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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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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대가 생각하는 나에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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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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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전역 이후에 소개팅을 밥 말아 먹듯 하던 때가 있었다. 사실 밥 말아 먹진 않았고 남은 밥 정도를 국에 말아먹는 정도였는데 어찌됐건 시원하게 말아먹긴 하던 때가 있었지. 군대 가기 전 까지 소개로 사람을 만나 본 적 없었기 때문에 소개팅은 나한테 있어서 아주 어려운 행위였다. 전역을 하자 마자 물 밀려 오듯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을 때 사실 재밌을 것 같기 보다 두려운 마음이 컸다. 나를 내 스스로 누군가에 PT 해야한다는게 시바 그게 쉬울 수 있는 일인가. 그랬었다면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업부터 더욱 잘 해볼 수 있었겠지, 연애 사업 이전에.
연애 ‘사업’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 부터가 정말 사업이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과 빌드를 짜놓은다 한들, 이건 정말이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기대와는 다르게 모종의 이유와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는 반면에, 그렇게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괜찮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서야 8개월 정도 운영한 내 사업장처럼 이도 저도 확실한 갈피를 못잡고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둘은 어떤 인연도 없이 마주하게 된다. 서로 다른 삶과 다른 인생을 살아왔을 법한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차근차근 알아가기 부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인지하기 시작하는데 난 사실 이것부터 어렵게 느껴지는거 있지. 이성적인 취향이 사실 외모나 체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게 아닌지라 서로간의 대화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기 이전에는 상대에게 관심이 잘 가질 않는다.
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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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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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잘라내는 일
어렸을 적 손톱이 길러지던 말던, 아 이 정도면 정말 잘라야겠다 싶지 않던 이상 손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너무 길어져서 남들이 잔소리 정도 해야지나 그 때서야 자를 생각을 하곤 했었지. 그걸 실천하던 적 마저도 겨우 고등학생 때의 일이고, 유년기 시절의 내 손톱은 엄마가 신경을 쓰곤 했다.
엄마가 더 이상 내 손톱까지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어졌을 때. 그 때도 사실 너무 좀 길어졌다 싶어지면 자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주 길러진 손톱을 자르고 나서 키보드를 타이핑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릴 때의 그 이질감을 혹시 알고 있는지. 다음 날 되면 곧 사라질 법한 이질감이지만 손톱을 자르고 나서 당장 찾아오는 이질감은 지금 내가 타이핑을 치고 있는 순간에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당연하게도 내일은 아무 일 없던 손가락.
요새의 나는 조금만 길어졌다 느껴지면 바로 손톱을 자르는 편이다. 조금만 길러졌다 싶으면 내 스스로 손가락이 지저분한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근데 가끔 요상한게, 잘라야겠다 다짐하면서도 정신 차려보면 결국 어제도 손톱을 자르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런 요 며칠 손톱 자르는걸 신경 쓰지 못했다. 지저분한 손톱을 보면서 아 잘라야겠다, 잘라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집으로 돌아간 나는 아무 것도 못한 채 맞이한 아침에서는
- 맞다 어제 잘라냈어야 하는데.
라며 생각 정도 잠깐 하고 출근을 했었고.
알면서도 끝내 자학을 그만두지 못한 시점부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거라 생각했던게 떠올랐다.
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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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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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좆되는 글.
아 맞다 그거 견적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깜빡했다.
아 맞어 그거 업체에 다시 금액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연락해볼게.
아 근데 그게 그렇게 되면 이게 이렇게 되야하는거 아닌가.
아 근데 이게 맞는지 우리 조금만 더 의심해보자.
아니 시발 이거 올리는데에 금액이 이렇게까지 빡쎄다고?
아 근데 그게 맞나.. 더 정확한 솔루션 어디 없을까.
아 좆됐다.
아 근데 시발 거기는 왜 처음에 약속한거랑 다르게 시공 일정을 이렇게 잡았대?
아니 시발.
