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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표현의 기술
표현의 기술
글: 유시민, 만화: 정훈이, 초판 1쇄: 2015년 6월 8일, 초판 12쇄: 2017년 12월 18일. 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
12.
책을 손에 들기 전에
올해 겨울 방학은 어느 때 보다도, 힘들고 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 녀석과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의미있는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함을 털어낼 수 없었다. 아마 항상 메고 다니는 가방 속에 읽은 만한 책을 한 권씩은 넣어두고 다녔는데, 마음을 다스릴 읽을 거리가 없어서 그렇기도 하구나 싶었다.
책꽂이를 살펴보니, 내가 구매하지 않은 책이 한권 꽂혀 있다. 사실 유시민씨는 내가 ��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가 정치인의 길을 걸을 때도 열렬히 지지하였으나, 그가 써서 세상에 선 보인 거의 모든 책들을 다 읽어 왔었던 것 같다. 내 기준엔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처음 그의 글을 읽은 것은 대학 입학 후 얼마되지 않아, 우연히 얻게된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였다. 이후 그가 썼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정말 흥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이 점은 만화를 그린 정훈이씨와의 공통점이고 하다. 이후 그가 썼던 거의 모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청춘의 독서,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 현대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비롯해서 역사의 역사까지. 아마 책꽂이를 뒤져보면, 다른 책들도 더 있으리라...
유시민의 책은 명쾌하다. 무엇을 얘기하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활자를 좇다보면 그가 글을 쓸 때 느낀 감정이나 무엇을 얘기하고자 망설이는지 또한 느낄 수 있다. 정확히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 한권은 오/탈자가 너무 많아 짜증을 냈던 적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의 책은 그러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집사람이 구매해서 절반 가량 읽은 이 책 또한 명쾌하다. 물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쉽게 읽히는 데 크게 기여하기는 했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빨리 읽어낼 수 있었다.
읽고 나서
책의 전반부는 악플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아마 작가는 악플로 많은 상처를 받았었나 보다. 본인 그렇지 않다고, 잘 넘기고 무플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언급의 양이나 횟수로 볼 때 이제야 해탈의 단계에 이르렀는 지는 모르겠지만, 고생을 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 힘들었을 시간과 이제야 도달한 피안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행이지 뭐, 덕분에 보는 나도 편안해 지는데..."
글쓰기가 직업은 아니지만 글쓰기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야 하는 직업인으로써, 언제나 벗어나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작가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쓰라.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심어 두라.
일전에 읽었던 글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발췌는 할 수 있으되, 요약은 하기 어려운 글. 그 책은 그랬었던 것 같다.
논문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아무래도 논문은 내가 작가보다 더 많이 쓸 것 같은데, 논문을 잘 쓰는 방법은 작가가 훨씬 나은 듯 하다.
주제를 명확한 형태의 질문으로 만든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논문 주제와 관련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그 현황과 성과와 한계를 요약 정리한다.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 보완, 수정, 극복하는데 필요한 사실, 가설, 이론, 해석을 제시하고 서술한다.
논문에 담은 연구 결과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정리한다.
사실 위의 4가지는 논문의 각 Chapter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조금 나아지겠지.
작가는 글을 마치며, 글쓰기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글을 쓰는 기술
글에 담긴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감정이입
글을 쓰는 기술은 사람의 외모, 내용은 체력, 돈, 재능, 지식 등의 가진 것. 그리고 감정이입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으로 비유하고 있다. 적절한 비유라고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정이입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웃기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의 외모, 가진 것, 내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면이라고 답하는 것이 정답을 말하는 것이라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상에서 누구는 외모를 선택하고, 누구는 가진 것을 선택하는데, 이 비율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이 현실이다.
글쓰기도 그러하다. 감정이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하는 것이 정답일진데, 현실은 기술이나 내용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논문을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내용을 높게 평가해 온 듯 하다.
하여튼, 모처럼 유쾌하고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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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페르소나를 읽고
김기석 지음.
2020.12.20. ~ 2021.01.25.

이 책을 손에 들기 전에
개인적으로 감수성이 한참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나름대로 엄청난 독서량을 보였던 대학 시절 이후, 에세이류의 글은 잘 읽지 않았다. 업무나 전공 관련 읽을 글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남이 살아가며 적어 놓은 글들을 읽는 것이 시간 낭비인 듯 느껴졌지도 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그 시절 이후, 소설을 비롯한 픽션을 읽은 기억도 매우 희미하다.
그렇다고 독서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은 아주 감명깊게 읽고, 만족도가 높은 책이었다. 또 개인적으로 워낙 삼국지나 열국지 등의 중국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좋아하여, 자오위핑이 쓴 연작들, 예컨데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 "판세를 읽는 승부사 조조", "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생각해 보면, 무엇에 대해 쓴 글인지가 명확하거나 지식의 습득이 가능한 경우에 만족도가 높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때문에 이 책, "욕망의 페르소나"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 조차도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원래 '가면'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니, '욕망이라는 가면'이라고 이해하면 될까? 아니면, 페르소나가 심리학적으로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외적 성격'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니, '보여지는 욕망'이라고 해석하면 될까? '겉으로는 욕망 덩어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인지, '욕망의 본질은 다른 것에 기인한다'는 의미인지 좀처럼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첫 번째로는 코로나 19로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이 시절에, 지금 섬기는 동탄 산돌감리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전해 주신 책이기 때문이었다. 집사람은 이 책을 받고, "내가 욕망 덩어리라, 목사님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주셨나?"하며 지레 찔려하기는 했지만, 내 생각은 목사님께서 세상의 탐욕스런 보수 교단과 싸우는 당신을 이해하고 지지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주신 것이라 이해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 감리회의 모범적인 사역자 중 한 분으로, CBS '잘믿고 잘사는 법'을 통해 기존 보수 교단의 탐욕스런 메시지와는 다른 메시지를 전해 주시는 청파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김기석 목사님이 쓰신 글이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예전에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말씀에 힘을 얻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은혜로운 말을 잘하던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이 알려지고, 제대로된 반성도 없이 근처에 홍대새교회라는 교회를 열고 다시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망치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홍대새교회는 코로나 19 시대에 대량의 확진자를 발생시키곤, 이 사실을 공식 공지조차 내지 않았다(관련 뉴스). 전병욱 목사에게 실망한 이후로는 삶의 궤적을 알지 못한 채, 입을 통해 나오는 은혜로운 말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김기석 목사님의 CBS 영상은 Youtube로 여러차례 접해 보았지만, 그냥 좋은 말을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여 또 한번의 존경하는 목사님이 생기고, 나중에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싶은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김기석 목사님이 쓰신 글을 냉철히 읽어 보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속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여 파멸에 이르렀거나, 파멸의 직전에 회개하여 자신의 욕망을 신앙으로 다스려 파멸을 벗어난, 성경 속의 사람들을 얘기하고 있다. 오래되었으나 깊지 않은 신앙 생활 속에 항상 느끼고 있던 의문들, 예컨데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만 받았나?", "야곱의 표독스럽고, 교활한 심성과 행동에도 축복받을 만한 자인가?" 같은 질문들에 대하여, 예전에 교회에서 듣던 해석과는 다른, 조금은 상식에 가까운 해석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 책은 총 1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 살인을 부른 질투
잘 알려진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이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농사를 짓던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목축을 하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이후 가인은 아벨에게 질투라는 욕망을 느끼고, 이 때문에 동생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다.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부르는 법. 이후 하나님께 거짓을 고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과 형제/가족을 등지게 된다.
