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노란색 접시를 교차로 놓고 하얀 테이블보에서 우리는 창백함과 순연함과 고요함과 적막함을 봅니다
천사와 천국은 눈 내리는 들에서 풀을 뜯는 흰 소
아이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언제나 좋게 들립니다
케이크를 잘라 아이들 앞에 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소리를 먹는 생물을 몰래 키웁니다
드물게 성인이 되도록 그 생물을 키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수한 잔금이 서로 밀치고 있는데 물로 적셔주어야 부서지지 않습니다
찻잔과 찻주전자와 성질이 유사할지도 모릅니다 애지중지 혼자 내는 소리를
아낌없이 주어야 자라납니다
케이크 더 줄까, 물어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가장 오랫동안 울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생일에 케이크를 먹는다는 사실이 무섭다고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벌레가 웁니다 새가 웁니다 고양이가 사자가 원숭이, 당나귀가 웁니다 소리나는 것은 모두 울립니다 나는 벌써 수년간 눈물이 안 났던 것 같습니다 얼굴 씻을까, 데리고 나가 더운물을 틀어줍니다 보일러가 웁니다 들리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물에 들리지 않게 우는 아이도 꾸준히 자라납니다
신은 우리를 가리켜 시가로 흐르는 강이나 강을 가로지르는 시가와 같이 떼어놓지 못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지느러미 혹은 고통보다 먼저 태어나 그 속에 몸을 버려두었다 헤엄을 배우는 동안 비늘이 떨어져나갔고 나는 그 경험을 간직할 수도 간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설탕통을 쏟자 다시 떠오르는 기억
해변의 이층 반
창을 열면 멀리 흰 포말이 이는
낮은 담장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는 너
잠수 장비들이 그을린 어때에 걸쳐져 있고
팔다리에 달라붙은 모래알이 슈거처럼 빛나고
담장 아래 잠든 고양이들
그날의 대화 길어진 여름의 대낮
우리 뒤를 따라오던 젖은 유령
책상에 쏟아진 검은 잉크가 괘종에 맞춰 뚝뚝 떨어지던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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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놓을 수 있는 존재들; 혼혈과 쌍둥이 품속에서 굵어져가는 십자가 자주 애절한 사랑으로 창을 바라보던 연인들>
무너진다는 말과 이층에서 끝난 계단
계단의 어둠이 끝날 때까지 몽상에 잠기는 짓
그것 또한 또다른 한 장면에 불과하다...... 붉은빛 푸른 물고기 물속의 물고기가 흩어질 시간 앞에서 사라질 눈물을 흘리고 있다.
라팔리스의 진리(Lapalissade). 프랑스의 귀족이며 군인인 자크 드 샤반 드 라팔리스(Jacques II de Chanbannes de La Palice), 1470~1525)의 비석에서 유래한 말로 '자명한 진리'를 뜻한다. 그가 죽은 뒤 그를 기리는 무덤에 "슬프도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부러움을 샀을 텐데. (Hélas s'il n'était pas mort / Il ferait encore envie.)"라는 비명이 새겨졌다. 후세에 이 비명의 후반부가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을 텐데. (Il ferait encore envie.)"로 잘못 읽힌 경과 자명한 사실을 의미하는 문장이 되었다. 그 후 다시 그 인물과 관련하여 "라팔리스의 진리 (vérités de La Palisse)" 라고 불리는 자명한 사실들을 담은 베르나르 드 라모누아의 풍자 노래가 유행했으니 바로 "죽기 십오 분 전에 그는 아직 살아 있었네. (Un quart d'heure avant sa mort, il était encore en vie)"라는 내용의 노래다.
1차에는 청요리 먹었고 그가 냈다. 맛주머니가 두둑한, 유명 블로거 겸 유튜버 되시는 분의 추천 맛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쟁짜와 고탕은 맛있었다. 다만 내 기대가 좀 컸다. 내가 소개하는 식당에서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아주 흐뭇하다. 수척한 딸처럼 그릇을 싹 비웠다.
2차로는 맥주 마셨다. 카우치를 되는 대로 뭉개면서 마시는 맥주가 어찌나 달고 술술 넘어가던지. 트림도 안 나왔다. 좋은 카우치를 꼭 장만하자고 함께 다짐했다. 상상 그대로의 레브라도 리트리버가 테이블을 옮겨다니며 고개를 드밀었다. 온순한 개의 목을 어물어물 긁어주었다. 오래 머물러주길 기대했지만 역시 내 기대가 컸다. 호프 개 연차는 몰라도 영업 잘하더라. 동물은 어렵다.
응당 내가 낼 차례였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셌다. 카드 긁고 머리 속으로 좀스럽게 저울질 했다. 다시 한 번 용기냈다. 3차 가자고. 그리고 취했다. 이후에는 궁상 떨었다. 애당초 그럴 생각이었다. 궁상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기대가 있다니.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부러라도 입술을 움직여 음절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 언어의 대부분이 이런 식일 테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대도 말하지 않으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질 거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말한다는 건, 이쪽 기분이 이상해지는 일. 왠지 섬뜩할 때는 누군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