아 씨발.
아니 개씨ㅆ발.
11월을 마무리한다.
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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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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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들어서는 글
남들 출근할 시간에 퇴근길에 올랐다. ‘그래도 어떻게든 집에 가긴 하나 보네’ 하며 큰 대로변 길가에서 순방향으로 오는 차들을 향해 빈차 택시를 잡으려 눈을 게슴츠레 떴다. 아, 잠깐만 남들 출근할 시간이면 택시도 없으려나 하고 절대 대중교통 타고 집으로 돌아갈 컨디션은 아닌지라 심장이 쫄깃해지는 시점에서 빈차 하나가 눈에 보였다. 겨우겨우 쑤시는 팔을 들어 택시를 불러 세웠다. 보통 근육통의 경우 자고 일어난 다음 날에 아파야 하는데, 얼마나 빡쌨으면 벌써 팔이 아픈지.
"돈암동 OO아파트요."
하고 내뱉은 순간에 눈치가 조금 보였다. 출근길 이어 보이는 복장은 아니지만, 이 분주한 아침 시간에 목적지가 아파트라니. 기대 부푼 기사님의 어떤 아침 재수를 망쳐버리는 느낌이었다. 우산을 들고 택시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방금 샤워 마치고 나온 것 같은 내 젖은 머리를 룸미러로 보고서는 동정심이 코딱지만큼 정도는 드시진 않으련지. 쓸 때 없이 벼래별 생각이 다 들었던 이유는 아마 콜타임부터 퇴근까지 24시간이 걸린 탓에 빈사 상태이기 때문에 그랬던걸 거다. 집에 가서 어영부영 씻고 침대에 누워 뉘엿뉘엿한 저녁에 일어나기 바쁠 텐데 ‘이따 점심 뭐 해먹지’라고 잠깐 고민했던 거 보면 분명 재정신이 아니었다.
택시 오르기 무섭게 필름이 나갔다. 일어난 시점에서는 북악터널 빠져나와 국민대 옆길이었는데 내가 일어난 걸 눈치챈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차가 많이 막히죠? 피곤할 텐데 조금 더 자요."
일어난걸 눈치챈 것 말고,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는 것도 눈치채셨던 모양이다. 괜시리 안도가 된 나는 다시 필름이 끊어졌고, 다시 눈을 뜬 시점은 아파트 단지 안이었다. 내릴 참에 만원이면 갈 택시비가 2만원 찍혀있는걸 보고는 어쩌면 기사님께 미안할 필요는 없었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오전 9시.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에 일어나면 새벽에 잠 못자고 뻘짓만 하다 해 뜨는 것 보고 잘 것 같아서 점심 직후 시간대로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오후 4시에 눈을 떴다. 결국에 알람을 다 씹어먹었구나.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저녁 해먹을 거리 중에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꺼내어 양념을 해넣고 비닐장갑 하나 끼워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존나 아팠다. 정신력은 물론이요, 정신 나간 근력까지 필요했던 레전드급 촬영이었던 터라 몸은 만신창이었다. 세트에 깔린 수백 수천리터의 물을 버린다고 여러명이서 쌩고생 했던 아까의 아침 생각에 혼자 피식거렸다.
차려놓고 보니 혼자서 먹을 반찬의 양이 아니어서 아직도 재정신이 아닌가 싶었지만 잔반 없이 쓱쓱 긁어먹었다. 많고 부족한건 반찬이 아니라 잠이었는지 뭐에 홀리듯 쇼파에 누워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날짜는 7월에 막 들어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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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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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1 3:10 AM
- 봄은 왔는데 그 봄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봄이 왔다는데 그 봄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집 앞 길게 뻗은 도로 주변엔 개나리가 한창인데, 그 개나리는 어떻게 피어오른지 모른다.
- 날씨 죽인다는 말을 내뱉고, 날씨 죽인다는 말을 주워듣는다. 날씨는 그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이유 모르게 살해 받는다. 반대로 날씨가 불특정 다수를 살해할지 모른다.
