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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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ongeko1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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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어버이날의 유래[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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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hearts-beat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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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zi · 10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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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사랑을 대놓고 놓쳤다.
놓친 순간 조차 불확실한 마음에 애쓰고싶지않아 손놓고 바라만 봤다. 각자가 가진 슬픔 앞에서 자꾸만 경계가 심해졌다.
자주 생각났지만, 연락 한 통, 얼굴 한번 마주하지 않았다. 사랑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섰�� 우리는 비열했다. 그때 그와 나는 정말 사랑이었을까. 어쩌면, 진짜 사랑이 아닌데 그저 누군가와 함께 하고싶었던 걸지 모르겠다.
난 사랑할 자격이 없다.
*최근의 나는 엉망이었다. 상처를 적잖이 받기도 하였고, 몇명의 관계로부터 도망을 쳤다. 그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자학하듯 일을했다. 새벽이 가는 줄 모르고 노트북을 두들겨 대며 밀리지도 않은 일들을 끌어다가 일을 했다. 그러고서도 잠을 이루지 못해 반병의 와인을 입으로 쏟아붓고는 어지러운 모습으로 잠에들었다. 그러다 보면 매번 새로운 아침이 돌아왔다.
나는 사람 때문에 힘든게 아니다, 그들을 선택했던 내 결정이 견디기 힘들었던 거지. 그들에게 주었던 진심과 걱정이 후회되었다. 내가 아무리 속상하다고 몇리터의 술을 쏟아붓고 방구석에서서 울지라도 그들은 그런 나를 전혀 모를 것이다.
그들은 날 등지고 들여다 보지도 않는데 내가 왜.
나는 더이상 그들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회복되지 않는 기억이 있을까,
저울에 좋은 것과 나쁜 기억을 올려놓으면 한쪽만 주저앉을까 봐 조마조마한 머리를 달고 산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처럼, 기억의 일부를 삭제할 수만 있다면 사는게 더 나아질까.
여름 장마에 우악스럽게도 범람한 마을 개천, 수의 문자, 그 애의 목소리, 술에 취해 겨우 잠들었던 밤, 도망을 쳤던 밤, 수많은 밤. 그러한 것들 말이다. 그 기억들을 떼어 놓고 반대편으로 오래도록 뛰어갈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럴 것이다.
*여름이 온다고 하니 괜시리 마음이 두려워졌다. 슬픔으로 얼룩진 지난 몇년을 매주 처리되는 쓰레기처럼 쉽게 버릴 수는 없으니까.
*서울에 갔을 때, 나는 내 방에서 오래도록 잠을 잤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깨지도 않고서 깊은 잠을잤다. 그 잠이 그리운 건지, 어디에 누워야 잘 사는 지를 알려주는 건지, 그렇게 환경은 계속해서 내게 삶의 힌트같은 것들을 던져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고나니, 내가 가져 본 적 없던 사랑들은 전부 거기에 있었다.
연락 한통에 내 집앞을 매일 같이 서성이는 F가 있었고, 그 애의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만났던 십분 남짓의 시간은 분명 사랑이었다. 마치 우리는 허들링을 하는 무리에서 낙오된 가족을 만난 펭�� 같았다.
지난 일년 반 동안의 수 많은 에피소드들이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 하듯이 매일 만나는 골목길에서 커피 한잔과 담배 한개비에 걸쳐 오고갔다. 그녀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서, 불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지하철 노선, 내 언어가 어색해졌던 수치심. 내 몸에 베어버린 재수없는 습관들을 전부 떼어내고싶었다. 기억의 일부가 오래 일시정지가 되어왔다는 듯이 지난 비하인드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비오는 날 합정에서 T를 만났던 날.
일년만에 보는 T가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어색함이 어렸을지 모른다. 그는 단 한치의 불편함도 없이 내게 인사를 하고는 작게 악수를 했다.
유연하게 일상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T를 보며 조금은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내 일상을 설명하는 거라곤 그저 바쁘다는 말 뿐이었으니까. 사실 그 말이 그의 앞에서 조금 부끄러웠다. 나와의 짧은 만남속에서도 그의 전화는 수십번이나 울려대며 내게 어떤게 바쁜 건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와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망원동 일대를 걸어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우리의 이야기는 대부분 각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은 어쩌면 그날 밤 무언가 삶에 열렬히 열광하고 있는 그를 본 걸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8살이 더 많던 그, 나는 문득 내가 지금 당장 미친듯이 무언가에 빠져 열심히 한다해도 그와 내 사이의 8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를 좁혀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과 그가 가진만큼의 열정을 나는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지난 시간이 너무 후회됐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다. 노력도 하지않았다. 그러면서 삶에 온갖 문제들을 제기하며 자신을 깎아먹으려 들었다.
