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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연민 살짝 올뻔
난 왜 내 그룹이 없지.
학교다닐때 주위에 사람은 많았지만 고독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자기랑 똑같은 친구들이랑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게, 그런 그룹이 늘 그자리에 있다는게 부러웠다.
하지만 왜 나는
하나같이 시절인연 뿐인거같지?
이제 그 이유는 내가 못나고 별나서가 아니란걸 안다.
1. 난 너무 변화무쌍하다.
가치관 관심사 신념 흥미가 비약적으로 바뀌어 버린다.
최근 10년간 나는
우울증>자기파괴>사회적응>사람들에 떠밀려살기>물질추구>인조이라이프>극단적 발전 지향형 인간>로봇처럼 성공만 추구하기>번아웃>물질보다 더 나은가치 발견하기>누가 주입하는 거 말고 주체적인 실제로행복한 삶 추구하기>현재는 어릴때처럼 다시 나를 꾸미고싶고 해외 밀입국 하고싶고 사업시작하고싶음.
이런 주제들로 대화할 인간이 어디있을까?
제발 나와주라. 나는 나랑 똑같은 친구가 필요해…
2. 애초에 고향에 살지 않음.
그러니 대부분 직장동료에서 잠깐 친구로 발전
3. 예민함.
어떤 사람이 백퍼센트 맘에 들기가 어려움. 나도 막 둥글진않음. 그래서 피로감이 있는 인간관계는 유지하지 않음.
어쩌겠어~ 이렇게 생겨먹은것을~
때되면 모이겄지~
다만 그 사진을 보니 그때 그 친구들이 보고싶고 그렇다.
그친구들 나도 참 좋아하는데. 걔네는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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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의 심증
이 세상이 이렇게 크고 우주와 자연의 이치는 알수록 놀라운데, 인간의 인생이라는 현재의 아웃풋이 최선일리가 없다. 거창할 것 없는 연인과의 사랑이나 돈버느라 얼굴도 잘 못보다가 후회속에 떠나보내는 가족들. 인생에서 꿈만같은 진정한 행복은 한두번밖에 찾아오지 않을텐데. 고작 이게 다 일리 없다.
누구나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인간이란 왜 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본능적인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어른이 되면서 어떤이들은 다시는 풀어보지않을 상자 속에 이 질문을 넣어두기도 하지만 이건 마치 프로그래밍 된 것과 다른 환경에 던져진 어떠한 정보도 받지못한 순수한 자아가 무의식속에서 원래의 길을 찾고자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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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수순같아 거부감이 먼저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생산의 발전 목적은 결국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있지 않나? 300년 전 인류와 비교해 보자. 인간의 수명은 훨씬 길어졌으나 지구 어딘가에 있는 가난한 사람은 식수가 없어 코끼리의 오줌을 마시며 원시시대에 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점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함이다. “생존” 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나 오늘날 불행히도 수많은 가난한 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희망진로는 접어둔채 당장 돈을 벌수있는 직업을 선택하고 재능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건 정말이지 엄청난 손실이다. 만약 전 인류에게 아주 기초적인 생활비가 지급되고 그 이상의 소득을 원한다면 컬리지를 통해 능력을 갈고닦아 전 직업의 장인화가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문명은 더욱 발전할수 있을것이다. 아니, 발전은 그만해도 될것같다. 지금 우리의 인터넷은 충분히 빠르고 교통도 너무나 훌륭하고 의료기술도 충분히 발전했다. 생산된 곡식들이 수지타산이 맞지않아 밥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버려지는동안 다른 한쪽에선 기아들이 넘쳐난다. 연구와 발전으로 이룬 천문학적인 금전적 수익의 90%가 또다시 재투자 재연구 하는데 쓰여지는동안, 90%의 인간은 그 발전된 문명을 구경도 해보지 못한채 죽고 다시 태어나고있다. 누리지 않을거라면 왜 발전하는가. 투자금을 현금화 해서 쓰지 않을거라면 투자를 왜 하는건가.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초고도 문명이 인류의 단 1%만을 위해 준비되어야만 한다면 나머지 99%의 노예화는 (이미 자본주의시대의 노예나 다름없다) 나아지지 않을것이다. 