가인의 잘못은 어디부터 시작된 것일까? 제사 결과에 따른 불순종? 이에 따른 질투? 아니면, 땅의 소산으로 드리는 제사?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니,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흔히들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그 답을 구하고 있다. 히브리서에는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해석은, 아벨의 제사는 대속의 피가 있었고 가인의 제사는 그렇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다. 제사는 자기가 가진 것들 중 가장 값진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닌가? 가인은 아벨에게서 양을 구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근래에 행해지는 것처럼 "돈"으로 드리는 예물은 잘못되었다는 의미인가? 예수의 보혈을 말미암아, 양의 피로 대속할 필요가 없다고는 하지만, 돈과 보혈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모른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차라리 솔직해서 좋았다. 많은 설교나 목사님들이 여러 해석들을 붙이는 데, 개인적으로는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솔직하게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은 이유를 모른다고 인정한 이후, 가인의 질투라는 욕망이 죄를 불러왔음을 논하는 게 옳다.
필자는 질투라는 욕망을 닦아내야 하며, 그 방법으로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우리의 눈물을 제시하고 있다.
- 뒤를 돌아본 자의 죽음
성경의 유명한 이야기인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과 떨어진 롯이 정착한 곳은, 환란과 타락으로 유명한 '소돔' 땅이었다.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롯은 소돔 땅에서 그래도 나름대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았다. 덕분에 그 땅에서 살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탈출의 와중에 뒤를 돌아 본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였고, 지금도 미련한 인생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롯의 아내가 가진 욕망을 '금지된 것을 갈망함'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 보는 신앙인'이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뒤를 돌아보는 것이 잘못인가? 뒤를 돌아보아야 반성을 하고, 제대로 된 길은 선택하고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마도 필자의 말을 조금 더 명확히 해석해 보자면,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을 갈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 오만한 권력의 몰락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크레르크세스) 시절의 하만, 모르드개, 에스더 주연의 서사시를 기술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스러져간 하만과 서슬 퍼런 권력에도 할 말을 하여, 의를 세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이야기를 전한다. 더불어 이 시대의 교회가 권력을 바라보는 것인 아닌지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기도 한다.
거악(巨惡)에는 동조하며 침묵을 강요하지만, 소악(小惡)에는 흥분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오늘 날�� 교회에 대한 경고의 글이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베푸는 은전은 선이라 칭하지만, 이를 제도화하려면 악이라 칭하는 이 시대를 향하는 글이기도 하다.
- 왕이 곧 신
권력이라는 욕망에 대한 또 하나의 글이다. 다니엘 서에 등장하는 벨사살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앞의 하만 사례와 다른 점이라면, 벨사살 왕은 이미 모든 권력을 다 지니고 있으며, 그 권력으로 비롯된 '오만함'이 파멸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이다.
- 뒷주머니에 숨긴 돈
여호수아 시절 전리품을 사취한 아간의 이야기이다. 이기적 물욕 혹은 탐욕, 허위의식으로 파멸에 이른 아간의 사례를 들며,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는 시대의 정치인과 교회를 얘기하고 있다.
어떻게 가지게 된 것을 따지지 않고, 많이 가진 자를 축복받은 자라고 일컫는 오늘 날의 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 자기 의라는 질병
바리세인과 세리가 등장한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다는 긍지에 찬 바리세인. 성전 외딴 곳에서 기도하던 세리를 노골적으로 거명하며, 그와 같지 않음을 감사한다는 바리세인. 반면, 토색(討索)을 일삼는 세리를 직업으로 가지고, 주눅들어 성전 외딴 곳에서 기도하던 세리. 자신의 얘기대로라면 경건한 삶을 사는 바리세인과 토색을 일삼을 가능성이 높은(모든 세리가 다 그러하지는 않았을테니) 세리를 빗대어, 자기 의에 취한 바리세인의 잘못을 얘기하고 있다.
여기서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문제가 아니라, 남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 영생보다 재물
마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영생을 구하는 부자 청년'의 사례를 제시한다. 결론은 누구나 알고 있듯, 가진 모든 것을 베풀고 나를 좇으리는 예수의 말씀에 근심하며, 청년은 결국 예수를 따르지 못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부자 청년의 재산 형성 과정을 추측한다. ''정의롭기만 했겠는가''하는 어찌보면 당연한 추론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의 주제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아무 근거없이 정의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부자 청년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부자 청년의 잘못은 부의 형성 과정이 불의해서가 아니라, 재물의 달콤함에 빠져 영생을 놓친 것에 있다. 굳이 이런 식의 기술은 쓸데 없는 논란을 야기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이 장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내용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 영생을 이긴 사례이다. 그러면서 이 화살은 다시 '금송아지'를 섬기는 교회로 향하고 있다. 돈이 주는 안락함과 영생은 함께 누리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그 과정의 정당함이나 부당함과는 관계없이.
- 동상의 욕망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이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느부갓네살 왕과 다니엘의 사례를 통하여, 인간으로서 영원을 욕망하는 우를 논한다.
- 갑의 욕망
성경의 유명한 인물이며,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가지 같은 축복을 받은' 야곱의 예를 들고 있다. 언제나 형에 눌려 을(乙)의 위치에 놓였던 야곱이 갑(甲)이 되기 위하여,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고난을 당하는 이야기 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야곱의 축복 이야기이다. 많은 목사님들이 장자의 권위를 팟죽 한 그릇에 판, 형 에서를 나쁘다고 설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렵다. 야곱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의도적으로 아버지와 형을 기망했다. 형 에서는 아버지에게 효도하였으며, (성경에 별도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머니에게도 불효하지는 않았다. 형은 능력있었으며, 동생을 핍박하지도 않았다. 팟죽의 사례는 야곱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되지만, 야곱의 집요한 성격은 형의 곤궁함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얼마든지 만들었다고 유추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야곱의 행위는 정당한가? 에서도 팟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위를 판다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했을까? 이후 모든 것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남은 축복이라도 구해서 받았다. 이 이야기에서 피해자는 명백하게 에서라고 할 것이다.
그 이후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에게 당한 것은, 자신이 형에게 가한 행위에 비하면 별 것아니라는 생각이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와 벧엘에서 싸워 이기고, 모든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반면 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필자는 야곱의 행위가 에서 속에 잠들어 있던 가인을 깨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에서와 가인을 동일하게 비교하는 것이 옳은가? 아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으나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가인과, 야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에서의 분노가 동일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질투에 눈이 멀어,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이 가인과 비슷한 것 아닐까?
하여튼 이 이야기는 '갑이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이, '축복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모든 것을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갑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나쁜 것이고,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축복에 대한 강한 욕망'은 용서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욕망이라는 의미일까?
- 영의정과 좌의정
예수를 세상을 전복할 메시야로 이해한 제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들이 확 뒤바뀐 세상에서 권력을 누리게 될 '권력욕'을 언급한다. 필자는 힘(아마도 권력을 의미하리라 생각된다)은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섬기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와 함께한 제자들이 권력을 좇았으나, 결국은 순교자가 되는 얘기를 전한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는 것은 권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 정신을 붙들지 않음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 곳간을 채운 부자
악인이 형통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궁핍한 시대에 곳간을 짓는 것이 악이라고 한다. 풍요한 시대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것은 가장 큰 인간의 추문이라고 한다.
초대 교회 때와는 달리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악이라 칭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교회는 가진자의 것을 덜어 못 가진 자에게 주는 것을 제도화 하는 것에는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할까?
- 권력의 독
다윗 왕 시절, 암몬과의 전쟁에서 충성된 장군 우리아를 배신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다윗은 선지자 나단의 꾸짖음에 회개하게 된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가 다음과 같은 비유를 전한다.
