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남겨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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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e 샤이니 ‘네가 남겨둔 말 (Our Page)’ Teaser #2 The Story of Light
#SHINee#The Story Of Light#Our Page#샤이니#최민호#네가 남겨둘 말#이진기#이태민#김조한#김기범#온유#민호#Choi Minho#Lee Taemin#Lee Jinki#Kim Kibum#Kim Jong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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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원
아니요 아니요 구름 아니요 책 아니요 껌 아니요 소주 아니요 고양이 아니요 재미없어요 나는 속고 싶다 나를 속여줬으면 좋겠다 나는 웬만한 것에는 속지 않는다 나는 구름과 책과 껌과 소주와 고양이로 속지 않는다 나는 계속된다 아니요 아니요 나는 아니라는 말에 의해서만 계속될 것 같다 나는 확신이 없고 이제부터 겨울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겨울 하면 눈사람과 크리스마스와 캐럴이 생각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멀리멀리 가고 싶고 갈 수 있는지 써나가면서 확인해볼 것이다 그치?
너의 경쾌한 걸음걸이를 떠올린다 나는 너를 눈밭에 둔다 너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춥지? 응 너무 춥다 너무 춥고 너무 추운 날에는 포스트록, 데스메탈 그런 것을 들어야 될 것 같다 난로 앞에 모여 앉아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 마셔야 할 것 같고 독한 술을 단숨에 들이켜야 할 것 같고 안락의자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타란티노 영화 같은 시 막 써버리고 싶다 너 거기 있냐? 죽어! 너도? 죽어! 이렇게 막 죽이다가 아니아니 하고 한 명은 남겨둘 것이다 그러면 남은 사람이 우와 나만 살았다 하고 좋아할지 혼자 남았다고 슬퍼할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아니라고 먼저 말해볼 것이다 부정하고 부정한 다음 지켜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프다는 느낌만이 가장 확실할 것 같고 그 감각을 지키기 위해 고통 속에 머물 텐데 그 고집이 너를 계속 혼자 남게 할지 모른다 아니야 아니야 너는 아니야 그런 말 다음에도 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부정도 부정할 텐데
나는 그만둘 것이다
구름은 멈추고 책은 멈추고 껌도 고양이도 소주도 멈출 것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벽에 택시를 잡아탔다 기록적인 한파였다 길은 얼어 있었고 나는 네 손을 꼭 잡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우리의 입김이 공중에서 하얗게 퍼졌다 이렇게 추운 건 처음인 것만 같다 너무너무 추워서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24시간 홈플러스였고 거의 아무도 없었지 나는 어려서부터 정지된 세계 속에 혼자 남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마음대로 훔치고 영업이 끝난 백화점 같은 곳에서 혼자 이것저것 입어봤다 홈플러스는 꿈같았다 꿈은 아니다 추운 곳에 있다 실내에 들어오니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우리는 잡은 손을 놓고 천천히 걸어 다녔다 이상하다 나는 아직도 내 일부가 그 밤 그곳에 남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아니다 너도 내가 아니지 그걸 몰랐어 응 몰랐다 나는 열심히 네가 되려고 애를 쓰고 또 썼어 네가 나처럼 애쓰지 않는 게 너무 미웠다
아니
무엇을 알고싶어? 무엇이 갖고 싶어? 어디에 가고 싶어? 응응 모르겠다 아니아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 아니야 아니야 그러지 마 그러지 말아 같이 있자 영화 볼까? 영화 보고 카페 가서 얘기할까? 그런 말을, 입김을 뿜으면서 반쯤 빌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조금씩 지워졌어 아니 밀려났다 아니다 튕겨져 나왔다 처음부터 바깥이었어 나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세포가 되고 그다음 소멸했다 거짓말 아니다 나는 더 사랑하니까 항상 가짜가 되고 싶다
처음
이 세계의 처음