인간은 이제 생존이 아닌 창조와 존엄성 유지, 삶을 영위하는것을 목표로 삼기에 충분하나 과반수는 그러하지 못한 현실이다. 나는 보수파이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되지않는 우는아이 달래기식의 복지는 너무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무리하면 하루만에 지구 반대편에서 휴가를 보낼수도 있고, 집에서 백만원짜리 아이패드로 넷플릭스도 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어느지점까지 달려왔고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는 숨 골라 짚어봐도 좋을것이다. 정말이다. 이나라를 지키고 굳은일 마다않고 살아오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폐지를 줍고 고물리어카를 끌고도 연탄이없어 골방에서 돌아가신다. 그 얼굴의 주름들을 보며 노력과 보상이 정당하게 이뤄지는게 맞는지를 조금 생각하다가 이내 깨름직하게 외면하는거 말이다 그만해야 한다. 요즘 나는 sf 디스토피아 영화가 식상하다. 전에는 작위적이라고 보지않던 휴머니즘 로맨스 장르에 관심이 간다. 돈보다도 조금더 고차원의 어떤것을 가지고 싶어서 요즘은 내 연인의 눈도 조금 더 오래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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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게 아니라
누가 하는 말을 어디서 주워 따라 할 뿐이면서
그게 제 생각이라며 본인도 속는줄도 모른다
그저 중립을 위한 중립일 뿐이면서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이성적인 의견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머저리들은 이 세상의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그 어떤 문제에도 제대로된
호기심이 없다
호기심이 없으니 진심으로 답을 찾으려 하지않는다
어중 떠중 알은체하며
그와 반대로 최선을 다해 토로하는 옳은 의견을
극단적이라며 물을 타 뭉개버리는 중도파에만
무게를 실어줄 뿐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아마 그냥 편하게 적당한 중간지점을 살았더니
역시 아무개 처럼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생애 몇번 안되는 칭찬을 들었겠지
어떤 상황에서도 통하는 기적의 파훼법을 찾은거고 고수하겠지
제대로 알아보기 귀찮으니까
이게 바로 역설적인 민주주의의 단점이기도 하다
ㅡ점심메뉴 “전 다 좋습니다”에 분노하는 겨울 냉면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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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 날들이다.
이런게 바로 covid-blue 인가.
1년 전 쯤 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흠, 어쩌면 우리 세대가 ‘여태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의 마지막 목격자 일 수 있겠다는 생각. 정말 황당하지만.
동물적인 촉?
누구보다 아니길 바란다.
30살이 되도록 해외여행 한번 못가봤고
하고싶은것 보단 해야하는 것들에 갇혀살았고
그마저도 제대로 해낸것은 거의 없으니
이대로 끝난다면 너무나 아쉬운 생이다.
인터넷과 뉴스와 스마트폰을 봐도
소통을 가장한 불통 일색이다.
혼자 보는 일기에 쓰기에는 가슴이 답답했다.
프랑스에서 1년 살기. 할수있을까?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원치 않으면 모든 새로운 기술들, 가상화폐, 메타버스를 거부하고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원하지 않는 의약품을 거부하더라도 이전처럼 여권과 신분 확인만으로 어디든 갈 수 있을까?
내가 모아놓은 돈의 가치가 휴지조각이 되진 않을까?
사회의 약속, 사실로서 판단하겠다는 기초적인 약속
그런걸 기대 할 수 있을까?
영화 매트릭스 1편을 제대로 본건 얼마전의 일이다.
수많은 SF 영화를 봤지만 유독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설정은 제외하고
그 영화에서 말하는 모든 과학적 설명들이 지금 현실에서 불가능한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정의 결과는 허구이지만, 그 과정에 쓰이는 모든 도구들이 전부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긴, 답답할때 아무말이나 쓰는 블로그로 사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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