> 나단은 다윗을 찾아가 마치 한담을 늘어놓듯 어떤 성읍에 살고 있던 두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한 사람은 양과 소가 아주 많은 거부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해서 겨우 암양 한 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 마리에 불과했기에 그는 양을 애지중지 키웠다. 그 집의 아이들에게 그 양은 식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오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인색했던 부자는 자기 짐승을 잡아 대접할 생각이 없었기에,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강탈해 나그네를 대접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이 화를 내며 말했다.
>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산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삼하 12:5~6)
나단은 이 이야기를 듣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 당신이 그 사람이라
권력은 인격의 등가물이 아니며, 권력의 독은 직언을 들을 수 있을 때 해독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 듯 하다.
- 타인은 지옥
예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는 병자를 치료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미담을 듣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들어 예수를 탓한다.
> 안식일인테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요 5:10)
근본주의자 들의 한계/문제점을 제시한 것이다. 옳다. 그런데 또 하나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예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인 모은 병자를 구해주지 않으셨을까?"
필자는 하이데거의 "함께 나란히 있음(Mit-Einander-Sein)"을 통해,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나의 존재 조건이라고 얘기한다.
- 하나님께 의지가 꺾인 사람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셉은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 하나님께 그 의지가 꺾인 사람이라 더욱 쓰임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한다. 한편, 잘못된 욕망으로 자신과 주변을 어렵게 한 보디발의 아내의 사례를 들어, 잘못된 욕망이 우리를 끌고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을 전하고 있다.
- 운명에 저항한 사람
성경에 등장했던 많은 형제들의 얘기를 펼친다. 갈등이 있는 형제(가인과 아벨,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요셉과 형제들)나 우애 깊은 형제(유대인의 전설로 전해지는 솔로몬이 성전 지을 터를 정한 이유가 되는 이야기)의 이야기 까지.
그러나 이 장에서 주인공은 야곱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인정 투쟁에 성공한 야곱의 이야기.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장자의 명분을 위해 투쟁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라는 축복까지 쟁취한 야곱의 대서사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각론에서는 공감가는 구절이 많았으나, 총론적으로 보았을 때는 무엇에 관한 책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어떤 욕망이 나쁜 것이며, 또 어떤 욕망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책 전체가 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안내서도 아니다(욕망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 제시는 처음 몇 개의 사례에 국한된다).
왜 이 책의 제목이 굳이 "욕망의 페르소나"여야 하는 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그저 필자가 욕망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인 것이라고 보기에도, 나중에 몇개의 Chapter와는 통하지 않는다.
또한 내용의 기술에서, 앞 뒤 맥락의 연결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덕분에,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용하는 단어의 활용법이었다.
흔히 사용되지 않은 순우리말 단어를 사용한 것(예를 들어 띠앗1, 더께2, 발밤발밤3, 휘갑치다4, 안추르다5 같은 단어는 처음 들었다)은 좋았지만, 그 뜻을 달아주는 친절함까지 함께 보여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새롭고 예쁜 우리 말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개인적으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한자어의 순서를 바꾸어 사용하는 사례(예를 들어 경외(敬畏)라는 단어는 대체로 알지만, 외경이라는 단어는 기존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같은 의미로 사용한 듯 하다)는 불편했다. 물론 여기서의 외경이라는 단어는 필자가 만들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용한 책6에서 그렇게 사용한 것 같기는 하지만,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용어에 이러한 경우가 많다. 작다는 의미의 ''미세(微細)'의 순서를 바꾸어, '세미한 주의 음성'과 같이 사용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 그 당위성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의미의 단어를 이렇게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새로운 용어처럼 들려, 주목 받을 수는 있겠지만, 원래의 의미가 호도되거나 의미전달이 어려워 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이다.
또한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사용되고 있다.
> 비본래적인 것이 본래적인 것을 몰아내고 있다.
'본래적'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아마 의미는 '본 모습이 아닌 것이, 본 모습처럼 되어가고 있다' 혹은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7 정도의 의미일 것으로 유추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낯설다. 짧은 식견에 '~적(的)'은 완전히 그것이 되지 않았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래의 것'과 ''본래적인 것'의 의미는 아무래도 내게는 다르게 들린다.
가장 불편했던 단어는 '타자화'였다. 책에서 사용된 단어들의 용례를 살펴보자.
> 이웃을 물화 또는 타자화한다. > 질투 혹은 시기는 타자 관계의 어긋남을 보여주니 말이다. >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 > 타자와 자기를 비교하면서
내가 이해한 바에 따라 문장을 수정하면, '이웃을 사물화하거나 도외시한다', '질투 혹은 시기는 대인 관계의 어긋남을 보여주니 말이다', '절대 타자이신 하나님-전혀 뜻을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정도가 되겠다. (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명확하지 않은 단어를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뜻을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평에도, 김기석 목사님이 이 책을 펴신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사례를 제시하며,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1년 2월 1일
미주
띠앗: 우애를 의미하는 우리 말 ↩︎
더께: 몹시 찌든, 물건에 앉은 거친 때 ↩︎
발밤발밤: 목표한 바 없이, 발길이 가는 대로 한 걸음씩 천천히 걷는 모양. ��라마 선덕여왕의 OST로 나왔던 모양이다. ↩︎
휘갑치다: 1) 피륙·멍석·돗자리 등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도록 얽어서 둘러 감아 꿰매다. 2) 다시 말하지 못하도록 말막음하다. 3) 어려운 일을 임시변통으로 꾸며 피하다. ↩︎
안추르다: 1) 고통을 꾹 참고 억누르다. 2) 분노를 눌러 가라앉히다. ↩︎
아브라함 J. 헤셸, 이현주 역 (1996),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종로서적. ↩︎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여기서 구축은 쌓아 올린다는 의미의 구축(構築)이 아니라 몰아 낸다는 의미의 구축(驅逐)이다. 아마도 후자의 구축이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는데, 해당 언어의 번역이 일본에서 처음 되었기에 이렇게 널리 사용되는 듯 싶다. 아~ 물론 후자의 구축은 일본에서만 사용되는 단어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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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과 블록체인 - 논점과 의견
비트코인
비트코인과 블록체인관련하여 얼마 전부터 글을 하나 쓰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학교의 한 학기 마감과 겹쳐 오늘 내일 미루다가 시간만 지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어제는 드디어 JTBC발 세기의 대결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 등의 토론회”가 열리고 말았다. 때를 놓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ㅠㅠ
그냥 하려고 하던 애기 몇 가지 정리해 보는 걸로 마무리해야겠다.
비트코인 관련 논의는 몇가지 논점의 정의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다음의 얘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1. 현재 비트코인 열풍은 투기다.
비트코인 열풍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김치프리미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열기가 뜨겁다. 실제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 뿐만아니라, 비트코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니, 이 문제는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고 봐도 문제가 없을 듯 하다.
2. 비트코인은 (실물)가치가 없다.
사실 비트코인은 형태가 없는 데이터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만 없다면 그야말로 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된다. 반면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은 기술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이 문제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다르지만.
그렇다면 현재 뜨겁게 논의되고 있으며, 엊그제 JTBC 토론에서도 뜨겁게 설전을 벌였던 논점은 대개 다음과 같이 논의될 수 있겠다.
1.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은 분리할 수 있다?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이다. 개인적인 의견은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토론회에서 찬/반이 나누어지는 가장 첨예한 화두가 이 문제라고 보인다.
