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Explore tagged Tumblr posts
Text

Essager PD 100W 마그네틱 USB C OTG 어댑터

6 개 Magsafe 마그네틱 메탈 링 휴대 전화 일반 메탈 스티커 브래킷 무선 충전 패드 마그네틱 캐리어 브래킷

접착식벨크로 120mm
2 키트 Lexus ES350 GS450h IS250 LS430 RX300 RX330 IS300 GS460 자동차 카펫 바닥 매트 클립 리테이너 고정 후크 클램프 리벳




셋탑박스거치대 벽걸이 TV선정리 셋탑박스숨기기 아트월무타공 브라켓 셋아트 대

1/2PCS 슬라이딩 새시 스토퍼 캐비닛 잠금 스트랩 도어 보안 도난 방지 잠금 창 슬라이딩 도어 잠금 아기 어린이 어린이 안전

자동차 미끄럼 방지 매트 자동차 장식 접착 패드
1 note
·
View note
Text
한입만 (🗡⚡)
5 notes
·
View notes
Text


학생회관 안경점이 점포정리중이시다.
요즘 내가 산 안경테들을 생각해보니.. 오프에서 산 건 거의 7~8년 전인 것 같다. 지금 가진 4~5개의 안경테는 모두 온라인 구매.
오늘 안경알을 넣으러 간 테는 알리에서 만칠천원 무료배송이었고 품질도 좋았으니 기존 안경점들이 경쟁이 될 리가 없겠지.
안경사 아저씨 거의 퇴직할 나이는 되신 것 같았지만.. 자발적인 폐업은 아닐 것 같음.
세상이 빨리 바뀌면서 없어지는 직업들 많고 나도 예외는 아닐 텐데.. 몇 살까지 나는 일을 할 수 있으려나.
2 notes
·
View notes
Text
youtube
15 Pet Accessories You Need to See Before Buying Anything Else
Check out these 15 must-have pet accessories before buying anything else! From interactive toys to grooming tools, these items will make your furry friend's life even more enjoyable.
0 notes
Text
쇼핑몰마케팅 알리 알리익스프레스구매평 알리익스프레스최적화 알리익스프레스마케팅 알리익스프레스상품찜 오픈마켓상위노출
알리익스프레스 상품 바로가기 : https://bit.ly/476I7GM
카카오톡 : ebiz9
연락처 : 010 - 4668 - 1276
플러스친구 문의 : http://pf.kakao.com/_sfCXK
—————————————————————————————
— 알리익스프레스 마케팅 상품 단가 안내 —
[ 스토어 팔로우/상품찜 ]
✅ 스토어 팔로우 or 상품찜 100건 (+20% 서비스) = 4만원
[ 스토어 프리미엄 구매평 ]
- 체험단 입금대행 서비스 무료
- 택배 대행 서비스 +3,000원
✅ 프리미엄 구매평 10건 (알림받기 10 + 상품찜 10) + (방문자 유입) = 3만 5천원
- 일 구매수량 지정 가능합니다.
- 일반후기, 포토후기, 동영상후기, 한달후기 모두 가능
- 방문자 유입 서비스를 통한 구매전환율 관리
- 추가 스토어찜, 상품찜 서비스를 통한 상품 최적화 노출 관리
[ 쇼핑몰 후기 + 배송형 인스타 or 블로그 후기(체험단) ]
✅ 쇼핑몰 구매평 + 블로그 or 인스타 체험단 10건 = 8만원
- 쇼핑몰 구매평 + 인스타(블로그) 체험단 후기를 진행
- 체험단 리스트를 전달드리며, 마음에 드시는 블로그(인스타) 체험단을 선정 가능
[ 상품 Q&A ]
✅ 상품 Q&A 5건 = 1만원
[ 스토어 유입 관리 ]
✅ 쇼핑 키워드 검색트래픽 (1,000명) = 4만원
- 키워드 검색후 스토어 상품(상품���소)유입을 통한 상품 검색량 관리
✅ 스토어 사용자 유입 관리 (3,000명 일 100명씩 30일) = 8만원
- 스토어 사용자 유입으로 방문자수 관리 및 지수 관리
- 실사용자들이 방문하는 실제 사용자 트래픽입니다.
