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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트럼프는 재앙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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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8 트럼프는 재앙의 시작인가?

미래에셋대우증권

경제

허재환

경제분석

트럼프는 재앙의 시작인가?

이제 관심은 바야흐로 미국 대선

9월 BOJ와 FOMC 이후 관심은 미국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 통화정책은 당분간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통화정책은 본원통화량을 늘리는 방식에서 장단기 금리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인플레를 목표치(2%) 이상으로 높이도록 하면서도 10년 만기 장기금리는 제로 수준에서 유지시킨다는 입장이다(그림1). 사실 앞뒤가 잘 안 맞아 보인다. 그래도 일단은 장기 금리가 급등할 위험은 낮아졌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연준의 말은 매파적이다. 금리 동결을 반대한 연준 위원들이 세 명이다. 그러나 행동은 비둘기적이다. 연준은 금리 인상 조건이 강화되었지만 추가적인 증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연준 위원들은 기준금리 인상 전망치를 하향했다(그림2). 미국 장기 금리 역시 우려할 만큼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9월 ECB 회의에서 드라기 총재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 발생했던 중앙은행들의 자산매입 축소 우려(Tapering)는 당분간 잠잠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관심은 TV토론을 시작으로 미국 대선으로 옮겨가고 있다.

금융시장이 미국 대선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는 않은 듯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정책 차이가 너무 극명하다. 이번처럼 두 후보의 정책 간극이 심한 적이 있을까 싶다. 정책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 미국 기업들은 투자 등 의사결정을 늦출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브렉시트로 인한 트라우마다. 브렉시트 당시에 많이 언급된 것처럼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계층의 특성(고령층/저학력/블루칼라)과 미국에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계층의 특성은 유사하다(그림3). 첫 TV토론에서 클린턴 후보가 좀더 나았다고 하나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후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에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투표 이전 2015년 11월 이후 절하되었다. 미국 달러도 절하되기는 했다. 그러나 미국 달러는 아직 비싸다(그림4). 정치 불확실성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브렉시트 직후와 같은 과민반응은 자제해야

이처럼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은 예민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막상 브렉시트 직후와 같은 과민한 비관론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 투표 당일까지도 실제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소수였다. 그러다가 막상 브렉시트가 현실화되자 심리는 일제히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브렉시트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한 반면 브렉시트가 실제로 영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과대 평가를 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 제조업 PMI는 브렉시트 전보다 높다(그림5).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다. 금융시장은 아직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듯 하다. 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트럼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정책으로만 보면 미국 달러는 지금보다 약세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후보는 달러 공급을 늘려 부채를 갚겠다거나 보호 무역주의에 해당하는 언급을 해왔다. 트럼프 후보가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하면 교역 당사국들의 통화는 절상되고 달러는 절하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가 나빠진다면 그때 달러는 절상되겠지만 초기에는 미국 달러 약세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 입장에서만 보면 미국 달러 약세가 무조건 악재는 아니다. 미국 달러가 강해지는 즉 절상되는 국면에서 금융시장 여건은 악화되었다. 반대로 미국 달러가 약해지는 국면에서 금융시장 여건은 개선되었다(그림6). 짧게만 보면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금융시장에서 반드시 악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등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

그렇다고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호재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트럼프 후보의 등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다. 트럼프 후보가 미국이나 세계 경제를 확 바꾸어 버리기 보다 트럼프 후보 자체가 금융위기 이후 시대의 변화를 의미하는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량이 둔화되었다(그림7). 교역량이 감소하자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또한 미국 내 부의 불평등 문제도 악화되고 있다(그림8). 트럼프 후보는 자국 기업들과 노동자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보호무역주의/고립주의 정책들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교역량이 반등하지 않는다면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실제 클린턴 후보조차 TPP와 관련해서는 재협상을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후보가 이전에 없던 보호 무역주의나 포퓰리즘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 변화와 그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요구들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을 과소 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트럼프 정책의 파괴력을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다.

19세기 후반의 고립주의와 포퓰리즘

흥미로운 점은 지금과 유사한 국면을 오래 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립주의의 단적인 사례가 있다. 1882년에 미국에서는 중국 이민자를 금지하는 법(중국인 배척법, Chinese Exclusion Law)을 만들었다(그림9). 당시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골드러시(1848~55년)과 대륙횡단 철도건설 등 노동자 수요가 부족했는데 이를 메우기 위해 중국 이민자가 유입되었다. 하지만 1880년대부터 디플레가 지속되자 이민을 반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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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다. 중국인 배척법은 미국 역사상 인종을 문제 삼아 이민을 제한한 법안으로는 가장 강도가 높았다. 트럼프 후보가 멕시코 국경을 봉쇄해 불법 이민자들을 불허하겠다는 공약을 연상시킨다(그림10).

미국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판을 쳤다. 1879년 독일에서는 수입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인상했다. 1887년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관세를 올렸다. 1892년 프랑스도 이러한 관세 인상에 동참했다.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1887년 미국에서는 “People’s Party(인민당)”라는 당이 등장했다. 미국 인민당은 19세기 후반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자 경제적 고통을 당했던 남부와 서부 농민들의 불만에서 출발했다. 인민당은 농본주의, 대중주의, 그리고 금보다 은을 늘리는 통화정책을 주장했다.