일단 블록체인 기술은 크게 개방형(Public)과 폐쇄형(Private)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폐쇄형 블록체인의 경우는 암호화폐와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점에는 모두들 동의한다고 보인다. 개방형 블록체인에서 기술과 암호화폐를 구분할 수 없다는 얘기의 근거는 자발적 참여의 보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암호화폐이기 때문에, 이를 블록체인 기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보상의 수단만 찾으면 될 문제이다. 금전적 수단을 활용하더라도 고정 가치의 수단을 제공한다면, 투기적 양태를 제어할 수 있다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은 블록체인과 분리할 수 있으며,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활용한 하나의 응용사례에 불과하다.
2. 비트코인은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있다?
엊그제 토론회에서 또 하나 중요한 화두로 기억된다. 말로는 법정화폐를 대체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화폐라고 부른다. 법정화폐의 개념이 아니라면, 화폐라고 부르면 안되는 것 아닌가?
더 중요한 문제는 비트코인 광풍의 핵심에 암호화폐를 법정화폐의 대체수단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사람 혹은 현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공급에 한계가 있다거나(이 문제는 비트코인류의 일부 화폐에 국한되기는 하겠지만) 가치가 안정되지 못한다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비트코인은 법정화폐를 대체할 수 없다.
3. 비트코인은 안전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비트코인은 안전하지 않다. 블록체인 자체는 해킹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안전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거래를 위해 활용되고 있는 거래소는 너무나 불안하다. 또한 비트코인의 보관은 디스크의 안정성에만 의지하고 있다. 가능성은 작겠지만, 비트코인 보관 지갑이 있는 하드디스크를 분실한다면? 모두 날리는 거다.
현재는 비트코인 거품이 폭발하기 직전으로 보인다. 게다가 현 정부를 젊은이의 적으로 돌리고자 노력하고 있는 일부 언론이 이를 부축이는 형국이 더해져, 향후 거품 폭발에 따른 여파가 더 커질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선일씨 피랍/살해 사건의 기억이 떠 오른다. 정부에서 해당 지역을 여행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금지하고, 경고했음에도 제삼국을 경유하여 기어이 들어가 피랍을 당했다. 이에 정부를 대상으로 그 사람을 살려달라고 노력하던 샘물교회가 결국 국가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김선일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의 송환이 이루어지자, 결국은 정부 탓으로 화살을 돌렸다.
정부에서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에 대한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무작정 이루어지는 투자는 전적으로 개인의 탓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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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못나가는 청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나 또한 꼰대가 아니더냐?
기업 일선에서 나름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하다, 건강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직업을 학교 선생으로 바꾼지 이제는 제법 여러 해가 지났다. 그동안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수입이 줄어 쓰임새가 달라졌다는 점과 시간의 여유가 조금 더 생겨 이러저러한 사회 돌아가는 일에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들어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또 하나 청년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는데, 아마도 청년들을 가르치다보니 그들의 입장과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늘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과연 이들에게 나는 꼰대일까, 아니면 멘토 역할을 하고 있을까하는 자문을 종종 하게된다. 얼마 전, 익히 알고들 있을 꼰대와 멘토의 차이1 체크리스트에 '지금의 나'를 반영하고는 또 다시 절망했다. 우리 학생들을 만나면, 난 여전히 내 말을 더 많이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는 것은 '예전의 나' 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안도감도 함께 느낀다.
누가 청년을 비난할 수 있나?
하여튼 학교에서 청년 학생들을 가르치며 이들을 연민과 미안함이 없이는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이 처한 세상이, 이들이 살아내야 할 세상이 녹록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이들보다는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이지 않나 싶다. '예전의 나'라면 누구나 열심히하면 성공할 수 있다던가, IMF 때 사회에 진출했던 나보다 어렵겠냐는 등의 꼰대성 발언으로 되지 않는 잠언인냥 떠들었겠지만 지금 이들이 살아내야 할 세상은 조금 다르다.
대학시절의 나를 돌이켜보건데, 나는 대학에서 방황해 보았고, 실패해 보았고, 시대와 민주주의 따위의 거대 담론을 고민해 보았고, 허송세월을 보내 보았다. 그러나 확언컨데 지금의 이들처럼 처절히 정규직 취업 여부를 고민하고, 높아진 소비수준을 메울 저임금을 고민하고,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부모의 기대 충족을 고민하지 않았었다.
언제부턴가 청년 취업에 대한 책임이 대학으로 전가된 이후, 각종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위한 대학들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쳥년 취업의 질은 점점 떨어졌다. 경제성장의 한계와 기업 중심의 정부 정책 등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대학이 청년취업의 책임을 떠 맡은 이후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다. 더불어 졸업한 학생이 현장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된다는 기업의 불만은 대학이 더욱 취업시장에서 약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대학의 목적이 직업학교는 아니지 않는가? 대학에서의 교육이 어쩌면 이들이 정규교육으로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기회인데, 그 기간을 기능을 습득하는데만 사용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 얘기에 대해서는 또 한 보따리 할 얘기가 있지만,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얼마 전 페이스 북을 보다가 다른 분이 공유한 카드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이른바 "청년들의 탕진이 탕진이 아닌 이유2"라는 이 얘기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현실에서의 팍팍함을 쓸데 없는 것에 대한 소소한 사치로 해소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누가 이들을 욕할 수 있나? 단군이래 부모보다 잘 되기 어려운 첫 세대. 소득의 증가로 생활수준이나 보는 눈은 높아졌으나, 사회에서의 댓가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불균형. 이제는 한계에 달한 경제성장률을 인정못하고 성장기때의 정책 중심의 산업정책으로 노동없는 성장이 계속되어 가는 가운데 청년들의 소외. 과연 누가 이들에게 "너희 청년 세대들이 겪는 어려움은 나약한 너희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허망한 꼰대의 지적질을 해댈 수 있을까?
청년은 이미 눈을 낮추었다
가끔 신문지상에서 청년들이 취업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한다는 꼰대들의 충고질을 싣는 것을 본다. 내 생각으로는 청년들은 일찌감치 눈을 낮추고 있다. 대학 혹은 대학원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기대하는 연봉 수준은 얼마나 될까? 충고질을 일삼는 꼰대들은 과연 얼마나 벌고 있나? 후자에 대한 답은 못하겠지만, 전자에 대한 조사 결과는 나와 있다3. 취업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잡코리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6년 신입 구직자의 평균 희망연봉은 업종별로 조금 차이가 있지만, 2,300만원 ~ 2,9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전문대: 2,313만원, 4년제: 2,613만원, 대학원: 2,922만원). IMF가 한창이던 시절 석사 졸업하고 취업한 직장에서 처음 받은 연봉이 2,700 만원으로 기억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수준은 변함이 없다. 내 기준으로 이정도면 충분히 눈 높이를 낮추고 있다. 얼마나 더 눈을 낮추어야 하는가? 이들이 살아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늘었는데?
문제는 '자본의 수익성'이 '노동의 수익성'을 초과한지 한참 되었으며, 그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보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의미이며, 가진자가 살기 더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흔히들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얘기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함께 잘 살면 안되겠니?
언젠가부터 교육이 지식을 가르치는 그 본연의 목적에서 괴리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른바 '잘 나가는 청년'의 성공 스토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교육이 성공의 도구가 되어가다보니,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모든 과정에서 인성 교육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인성의 성숙없이 성공한 사람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얘기 또한 흔하다.
혹가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공한 사람을 대서특필하는 세태 또한 그 의도와는 달리 교육이 성공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데는 다름이 없다. 얼마 전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된 이선애 변호사의 불평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4. 1989년 11월 25일자 한겨레 6면의 독자투고에는 의미심장한 독자기고가 실렸다.