- 다시 빌어먹을 봄이다. 쩍쩍 갈라지는 겨울엔 봄을 빌었는데, 입술 터지는 걸 겨우 막았을 적엔 겨울을 원하게 된다. 그 순간 마저 결국엔 어떻게 계절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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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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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하는 어떤 것.
집 밖으로 기어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음악만 들었다. 영화를 볼까 싶기도 했는데, 마치 피카츄 돈까스 같이 무슨 맛인지 알면서도 먹게 되는 그런 오락 영화는 땡기지 않았고, 왓챠에서 보고싶어요 눌러놓고 쌓여만 가는 리스트에서 고르자니 분명 기분이 무너져내릴 영화밖에 없어서 영화는 미뤄뒀다. 그렇다면 나는 음악 듣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이니 음악만 들었다.
이전에도 말했듯, 어떤 관통하는 음악들이 있다. 한창 즐겨 들었던 음악이라면 그때 즐겨듣던 당시의 어떤 기억이 남아있을 테고, 나를 위해 가사를 쓴 건가 싶을 정도로 옭아매는 음악들이 있다.
회상과 동요를 일으키는 음악을 듣고 있자면 나는 아주 괜찮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굳이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예술적 황금기를 비롯한 이전 세대를 동경하며 살아갈 필요 없는 아주 감사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생각도 든다. 음악을 하는 친구가 언젠가 내가 쓴 가사를 받아보고 싶다는 말이 너무 고마웠던 것도 생각하면 내가 음악을 하면서 살았다면 어떻게 되어있을까, 갑작스레 사진이 아닌 음악을 하고 싶다고 번지게 되었던 생각은 모두 음악의 이런 측면에서 시작한 생각들이었다. 무궁무진하고 굉장한 장르다.
각자에게 대변하는 어떤 것들이 있다. 시대를 ���변함과 동시에 감정을 대변한다. '왜 이런 걸 들어?' 와 같이, 곧 누군가의 역사를 고이 모아둔 소쿠리를 부정하는 형편없는 질문에 대답할 가치는 없다. 어떤 이들에게 이별로 남고, 어떤 이들에게는 만남으로 시작한다. 나아가 공산품을 불매할지언정 문화 예술마저 소비를 근절해야 한다는 생각만큼 멍청한 것도 없다. 근례에 들었던 질문 중에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런 질문도 들어야 하나, 가장 무례하고 무지했던 질문인지라 빡이 쳐서 하는 말이다.
20.2.7 5:2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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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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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괜찮아졌다, 그날 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잡아보려 하는 것도 지쳐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얼마 전 J에게 전화해서 요새의 내가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찡찡댔던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냥 평온한 하루의 나였구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마음이 아파야지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평온한 날의 나는 글을 쓰려는 생각조차 안 했고, 어딘가 뒤틀려야 그제서야 나는 핸드폰의 메모장을 켜곤 했다. 근데 어떤 그 이상으로 마음을 아파보니까 그마저도 하질 않는다. 아프긴 아프되, 적당히 아파야지 글을 쓰는구나라는 것도 이제서야 알아챘다.
맨정신으로 시간 보내는 게 힘들어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려 수십 분 낮잠을 자기도 했는데, 너무 많이 잔 나머지 이제 그마저도 되질 않으니 하루는 술을 마셔볼까 생각도 했다. 그걸 또 술의 힘을 빌려 시간을 보내려 한다면 내가 사람 새끼가 맞는지에 대한 정체성 확립에 큰 오류일 테지만, 맨정신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지금 상태의 나도 이미 사람 새끼가 아니니까. 그래 어느 쪽도 사람 새끼가 아니라면 조금 풍족한 사람 새끼가 되어보자.
위스키를 조금 따라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곤 좋지 못했던 날마다 틀어보았던 라이브를 틀었다.
