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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복용한지 5개월 하고 조금 넘었다 나으려고 갔던 병원은 내 성격만큼이나 오락가락했고 무서운 날들이,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이 나와 마주했다. 술을 먹으면 나타내는 내 모습이 아닌 맨정신에도 나오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나를 궁지에 몰아세워 덜덜 떨리게 만들었다. 과거에 헤어 나오지 못해서 나오는 모습들인가 하는 반면에 현재에 살고 있는 내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 또 다른 시간 속의 나는 묶여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꼴이었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하면 늘 문제점은 나였다. 다른 문제점을 생각할 겨를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따위조차 없었다. 오로지 나 자신이 나에게만 꽂아대는 삐죽한 화살이 두려워도 나 자신에게 꽂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며칠 전 울며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며 온갖 욕구를 다 참으며 고생하는 연수에게 좋은 말만 해줘도 모자랄 판에 3주 동안 참다가 터져버려 전화를 하고 말았다. 참아지지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을 만큼 봇물이 터지듯 엉엉 울어버렸다. 너무 철부지 없는 나의 전화였음에도 연수는 이것저것 빗대어 위로를 해주며 나중엔 웃음까지 터트렸다. 월요일에 병원에 가면 선생님께 여쭤보라며 질문을 안겨줬다. 처음과 지금 내가 달라진 것이 있느냐고. 어제 병원에서 바로 물었다. 선생님은 내가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하셨다.
희로애락에 락은 사람들에게 큰 기억이 못 된다고 말씀하셨다. 연수가 나에게 위로를 하며 했던 말과 비슷했다. 나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가끔 큰 락도 존재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기쁨을 잊지 않고, 잃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점점 절벽에 스스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게 끝이면 좋겠지만 자꾸만 절벽 끝에 매달리려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극단적인 생각만큼이나 나 자신을 버리는 짓도 없을 거다. 나는 왜 자꾸 매달려 살려고 발버둥만 치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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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생각들이 자리를 또다시 잡고 있다. 어떤 생각은 드럼을 치고 어떤 생각은 기타를 쳤고 또 어떤 생각은 바이올린을 울렸다.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조합들이 모였는데도 내가 좋아할 수가 없는 생각들이다. 나는 또 약을 찾아야 했고, 또다시 그리운 사람에게 연락을 해야만 했고, 옛날 얘기를 꺼내야만 나를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내 삶에 대해 돌아봤다. 그리 많이 살지도 않은 삶에 나는 참 많은 애정을 부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는 시기에 공황이 오고 불안과 무서움이 들이닥친다.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를 듣는다 한들 내 기분이 도통 가라앉질 않았다. 피자를 먹고 싶어서 시키면 한 조각 먹고 버리고, 과자를 사면 봉지만 뜯고 버린 적이 일수다. 부모를 위해 산다고 생각했다. 그건 더 이상 불효라고 생각했고, 나는 나를 위해 살려 하는데 왜 이렇게 걸리는 게 많고 불편한 게 많은가. 즐겨듣던 노래들이 불편해지고 자주 만나던 사람들이 낯설어져서 나 혼자 초조해졌다. 죽어본 사람도 아닌 게 자꾸만 내일 죽을 사람처럼 약속을 잡고 미련을 버려버린다. 자꾸만 내 이름을 까먹는 게 건강하게 오래 살긴 그른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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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가 저녁에 우울을 집어 삼켜 전화를 받지 않는 걸 알고 서로 정신없는 일하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었다
처음으로 불효를 하는 건가 느꼈다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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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내가 지금 회사에 첫 출근을 하며, 오랜만에 공황장애가 온 달이었다. 때문에 막내의 한 번 뿐인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 가고 난 아직도 그게 미안하다. 일기장을 보니 새해부터 최악이었다.
2월 알러지에 대한 피검사를 1년만에 한 것, 독감에 걸려 일주일동안 엄마 편의점에서 오랜만에 애기가 됐던 기억.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첫 집들이.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이 많이 있던 달.
3월 2월에 이어 더욱 아팠던 달 잊지 못하는 생일 징크스를 또 한 번 상기 시켜줬던 3월, 그리고 나때문에 미뤄졌던 서울에서의 첫 회식. 외할머니의 기일로 이모들과 처음으로 기도 예배를 드리고 울었던 기억. 오이소박이 처음 만들었다.
4월 늦은 겨울에 산 아빠 니트를 전해 줬었던 달. 문독과 집에서 촬영이 아직도 꿈같다. 처음으로 회사에서 10시 넘어서까지 야근하던 달. 지금은 좀 줄어들어서 9시다.