아무개가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했다 하면 될 정도의 기삿거리를 수석합격자가 여자라는 점, 그의 부모가 노점상이라는 점, 어린 시절이 고생스러웠다는 점 등을 불필요하게 부각시켰다.
세인의 관심을 몰아가는 황색저널리즘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28년 전 사법고시에 수석합격한 이선애 변호사가 언론의 상업주의적 보도 태도에 불만을 느껴 투고한 내용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그의 투고가 다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28년이 지난 지금 이선애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이후, 그가 그렇게 싫다고 했던 그러한 보도가 눈에 보인다. 대법원이 직접 낸 보도자료5조차 그러하다.
나의 수석 합격 소식을 불우했던 과거와 연결시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출세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는 식의 미담으로 다뤘다.
이런 미담이 사회에 확산될수록 사회의 빈부격차나 소외계층 문제 등 구조적 성격의 문제가 개인적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개 '못 나가는 청년'인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잘 나가는 청년'의 그룹에 드는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러하다. 이들이 마주하게 될 세상은 더욱 힘들다. 그런데 세상의 꼰대들이 전하는 충고는 대개가 열심히 노력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충고를 액면 그대로 전한다 하더라도, 조금 나은 세상을 만들어 넘겨주는 노력은 역시 우리의 것이다.
세상은 더욱 견디기 어려워져서, 그들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인 '노동'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이른바 세상에 내밀 스펙은 어렵게 얻고,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는 낮게 평가되는 이 불합리…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자식세대에게 물려주는 유산이 되었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면 안되겠니? 청년들아 꼰대의 끝자락에 붙어, 비교적 세상을 쉽게 산 거의 마지막 세대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에게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넘겨주게 되어 미안하다.
참고자료
김종길, "당신은 '꼰대'입니까?" 꼰대와 멘토의 차이점 5가지, 아시아투데이, 2015. 03. 10.,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310010006337 ↩︎
이해진, 청년들의 탕진이 탕진이 아닌 이유, 티타임즈, 2017. 03. 06., , http://1boon.kakao.com/ttimes/ttimes_1703061931 ↩︎
김도담 "남들은 얼마 적었을까?" 학력 X 희망직무 신입직 구직자 평균 희망연봉, 위키트리, 2017. 03. 06.,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94350&fb=1 ↩︎
고한솔, Huffington Post, 원출처: 한겨레, 2017. 03. 07., http://www.huffingtonpost.kr/2017/03/07/story_n_15199892.html ↩︎
대법원, 헌법재판소 재판관 내정,헌법재판소 재판관 지명(보도자료).pdf, p.5, http://eng.scourt.go.kr/news/NewsViewAction2.work?pageIndex=1&searchWord=&searchOption=&seqnum=464&gubun=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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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자세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자세
며칠 전 신문을 훑다보니, 유력한 대선 후보인 문재인 후보가 4차 산업혁명을 맞는 자세 혹은 전략을 발표했다1. 대통령 직속의 거버넌스 확보를 중요한 메시지로 전달한 듯 하다. 참여정부 시절의 ICT 전성기를 다시 만들겠다는 포부로도 해석된다. 그러면서 몇가지 내용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1)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 신설, 2)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신설, 3) 과학기술정책 총괄 국가 컨트롤타워 재구축, 4) 5년간 1만명의 초중등 소프트웨어 교사 인력 양성 등이 그것이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委 설치,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 재구축"
향후 5년간 1만명의 초중등학교 소프트웨어 교사 인력을 양성하고, 세계 최고의 초고속 사물인터넷망을 구축
4차 산업혁명이란
4차 산업혁명의 유래
4차 산업혁명(Industrie 4.0)은 제조업을 강점으로 선진국의 입지를 확고히하고 있는 독일에서 처음 주창되었다. 2011년 독일공학협회(VDI)가 처음 언급하고, 2012년 독일 인공지능연구소(DFKI) 등에서 사이버물리시스템(CPS: Cyber Physical System)을 활용한 미래 제조업의 패러다임으로 인용하면서 본격화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가장 큰 이유는 독일 특유의 꼼꼼함으로, 완벽한 표준을 도출한 이후 이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독일의 이러한 시도에 미국에서는 IIC(Industrial Internet Consortium)로 이에 대응했는데, 독일의 Industrie 4.0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표준화인데 반해 IIC는 활용가능한 임시기술을 채용하여 기술 활용성 확인과 시장확대 가능성을 검증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와같이 독일이 먼저 제시한 Industrie 4.0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자, 독일의 경제통상부와 교육과학부가 주관이 되어 플랫폼 인더스트리 4.0(Plattform Industrie 4.0)으로 대응했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은 처음 제기했던 Industrie 4.0과는 조금 다르게, 기반연구보다는 실용화로 무게추가 이동되는 시도이다.
독일發 4차 산업혁명이 보다 근본적이고 지향점이 조금 추상적이라면, 미국 IIC發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 로봇 등의 요소기술의 활용으로 좀 더 구체화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은 지난 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열풍이 되었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경기침체 지속으로 새로운 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우리의 바램과 더불어, 이제 4차 산업혁명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회자되며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회자될 듯하다.
4차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증기기관을 활용한 최초의 방직기가 생산에 활용되면서 유래되었으며, 이를 제 1차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2차 산업혁명은 1870년대 미국에서 그 유래를 찾는데, 컨베이어 벨트와 전기가 생산에 활용되면서 시작되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제 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가 생산에 활용되면서, 전자공학과 IT가 결합된 자동화가 초래된 것을 그 유래로 찾는다. 독일인공지능 센터(DFKI)는 제 4차 산업혁명을 ICT(정보통신기술, Information Conmmunication Technology)와 제조업이 완벽히 융합되어,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과 사이버물리시스템(CPS: Cyber Physical System)을 활용한 완벽한 유연생산 체계의 구축을 의미하며, 그 시기는 대체로 2020년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2.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3차 산업혁명(Industry 3.0)이라는 것은 최근에 대두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3차 산업혁명의 유래를 PLC와 공장자동화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제러미 리프킨이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을 쓴 것은 정작 2011년의 일이었다. 이후 2015년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리프킨을 초청해 "3차 산업혁명"에 대한 특강을 열기도 했다. 리프킨에 따르면 아직 3차 산업혁명은 도래하지 않았으며, 에너지 네트워크, 산업간 융합, 공유경제, 사물인터넷, 3D 프린터 등을 동인(動因)으로 가까운 미래에 3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불과 몇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이 언급되고 있다. 앞서 4차 산업혁명의 유래에 대해 잠깐 설명하기는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는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드 슈밥을 꼽을 수 있겠다. 슈밥의 저서 "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 권한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감명깊게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또 2016년 다보스 포럼의 주제를 "4차 산업혁명"으로 설정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국제적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10월 슈밥은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과 대한민국"이라는 특별 대담이 열리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과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은 그 내용에서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확실한 것은 성장동력이 떨어진 세계경제를 다시 돌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인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두 사람 다 공감하고 있는 것 같고, 그 간절함이 산업계에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뭔데?
