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wanna be here? Send us removal request.
Text






형을 찍은 사진과 형이 찍어준 사진들
많이 좋아하는 형이 세상을 떠났다. 혼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다.
나는 사주에 물이 많아서 큰 불을 옆에 두면 좋은 팔자였고, 형은 큰 불이었다.
쉬어버리면 불이 꺼지기라도 할 것마냥 일만 해대는 사람이었고, 내가 아끼는 사람 중 누구보다 고단하게 삶을 끌고 가는 사람이었다. 편하게 사는 모습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형은 내게 누구보다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형에게서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웠고, 많이 얻었다. 아직 한참을 돌려주지 못했는데 형이 떠났다. 아무 말 없이 그냥 갔다.
입관하는 날은 피부가 따가울만큼 뜨거운 날이었다. 형은 자신보다 더 큰 불 속에서 이번 생의 모습을 지웠다. 사라진 사람은 상징이 된다. 한동안 있을 무더위는 가차없이 형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나는 일산에 살고 형은 서울에 살았지만, 그래도 쉽게 보기는 물리적으로 먼 곳의 사람이었다. 이제 어디에도 없는 형은 내게 내리쬐는 태양, 재떨이에 쌓인 꽁초, 형에게 받은 책과 옷가지들만큼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살아있을 땐 자주 떠올리지도 못했으면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하게 되는 걸까.
유서의 마지막에는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잘 살아보겠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나는 대체 이 부재를 어떻게 대해야하나 모르겠다. 하루하루 갈수록 더욱 그렇다. 떠오르는 생각도 감정도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휩쓸려 갈까 두려워 무엇 하나 붙잡을 수 없다. 나는 아직 내일로 가야하니까. 그저 형이 이제는 좀 편하려나 싶은 마음이 유일한 위안이다.
11 notes
·
View notes
Text




Alazia 더 이상 변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 그리하여 여기, 지금의 당신이 있다. 이따금 당신은 스스로 변하길 원하더라도 과연 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스스로를 놀라게 할 만큼 충분한 배짱이 남아 있을지, 혹은 너무 억세고 냉소적으로 변해서 쭉 기지개를 펴면 산산이 부서져버릴 만큼 이미 몸과 마음이 굳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어쩌면 당신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 너무 오랫동안 궁금해한 나머지 그 질문에 실제로 답이 있다는. 그 ‘미래’가 곧 도래하리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는지 모른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 존 케닉
2 notes
·
View notes
Text



냉장고에는 가만히 두면 곰팡이가 피는 갖은 것들이 가만히 있다. 남은 계란을 세는 일로 며칠간의 저녁을 가늠한다. 오늘 하늘에 가만히 뜬 달은 냉장고처럼 차갑게 밝다.
찬바람이 은근슬쩍 창을 두드린다. 집 안에서 추위를 견디는 건 너무 볼품없는 일같다. 보일러를 틀고 뜨끈한 바닥에 몸을 기대고 부담없는 시간을 쓰다가, 돈을 생각하며 마음 졸인다. 졸이다 만다. 다시 부담없이 따듯한 바닥을 의지하며 잊는다. 온기 외에 전부 잊는다. 잊어도 괜찮은 날이 가장 좋은 날이다.
17 notes
·
View notes
Text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사실 나에 대해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간다.
사회생활 요령이란 것들도 대체로 그 무관심에 기반한 것이다.
“감정적이지 말고, 조급해 말고, 여유있게 행동해라.” 결국 어디까지나 너무 진실되게 행동하지 말고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게 좋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마음인지 어떤 인간인지는 그곳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애써 피로해지지 않게 편하게 편하게.
나를 드러낼 곳은 점점 줄어들고, 나라는 것이 나에게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내가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에 속수무책인 기분이 요즘 나의 외로움이다.
