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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다음 생에 대한 꿈을 꿨어. 타임머신 같은 걸 타고 그곳에 도착했는데, 그 미래의 도시는 누구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그들'이 다스리고 있었지. 과거의 사람을 발견하면 그들은 빛을 비춰. 그 빛은 스크린 위에 사람들 모습을 비쳐줘. 과거로부터 미래로 올 때까지의 모습을. 그 모습이 나타나면 과거의 사람은 사라져. 난 두려웠어, 그들에게 잡힐까 봐. 그곳엔 친구가 많았거든. 난 달아났지. 하지만 달아날 때마다 잡혔어. 그들은 내게 이 길을 아느냐 또 저 길을 아느냐 물었지. 난 모른다고 했어. 그러고 나자 난 사라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엉클 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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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각 도시마다 정확하게 말로 표현되는 기본적인 정보들에 뒤이어,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거나 손등 혹은 옆면을 보이기도 하고 곧게 혹은 사선으로, 격렬하게 혹은 천천히 움직여 소리 없는 설명을 덧붙였다.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대화 형태가 자리 잡았다.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칸의 하얀 손이 베네치아 상인의 민첩하고 활기 찬 손에 품위 있게 대답을 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자라나면서 손의 움직임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손을 바꾸거나 움직임을 되풀이할 때 그 각각은 영혼의 움직임과 모두 일치했다. ...
이탈로 칼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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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했기에, 그러나 또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글쓰기 방식과 책을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에 관해 그에게 제때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보그단 타라셰프는 작가의 삶에서, 창작과 자신의 관계에서, 상상력과 자신의 관계에서, 이 끝없는 침묵이 실질적이고 이론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 어떤 작가에게 이같은 무관심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현실은 그렇다. 세상사는 바로 이렇게 진행된다. …
앙투안 볼로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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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마지막 일기에는 그가 죽음의 꿈이라 부른 것이 기록되어 있다. "때로 바다 또는 해안, 좀 더 자주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들이나 길거리들, 배들에 대한 꿈을 꾼다. 나는 대개 그 안에서 길을 잃는데, 하지만 항상 묘한 행복함, 햇빛 속에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모든 건물 등등은 죽음을 뜻한다." ...
오웰의 장미
… 나는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 산문 형식에 계속 매력을 느끼고, 이 세상을 계속 사랑하며, 확고한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의 부스러기에서 계속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 그러나 작가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 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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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탈리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대뿐만 아니라 근대의 건축가, 조각가, 화가들의 아름다운 작품들도 그들의 이름과 함께 날로 없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마치 그것은 어떤 죽음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예언하는 듯했다. 그리하여 힘닿는 한 이 제2의 죽음으로부터 그들의 이름을 지켜서 세상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오랜 시일에 걸쳐 기억을 되찾아냈으며, (...) 이것들은 내게 즐거움을 주었음을 물론 귀중한 증거가 되므로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잘 알면서도 회고록을 작성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사리]
"두루뭉술한 과거의 일들, 미처 구별되지 못하고 명명되지 못했던 기억의 덩어리들이 평전을 통해 특정 개인과 연관되면서, 그들의 이름을 통해 역사의 맥락 안에 각인될 기회를 얻는다." [김한결]
"이주동은 '의미 생산의 무한한 지연'을 카프카 문학이 지닌 최고의 창조적 심미성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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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mpty studio
Said John cage to the painter Philip Guston, "When you start working, everybody is in your studio-the past, your friends, enemies, the art world, and above all you own ideas-all are there. But as you continue painting, they start leaving, one by one, and you are left completely alone. Then, if you're lucky, even you leave."
Lewis Hy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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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달력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날이 틀림없이 동지였다는 확신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쩔 때는 이런 맹세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날이 보통의 밤처럼 천천히 밝아 오는 새벽에 ��자기 혹은 조금씩 집어삼켜져서 끝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내가 말하는 그 밤 - 한 걸음에 약 백 킬로미터를 가는 장화 차림에 목숨이 아홉 개인 고양이 같은 밤 - 은 찔끔찔끔 사라지거나 떠나갔다. 그리고 마치 겨울 놀이처럼 밤의 일부분, 즉 전체가 사라지는 동시에 다시 찾아오거나 계속 지속되었다. 아침 6시 30분에서 불시에 5분 동안 새벽 3시 15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아주 멋진 히드라. 그런 기이한 현상이 짜증스러운 사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축복이자 사면이요 테이프를 되감는 일이었다.