5월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던 밍멘오 언니에게 나비 타투를 받고 처음으로 언니와 대화같은 대화를 나눈 달. 뭐 이것저것 되게 약속이 많았는데 취소된 약속도 꽤 있었다.
6월 잊을 수 없던 회사 워크숍과 부모님과 삼남매가 다 같이간 여행. 이혼 후 밥은 종종 먹었다가 우리 때문에 얼굴만 마주했던 부모님과 같이 여행 계획을 세우고 다녀왔던 달. 커다란 아빠의 손을 잡고 걷던 바닷길, 엄마의 환한 웃음. 어른이 된 두 남동생이 나를 붕붕 뜨게 만들었던 달.
7월 내가 자주가던 게임방이 우리집 가까이 이사했던 달. 사장님과 많이 친해졌었는데 오르막길만 아니었으면 이사 안 .. 벌레도 안 나왔으면 안 했ㅇ.. 엄마 생신이 있던 달. 엄마의 존재가 있는 7월 숫자도 의미도 마냥 기분 좋아야만 하는 달.
8월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엄마 생일 선물을 주문했던 달. 꽤 오래걸리는 선물이라 조마조마했다. 좋아하는 언니들과의 약속이 두 번이나 있었고 놀러가서는 사고만 쳤던 달, 무언가를 아주 많이 잃고 얻었던 달.
9월 흐이언니와 혜진언니랑 여수에 가서 비만 쫄딱 맞았던 여행. 술이 정말 웬수라고 또 한 번 느꼈던 여행,, 언니들 아니었으면 진짜 맞아 죽었을지도 몰랐던 달. 난생 처음으로 태풍과 맞짱 떴던 달.
10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지점장님 집에 놀러가서 밥도 해드리고, 몇 년 만에 설미 만나서 삼겹살김밥 해줬던 기억. 20살의 양기를 빼먹었던 달. 수린에게 첫 타투, 이사올 집 계약했던 달.
11월 1년 계약이 끝나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던 달이다, 뭐 되게 스케줄이 많았는데 운동 되게 열심히 했던 달. 성이 생일파티에 초대 됐는데 드레스코드에 맞게 입고간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달.
12월 어제 끝났던 12월이 힘들게 마무리 됐다. 정이 생일이라 새벽에 혼술 하다가 택시타서 처음으로 정이 집에도 갔었고, 최고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달이었다. 부루마불 첫 개시를 하기도 했고, 여러 의미로 용기를 많이 냈었다. 물론 지금도 진행중이며 꾸준한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킬 예정. 하지 않으려 했던 손수 보내는 새해 메세지를 또 보내고 말았지만 뿌듯하고 답장을 받으니 좋았다. 점점 늘어나는 지인들이 꽤 무서워졌다. 장작 7시간동안 새해 메세지를 보내니 정신이 희미했다. 짧던 길던 내 정성이 묻히지 않고 사람들이 나를 아주 오래오래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실존도 기억에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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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다가도 충동적으로 집에 가고 싶거나 약속을 다 취소 해버리고 싶다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만나겠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게 무서웠다 혼자만 보내려고 했던 연말과 연초에는 이미 꽉 차버린 스케줄이 나를 압박하고 목을 조른다 기분이 좋아지면 다행이겠지만 자꾸만 감정이 격해지니 감당할 수가 없다 다 부셔버리고 싶다가도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다가 화가 나면 또 음식을 찾는다 운동도 꽤 열심히 했는데 무기력하니 운동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어느 하나에 떨쳐내려고 했던 것들이 자꾸 뒷전이 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건데 짓누르는 것들은 나를 사���지게 만든다 내가 사라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증상이 더 심해진 것이고 나는 또 견뎌내야 하는 것 내 기억이 자꾸 없어지니 내가 누구인지도 까먹을까 의구심이 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하는 사람이 될까 ��이 난다 나는 매일 그들의 꿈에 나타나 나의 존재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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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너무 살고 싶은데 내가 죽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많이 울며 다짐했던 거 같다
몇년만에 병원을 예약했고 나름 용기를 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을 얻고 또 잃었다
내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사람이 꾸준히 내 곁에 있길 바란다.
금요일, 오랜만에 가는 병원에서 과연 나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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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나들이 밖에서 사진 찍는 거 너무 부끄러웠는데 조금씩 나아지는 중 눈치는 아직 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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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해. 지금 이 글을 보는 너도 그러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부적절한 곳에는 아니겠지만 말이야. 나는 정말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물론 너한테도 중요한 사람이 된다면 좋겠지.