8 notes
·
View notes
Text




교토에 갔을 때, 바다처럼 큰 호수를 찾았던 적이 있다. 비와호. 나는 그 호수의 둘레를 한참 걸었다. 저멀리 배가 떠 있었나. 없었던가. 잘 모르겠다. 땅처럼 펼쳐진 수면을 조용히 바라보며 걸었다. 길이 끝나지 않아서, 반 시간 정도 걷다가 걸은 길을 다시 돌아와야 했다. 호안선은 길었고, 수평선은 멀었다. 바다 같았다. 바다를 보는 것과 영락없이 같은 기분 같은 감상이었다. 오기 전에 구글에서 위성지도를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정보를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의심없이 바다 앞에 서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바다가 마음에 들어 배를 띄우고 그물을 풀어 밥벌이를 하는 어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전생에 위성지도와 구글 같은 게 없던 시절의 내가 교토의 보수적인 문화에 갑갑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로든 벗어나고자 당차게 배를 띄워 항해하였으나 겨우 이틀 만에 반대편 땅에 도착하여 나이가 지긋한 누군가에게 ‘여보게, 이건 바다가 아니라니까.’ 라는 말을 듣고 맥이 다 빠져 별 수 없이 교토로 돌아가야하는 수동적인 운명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런 어이없는 좌절을 겪지 않게 해주지만, 바보같을지도 모르는 꿈과 야망 같은 것들을 발아하지 못하게도 한다. 나는 늘 필듯 말듯한 꿈과 야망이 아쉽다. 삶을 조금 들뜨게 해주는 그런 열감의 부재가 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위성지도도 구글도 챗지피티 마저도 존재하는 이 시대에는 모든 일들을 대하는 태도가 비와호를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하다. 바다 같은 것을 보면서 호수라고 이해해야하는. 배를 띄워도 하루 이틀이면 다다르는 끝을 가만히 서서도 알게되는 마음. 눈앞에 떨어진 주제나 일감에 대해 당장 내 감상이 어떻든 이런 것, 혹은 저런 것이라는 정보를 먼저 이해하고 만다. 우리는 정보에 기반하여 그 무엇의 올바름이나, 완성치를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완성치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이렇게든 저렇게든 존재한다는 것마저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쉽게 해낼 수 없다. 역설같게도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로서는 쉽게, 되는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치울 수 없게 된다. 어렴풋하게라도 알게된 정답을 모른 척 하는 일은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십자가를 짊어지듯 책임감을 짊어진다. (사실 말이 좋아 책임감이지, 어쩐지 그 죄로 내 삶의 상승 곡선이 꺾이거나 추락할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일단 내빼고보는 프롤레타리아의 첫번째 기질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매번 삶을 무겁게 한다. 나는 그런 무게들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사람들을 애정한다. 모든 정답을 떠안고도 자신을 지킬 수 있을만큼 스스로를 단련한 사람이든, 애를 써봐도 정답을 손에 쥐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어느 정도면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알게된 사람이든, 대중없이 외면해버리든 말이다. 무책임이라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선택한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 결단력이 부족하다. 팔자라는 말로 뭉뚱그려 나를 달래보기도 하지만,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안다. 한 번 내려놓으면 끝없이 내려놓을까봐, 제대로 상승해본 적도 없는 내 삶이 언젠가 마주할 기회조차 만나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바닥으로 내려앉을까 두렵다. 십자가든 두려움이든 정답이든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6 notes
·
View notes
Text
어느덧 겨울은 희미합니다. 바람 속에 흩어진 겨울내음을 뒤적이며, 겨울의 추모곡을 하나 골라 듣습니다. 겨울이 벌써 그립습니다. 특별한 시절로 기억에 남을 법한 겨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겨울다운 겨울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메마른 가지에 앉은 새처럼 메마른 마음에 겨울이 앉았다 갑니다. 겨울을 기다리던 자리가 아니어서 여전히 쓸쓸했습니다. 쌀쌀한 겨울과 쓸쓸한 마음은 맞춰입은 한 벌 같아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담배 좀 태우고 오겠습니다.
시간은 이 역을 건너뛰는 기차처럼 무의미하게 지나갑니다.
나는 정거장 벤치에 앉아 오래된 희망처럼 사랑을 기다렸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더라구요.
한동안은 더 정거장 가까운 언덕을 서성일 겁니다.
이 역까지 나를 데려다놓은 기차 속 풍경를 그리면서,
가끔씩은 건널 길 없는 맞은편을 바라보면서,
텅빈 하늘
텅빈 정거장
기차가 지날 때면
얼마나 많은 희망이 사랑처럼 뛰어들었나
아니, 사람처럼 뛰어들었던가
겨울이 벌써 그립다고 했던가요. 눈 내리는 정거장에는 온기의 흔적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눈이 올만큼의 쌀쌀함도 의미없이 지나가버린 듯 하니 쓸쓸함도 마저 지나가기를. 흔적 뿐일 희망은 이제 그리지 않겠습니다. 겨울이 가고 있습니다. 정거장에 홀로 남은 사람들에게 봄이 오길 바랍니다.