매번 볼 때마다 다음에 이 라이브를 틀어 보게 되는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틀어 볼 때 마다 그 언제의 나보다 최악의 하루를 갱신했던 나지만은. 아마 진짜 죽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땐, 살아있는 모든 이유가 곧 죽어야 할 이유가 되어있을테지만 아직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가 살아있어야할 이유가 되는 시점에서의 내게 조금은 감사해 한다. 아직은 다행히 그나마 온전한거잖아 그렇잖아? 오늘도 이 라이브를 틀게 되었던 날에 살고 있지만 말이야. 그런 하루가 다시 찾아왔지만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꾸역꾸역 참아내고 나는 오늘도 이걸 틀었구나.
누군가 여긴 사색의 방이냐며 물었던 내 방에서 한 번 더 펑펑 울었다. 자꾸 새해 초장부터 평소에 없던 눈물 울리고 하는게 올해의 내가 얼마나 잘 되려고 그러나 싶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1월을 뒤로하고 2월을 맞이해야 한다. 또 꾸역꾸역 지내봐야겠다.
nakashima mika - bokuga shinouto omottanowa
https://youtu.be/C6st9z_iaao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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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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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떤, 누군가에게 향했던 서글픈 음악들이 이젠 모두 다 아버지로 향하게 되었던 이 시점에 윤하는 다시 찾아온다. 겨울인 것 치고 비만 내리던 근례에 적지 않은 돈 들여 윈터타이어로 갈았던 것이 아깝게 느껴지던 요즘, 예보에 전혀 없던 봄비 같았던 그 때의 그 비가 며칠 내렸던 그 요즘은 다시 윤하로 하여금 그 날을 관통한다.
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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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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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
날짜를 적을 때 연도를 표기하는 4자리 숫자 중 뒤의 2자리 숫자만 적는 버릇이 있는데, 얼마 전 당신에게 적은 편지 끝에 처음으로 20이라 적은 숫자가 도대체 연도를 말하는 건지 무슨 숫자인지 내가 적어놓고도 익숙하지 않은 새해가 밝은 설날 연휴 첫째 날 아침. 할아버지 방에 있던 나의 아빠는 새로운 옷을 입고 있었다. 언제 옷을 갈아입으신 건지, 언제 입고 계셨던 옷인지 할아버지께 물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사람의 탈을 쓴 새끼라면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나는 빌어먹을 상놈 새끼인지라 묵묵하게 정성스레 묶여있던 보자기를 풀어드리고 아버지를 상 위에 올려드렸다. 여전히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둘째아버지께서 초에 켤 라이터가 있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이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나 하나인지라 큰아버지나 둘째아버지께서는 나지막이 작은 목소리로 불 있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그게 할머니 귀에 들어갔다가는 내가 한참을 잔소리를 들으거라는걸 두 분 모두 아시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실거다. 아이코스로 갈아탄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연초 냄새만 맡아도 토가 나올 것 같은 내가 ‘아니요 저 불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게 담배를 피우면서도 피우지 않은 척하는 것 같아 보이시겠지만 나는 더 이상 호주머니에 라이터가 없다는 걸 애써 입증하고 싶진 않았다. 저 이제 연초 안 피우고 아이코스 피워요!라고 말하는 게 자랑거리는 아니니까. 끝내 어디에서, 누구 주머니에서 나온 건지 모르는 라이터가 초를 태웠다.
