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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역사적으로 규정되고 사회적으로 형성되어왔다.
서울, 도쿄, 베이징, 파리, 뉴욕, 런던 그 어디든 도시의 모습은 역사 유적을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도 비슷하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에서 자아는 소비와 욕망의 궁극적 대상이 되었다.
동양에서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해
자아를 내세우려 하지 않거나(유교)
자아를 잊어버리려고 하거나(도교)
자아를 지우려고 한다(불교)
반면에 서양에서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원리가 자아에 대한 서양철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는 서양의 문화에서 생겨난 사회제도이므로 자아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확보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이기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으니 이러한 경향은 더욱 더 강해진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옷, 가방, 구두, 자동차 등은 사용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을 치장하고 표현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상품의 소비에서 자신의 개성을 찾아내 남들과 다른 나를 과시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자아도취적 소비는 명품의 추구와 성형수술의 유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자아 자체가 소비와 욕망의 궁극적 대상이 되는 것인데..
단순히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기능이 좋아서, 필요에 의해서 구입하는 이유 이 외에 소비하는 모습에 관해서 내가 늘 설파했던 부분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다. 값비싼 하우스브랜드나 명품로고를 과시하며 사고 되팔기까지 하면서 꾸준히 소비하는 모습에 대한 반감.
과연 그 브랜드의 서사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본인의 사상과 어느 정도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때문에 어떠한 정신적 동질감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소비를 행하는 것 인지
무조건적으로 소비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사용가치 이 외에 ‘왜’ 그 브랜드를 소비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다수는 그저 자기라는 객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욕망을 떨치지 못하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도대체 자아는 어디에 있는걸까?
‘자기’라는 정체성의 느낌일까 아니면 ‘자기’라는 개체의 이미지일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대로 확립된 자아일 것이다.
쉽게 말해 개인적인 기준으로 “멋이 있다”라고 여기는 사람은 여러 브랜드를 휘감은 사람이 아닌 어떤 브랜드를 소비함에 있어서 또는 그렇지 않음에 있어서 본인만의 자아가 확실히 드러나고 본인에 대해 확신을 풍기는 사람.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지향하고 있으며 꾸준히 건강한 자아를 위해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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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를 맞이하는 겨울에, 그해 1월은 유난히 눈소식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저녁시간과 휴식시간을 주로 PARRK에서 보내곤 했었어요
그때 우연히 집어든 책이 Patti Smith의 Just Kids 였어요 그 겨울에는 패티와 로버트의 사이로 정의 될 그런 존재의 결핍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기에 이 책은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그 당시 아슬아슬한 관계들 사이에서 홀로 썩은 동앗줄을 잡고 매달려 있는 것처럼 불안했거든요 사랑은 전달보다 발산에 가까운 행위.
마음의 질량이 일정하게 유지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그때는 누군가에게 전달해서 비워진 마음만큼 채워졌음하고 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건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아마 패티와 로버트도 누군가를 향한 방향성은 제쳐놓은 채 사랑이라는 정신적 행위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였기에 예술적, 인간적 동반자로 서로의 곁에 남아 많은 날들을 함께 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just kids. 배경이 되는 70,80년대의 뉴욕의 거리와 첼시호텔, 코니아일랜드와 비트세대들과 패티가 묘사한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그 당시 제게 많은 영감이 되었어요 낡은 스웨이드 부츠에 머리칼은 일부로 빗지도 않고 아빠가 싫어하셨던 다 헤진 자켓을 걸치고 패티스미스룩이라며 입고 다니기도 했어요 지독한 컨셉충이라며 우스갯소리도 들었지만 그 차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요 작년 여름에는 그토록 밟아보고 싶었던 뉴욕 땅을 밟았어요 짧은 일정 탓에 그 발자취를 다 훑을 순 없었지만 패티와 로버트가 방황하던 이 땅에 내가 있다니하고 행복했었네요 그해 겨울에는 여지껏 살던 곳이 아닌 타지에서 몸도 마음도 편히 누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 잠깐 PARRK에 머물렀던 시간들이었어요 그 때의 마음을 곱씹으며 한 이미지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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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종희의 일지를 받아보게 되었다 구독료를 내고 받기는 했으나 ‘누군가가 읽는’ 나의 일지를 쓰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읽다가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글에는 종희와 구라없는 세상뿐이지 글을 읽는 누군가는 없었다 때문에 의도는 아니지만 돈을 지불하고 남의 인생을 엿본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가 나 주제에 읽어도 되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는 절대로 솔직한 사람이 아니기에(잘 안된다) 솔직한 문장을 담아낸 종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은 퍼지면 그 힘을 잃는다고 생각해서 딱히 내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 심신안정에 좋다는 주의다 그리고 고작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행복인게 꽤 고까워서 가장 친한친구들 몇에게 말고는 나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않는다
그래서 나는 남이 굳이 미안하게 본인의 비밀을 얘기해줄 때는 되도록이면 빨리 잊어버리려고 한다(그래야 쌤쌤일테니까..)