사랑에 치인게 슬프고, 몇몇의 인간에게서 믿음을 잃어 오래도록 방황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T뿐만이 아니라 내가 오랜만에 만난 수 많은 사람들의 상황이 변하고 그들의 삶이 한단계 한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나는 그들의 삶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누구하나 무너지지않고 꿋꿋하게 견뎌냈던 그들의 점진적인 행보가 기뻤다. 그 기쁨 속에서 피부로 체감했던 삶의 시간들을 죽 돌이켜 보니, 그들은 정신차리라며 잠들어있던 나의 뺨을 후려쳐준 걸지 모르겠다. 정신이 확 들기시작했다. 그들은 내게 곧 들이닥칠 서른을 가르쳐줬고, 방황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 심장이 오락가락 흔들려 ���는 결정을 해야만했다. 그들의 에너지가 내게 어떠한 주파수를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늦은 밤 작은 언니와 어릴적 모습으로 돌아가, 같은 천장아래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덤덤하게 회상했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지현아. 너무 힘들었겠다. 언니가 몰랐네
라고 작게 호응하던 작은언니의 말에 오래전에 묻어 둔 서글픔이 우글대, 나는 몰래 고개를 돌려 눈물을 흘렸다.
늘 그렇듯 인정과 사랑이 많은 작은언니의 천성이 슬프고, 나의 부재를 틈틈히 챙겼던 F가 슬펐고, 굽혀지지 않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가 슬펐으며, 선크림은 매일 바르고 다니라는 그녀의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이 너무 보고싶었고,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들이 내게 내어준 시간과 기억을 가지고 나는 그들에게 곧 다시 올게. 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지만.
지난날의 황사같던 유독한 슬픔과 객기어린 화들은 전부 그들 앞에서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모든것이 느리고 천천히 울렁대던 여름의 기운을 가진 내 도시에서의 시간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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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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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3.
포키와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 비가 거세게 내렸다. 예고가 있었음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색하고 요상한 밤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에도 그 어색한 여운이 차갑고 세찬 바람으로 느껴졌다.
하루 산책을 건너뛰었다고 안달난 포키가 나에게 걸음을 보챘다. 공원 중턱에 조성된 소나무숲 길이 있는데 포키는 그 울퉁불퉁한 흙길이 재미진가보다. 그 길 초입부터 잔뜩 흥분을 머금고 나를 끌어당겼다. 뒤뚱뒤뚱 움직이는 엉덩이가 참 경쾌해 보인다. 응달이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동그란 잔디밭 공터로 나가니 여운처럼 남은 어색한 바람이 나를 밀어냈다. 내가 있는 곳 반대쪽 사면에는 자줏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살구나무에는 꽃잎도 한참 떨어져 흔적도 없다. 푸릇한 봉오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시 한번 찬바람. 포키는 낮은 잔디 위에서 코를 박고 나 같은 인간 따위는 알 수 없는 봄의 채취를 만끽한다.
어느 순간 구름 그림자를 쪼개고 밝은 빛이 포키에게 떨어졌다. 구름에 감춘 볕이 드러난 것이다. 햇빛에 바삭해진 포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몸을 낮추고 쓰다듬었다. 이제 나이가 든 포키는 몸 여기저기에 좁쌀만한 혹과 발에 제법 큰 종양을 달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활달하다.' 하고 속으로 뇌이고 내리쬐는 볕을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했다. 반쯤 감긴 눈꺼풀 위에 뜨끈한 볕이 붉게 물들었다. 그새 어색한 냉기는 사라지고 봄의 익숙한 기운이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 그늘진 나의 등줄기에도 온기가 도달하였다. 저 멀리 떨어진 태양을 상상하니 그는 정말 강렬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너무 뜨거운 마음은 먼 거리에서나 감당할 수 있는 법이야.
봄이 지나가고 있다. 대나무밭 옆 둘레길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서 봄의 소리가 들린다. 복작거리는듯 보이지만 한가롭게 지나가는 사람들. 힘차게 지면을 차며 몸에 활기를 넣는 사람들. 진달래와 푸릇한 젖니 같은 잎사��를 내민 나무를 배경으로 봄의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 그 장면이 내 시선에 놓이니 나는 포키 몸에 돋아난 혹과 발가락의 커다란 종양,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삼촌의 노쇠한 목소리, 철든 동생과 생기를 잃어버린 K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엔 꽃잎이 아니라 낙엽이 지고있다. 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들과 다르게 수북하게 쌓인 기억의 낙엽 위에서 입을 꾹 다문 나의 모습. 많은 것이 저물고 있다.
