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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먼지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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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찾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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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hx2-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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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과 대통령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사준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셨다. 화면에서 재생되는 영상에선 김 모 변호사가 나와 말했다. “나약한 여성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남자 될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코끝에 걸친 돋보기안경으로 키보드의 자음과 모음을 눈으로 좇아 독수리 타자를 쳤다. 궁금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서울의 직장을 다니는 나는 몇 달 만에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공휴일에 연차까지 붙여 사나흘 푹 쉴 요량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3일째인 오늘, 아버지는 나에게 두 번째로 말을 거셨다. 첫 번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나를 보시고 건넨 “왔냐”, 이 한 마디였다.
 “새 밥솥을 사야겠다."
얼마 전 20년 된 밥솥이 고장나버렸다. 몇 년 전부터 온갖 신기능을 탑재한 스마트 밥솥이 나와도 거들떠도 안 본 아버지다. 그 편이 한번 산 물건을 쉬이 바꾸지 않는 아버지 성격상 자연스러웠다. 오래된 밥솥이 잔고장을 낼 때도 아버지는 고쳐 썼다. 서비스센터에서 더 이상 구형 밥솥을 못 고친다는 말이 나오고서야 아버지는 새 밥솥을 사기로 했다. 우리는 가까운 가전제품 매장으로 향했다.
쇼핑은 10분 만에 끝났다. 아버지는 국내 가전업계 1위,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은 S사의 밥솥을 집어 들었다. 아마 20년 전에도 그는 가장 큰 브랜드의 밥솥을 구매했을까. 가만, 20년 전에도 저 브랜드가 있었던가. 습관처럼 스마트폰에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인터넷에서 사면 7만 원이나 싸다고?
“아버지, 차 돌립시다.”
내가 말했다. 7만 원이나 차이가 나니 환불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인터넷으로 시키면 된다고 말했다. 요즘 인터넷 배송은 하루면 온다고.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상도덕이 있지. 물건에 이상도 없는데 맘이 바뀐다고 환불하면 안 된다.”
아버지는 상인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집이 가전마트 체인의 이윤을 걱정할 만큼 넉넉한 집안이었던가. ‘호갱’ 잡히지 않으려고 인터넷 검색으로 꼼꼼히 찾아본 뒤 물건을 사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쓰는 노트북도 일주일 동안 뒤지고 뒤져, 컴퓨터 깨나 잘 안다는 사람한테 물어본 뒤에야 구매한 것이었다.
“엔간해야지. 7만 원이면 아버지랑 엄마랑 나랑 외식 한 번 할 수 있어요.”
밥솥을 환불을 하느냐, 마느냐. 실랑이는 이어졌다. 급기야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냈다.
“그래. 바꿔! 다 바꿔! 그렇게 대통령도 바꾸는 거냐! 그게 요즘 젊은 애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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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hx2-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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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10
“2030년 S/S 시즌 대유행 예감 꽃무늬 방독면! 최신식 공기정화기술을 적용했습니다.”
홈쇼핑 쇼호스트의 말이었다. 그는 꽃무늬 방독면이 어떤 옷에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방독면의 필터 실험 장면도 보여줬다. 꽃무늬 방독면은 홈쇼핑 방송 시작 10분 만에 매진됐다.
서울에서 미세먼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일상이 됐다. 대기는 점점 나빠졌고, 아무도 맨 얼굴로 도시를 돌아다니지 않았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방독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방독면 산업이 커지면서 방독면 기능도, 형태도 다양 해졌고, 유행 따라 바뀌는 패션이 됐다.
늦은 밤 소파에 누워 방송을 흘려듣던 A는 문득 자신의 방 벽에 걸린 방독면을 바라봤다. 새삼스레 격세지감을 느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그때는 방독면이 아니라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도 숱했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점점 심해졌다.
A는 이번 주말에는 강원도에 있는 ‘돔10’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방 소도시 정도 크기 면적을 거대한 돔이 덮고 있는 곳이었다. 전국에 10개가 있는데 돔 10은 천장에 달린 에어컨디셔닝 시스템이 가장 최신이었다. 방독면을 벗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이 꽤나 몰렸다. 입장료만 500만 원을 훌쩍 넘었지만 유명 방독면 제조회사에 다니는 A는 돔10의 입장료를 반값에 살 수 있었다.