9 notes
·
View notes
Text
나는 사실 무직의 이언석을 사랑했는데, 그것은 그가 가진 것들이 그에게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바다, 가족, 친구들, 익숙한 길과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조용한 풍경들, 그 속에 새겨진 시간들. 직장인이 된 그는 현재가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지금의 선택과 변화들의 긍정적인 면을 되짚어보고, 가끔씩은 그것마저 익숙지 않아 애를 쓰기도 한다.
무직의 그는 소중한 것들 사이에 머무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만 어제의 바람이고, 오늘의 믿음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안전한 나날이 지나고 있었지만, 장식장 위에 가만히 놓인 사물처럼 바람 없는 시간 속에 침전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심장에서 가장 먼 갈비뼈 하나를 잃게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면서 사물이 되지 않으려는 자가 두 발을 잃은 채로 시곗바늘의 무심한 동작음에 미쳐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소중한 것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더이상 원죄나 저주 따위가 아니라 가설이나 법칙으로 추대해야 할 때가 왔고, 그 때를 놓치지 않았음에 감사하는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무직의 이언석은 그토록 무력하면서도 절로 취해지는 수동적인 자세에 자주 억울해졌다. 그렇게 불복하는 밤에는 혼자 저주를 떠안은 것 같아 많이 외로웠다. 외롭지 않고 싶었던 무직 이언석은 소중한 것들을 떠나서라도, 다시 함께할 소중한 것들을 위해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 직장인 이언석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언석은 무엇과 함께하는가. 직장인이 된 그를 나는 아직 사랑하지 않는다.
2 notes
·
View notes
Text
4 notes
·
View notes
Text
미래의 미래는 과거
과거의 과거는 미래
폐곡선을 따라
세탁기 안을 나뒹구는 양말같이
빙글빙글
현재가 멈추지 않는다.
발톱이 자라는 만큼
발톱을 잘라낸 만큼
돌아갈 곳도
돌아올 것도 없다.
1 note
·
View note
Text
이십 년 쯤 전에는 고등학생이었던 큰 사촌누나, 작은 사촌누나와 함께 작고 낡은 집의 창고를 고쳐 만든 방에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친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촌수와는 관계없이 큰누나, 작은누나하고 불렀다. 누나들이 같이 지냈던 그 방에는 타자기가 하나 있었다. 나는 수정 기능이 없던 그 타자기로 빈 종이를 가득 채우고 싶어서 설레 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오타를 남기는 것이 두려워서 자판 위에 손을 올려두고서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었다. 자판을 동시에 세 개 누르면 해당 글자와 연결된 레버와 세 개의 막대가 작동하고 먹이 묻어 있는 활자가 종이에 닿기 조금 전에 막대들이 서로 맞물려 글자가 찍히지 않는 채로 고정된다. 고정되어서 자판이 빠지지 않게 된다. 그런 상황이 잦아지면 타자기가 고장난다는 것을 알았다. 자판 몇 개가 그렇게 내 손에서 고장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러 자판들을 동시에 누르고 있어도 두 누나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두 누나는 나를 칭찬하지도 않았고, 딱히 나를 달가워 하지도 않았다. 누나들은 집에 자주 없었고, 나는 타자기가 있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누나들을 종종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큰집을 자주 갔는데 큰아빠는 지병으로 자주 병원에 계셨고,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없는 사람이었다. 큰집에는 할머니와 큰엄마와 큰누나, 작은 누나가 지내고 있었다. 큰엄마는 바쁘게 일을 하러 다니셨고,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들어왔다. 낮 시간에는 주로 할머니가 혼자 계셨고, 일찍 하교해서 혼자 집에 있어야 했던 나는 십 분 정도 걸어서 큰집으로 갔다. 큰집에서 나는 티비를 보거나, 할머니와 함께 도라지의 껍질을 까거나, 시장을 다녀 왔다. 시장을 다녀 오는 길에 할머니의 친구가 하는 슈퍼에 들러 할머니는 담소를 나누고, 나는 작은 오락기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할머니와 큰집으로 돌아가 밥을 챙겨 먹었다. 큰집의 반찬들은 종종 어쩐지 지저분해 보였고, 역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반찬을 먹지 않고 오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좋아했다. 키도 덩치도 눈에 띄게 작았던 나는 ‘그러니까 키가 안 크지.’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역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자주 밥을 말아 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도라지나 콩나물 손질을 하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 전화가 오면 집으로 돌아갔다.