——————————————————————————
안녕하세요~
지프라 마케팅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를 개설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신가요?
어렵게만 느껴지는 알리익스프레스마케팅!
알리익스프레스 구매평, 트래픽, 스토어 팔로우, 상품찜까지 통합 관리해드립니다.
이제 지프라마케팅이 여러분의 알리익스프레스 활성화, 스토어 마케팅을 책임지겠습니다.
상품의 최적화 노출을 위해서는 알리익스프레스 구매평이 많아야
최적화 노출에 유리합니다.
이제 100% 체험단 마케팅으로 여러분들의 알리익스프레스 최적화 마케팅을 도와드립니다.
[ 알리익스프레스 마케팅 이렇게 시작하세요. ]
Step 1. 처음 스토어 팔로우로 스토어를 활성화하세요
(이는 스토어의 규모를 커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Step 2. 상품찜으로 쇼핑리스트 순위를 최적화 시키세요.
(상품찜이 높을수록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Step 3. 구매평 작성으로 사용자 이탈을 막아주세요.
(상품을 검색했는데 구매평이 0개인것을 본다면 어떨까요?)
0 notes
Link
알리·테무發...韓시장 ‘쩐의 전쟁’
0 notes
Video
youtube
[스타 쇼츠 ] 8개월만에 뒤바뀐 '더 글로리' 배우 입지…차주영 울고 김히어라 웃었다. #스타쇼츠 #shorts #short ...
#youtube#8개월만에 뒤바뀐 '더 글로리' 배우 입지…차주영 울고 김히어라 웃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넷플릭스 '더 글로리'. 수많은 유행어가 탄생하고 무명의 시간을 보냈던 배우들이 이름을 알리
0 notes
Text
혼자 또는 소수로 행동하여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들 중에는 유명하지 않은 이도 있다.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한 예다. 그는 한 독재자의 부패와 억압적 통치가 23년째 이어지고 있던 튀니지의 26세 과일 노점상이었다. 어느날 시장에서 경찰이 부아지지에게 뇌물을 뜯어낼 요량으로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허가증을 보여달라며 괴롭혔다. 그는 거절했다. 경찰은 그를 발로 차고 침을 뱉고 노점을 뒤집었다. 부아지지는 관청에 가서 항의하려고 했지만, 그곳에서도 무시당했다. 2010년 12월 10일,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한 지 한 시간도 안 된 때, 그는 관청 앞에서 제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외쳤다. “대체 어떻게 먹고살란 말이냐?” 그러고는 제 몸에 불을 붙였다.
부아지지의 분신과 죽음을 계기로, 튀니지 전역에서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와 여당과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는 확산되었고, 정부와 벤 알리는 한 달 만에 실권했다. 부아지지의 행동을 계기로 이집트에서도 시위가 열려, 호스니 무바라크의 30년 독재가 거꾸러졌다. 예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알리 압둘라 살레의 34년 통치가 무너졌다. 리비아에서도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34년 권세를 잃고 살해당했다. 시리아에서는 시위가 내전으로 이어졌다. 요르단, 오만, 쿠웨이트에서도 총리가 사임했다. 알제리, 이라크, 바레인,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정부 개혁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었다. 부아지지는 무슬림 세계의 정치개혁을 생각하며 성냥을 켠 게 아니었다. 그저 어디로도 분출할 수 없어서 안으로 향한 분노가 있을 뿐이었다. 아랍의 봄이 짧은 희망 뒤에 새 독재자, 폭력, 난민, 시리아와 ISIS라는 파국으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어쩌면 분신자가 역사를 만든다기보다 역사가 분신자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불만이 끓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무 개 나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 촉매는 분명 부아지지 한 사람의 행동이다.
(786~787쪽)
틀림없이 베트남전에서 단일 사건으로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은 선한 세력이라는 인식을 마침내 떨쳐버리게 했던 일은 미라이학살이었다.