로베르토 볼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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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산책
만약 우리가 저녁에 집에 머물러 있기로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처럼 느껴져 집에서 입는 옷으로 바꾸어 입고 저녁 식사 후 책상에 불을 켜 놓고 앉아 잠을 자러 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하는 이런 저런 일이나 놀이를 시작한다면,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만큼 바깥 날씨가 험악하다면, 이제는 벌써 상당히 오랫동안 책상에 잠자코 앉아 있던 터라 우리가 새삼스레 외출하는 것이 틀림없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다면, 층계도 이미 어두워졌고 대문조차 잠겨 있다면, 그런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갑작스레 불쾌한 마음 상태에서 벌떡 일어나 상의를 갈아입고 즉각 외출복 차림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설명하고는, 짧은 작별을 하고 난 후에 외출하면서, 거실 문을 닫는 속도에 따라, 더 많거나 더 적은 다소간의 언짢은 불쾌감을 뒤에 남겨 놓는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우리가 전혀 예기치 않게 마련된 자유에 특별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온몸의 지체들을 지닌 채 문득 골목길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만약 우리가 이 한가지 결단을 통해 모든 결단력이 자신의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만약 우리가 가장 신속한 변화를 쉽게 초래하고 그걸 견디어 내야 할 필요보다는 오히려 그럴 수 있는 힘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통상적인 의미보다 더 큰 의미로서 인식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긴 골목길들을 그렇게 걸어 나간다면 - 그러면 그때 우리는 이날 저녁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게 되고, 가족은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으로 선회해 버리며, 반면에 우리 자신은, 아주 확고부동하게, 시커먼 윤곽이 점차 선명해진 채, 뒤쪽 허벅지를 치면서, 자기 본연의 진정한 형상으로까지 고양되는 것이다.
만약 이 늦은 저녁 시간에,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우리가 친구를 방문한다면, 이 모든 것은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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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1925년 가을에 베른에서 켄프까지, 콤포스텔라의 성 야고보의 성골함으로 가는 유서 깊은 순례길의 꽤 긴 구간을 도보로 여행하기도 했다. 이 여행에 대해 그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프리부르에서-까마득히 높은 자리네 다리를 건너 도시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양말 한 켤레를 샀고, 여러 가정부들에게 수작을 부렸으며, 어느 소년에게는 호두를 선물했고, 론 섬에서는 어둠 속을 헤매다가 루소 기념비 앞에서 모자를 잠깐 벗어 목례를 했으며, 호수 위 다리를 건널 때 기분이 명랑해졌다는 것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런 유사한 내용들 몇 가지를 극히 압축적인 문체로 약 두 쪽에 걸쳐 기록해놓았다. 막상 도보 여행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며, 걸을 때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오갔을지도 전혀 알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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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어디론가 자꾸만 사라져 버리는 창밖 풍경을 내다보았다. 그렇다면 '거기에 있었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없을까? 지금은 그저 몇 토막의 추억만 떠오르는, 프랑스에서 보낸 이 주. 중세 도시의 오래된 성벽에서 갑자기 엄습한 허기, 포도 덩굴로 뒤덮인 지붕 밑 카페에서 보낸 어느 저녁나절. 노르웨이는 또 어땠는가. 호수의 차가운 냉기.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한낮, 상점이 문 닫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산 맥주,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난생처음 본 피오르드의 풍경.
"제가 본 것들, 그건 모두 제 것입니다."
갑자기 정신이 든 듯, 그가 허벅지를 철썩 때리며 결론을 내렸다.
(...)
"어디 한번 다른 책을 추천해 보세요."
머리에 아무런 책도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배낭에서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얇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아무 페���지나 펼쳤는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행인들의 얼굴에 주목하는 대신 나는 그들의 발을 보는데, 바쁜 사람들은 항상 발걸음도 서두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국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어떤 비밀을 찾아다니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에밀 시오랑, <저주와 감탄(Anathemas and Admirations>에서)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읽었다.
...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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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
7월에 나의 아버지는 물가로 떠나면서 나를 어머니와 형과 함께 여름날의 희고 눈부신 뙤약볕의 제물로 남겨 두었다. 빛 때문에 어지러워하며 우리는 휴가라는 거대한 책을 훑어보았다. 그 책의 책장들은 모두 햇빛에 번쩍였고 바닥에는 속이 거북해질 정도로 달콤한 금빛 배의 과육이 깔려 있었다.
