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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사랑했는데,
나흘 전에 파혼했다.
2021년 5월 3일, DMV에 다녀오는 길에, 문자로, 파혼했다. 2020년 6월 20일, 서울의 대형성당에서 결혼할 뻔 했던 사람과.
되돌이켜보면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는 이유없이 외로워서, 그 전 이별의 상실감과 울화통을 잊기 위해서 아무나 대충 첫번째로 삘이 오는 사람을 골라잡아 만났다.
그런데도 내가 근 4년동안 일편단심으로 ‘여차하면 내가 먹여살려도 괜찮다’ 생각까지 하며 이 지경까지 끌고 온 이유는, 단지 내가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합리화하며 어거지로 만들어낸 허상의 이유 때문인지 모른다.
예를 들면, 이런 허깨비같은 이유들. 사람이 저렇게 줏대가 없고 의욕도 야망도 없으니 내가 어디로 임용되든 따라와 같이 살아도 아무 상관 없잖아? 내가 미국으로 떠날때마다 대성통��을 할 정도로 나를 좋아하니, 그래서 내가 어딜 가든 따라오겠다고 청혼까지 하도록 구슬릴 수 있었잖아? 얘가 나를 따라오면 물론 내가 혼자 많은걸 떠안아야하긴 하겠지만, 내 커리어를 아무것도 희생치 않아도 되는거잖아? 나를 위해 내가 평소에 잘 못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참 잘 챙겨주잖아?
그렇게 어거지로 이유들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네이버집 N이라던가 베니스의 B, 벨에어의 J등을 만난 기억에 기대어 나는 내심 그런 비슷한 류의 새 파트너를 꿈꿨다. 허세와 프레스티지가 가득한, 어떤 허영심있는 무리에 가더라도 적어도 빳빳히 고개를 쳐들고 그네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수 있을만한 그런 파트너. 부의 레벨은 상관이 없지만서도, 적어도 자기 커리어를 (그게 무엇이든) 한 편의 끝장나는 모험담으로 들려줄 수 있는,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 나중에 내 자식에게 아버지의 인생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는 내 마음에 한 점 거리낌도 없을 것 같은 아버지감.
내심 그런것들을 마음 깊은곳에서는 바라고 있어서였을까. 남들이 한국의 쪼끄만 회사 영업사원과 약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못내 깜짝 놀라는 기색을 숨기지 못할때면, 나는 분통해하며 나중에 준을 들볶고는 했다.
그렇지만 걔는 내가 밤을 꼴딱 새우며 표까지 그려가며 정리해주는 MBA 프로그램들, 온라인 석사들, 지원해볼만한 회사들을 고맙다고는 했지만, 단 한번도 나를 따라와서 그곳이 어디든 자기 인생을 같이 꾸리겠다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 적이 없다. 그냥 심심하게 ‘나랑 결혼해줘’ 한 마디와 함께 자그마한 다이아 반지 하나 끼워주었으니 나의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듯이. 이력서 단 한장도 어딘가 보내보지 않았고, 내가 같이 지원서까지 작성해준 방통대니 온라인코스니 깔짝거리며 두어달 듣고는 흐지부지 얼렁뚱땅 넘어가기가 일쑤였다. 그러더니 종국에는 저네 부모님이 (한달에 두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다니시는, 또 애들 둘을 초중학생때부터 북미에 유학시킨) 하시는 말씀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는데 미국에 가서 살면 아시안 이민자로 쭈구리처럼 살아야한대. 자기도 한국에 들어오는거 고려해봐.’
��심했지만, 걔가 맹하게 눈만 끔뻑끔뻑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화를 삭히는 모습이 나는 그래도 좋았다. 왜 그런지 몰라. 그냥 내가 일하고 있을 때면 간식거리를 가져다주고, 다리를 꼬면 척추에 안좋다고 다리 풀어주고, 스트레스를 이빠이 받고있으면 같이 손잡고 산책을 나가주고 보양식을 챙겨주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정원에 예쁘게 세팅해주고, 차분하고 느릿느릿하게 회사랑 트위터에서 있었던 이런 저런 별 쓸데없는 이야기를 건네주고, 그런게 나는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랑을 느꼈다. 아 - 그래, 물론 내 마음에 쏙 들게 늘씬하고 예쁘게 생겨서도 그렇고.
내가 맨 처음 이십대 초중반에 만났던 남자친구 두 명은 참 양 극단에 있는 애들이었다. 아무런 희망다리 없이 하루벌어 하루먹는 하루살이형 PT 겸 아마추어 MMA선수, 그리고 너~무 심하게 야망에 불타는 계산적인 셜록홈즈형 시리얼 창업가. 너무 극단에 있는 남자들을 경험해서인지 준이정도는 딱 중간에 있는, 이만하면 괜찮은 옵션으로 보였다. 나름 Compromise effect에 희생된거라고나 할까.
걔네 엄마아빠 등쌀에, 그냥 마마보이도 버거운데 마마보이 쁘라스 파파보이였던 쟤의 등쌀에 나이 서른에 밀려나와 오랜만에 홀로 다시 나를 마주해본다. 조용히. 그리고 서른살의 불안한 나부터 걔를 만나기 직전, 스물여섯에 서울에 뚝하고 떨어져있던 나까지 되돌아가 되짚어본다.
나는 실은, 얘보다는 남들보기 더 떳떳한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런 적당히 떳떳하고 competent한 남자가 몽땅 예전의 B처럼, 양심은 엿장수와 바꿔먹은, 바람둥이 소시오패스는 아닐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믿는 것은 다음의 두가지다. 첫째, 적어도 자기 인생에 대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자기 혼자분의 삶정도는 자기 어깨에 스스로 짊어지고 치열하게 살아온 정직한 영혼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 있다. 둘째, 그렇게 살아온 영혼을 만났을때, 나는 나도 너와 동류이고, 네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나는 우리 둘이 짝꿍이 되어서 더 멋진 삶을 살수 있도록 조율할 의지와 능력이 충분히 된다고 구슬릴 수 있다.
파혼하고 이틀을 엉엉 울고 사흘째 되는날,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흘째, 다시 희망을 가져본다.
그림: 외젠 들라크루아, ��지의 고아소녀,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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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of you sometimes, you might not think of me. . . . PERSISTENCE . . . #penillustration #handdrawn #drawart #drawingandwriting #blackpendrawing #illustration #aestheticdrawing . . . . #펜드로잉 #펜그림 #펜일러스트 #그림과글 #손그림 #그림스타그램🎨 (Calgary, Alberta에서) https://www.instagram.com/p/CpbHB5UPYG5/?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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