1968년 3월 16일, 한 미국 중대가 윌리엄 캘리 주니어 소위의 명령에 따라 미라이라는 마을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공격했다. 중대는 석 달 동안 베트남에 있었지만 적과 직접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래도 부비트랩과 지뢰에 부대원 28명이 죽거나 다쳐서, 총 중대원 수가 백 명가량으로 줄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흔한 해석은 그들이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얼굴 모를 적을 진짜 얼굴들과 연결 짓고자 하는 욕구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의 공식적 논리는 미라이 마을이 베트콩 전사들과 민간인 동조자들을 숨겨주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거의 없다. 참가한 군인들 중 일부는 베트콩만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보고했지만, 다른 군인들은 가리지 말고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이고, 우물을 망가뜨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보고가 상충하지만, 아무튼 그뒤에 일어난 일은 흔한 ��현마따나 고통스러운 역사로 남았다. 미군은 아기와 노인도 포함하여 비무장 민간인 350~500명을 죽였다. 시체를 훼손하고 우물에 처박았다. 오두막과 밭에 불을 질렀다. 많은 여성 주민을 집단 강간한 뒤 죽였다. 엄마 품에 숨어 있던 아이들에게 캘리가 직접 총을 쏘는 걸 봤다는 보고도 있다. 적의 응사는 없었고, 마을에 징병 연령 남성은 없었다. 그것은 성경 수준의, 로마제국 수준의, 십자군 수준의, 바이킹 수준의······ 파괴였다. 다만 이 파괴는 사진으로 남았다. 미라이학살이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 미국 정부가 사선을 은폐하려고 용썼고, 캘리에게 겨우 3년 가택연금형을 내렸다는 점이 더 경악스러운 대목이다.
미군 병사들이 학살에 다들 똑같은 수준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결국에는 총 26명이 고발되었고, 그중 캘리만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게 법정의 명령이었다).[*살해에 가담했던 이들 중 두 명이 나중에 자살했다. 스티븐 브룩스 소위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베트남에서 자살했다. 바나도 심프슨 일병은 몇 년 뒤에 자살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열 살 아들이 동네의 십대들이 쏜 유탄에 맞아 죽는 걸 본 것이었다. 심프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내 품에서 죽었다. 그때 본 아이 얼굴은 내가 죽였던 아이의 얼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죽인 벌을 받는구나.“ 그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심하게 앓았고, 집에서 창문을 죄 막은 채 몇 년 동안 은둔하다가 세번째 자살 시도에 성공했다.] 폭력에 대한 문턱값은 개인마다 달랐다. 한 병사는 한 여성과 그 자식을 죽이고서는 더는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또다른 병사는 민간인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을 거들었지만 발포는 거부했다. 명령에 대놓고 거역한 병사들도 있었다.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거나 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서도 그랬다. 그중 한 명인 마이클 번하트 일병은 명령을 거역하며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대들었다. 나중에 장교들은 그를 더 위험한 순찰조로 보냈다. 그가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학살을 멈춘 세 남자가 있었다. 예상 가능하게도, 그들은 아웃사이���였다. 앞장선 사람은 25세의 휴 톰프슨 주니어 준위였다. 그는 글렌 안드레오타, 로런스 콜번과 함께 헬리콥터를 몰고 있었다. 어쩌면 톰프슨이 이른바 ‘눈물의 길’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남은 아메리카원주민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독실한 부모는 1950년대 조지아주 시골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했다. 콜번과 안드레오타는 가톨�� 신자였다.
톰프슨과 두 승무원은 베트콩과 싸우는 보병을 도울 생각으로 미라이 마을로 날아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전투의 증거가 아니라 민간인들의 시체였다. 처음에 톰프슨은 마을이 공격당하고 있어서 미군이 주민들을 돕는 줄 알았지만, 누가 공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수라장 한가운데에 헬리콥터를 내렸고, 데이비드 미첼 미군 병장이 도랑에 처박힌 채 울부짖는 민간인 부상자들에게 총을 쏘는 모습과 어니스트 메디나 대위가 한 여성을 직사로 죽이는 모습을 보았다. 톰프슨은 누가 공격하는지 깨달았다. 그래서 캘리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톰프슨보다 계급이 높았던 캘리는 그에게 닥치고 제 할일이나 하라고 말했다.