�� 아델라는 빛나는 새벽에, 마치 불타오르는 대낮의 광채 속에 나타나는 과일의 여신 포모나처럼 장바구니에서 태양의 색색가지 아름다움을 흘리며 시장에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투명한 껍질 아래 과즙으로 가득 찬 윤기 나는 분홍빛 버찌와 맛으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도 뛰어난 향기를 풍기는 신비스러운 검은빛 버찌였으며 금빛 과육 속에 기나긴 오후의 정수를 담고 있는 살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과일의 시 곁에 그녀는 건반 같은 갈비뼈가 에너지와 힘으로 부풀어 오른 송아지 고기, 해초, 거의 죽어버린 문어와 해파리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아직 정의되지 않은 메마른 맛을 내는 정찬의 날재료였으며, 야생 벌판의 냄새를 풍기며 땅에서 자라난 정찬의 식물성 재료들이었다.
시장 광장에 있는 석조 건물의 어두운 2층 방으로 매일 거대한 여름 전체가 뚫고 지나갔다. 그것은 아른아른 떨리는 공기 방울의 침묵, 마루 위에서 열띤 꿈을 꾸고 있는 네모진 빛, 대낮의 가장 깊은 황금 핏줄에서 흘러나오는 휴대용 오르간 소리, 그리고 어디선가 피아노로 계속 새롭게 연주되다가 흰 보도블록 위에서 태양 빛에 녹아 정오의 깊은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합창의 두세 소절이었다. 청소를 마친 뒤 아델라는 차양을 내려 방에 그림자를 드리우곤 했다. 그러면 모든 색채는 한 옥타브 깊어졌고, 방은 마치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녹색 거울에 반사된 빛을 받는 것처럼 그림자로 가득 찼으며, 낮의 열기 전체가 오후 시간의 백일몽 속에 가볍게 흔들리며 차양 위에서 숨 쉬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에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나가곤 했다. 현관 어스름 속을 나오면 곧바로 대낮의 햇빛에 잠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녹아내리는 황금 속을 헤치고 나아가며 마치 꿀로 눈꺼풀을 붙인 것처럼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을 반쯤 감았고 윗입술은 당겨 올라가서 잇몸과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황금빛 대낮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 타는 듯한 열기 때문에 찌푸리고 있었다-마치 태양이 숭배자들에게 억지로 똑같은 가면, 태양 형제들의 황금 가면을 씌워 놓은 것처럼. 그리고 지금 거리를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서로 마주치고 지나치면서, 노인도 젊은이들도, 아이들도 여자들도, 지나가는 길에 짙은 황금빛을 얼굴에 칠한 그 가면을 통해 인사하며 서로에게 바쿠스의 웃음을 드러냈다-이교도의 야만적인 가면을.
시장 광장은 비어 있었고 열기 때문에 노란색을 띠었으며 성서의 사막처럼 더운 바람에 먼지가 모두 쓸려 나갔다. 그 노란 광장�� 빈 공간에서 자란 가시 돋은 아카시아는 위쪽에 밝은 잎사귀가 돋아나 마치 오래된 태피스트리에 수놓은 나무처럼 귀족적으로 얽힌, 녹색으로 세공이 된 꽃다발을 머리 위에 이고 있었다. 마치 이 나무가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고 나뭇잎으로 된 왕관을 극적으로 펼쳐 보이는 것 같았는데, 애수에 차서 몸을 기울여 귀족의 코트에 덧댄 여우 털과 같은 은빛 가장자리를 두른 자신의 잎사귀가 얼마나 우아한지 뽐내려는 듯했다. 오래된 집들은 수많은 날들을 바람에 닦여, 거대한 대기의 반영과 메아리와 구름 없는 하늘 깊은 곳에 흩어진 색채의 기억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마치 여름날�� 모든 세대가 (오래된 건축물에서 흰 곰팡이가 핀 회반죽을 닦아 내는 참을성 있는 석공처럼) 거짓 같은 겉치레를 지우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집의 진짜 얼굴, 내면으로부터 형성된 운명과 삶의 겉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했다. 이제 빈 광장의 번쩍이는 빛에 눈이 멀어 버린 창문들은 잠들어 있었다. 발코니는 하늘에 대고 비어 있음을 선언했다. 열린 현관은 냉기와 포도주 냄새를 풍겼다.