큰 누나가 스무살이 될 무렵 큰아빠가 돌아가셨다. 큰아빠가 돌아가시고는 큰누나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가 지고 난 시간이든 주말이든 큰집에는 큰 엄마와 작은 누나만 돌아왔다. 작은 누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바로 공장에 취직했다. 큰엄마처럼 바쁘게 일을 하러 다녔다. 몇 해 지나 큰집은 덜 낡고, 방 두 개와 화장실이 딸린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은 걸어서 십오 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작은 방은 작은 누나가 혼자서 사용했고, 컴퓨터가 한 대 있었다. 우리집에는 아직 컴퓨터가 없었고, 형과 나는 컴퓨터를 하기 위해서라도 큰집을 자주 갔다. 컴퓨터는 주로 형이 차지했고, 나는 할머니와 시장을 다녀왔다. 할머니는 예전보다 기력이 쇠했기 때문에 더이상 시장을 가는 내리막도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도 쉽지 않았다. 5분이면 갔을 거리를 길 한켠에 앉아 쉬었다가 갔다가 다시 쉬기를 반복하였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오르막을 다 오르고서 여전히 가게를 하고 계시는 할머니의 친구에게 들러 담배를 달라고 했다. 할머니의 친구는 가끔 할머니에게 담배를 주지 않고 아까도 사갔다고 말하거나, 집에 가면 많으니까 가보라고 했다. 짧게 실랑이를 하다가 할머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게임을 다하고서 그런 할머니의 팔뚝을 가볍게 붙잡고 큰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서는 쌓여있는 이불 틈, 전기장판 밑, 서랍 속, 바느질 통에 할머니가 스스로 숨겨둔 담배를 하나만 꺼내어 할머니께 드렸다. 그 무렵 아빠와 엄마의 대화에서 가끔 큰누나가 여기저기 남자들을 만나며 돌아다닌다는 말들을 주워 들었다. 큰누나는 키가 작았고, 얼굴부터 손가락까지 퉁퉁 부어오른 것처럼 살이 찐 사람이었다. 길이가 짧은 말총머리를 하고 있었고, 어릴 때의 나는 큰누나를 보며 산적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런 사람도 사랑을 하는구나. 그런 외모로도 사랑을 받는구나. 사랑보다는 합당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고 학원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몇 개월을 투병하다가, 폐암과 노화로 인한 합병증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병원에 있을 때의 할머니는 이미 큰엄마도 아빠도 엄마도 애지중지하던 작은누나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 나만큼은 알아보았다. 본인의 이름 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내가 자신의 손자라는 것만을 기억했다. 할머니의 코에서 엄지손가락 만한 핏덩이가 뽑혀 나올 때, 산소호흡기를 차고, 면회가 더이상 어려워졌을 때에도 나는 그게 자랑스러웠다. 자랑스러워서 작은누나에게 미안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틀 밤낮으로 장례식장을 지키고서 할머니의 송장을 화장터의 불가마에 집어 넣을 때까지 가장 많이 운 사람은 작은누나였고, 가장 적게 울었던 사람은 나였다.