톰프슨은 한 벙커에 옹송그리며 모여 있는 여자들, 아이들, 남자 노인들에게 미군들이 공격 태세로 다가가는 걸 보았다.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뒤 그 순간을 돌이킬 때, 톰프슨은 그 병사들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그들이 내게 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그들은 적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어질어질할 만큼 강인하고 용감한 행동을 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살펴본 우리/그들 범주화의 이야기를 한순간에 몽땅 바꿔놓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휴 톰프슨은 마을 사람들과 군인들 사이에 헬리콥터를 착륙시키고, 기관총을 제 동료 미국인들에게로 향한 뒤, 만에 하나 그들이 주민들을 더 해치려들 때는 가차없이 쏴버리라고 두 승무원에게 지시했다.[*톰프슨은 동료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무전을 보내어 생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말했다. 안드레오타는 도랑에 쌓인 시신들을 헤치면서 살피다가 기적적으로 다치지 않은 네 살 아이를 구했다. 톰프슨은 자신이 본 것을 상관들에게 보고했고, 그들은 더 윗선으로 사건을 알렸다. 그러자 소탕 작전을 지시했던 지휘관은 이후 이웃 마을들에서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작전을 취소하고 사태를 덮기 시작했다. 안드레오타는 3주 뒤에 전투중 사망했다. 콜번과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선 톰프슨은 군대면 정부며 언론이며 가리지 않고 어디에든 제보하려고 애썼고, 마리아학살이 대중에 알려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원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멘델 리버스 의원은 캘리의 기소를 막고 대신 톰프슨을 반역죄로 기소하려고 시도했다. 톰프슨은 캘리를 재판하는 법정에서 그에게 불리하게 증언했고, 그후 오랫동안 살해 협박을 받았다. 군대가 톰프슨과 콜번의 행동을 기린 것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나서였다. 톰프슨은 2006년에 죽었다. 콜번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
자, 우리는 한 개인이 충동적 행동으로 20개국의 역사를 바꿔놓는 걸 보았다. 한 개인이 수십 년 묵은 미움을 극복하여 화해의 촉매가 되는 걸 보았다. 옳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그동안 훈련으로 습득한 반사반응을 철저히 억누른 사람들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 사람을 볼 차례인데, ���를 가장 크게 감화시키는 이는 바로 이 사람이다.
1725년 출생한 영국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 그 사람이다. 음, 썩 흥미롭지 않은걸. 그는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 괜찮네. 레너드 코언의 <할렐루야>와 더불어 늘 나를 감동시키는 노래다. 뉴턴은 또한 노예제 폐지론자였고, 윌리엄 윕버포스가 노예제를 불법화하고자 대영제국 의회에서 싸울 때 그 조언자였다. 좋다, 점점 좋은걸. 이제 결정적 사실을 알 차례다. 뉴턴은 젊을 때 노예선 선장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러니까 이런 시나리오잖아. 한 남자가 노예무역으로 돈을 벌다가 별안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깨우침을 떠올리고, 그래서 우리/그들 범주화가 극적으로 달라지고, 그의 인간성이 극적으로 확장되며, 그가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을 보상하고자 극적으로 헌신한다는 결론. 5장에서 보았던 신경가소성 현상이 뉴턴의 뇌에서 맹렬하게 펼쳐지는 모습이 눈에 선할 지경 아닌가.
현실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뉴턴은 선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11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갔다. 18세에 강제로 해군에 보내졌다가 탈영을 시도한 뒤 채찍질형을 받았다. 간신히 군대를 빠져나온 그는 서아프리카 노예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 자신의 경험과 노예들의 처지가 비슷한 것을 목격하고는 번득 계시가 떠올랐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는 노예선에서 일하면서 주변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사람들이 그를 한 노예 상인과 함께 현재의 시이라리온에 내던져두고 갈 정도였다. 노예 상인은 뉴턴을 제 아내에게 노예로 주었다. 그는 여기서도 구출되었지만, 그가 타고 영국으로 돌아가던 배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뉴턴은 신에게 호소했고, 배는 가라앉지 않았으며, 그는 복음주의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리고 또다른 노예선에서 일하기로 계약했다. 이제 알겠네, 그는 신을 찾아냈고, 몸소 노예가 되어보았으며, 그래서 문득 노예무역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거지.
