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1』 1권 지옥으로의 편력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
✒️단테 알리기에로(지은이)
📔김용선(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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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곡
단테가 하늘의 뜻을 따라 존경하던 스승 베르길리우스를 만나 그로부터 지옥과 연옥과 천국으로의 편력遍歷을 권면 받는다.
너는 그 길에서 절망하는 소리를 들으며,
두 번째 죽음을 절규하며
지옥 형벌을 받는 망령들을 보게 될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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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곡
단테 집안과 서로 대립했던 그를 통해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될 운명인 것을 알게된다. 두시인이 일곱 번째 지옥으로 향한다.
내가 말하길.
"내조상들이 쫏겨나긴 했어도
다시 조국으로 돌아 왔지만
너희 존속은 다시 돌아오는 기술이 없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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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곡
단테가 연민의 정에 사로잡히는모습을 보며 베르길리우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버림이 사는 길이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에 연민을 갖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 무엇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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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곡
8원의 열 번째 굴에서 위조범들이 가혹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도인 정의가 세상에서 위조한 자들을 벌한다
우리가 망령들의 신음소리를 듣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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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곡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좁은 통로를 지나며 지옥을 벗어난다.
어두운 굴을 나와 하늘이 실어 나르는 아름다운 별들을 본다.
스승과 제자가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향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지옥 여행을 마무리 한다.
둥글게 열린 구멍을 통해
하늘이 옮기는 아름다운 것들이 나타나더라.
그는 앞서고 나는 뒤를 따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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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단테의 신곡 1권 지옥으로의 편력. 편력(遍歷) '여러 경험을 한다. 널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 ? 고로 지옥을 돌아다니며 여러경험을 한다는 뜻이다. 신곡은 지옥,연옥,천국 을 배경으로 나눠져 있다. 책 내용은. 그리스 로마신화부터 신구약 성경 까지 시대의 부조리와 부도덕, 철학,역사,천문학 , 과학 ,정치,많은 등장인물들도 나오는 광범위한 내용이다. 베아트리체와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시간과공간 우주적인 사랑관을 단테의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다. 원래 제목인 La Commedia (희극) 지옥에서 시작하여 천국으로 끝나므로써 붙여진 제목이다. 제목이 신곡으로바낀것과 3편즈이 장소 지옥, 연옥, 천국을로 각 편이 33곡으로 되어 있고 모두 99곡으로 짜여 있으며,1편에 서곡을 포함 34곡 총 100곡이 되었다 .여기서 100이란 숫자는 그 당시 가장 완전한 수로 인정받던 숫자였고 33은 삼위일체 교리에 입각 한것으로 단테의 신앙이 반영 되었을거라 짐작된다.3연 체의 11음절로 되어 있으며 총 1만 4천 2백 33행으러 역어져 있다.참 재미있는 설명이다. 한곡이 시작부분 읽고 마지막의 부연 설명을 읽으면 좀더 쉽게 접근 할수 있을 것이다. 400페이지 분량을 쉬지않고 읽을수있어 간만에 흥미로왔다. 1곡을 읽고 미술작품이 뭐가 있나 하고 검색하면 도움이 될것이다. 2편 3편도 구해 읽어볼 예정이다.
