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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체포하라" 워싱턴 DC 긴급 시위

"윤석열을 체포하라" 워싱턴 DC 긴급 시위 -"윤석열 타도하고 민주주의 다시 세울 것" 해외 촛불행동 성명서 발표 -외국인도 참가...볼티모어에서 기차 타고 집회 참석도 JNCTV: https://wp.me/pg1C6G-3mX 유튜브: https://youtu.be/FWjG_uxsNlY Read the full article
#국제연대#기차참석#긴급성명#긴급시위#김건희#대한민국대사관#민주주의#민주주의회복#볼티모어#성명발표#시위구호#외국인참가#워싱턴DC#윤석열#윤석열타도#윤석열퇴진#체포#촛불집회#평화시위#해외동포#해외촛불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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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한표!! #재외국민투표 #싱가포르 #대한민국대사관 #오차드 #EmbassyOfTheRepublicOfKorea #election #vote #Singapore #シンガポール #大使館 #投票 (at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https://www.instagram.com/p/B-itFkknCKJ/?igshid=nc7rp9ea2p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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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mera-nya mantap, ver~! ✨✨ . . 📸 @verajulius . . . . #SahabatKorea (at Embassy of the Republic of Korea in Indonesia /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대사관) https://www.instagram.com/p/B6FuU0TnJdy/?igshid=m5cuhxst4a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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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알려요~~ 한-우즈벡 수교 30주년 기념 양국 국가 연주 경연대회 👨🏼❤️👨🏻👨🏼❤️👨🏻👨🏼❤️👨🏻(국악대회 입니다) 한국인 경연자(참가자)는 온라인 경연으로 4월 19일까지 [email protected] 로 연주 녹화영상을 꼭 제출하셔야 합니다. 이메일에는 이름, 나이, 직업, 인원수, 연락처, 자유곡명을 꼭 기재해주세요 우즈벡인 경연자(참가자)는 오프라인 경연으로 아래링크에서 https://overseas.mofa.go.kr/uz-ko/brd/m_8555/view.do?seq=1347077&page=1 악보를 다운 받을 수 있으며, 상세 안내는 대사관 러시아어 홈페이지 공지를 확인하세요 🏆 -------------------------------- 접수일정: 2022-04-05 ~ 2022-04-19 대회일정: 2022-04-24 ~ 2022-04-26 주최/주관: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 contest.co.kr에서 한-우즈벡 수교 30주년 기념 양국 국가 연주 경연대회정보를 확인하세요 -------------------------------- #한-우즈벡수교30주년기념양국국가연주경연대회 #주우즈베키스탄대한민국대사관#경연대회#콘테스트#콘플렛폼 https://www.instagram.com/p/CcE7WpWPZc5/?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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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던 - 신동엽 B 김수근~
김수근 건축의 사회적 소통은 문화라는 속성을 지닌 인간 환경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회적 질서를 동반한다. 이러한 소통의 본질은 건축의 창의성과 예술적 가치가 사회와 여하히 균형있게 만나는가를 보여준다. 이같은 문화적 환경은 이 시대에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지어지면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보다 건설회사가 부각되는 풍토는 여전하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 당시의 사회적 여건상 일상 속에서 문화나 예술을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건축분야를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했던 사람이 있다.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열정적인 삶을 통해 현대 한국의 척박한 예술문화사를 새롭게 쓴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2.20~1986.6.14)이 바로 그다. 이미지 목록 한국 현대 문화예술사를 새로 쓴 건축가 익히 알려진 바대로 건축가로서 문화와 예술의 영역과 경계를 허문 김수근 선생은 기존의 문화지형을 새로 짜고 그려나간 문화예술 분야의 선도자였다. 