봄이 지나가는 가운데 나에겐 가을이 왔다. 최승자 시인이 말한 개 같은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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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italianolearns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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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entry 824
12.05.25
근데 어제는 우리 엄마와 이모의 친구가 날 진짜 놀랐어요. 그 여자는 언제 내가 태어났을 때 잘 기억했어요. "넌 1월 31일에 태어났어. 내가 병원에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 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어. 진짜 작었어~" 이렇게 말했어요. 사실 그 여자를 자주 만나지 않아요… 그러나 왜 잘 기억하는지 알 것 같아요. 몇 달 전에 우리 엄마가 나한테 이야기를 해서 정말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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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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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1vid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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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2001년 대한민국 경기도, 1600년대 후반의 조선시대 소년미라가 발굴 되었다.
소년은 발굴 당시 아버지의 겉옷(중치막)을 바닥에 깔고 어머니의 외투(장옷)을 덮고 있었다. 향년 여섯살이었고, 사인은 천연두였다.
조선 시대에는 아이가 사망하면 관 없이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지만 이 소년은 온갖 부장품과 함께 작은 관 안에 매장되었다.
Back story:
In 2001, a mummified boy from the Joseon Dynasty, dating from the late 1600s, was unearthed in Gyeonggi Province, South Korea. At the time of discovery, the boy was covering his father's coat (joongchimak) on the ground and his mother's coat (Jangot). He was six years old, and the cause of death was smallpox.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customary for children to be buried without a coffin when they died, but this boy was buried in a small coffin with all his belongings.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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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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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서 생물학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바라보는 관점은 세 가지가 있다.
1.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완벽한 자유의지를 발휘한다.
2.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없다.
3. 그 중간 어디쯤이다.
사람들에게 각자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연장하여 세심하게 따라가보라고 요구할 경우, 모르면 몰라도 첫번째 명제를 끝까지 지지하는 사람은 0.001%도 안 될 것이다. 누가 뇌전증 대발작을 일으켜서 팔을 휘두르다가 딴 사람을 쳤다고 하자.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자유롭게 통제하는 능력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마땅히 이때 팔을 휘두른 사람에게 폭행죄를 선고해야 한다.
그런 선고가 어이없다는 데에 거의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하지만 500년 전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는 그런 법적 선고가 내려졌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 결정을 터무니없게 여기는 것은 서구사회가 지난 수백 년간 결정적인 선을 넘었고, 이제 그 건너편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탓이 아니라 그의 병 탓이야.” 그동안의 발전을 한마디로 요약한 이 생각을 우리는 다들 받아들인다. 이것은 생물학이 우리의 자유의지라나 뭐라나를 가끔 압도하는 때가 있다는 생각이나 마찬가지다. 그 여성은 악의적으로 당신에게 부딪친 게 아니라,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 것이다. 대형을 지어 섰던 그 군인이 기절한 것은 정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뇨 환자라서 인슐린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 여성이 웬 노인이 쓰러지는 걸 보고도 돕지 않은 것은 냉담해서가 아니라, 척수 마비 환자라서 그런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의 전환이 그동안 형사 책임 영역에서도 이뤄졌다. 예를 들어, 200년에서 700년 전에는 동물이나 사물이나 시체가 고의로 사람을 해쳤다고 해서 고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재판은 묘하게 현대적이었다. 1457년에 돼지 한 마리와 그 새끼들이 어린아이를 먹은 죄로 재판정에 섰는데, 돼지는 유죄를 선고받고 처형되었지만, 새끼들은 너무 어려서 책임 능력이 없다고 판결되었다. 판사가 새끼 돼지들의 이마엽 겉질 미성숙을 언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한다고, 즉 생물학이 우리를 조금도 구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 입장은 앞으로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은 세번째 명제를 믿는다. 우리가 완전한 자유의지와 자유의지 없음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는 믿음, 이런 자유의지 개념이 생물학에 체화된 결정론적 우주 법칙과 양립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상당히 협소한 철학적 입장인 ‘양립 가능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건 이 견해 중에서도 작은 일부뿐이다. 나머지는 그 대신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체화한 정신이랄까, 영혼이랄까, 정수랄까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 그것으로부터 행동의 의도가 나온다는 생각, 그 정신이랄까 하는 것이 가끔 그것을 속박하곤 하는 생물학과 공존한다는 생각에 가깝다. 이것은 자유론적 이원론에 가깝고(여기서 ‘자유론‘은 정치적 의지가 아니라 철학적 의미다), 그린은 이것을 “경감된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마디로, 비록 선의를 가진 정신이 의지를 발휘하더라도 육신이 너무 약하면 그 의지가 좌절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이다.
경감된 자유의지가 법적으로 확실히 어떤 개념인지부터 살펴보자.