1896년 인민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는 미국 대선 경선에서 금은복본위제(공급이 많은 은을 기초로 통화공급을 늘리자는 주장)를 통한 디플레 타개책을 공약으로 주장했다(그림11). 이 때 브라이언 후보와 은본위제를 상징적으로 비유한 문학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다(그림12).

당시 상황과 현재를 비교해 보면 유사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던 이러한 고립주의/보호무역주의/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나왔던 원인도 지금과 아주 다르지 않다. 바로 디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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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1861~65년)이 끝나자 미국은 다시 금 본위제로 회귀했다. 이에 통화공급이 감소했다. 반면 1870년대 농산물 공급이 급증했다. 남북전쟁 이후 재현된 철도건설 붐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당시 건설에 가담했던 기업 부채는 급격히 늘고 철도 공급과잉은 심해졌다. 1870년 이후 미국 물가는 30년 동안 줄곧 하락했다.

디플레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된 통화정책도 지금과 유사하다. 1874년 미국 의회는 남북전쟁 당시 발행했던 임시 현금(Greenback)을 발행해 통화량을 늘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랜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1878년과 1890년 미국 의회는 은 구매법(Silver Purchase Act, 1890년 셔먼법으로 전환)을 통해 통화량을 늘리고자 했다. 매월 200만에서 400만 달러 규모의 은을 매입하고, 금화 1대 16의 비율로 교환해 은전을 주조했다. 1890년에는 매월 450만 달러로 규모를 늘렸다. 일종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후 통화량은 늘었지만 통화가치 우려가 커졌을 뿐 인플레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도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화량을 늘리고 자산을 매입하고 있지만 인플레는 미미하다.

외교적으로는 신제국주의가 등장했다. 유럽은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쿠바와 하와이/푸에르토리코를 합병했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필리핀을 식민지로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과 물리적 충돌이 나타났다. 최근 남중국해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갈등을 보면 당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행히 포퓰리즘이 오래가지는 않아

하지만 19세기 후반 디플레로 인한 포퓰리즘 경향은 영원하지는 않았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미국 물가는 50% 하락했다(1882년 이후로는 23% 하락). 그러나 포퓰리즘 움직임이 극심했던 1890년대 후반 이후 물가는 상승하기 시작했다(그림15). 이후 1907년 포퓰리즘을 주장했던 인민당은 결국 해산되었다.

그런데 당시 물가가 상승했던 계기는 좀 엉뚱했다. 1898년 알래스카 클론다이크 강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캐나다와 남아공에서도 금광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금 추출 기술이 개발되었다. 전신/전화 등 새로운 기술로 인한 혁신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통화량은 늘어나고 경기는 서서히 살아났다. 때마침 아르헨티나에서 흉작이 발생해 농산물 가격이 반등한 점도 디플레를 탈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정책은 인플레와 버블을 용인하는 방향

역사적 사실이 주는 교훈은 시대 변화가 정치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시대 변화를 완전히 거스르기는 어렵다. 대신 인플레 기대가 되살아 나는지, 또는 기술혁신이 나타나는 지가 관건이다.

필자의 상상력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 연준이나 각국 정부는 얼마간이라도 인플레 과열 또는 버블을 용인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지난주 연준의 결정도 인플레 과열 또는 자산가격 버블을 용인하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약간 자산 버블의 징후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은행들의 상업용 대출은 최근 둔화되긴 했으나 8.5%을 상회한다. 부동산 대출은 2008년 4월 이후 가장 높다. M2 증가율도 7.5%다(그림17). 명목 성장률의 2배가 넘는다. 신용 증가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하지만 통화정책과 금융여건만 보면 자산가격에 우호적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장미 빛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부진하다. GDP 상 설비투자는 전년대비 (-)다. 그렇다면 미국 기업들로 대출되거나 조달된 자금의 상당부분이 설비투자가 아닌 다른 쪽에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자사주 매입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S&P500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를 보면 2분기에 다소 줄긴 했으나 2007~08년 이후 가장 높다(그림18). 저금리 탓에 기업들로 조달된 자금이 증시로만 유입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당분간 이러한 흐름이 반전될 징후는 희박하다. 금리가 낮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그만큼 금리 변화에 미국 주식시장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길게 보면 투자자들은 미국 정치 일정보다 일부 과열과 이후 나타날 수 있는 변동성 확대를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걱정

미국 대선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금융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재앙이 될 것으로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트럼프 후보가 부상하고 있는 사실은 금융위기 이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징후이지 원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주목할 점은 인플레 기대와 기술혁신이다. 19세기 후반 농산물 가격 하락과 공급과잉으로 시작된 디플레는 포퓰리즘(금은본위제)과 보호 무역주의(중국인 배척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890년대 후반 인플레가 되살아나고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우려들은 완화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일본과 미국 통화정책의 결정은 의미가 있다. BOJ가 장단기 금리 통제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산매입 정책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반면 연준의 결정은 미국 경제가 금리를 올릴 정도의 체력이 안 된다는 의미보다 연준이 얼마간의 과열과 버블을 용인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필자의 생각에는 트럼프 당선에 따른 불안은 한시적일 전망이다. 연말까지 금융시장 여건은 의외로 우호적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금융시장이 실제 여건에 비해 과열되거나 내년에 나타날 수 있는 변동성 확대 위험은 조금씩 누적되고 있다. 트럼프 위험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산가격 상승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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