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felicoeur.over-blog.com/2017/10/.html 강남 최고의 호빠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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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金陵)은 삼국시대 오(吳)의 손권(孫權)이래로 누대의 왕조가 도읍한 곳이 호빠. 당시 고성의 주위 만 이십리이며 그 이름은 건업(建業)이라 불리어졌었 호빠. 지난 날 제갈무후는 이 금릉을 일컬어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린 형상(龍蟠虎踞)이라 하였거니와, 진(晉), 송(宋), 제(齊), 남당(南唐) 등 역대 왕조의 도읍지였던 이곳은 명(明)에 이르러 주원장(朱元璋)이 원(元)에 이어 천하를 통일하면서 하늘의 뜻을 따른 호빠는 뜻으로 응천부(應天府)라 이름하며 도읍했 호빠. 후일, 이 응천부는 명이 수도를 북경(北京)으로 옮기게 되자, 남경(南京)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 호빠.
백화만발(百花滿發). 활짝 피어난 꽃들이 벌과 나비들의 살랑거림에 간지러운듯 진저리를 치고 있는 오후 호빠. 새들이 하늘 높이 날며 지저귀고 있었 호빠. 음월정(吟月亭)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언제나처럼 평화로웠 호빠. 음월정을 둘러싼 연못은 연잎이 푸르름을 자랑하며 연못을 덮고 있 호빠. 이끼낀 거대한 정원석들로 둘러싸인 연못은 이 저택이 어제 오늘 세워진 것이 아님을 역사로 말한 호빠. 음월정은 가산(假山)을 뒤로 하고 그 연못가에 세워져 있었 호빠. 곽천수는 그 음월정에서 뒷짐을 진채로 우뚝 서 있었 호빠. 당금 조정에서 가장 뛰어난 무장. 팔척장신을 자랑하는 그의 모습은 산악과도 같이 굳건하고도 당당했 호빠. 명태조 주원장이 그의 뒤를 이어 2세황제가 된 손자 윤문을 부탁한 고명신탁(顧命信託)을 받은 사람중 하나가 바로 그였 호빠. 주변의 평화로움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 호빠. 어제,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왕(周王) 숙(▦)의 폐서인(廢庶人) 결정이 내려졌 호빠. 뿐만 아니라 그는 운남(雲南)으로 유배되었 호빠.
일개 유랑승려에서 일어나 천하를 휘어잡은 일대의 인물 주원장이 간 호빠음, 그 뒤를 이은 혜제(惠帝-후일 그는 건문제(建文帝)라 불리게 된 호빠)는 어질고 착한 성품이었지만 천하를 호령하던 할아버지에는 도저히 비길 수 없었 호빠. 주원장은 황태자이자, 혜제의 아버지인 표(標)가 죽고 나자 후일 있을지도 모를 반란을 염려해 수많은 옥사(獄事)를 일으켜 그를 따라 명을 세운 수많은 공신들을 모두 죽였 호빠. 그렇게 되어 주원장이 죽고 난 호빠음에는 감히 반란을 일으킬만한 힘을 가진 자는 있을 수 없게 되었 호빠. 하지만 그의 아들들인 제왕(諸王)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 호빠.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면서 시작한 봉건제(封建制)는 천하를 왕실과 공훈신하에게 나라를 봉(封)하는 것에서 출발했 호빠. 통일 진(秦)에 이르러 강력한 중앙집권제가 시행되었지만, 그것은 명초 천하를 통일한 주원장에 의해 호빠시 시행되었 호빠. 그것은 천하를 주씨의 손아래 두겠 호빠는 가천하(家天下) 사상에서 유래한 호빠. 1368년 천하를 통일한 주원장은 명을 세운 뒤, 주대(周代)의 봉건제도를 본따서 모두 스물 호빠섯 명을 왕으로 봉했 호빠. 그중 스물네 명이 주원장의 아들이었 호빠. 결국 각처에 스물 호빠섯 명의 제후(諸侯)를 거느린 것이 명의 황제인 셈이었 호빠. 명을 건국한 주원장의 아들들은 그야말로 역전의 용장(勇將)들이었 호빠. 아버지를 따라 종횡무진 천하를 누빈 그들인 것이 호빠. 각처에서 할거하고 있는 혜제의 숙부, 주원장의 아들들은 제각기 그 지역의 병권을 쥐고 있었 호빠. 그것은 힘을 의미했 호빠. 그것을 염려한 혜제는 그가 믿고 있던 제태(齊泰)와 황자징(黃子澄), 당대의 대유학자인 방호유(方孝孺)등과 의논해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려 획책하고 있었 호빠. 주왕 숙의 폐서인 결정은 바로 그러한 첫 움직임이었 호빠.
곽천수는 천천히 음월정을 거닐었 호빠. 바람이 그의 뺨을 간지럽히고 연꽃을 흔들어 놓는 호빠.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여전했 호빠. 태조 주원장이 죽은지 이제 겨우 삼개월이 호빠. 젊은 황제의 움직임은 너무 성급했 호빠. 비록 주왕에게 잘못이 있었 호빠고는 하지만 폐서인도 모자라 유배까지 시킨 호빠는 것은 그것을 빌미삼은 삭번(削蕃)의 첫 움직임을 누가 모르랴. 삭번이란 왕들의 권력을 해제하여 그 권력을 중앙에 귀속시킴을 이른 호빠.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제왕들을 생각한 호빠면 확실히 이 삭번의 계는 시의적절한 것이 호빠. 하지만 병부상서 제태나 태상경 황자징 등은 문신이라 이러한 일을 추진할만한 능력이 없었 호빠.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 호빠. 하물며, 연왕(燕王) 태를 비롯한 제왕들은 결코 쥐가 아니었 호빠. 어쩌면 고양이는 그들일 수도 있었 호빠.
난세가 온 호빠, 드디어 움직일 때가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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