가끔 내 텀블러를 들어가보면 불행의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나는 무언가가 제대로 흘러가지않을 때만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그치만 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들은 잘 써지지가 않는다 그게 너무 찌질하고 알��해서 고치려고 했지만 우울할 때만 찾는 것이 펜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행복하고 예쁜 것들만 올라간다 사실상 나는 매일이 행복하지도 예쁜 것들만 보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이다 커피 한 잔 사먹는 돈도 아까웠을 때가 있었는데 분위기 좋은 곳에 간 사진만 올린 적도 있었고 이사한 집에 벌레가 나와서 소리지르면서 잡았다거나 술에 취해 누군가와 구질구질한 통화를 한 건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 했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나’에 대해서 솔직해지는 것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것 가장 어려운 일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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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 때론 나의 음성이 상대에게 내가 가진 고민의 온도를 느끼게 하는 것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헌데 나는 그것마저도 미안해서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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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지독히 사랑하는 것도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게 너무 모순같아서 싫다는 것 이상으로 싫다. 언제는 사랑이 전부라 생각하고 믿었다가도 요즘 내 상태를 보면 그건 남이야기같이 낯설다. 마주하는 풍경들은 눈 앞에 있지만 따라오는 감흥이라는 것들은 소멸된다. 모든 것은 홀연히 스쳐갈 뿐이다. 난 별 영양가없는 소리만 뱉어대다가 해가 지면 우울감과 외로움에 사무친다. 허나 그것도 그뿐이고 아침이 되면 망각하는 탓에 간절함도 없다. 간절함으로 꽉꽉 채워진 눈물은 언제 흘려봤는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어거지로 슬픈 멜로를 보고 울어버릴려고 해도 메마른 마음은 절대 젖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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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당시 세상이 무너질 듯했던 걱정도 결국엔 옅어져 기억에서 잊혀지기 마련인 것 같아요. 본질적으로 해결이 되었다기 보단 본인 기 다 빨려가면서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것에 더 가까운거죠. 굳이 나서서 알려고 하지말고 이해하려고 하지말 것. 정해진 답도 길도 없는게 인생인데 꼭 누군가들은 모범답안이라는 것을 제시하면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기도 해요. 물론 범법행위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은 비난받고 금지되어야함이 마땅하지만 대게 평가하는 사항은 인간관계나 삶의 양식, 나아가 취향과 성향까지. 좀 마음대로 살면 어때요. 오늘의 나는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일부터는 내일의 나, 하루하루 배우려고 하지않아도 알게 되는게 인생이에요. 저는 ㅡ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겨ㅡ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걱정은 해봤자 결과값은 변하지 않아요. 모두 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나요?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할거란 생각은 내가 함부로 남의 불행을 논하는 것만큼 무례한 생각이에요. 그 또한 순전히 내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저 각자 다른 파도를 타고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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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나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
차라리 상상이 망상이 되어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깨달은 뒤 허무맹랑함으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영 찝찝한 관계들이 뒤섞이고 제대로 흘러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다들 우연을 가장한 접근에 내가 된통 당한 꼴일수도 있다고까지 생각이 드니 억하다.
애초부터 무례하고 불편한 요구에 아무말도 못한 내가 바보다. 나대로 싫은 티는 냈지만 표면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 그것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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