리프킨이 주창한 3차 산업혁명이던지, 슈밥이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이던지간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필요에 따라 일각에서는 요소기술(예컨데, IoT, AI, Big Data, FinTech) 등이 부각되기도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연결생산(Connected Manufacturing)이나 Smart Manufacturing 등의 기반의 변화를 부각하기도 한다. 요약해보면, 다양한 요소기술을 활용해 연결생산 혹은 Smart Manufacturing 등을 구현하는 것을 표방한다고 볼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과거 산업혁명이 생산장비/설비의 고도화/지능화에서 생산 제품의 지능화, 인프라의 지능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개략적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4차 산업혁명을 맞는 우리의 자세
한편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다양한 주의 사항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우려 사항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으로 혁명적인 산업기반의 변화가 오면, 직업의 형태나 숫자가 변화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양한 예측들이 있으나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 Forum)이 다보스 포럼 개막에 맞춰 발표한 보고서 'The Future of Jobs'에 따르면 대략 5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과 마찬가지의 비관적 예측이 일반적이다3. 물론 사무/관리 직 등이 단순업무를 주로하는 직업이 줄고, 반면 컴퓨터나 수학과 관련된 직업은 늘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제시하고 있어 반드시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섞어서.
앞서 언급했지만 4차 산업혁명은 그 실체가 아직은 불분명하고, 개념조차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예측 혹은 희망형 미래'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손해볼 것이 전혀없는 대응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표의 싱크탱크 포럼 주제 발표는 적절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대선주자가 언급한 것은 지난해 6월 안철수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최초인 듯 하다4. 그러나 당시 안대표의 연설은 단순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조금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문대표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시각은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철수 대표는 문대표의 발표에 대해 국가 주도의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정부주도로 하는 것은 박정희 시대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했지만5, 이는 조금 과한 느낌이 든다. 물론 조선일보의 보도라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개인적으로 조선일보의 대선주자 관련 보도는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낀다), 대선주자로서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라고 판단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문대표의 대응 방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IoT나 Big Data, FinTech 등의 첨단 기술과 관련된 창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과연 창업에서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중소벤처기업부나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委의 성공을 위한 CSF(핵심성공요인, Critical Success Factors)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환경이 왜 이렇게 축소되었으며, 이를 공급의 확대(소프트웨어 교사 확대나 소프트웨어 인력 확대 등)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얘기는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짧은 식견을 제시해 보기위해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창업 활성화를 위한 과제
개인적으로 기업 일선에서 제법 긴 시간 동안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핀테크 관련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과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창업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글로 풀어 적기는 정말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격해지는 감정을 누르며, 스치는 생각을 차분히 잡아 정리해낸다는 것은 정말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일단 대학교육 문제부터 간단히 짚어보자.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에서는 대학의 교육 목표를 '기업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재 배출'로 잡고 있는 듯 하다.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으나, 지금의 현실을 많이 과하다. 기본적으로 대학 교육은 학생이 평생 사용하게 될 전공 지식의 기반을 쌓는 곳이다. 기업 현장에서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인재 배출이라는 목표하에 학생을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에 대한 대학교육의 유효기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학에 '창업'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창업 실적을 대학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사회경험없는 학생들의 창업은 사실 매우 위험한 모험이다. 단순히 그 회사가 실패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취업의 기회마저 날리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졸업생의 창업은 이른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케팅이나 영업 능력 및 기술적 차별성을 확보하지 않는 창업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는 격이다. 이러니 대학에 창업을 강조하다보면, 대학에서의 창업은 이른바 "개업"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커피숍이나 식당, 주점 등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의 개업이 태반이다. 물론 이러한 개업이 반드시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전공의 경우에는 이러한 개업을 목표로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학생을 위해서라면, 창업 교육은 반드시 취업 이후 충분한 경험이 축적된 이후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의 느낌이다. 실제 이러한 문제 의식은 김병관 의원(@김병관)도 공감하고 있고, 이에 대한 법안 발의를 시도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취업률 일변도의 대학에 대한 평가 및 지원 압력이 10여년간 계속된 결과, 대학 졸업생 취업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더 이상의 취업처 발굴이 어려워지자 이제는 창업또한 같은 맥락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대학 교육은 평생 살아가면서 활용하게 될 지식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기업 현장은 어떠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어있다. 신규 기술을 개발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납품했다가, 그 특허나 기술을 모두 빼앗겼다는 얘기는 심심치않게 들린다. 이러한 기반을 개선하지 않고, 창업만을 독려하면 이로인한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의 문제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자녀를 낳지 않는 문제와 여러면에서 비슷해 보인다. 출산률이 떨어지는 문제는 단순히 아이를 낳으라는 독려나, 출산 비용의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으면, 출산률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창업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창업을 독려하거나 창업 초기 지원으로는 쉽게 창업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창업이후 젊은 스타트업의 생존을 위한 생태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가버넌스 확보 문제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안철수 대표의 언급대로 박정희식의 정부주도의 추진은 문제가 있겠지만, 문재인 대표가 정부의 지원 역할을 의미한 것이라면 그 방향은 맞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정부의 가버넌스는 어느 한 부서가 신설되거나, 원 포인트 레슨과 같이 특정 문제 하나 둘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각종 지원책은 대체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너무 많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자체가 권력이 되고, 지원에 선정되기 위한 쓸데없는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중소기업벤처기업부나 4차 산업혁명위원회 등이 구성되더라도, 의도적인 개입을 통한 권력기관이 되면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정부기관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명확한 룰을 설정/유지하고, 불필요하거나 정부 부처별로 상이하거나 중복되는 규제를 점검/조정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 교육의 중요성
한때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회사들이 SI회사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였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이른바 3D업종의 대표격으로 언급되고, 저임금과 긴 업무시간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학 졸업생들이 프로그램 개발을 기피하는 것은 도리어 당연한 결과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라는 예측은 부인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위한 대비는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제대로된 평가를 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개발자에 비해 우리나라의 개발자는 훨씬 적은 인건비로 훨씬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의 특별부록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환경에서 과연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늘어날 수 있을까?
마무리
4차 산업혁명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그 대응이 더욱 중요하다. 부디 새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관치경제의 모습을 벗어나, 제 역할을 해내길 기대한다.
정직한 경쟁을 위한 규제나 지원, 기본부터 바로 세워나가는 노련함, 긴급한 문제는 조속히 지원하는 과감함 등 새로운 정부가 해 내야할 문제가 많다. 새로운 정부는 인수위 활동 등의 준비 기간이 너무 짧다. 또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정부는 갑질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는 너무 큰데, 낙관적으로 바라만 보기엔 나라가 너무 망가져있다.
2017.2.4.
[References]
연합뉴스, "文,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공약…'4차산업혁명 청사진' 제시", 2017.02.01.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2/01/0200000000AKR20170201085300001.HTML?input=1195m ↩︎
독일인공지능센터(DFKI), "Recommendations for Implementing the Strategic Initiative Industrie 4.0", Industries 4.0 Working Group, 2011. ↩︎
김익현, "4차산업혁명… 일자리 500만개 사라진다", ZDNet Korea, 2016.1.19.URL: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119143111 ↩︎
하지나, "안철수 "4차 산업혁명은 기회..미래일자리특위 설치해야", 이데일리, 2016.6.22. URL: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1915526612684344&DCD=A00602&OutLnkChk=Y ↩︎
이민석, "문"정부가 4차산업혁명 주도",,, 안"공부 좀 하시라"", 조선일보, 2017.2.4. URL: http://v.media.daum.net/v/2017020403082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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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발전의 이유
핀테크 발전의 이유
온갖 언론에 핀테크에 대한 얘기가 하루를 멀다하고 회자되고 있다. 세계경제 또한 마땅한 탈출구가 없는 것 같은데, 핀테크 업체에 대한 대규모 자금의 투자 소식이 심심치않게 들려오고 있다. 핀테크가 이렇게 화제를 모으며 발전할 수 있는 이유를 살펴보자.