📖펴낸곳 ㅣ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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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880 /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탐욕 방탕) 큰아들 드미트리(음탕 순수) 둘째아들 이반(무신론자 허무주의자) 셋째아들 알렉세이(수도원 신앙 종교적)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간질 분노) / 그루센카(표도르 vs 드미트리) 스메르자코프가 표도르 살해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 스메르자코프 자살 드미트리 20년형 선고받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62 / 수용소 군도 노벨상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 대공황 배경 / 조드 가족 케이시 큰아들 톰 조드 딸 로저샨 / 에덴의 동쪽 / 근대 자본주의의 어둠 / 그래도 역시 사람만이 희망 / 1962 노벨 문학상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 레오폴드 블룸 매리온 부인 / 18시간 / 의식의 흐름 내면의 독백 기법 / 버지니아 울프 읠리엄 포크너 등에 영향 / 더블린 6월 16일 블룸의 날 /
단테 신곡 1321 / 지옥 연옥 천국 베아트리체 / 지옥 서곡 1 각 33 100곡 / 원제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 /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해피엔딩 / 유래 보카치오 신적인 희극 이를 일본학자가 신곡이라 번역 / 중세의 모든 학문 종합 / 이탈리아어가 피렌체어 중심으로 통일 / 국가 개념 민족주의에 눈뜨기 시작 / 중세의 사상이 괴테 헤겔 쇼펜하우어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전승되는 다리 역할 / 이탈리아 문학 발달에 결정적 영향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1923 / 릴케 루 살로메 니체 프로이트 / 전 10편 / 일치와 대립의 결합 / 연작시 서정시 / 근현대 시문학의 거대한 원형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1938 / 드골 사르트르 / 실존주의 / 로캉탱 / 존재existence 본질essence /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
스탕달 적과 흑 1830 / 쥘리엥 소렐 시장 부인 레날 부인 후작 집 딸 마틸드 / 계급 메커니즘에 도전한 뛰어난 사회소설 + 섬세한 심리묘사로 만들어낸 리얼리즘 연애소설 / 적 나폴레옹 군대 군복의 이미지 자유주의 흑 왕정복고 시대의 사제복의 이미지 보수 왕당파 /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1933 / 상하이 폭동 테러리스트 / 기요(이상주의자 폭동주도 체포 자살) 첸(장제스 암살 시도) 카토프(체 게바라 순교자 연상시키는 인물)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 허무주의적 고독감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그림 /
월트 휘트먼(1819-) 풀잎 1855 / 죽은 시인의 사회 오 캡틴 마이 캡틴 1865 링컨 추모시 / 미국식 자유시의 창시자 /
제인 오스틴(1775-) 오만과 편견 1813 / 로코의 효시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 엘리자베스 다아시 / 제인 빙리 /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등대로 1927 / 의식의 흐름 기법 개척자 / 무학 블룸즈버리 그룹 존 케인스 e m 포스터 오빠 토비 남편 레너드 / 램지 가 / 내면의 갈등과 억압을 절묘하게 묘사 / 등대 영원한 진리나 이상을 의미 / 램지 부인 지혜의 상징 / 페미니즘 모더니즘 계몽주의 /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필체로 표현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 낭만주의 소설의 원조 / 베르테르 로테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1601? / 햄릿 아버지 클라디우스 거트루스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오빠와 아버지 / 영문학의 정전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869? / 안드레이 나타샤 피에르(나폴레옹 암살 시도) 카라타예프(농부) / 생명력 살아 있음의 위대함 / 1805년 1차 나폴레옹 전쟁에서 혁명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간 러시아 역사의 격변 배경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1952 / 산티아고(쿠바의 노인 어부) 마놀린(꼬마) 청새치 상어 /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투쟁 / 바다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삼켜버리는 무한의 공간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 �� 파라다이스(실패한 젊은 작가) 딘 모리아티(자유로운 영혼) / 뉴욕 la 멕시코 1.3만 km 히치하이크로 여행 / 작가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과 유랑 생활 그 기록이 바로 길 위에서 / 비트 세대의 상징적 인물 / 1960년대 히피 운동과 국제 히피족의 상징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1948 / 덧없는 아름다움 / 시마무라 게이샤 고마코 요코 / 허무한 세계관 / 유서도 단서도 없는 죽음 가스 자살 / 다카한 여관(소설 완성) / 스토리가 아니라 분위기의 소설 / 갈등 구조 없음 /
"결국, 사람이란 그의 사상을 빼면 빈 껍데기 아닐까? 더 나아가, 사상을 빼면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행동을 위해? 난 행동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다. 사자, 당나귀, 하이에나. 이들도 모두 행동한다. 그럼 우리는 그들과 같은가? 아니다. 우리는 짐승보다 낫기도 하고 못나기도 한 존재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행동이고, 그 행동에 대한 반응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응만 하는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거울이 아니다.
그건 영혼과 신들의 전유물이다. 우리는 행동이자 행동에 대한 생각이며, 둘 중 어느 하나도 아닌 중간의 존재다. 우리는 행동으로부터도,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우리의 인간성은 내면의 짐승과 신을 모두 받아들여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두 가지를 모두 함양해야 하는데, 미국은 행동의 땅이다. 미국은 사상에 집착하거나 생각의 구원하는 힘에 집착하는 땅이 아니고, 지성의 말살에 집착하는 땅이다. 이곳에서 인류는 자기 존재의 절반을 부정하려 했고, 자유를 좇다가 둘로 나뉘고 말았다. 승려가 육체의 쾌락을 포기하는 것처럼 미국인은 정신의 쾌락을 포기하도록 권해진다. 그들은 욕구에 이끌려 돼지우리로 들어가 도축되기를 기다린다.