1842년, 대니얼 맥노튼이라는 스코틀랜드인이 영국 총리 로버트 필을 암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맥노튼은 필의 개인 비서였던 에드워드 드러먼드를 총리로 착각하여, 드러먼드를 근거리에서 쏘아 죽였다. 기소인부 절차에서 맥노튼은 이렇게 말했다. “고향 도시의 토리당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프랑스로도, 스코틀랜드로도 나를 쫓아왔습니다····· 어디로���. 나는 그들에게 밤낮없이 시달립니다. 잠도 못 잡니다······ 그들이 나를 이렇게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다시는 과거의 내가 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은 나를 살해하려고 합니다. 증거로 입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핍박에 절박해졌습니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맥노튼은 일종의 편집증을 앓았다. 조현병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의 망상 증상이 조현병의 전형적 발병 연령보다 상당히 늦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병명이 무엇이든, 맥노튼은 사업을 팽개치고 이전 두 해 동안 유럽을 쏘다녔다. 내내 환청을 들었고, 유력자들이 자신을 염탐하며 핍박한다고 믿었는데, 최악의 고문자가 필이었다. 맥노튼의 정신 감정을 맡은 의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망상이 너무 강해서, 물리적 저지가 아니고서는 무엇도 그가 그 행위를[즉 살인을] 저지르는 걸 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맥노튼의 이상이 워낙 명백했기에 검찰은 형사 고발을 취하했고, 피고인측과 정신 이상으로 합의했다. 배심원들도 동의했다. 맥노튼은 여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고, 당시 기준으로 비교적 잘 치료받았다.
배심원들이 그렇게 평결한 뒤, 일반 시민들로부터 빅토리아여왕까지 각지에서 항의가 터져나왔다. 맥노튼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갔다는 항의였다. 주심 판사는 의회의 문책을 받았지만, 결정을 고수했다. 의회는 대법원에 해당하는 조직에 사건 검토를 맡겼는데, 그 결과도 판사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부터 오늘날 정신 이상을 근거로 무죄를 선언할 때 흔히 쓰이는 기준, 이른바 ’맥노튼 규칙’이 공식화되었다. 피고인이 범행 시점에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각한 이성 결여’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였는가 하는 것이 그 기준이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존 힝클리 주니어가 정신이상을 근거로 무죄 선고를 받고 교도소 대신 병원에 수용된 것도 맥노튼 규칙에 따른 결과였다. 이후 ”범죄자를 풀어주다니“ 하는 항의가 일었고, 많은 주들이 맥노튼 기준을 금지했으며, 의회는 1984년 정신이상항변개혁법을 제정함으로써 사실상 연방 재판에서 그 규칙을 금지했다. 그렇지만 맥노튼 규칙의 바탕에 깔린 논리는 대체로 시간의 시험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적나라한 정신병이 있는 경우는 경감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경감된 자유의자 입장의 골자다. 우리 행동에 대한 책임이 ’경감될‘ 수 있다는 생각, 절반만 자발적인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이 경감된 자유의지를 다음과 같이 이해해왔다.
우선 뇌가 있다. 뉴런,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뇌 특정적 전사인자, 후성유전적 효과, 신경생성 ��� 유전자 이동 등등을 다 포함한 것이다. 뇌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도 있다. 출생 전 환경, 유전자, 호르몬, 부모가 권위적이었는가, 소속된 문화가 평등주의적인가, 아동기에 폭력을 목격했는가, 아침을 먹었는가 등등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 그 전체다.
그와 별개로, 뇌의 한구석에 숨겨진 콘크리트 벙커 속에서 웬 작은 인간이 제어반에 앉아 있다. 이 작은 인간은 나노칩, 구식 진공관, 쭈글쭈글한 고대 양피지, 어머니의 꾸짖음이 응축된 결정, 이글거리는 지옥불, 상식의 못 등등으로 이뤄졌다. 한마디로, 물컹물컹한 생물학적 뇌 성분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 작은 인간이 거기서 행동을 통제한다. 간혹 그의 역량을 벗어나는 일도 있다. 가령 발작은 작은 인간의 퓨즈를 날리기 때문에, 그는 시스템을 재부팅하고 망가진 파일을 확인해봐야 한다. 술, 알츠하이머병, 척수 절단, 저혈당 쇼크도 마찬가지다.
작은 인간과 생물학적 뇌 성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영역도 있다. 가령 호흡은 보통 생물학이 자동으로 조절하지만, 당신이 아리아를 부르기 전 심호흡을 할 때는 다르다. 그 순간에는 작은 인간이 잠시 자동 조종 장치를 압도한다.