돔10에 사는 사람들은 재벌이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였다.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그곳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득과 전과, 직업 등 심사절차가 까다로웠다. 서울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남았다. 대기 정화에 드는 예산은 계속 줄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조금씩 줄어들던 공장은 다시 크게 늘었다.
금요일 저녁. A는 전기차로 내리 5시간을 달렸다. 멀리서 돔이 보였다. 입구에 다다르자 A처럼 주말을 맞아 마을로 들어서려는 차들이 줄을 이었다. A는 잠깐 내려 기지개라도 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돔의 입구마다 지키고 서있어 제법 분위기가 삼엄했기 때문이다.
돔10의 주민들은 밤에 들어오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크다며 야간 입장을 막았다. 차에서 꼬박 10시간을 지낸 뒤에야 돔의 입구가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다. 차들이 돔 안으로 들어갔다. A는 11시간이 최대인 차 배터리가 방전될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외부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차를 시작했다. 먼지를 씻어내는 것도 돔 10의 규칙 중 하나였다. 세차를 마친 그는 방독면을 벗고 숨을 들이쉬었다. 꼬박 1년 만에 마시는 신선한 공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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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hx2-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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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연애가 끝났다(1)
끝이 보인다는 걸 직감했다.
기다리던 일본 가정식 음식점엔 자리가 나지 않았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뒤 비슷한 음식을 파는 옆 식당을 찾았다. 나는 기다려서 음식을 먹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은 배를 채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발길을 돌린 그곳엔 쌀밥이 없었다. 그는 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3분 간의 실랑이 끝에 대기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식당으로 되돌아갔다. 대기 순번은 한참 전에 지나있었다.
“집에 갈래.”
그를 뒤로 하고 혼자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부아가 치밀었다.
짜증이 는 건 몇 달 전 일이다. 그에게 화를 낼 땐 나조차도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저 그의 행동이 거슬렸다. 지난 주말엔 떡볶이를 만들다가 어묵을 자르는 방식을 두고 싸웠다. 한 입 크기로 자르라는 나의 요청과 떡볶이에 들어가는 어묵은 커야 좋다는 그의 주장이 맞섰다. 아침잠이 많은 그가 애인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다며 주말의 늦잠도 포기하고 나선 참이었다. 결국 어묵 한 봉지의 반은 한 입 크기로, 반은 크게 썰었다. 굳이 그렇게 나서야 했냐며 서운해하는 그에게 나는 도리어 화를 냈다.
“둘이 같이 먹는데 그런 소리도 못해?”
4살 터울인 우리는 4년을 함께 지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을 그때 그의 나이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점점 더 나쁜 사람이 됐다. 집에 가겠다고 발길을 돌린 그 날은 이제 곧 대학원을 졸업할 그가 하루 종일 기업 입사 지원서에 매달린 날이었다. 그는 쌀밥을 먹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있었다. 나는 화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그런 나를 말렸다. 나를 잡으러 쫓아온 그를 보고 “이건 내 진심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미안하다고 그랬다.
"네가 미안해야 할 이유가 없어.”
입술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4년의 시간 동안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뒤이어 나온 말은 ‘헤어지자'는 ‘표현’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은 아니지만 곧 너에게 헤어지자고 말할 거 같은 강한 느낌이 들어'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이었는지, 또 얼마나 그에게 상처가 됐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헤어지자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그랬다. 4년 가까이 의지해 온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친구를 잃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4년 동안 매일같이 본 사이. 내밀한 면도 서슴없이 보여줬던 사이. 진지한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도 금세 6살짜리 아이처럼 낄낄거리고 유치한 장난을 치는 사이. 