없다 없다고 먼저 말하고 손도 없고 눈도 없고 홈플러스도 없고 택시도 없고 유령도 없고 군청색 코트도 없다 마음도 없다
기억이란 뭘까 초록색일까
기억이 동물이라면 코알라가 아닐까
너를 눈밭에 둔다 내게서 멀찍이 둔다 너를 달에 둔다 너를 화성에 둔다 너를 명왕성에 둔다 너를 은하계 밖에 둔다 내게서 가장 가까운 파도 아래 둔다 기침하는 빛 열감기에 시달리는 어둠 너를 옮기자 너는 깜박인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마지막까지 식물처럼 동그랗고 뾰족하고 차갑고 사라질 것처럼 피어난다
사라진다
죽은 사람의 냄새를 맡는 개 빙글빙글 돌며 발끝 손끝 눈두덩을 핥는 개 너는 노력하지 않는다 너는 중력에 무심하고 너는 멈췄다가 출발할 때 발끝과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을 모른다 나는 너를 팔짱 낀 구름이라고 쓴 다음 내 미움에 대해 눈과 눈이라고 쓴다 이것은 작곡가가 잊은 노래 잠들기 직전 들뜬 기분 갈고리에 걸린 거대한 고깃덩어리 축 늘어진 고깃덩어리 고깃덩어리의 물성
나는 피가 아니다
나는 피가 아니다
나는 피가 아니다
거짓말 전문가 너와 나는 초록색 담요 안에 웅크리고 누워 각자의 절망을 각자의 방식대로 즐겼다 치즈가 몽땅 썩고 책장이 한 장씩 찢겨나가고 대화를 하던 사람들이 말을 멈추고 서로의 표정 밖을 맴돌 때까지 떨어진 말들이 바람에 흩날려 부서지고 먼지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어린 신이 세계가 지겨워
유리 구슬을 절벽 아래로 내팽개칠 때까지
하얗고 탐스러운 눈이 펑펑 내렸다
모두가 죽었으면 좋겠어
모든 게 사라지면 좋겠어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속에서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로 무서운 속도 속에서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 무서운 속도로
손을 든 것은 내가 아니다 손을 내린 것도 내가 아니다 기지개를 켠 것도 촛불을 불어 끈 것도 빨래를 돌린 것도 갈가리 찢긴 책장을 그러모아 마음 가는 대로 늘어놓고
너는 읽는다 소리를 만진다 계속... 가죽 장화를...심장에...돌 주머니...여자의 옆모습...지독한...극장에...사려 깊은...베들레햄...누나, 운다...영원한...사건은...물고기를 놓아준...너는 산다...방사선량 기준치의...환승역...추웠다...흘러간...세네갈...평생이...한계로부터...여름에...개 같은...레비나스...알쏭달쏭한...강 나는 듣는다 안 듣는다 발아하는 씨앗처럼 보송보송한 소리의 기분 견딜 수 없다 아니야 끝이 없을 것처럼 끝나버린다 나는 네가 옷을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침대에 누워서 본다 개새끼
이불을 끌어 모아 얼굴을 덮는다 지겨워 죽겠어 지겨워서 숨이 막힌다 회전하는 시간과 끝없이 늘어선 시간 잔디 돋는다 죽은 몸 위에 죽은 네 안에 나는 여기까지 쓰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지만 나는 꿈속에서도 시를 써야 되는데 시를 써야 되는데 생각하면서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도끼를 들고 눈 쌓인 들판으로 걸어 내려왓다 그래 네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냐? 오른손잡이에게는 오른손을 왼손잡이에게는 왼손을 빼앗을 것이다 아버지가 나무둥치에 놓인 사람들의 팔을 도끼로 하나씩 내려쳤다 너는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는 뒤로 가서 서 있어 피 피 눈 위로 새빨간 피가 예쁘게 피 피 하고 쏟아졌다 나는 그걸 보면서 웃었다 웃으면서 우와 미쳤다 이러면 안 돼 나는 왜 웃지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는 벌을 주고 싶지 않은데 나는 자꾸 웃음이 난다
아름다운 빛들
눈물의 온도로
선언을 배운다
다섯 시에 옥상에서 만나
다섯 시에 옥상에서 만나
다섯 시에 옥상에서 만나
나는 아이의 엄마 너는 아이의 아빠 우리 그렇게 낮은 곳을 헤매다가 다 잃은 것처럼 그렇게 죄를 지었지
죽어버려 죽도록 아파하지 말고 그냥 죽어버려라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인가? 아니지 아니지 미움은 사랑의 다음 너는 줄곧 재고 있었던 거지 타란티노 스타일로 우리는 죽음을 배웠잖아 응? 아니아니 처음부터 혼자였던 거지
모든 것이 멈춘다
모든 것의 바깥에서
고가도로를 올라가며 엑셀을 힘껏 밟을 때, 기분이 좋았다 그럴 때 맥락 없이 다 끝났다는 이상한 안도감도 들곤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그냥 버릇처럼 말해본다 계속된다 계속된다 씨앗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숲으로 숲에서 섬으로 섬에서 대륙으로 대륙에서 행성으로 행성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우주 너머까지 점점 팽창한다 그러다가 문득 거꾸로 버튼을 누른 것처럼 우주 너머에서...... 씨앗까지 다시 작아지면서 깜박였지 힘껏 페달을 밟았다 뗄 때