하지만 그 밖의 상황에서는 늘 작은 인간이 결정을 내린다. 당연히 그는 뇌가 보내는 신호와 정보를 모두 꼼꼼히 살피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고, 신경생물학 저널을 훑어보고, 모든 사항을 고려한 뒤, 심사숙고 끝에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한다. 뇌 속에 있지만 뇌의 일부는 아닌 그 작은 인간은 현대 과학을 이루는 우주의 유물론적 법칙과는 무관하게 작동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경감된 자유의지다. 내가 이렇게 설명하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도 움찔하면서 이 묘사의 기본적 타당성을 인정하기보다는 극단성을 반박하려고 든다. “당신은 작은 인간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워놓고는 그걸 때리고 있어요. 내가 발작이나 뇌 손상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모든 결정을 자유럽게 내린다고 믿는 것처럼 말하는데, 아뇨, 아니에요. 내가 말하는 자유의지는 그보다 훨씬 약하고, 생물학을 싸고돌며 작동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오늘은 무슨 양말을 신을까를 자유럽게 결정하는 것 같은 거예요.” 하지만 자유의지와 작동 빈도와 중요도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행동중 99.99%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고(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가장 폭넓은 의미의 ‘결정‘이다) 겨우 십 년에 한 번씩만 당신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치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할까 반대 방향으로 할까 결정하더라도, 이미 당신은 과학 법칙 밖에서 활동하는 작은 인간을 암묵적으로 소환한 셈이다.
생물학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방식을 받아들인다.[대안적 견해가 현재의 사회를 뒤엎다시피 하는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에 엉거주춤 양보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는 뜻이다.] 그들이 보기에, 거의 모든 논의는 예의 작은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가를 알아내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 토론 중 일부를 맛보기로 살펴보자.
나이, 집단의 성숙도, 개인의 성숙도
2005년 ’로퍼 대 시먼스’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18세 미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 논리는 이 책 6장과 7장의 내용대로였다. 뇌가, 특히 이마엽 겉질이 아직 성인 수준의 감정 조절과 충동 통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이라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청소년의 뇌를 가진 청소년에게는 성인 수준의 책임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돼지는 처형 가능하나 새끼 돼지는 안 된다는 논리와 판박이였다.
이후 관련된 판결들이 더 나왔다. 2010년 ’그레이엄 대 플로리다’ 사건과 2012년 ‘밀러 대 앨라배마’ 사건에서, 대법원은 청소년 범죄자는 (발달중인 뇌 덕분에) 개선 가능성이 크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 결정들은 여러 논쟁을 촉발했다.
·청소년이 평균적으로 성인보다 신경생물학적으로 또한 행동학적으로 덜 성숙했다고 해서, 특정 청소년 개인이 충분히 성숙하여 성인 수준의 책임 능력을 감당할 자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짚을 점은, 누군가의 18세 생일 아침에 갑자기 신경생물학적 마법이 벌어져서 그가 성인 수준의 통제력을 갖추게 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한 반응은 보통 이렇다. 맞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법은 종종 임의의 연령을 경계로 집단 차원의 속성을 부여해야만 하는 법이다(투표, 음주, 운전 가능 연령이 그런 예다). 왜 그렇게 하느냐면, 어떤 십대가 가령 투표할 만큼 성숙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매년, 매달, 매시간 시험을 쳐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대살인자에 대해서는 그럴 가치가 있다.
·또다른 반대 의견은, 17세가 성인만큼 성숙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충분히 성숙했는가가 쟁점이라고 본다. 로퍼 판결에서 반대 의견을 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이렇게 적었다. “청소년이 일반적으로 성인보다 비행에 대한 책임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어느 17세 살인자가 반드시 사형을 감당할 만한 책임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또다른 반대자였던 고 앤터닌 스캘리아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책임감 있게 술 마시고, 지적으로 투표할 만큼 성숙해야만 다른 인간을 살해하는 행동이 심각한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런 반론이 있기는 해도, 자유의지에 연령 제한이 있다는 것만큼은 오코너와 스캘리아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동의한다. 누구에게든 작은 인간이 너무 어려서 어른 수준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절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작은 인간이 키가 덜 자라서 제어반에 손이 닿지 않는지도 모르고, 이마에 난 여드름을 신경쓰느라 잠시 업무에서 눈을 돌리는지도 모른다. 법적 판단은 이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끼 돼지와 어른 돼지의 경우처럼, 단지 작은 인간이 언제 충분히 나이들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뇌 손상의 속성과 정도