언젠가 너의 자랑이길 바라.
2. 약을 먹는데도 자꾸 간지러워서 하루에 두 번은 먹게 된다. 가방에는 어느새 약은 5개가 있어야 든든하게 되는 게 점점 욕을 먹는데 단련이 되는 것처럼 기분이 아찔하다. 몸이 눈치가 없는 건지 자꾸만 약국에 들락거리게 만든다. 나는 병원보다 약국이 싫다. 집처럼 드나드는 곳인데도 기분이 이상하다.
3. 고래가 될래. 무서운 바다를 헤집고 다니고, 바다의 왕이 되고 싶어. 모두가 상어가 왕이라고 하지만 나는 고래가 더 좋으니까 고래가 될래.
4. 겨울이야, 몇 번의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고 갔던 대화의 시작으로 만났던 우리가 연인으로 시작했던 계절 말이야.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도 아직 겨울을 좋아해. 네가 찍어준 사진과 너와 같이 있던 사진들이 아직 수두룩하고, 자꾸만 마지막이라고 하면서도 너를 자꾸 그려내. 되게 불공평하다. 처음에는 수용했던 문제들이 자꾸만 반론을 재기하는 기분이야. 네가 좋아하던 음식과 노래, 영화들만 자꾸 눈에 들어와서 나를 괴롭히고 아무것도 아닌 물건들이 내 눈에 밟혀. 너에게 입을 맞추면 나던 냄새가 좋아서 배웠던 담배도 이제 슬슬 끊으려고 해. 자기는 태우면서 내가 태우는 담배는 싫어했잖아. 물론 너 때문에 끊는 건 아니지만, 끊어야 할 이유가 생겼어. 궁금하지도 않겠지? 때로는 어른스러웠던 네가 익명 아닌 익명으로 남긴 네 메시지가 나는 유독 어린애같이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어. 끝난 사이인데도 네가 귀여웠다고 느꼈으면 변태 같은 거지? 아무튼 네가 늘 불행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놓아주려고 다시 한번 거론했어. 잘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잘 지냈으면 해.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그냥 유독 추워지는 이번 겨울이 너의 행복을 빌어주라고 말하는 거 같았어. 용기가 나면 네가 준 편지도 웃으며 읽을 수 있을 거 같아. 너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고 그때의 우리와 나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해주면 고맙겠어.
50일이 지나 네가 해준 김치부침개를 받아먹으며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했을 때 접시를 내려놓고는 고맙다고 울며 나를 안아주던 네가, 화나면 그 큰 눈과 예쁜 눈썹으로 입을 삐쭉 내밀고 인상을 쓰던 네가, 친구와 같이 카페를 가던 길에 무심코 예쁘다고 말했던 꽃을 몰래 나가 사서 나와 내 친구를 놀래던 네가, 뭐 때문에 잔뜩 화가 나서 울면서 뛰쳐나가곤 다시 너의 집에 돌아간 나를 올 줄 알았다던 표정을 지은 네가, 우리가 자주 가던 술집에서 피하기만 하던 고양이를 처음 예뻐했을 때의 나를 보던 네가, 엄마한테 처음 인정받았던 애인인 네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해주던 네가, 바람을 피우고는 우린 종착역이 없다고 말 한 네가, 또 다른 종착역이 없는 상대와 다시 바람을 피우고 내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다던 네가 정말 나에게는 많은 감정을 안겨주었고 행복을 줬던 거 같아. 뭐 대부분 내가 잘못했지만 나는 너를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2년 동안 말이야. 정말 많이 고생했어.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아, 나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감히 용서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마음으로는 네가 날 죽을 때까지 싫어하고 증오하길 바라.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너를 용서하는 나를, 너는 용서하지 마 안녕.
5. 존재만으로도 용기가 났던 당신이 타인인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것에 감사 인사 한 번 못했고, 떠나고 나서야 당신을 그리워하고 울부짖을 수 있는 간사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또 다른 용기를 낸 것에 대해 나에게도 그 다른 용기가 날 것 같기도 해요. 몫이 어디 있겠냐마는 내 일부였던 것들을 잘 보듬어주세요. 이런 말을 하는 처지도, 입장도 뭣도 아니지만 그 일부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내가 곧 일부들의 곁에 있게 된다면 말이에요. 그때 저에게 벌을 주어도 늦지 않을 거 같아요.
6. 각자 다른 옷에서 같은 섬유 유연제 향이 나고, 머리카락에서 같은 샴푸의 향이 나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를 거다.