그는 척박했던 우리 시대의 문화예술 안에서 건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적 질서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한국 현대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고 키운 건축가였다. 이런 평가는 그의 사후에도 많은 저작을 통해 다시 논의되고 확인되고 있다. 때문에 그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현대사회의 문화예술과 건축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7년 5월 타임지는 당대 문화예술을 중흥시킨 김수근의 업적에 주목하며 그�� ‘서울의 로렌초’로 소개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김수근 선생의 위상은 우리 사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의 시선을 통해서도 검증되었다. 막 40줄에 접어든 1971년, 그는 국제적 건축단체에서 수여하는 범태평양건축상을 수상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타임(Time)]지는 1977년 5월 그를 ‘서울의 로렌초’로 부르며 국제사회에 알렸다. ‘서울의 로렌초’라는 표현은 그의 삶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인 메디치가(家)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 견주어, 당대 문화예술과 예술가들의 사회적 저변을 확장하고 문화예술을 중흥시킨 열정적 삶에 대한 언론의 반응을 보여준 것이라 할만하다. 또한 그만큼 척박한 우리 문화 풍토를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시키는 흐름의 중심에 그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1976년, 그는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한국건축가협회의 회장직을 맡아 건축 직능단체를 이끌었다. 당시 그는 건축 창작의 산실인 자신의 사옥을 짓고 그 안에 소극장과 갤러리를 만들어 막 우리의 문화예술을 새롭게 일구는 단계에 있었다. 만일 그의 이후 10여 년 동안의 역동적 행적을 또다시 바라본다면 그때는 [타임]지가 무어라 표현할 수 있었을까. 문화적 삶의 척도로 보자면 김수근은 어쩌면 로렌초보다 한 수 위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로렌초는 피렌체의 명망가문으로 재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해서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했지만, 김수근 선생은 자신이 재력과 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예술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분야 예술가들을 도와 기회와 ��기를 만들고 직접 활동 공간을 제공하여 문화예술을 키웠던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인본주의와 공동체의 지혜를 건축에 담다 김수근 선생의 화려한 문화사적 성과는 그의 작가 정신과 열정이 뒷받침한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처절한 자기성찰과 우리 것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만든 결실이다. 그가 설계한 국립 부여박물관은 그를 더욱 성숙한 건축가로 만드는 절대적 계기가 되었다. 1967년, 공사가 한창이던 부여박물관의 형태가 일본 신사(神社)를 닮았다는 논쟁에 휩싸이면서 그가 겪게 되는 혼돈은, 전통이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독자적 관점을 사회 안에 담아내는 데 시기상조였던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목록 1967년 설계한 국립부여박물관은 전통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그가 더욱 성숙한 건축가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최순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과의 우리 문화유산 답사는 전통문화와 그 안의 공간개념에 대한 김수근의 의식을 키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건축 신인이면서 많은 국가적 프로젝트에 관여한 김수근 선생은 그런 미흡��� 문화적 풍토를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았다. 우리 고전과 일상 문화의 근본을 향한 재인식과, 당대 여러 분야 명망가들과의 지속적이고 끈끈한 소통을 기반으로 문화인식과 인간관계의 폭을 확장시키면서 몸으로 익힌 것들이 그의 문화예술을 지탱하는 의지이자 자양분이 되었다. 이때 젊은 그가 주목한 것은 전통의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문화와 공간개념이었다.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함께했다. 인간의 가치를 제일하는 인본주의가 곧 그의 작품의 근본의지였던 것이다. 그의 작업은 그래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원초적인 ‘궁극 공간’을 만드는 일이 된다. 또한 그의 작업은 인간환경과 도시풍경을 건축공간과 아울러 공동체적 삶의 지혜를 담아낸다. 