경감된 자유의지 모형을 논하는 사람들 중 거의 모두는, 만약 뇌 손상이 충분히 심한 경우라면 범죄 행위에 대한 책임 능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법정에서 신경과학이 쓰이는 것을 완고하게 비판해온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스티븐 모스마저도(그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다) 이렇게 인정했다. “이런 사건들에서, 고차원적 숙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만약 그런 사람들에게 심각한 비이성적 삽화를 통제하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법적 책임 능력 귀속과 관련될지도 모르는 사실을 배운 셈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만약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해 사고 능력이 심하게 훼손되었을 때는 그 요인이 법적 경감 사유가 된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의 이마엽 겉질이 죄다 망가졌다면, 우리는 그에게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워선 안 될 것이다. 그는 자기 행동 과정을 결정하는 능력이 심하게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제는 연속선상의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마엽 겉질의 99%가 망가진 경우는? 98%는? 이것은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사형수 중 많은 비율이 이마엽 겉질을 다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피해가 큰 유형, 즉 유년기의 손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경감된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뇌 손상은 작은 인간을 압도해버리지만 약간의 손상이라면 작은 인간이 어떻게든 대처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뇌 차원의 책임과 사회적 차원의 책임
신경과학의 선구자이자 원로인 저명 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이 문제에서 몹시 특이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자유의지란 망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자기 행동에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하며, 『뇌로부터의 자유』라는 도전적 저서에서 이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뇌가 전적으로 유물론적인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 책임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책임은 그와는 다른 조직화 차원에서 존재한다. 결정론적 뇌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이다.” 내 생각에 그는 사실 ‘자유의지란 망상이지만, 실용적인 이유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자기 행동의 책임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사회적 차원에만 존재하는 모종의 작은 인간을 가정하고 있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이미 이 책에서 사회적 세계도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육체적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결정론적이고 유물론적인 뇌가 만들어낸 산물임을 살펴보았다.[*나는 가자니가의 견해가 정말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그의 결론이 신경과학자로서의 세계관과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조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닐��� 짐작해볼 뿐이다. 그는 자서전, 『뇌, 인간의 지도』에서 이 주제를 이야기한 적 있다.]
(708~716쪽)
타고난 재능이 발휘되는 것을 보는 건 멋진 일이다. 뛰어난 만능 운동선수는 장대높이뛰기를 생전 처음 보는데도 딱 한 번 지켜보고 딱 한 번 시도하여 프로처럼 날아오른다. 뛰어난 음색을 타고난 가수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감정을 환기시킨다. 내가 진짜 난해한 뭔가를 설명하려고 입을 뗀 지 2초 만에 다 알아들은 게 분명한 학생도 있다.
그런 재능은 인상적이다. 한편 영감을 주는 사례란 것도 있다. 나는 어릴 때 윌마 루돌프에 관한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는 1960년에 세계에서 제일 빠른 여성 육상선수였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는 선구적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두말할 것 없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테네시의 가난한 가정에서 22명의 아이 중 하나로, 미숙아로,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그러다 4세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발목이 비틀어져서 보조기를 차야 했다. 소아마비라니. 소아마비로 장애를 입었다니. 그러나 그는 모든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아픔을 견디며 노력하고 노력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성이 되었다. 이것이 영감이다.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타고난 재능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쉽사리 알아낸다. 누군가는 근육 섬유의 느린 수축과 빠른 수축 비율이 최적인 덕분에 타고난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된다. 누군가는 성대가 복숭아 솜털처럼 보드랍게 떨리는 덕분에(즉흥적으로 지어내봤다) 탁월한 목소리를 갖게 된다. 또 누군가는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전사인자, 기타 등등이 이상적인 조합을 이룬 덕분에 추상적 개념을 금세 이해하는 뇌를 갖게 된다. 우리는 또한 이 모든 영역에서 그럭저럭하거나 형편없는 사람은 어떤 요소로 이뤄졌기에 그런지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루돌프식 성취는 달라 보인다. 당신은 지치고, 의기소침하고, 죽도록 아프지만 밀고 나간다. 하룻밤쯤 쉬고 싶고, 친구와 영화라도 보고 싶지만, 다잡고 계속 공부한다. 아무도 안 보잖아, 다들 그렇게 하잖아, 하는 유혹이 들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의지력의 발휘에 대해서는 예의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전사인자를 떠올리기가 힘든 듯하다. 거의 불가능한 듯하다. 그보다 훨씬 더 쉬운 해답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칼뱅주의적 노동윤리와 그 일에 적합한 요정의 가루를 갖춘 작은 인간이라는 해답이.
이 이원론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제리 샌더스키를 떠올려보자. 펜실베이니아국립대학교의 풋볼 코치였던 그는 끔찍한 연속 아동 추행범으로 밝혀졌다. 그가 유죄 선고를 받은 뒤, CNN에 사설 기사가 실렸다. “소아성애자도 공감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토론토대학교의 제임스 캔터가 소아성애증의 신경생물학을 살펴보았다. 일례로, 소아성애증은 유전자가 관여하는 듯한 형태로 집안 내력이 있다. 소아성애자는 유년기에 뇌손상을 경험한 비율이 특별히 높다. 태아기 내분비 이상에 연관된다는 증거도 있다. 그렇다면 신경생물학적 틀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나도록 운명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일까? 정확히 그렇다. 캔터는 “소아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선택은 불가능하다”라고 결론짓는다.