아니었다.
그는 노예들에게 약간의 공감을 내비쳤고, 복음주의로의 개종에 점점 더 진지해졌다. 결국 그는 어느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고, 6년 더 일하다가 그만두었다. 마침내 그가 제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 거로군!
역시 아니었다.
그가 그 일을 그만둔 것은 험한 행해로 건강이 나빠져서였다. 그는 이후 징세원으로 일했고, 신학을 공부했으며, 영국성공회 사제에 지원했다. 그리고 벌어둔 돈을 노예무역 사업에 투자했다. 뭐라고?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그는 설교와 목회로 알려진 인기 있는 사제가 되었다. 찬송가 가사를 썼고, 가난하고 짓밟힌 자들을 대변했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에 노예무역 투자를 ���만두었다. 어쩌면 양심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더 나은 투자처가 나타나서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여전히 노예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노예제를 비난하는 소책자를 낸 것은 노예 상인일을 그만둔 지 34년 뒤였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비열한으로 산 시간이 그리 길었다. 뉴턴은 노예제의 참상을 몸소 목격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그 가해자였다는 점에서 노예제 폐지론자들 중 드문 경우였다. 그는 결국 영국에서 으뜸가는 노예제 폐기론자가 되었고, 1807년 영국이 노예무역으로 금하는 순간을 살아서 목격했다.
(789~795쪽)
이처럼 적군 간에 공통의 유대를 발견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백 년 남짓 전, 그런 사건 두 가지가 놀랍도록 대규모로 벌어졌다.
제1차세계대전이 낳은 좋은 결과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쟁으로 세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발트해, 발칸반도, 동유럽 사람들이 독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1500만 명이 무의미하게 학살된 사건일 뿐이었다.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은 모든 평화를 끝낸 폐허의 평화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유럽이 수백 년간 무의미한 갈등에 청년들을 희생시킨 사례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의 수렁에서 두 가지 희망의 사례가 탄생했다.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말하는데, 거의 기적적인 사건들이었다.
첫번째는 1914년 크리스마스 정전이었다. 시작은 참호 전선의 양측 장교들이 조심스럽게 상대의 언어로 “쏘지 말라”고 외친 뒤 무인 지대에서 만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만찬중에는 적대행위를 일시 중지하고 시신도 회수하자는합의에서 시작된 정전이었다.
그로부터 일이 퍼졌다.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사실인바, 양측 병사들은 무덤을 파기 위해서 서로 삽을 빌렸다. 그다음에는 함께 무덤을 팠다. 그다음에는 함께 장례 예배를 가졌다. 그러다보니 음식, 음료, 담배를 교환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무장하지 않은 병사들이 무인 지대로 몰려나와서 함께 기도하고 캐럴을 불렀으며, 저녁을 함께 먹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적군 병사들끼리 단체사진을 찍었고, 단추와 헬멧을 기념품으로 교환했고, 전쟁이 끝나면 만나자고 약속했다. 가장 유명한 사실은 급조한 공으로 축구 시합을 치렀다는 것이다. 점수는 남아 있지 않지만.
한 역사가가 기록한 오싹한 일화도 있다. 어느 독일 병사가 집에 보낸 편지에서 정전을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참여한 건 아니라고 말했는데, 동료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한 그 낯모르는 상병의 이름은······ 히틀러라고 했다. 하지만 800킬로미터의 참호전선 중 대부분에서 정전은 크리스마스에 종일 이어졌고, 종종 새해 첫날에도 벌어졌다. 나중에는 장교들이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다고 협박해서야 모두가 싸움으로 돌아갔고, 병사들은 적군들에게 전쟁을 무���히 나가라고 빌어주었다. 충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다. 간헐적인 예외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회수하기 위한 짧은 크리스마스 정전조차도 군사재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1914년에는 왜 정전이 가능했을까? 참호전의 독특한 속성상, 병사들은 매일매일 적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부터 전선 너머로 친근한 악담이 오가곤 했고, 희미한 유대가 형성되었다. 게다가 반복된 접촉은 ‘미래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정전을 배신했다가는 상대가 가차 없이 복수하리라는 예상이 들었던 것이다.