그 상대가 누구든 간에 애쓰지 않아도 닿는 인연들이 망원경을 써도 멀리 보이지는 않겠지만, 결코 만나게 된다는 것에 감사할 줄을 모르고 이것저것에 대해 투정을 부리고 헤어지게 된다. 나가서 같이 먹는 음식이나, 누워서 같이 보는 영상들이 나중에는 큰 여파를 몰고 온다는 것을 모를지도.
무작정 헤어짐을 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때 자기의 마지막 생각을 고려하여 만나야 한다.
남의 시선이나 생각 따위 필요 없다. 타인은 다들 똑같이 말하지만 나 자신은 그 말과 생각을 짓밟을 뿐인데 뭐 하러 낭비들을 하나 싶다.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을 생각들을 왜 굳이 캐묻는가.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다 어리석은 건가 생각이 들었다. 애정이 잔뜩 껴져있는 그들이 또 언제 애증으로 바뀔지도 모르는 건데 또 똑같은 실수를 하는 바보들로 태어난 건가? 어떤 관계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면 다른 타인 말고 당사자의 눈에서만 바라볼 것.
7.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쓰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영화 쪽으로 뭐든 하고 싶었다 그냥 내가 어딘가에서 뭘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길 바랐던 걸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처럼 엔딩 크레딧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내 존재를 알아주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생각하게 된 건 내 인생에 엔딩 장면에 쓰일 이름들이다. 반대로 내가 쓰일 크레딧은 얼마나 될까.
무턱대고 생각하면 지금 떠올리는 사람은 정말 감사하게도 많다.
뭐 앞으로 또 삭제가 되어 잊힐 수도 있는 이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남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에 의해 크레딧에 그 사람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내가 그에게 썼던 애칭을 사용할 것이다. 그 상대는 내가 거론하는 자체로 기분이 더러울 수도 있겠다.
떠나간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내 크레딧에 쓰여 있길 바란다.
나의 마지막은 마지막이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
8. 월요일 월차는 늘 여유롭다. 주말 내내 약도 안 먹고 술에 음식에 찌들어 있었다. 첫 집들이 치고는 많이 거대했던 거 같기도 하지만 무사히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혜주는 결국 귀찮아서 하룻밤을 더 자고 갔다. 새벽에 혜주 갈 때 잠시 깼다가 잠들었는데 부지점장님이 냉장고에 있는 베지밀 먹어도 되냐고 전화 와서 아주 잠이 확 깨버렸다.. 어영부영 다시 자려고 했는데 뭐가 불편한지 눈을 꽤 오래 감고 있었는데도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뭐 한 것도 없는데 1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가구를 버리려 관악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몰라서 실패했다. 그냥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면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동시에 다른 고민이 생겨버렸다. 게임방을 갈까, 영화를 보러 갈까 생각했다.
우선 내 월차가 눈치 없이 빨리 지나가는 걸 인지하고 그냥 보일러를 틀고 씻었다. 로션을 바르고 입술만 발라야지 했는데 또 화장까지 다 해버렸다.
새로운 화장품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대로 게임방만 가기에는 아쉬워 바로 영화를 예매했다. 윤재가 저번 휴가 때 사다 준 맛다시, 냉장고에 쟁여놓은 상추, 주방 찬장에 잔뜩 쌓인 참치캔, 할머니께 받아온 참기를 때려 부어서 비벼 먹었다. 이번 주말에는 간장국수를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관성 참 없지만 그렇게 자꾸 먹는 생각을 한다는 건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원인이니 그 스트레스를 일초라도 빨리 풀어야 했다.
나 혼자만의 약속인데 또 늦고 말았다. 광고 시간 덕에 영화를 놓치진 않았지만 꼭 고쳐야 할 문제다.
화장이 잘 됐는데 영화 주제부터가 슬픈 거라 걱정했지만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없는 내가 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도 울고 울음을 숨기려 콜라를 계속 마셨더니 얼굴엔 열이 나고 방광에는 불이 붙었다.
눈물을 흘리니 뭔가 방광이 잠잠해지는 것도 같았다. 다들 개소리라고 하겠지만 진짜였다.
월차에 나에게만 쓰는 시간이 화성에 있을 때보다 더 뿌듯하고 기분이 묘했다. 술 마시고 죽어있기나 했지 나를 위한 시간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영이가 보내준 기프티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집 근처 롯데백화점에 가서 교환하고 집에 들러, 짐을 놓고 새로운 게임방에 갔다. 문이 이상하게 되어있어서 성인 게임방인 줄 알았다.