한 무리의 부랑자들이 열기의 불타는 빗자루를 피해 시장 광장 구석에 모여 담벼락 앞에서 단추와 동전을 되풀이해 던지며 벽을 괴롭히고 있었다. 마치 둥근 금속 조각의 천궁도 안에서 상형문자 같은 금과 흠집에 얽힌 담벼락의 진짜 비밀을 읽어 내려는 듯이. 그 외 광장은 비어 있었다. 언제라도 이 포도주 상인의 아치형 현관 앞, 흔들리는 아카시아 그늘 속으로 고삐에 끌린 사마리아인의 나귀가 걸어 들어오고 두 하인이 아픈 주인을 조심스레 벌겋게 달구어진 안장에서 주의 깊게 끌어 내려 시원한 계단을 지나 이미 안식일의 냄새를 풍기는 위층으로 조심조심 데려갈 것 같았다.
이렇게 어머니와 나는 마치 건반 위를 지나듯 모든 집들을 따라 우리의 부서진 그림자를 이끌며 시장 광장의 두 양지바른 모퉁이를 천천히 걸었다. 우리의 부드럽고 편편한 발걸음 아래 길에 깔린 네모진 돌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어떤 돌은 사람 살갗의 옅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고, 어떤 것은 금빛, 어떤 것은 푸른 회색이었으며, 모두 납작했고 햇빛 아래 따듯하고 공단처럼 매끄러워서 마치 발에 밟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축복받은 무 속으로 사라져가는 햇빛 속의 어떤 얼굴과도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스트라스카 거리 모퉁이에서 우리는 약국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진열장에 놓인 커다란 라즈베리 주스 항아리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원한 진통제를 상징했다. 집들을 몇 채 더 지나면서, 마치 태어나 자란 시골 마을로 돌아��는 농부가 길을 가면서 한 겹씩 도시의 우아한 옷차림을 벗어 던지고 집이 가까워짐에 따라 시골의 낡은 옷으로 바꾸어 입는 것처럼, 거리는 이제 더 이상 도시의 겉치레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교외의 집들은 창문까지 전부 그 작은 정원의 무성하게 뒤얽힌 꽃봉오리 안에 잠겨 가라앉고 있었다. 위대한 한낮의 열기에 잊고 있던 온갖 풀과 꽃과 잡초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의 경계선에 있는 시간의 가장자리를 넘어 꿈꿀 짬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조용히 우거졌다. 강력한 줄기에 떠받들린 채 이상 비대로 고생하는 거대한 해바라기가 그 생의 마지막 슬픈 날들에 대한 노란 애도에 싸여 그 괴물같이 굵은 줄기의 무게 아래 굽은 몸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순진한 교외의 종들과 옥양목 천 조각으로 된 평범한 작은 꽃들은 해바라기의 거대한 비극에는 관심 없이 풀 먹인 분홍과 흰색 옷을 입은 채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브르노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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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동시에 지상의 사물들이 최소한 구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정당화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우화와 상징들은 이론이 설명해 낼 수 없는 특질들을 설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것들은 추상적인 형식으로는 지루하게 여겨지던 교의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미 신앙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한 생각에서 그랬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물고기로 표현된 것이 한 예이다.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중세인의 마음에 맞는 상징적이고 교훈적인 가능성의 길이 다양하게 열렸다. 순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이미지로 바꾸기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학자들과 교사들은 일반 사람들이 이론적인 형식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개념들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이미지와 상징으로 다가감으로써 사람들을 교육하려는 대대적인 캠페인이 있었다. 쉬제르는 그 캠페인을 주도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이었다. 1025년 아라스Arras 교회 회의에서 논의된 것에 따라 호노리우���가 말한 것처럼 그림은 평신도의 문학이었다laicorum literatura. 이런 식으로 교육의 이론이 당시의 감수성에 밀착되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를 전형화하는 정신적 과정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일종의 문화적 정치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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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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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여, 나는 압니다./낡은 옷은 찢어진다는 것을./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만/소멸을 향해 기울어지는 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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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s still Merz, as in 1918, but more refined, lighter and paler, perhaps a little sweet but less dry. I remain the same person but I’ve become older. With all my colleagues I’ve noticed that their work becomes a bit sweet as they get older. ...
Schwitters’ letter,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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