나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물소리가 들렸다 빠져나가는 바람의 색을 보았다 그걸 영혼이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팔 잘린 사람들이 눈밭 위를 하나둘 하나둘 휘적거리며 걸어 올라간다 뚝뚝 피를 흘리며 뒤뚱뒤뚱 걸어 올라간다 나는 점점 멀어지면서 그걸 본다 그걸 보는 것이 슬프고 좋았다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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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백일 글쓰기들 2
7. 2019/09/22
때로 영영 흩어지는 것이 두려운 말들이 있다. 좋은 대화를 하고 나면 기록해두려고 하지만 8시간이나 떠든 뒤에 그걸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했다. 페미니즘과 비거니즘과 연애와 운동권과 총여학생회와 사주와 식습관과 고양이와 결혼에 대해서. 또 공동체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테이블에는 직접 삶은 병아리콩에 마늘과 후추와 올리브유를 넣고 갈아서 만든 후무스 위에 바나나와 건무화과를 올린 미니 피자와 또띠아 위에 상추를 얹고 소이 마요네즈로 마무리한 두부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우리는 비건 안주에 직접 담근 매실주를 마시면서 한참이나 얘기했다. 나는 거기서 길거리가 아니라 집 안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처음 보았다. 그것도 두 마리나. 구렁이 같은 회색 무늬를 가진 커다란 고양이는 살이 찐 뱃가죽을 늘어뜨리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고 3개월쯤 됐다는 어린 새끼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이것저것 건드리길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지나온 이야기와 지나갈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화를 내는지, 무엇이 우리를 파멸하게 만들 것인지, 우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꼭 나를 돌아보는 백문백답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속성 중에 하나가 나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면 그건 무엇일지 어느 언니가 물었다. 자기는 지배욕이라고 했고, 다른 오빠는 강박이라고 했고. 그렇지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단점이 많은 사람이므로. 우선 나의 유약한 정신과 그보다도 더 유약한 신체가 있고 그에 말미암은 우울증과 또 그에 말미암은 무기력과 만성피로가 있고. 그런데도 어떻게든 일이 해결되리란 막연한 회피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공존하�� 사람이다. 언젠가 내가 파멸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연쇄적이고 순환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이 자꾸 머리에 남는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야 내가 이런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택시에서 내려서 텅 빈 밤거리의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던 참이었다. 팔에는 한 병씩 선물 받은 매실주를 조심스럽게 안고. 취하지는 않았지만 술로 기분은 냈고 아주 오랫동안 좋은 이야기를 한 기분이 드는 새벽을 나는 좋아해왔다. 커다란 동의 안에서 세세한 차이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안전하고 다정한 공간, 나이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서로 존중 위에 신뢰를 쌓았다는 확신이 드는 공동체란 찾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건 우연이 아니라 운이다. 어느 날 내가 그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시기와 여건과 여력이 허락했던 건. 따지자면 우리는 친구가 아니라 동료였지만 나는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퍽 좋아하고 있었음을 새롭게 알게 된다. 오래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1. 2020/06/08
오랜만에 글을 쓴다.
