리들의 일상 속을 우왕좌왕하고 있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것을 초월하는 파괴와 쾌락의 본능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살인이라는 사실이 있고 비명이 들려온다. 공포가 분비하는 체액이 투명하게 응축되어 서서히 공기보다 무겁게 기화하면서 분지의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광장의 베일을 한 장 젖히면 거기에 있는 것은 얼어붙은 공포의 광경, 정신이 얼어붙는 광경. 끈적끈적한 피가 달라붙은 머리의 대열은, 사람들의 기를 빨아들여 땅으로 보낸다. 공포 앞에서 정신은 불능이 된다. 증오도 분노의 감정도 정의도 일체의 정열이 시들고, 살의도 사라진다. 죽여야 하는 이유, 인민재판에서 처형해야 할 이유, 죄상이 있는데도 죽이지 못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도덕적 이유는 없을 터였다. 법의 이름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살인에 그들 자신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명분이라는 우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는 도피도 된다. 살인이 악이라면, 재판이든, 전쟁이든 마찬가지다.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살인의 결과를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견디기 힘든가.... 증기와 같은 예감은 벗어던져라. 쫓아버려라. 죽이지 말지어다. 추상적인, 생명에 대한 외경인가? 아니다, 어리석기는. 전장의 수라장에서 죽임을 당하는 쪽인 이쪽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은? 자유로운 정신은 죽이기 전에 자살한다, 따라서 죽이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인가, 자신을 지탱해 온 것이 이제는 관념적인 억지 이론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1945년 8월 광복까지의, 마지막 몇 년간을 민족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변절하지 않고 견뎌 내야만 했었다. 백 년도 아닌 기껏 몇 년간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를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민족을 배신하고, 민족사에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그렇다, 기껏 몇 년의 역사를 예상하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가슴을 치는 한마디였다. 모습만 보이는 것만으로 증언의 필요는 없다.... 무서운 말이었다. 증언의 내용은 이미 정세용 본인 앞에서 이방근이 폭로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당신이 고 경위를 죽였다. 사살한 것이다. 응접실 소파를 차고 일어난 그의 등을 향해 퍼부었을 때의 광경이, 지금 온몸의 전율과 함께 되살아났다. "장전돼 있겠지." 남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방근의 움직임에 주위가 마른침을 삼켰다. 실패해선 안 된다. 눈앞까지, 2미터까지 다가가 심장을 겨누고 쏜다. 이상하다. 권총을 쥔 순간, 몹시 취해 무중력 상태가 된 듯한 감정이 전신을 휘감아, 이방근은 거의 권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권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로 단단히 잡고 있으면서도, 그 힘이 닿지 않고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심신을 적셨다. 권총을 쥔 채로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이 얼어 버린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쏘지 못하고 만다! 필사적으로 질타하는 목소리. 두 사람만의 이 세상과 격리된 듯한 장소에서, 정세용과 결말을 짓는다....  막연하게 상상하고 있던 장소가, 이곳이었던가. (...) 풀면 끝이다...! 오른팔이 표적을 향해 움직였다. 전신이 폭발하는 무시무시한 마찰이 얼음의 열을 발하며 등을 뛰어오른다. 풀지 마! 눈가리개가 풀리자 2미터 거리에서 시선이 충돌했고, 정세용이 끼-악 하고 무서운 비명을 지른 순간, 거의 지옥의 불꽃이 들여다보이는 그 눈을 향해 발사되려던 권총의 총구멍이 왼쪽 가슴을 향해 불을 뿜었다. 찌른 칼날을 뽑는 듯한 감각이 이방근의 전신을 서서히 달렸다. (...) 그는 살해 행위로부터, 말을 걸어와 어깨에 손이 닿기까지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슴을 찌른 단도를 뽑아내는 감각이 손에 남아 있는 듯해서 그것이 자기 손의 연장선에서 살인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간신히 납득시키고 있었다. 권총 사살이란 사실은 합선된 퓨즈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나의 이 정신 상태는 뭔가. 살인에 대해 이것저것 얼마나 많이 생각해 왔던가. 죽일 수 없는 이유는, 살인이라는 행위보다도 그 결과가 견디기 힘들다, 그러한 이유에서 오는 살해에 대한 공포였을 터이지만, 그것을 넘어선 결과의 이 상태는, 살해에 졌다는 말인가. 살인 이전에 두려워하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 지금 그렇게 되었다. 