주변의 도시 질서와 가로 풍경을 건축공간 안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건축의 공동체성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길과 건축과 사람과 주변 환경은 서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된다. 말하자면 그의 건축론을 함축하는 키워드는 ‘궁극공간’인 셈이다.김수근 선생의 이 같은 건축정신은 자연스럽게 그가 생전에 몸담고 이끌었던 ‘공간그룹’의 바탕이 되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를 통하여 시대정신과 문화의식을 함께한 그의 후학들은 여전히 이 시대 건축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목록 그는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한 문화기획자였다. 문화예술인들의 활동무대인 소극장 공간사랑 개관식 때의 모습. (1977) 사물놀이는 그가 셰게 무대에 자랑스럽게 소개한 한국의 전통예술 중 하나였다. 공간 소극장에서의 사물놀이 공연. (1983) 세계건축가연맹(UIA) 4지구 도쿄대회에서 만난 남북건축가들이 김수근의 지휘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1980) 그는 자신의 작업 공간을 직접 짓고,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활동무대를 만들어주었으며, [공간]이라는 종합예술 건축문화 잡지를 창간하여 건축과 미술 등 문화예술을 널리 보급하는 데 정열을 바쳤다. 그는 일생동안 그의 작업 공간을 통해 수많은 직능과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은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늘 무언가를 도모하며 일을 꾸미고, 문화와 예술이 풍성한 세상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한 생명력 넘치는 만남이었다. 그는 다른 문화예술 분야를 ‘후원’함으로써 건축의 폭을 높였고, 그로써 건축이 문화예술의 한 축을 이루는, 그것도 매우 중요한 축임을 두루 인식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우리 삶의 질과 관련하여 사회와 문화와 예술을 보는 안목이 일상을 통해 폭넓고 풍성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문화기획자였으며 예술창조자였다. 김덕수 사물놀이를 한국의 전통예술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예술로 키운 장본인인 그는, 공옥진의 ‘병신춤’ 역시 국제무대에 소개하여 우리 춤의 진수를 알리는 등 선구적이고 예술가적인 안목을 발휘했다. 김수근 선생은 안타깝게도 그런 역동적인 삶을 굵고 짧게 살았다.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고 완숙한 경지에 접어드는 50대의 중턱에 도달한 그는 수많은 희망과 꿈을 뒤로 하고 1986년 6월, 만 55세를 일기로 숨지고 만다. 한국 건축을 문화적 담론으로 이끌다 디자인 구상에 몰입하고 있는 김수근. 1931년 2월 20일 함경남도 청진에서 태어난 김수근 선생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사대문 안의 북촌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주둔군으로 근무하던 미군을 통해 근대건축을 접하고 건축가가 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1950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한 그는 전쟁 통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도쿄예술대학 건축학과와 도쿄대학교 대학원을 나온 그는 일본의 신문화를 접하며 건축에 대한 눈을 더욱 크게 틔우고 실무를 익혔다. 그가 우리 건축계의 대부가 되는 계기는 1959년 유학생 신분으로 박춘명, 강병기 등과 함께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응모해 당당히 1등으로 당선한 ‘사건’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5·16군사정변 때문에 백지화되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국내에 들어와 자신의 건축 인생을 화려하게 펼쳤다.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의 건축계는 우리 민족만의 건축을 실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혼란 상태에 놓여있었고, 한국전쟁과 1961년 군사정변의 시기는 뒤늦게 개화한 국제 건축양식의 무비판적인 도입으로 한국 건축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군사정부 주도의 신속한 근대화가 개발의 논리를 바탕으로 추진되고, 도시ㆍ농촌ㆍ들판ㆍ하천 할 것 없이 국토개발이 국가적 사업으로 퍼져가면서 건축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는 1인 주도의 도제식 건축집단이었던 공간건축은 건축가의 직분을 공고히 하고, 전통 문화적 정체성, 한국성 등의 개념을 건축 디자인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소규모 기술용역업체가 생겨나던 시기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대형사업을 수행하는 새로운 형식의 건축디자인 방법론을 구축했다. 김수근 선생의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자유센터에서는 최초의 본격적인 노출콘크리트 공법이 선을 보였고, 중동의 건설 붐을 타고 이란 엑바탄에 주거단지를 계획함으로써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해외시장에 건축 디자인을 ‘수출’하기도 했다. 