절의 특성상 항렬이 낮은 사람에게는 절을 드리지 않는다. 큰아버지네 맏형 식구가 절을 드리고, 큰아버지네 둘째 형과 둘째아버지네 첫째 누나와 내가 절을 드렸다. 간만에 가족들 얼굴 보러 찾아가는 게 명절일터, 언제부턴가 명절은 아버지께 절을 드리러 가는 날이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드리는 절은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죄송한 마음만 남긴다. 고조부와 증조부께 절을 드린 후엔 그 다음은 우리 아버지라는 게 나는 어떻게 되어먹은 새끼일까. 아빠도 고심 끝에 선택한 결정이었겠지만, 이 부분만큼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못 했던거지? 그렇다고 말해줘 아빠.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말해달라고 고집부릴 이유가 없다. 내가 얼마나 빌어먹을 새끼냐면, 아빠가 두 번째 옷을 갈아입은 실제 모습을 나는 사진으로라도 한 번도 본 적 없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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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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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던 날
전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애써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눈엔 걱정이 가득했다. 나 또한 어떻게든 괜찮은 척,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척 말 없는 거짓말을 표정으로 한다. 잘 지내라는 말과 함께 엄마를 한번 안아보고는 공항 가는 택시에 올랐다.
얼마 전에 릴리즈 된 빌리 아일리시의 싱글 신보가 귀에서 흘러나왔는데 해가 져물어가는 지금, 공항 가는 길과 얼마나 찰떡이던지 마른 우물 파는 심정인 나의 요즘과 건조한 날씨 탓에 쩍쩍 갈라져가 따가운 나의 손등에 또 다시 상처를 냈다. 다시 택시를 돌려 조금만 더 지내다 갈까 했지만 돌아가긴 싫었고, 그렇다고 서울로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무거운 발걸음. 그렇게 제주를 애증으로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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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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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온 날
어차피 김포-제주 정도야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부터 착륙할 때까지 눈을 붙일 테지만, 제주에 한시간이라도 더 있겠다고 아침잠을 깎아가면서까지 제주로 가는 아침 비행기를 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오후 12:30 비행기를 잡았고.
늦은 점심. 함덕해수욕장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제주에서 근사한 뷰를 가진 바다를 꼽으라면 함덕은 순위권 저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 집에서 그나마 접근하기 쉬운 바다이니까. 철썩이는 물살을 보고 싶다 하면 가곤 하고, 만만하면 함덕 근처에서 포장 거리를 사와 혼자 바다를 앞에 두고 밥을 먹곤 한다.
함덕 어디엔가 가츠 샌드를 파는 집이 생각이 나서 남들은 들렀다 하면 사진 찍느라 바�� 곳을 무심코 들어가 가츠 샌드 하나 포장해달라고 주문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고기를 튀기는 소리, 튀기면서 들려오는 에어팟 너머 이곳 어떤 노랫소리, 그게 벌써 다 튀겨졌는지 튀김옷을 뚫고 잘려가는 돈카츠 써는 소리. 그런 못 듣는 척하면서 모든 걸 듣고 있던 소리들. 이곳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나간다면 나는 해변 앞에 갈 수나 있을까. 포장한 음식을 손에 들고 아무것도 할 줄 몰라 결국 엄마 집으로 향하진 않을까, 그 돈카츠 써는 소리와 무심코 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생각들. 시발 내가 언제부터 제주 오는데 생각이 이렇게 많았어야 했지.
겨우 바다 앞에 앉았다. 원하던 철썩이는 물살 보며 3조각 들은 가츠 샌드를 여유롭게 입에 넣었다. 그치만 여유롭게 바다를 더 보고 있을 자신은 없어 곧장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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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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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던 날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엄마도 보고싶고, 소현이도 보고싶고, 단추도 무척 보고싶지만, 내려간 나를 생각하자니 무너져내려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나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언제부턴가 무겁게 느껴지는 제주의 공기감, 충분히 겨울인 척 하는 지금 제주 바다의 칼바람, 빌딩 하나 없어 그대로 내리쬐는 제주의 햇볕을 생각하자니 꾹꾹 참아왔던게 다시 또 터질 것 같아서 나는 전날 캐리어를 꾸릴 때 부터 글썽 거리고 있었다. 울음이 조금 늘었나. 제주를 가는게 무서울 수 있다니.