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나라를 여행하며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면 우리 미국인이 내면의 신과 짐승을 동시에 깨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옥의 불길로 들어갔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지옥의 불길, 맹렬하면서 형편없는 맨해튼으로. 그곳은 사람이 사람을 고문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곳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보여 준다. 인간이 신과 완전히 분리되어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면 지상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 될 거라는 사실을. 금박을 입힌 지옥의 불길, 대리석으로 치장된 연옥. 미국인의 욕구가 뒤섞인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 자연과 형제들을 재미로 파괴하고, 마침내 자신마저 파괴하기에 이를 거다.
인간은 욕심과 욕구에 집착하고, 경험과 즐거움 대신 소유에 집착한다. 사람은 부유함에 집착한다. 인간은 욕구를 위한 욕구가 되어 버린다. 갈구하는 일만이 중요해진다. 사랑하는 일, 존재하는 일, 소유하는 일이 아닌 갈구하는 일. 우리는 욕구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차라리 스포츠가 나을 지경이다. 무시무시한 질병, 이 땅의 영원한 질병은 바로 해방된 인간이다. 해방되어 정체 모를 무언가가 된 인간.
내면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를 움직이는 모든 것, 그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외부, 즉, 욕구가 뒤섞인 바다에 있게 된다. 그런 건 자유가 아니다. 멀리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이 멋대로 상상한 자유와 닮은 무언가다. 그들은 왜 멀리 볼 줄 모르는가?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려면, 그리고 이 나라가 자유를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궁극적 가치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자신과 친구들에게 영광을 보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죽음의 영광을. 삶의 영광도 물론 있지만, 죽음의 영광을. 이 생각이 혐오스럽다는 걸 안다. 저속하고, 불쾌하고, 왜곡되어 보인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진실이기도 하다.
맨해튼을 여행하면서 나는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이민자 빈민가부터 센트럴 파크의 대리석으로 치장된 저택까지 모두 보고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목격한 가난과 퇴폐를 허용하는 체제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퇴폐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지만, 부유함이 그것을 소유한 자와 그것에 홀린 자에게 주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인간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대리석 감옥에서 죄수로 사는 것, 그처럼 인류로부터 떨어져 혼자 사는 것은 너무나도 미국적이지 않아서 우리가 흑인을 대하는 태도보다 심각하게 이 나라의 건국 이념과 모순된다. 맨해튼은 즉시 가난한 자를 퇴폐하게 하고, 부유한 자를 비인간적으로 만든다. 맨해튼의 목적은 고통을 키우고 꽃피워서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맨해튼이 미국 사회의 정점이라고 배운다. 말도 안 된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미국적이기는 해도 틀림없는 사기다. 진정한 미국은 욕구가 아닌 이 땅의 순수함에 깃들어 있다."
30년 가까이 함께 했던 펜던트가떨어졌습니다. . 언제나 함께하던 녀석이였는데... . 연결 부분이 낡아서 떨어진거라 더 마음이 짠합니다. 오랜 친구를 더 이상 볼수 없게 된것처럼 말입니다. . 인연이 다 한 것이겠지요. 🥺🥺 . . #펜던트 #pendant #연옥 #태극팔괘 #인연이다한것인가#atelier_sowol #LeatherClub #leathercraft #leathergoods #leathertools #bespoke #leathermaterials #아뜰리에소월 #레더클럽 #가죽공방 #가죽공예 #가죽공예장식 #가죽공예도구 #가방장식 #주문제작 #素月工坊 #私人订制 #手工皮具 (Atelier Sowol에서) https://www.instagram.com/p/Bw88bsqFspZ/?igshid=uhoe3knpedjt
안개 낀 눈 밭을 맨 발로 걷는 한 늙은 남자의 걸음과 스치는 과거 씬 들이 혼재되어 보여질 때 3초 정도 고민한다. '헝가리 버젼의 <신과 함께>'인가? 망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놓은 다리를 맨발로 건너는 그 순간에 신비한 눈동자를 지닌 어린 소녀가 나타난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해도 낯설지 않을 만큼 설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울리게 요정같이 등장해 남자에게 말을 건다. '맨발이네요?', '신발을 잃어버렸어.', '거짓말', '돌아가요!'