모두가 유대기독교 전통과 서유럽 문화를 공유했다는 점도 성공의 한 요소였다. 많은 병사들이 상대의 언어를 알았고, 상대국에 가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인종이 같았다. 적을 ‘프리츠’(제1차세계대전 때 연합국이 독일 병사를 부를 때 쓴 명칭―옮긴이)라고 부르며 놀리는 것은 베트남전에서 미군들이 베트남인을 ‘슬랜트‘(동남아시아인을 부르는 멸칭으로, 눈이 가늘고 치켜올라갔다는 데서 온 이름―옮긴이), ‘구크‘(원래 미국인이 동남아시아인을 부르는 멸칭으로, 한국전 때 한국인에게도 쓰였다.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옮긴이), ’딩크‘(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미국인이 동남아시아인, 특히 베트남인을 부르던 멸칭―옮긴이)라는 유사 종분화적 멸칭으로 부른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주로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정전이 벌어졌던 점을 설명하는 요소들도 있다. 제 땅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프랑스인과는 달리, 영국인은 독일인에게 그다지 악감정이 없었을뿐더러 보통 자신들이 역사적 주적이었던 후방의les derrières 프랑스인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전중에 영국 병사들은 독일 병사들에게 사실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얄궂게 말하곤 했다. 한편 우연히도 대부분 색슨인이었던 독일 병사들은 앵글로색슨인인 영국 병사들에게 친족적 친근함을 드러내면서 사실 우리는 독일의 밉상 지배 집단인 프러시아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은 상부가 정전을 승인했다는 점일 것이다. 보통 장교들이 협상을 주도했고, 교황 같은 인물들이 정전을 요청했으며, 누가 뭐래도 지상의 모든 인간들을 향한 평화와 선의를 상징하는 축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정전이 우리의 첫 사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1차세계대전에서는 그보다 더 기적적인 사건이 있었다. ’공존공영’ 현상이라고 명명된 이 사건은 참호전의 병사들이 한마디 대화 없이도, 공유하는 축일 없이도, 장교들과 지도자들의 허가 없이도 반복적으로 안정된 정전 상태를 진화시켜낸 것이었다.
어떻게 그랬을까? 역사가 토니 애슈워스가 『참호전: 1914~1918』에서 적었듯이, 그 일은 대개 수동적으로 시작되었다. 양측 병사들은 비슷한 시각에 밥을 먹었고, 그때는 총이 잠잠했다. 누구를 죽이거나 죽임당하자고 저녁���사를 중단하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날씨가 끔찍한 날도 그랬다. 그때는 모두가 최우선 관심사가 범람한 참호나 얼어죽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호 자제는 미래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도 생겨났다. 식량을 나르는 마차 행렬은 포대의 쉬운 표적이었지만, 상호 포격으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건드리지 않았다. 변소도 마찬가지로 무사했다.
이런 정전은 병사들이 어떤 행동을 하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생겨난 것이었는데, 반대로 뚜렷한 행동으로써 구축되는 정전도 있었다. 어떻게? 우리 군 최고의 저격수를 데려다가 상대 적진 근처의 폐가 벽에 총알을 박아넣게 하자. 똑같은 지점을 연거푸 맞히게 하자.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까? “우리 저격수가 얼마나 뛰어난지 봤지, 이 친구는 너희를 겨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자,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 상대편도 최고의 저격수를 데려다가 똑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서로 상대의 머리 위로 쏘자는 합의가 맺어진 것이다.
이때 핵심은 의례화였다. 무의미한 표적을 거듭 명중시키는 행동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하루하루 평화에의 약속을 갱신하는 것이었다.