국가 주도 사업의 건축설계에 참여하면서 ‘공간그룹’으로 성장한 김수근의 건축집단은, 한국의 건축계는 물론 도시, 사회 환경의 문제에 주목한 문화적 담론을 월간 [공간(SPACE)]지(誌)나 건축디자인 실무를 통해 꾸준히 이끌었다. 김수근 선생의 미래 계획. 1980년~2000년까지의 장기 구상을 그려놓았다. 생전에 수많은 건축 작품을 남긴 그는, 국내 여러 도시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 해외 무대에서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설계하며 국제적인 건축가로 활동했다. 30대 초반부터 이미 자신의 설계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김수근 선생은 초기인 1960년대에는 워커힐 힐탑 바, 남산 자유센터 등의 작업을 통해 노출콘크리트 시대를 이끌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마산 양덕성당, 서울 경동교회, 서울 불광동성당, 샘터사옥, 관공서와 학교 등 수많은 공공시설을 설계하면서 벽돌건축에 주목하게 된다. 물론 그의 작업이 이처럼 건축술의 시대적 경향으로 단순하게 분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지 않은 그의 건축 인생이 그려낸 선은 너무도 굵고 길고 화려하면서도 복잡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공간의 소통에 주목하다 김수근 선생이 남긴 작품들 중에서 백미 중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공간 사옥이다. 그 자신의 아틀리에인 이 건축물은 1970년대 초와 후반에 두 차례에 걸쳐 덧대어 지어진 검은 벽돌 건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의 선두에 서 있는 작품이다. 공간 사옥은 밖에서 보면 좁고 긴 네모반듯한 덩어리들로 조합되어 있고, 외부 벽은 검은 벽돌로 쌓아 지은 일반적인 모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공간사옥의 내부 구조는 매우 복잡하여,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갖는 열 개가 넘는 바닥층이 내부 방들을 이루며 복잡한 계단길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건물을 기준으로 하면 지하 2층에 지상 5층 규모지만, 공간 사옥은 이처럼 일반적인 규모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안으로 들어서면 계단참 몇 개를 올라 다른 방들이 만들어지고 또 옆에 나 있는 몇 개의 계단참을 따라 또 다른 방이 높이를 달리하며 연결되곤 한다. 그렇게 복잡한 방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지만 공간은 꼭 필요한 정도의 크기로만 구성되어 있다. 층고(層高- 건물의 층과 층 사이의 높이)를 낮게 해 아담하고 인간적인 척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복도나 계단 등 통과하는 동선도 그냥 두지 않고 약간의 빈 곳이나 벽면까지도 수납공간이나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좁은 공간을 폭넓게 사용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미지 목록 그의 작품 중 백미로 손꼽히는 공간 사옥. 한국의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로 손꼽힌다. 한국건축을 이끄는 건축아카데미를 꿈꾸며 조성한 공간공릉사옥의 최상층 내부. 갑작스런 타계로 미완의 꿈이 되고 말았다. 공간 사옥의 단면 스케치, 내부 공간이 역동적이다. 이 같은 공간 사옥의 조형성과 공간 미학은 건축물이 터를 잡고 있는 장소적 성격, 즉 좁은 골목길을 따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북촌이 지닌 도시 정서를 건축 공간 안에 담아내고자 한 김수근의 건축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우리의 전통양식이며 생활 문화적 습성이 ���겨 있는 공간이라고 평가한다. 지금 공간 사옥은, 김수근 선생 사후 공간을 이끌었던 2대 장세양 대표의 신사옥과, 1996년 장세양 대표의 타계 후 지금까지 공간을 이끌고 있는 3대 이상림 대표의 한옥 등 세 채의 사옥이 마당을 중심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공간 사옥에는 매주 토요일이면 건축을 배우고 김수근을 알고자 찾는 학생들의 답사행렬이 계속되고 있다.김수근 선생의 도시공간에 대한 생각, 재료를 다루는 솜씨,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건축 등이 돋보이는 주목할 만한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 샘터 사옥이 있다. 김수근의 벽돌 건축시대를 대표하는 1980년대 작업인 샘터 사옥은 이후 근처에 세워진 문예회관(아르코) 대극장과 미술관, 길 건너의 해외개발공사(현, 서울대병원 부속시설) 등 그가 설계한 벽돌 건축들과 함께 대학로라는 문화거리의 새로운 풍경을 이끌었다. 사옥의 열린 실내마당. 길과 건축이 하나가 됨을 공간미학적으로 보여주었다. 샘터 사옥은 대중교양지 [샘터]의 편집실이 있어 문인이 많이 찾고,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이 펼쳐지는 소극장과, 밖을 향해 있는 개방적인 카페 등이 있어 늘 사람들의 발길이 붐비는 문화공간이다. 