IT 기술의 발전
핀테크가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 임을 감안할 때, 핀테크가 기술 특히 IT 기술의 발전에 기인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핀테크의 관점에서 IT 기술의 발전은 인프라(Infrastructure)의 발전과 단말(Device)의 발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유선 기반의 IT 인프라는 급격히 무선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에 따라 스마트폰을 중심으로하는 모바일 단말 활용의 일상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모바일 단말의 일상화는 이른바 유비쿼터스(Ubiquitous)에서 상상하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 시대가 도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ATM(Automatic Teller's Machine)이나 PC에 국한되었던 금융거래가 다양한 단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스마트폰외의 단말이 핀테크에 활용되는 정도는 미흡하지만, 현재 시계나 목걸이, 자동차, 가전 등의 다양한 단말이 핀테크에 이용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한 현실인 것 같다.
인프라의 발전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메신저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 플랫폼이나 보안성이 강조되는 일회용 비밀번호(OTP: One Time Password) 기반의 결제 등 새로운 모델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금융업 중심 성장 모형의 한계
금융업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한 때 유럽에서 가장 못살던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 이후 금융산업의 발전으로 급격한 성장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 경제는 급전직하였다. 아일랜드 또한 금융 중심의 경제발전을 모색한 나라의 하나인데, 이 나라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 외에도 금융 중심의 경제 발전을 모색했던 두바이나 터키 또한 마찬가지 경험을 하였다. 이러한 ���례는 실물없는 금융주도의 경제발전의 허망함을 보이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금융 중심의 경제발전은 이른바 부유한 나라의 경우의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융부문의 성장이 실물경제보다 훨씬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다1.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하여 높은 이윤율을 보이는 기업들의 사례는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 흔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금융 부문의 이윤율과 비금융 부문의 이윤율을 따로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금융부문의 이윤율이 비금융 부문의 이윤율보다 훨씬 더 높았음이 확인되었다2. 그러나 이러한 파생상품 중심의 높은 금융부문의 성장은 2008년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와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파생상품 등과 같이 금융업이 실물경제와 떨어져 발전하는 모델에는 많은 문제가 내포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제 금융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모형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의 의견이다. 다시 말해 실물경제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금융업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핀테크는 이러한 니즈에 매우 적절한 시도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이미 실물경제가 떨어져 발전하는 금융업이 위험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3.
금융시장은 실질경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유동성이 지나치게 극대화되면 오히려 실질경제에서 탈선해서 엄청난 금융재난을 일으킬 수 있다.
신용사회의 도래로 현금 의존성 감소
사용자들은 여전히 현금을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지불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플라스틱 카드의 출현으로 시작된 신용사회는 이제 성숙단계에 이르러 다양한 지불수단이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 각국에 비하여 현금 활용 의존도가 매우 낮으며, 신용카드의 활용도가 매우 높은 편으로 분석되고 있다4. 이는 활용금액으로 볼 때 더욱 확연히 나타나는데, 현금의 결제건수는 전체의 38%에 이르지만 금액으로는 17%에 불과하다. 반면 신용카드의 결제건수 비율을 34%였으나, 금액 비율로는 51%에 이르고 있다. 선진 각국의 경우는 신용카드보다는 직불카드의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는 전체 결제 금액의 절반을 넘는 60%가 직불카드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2015년 조사 결과에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조사결과에는 현금 사용 건수는 조금 줄었지만 금액 기준으로는 조금 증가하였으며, 신용카드의 사용 건수는 증가하였으며 금액 비중은 조금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5. 실물화페 기반의 시대는 점차 가고, 신용기반의 시대가 성숙되었으며 지불수단 또한 점차 다양해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의 경우 체크카드나 직불카드의 활용도는 오히려 줄고 있으며,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카드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5. 모바일 기반 결제의 확대는 향후 본격적인 핀테크 시대의 도래에 매우 유리한 입지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Palma, J. G., "The Revenge of the Market on the Rentiers - Why Neoliberal Reports of the End of History Turned Out to Be premature", Cambridge Journal of Economics, 33(4), 2009. ↩︎
Dumenil, G. and Levy D., "Costs and Benefits of Neoliveralism: A Class Analysis", Financialisation and the World Economy, 2005.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도서출판 부키, Nov., 2010. ↩︎
김규수, 이슬기, 2014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결제연구팀, Jan., 2015. ↩︎
송은영, 박정현, 2015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결제연구팀, Jan., 20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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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의 정의와 분류
핀테크의 정의
2016. 09. 01. Jaeho BAE
핀테크의 정의와 발전 전망
핀테크(Fintech)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T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금융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핀테크는 기존의 금융의 한계를 발전된 IT를 활용하여 극복하는 흐름으로, 여러가지 이유로 다른 산업분야와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왔던 금융분야가 IT 기술을 매개로 다른 산업분야와 융합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핀테크는 그 정의에 비추어 볼때, 완전히 새로운 조류라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분야의 서비스 개선은 IT 기술을 항상 적극적으로 채용해 왔다. 현금인출기라던가 인터넷 뱅킹, 심지어 폰 뱅킹 등도 핀테크의 정의에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보다 엄격히 말하자면, 핀테크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은 금융과 IoT(Internet of Things)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실제 핀테크라고 일컬어지는 많은 사례들이 모바일(스마트폰) 기반의 결제, 송금, 자산관리 분야 등에 집중되고 있다. 물론 일부 사례들은 반드시 모바일 기반에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모바일 기반의 업무 처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러 기관에서 2015년의 핵심 키워드로 핀테크가 선정되는 것을 볼 때, 핀테크의 발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IT 컨설팅사인 엑센추어에 따르면1,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액이 2008년 $0.93B에서 2013년에는 $2.97B로 그 규모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자료에서 2018년에는 $8.00B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싱가폴의 벤터캐피털인 Life.SREDA도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다2. Life.SREDA VC는 2012년이후 핀테크 분야에서의 투자규모는 매년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2013년의 투자액은 $2.2B이었으며 2014년엔 3배 넘게 증가하여 $6.8B에 이르러 예상보다 증가 수준이 높음을 밝인 바 있다.
금융분야는 사실 가장 보수적인 산업분야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는 금융분야의 특성 상 법적 규제가 가장 많은 산업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해관계가 겹치는 조직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2014년의 "천송이 코트 대란"이 아닐까 한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인 천송이(전지현 扮)가 입고 있던 코트를 많은 중국인들이 구매하고자 했으나, 국내 온라인 결제에만 적용되는 액티브 X와 공인인증서 때문에 구매하지 못해 대목을 놓쳤다는 사건이었다. 천송이 코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정부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까지 관심을 표명한 이 사건의 개선에 액티브 X를 폐지하고 EXE 기반의 실행파일에서 공인인증서를 구동하는 방식의 코미디가 연출되기는 했지만, 점차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해서 드디어 공인인증서 의무화 폐기가 2015년에 시행되었다. 공인인증서 의무화는 폐기되었으나, 다른 방법들의 활성화는 아직 미진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했을 경우 사고발생 시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본인인증 방법의 채용을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3. 반면 알리페이나 페이팔 등의 해외 서비스의 경우는 다양한 방법의 본인인증 방법이 개발되고 채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규제가 우리나라 핀테크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핀테크의 분류
핀테크 산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핀테크 산업의 분류가 체계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핀테크 산업의 분류는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자체적으로 정의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 가운데 가장 상세히 분류한 것이 Life.SREDA의 분류인데, Life.SREDA에서는 핀테크의 카테고리를 다음과 같이 12개로 분류하고 있다.
mPOS(Mobile Point of Sales)
T-Commerce
M-Wallet/E-Wallet
Mobile-first Banks
P2P Payments and Remittances
Loans, Scoring and Related Services
Crowd Funding/Crowd Investing
Bit Coins and Other Crypocurrencies
Services for SMEs: E-invoicing, Accounting, Payroll Projects and Online Factoring
PFM/PFP
Trading and Private Equity
Loyalty Proejcts
한편 국내의 핀테크 산업 분류 또한 명확히 정의 되어있지 않은데, 여기에서는 TTA Journal에서 사용한 분류4를 인용해 보기로 한다. TTA Journal에서는 대체로 5개 종류의 분류를 사용하고 있다.