공존공영 정전은 약간의 동요를 버텨낼 수 있었다. 가끔 병사들은 당분간 진짜로 쏴야 한다는 신호를 상대편에 보냈다. 장교들이 오는 날이었다. 이 체제는 위반도 이겨낼 수 있었다. 만약 웬 투지 넘치는 신병이 상대편 참호에 포를 발사하면, 대개의 관행은 상대편도 이쪽의 중요한 표적을 노려서 두 발을 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평화가 재개되었다(애슈워스가 들려준 일화가 있다. 독일군이 뜻밖에 영국군 참호로 포를 발사했다. 곧 한 독일 병사가 외쳤다. “진짜 미안합니다. 아무도 안 다쳤기를 바랍니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 망할 프러시아 대포 문제입니다.” 영국군은 두 발의 포를 발사하여 호응했다).
공존공영 정전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후방의 고위 장교드은 반복적으로 개입하고, 부대를 회전시키고, 군사재판을 들먹여서 으르고, 적군 간에 생겨난 공통의 이해에 대한 감각을 산산조각낼 게 분명한 육박전이 따를 습격을 지시했다.
정전이 구축되는 과정은 진화적이다. 처음에는 저녁식사중에는 쏘지 말자는 것처럼 당장은 이득이 있는 저비용 제안이었던 것이 차츰 더 정교한 제약과 신호로 발전했다. 정전 위반을 다루는 방식이 변형된 팃포탯이었따는 점도 눈에 띈다. 기본적인 협력 성향, 위반에 대한 처벌, 용서의 메커니즘, 명확한 규칙 등의 요소가 꼭 그렇다.
사회적 세균들처럼 우리도 협력을 진화시킬 줄 안다니, 만세! 하지만 협력적 세균들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심리다. 애슈워스는 공존공영에 참여했던 병사들이 적을 보는 심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꼼꼼하게 탐구했다.
애슈워스는 그 변화가 단계적이었다고 말한다. 첫째로 일단 상호 제약이 생겨나면, 적도 우리처럼 사격을 중지할 동기가 있는 합리적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들을 신의 있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이것이 순수하게 이기적인 이유, 즉 우리가 합의를 위반하면 상대도 되받아 위반하리라는 이유에서 생겨난 의무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것이 약간은 도덕적인 의무감으로 발달한다. 자신을 신의 있게 대하는 상대를 배신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꺼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전의 구체적 동기에서 깨닫는 바도 있다. “와, 저녁식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건 저 사람들도 똑같네. 저 사람들도 이 장대비 속에서 싸우고 싶어하지 않네. 저 사람들에게도 골칫덩어리 장교들이 있네.“ 스멀스멀 동지애가 생겨난다.
이 과정은 더 충격적인 현상으로 이어진다. 교전국의 전쟁 체제들은 늘 그렇듯이 상대에 대한 유사 종분화적 악성 선전을 쏟아낸다. 하지만 애슈워스가 병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에 대한 적대감을 가장 적게 드러낸 것은 오히려 참호전 병사들이었다. 적대감은 전선에서 멀어질수록 커졌다. 애슈워스는 한 최전선 병사의 말을 인용했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은 적을 욕하며, 모욕적으로 희화화한다. 하지만 나는 괴물처럼 묘사된 독일 황제 그림에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 전장에서는 용감하고, 숙련되고, 재주 좋은 적을 존중하게 된다. 그들도 고향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왔고, 우리처럼 진흙탕과 비와 총알을 견뎌야 한다.“
우리와 그들은 유동적일 수 있다. 만약 누가 당신이나 당신의 전우들에게 총을 쏜다면, 그는 분명 그들이다. 하지만 그 밖의 순간에는 그보다도 쥐와 이, 식량에 핀 곰팡이, 추위가 그들이었다. 본부에 편하게 있는 장교들, 다른 참호전 병사의 말을 빌리자면 ”저멀리서 추상적인 전략으로 우리를 죽이는 놈들“도 그들이었다.
이런 정전은 영원할 수 없었다. 전쟁의 최후 국면에서 영국 고위 사령부가 소모전이라는 악몽 같은 전략을 채택함에 따라, 공존공영 정전은 자취를 감췄다.
(797~802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2 notes
·
View notes
Text
어제밤 늦은 시간에 배달이 들어왔어요
이번에도 겉은 소주를 세병 시켜서 앞에 슈퍼에서 사왔는데 사천오백원 ( 뭐가 이리 비싸..? 술 구분을 못하니 당연히 가격도 알리 없다 소주 종류를 구분만 해도 어딘데 ..)