5월 30일까지 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소설 창작 수업의 기말 과제였는데, 만 육천 자 분량의 완결된 소설을 써오라는 거였다. 도저히 쓸 여력도 없고 쓸 이야기도 없어서 써뒀던 글들을 마구잡이로 짜기웠다. 하이큐 할 때 썼던 글, 진격거 할 때 썼던 글, 그리고 엔시티 할 때 썼던 글도. 우스울 만큼 공통된 감정이 통과하는 글들이라 아무렇게나 짜기워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건 우울이다. 허구한 날 우울 타령을 하는 내 글들. 리바이의 입으로, 스가와라의 입으로 우울을 토로할 때는 부끄럽지 않았던 글들이 내 이름을 달았을 때는 미친 듯이 부끄러워졌다. 누가 봐도 개인적인 경험 같은, 자존감은 낮고 자의식은 높은 글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 수업에서 중간 정도 성적을 받아도 할 말 없다. 내가 교수였으면 읽다가 포기했을 거다.
전에 백일 글쓰기를 포기했던 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일상에서도 글감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었다. 글감이 없는 날이면 ‘사랑을 얘기해보자’ 따위의 구린 글을 써 갈겼는데 그게 싫었다. 1학년 때 ‘자유주의에 대해 논하라’ 따위의 레포트를 써오라고 시킨 교수 생각이나 났다. 나에 대한 글은 늘 우울하고 나는 만성 우울증을 영원히 치료하지 못할 것 같은 확신에 시달린다. 그런 글을 백 일간 반복하기 싫었다. 이번엔 구절님과 함께 가끔씩만 쓰기로 했다. 쓰고 싶은 날에. 그러니까 백일 글쓰기가 아니라 백 번 글쓰기, 같은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혼자 살고부터 우울증이 심해지기는 했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도서관에서 빌릴 책을 구경할 때는 가끔 우울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우울이 피부에 들러붙은 것 같다.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서 영상만 본다. 3월엔 알바를 구하려고 했는데 번번이 실패했고 4월에 쓴 일기는 죄다 죽어가는 사람의 것 같았다. 담배가 늘었고 몸 상태는 나빠졌고 나는 두통과 폭식을 이겨내려고 애썼다. 최근에는 애인이 과제를 미루지 말라고 말할 때마다 엉엉 울었다. 그럴 때 나는 불쑥 애인이 미워지고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난을 모르는 이 말쑥한 기득권 청년에게 쏘아붙이고 싶어진다. 네가 뭘 알아 너는 평생 우울증을 앓아본 적 없으면서. 정신병 환자한테 좋은 말로 충고하기는 쉽지 나라고 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알아? 그렇지만 그런 분노의 감정은 초면이 아니다. 나는 2019년 4월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나를 끌어 올리자. 미운 건 우울을 모르는 애인이 아니라 우울이고 실체도 없는 그것들이고 나는 나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기를 썼을 때 나는 XX대 여성주의 교지 편집부의 일원으로 폐지된 총여학생회 세력과 연대하고 있었는데, 당시 XX대 여성주의 단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 교지 편집부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고 어느 학생 기자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했고, 학생회관에 있는 우리 교지 편집실을 없애자는 데에 찬성한 사람이 300명이 넘었다. 총여학생회도 폐지된 마당에 여성주의 단체의 싹을 남겨둘 수 없다며 페미는 경찰 진압 방패로 내리찍고 구둣발로 짓밟아야 한다는 글이 에브리타임에 버젓이 올라왔다. 그런 글이 서울 소재 사립대를 줄 세우면 XX위 정도에는 있을 대학 익명 게시판에서 추천을 받고 있었다. 