용감하고 옳은 결론이다. 그런데 뒤이어 캔터는 놀랍게도 경감된 자유의지적 멀리뛰기를 시도한다. 이런 생물학적 요소는 샌더스키가 받아야 할 비난과 처벌을 덜어주는가? 아니다. “소아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선택은 불가능하지만, 아동을 추행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가능하다.”
이것은 인간의 특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이원론을 따르는 시각인 셈이다.
(721~722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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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mental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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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가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데이팅 앱의 프로필로 해놔서 흥미로웠다. 매칭이 된 우리는 저녁에 비가 막 그친터라 아직 축축한 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A는 올블랙에 구두를 신고 있었고 젖은 바지 밑단이 신경쓰였는지 그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는 만나자마자 한국 영화 이야기를 꺼냈는데 단연코 박찬욱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의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고 했다. 박찬욱 감독은 내 페이보릿이기도 한지라 좋은 이야깃감이었다. 애니와 만화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언더그라운드 작품들을 A가 보고 읽었음을 확인했고 그것들을 본 사람은 살면서 만나기 힘든지라 꾀 신이 났다. 음악과 문학으로 대화가 넘어가면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화두가 되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그 그을음 가득한 감성을 이 사람도 빠져있었고 아직까지 그렇구나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 토박인데 이런 감성이 공유되는구나 신기했다.
A는 올해부터 다시 세상에 나와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까지 대략 2년간 히키코모리로 지냈다고. 그는 살고싶은 욕구가 없었고 고등학교도 그래서 드롭했고 가족들이랑 같이사는 집에서 가족들이 잠에드는 밤에만 방에서 나와 배를 채웠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부탁으로 테라피는 계속 받았고 그로인해 많이 호전됬다고 했다. 나는 덩치큰 고등학생과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내 중고등학생시절이 많이 떠올라서일것이다. 순간 그가 우는 얼굴을 상상했다. 젖은 속눈썹과 그 커다란 안경렌즈에 눈물방울이 떨어져있는걸. 그리고 뽀글거리는 머리에 손을 올리고 토닥거리고 싶었다. 우리는 다음에 만나 핑-퐁이라는 애니메이션영화를 같이 보기로했다.
라이프찌히에서 만난 S는 자기가 공식적으로 장애판정을 받았다고 기관에서 발급한 카드를 보여주었다. S는 어렸을때부터 가족내에서 지속적인 폭력과 인종차별을 겪었고 PTSD가 심해 우울증, 잦은 패닉어택과 자살충동을 앓고 있었다. 나는 S에게 호기심이 있었는데 관심을 표하다가도 조심스러워 내뺐다. 내 마음이 뭔지 잘 알기 때문에 검열에 들어간건데. 왜냐하면 나는 없으면 안될만큼 의지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걸 경계해야해. 나는 내가 옆에 없다고 불안해하는 파트너, 제발 같이 있어줄 수 없냐고 begging하는 파트너, 빈자리가 너무크다고 눈물 흘리는 파트너를 욕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너가 있어 힘이되. 정말 든든해"를 넘어선 종속에 대한 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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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soleil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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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ls(1/7)- Gehenna
악마(1/7)- 게헨나
Idiosyncrasy & Zodiac
성벽 &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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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ri
시트리
Cardiophilia(카디오필리아): 심장 성애. 심장소리를 듣거나 심장을 보거나 두근거리는 진동을 느끼는 데서 흥분하는 증후군. 실제로 심장을 봐야하는 에로토포노파일 섭타입이나 피를 마시는 해마토파일 섭타입이 있나 하면 움직이는 심장 영상만으로 만족하는 픽토필릭 섭타입도 있다. 흥미롭게도, 심장소리에 청각적으로 흥분하는 섭타입이 압도적으로 많다. Glenn Wilson이 지적했듯, 이들이 ‘성적 흥분’보다는 ‘성적 나른함’을 느끼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 Prenatal period에 자궁 속에서 듣게 되는 어머니의 심장소리 주파수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청진기로 스스로의 심장소리를 듣거나 파트너의 심장소리를 듣는 게 이들에게 있어선 대단히 자극적인 경험. 카디오필리아가 Partialism에 해당하는지 Object fetishism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Pisces ♓
물고기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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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raye
레라예
Keraunophilia(크라우노필리아): 천둥 성애. 천둥소리와 번개에 흥분하는 증후군으로써 시각적 요소에 쾌감을 느끼거나 청각적 요소에 쾌감을 느끼거나 둘 다에 해당하는 타입으로 나뉜다. 천둥소리가 가슴을 울리는 느낌에 흥분하는 타입도 있다. 이 경우 크라우노필리아의 트리거 기전은 진동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카디오필리아와 비슷한 것일 수 있다.