나는 그가 싫지 않았다. 그가 좋은 이유와 그가 싫은 이유를 나열하면 좋은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는 나에게 헌신했다. 나를 위해 정희진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내가 항상 화가 나 있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던 거다. 그는 데이트가 끝나면 1시간 반이 넘는 길을 오가며 나를 바래다줬다. 밤늦게까지 데이트를 즐기다 지하철이 끊기면 올빼미 버스를 탔고, 마을버스가 끊기면 걸어 다녔다. 내가 교환학생을 가 있을 때는 쥐꼬리만 한 공대 대학원생의 월급을 모아 비행기 티켓을 사서 나를 보러 왔다. 왜 꼭 교환학생을 가야 하냐고 원망 한번 한 적이 없다. 내 꿈을 응원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난 그 옆에서 한 번도 모자란 사람이 된 적이 없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걸 포기했으나 내가 포기한 건 고작 좋아하는 '시스루’ 의상과, 습관처럼 내뱉는 거친 욕설뿐이었다. 그는 이 둘을 정말 싫어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다. 한 사람을 아는 건 우주를 아는 것과 같다고. 그래서 질릴 틈이 없다고. 그런데 나는 그의 우주를 탐구할만한 호기심도, 인내심도 없었나 보다. 나는 이 우주의 끝이 보였다. 우리 사이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을 믿지 않았다.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게 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석사 2, 3년 차에 나를 만난 그는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나 역시 변변한 직업은 아직 없지만, 내게 취업이 그렇게 먼 미래도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기차를 피하려면 레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차가 안 보이는 척했다. 어느 순간부터 결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일종의 금기어였다. 그가 청첩장을 받아와도, 함께 아는 지인의 결혼식에 가도, 그의 친구가 아이를 낳아도 '어쩌면 우리도?'라는 머릿속의 질문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내가 장난처럼 말을 꺼내본 적도 있지만 대답을 얼버부린 건 그였다. 아마 내 대답이 그의 맘에 들지 않을 것임을 알아서였을까. 결혼이란 단어는 사귄 지 오래지 않아 쓴 연애편지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결혼하는 날을 가정해 내가 피로연에서 읽을 연설문을 써서 그에게 줬다.  
나는 기차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언제인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네가 나에게 청혼하는 날��까. 네가 입사한 뒤 근사한 차를 뽑아 처음으로 드라이브를 간 날일까. 아니면 내가 직장에 다니고 너무나도 가혹한 근무환경에-내가 일하고 싶은 곳은 그런 곳으로 유명하다-지쳐 나 빼곤 아무도 돌볼 수 없게 날일까. 평소처럼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며 같이 한참을 웃다가도 그 날을 떠올릴 때가 많아졌다. 같이 지내는 날엔 '헤어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혀끝이 간질했다. 짜증이 늘었다.
헤어지자는 ‘표현’을 한 날. 우리는 함께 맥주 3병을 마셨다. 나는 그에게 내 감정 상태를 알리고 싶었고, 처음 보는 술집에 들어갔다. 1년 전 내가 그의 동네에 이사를 왔기 때문에 함께 자주 가는 술집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말이다.
“네가 언제 결혼을 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데 난 널 기다릴 수가 없어.”
그의 말이 공기를 뚫고 내 귀에 닿는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다. 내 말은 현실이 됐다. 이전에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그는 나에게 먼저 용서를 구했다. 내 잘못이 클 때도 잠시 화를 내다가 이내 사과했다. 3개월 동안 잠시 헤어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그는 나를 붙잡으려 갖은 애를 썼다. 그런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처음으로 인정해줬다. “끝이 보인다"는 나의 두 마디에. 그는 "정말 결혼을 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헤어지자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헤어진 거 같다. 4년의 역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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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hx2-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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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코' 생활 5주 차에 접어들며
나는 왜 ‘비육식'을 택했나 그리고 나에게 생긴 변화 5가지  
지난 3월 7일 육식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 막 5주 차. 이번 주 주말이면 딱 한 달이다.
시작은 AI(조류인플루엔자)였다. 지난해 11월부터 AI로 한반도 인구의 절반이 넘는 닭이 죽었다. 미디어는 인간을 ‘먹이기’ 위해 태어났다 살처분당한 닭을 애도하지 않았다. 치솟는 달걀값만 걱정했다. 그 모습에 이골이 났다. 인간이 닭보다 뭐가 잘났기에 수많은 생명이 무참히 죽어가는데도 관심 한번 안 가져주나, 야속했다. 관련 뉴스를 추적하다 닭이 어떻게 사육되는지 알게 됐다. (물론 A4용지 한 장 크기의 닭장에서 자란 닭이 두세 달만에 도축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건 아니다. 그저 피곤한 저녁 프라이드치킨과 맥주 한 잔을 즐기는 데 바빠 닭의 안위에 대해 부러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경향신문 ‘밥상 위의 세계’ 기획기사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업체는 인간을 위해 더 빠르게 더 뚱뚱하게 자라도록 닭의 종을 개량했다. 가슴 근육은 특히 비대해져 육계용 닭을 자연에 방사하면 제대로 걷지도 못한단다.