샘터 사옥은 이에 걸맞게 사람들을 배려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우선 주변을 지나는 시민이 건물로 드나들기 쉽게 ‘통하는’ 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소통과 공유의 미덕이 배어있다. 샘터 사옥은 건물 앞뒤로 나 있는 출입구에 문을 달지 않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건물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게, 길이 연장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밖으로 열려 있다. 정면의 진입부에 밖으로 열려 있는 이 작은 마당은 건물 안팎을 매개하는 공간인 셈이다. 건물의 1층을 비우고 사람을 위해 내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과 도시,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을 건축의 공간미학적으로 실현해 보여준다.샘터 사옥의 비움과 열림은 건축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편하게 적극적으로 우리 시민사회와 통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 건축을 위하여 김수근 선생은 안타깝게도 그가 지닌 그릇에 자신을 다 채우지 못하고 너무도 일찍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건축 창작의 산실인 공간그룹은 왕성한 활동을 통해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의 유족과 동료, 후배들은 그의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자 ‘김수근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생전에 그가 지녔던 예술혼과 작가로서의 사회적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를 매년 발굴하여 시상함으로써 그의 희망을 잇고 있다. 재단은 2011년 5월 김수근 선생의 25주기를 맞아 독일 베를린의 아에데스(Aedes) 건축 갤러리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회고전을 열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옛 서울역청사를 문화공간으로 새로 단장한 ‘문화역 서울 284’에서 2012년 6월 14일 김수근문화재단 주관으로 ‘김수근 26주기 추도행사’가 열린다. 그곳에서는 개관 기획전으로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전시장 중앙 홀에 ‘모더니티의 숲을걷다’라는 주제를 건 김수근 건축전이 선을 보였다.(이 전시는 2011년 베를린 추모전의 귀국전으로 치러졌다.)김수근 선생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건축가들은 해마다 이렇게 그의 생전의 화려한 삶을 회상하며 “김수근의 건축은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이 물음은 분명 김수근의 큰 삶의 족적을 부정하는 언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그에 대한 정신적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수사요, 그에 대한 존경의 예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그의 족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우리 건축의 사회적 가치를, 우리가 누려야 할 문화적 정체성을 우리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찾아 그것을 이 시대 우리 안에서 공유하며 문화적 토양의 자양분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김수근 선생이 건축인생에서 이루고자 했던 ‘궁극공간’의 꿈은, 이 시대를 사는 건축인 누구에게나 절실한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담아내는 건축의 ‘궁���’을 향해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아닐까? 주요작품 연보 no. 발표연도 제목 1 1959 국회의사당(남산) 현상설계 당선안 2 1961 워커힐 힐탑바 3 1963 자유센터 4 1967 부여박물관, 한국기술연구소(KIST)본관 5 1970 오사카 EXPO'70 한국관 6 1971 공간사옥 7 1974 서울대학교 예술관(미술대학, 음악대학) 8 1975 이란 엑바탄 주거단지 9 1977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수단국 영빈관, 주인도 대한민국대사관 10 1978 마산 양덕성당, 문예회관 전시관 및 공연장 11 1979 국립청주박물관 12 1980 경동교회, 새마을지도자연수원, 강원어린이회관 13 1982 주카타르 대한민국대사관 14 1983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5 1984 국립과학관 16 1985 주미 대한민국대사관저, 불광동성당, 지하철 경복궁역사,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주립 스포츠 콤플렉스, 17 1986 치안본부청사, 서울지방법원청사,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수영장, 자전거경기장 이전 이미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 (1959) 1959년 유학생 신분의 그는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응모해 1등으로 당선되었다. 