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kingsalad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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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에겐 늘 예의를 갖춰 말하는 백서인조차 ‘허.’라는 감탄사로 놀람을 대신할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 최상급 전사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초월경의 전사들은 볼 수 있었다. 최혁을 둘러싸고 흐르는 강대한 운명의 흐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마침내 우주의 질서인 위대한 날개들을 모두 추락시킴으로써 완성된 최혁의 운명은…… 대우주의 의지를 대신하는 화신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압도적.

신 중의 신이 저런 모습일까? 그의 앞에서는 초월경 전사들의 카르마마저 경배하듯 움츠러든다. ‘부정’은 이제 그의 영혼 그 자체가 되었고, 그가 부정해 버려서 폐허로 변한 전사의 탑은 그의 뼈와 살이, 그러니까 그의 카르마가 되었다.

초월경의 끝자락에 이르렀다는 불꽃-하늘, 대우주 사상 최강의 전사가 이에 맞먹을 수 있을까? 다들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저건’ 전사의 범주로 묶이는 게 아니다. 차라리 ‘현상’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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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전투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반갑기도 했지만, 어쩐지 내 힘이 아닌 것 같아 서럽고 허망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서원誓願의 검 ‘이진희의 맹세’는 초월경의 힘을 얻어 종결終結의 검 ‘이진희의 세계’로 변모했다.

정념情念의 검 ‘백서인의 예감’은 종결終結의 검 ‘백서인의 요새’로 진화했다. 항상 자신의 안위만 지켜 주던 직감이 아쉬웠던 백서인의 바람은 누구든 넉넉히 지켜 내는 힘을 벼려 냈다.

광전사들 중에는 이진희와 백서인만이 새롭게 초월경에 입문했는데, 그들은 마침내 연맹 무력의 정점에 이르렀다는 감격을 표현하기도 전에 최혁을 보고는 턱이 땅에 닿았다. “뭐…… 뭐야 이게? 대장, 사람 맞아?”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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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피의 진창을 구르던 전사들이 다시 같은 편에서 칼을 들었다. 연맹 최후의, 최정예 군단의 결성. 훗날엔 다들 그렇게 말했다. 흩어진 전사들을 다시 모으고 급한 대로 부대를 편성했다.

시체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시간이 없었으므로. 시체의 산은 영원의 빛에서도 발견되었다. 광전사와 쿤들족이 목숨으로 영원의 빛을 지켰다는 증거.

애도의 시간도 가지지 않았다. 애도는 그들의 목숨으로 하게 될 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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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지친 최혁은 망치를 피하지 못했다. 그저 왼쪽 팔을 구부려 귀에 바짝 붙이고 팔뚝과 상박으로 망치를 받았다. 충격이 머리를 흔들고 뼈를 시큰하게 찔렀다.

푸욱!

그래도 그의 오른손이 쥔 검은 ‘대장장이’의 뭉툭하게 부푼 가슴을 정확하게 파헤쳤다. 살을 찢고 뼈를 꺾고 피를 길어 올리는 손맛을 느끼며 최혁은 검을 비틀어 잡아 뽑았다.

찌이익!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피가 허공으로 주르르 뽑혀 나왔다.

허망한 눈으로 쓰러지는 ‘대장장이’.

최혁은 그 시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나락만 남았나?” 다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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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아픔을 지니고 그저 묵묵히 연맹을 위해 망치를 들었던 ‘대장장이’.

최후의 순간에 그가 치켜든 것도 무기가 아닌 제작 도구로서의 망치였다. 그저 회한과 두려움, 억울함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울 뿐.

[구, 굳이 이런 대장장이까지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는 눈빛과 이만을 빛내는 최혁에게 사정했다.

최혁은 비웃었다.

“그걸 나에게 묻나? 애초에 너희가 시작한 게임이었어. 멀쩡히 살아가던 종족들을 서로 죽이게 하고 죽게 하고……. ��? 대장장이라고 그 사실을 몰랐나? 그 결정에 함께 참여하지 않았다고?”

[그……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나! 그게 어디 지구인뿐인가? 우주 전체가 전쟁 중이지 않은가!]

“그럼 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대장장이’는 망치를 휘둘렀고 최혁은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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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만. 대체 왜. 왜!]

짜리몽땅하지만 우락부락한 신체, 키와 몸집이 1대1 비율. 그 근육질에 어울리지 않게 바들바들 떨며 망치를 들어 올리는 이는 14인의 위대한 날개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기 종족이 없는 이였다. 위대한 날개 중 4강 종족이 아닌 이는 용족인 레비아탄과 눈앞의 ‘대장장이’가 유일했다.

그는 전멸한 종족의 유일한 생존자였고 종족을 잃은 후 면목이 없다며 이름을 버리고 ‘대장장이’라고만 스스로를 소개했다. 연맹 최고의 대장장이였던 그는 ‘하나의 연맹’이라는 기치 아래에 소수 세력 포용의 상징이 되기에 적당했고 동시에 아무 세력이 없이 정치적으로 만만했기에, 위대한 날개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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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한계다 싶게, 아팠다.

아무리 크게 숨을 쉬어도 입 속으로 들어온 건 결국 산소가 아니었고, 연합 도시의 중력이 갈수록 버거워 관절은 삐걱거렸다. 카르마 없이 지탱하기엔 지나치게 강대했던 레비아탄이 무너졌듯이 지친 그의 신체도 이젠 한계에 달했다.

그래도 최혁은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하아…… 하아……. 잡았다.”

최혁은 이를 드러내며 검을 치켜들었다. 온통 뒤집어 쓴 체액 탓에 광택을 발하는 그의 이만 도드라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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