나는 애도하고 싶었다. 인간을 위해 사육되고, 인간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생명들에 대해 애도하는 방법은 안 먹는 길 뿐이었다.
즉시 행동에 나섰다. 의지로 맞은 첫 번째 식사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그날따라 나의 보스는 저녁 메뉴로 육개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구내식당에서 먹으면 반찬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고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육개장 식당에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어렵사리 고기를 안 먹겠다는 말을 꺼냈다. 보스는 메뉴를 바꾸자고 말했지만, 언제까지 이 선택을 유지할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 때문에 불편을 끼치긴 싫었다. 옆집에서 김밥을 사와 자리에 앉았다.
보스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불쌍해서요"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다. 고기를 안 먹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고기를 안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나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주변에서 채식주의자를 더러 봤음에도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알고 있지 못했다. 보스는 당황스러워했다. 그 전날까지도 나는 보스의 순댓국 메이트였다. 순댓국, 내장탕 등 각종 고기 국물 애호가인 둘은 점심 메뉴에서만큼은 천생연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기를 안 먹겠다고 하니 진정성이 의심될 수밖에. 그렇지만 회사 동료들은 곧 나를 인정해줬다. 비록 닭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라는 취급을 받고, '언제까지 하나 두고 보자'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받았지만 육식을 즐기던 업보가 있는지라 그 정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어렵사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터넷에서 채식주의 방법론을 찾아보았다. 어패류까지 먹는 '페스코’-유제품과 달걀을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유제품과 달걀조차 먹지 않는 '비건’-식물의 잎사귀만 먹고 뿌리나 열매는 먹지 않는 '프루테리언'까지 방법은 다양했다. 페스코가 엄밀한 의미에서 채식주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아무래도 생선을 끊기는 어려웠다. 구내식당에 고기메뉴가 나오면 이를 피할 수 있지만, 생선까지 먹지 않으면 멸치 육수를 낸 된장찌개도 못 먹는 형편이었다. 혼자 사는 나로선 도시락을 싸서 다닐 시간도, 돈도 없었다. 게다가 나의 애도는 어디까지나 포유류에게만 해당이 됐다.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와 낚싯바늘에 걸려 반사적으로 파닥거리는 생선은 다르다. 물론 어패류 중에서 예외를 두긴 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참치, 지능이 매우 높고, 죽임을 당할 때 고통을 느낀다는 문어와 낙지는 피하기로 했다.
관련 서적을 읽다 보니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할 논리적 근거는 충분했다. 최 훈 씨가 쓴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에선 식인 외계인과 인간의 대화가 등장한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식인 외계인이 나타나 인간 사냥에 나서 우리를 잡아먹는 상황이다. 인간은 외계인에게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라고 부탁한다. 외계인은 인간에게 '너희도 닭, 소, 돼지 등을 잡아먹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먼저, 인간은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외계인에게 인간과 동물의 경계�� 명확하지 않다. 어떤 동물은 사회적이고,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쓸 줄 안다. 그렇다면 인간은 '동물보다 지능이 뛰어나다'는 점을 근거로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계인의 지능이 아이큐 700이라면? 그 논리는 곧바로 외계인이 인간을 잡아먹어도 되는 근거가 된다. 죽음을 당하면 고통스럽다는 주장도 외계인이 인간을 죽일 때 고통을 못 느끼는 윤리적인 방법을 쓴다고 해명하면 그만이다. 이제 이 대화에서 외계인의 자리에 인간을 놓고, 인간의 자리에 소, 돼지, 닭 등을 넣어보자. 한 종(種)이 다른 한 종을 잡아먹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논리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비육식, 채식주의는 윤리와 의지의 문제다. '동물도 동물을 잡아먹는다'라는 식의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들먹이면 할 말은 없다. 다만, 호랑이는 육식을 못하면 죽는다. 반면, 인간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또 삶은 모순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팍팍하지 않다. 이미 우리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대학교 교환학생 시절 네덜란드에서 온 룸메이트는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 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맥도널드의 감자튀김과 밀크셰이크에 환장했다. 공장식 사육의 원흉인 맥도널드를 좋아하다니, 그를 두고 비윤리적인 채식주의자라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 역시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도 가죽과 밍크 등을 팔아 십수 년간 나를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부정할 순 없다. 나를 사이비 채식주의자라고 비난해도 상관없다. 어찌됐든 나는 아직도 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나의 선택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그렇게 4주가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보스와의 술자리에서 안주로 나온 육포를 보고 군침이 돌아 곤혹을 치렀다. 세 번의 좌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괴감을 거두고 다시 시작했다. 회식도 했다. 보스는 나를 위해 아귀찜 식당을 선택해 주었다. 물론 보스가 앞으로도 내 선택에 대해 만족해할 진 모르겠다. 내 주변의 채식주의자들이 회식 때마다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회식 메뉴를 '삼겹살'로 정하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나 채식주의자 때문에 메뉴 선택을 고민하는 순간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채식주의자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시선을 견딜 만한 강심장은 아니다. 그래도 최 훈 씨의 말대로 고깃집에 가더라도 불판에 버섯을 구워 먹겠다며 밝게 웃을 예정이다.