그만큼 고민한 끝에 행한 살해의 대가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순간에 모든 존재가 걸린 정열의 폭발 결과는 참으로 어이없고 공허했다. 현실의 피막이 벗겨져 완성된 꿈에 삼켜진 몸이 아직 충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꿈의 광경으로 떠오르는 눈 덮인 산으로 오르내린 왕복이, 살해할 가치가 있는 여정이었던가. 죽은 지금, 그는 이미 경찰 간부도 친척도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고, 한 남자의 죽음이었다. 이곳은 전장이다. 동서고금, 끝나는 일 없는 싸움이 계속되어온 전장이다. 이곳은 전장이 아니다. 평화로운 섬이었다. 지배자가, 강력한 힘이 이곳을 전장으로 만들었다. 전장이 아니고서는, 현 상황에 몸을 담그고, 절망에 견딜 수는 없을 것이다. 견디는 것이 절망을 넘고 있었다. 잊는 것, 체념하는 것, 무의식으로 점점 가라앉게 만드는 것. 관덕정 광장 옆을 지나는 이방근은 시체의 산, 각각의 살해결과를 바라보면서 이전보다 더욱 이 절망을 견딜 수 있는, 죽은 자들과의 불가사의한 거리감, 학살의 공포와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했다. 살인자의 눈을 하고, 자신이 살인자라는 자각과 함께 생겨난 것이었다. 살인자인 까닭에 보다 절망을 견딜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이러한 종류의 힘이 살인에 대한 면역을 동반한 무서운 타락의 징조임을 느끼고 있었다. (...) 이방근이 권총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새로운 살해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살해의 기억을 스스로 되살린 손의 감촉이 권총을 원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죽일 수는 있다. 그는 살육의 장소에서 살아가는 자의 무감각, 익숙함을 초월한 '강함'을 갖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오싹했다. 살인의 공포, 살인의 결과를 견뎌 내는 것에 대한 공포가 지금 내 안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또다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다시가 아니다. 반복해서 죽일 수 있는, 비약하는 이상한 내면의 감각이었다. 연속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의 연쇄적인 내부의 연결고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따. 지금은 1949년 6월...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드는 참이다. 세계대전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승리. 민주주의 국가의 기수, 미국. 미국이 지배하에서 이루어진, 본래의 인간 형태를 갖추지 않은 죽은 자들의 전시. 이 나라에 인간이 계속 존재한다면, 이러한 '전시'는, 야만성의 전시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 이방근은 토벌의 종식과 동시에, 자기 자신도 서서히 종식을 향하고 있다는 기묘한 감각의 일상 속에 있었다. 그리고 살육이 끝남에 따라, 살인자로서 학살의 공포에 맞서 견딜 수 있었던 평형감각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의식했다. 새로운 상황과의 관계에 의한 자기 붕괴이고, 이제는 살인자라는 존재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정세용을 사살한 뒤의 소나무 숲에 쌓인 눈 위의 공백이었다. 이대로라면, 난 살인을 반복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산천단에 겨우 당도하여, 이방근은 우선 벼랑길 옆의 목탁영감이 살았던 깊지 않은 나지막한 동굴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노인이 있을리 만무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냄비하나와 이가 빠진 식기 두 개가 남겨져 있었다. 폐허로 변한 산천단에서, 동굴에 혼자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사살된 노인의 시신이 동굴 입구나 안쪽에 뒹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며 올라왔지만, 곶처럼 돌출된 벼랑 뒤쪽의 포교당 작은 건물이 불탄 자리에도 노인의 자취는 없었다. 종일, 동굴의 돌판 위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끊임없이 염불을 읊는 기괴한 단신의 노인을, 토벌대가 어디론가 연행하여 사살한 것인가. 아니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인가. 끝 없는 허공의 구름처럼 어딘가로, 어딘가가 아닌, 본래의 무(無)로 말인가.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의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살고 죽고 오고감이 모두 이와 같도다 (서산대사의 시) 살육자들이 승리자로서 서울로 개선한 뒤, 폐허의 광야를 가로질러 가는 바람 속에 허무가 있는가. 섬을 뒤덮은 시체가 허무를 부정한다. 죽음의 폐허에 허무는 없는 것이다. 아득한 고원의, 보다 저 멀리, 초 여름의 햇볕에 반짝이는 부도으이 바다가 보였다. 파란 허공에 총성이 울렸다. -김석범, '화산도火山島' 중에서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