나는 XX대 남자를 견딜 수가 없었고 교정을 걷다가 남자와 마주치면 저 사람도 에브리타임에 그런 글을 썼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교지 편집부 일도 한 달 정도 쉬었다. 일기를 쓴 날 나는 술을 마시고 폭식을 했고 울다가 담배를 피우고 다 토했다. 그러고 일기를 썼다. 내가 뭘 위해서 이걸 감내해야 하냐고 썼다. 그러다가 저 문장들을 썼다. 나를 지독한 괴로움에 빠뜨리는 건 나 스스로도 아니고 내 우울을 몰라주는 내 애인도 아니고, 우리를 애미 뒤진 피싸개년이라고 부른 사람들이다. 미워할 대상을 똑바로 정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의 에브리타임 게시글은 아직 내 휴대폰에 캡처되어 있다. 다시 볼 용기가 안 나서 확인하지도 지우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과제 안 미루면 안 돼? 과제 때문에 밤새지 말고 미리 해두면 안 돼? 묻는 안일하고 다정한 애인에게 엉엉 울면서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아니야, 나는 혼자서 잠을 잘 못 자 설명했다. 우울을 모르는 애인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애인이 우울을 모르는 건 애인의 잘못이 아니니까. 나는 새벽에 거의 강박적으로 휴대폰을 하고 몸이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까지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때까지 버틴다. 잘은 모르지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나는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아니야, 그런 말을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단 애인한테가 아니라, 누구한테라도. 나라고 이렇게 실패한 삶을 꾸리고 싶었던 건 아니야. 나도 가끔 술을 끊고 담배를 끊고 멀쩡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해. 근데 가끔 견딜 수 없는 거야 스스로를. 새벽에 잠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이렇게.
주변에 나보다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널리고 널린 나와는 달리, 애인 주변에는 정신 질환자가 한 명도 없다. 애인은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울증 환자를 달래는 법 같은 건 몰라도 됐을 것이다. 나는 애인에게 짐을 지워준 느낌이 들지만 우스울 만큼 곧고 안일한 나의 애인은 내 정신 질환 이력마저 하나의 배움으로 이해한다. 우울은 사랑을 무관심으로, 때로 미움으로 돌려놓기를 잘한다. 나는 울컥 솟구치는 이 분노와, 무기력을 변명으로 삼는 무관심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화가 난다고 해서 바로 화를 내지 않는 법은 오래 연습해야 한다. 아직도 연습 중이다. 우울에 대해서도 그만 써야겠지. 이건 아직 많이 연습하지 않았다. 가끔 트윗을 쓰다가 취소한 것이 연습의 다다. 이번에 글을 쓸 때는 우울 타령을 덜 해야지. 나도 재미있는 글을 써야지.
아무튼 이렇게 시작한다.
2. 2020/06/12
마트에서 일한 건 2년쯤 전의 일이다. 설날 연휴와 발렌타인 시즌을 끼고 길게는 4주, 짧게는 3일까지 단기 알바를 했었다. 추석엔 국순당에서 나온 차례주를 팔았고 발렌타인에는 페레로 로쉐를 팔았고 그 사이에는 오리온에서 나온 피스타치오 파이인지 뭔지를 팔았다. 줄줄 읊던 멘트도 기억난다. 임금님께 올리는 우리 전통 차례주 국순당 예담입니다, 시식해 보시고 이용하세요, 새로 나온 후레쉬베리 애플 앤 망고 맛입니다. 페레로 로쉐는 마트를 세 군데인가 돌면서 팔았는데 제대로 교육도 받지 않았고 마트 자체의 기억도 안 좋고 해서 멘트를 다 잊었다. 뭔가 이탈리아 어쩌구,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 보세요 어쩌구. 이런 느낌이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생각난다.