보스와 동료들은 내게 변화가 생겼는지 물었다.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히 변화가 있다. 모든 걸 인과관계로 설명할 �� 없다. 채식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아래 열거할 변화는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1. 더부룩함이 사라졌다.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을 한다. 항상 8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서도 2시간은 앉아있어야 하는 게 보통이다. 고기를 끊은 이후로 고기를 먹었던 때보다 훨씬 속이 편하다. 더 이상 배에 가스가 차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다. 소화도 잘 된다. 저녁을 먹고 의자에 앉아 속이 답답해 가슴을 두드리는 일이 적어졌다.
2. 구취가 옅어졌다.
술, 담배, 커피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좋아하는 나에게 구취는 오래된 친구다. 게다가 나의 하루 세 끼란 아점, 저녁, 야식을 말한다. 역류성 식도염이 아침마다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쩝쩝 입맛을 다실 때 스스로 내뱉은 구취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고기를 끊은 후로 치킨, 곱창 등 나의 식도염을 유발하는 음식들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야식을 포기하진 못했지만 역류성 식도염은 사라졌다. 구취도 옅어졌다.  
3. 똥배가 줄어들었다.
이것 역시 야식을 줄이면서 생긴 일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야식을 끊었을 때 일주일에 살이 3kg 이상 빠진 적이 있다. 그만큼 나에게 야식은 포기할 수 없는 일과다. 이전엔 아침에 일어나 불룩하게 튀어나온 아랫배를 바라보며 어제 잠들기 전 '맘껏 처먹은’ 나를 비난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몸매도 몸매지만 건강이 나빠졌단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비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야식이라곤 삶은 계란 또는 감자칩 정도다. 계란 한 판을 먹거나 감자칩 10 봉지를 먹지 않는 이상 예전의 똥배가 나오긴 쉽지 않다.
4. 여드름이 줄었다.
내가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생리 주기에 따라 좁쌀 여드름이나 붉은 여드름이 올라왔었다. 열흘을 주기로 올라온 여드름을 짜고, 연고를 바르고, 여드름 패치를 붙였다. 나는 고약한 여드름의 원인이 흡연이나 음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 내 몸의 변화를 보니 '육식'이었던 듯싶다.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니 일어난 결과가 아닐까.
5. 혼밥이 가능해졌다.
앞에 열거한 몸의 변화와는 달리 환경의 변화다. 보스와의 순댓국 메이트 관계는 끝났다. 사랑했던 점심메뉴, 짬뽕도 보스와 함께 먹을 수 없다. 보스는 더 이상 나를 점심 식사에 부르지 않는다. 슬프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원래 혼밥을 좋아하는 나는 라디오를 듣거나 신문을 보며 점심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점심에 쓸 만한 농담도 준비하지 않게 됐다. 혼밥을 하니 고기를 안 먹는 나를 딱한 눈으로 쳐다볼 사람도 없다.
페스코 생활 5주 차에 접어들었다. 당분간 나는 이 생활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육식을 하고 싶은 충동은 확실히 줄어들었으며 내 몸, 그리고 생활의 변화에 만족한다. 아직은 '사이비 채식주의자'이지만, 언젠가 좀 더 높은 단계에 도전해 보겠단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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