설계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당시 이 사건은 그를 일약 건축계의 스타로 만들었다. 원본보기 1 / 15 다음 이미지 이전 이미지목록 다음 이미지목록 미쳤던 - 신동엽 스카아트 밑으로 강 뚝에, 바람은 나부끼고 있었다. 안경을 낀 내 초여름 고샹 같은 여인이여. 허리 아래로 대낮, 꽃 구렝인 눙치고, 깊은 오뇌(懊惱) 감춘 미쳤던, 미쳤던, 꽃 사발이여. 스카아트 밑으로 천재는 흰 구원 빛내며. 한낮 꿀벌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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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iscoming#instaphoto#mongolianguy #instadancer#instaulaanbaatar# #photoby @idersgram thank u Braja #Done#Naya (at 주몽골 대한민국대사관) https://www.instagram.com/p/B_mrViUBNbbHnwh0WSFtvCcxii7XFIeS1bqaaE0/?igshid=1gvvvmjffoh1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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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案發生在2012年,一名叫吳原春的男子,於晚上在家喝得酩酊大醉後,突然色心起,有強暴女性的念頭。於是,他在出門倒垃圾時潛伏在電線杆後,等待獵物出現。他擄走了一名郭姓女子,並拖到住處進行性侵。受害人趁凶手外出時,心急如焚地用手機打到112報案中心報警,描述自己的所在地,但報案中心警員只是反覆詢問她的確實地址,並沒有即時採取行動。 此案中最令人心寒的是,受害人為了讓警方透過訊號找到自己,明明沒有把電話掛掉,但是,聽著被害人慘叫求救的聲音,警員並沒有立刻處理。當時被害者跟112報案中心人員的通話長達7分鐘,她卻依然被活生生掐死,更遭凶手殘忍地分屍成280多塊碎塊,分裝於14個垃圾袋中丟棄。 #殺人犯 #南韓 #恐怖 #醉漢 (at Korean Embassy in Malaysia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대사관)) https://www.instagram.com/p/ByXm-WKF8QC/?igshid=xchfvep3nu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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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lly.. Alhamdulillah.. (at Korean Embassy in Malaysia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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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ong sayo! (at Korean Embassy in Malaysia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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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서류] - 우즈벡국제결혼 / 비자발급 심사 기간 변경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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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급 심사 기간 변경 안내
저희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영사과에서는 기존의 비자발급 심사 기간을 다음과 같이
단축함을 알려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일반 비자(관광, 초청 및 비즈니스 등
: 기존 14일에서 10일로 변경됨.
¡ 상시방문자 비자, 사증발급인정서
: 기본 10일에서 7일로 변경됨.
* 위 사항은 2012년 4월 20일부터 적용됩니다.
주우즈베키스탄 대한민국대사관 영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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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관저의 아름다운 정원 #봄날 #하늘 #정원 #일본 (주일본 대한민국대사관 Korean Embassy in Japan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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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투표중~~ voting in Singapore #KoreanEmbassy #Singapore #Orchard #대통령선거 #덕분에땡땡이 #주말에가도되는데굳이오늘 #싱가포르 #대한민국대사관 #election #シンガポール #オチャード #大韓民國大使館 #選挙 (at Korean Emba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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