아침. 공항에 도착해 티켓을 발권하고 캐리어를 맡긴 뒤 비행기가 이륙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예뻐보이자고 무얼 입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내려가서라도 예뻐보이자고 캐리어에 넣을 옷도 고민하지 않았다. 겨울 옷은 두터우니까 꺼낸 24인치 캐리어엔 결국 고민하다 넣은거라곤 R이 준 품이 넓은 검정색 후드티와 검정색 츄리닝.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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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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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감정의 깊이가 1층과 10층, 엘레베이터에 단 두 층 말곤 없다고 말을 한 적 있었는데, 어느 날에 탄 엘레베이터엔 그 사이의 층들이 무수히 생겨나서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날이 생겼다. 매번 1층만 눌러보다 2층이 생겨버리면 2층을 눌러보고 싶은 것이고, 2층이 생겨버린다면 3층도 생겨버렸을 터 4층도 눌러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일까. 나는 며칠 내내 못 가보았던 곳, 못 누려보았던 곳에 가 한참을 방황했다.
가는 길이야 만들어내면 길인 것인데 정하고 싶지도 만들고 싶지도 않은 날이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하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겨날 것 같아 멍하니 앉아있었지만 소용없던 날도 있었다. 낯설지 않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집에 돌아가는 길, 대리 기사님을 옆에 두고 질질 짜보기도 했었다.
사실 그게 방금 있었던 일이다. 내일이야 다를 것 같지 않아서 내일을 오늘인 것처럼, 오늘을 어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게 나의 오늘이다. 어제엔 오늘엔 내일엔 그런 날에 산다.
오늘이 어떤 날짜인지 새삼 깨달으며.
1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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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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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늦가을
어느 도로를 달리다 '만추네' '만추야' 라는 말을 남발하며 붉게 물든 단풍과 노랗게 젖은 은행들에 감탄했다. 고대하던 바깥 공기 맡아보게 된 기념으로 남은 가을을 즐기러 어디론가 가봐야되지 않겠나 싶었는데, 오늘. 현관문을 나왔더니 가을은 떠나고 겨울과 마주했다. 올해 코트 한번 제대로 입어본 적 없는데.
사진은 그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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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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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론 찾기.
왼쪽 손등에서 나는 향과 오른쪽 손등에서 나는 향. 이번엔 오른쪽 손목에서 나는 향. 맡으면 맡을수록 어지러운 당신을 찾기 위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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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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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는 글.
행복을 바라는 건배사를 버릇처럼 하곤 한다. 우리의 건강과 풍요와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풀리기 소망하며 행복해, 행복하자, 행복하렴, 있는 행복 없는 행복 다 꺼내어 말한다. 술잔을 부딪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행복했으면 해서.
누군가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 사실 가까운 곳에서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학 동기는 사고로 손가락을 잃었는데, 내 앞에 앉은 어느 날의 N과 H 둘은 다행히 온전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둘은 서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투닥이고, 살아가는 고민과 일에 치여 가끔은 마음이 온전하지 못할지언정, 우리가 소곱창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건강하게 지내준 게 고마워서 그날 나는 여지껏 꾹꾹 눌러왔던 마음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올해도 고마운 사람들이 생일이었던 내게 케이크를 불게 해줬다. 매번 케이크를 불 때마다 내게 케익을 제공해준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는 소원을 빈다. 행복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은 만큼, 축하 또한 마땅히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선선한 여름을 보냈고, 선선한 여름을 바라며. 7월을 마무리하는 쪽지를 조금 일찍 남겨두고 돌아왔다.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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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eol-txt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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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내일을 오늘이라 말할 때.
자정 이후의 이야기다. 새벽 두세시 즈음, 오늘과 내일의 기준이 애매모호할 때 약속을 했다가 낭패를 본다. 나는 자정이 지나 오늘을 지금이라 생각하며 내일 있을 약속을 잡았던 거고, 당신은 자정이 지났음에도 아직 잠을 자고 일어나지 않았으니 내일을 오늘이라 생각하며 약속을 잡았던 거고. 당연히 당신과 내가 만났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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