마트에서 처음 일하는 건 낯선 경험이다. 대형마트는 우선 창고가 무지막지하게 커서 물건을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내가 처음 일했던 곳에는 국순당 담당 직원이 없었다. 마트에서 알바를 하는 건 대강 이런 식이다. 처음엔 용역 업체를 통해 특정 브랜드 판촉 직원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일을 잘하면 눈에 띄어서 용역 안 끼고 다른 브랜드 판촉을 뛰게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첫 출근을 통보받으면 마트 측이 아니라 용역 측에서 일을 알려준다. 창고에 가서 재고를 파악하고 매대를 찾아서 물건을 팔라는 게 대강의 지시 사항이다. 마트에 해당 브랜드 직원이 있으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예를 들어 롯데 담당이 있으면 그 직원이 롯데에서 나온 주류며 과자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상품의 위치나 판매 방식을 쉽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일할 땐 국순당 직원이 없었다. 그냥 대형마트에서 혼자 물건을 찾아서 팔라고 던져진 것이다. 내가 일한 곳은 빈 주차장을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대형마트에 주차를 해본 사람이면 주차장의 크기를 알 것이다. 자기 차를 어디 대놨는지도 잊는 곳이 대형마트 주차장인데 나는 거기서 국순당 차례주에 끼워줄 키친타올 사은품을 찾아야 했다. 지나가는 직원 아무나 붙잡고 국순당 키친타올이 어딨는지 아냐고 물으면 대답이 돌아올 턱이 없었다. 딱 봐도 어린 초짜배기 알바생이 온 층의 창고를 헤집고 다니니 결국 연차 높은 직원들이 국순당 상품 모여 있는 곳을 알려줬다. 그게 첫날의 일이다.
가끔 용역에서 지시하는 사항과 마트에서 관리하는 규정이 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깨지는 거다. 백화수복이나 예담 같은 차례주는 물량이 워낙 많고 또 많이 팔리기 때문에 매대를 따로 설치하는데, 용역에서는 일반 술 매대에도 은근슬쩍 국순당 술을 채워놓으라고 한다. 나는 뭣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면 주류 담당 고참 직원이 빽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국순당 와보라든지, 여기 예담 갖다 놓은 사람이 누구냐든지. 당연히 나다. 그러면 나는 혼나면서 채워놓은 상품을 다 빼고 내 매대에 정리하고… 지금 생각하면 용역에서 시켰다는 걸 그 직원도 당연히 알았을 텐데 좀 억울해진다. 일하면서 제일 깨졌던 날도 용역에서 시킨 대로 했던 날이었다. 마트에는 매장 뒤에 바로 물건을 꺼내올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창고가 딸려 있고, 위층에는 주차장처럼 넓은 공간을 쓰는 창고가, 아래층에는 지게차가 들어올 수 있게 밖으로 통하는 문이 딸린 창고가 있다. 용역에서는 미리 다른 층 창고에서 재고를 다 꺼내서 매장 뒤에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했다. 같이 일하던 백화수복 언니들도 그렇게 해뒀길래 카트에 몇 번이나 박스를 실어서 매장 뒤에 다 쌓았다. 그러고서 일하는데 불호령이 떨어졌다. 차례주 파는 애들 다 창고로 오라고 했다. 팔 것만 몇 개씩 놔둬야지 누가 박스를 다 쌓아놓으라고 했냐고. 전부 꺼내서 창고에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나는 그때 기본 10시간에 저녁 식사시간 1시간 빼고 휴식시간 1시간 빼고, 8시간 일한 뒤에 세금 떼고 용역 소개비 떼고 6만 얼마를 받고 일했다. 그래도 시간당 8천 원 좀 넘게 받았으니 최저보단 더 받는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언니들이랑 쉬다가 내가 얼마 받는지 말했더니 언니들이 다들 놀랐다. 다음엔 절대 그 가격 받고 일하지 말라고, 거기서 2만 원은 더 받아야 한다고 했다. 