결제/송금
인터넷 전문은행
크라우드 펀딩
금융데이터 분석
디지털 화폐
핀테크 산업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mPOS나 결제/송금 분야를 필두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mPOS나 결제/송금 분야가 비교적 다른 분야들에 비해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거나 고객에게 접근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핀테크가 활발히 발전하고 있는 지역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의 핀테크 발전은 IT 기술과 금융이 일찍이 발전된 국가이기 때문에 일견 당연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Qiandibao, QFPay, Renrendal, Qufenqi, Rong360, Tongbanjie, Wacai, Yingying Licai, Snowball Finance 등)이나 인도(MobiKwik, BankBazaar 등), 나이지리아(Firstmonie), 케냐(M-페사), 남미(Nubank) 등에서 핀테크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낯설다. 이는 중국이나 인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기존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오히려 기회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유력한데, 금융 분야의 규제가 덜하고 모바일을 활용하면서 얻어지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ccenture, "Growth in Fintech Investment Fastest in European Market", according to Accenture Study, Mar., 2015. ↩︎
Life.SREDA, "Money of The Future: results of 2014/trends for 2015", 2014. ↩︎
신민기, 사라지는 '전자금융 인감'… 안전한 대체수단은 언제쯤?, 동아일보, Oct., 2014. http://news.donga.com/3/01/20141018/67246617/1 ↩︎
임석재, "핀테크 보안 동향", TTA Journal, Vol.158, pp.72-79, Mar.,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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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ajor Trends of the 2014 Year
10 Major Trends of the 2014 Year
지난 2014년은 핀테크의 원년으로 기록될 만하다. 물론 그 기원은 오래되었지만, 실제 핀테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주목할 만한 변화를 이룬 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발견한 Life.SREDA VC에서 발간한 “Money of the Futrue: results of 2014/trends for 2015"에는 주목할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가장 첫 장에 나온 2014년 핀테크의 중요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0 Major Trends of the 2014 Year
by Vladislav Solodkiy (Managing Partner of Life.SREDA VC)
1. 핀테크 분야의 투자액은 3배가 되었다.
2012년이래 핀테크 분야는 VC들에게는 아주 좋은 투자처였다. 매년 두배 이상 투자 규모가 증가해 오고 있었는데, 2013년 2.2B였던 투자액이 6.8B로 3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핀테크 분야의 VC 투자 규모는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 핀테크 분야의 최초(그리고 두번째) IPO가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IPO가 실현되지 않은 산업 분야는 제대로 형성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Square사가 핀테크 분야 최초의 IPO 업체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p2p 대출 업체인 Lending Club이 최초의 IPO 업체가 되었다. 이어서 중소기업 대상의 온라인 대출업체인 Ondeck이 뒤를 이었다. 2015년엔 최소한 3개의 업체가 성공적인 IPO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3. 10개 기업이 핀테크 Billionaires 클럽에 가입했다.
2013년 기준으로 Billionaries 클럽에는 "Square”, “Lending Club”, “Stripe"의 3개 업체만 있었다. 2014년엔 "Transferwise”, “Kreditech”, “CreditKarma”, “Wonga”, “Powa”, “SoFi”, “Raise"의 7개 업체가 추가되어 10개 기업이 Billionaries에 가입했으며, 10개 이상의 기업들이 가입을 준비 중에 있다.
4. 애플과 삼성이 핀테크에 발을 들였다.
애플이 드디어 모바일 지갑인 애플페이를 출시했다. 애플페이는 기술적으로는 크게 진보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브랜드 파워나 고객 충성도를 충분히 활용한 성공적인 출시라고 보인다. 향후 미래의 금융서비스는 은행이 아니라, 온라인 기업이나 모바일 사업자, 거대 유통사업자 등에의해 제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들의 경우 일부 얼리 어댑터 중심의 금융거래를 일반화 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삼성이나 페이팔 등이 애플페이의 뒤를 이어, 금융거래의 일반화를 위한 후발주자로 뛰어들었다. 2015년의 경우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샤오미 또한 새로운 핀테크 주자로 뛰어들 것인가이다.
5. 미래의 페이먼트나 자금이체는 메신저 앱에 종속되었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쥬커버그가 WhatsApp을 아주 신속하게 그것도 고가로 인수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잇달아 f8 컨퍼런스에서 메신저가 페이먼트나 송금의 기반이 된다고 밝혀 또 한번의 충격을 주었다. p2p 송금은 WhatsApp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처음 밝인 것은 쥬커버그이지만, 실제 이러한 개념을 적용한 것은 Line, WeChat, Kakao 등이다. 2014년에는 페이팔의 CEO였으며, 현재 페이스북에서 메신저와 페이먼트를 이끌고 있는 David Marcus에 의해 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6. 로켓인터넷(Rocketinternet)의 IPO와 핀테크 - 관련은 없는가?
로켓인터넷의 IPO는 몇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로켓인터넷은 스타트업이 아닌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라는 점이다. 둘째 미국기업이 아니라, 독일기업이라는 점이다. 셋째 로켓인터넷은 두가지 중요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1)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아니며, 실행이 전부다. (2) 미국 밖에도 흥미로운 시장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7. 페이팔(Paypal)과 이베이(eBay)의 결별
투자자인 Carl Icahn은 오랜 기간 동안 eBay와 PayPal의 분리를 지지해 왔다. eBay가 풍미했던 e-commerce 시대가 지고, PayPal 중심의 핀테크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PayPal과 eBay의 분리이후 PayPal의 성장률이 eBay의 성장률을 능가하고 있다.
8. 중국의 약진
e-Commerce의 거인인 알리바바가 사상 최고의 IPO에 성공한 이후, 핀테크 시대를 맞으면서 자회사인 알리페이는 애플페이보다 모든 면에서 100배 이상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남아있는 문제는 언제 IPO를 할 것인가 뿐이다. 2014년 중국은 핀테크와 바이오 테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6.5B 규모의 VC 기업이 출범했다.
9. 모바일은행이 구매자를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바일 은행인 American Simple은 $117M에 스페인의 BBVA 그룹에 인수되었다. 이 사건은 두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모바일 은행은 신속한 고객기반 확보와 낮은 이익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모바일 은행은 고객기반을 확보하고 있으며, 높은 수익률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고객들에게 신속하고 싸게 접근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는 경우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둘째 손쉬운 합병으로 Moven, Instabank, Rocketbank와 같은 경쟁자들에게도 자극이 되었다는 것이다.
10. mPOS 분야가 핀테크 분야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분야였다.
2014년의 특징 중 하나는 mPOS 분야의 기업들, 예컨데 Square, SumUp, ibox, LifePay 등,의 약진이었다. 주요 성장 동력은 먼저 이 분야의 서비스가 잠재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사용하도록 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소기업 고객이나 개인 고객 모두에게 소구할 수 있으며, 오프라인의 인프라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또한 mPOS에 부가적인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점차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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