어디로 돌아가라는 걸까? 맨발(Bare foot)과 신발이 상징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발이 더러워졌어요.', '벗으렴.'
내 또래의 취준생들이 매일 '이력서' 쓰고 있다. 履歷書 (밟을 리, 지날 력, 글 서). 지난 날 밟아 온 길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의미다. 발자취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生의 시간을 종종 이렇게 발걸음에 비유하곤 하는데, 헝가리 영화 <스물 Twenty, Húsz (2018)>는 이러한 메타포 (Metaphor)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더러워진 구두를 신은 발과 맨 발을 비추며 보여준다. 신발이 지난 날 걸어온 인생이라면 얼룩은 Sin(죄)이다. 남자의 꿈 속 장면으로 등장하는 젊은 날의 장난같은 섹스와 임신한 여자를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던 일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간다. 꿈 속에서 남자는 만삭인 그녀의 배를 쇠막대기로 마구 친다. 꿈이 깨자 남자는 두려움에 그 곳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자 늙은 여자가 말을 건다. '맨 발인데? (그러고 어딜가?)' 남자는 신발이 없어서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없다.
Abortion. 옛 시대의 낙태에 대하여. . . 히스토리 속에 감추어졌던 자기고백적 허스토리
남자가 도망치고, 홀로 남겨졌던 여자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 여자는 그가 모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직하게 읊조린다. 배가 자꾸 불러오자 양잿물을 마시고, 끔찍한 양의 식초를 들이켜고, 어떤 여자는 화약을 먹으라고 했다. 산파는 바늘로 여자의 배를 찔렀다. 이야기를 마친 노파가 그에게 소리친다.
'어서 나를 찍어! 뭘 주저하는 거니?' 청년의 모습을 한 '나'가 셔터를 누르자 마침내 남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도 죽음의 땅도 아닌 그 중간 어느 세계(연옥)에서 지난 날의 죄를 마주하고 '신발'을 찾아 죽음의 강을 건넌다. 아니, 정확히는 '신발(sin, 죄, 진실)'을 찾고, 그 신발을 품에 안은 그녀를 뒤에 그림자처럼 데리고 어린 소녀를 따라 그 강을 건넌다.
메세지와 상징이 강한 영화는 기록으로서의 영화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작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상은 '당신들 영화가 받았어야 한다며' 겸손히 스포트라이트를 돌린 영화 <불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극장에서 봤을 때 옛 유럽세계에서 여성들을 낙태하던 방식이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을 보고 눈을 감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같은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나의 내면이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데 1/10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학 시간에 글로 배운 여성문학과 영화로 보는 역사는 시신경에 파고드는 자극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요즘은 낙태를 하네 마네, 개인의 자유와 신념을 놓고, 법 폐지 문제로 싸우는데... 그 시절에는 목숨이 달린 문제 였다. 잘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현대에 와서라도 편집되어 재현되는 '그 이야기들이' 오감으로 듣고 보는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아니면 우리는 그 시절 허스토리를 알 수 없다. 혹자는 '영화는 오락물인데 왜 여가시간에 마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봐야하나'하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소리다. 팝콘 먹으면서 볼 영화는 아니니까. 하지만... 마지막 컷, 그 눈동자를 마주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나이든 어느 여자가 한 많은 눈으로 앞을 응시하면서 20을 세자, 죽음의 강을 지키는 정령같은 소녀가 손을 그녀의 입에 댄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둔다. Húsz 호운스. 소녀가 속삭이듯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대신해) 20 을 말한다. 눈 감고 20을 세고 있어봐! 하고 도망갔던 남자를 기다리던 젊은 날, 그녀의 시간이 그제서야 멈춘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침묵속에 묻혀있던 허스토리를 마주하고, 들어야 한다.이런 영화들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기 위한 기록으로서.
남자의 죄의식의 구현인가? vs 침묵속에 감춰진 한중록인가?
방금 전까지 그룹콜을 하며 친구 두명과 이 영화의 해석에 대한 열띈 토론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흘렀더라. 이미 전화하기 전에도 둘이서 한 시간을 토론중이었다더라. 확실히 이런 류의 영화를 놓고, 남성과 여성의 시선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을 해석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느라 한 번 보면 스크롤로 두 번, 세 번, 네 번 보게되는 영화다. 한 번 보시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해 보시길! 원한다면 그 해석을 <독자와의 대화>나 <독자의 질문> 형식으로 메일링 하셔도 좋습니다. (당분간은 영화 리뷰 칼럼을 꾸준히 써서 업로드할 예정이니 여러 씨네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P.S. 조만간 영어로도 올리겠습니다. 오늘 몰아서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긴 하루였네요...:)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세요~!