꽤 오랫동안 게임을 같이 했던 동생과 처음으로 치킨을 먹었다. 괜히 심장 떨려 아무 말도 못 하고 먼저 죽은 내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숨죽이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니까 동생도 괜히 기분이 좋다고 했다. 진짜 너무 이긴 게임이라 한참 동안이나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집에 오니 괜히 헛헛해서 라이브 방송을 켰다.
시간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었다. 일요일부터의 계획을 짜놓을 걸 그랬다.
2016년인가 2015년 겨울부터 시작했던 인스타에서 처음으로 1시간씩 두 번 꽉꽉 채워 2시간 동안 라이브 방송을 한 거 같다.
월요일 밤인데도 가지각색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쓰는 글도 참 두서없지만 실제로 말 그대로 라이브로 하는 방송에서는 말을 어쩜 그리 못하나 싶다.
무슨 기자회견 나오는데 대본하나 없는 사람처럼 말이 자꾸 꼬이고 단어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모두들 의외라는 내 목소리와 성격이 한몫했던 거 같기도 하다.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내 멍멍이를 보여주었고, 내 깊은 화남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말을 요리조리 잘 하는 것도, 재미있게 하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내 얘기를 계속 들어주고 반응해주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고 나를 따뜻한 문장의 말들로 안아주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졌다. 꼭 깊은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밤이었다.
계속해서 10명이라는 사람들이 유지하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들으며 카페에서 다 같이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내가 변하는 기분이 든다. 초심이고 뭐고 뭔지도 생각나지도 않지만 나는 무언가에 의해 내가 변하고 있는 걸 느꼈다.
뭐 아무튼 좋지만은 않았던 주말이 좋기도 좋았고 지금 이 시간도 좋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져 자꾸만 내가 시간을 새치기하는 기분이 든다.
9. 난 정말 신기한 눈을 가졌다. 어쩜 그렇게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정이 생길까. 뭔가 잘못된 게 확실하다. 개명을 할까, 굿을 할까에 대해서 아주 많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남에게 일어나도 별거 아�� 일일 수 없는 일들이 나로 인해 나에게 번져나가는 기분이다. 사실 나는 내가 아무 일이 없으면 너무 불안하다. 차라리 터질 때 터져야 하는 일들인데 이게 자꾸 나를 골탕 먹이려 하는지 점점 내 인내심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게 만든다. 아무 일이 없는 게 나에겐 불안한 일이라니 너무 가혹하다.
10. 나는 정말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 사람일 뿐인데 몇 년 전부터 나에게 팬이라는 사람들이 생겼었다.
뭐 말로는 뭔들 못하리.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괜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내가 그들에게 한 건 아직도 없지만, 오래전부터 나에게 메시지를 하면 용기를 엄청 냈다며 내가 안 볼지도 모르는 그 메시지에 나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글을 써주고, 또는 자신들의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다.
내가 학생 때는 이런 SNS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이렇게 획기적이면서도 잔인한 SNS가 그때도 있었다면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내가 동경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말을 걸었을 거다. 그럼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별거 아닌 나를 좋아 죽겠다는 목소리로 표현이란 표현은 가득 채워 나를 구름 위로 둥둥 띄어줬다.
처음엔 한 명씩 초대를 해서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인신매매라든지,, 뭐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서로가 낯선 시간보다
더 많은 낯선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무슨말인가,,
이렇게 쓰면서도 오글거리고 부끄럽지만 몇 명의 뽀시래기들과 소규모 팬미팅을 하게 됐다. 말은 홈 파티였지만 나름의 서프라이즈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큰일이다, 내가 주최자인데 낯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소심해서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자라나는 뽀시래기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냥 그 시간이 너무 기대되고 뿌듯하고 좋아서 하루빨리 그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잊히지 않는 시간과 음식을 대접하고, 밤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으면 좋겠다. 벌써 내 옆에서 잠을 자겠다며 찜까지 해놓는 뽀시래기들이다,, 나를 보려고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고 지방에서 기차를 타거나 오랫동안 버스를 타는 뽀시래기도 있다. 나는 과연 그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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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당신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유치원 다녀온 아이처럼 종알 가리는 말을 하는 내가 너무 그리워지고 말았어 당신이 보고 싶거나 필요한 건 아니야 그냥 유일하게 고마웠던 점을 말하고 싶었어
물론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을 거야 당신에겐 그 말조차 너무 아까워 제발 부탁인데 앞으로 늘 슬픈 일들만 있길 바라
당신 눈이 틀렸어 나는 그렇게 착하지 않아 근데 당신은 몰라야 하는 사실이지 그래야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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