주류 판매 알바가 기피 대상인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무거운 술병 계속 날라야 하고 인센티브도 없다고. 경찰 시험을 준비한다던 언니는 마트 1층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나랑 햄버거 세트를 갈라 먹으면서 다음에 마트에서 일할 거면 꼭 양주를 팔라고 충고했다. 양주는 병당 인센이 붙어서 잘 파는 사람들은 인센만으로 하루 치 일급 정도는 더 벌어간다고. 그런데 나는 양주나 와인은 왠지 무서워서 팔 수가 없었다. 종류도 너무 많고 그런 술을 사는 사람은 술을 좀 아는 사람들이니까. 나는 앵무새처럼 임금님께 올리는 우리 전통 차례주 국순당 예담입니다 시음 한 번 해보시고 이용하세요 말하는 게 편했다.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고객의 연령대는 보통 자차가 있는 중년 이상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나에게 말 까기를 아주 예사로 했다. 갑자기 나한테 와서, 아 기저귀는 어디 파노? 묻는 식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국순당 전담으로 들어온 차례주 담당이고 식품매장 매대 위치도 다 못 외우는 판에 다른 층의 생필품 위치를 알 턱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저도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어요, 라든지 저쪽에 빨간 셔츠 입으신 분한테 물어보시겠어요? 라든지 대꾸했는데, 그러면 엄청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다. 귀찮게 한다거나 뭐 그런 것도 모르냐거나. 아니면 신상을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 살이냐 학생이냐 돈은 얼마나 받고 일하냐. 뭐 할머니들이 손녀 같고 예쁘다고 나이를 묻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도대체가 중년 남자들이 카트 끌고 와서 나이를 묻는 경우 없는 상황은 왜 발생하냐는 거다. 나한테 반말부터 찍찍 까면서 시비 걸던 중년 노년의 남자들은 꼭 지옥불에 타면서도 염라대왕한테 몇 살이냐고 묻고 반말 찍찍 까길 바란다. 그래도 뭐 그런 경우야 하하, 그냥 뭐, 하고 대충 일하는 척하면 무마는 되는데, 진짜 짜증 나는 건 유들유들한 대응이 필요한 경우다. 나는 차례주 시음까지 같이 하고 있었는데, 차례주 한 번 드셔보시겠어요? 물을 때 됐다고 하면 될 걸 꼭 차 갖고 왔다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내 차 갖고 왔는데, 음주운전 걸리면 니가 책임질 끼가? 이딴 소리로 짜증을 내거나 농담을 하거나 했다. 그러면 나더러 뭐 어쩌란 것인가. 그러면 처드시지 마십시오.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 없으므로 나는 하하 웃으면서 아유, 그러면 드시면 안 되죠, 했다. 그러면 또 나한테 슬쩍 와서 ‘집 가서 묵어보그로 몇 개만 챙기도’를 시전한다. 나는 구구절절 이게 보건법에 걸려서, 매장 밖에서 드시면 저희가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고 어쩌고 구차한 설명을 시작하는데 이러면 백 프로의 확률로 짜증이 돌아온다. 아 알았다 알았다 고마 드르바서 안 묵는다 뭐 이런 식이다. 나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므로 항상 매뉴얼대로 대응했고 화를 삭이면서 남은 시간을 일해야 했다. 옆에 일하던 백화수복 언니는 마트 알바에 짬이 좀 있던 사람으로, 나한테 팁을 전수했다. 반말을 갈기는 할아버지가 오면 나도 은근슬쩍 말을 놓으라는 것이다. 입술 닫고 으음, 으응, 이런 소리로 네, 를 대체한다는 것이 그 언니의 전략이었다. 그러면 화가 좀 덜 난다고. 그런데 나는 그냥 매뉴얼 대응이 튀어나오는 사람이라 그 팁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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