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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stony-universe-blo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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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인근 고등학교에서도 놈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놈은 '악명'이 높았다. 날카로운 턱선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코, 게다가 19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건장한 체구. 놈은 소위 말하는 얼짱이었는데 그럼에도 모두들 놈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놈의 지랄 맞은 성격과 매서운 눈빛 대문이었다. 쌍커풀 없이 가늘게 찢어진 눈은 단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사냥감을 노리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그 눈빛과 마주한 힘없는 우리들은 사자 앞의 토끼,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발발 떠는 수밖에 없었다. 말이 사자와 뱀이지, 놈은 사자와 뱀도 한입에 삼킬 것 같이 무서웠다. 그래서 상당한 미남임에도 감히 놈의 얼굴을 쳐다보는 배짱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눈빛 하나 때문에 놈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놈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에 대해서 말하려면 이 밤을 다 새서 해도 모자랄 판이다. 떠도는 소문만 해도 수십만 개. 얼마 전 뉴스에서 크게 떠들어 대던 연쇄살인의 범인이 사실은 놈이라는 둥, 조직에서 큰돈을 주며 스카웃 제의를 했다는 둥, 집보다 경찰서를 더 많이 들락거린다는 둥, 며칠 전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힌 남자를 오지게 패고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아 뒀다는 둥, 고백해 온 여자애 얼굴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밧줄에 묶어 원양어선에 팔아넘기고 돈을 챙겼다는 둥 하는 소문은 이제 식상할 정도. 이 험한 시대에 나타난 세기말적인 현상 중의 하나가 바로 '신해성 탄생 사건'이라고들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구가 멸망한다면 반드시 신해성 때문일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난 그들의 유치한 발상에 '대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신해성은 정말이지, 결코 연관되고 싶지 않은 놈이었다. 내 나이 고작 열여덟 살. 친구가 많지도, 그렇다고 아주 적지도 않은 평범하디 평범한 여고생. 성적은 중상위권, 선생님들에게 특별히 예쁨을 받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미래에 대한 목표가 확실히 세워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난 그냥 남들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춘기의 순수한 소녀였을 뿐이었고 정말로 남들 눈에 띌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놈의 마수에 걸려들기 전까지는...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내 삶이 와장창 깨졌던 그 저주 받은 날을! 주번! 한 주 동안 주번이 된 내가 평소와는 달리 이른 시간 학교에 온 것이 사단이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선인들의 말씀에는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결코 나 김진희가 하지 않을 법한 그 일을 행하는 순간, 나는 이미 죽음의 강에 한 발, 뿐만이 아니라 온몸을 첨벙 담그고 만 것이다! 고요한 학교에 가장 먼저 도착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책가방을 내려둘 때까지는 일찍 일어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족해있었다. 지저분한 걸레를 들고 나갈때까지만 해도 내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냉기 서린 복도를 신나게 걸어가던 내 눈에 콰악 들어온 놈의 뒷모습. 우리 학교에서 복도 천장에 닿을 만큼 거대한 키를 가진사람은 놈밖에 없었기에 뒷모습을 보자마자 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놈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난 그것이 놈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고, 또한 숨도 멈췄다. 석상이라도 된 듯이. 놈에게 나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된다는 생존 본능이 나를 감쌌다. 긴장이 되는 순간. 어서 놈이 복도 끝에 이르러 계단을 올라가기를, 또는 내려가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하게 놈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일이 벌어졌다. 보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도 폼 한번 오지게 잡고 거만하게 걸어가던 놈의 스텝이 살짝 어긋나는 바람에, 놈이 자기 다리에 걸려 앞으로 철푸덕 넘어지고 만 것이다! 이 근방 최고의 공포 소년 신해성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유쾌한 모습을 보게 되다니! " 푸하하하하하하!"라는 웃음이 나올 리가 없다. 난 좀 전보다 더 긴장해 버리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 게 뻔한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기 스킬'의 목격자가 있다는 걸 놈이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죽는다. 죽음의 공포가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놈이 넘어지는 모습을 봤다는 걸 걸리면 나는 죽는다. 자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놈이 벌떡 일어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제발,제발,제발! 저를 보살펴 주세요! 제발! 제발 저놈이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해 주세요. 내18년 평생을 살면서 이토록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다.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난 내 남은 생을 다 바칠 것처럼 간절히 소망했지만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놈은 철푸덕 넘어진 그대로 고개만 돌려 날 쳐다봈던 것이다. 놈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나는 지옥을 봤다. 그래, 그것은 지옥이었다. 잘 살고 있는 사람도 죽인다는 놈의 날카로운 눈이 한동안 나를 쏘아봤고, 난 딱딱하게 얼어붙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놈의 시선을 피할 용기와 힘 따위는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 특별히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허망하고 짧게 끝나 버린다는 것이 아쉬웠다. 죽기 직전에는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는데, 내게 떠오르는 거라고는 혜선이한테 빌린 CD를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는 것과 창진이한테 떡볶이 3천 원어치 얻어먹기로 했다는 것 등이었다. 제기랄. 내 인생 오지게 별것 없었구나. 문득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이대로 죽게 되어도 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놈이 스스스스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스스스스. 괴기 영화에서 귀신들이 스스스스 일어나는 듯, 놈 역시 스스스스 공포감을 조성하며 일어났다. 괴기 영화에 흐르는 배경 음악이 귓가에서 생생하게 메아리쳤다. 이 음악을 들은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됐더라? 아니, 아니지. 난 주인공도 아냐. 엑스트라쯤 되겠지. 그리고 엑스트라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혼돈 속에서 허우적 대던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 놈은 어느새 내 앞까지 와 있었다. 내 눈앞에 바로 보이는 널찍한 가슴팍을 보자 숨이 턱 막혀 왔다.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 당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너..."