일단 잔돈 오백원을 영수증과 함께 봉지에 넣고 배달을.가는데 족발은 이만오천원 ( 동전을.잘 안쓰니 미리 봉지에 넣어가는 쎈스 .. )
초인종을 누르고 족발을 전해드리는데 뭐하는 분들인지 집안에 비슷한 연령의 남자들만 시글시글 . ( 솔로 부대인가..? )
족발은 우리꺼니까 카드로 계산해도 술은 슈퍼에서 현찰로 사니까 우리도 현찰로 받아요 ( 술까지 카드로 합산하면 슈퍼의 매출까지 우리에게 잡히니 손해 )
분명히 손님에게 그렇게 말씀드리고 주문 받았는데 막상 솢 값 달라고 하니까 줄듯줄듯 뒷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더니 카드와 족발만 들고 들어가더라구요
그러더니 족발을 펼쳐놓고 그냥 드시기에 제차 소주값 달라고 말씀 드리니까 아까주지 않았냐고 딴소리 시전 ..
그랴서 아니라고 하몬서 자세히 상황을 말씀 드렸더니 이번엔 서로 네가 내지 않았어..? 하면서 미루더라구요 ( 뭐 그럴수도 있지.. 장사라는게 워낙 여러 사람을.상대하는 거니까 ..ㅡ ㅡ )
일단 계산을 다 끝내고 매장에 왔더니 좀 있다가 그집에서 전화가 오더라구요..?
그러더니 야주 느긋하게 뭔가 느낌이 오는 목소리로 하시는 말씀이 제가 카드를 끊을 때 이만팔천원을 끊은거 같다고 하시는거쥬.. ( 왠 이만팔천 ..? 분명히 간건 이만 오천인데 ..? )
그러시냐고 잠시만 기다려 보시라고 하곤 키드기에 재인쇄를 눌러 영수증을 뽑아보니 제대로 이만오천원 ..
그래서 카드번호와 거래일시 금액등을 정확히 불러드리고 잘못된거 없다고 하니까
수화기 넘어 저쪽에서 들리는 다른 분들의 소리 ..
"거봐 안된다니까 .. "
"야 끊어 끊어 쪽팔려 .. "
"그런것도 다 나오나 보네 .. "
"야 요즘이 어떤세상인데" ...등등등 .
가만보니 이양반들이 겨우 삼천원 씌워먹으려고 그런 연극을 ..?
참 기도 안차네 ..
어쩐지 첨에 배달 갔을때 뒷주머니 만지작 거리며 수주값 안주려고 뺄때부터 느낌이 왔더랬죠..
족발장사가 다른건 다 희미해도 또 유난히 기억을 잘하는 부분도 있어요 ..
그분들의 수준은 삼천원 ..
몇조원 몇천억은 빠져나갈수 있어도 삼천원은 딱 걸립니다 ..
에휴.. 거참 ..
#광명전통시장 #광명시장 #전통시장 #추천맛집 #광명왕족발 #광명할머니왕족발 은 #광명소셜상점 #광명8경 #광명동굴 #광명시 #LocalGuides 와 함께 합니다

4 notes
·
View notes
Text
youtube
who could forget this iconic cover of a classic
0 notes
Text
마지막 춤 🗡⚡
4 notes
·
View notes
Text

알리 익스프레스에 주문한 트럼펫 약음기 도착. 방에서 연습하려니 소리가 너무 크길래 음량 줄이려는 목적. 근데 이거 끼웠더니 불기가 더 힘드네. 현 상태는 도-솔 배음조차 내 맘대로 조절이 안 됨. 도-솔-도는 언감생심.
2 notes
·
View notes
Note
the blue and white in ur theme is soooo prettyyyy
THANK YUUU im obsessed w the hao pic
2 notes
·
View notes
Text
youtube
Best Automobile Accessories for a SAFE Ride
Looking for the best automobile accessories for a safe ride? Check out this collection of top-rated products from AliExpress that will help keep you safe on the road. Drive with confidence
#automobile#automobileaccsseories#caraccessories#aliexpress#ali express#알리익스프레스#알리#aliexpres#Youtube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