여러 해가 지나고 작은 누나는 결혼할 사람이라며 남자 하나를 집에 데려왔다. 마트를 돌아다니며 건전지를 파는 사람이었다.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을 올렸고, 나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결혼식에 참석했다. 큰엄마와 작은누나, 엄마, 아빠 그리고 형과 함께 가족사진을 남겼다. 큰누나는 오지 않았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고서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깨끗하고 넓고 따듯한 집으로 이사했다. 집에 든 비용의 대부분은 작은누나가 댔고, 나머지는 큰엄마와 매형이 나누어 부담했다. 반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다. 새로운 생명이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큰누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어쩌면 유일한 신부측 하객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형과 나 모두 빠짐없이 결혼식을 갔다. 작은 누나는 오지 않았다. 큰누나는 여전히 퉁퉁 부어있었다. 남편이 될 사람은 왜소했고 촌스러울 정도로 바짝 밀어 올린 머리를 하고, 순하디 순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 측은했다. 퉁퉁 부어올라서 걷는 것 마저도 편하지 않아보이는 사람을, 자기 씀씀이를 감당못해 수천만원 빚을 내고, 그 빚을 다 떠넘기고, 도망가버려서는 가족에게 연을 끊긴 사람을 데리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누나가 떠넘긴 빚 때문에 작은누나는 직장까지 쫓아오는 빚쟁이의 독촉에 창피를 당하고, 늦은 밤 집들이 고양이만 지나다닐 틈 정도를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누군가 찾아와 소리 치고 윽박지르는 것을 불들이 다 꺼진 집에서 참고 견디면서 쉬지 않고 매일 일해야 했다. 그래도 그 빚은 다 해결이 안돼서 엄마가 들어둔 적금을 몇 개나 깨야만 했다. 그냥 이제 잘 살았으면 했다. 그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제외하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였다. 신랑과 그의 가족들이 다음 피해자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둘이 되었고, 하나는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작은누나는 곧 사십대가 되고, 나는 곧 서른이 된다. 매형은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 보험일을 했고, 잘 되기를 바라며 들었던 우리 가족들의 보험이 자주 엄마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매형은 꼼꼼하게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보험 일은 오래가지 않았다. 작은 누나는 여전히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시댁에서 바라는 며느리 노릇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것은 종종 매형과의 다툼으로 이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집안의 어른으로써 자꾸 말을 보탰고, 듣다 보면 결국 작은 누나 편을 들었고, 매형이 그 말들을 크게 수긍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매형은 김해의 감자탕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고, 아이들은 주말마다 아빠 차를 타고 따라 나서는 것이 재밌고 감자탕이 맛있어서 좋아한다. 누나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내어 힘을 보태기 위해 감자탕집을 따라 나서서 서빙을 하거나 청소를 하기도 한다. 코로나가 퍼지고서 아이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우리 집을 자주 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하고, 삼촌과 비행기를 날리거나 그림을 그리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며칠 전 큰누나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혼자 쓰러져 있었고, 발견한 것은 이미 숨이 멎은 뒤였다고 한다. 그때의 그 신랑은 부검을 하고 식 없이 바로 화장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그 얘기를 전해듣고 나는 찾아가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한숨을 쉬고 큰엄마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 생전 안보던 자식을 죽어서 본다고 뭐 하겠노.’ 일을 마치고 온 엄마도 소식을 알고서 안가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라고 어찌됐든 가봐야 하는 거라고 성토하듯 말했다. 나는 아무도 큰엄마의 심정은 이해할 수 없는 거라고, 가서 괜히 말 보태지 말고 큰엄마 하신다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 작은 누나에게는 누구도 큰누나에게 갈 지 말 지를 묻지 않았다. 끝내 큰엄마를 비롯한 우리 가족 모두 화장이 끝날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부검 결과로 드러난 사인은 심장병이었다. 큰누나의 심장은 정상적인 크기의 두 배 정도로 ��풀어있었다. 전화를 통해서 그렇게 전해 들었다.
4 notes
·
View notes
Text
그렇다고 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꾸 달아나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안심하고
달아날 수 있었다.
달아나기 전에 나는
그의 뒤통수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의 뒤에 서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사사건건 그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고
기억해야 할 뒤통수가 자꾸 늘었다.
그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달아나고 싶다고 말하는 실수를 자주 하는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방에는 의자가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끄럽게 징징대는 파리가
방충망��� 연신 머리를 찧어댄다
살고 싶은 건지
달아나고 싶은 건지
비오는 날의 파리는 어떤 기분인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벽지가 흉처럼 벌어지고
책상 위에 무언가 썼다 지운 흔적들이
다 타서 연기가 되어버린 파라핀들이 쌓인다.
방이 전부 달아날 때까지
그는 여전히 파리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가
알 수 없었다는 뒤통수만 남겨둔 채
실수로 달아나버린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외로워서 나는 그의 뒤통수를 떠날 수 없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도
아무 일 생기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흐르는 만큼
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4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