오늘 애들을 재우러 누웠을 때 적당한 얘깃거리가 뭐 없을까 고민하던 중 올해가 종교개혁 500 주년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라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던 도중 나도 궁금해지는 것이 생겼는데, 가톨릭교회에서는 현재 연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500 년 전과 교리가 달라졌다면 얼마나 다른지,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혹시라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있는 것인지, 구원의 전제 조건에서 믿음과 선행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내가 알기로 개신교에서는 더 이상 연옥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가톨릭은 이 개념을 버렸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요즘 돈을 받고 벌을 경감시켜 주는 것 같지도 않던데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걸까. 사실 그 동네 사정은 전혀 모른다고 봐도 좋으니, 주위의 가톨릭교인에게 물어봐야겠다. 근데 주위에 가톨릭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24 로마교회는 성경의 해석권을 교회회의에 돌림으로써 교회에게 성경해 석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24 로마교회는 성경의 해석권을 교회회의에 돌림으로써 교회에게 성경해 석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연옥, 성인들의 중보기도 등 성경에서 찾 아볼 수 없는 것들이 교회의 권위(ecclesiae autoritate)로 허락이 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권위로 결정한 것은 성경이 반대할지라도 성경의 옳은 해석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판 단에 굴복시키면서 사람에게 의존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독 이다.25 칼빈은 성경 해석권을 교회의 성경 승인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 제로 본다. 교회의 성경 승인권의 문제는 이미 1권에서 성경 자체가신성과 성령의 증언으로 논박했다.26 성경의 자체가신성은 성경의 자기해석과 뗄 수 없도록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칼빈은 성경의 해석권을 교회에 돌리지교회의 교리표준의 근거로서 성경론이 앞에오는 것은 17세기 신앙고백서 들의 특징이 된다. 그러나 16세기 신앙고백서들은 성경론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개혁교회에서 사용되는 16세기의 신앙고백서인 벨직신 앙고백서와 17세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런 차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두 신앙고백서는 성경의 위치가 들어가는 구도에서 다르다. 벨직신앙고백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1항에서 다루고, 2항에 서 하나님을 아는 방법으로서 계시를 다루면서 성경을 다루기 시작한다.2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성경을 먼저 1장에서 다룬 후, 2장에 가서 하 나님에 대해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론이 들어가는 위치 때문에 16세기와 17세기 사이에 어떤 차이를 찾아서는 안된다. 흔히 제기되곤 하는 17세기 는 더 사변적이었다는 전제 아래서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고백보다 성경론 을 앞세웠다고 틀을 씌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성경에서 시작하여 하나 님으로부터 나아가는 것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말하는 것은 분리될 수 없는 두 원리의 밀접함을 보여줄 뿐 차이가 없다. 우리는 성경에 서 분리되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며, 성경이란 기록된 말씀은 그 자체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전제하는 것이다. 벨직신앙고백서의 경우 하나님에 대한 고백 후 성경으로 나아가는데, 바로 27 Calvin, Inst, 4. 8. 1. 28 벨직신앙고백서의 성경론에 대한 참고: 이남규, “벨직신앙고백서의 성경론에 나타난 칼빈 주의적 성격”, 「장로교회와 신학」 제 13호 (2017): 79-98. 아래 벨직신앙고백서의 성경론의 내용의 분석 중 많은 부분은 이 글을 참고하였다. 종교개혁과 성경:성경의 자체가신적(αὐτόπιστος) 권위를 중심으로 ● 71 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첫 고백은 분명히 성경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논지의 순환은 완전하다.”29 하나님에 대한 믿음 자체가 말씀에 대한 믿음 을 포함한다는 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21문을 통해서도
“이 산은 다른 산과 다르다. 아래에서 시작할 때 가장 힘들고 위로 오를수록 더 쉬워진단다. 그러니 오르는 일이 한결 가벼워져서 배가 강을 따라 떠내려가듯 기분이 좋게 느껴질 때면, 넌 곧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니 거기서 마침내 휴식을 기대할 수 있을게다. 더 말할 것이 없구나. 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