한참 위에서 들려오는 저승사자의 나직한 음성.
" 봤냐?" " 모, 못봤어요!"
나도 모르게 존댓말까지 사용하며 대답했다. 나의 공손한 태도에 놈이 물러가 줄 거라는 작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 거짓말."
하지만 놈은 녹록치 않았다.
" 진짜, 진짜로 못 봤어요!" " 뭘 못봤는데?" " 신해성님께서 자기 발에 걸려 철푸덕 넘어지는 기괴한 모습이요."
이 가벼운 주둥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인 건지, 다 끝난 뒤에야 깨달은 내가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번쩍 들었을 떄, 놈의 미소가 보였다. 한쪽 입 꼬리만 싸늘하게 올라간 차가운 미소. 사냥감을 문 승냥이의 미소. 오싹한 공포가 등줄기를 더듬고 지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후들 떨렸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손에 든 걸레를 꽉 쥐었다.
" 봤네." "......" " 다 봤네." " 그, 그건 나도 예상치 못했던 불가항력의 일, 이었어요." " 흐응..."
놈은 재미있다는 듯 입 꼬리를 더더욱 말아 올렸다. 무서워서 눈물이 나는 느낌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 신성한 순간, 나는 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며 그 짓을 하고 말았다. 손에 든 걸레를 놈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뒤를 돌아 도망치는 바보 천치 같은 짓을! 물론 놈과 나 사이에 다리 길이 차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걸레에 맞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시간이 필요한 놈이 쉽게 나를 잡지는 못할 거라는, 지능적인 계산을 했던 건 아니다. 단지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덥썩. 채 다선 걸음도 가지 못해 놈이 나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난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전설적 악인인 놈의 힘은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 도대체... "
계속해서 도망치려고 애쓰는 내 귀에 분노로 가늘게 떨리는 놈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 무슨 짓이냐, 이게."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놈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마지막까지 비굴하지 않게 살다가 죽겠노라고. 그래서 움직임을 멈추고 놈을 돌아봤다. 그리고 불쾌한 듯 눈을 찌푸린 놈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 제발 좀 살려 줘! " " 하아? " " 살려줘, 살려달라고!" " 뭐라는 거냐, 지금? " " 물론 네가 네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 웃겼어! 하지만 난 웃지 않았어! 물론 네 얼굴에 걸레를 던지기는 했어! 하지만 걸레를 던지는 내 마음도 편치는 않았어! 그러니까 넌 날 살려줘야 돼!" " 쯧." " 살려 줘야 한다고!" " 누가 너 죽인댔냐?" " 지금 죽이려고 하잖아!" " 지금 언제?" " 지금 이 순간! 라이트나우!" " ......" " 살려 주기만 한다면 내가 본 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거야! 난 임금님의 귀를 본 나무꾼과는 달라! 대나무 숲에서도 진실을 고하지는 않을게! 그러니까 제발 좀..."
난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놈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말했다.
" 살려 주라. 응?"
날 지그시 응시하는 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내 어깨를 잡은 놈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이때가 기회다 싶기는 하지만 섣불리 도망쳤다가는 또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만히 서서 놈이 성은을 베풀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놈이 입술을 움직였다.
" 가라." " 응?" " 가라고." " 아, 으응."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진 교섭에 당황해서,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발을 떼지 못하는데, 놈이 물었다.
" 그런데 너 이름이 뭐냐?" " 김진희." " 흐음." " 사, 삼 반이야."
놈이 날 풀어 줬다는 생각에 기뻐서 말하지 않아도 될 사실을 떠 벌리고 말았다. 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응시하다가 자기가 먼저 몸을 돌렸다.
" 그래, 알겠다."
아직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내 눈에, 놈이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부터였다. 놈이 나의 평온한 인생에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죽다가 살아났다는 행복감은 사람을 열정적으로 만든다. 하마터면 누리지 못할 뻔했던 나의 시간들, 다시는 보지 못할줄 알았던 내 친구들. 경애의 얼굴에 난 여드름과 창진이의 풀어 헤친 교복 안에 보이는 거뭇한 가슴 털까지도 아름답게 보일 만큼 난 행복했다.
" 진짱! 지각을 호흡하듯 하는 네가 왠일로 이 시간에 교실에 있냐?"
진철이의 찢어지는 듯한 고음마저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다. 내가 진철이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짓자, 진철이는 황홀해 하며 말했다.
" 아놔, 너 뭐 잘못먹었냐? 아��부터 왜 실실 쪼개고 야단이야?" " 진철아. 난 새로운 인생을 얻었어." " 뭐?" " 난 이제 새롭게 시작할 거야. 아아, 저 하늘을 봐. 너무나 아름답지 않니?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숨쉰다는거, 저 푸르른 창�� 을 볼 수 있다는 거. 전부 다 축복이야."
나의 말에 진철이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 미친 기집애." " 앞으로 난 새 삶을 살게 될 거야. 이 세상은 행복, 그 자체니까."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허공을 응시하며 행복에 대해 논하는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래도 좋았다. 난 사지에서 벗어났으니까.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내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것을.
점심시간. 급식은 평소보다 더 형편없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질게 된 밥을 말라비틀어진 김치, 뭐가 들어갔는지 궁금한 국, 털이 달 려 있는 돼지고기 볶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뻤다. 다시는 못 먹을 줄 알았던 밥이니까. 형편없는 급식을 받고도 싱글벙글 웃는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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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stony-universe-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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