Libra ♎
천칭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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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mon
파이몬
Haematophilia(해마토필리아): 혈액기호증. 피가 흐르는 것을 보거나, 상처를 내서 피를 흐르게 하거나 마시는 등의 행위에서 성적 쾌락을 느끼는 증후군.
Sagittarius ♐
궁수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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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aroth
아스타로트
Narratophilia(나레이토필리아): 외설적이고 음란한 내용의 말에서 성적 쾌락을 얻는 증후군. 음란한 전화통화에 대한 기호증인 텔레포니코필리아(Telephonicophilia)나 음담패설 성애인 모리아필리아(Moriaphilia) 등등이 나레이토필리아의 섭타입으로 볼 수 있다. 모르는 상대방과 음란한 전화통화를 나눌 때만 성적으로 흥분하는 증후군을 Telephone Scatophilia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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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gan
자간
Kinesophilia(키네소필리아): 운동 성애. 운동할 때 흘리는 땀이나 상승하는 심박, 헐떡이는 호흡은 여러모로 성관계 도중의 신체 상태와 비슷하다. 키네소파일은 이런 요소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며 특히 운동 할 때 분비되는 엔도르핀에 도취돼 운동 중독이 되는 케이스가 대표적. 엄밀히 따지면 마스터베이션이나 섹스도 운동의 일종이므로, 키네소필리아는 개념 상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성행위와 무관한 운동을 통한 성적 쾌감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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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al
벨리알
Discophilia(디스코필리아): 음성 성애. 성적 음성(ex.녹음된 신음소리)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섭타입이 대부분이지만 다음과 같은 특이한 섭타입도 있다.
  a) Melolagnia(멜로라그니아): 특정 음악에 성적으로 흥분하는 타입.
  b) Acousticophilia(어쿠스티코필리아): 음향 기호증. 음악은 물론이고 대화 소리, 천둥소리, 노이즈, 종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등등 특정한 청각적 자극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후군. 이어가즘과 연관 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c) Homilophilia(호밀로필리아): 설교 기호증.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연설/강연을 듣는 데에서 성적인 쾌락을 얻는 증후군.
  d) Ecouteurism: 성관계 소리를 듣는 것으로 쾌락을 느끼는 증후군.
Cancer ♋
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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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o P. Cruel Orgasm 666 (Ppyong)
주노 P. 크루엘 오르가즘 666 (뿅)
아페필리아(Aphephilia): 접촉당하는 것에 대한 성애. 자신의 음경이나 손을 상대방의 신체에 문지르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접촉도착증인 Frotteurism(프로터리즘)의 한 종류. 
External links
참조
Twitter @Prettybusy_KR
Naver blog 이상성애 총정리 (스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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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yongchul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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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는대로 주시는 주님의 은혜
전할 말씀을 구하면 말씀을 주시고
대표기도문을 구하면 대표기도문을 주시고 그것을 연습할 시간도 주신다
교회 다녀올때 늦은 시간 들어오며 차댈 자리를 구하면 그또한 들어주시고
무엇이건 주님앞에 나아기 위해 구하면 구하는것을 다 주신다
오늘 아침에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성경을 읽으려는데 갑자기 동시에 나가는 전등 두개 ..
어..? 전등 둘이 동시에 ..?
그래서 갈려고 일어나는데 어머니로부터 오는 전화 ..
어머니의 요구사항과 잔소리를 겸한 가스라이팅을 듣다보니 어느덧 성경읽을 시간이 다 지나고 ...
이후에 헤야할 일정이 바로 뒤따라 오지만 과감히 그걸 포기하고 성경읽기에 몰빵 ..
주님의 일인가 나의 일인가 둘중 어느것을 택해야 할 순간이 오면 나를 버리고 주님을 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어려운건 그 선택을 몸으로 삶으로 실행해 옮기는 것이 어렵다는것
사소해 보이는 것들 이지만
주님을 향한 작은것들 일지라도 삶가운데 적용하고 실행 하는것이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속의 크리스찬이다
주일만 크리스찬이 되지말고 일상생활속에 크리스찬이 되야 한다 ..
주님이 반드시 주일날만 오신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
왠지 심쿵하심..?
늘 깨어있어 주일 크리스찬이 아닌 삶속에 크리스찬이 되시길 바랍니닷 ^ ^
#광명전통시장 #광명시장 #전통시장 #추천맛집 #광명왕족발 #광명할머니왕족발 은 #광명소셜상점 #광명8경 #광명동굴 #광명시 #LocalGuides 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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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iv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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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책을 오랜만에 봤다. 몇 년 전 읽었을 때에는 읽고 싶은 부분만 봤는데 이번엔 찬찬히... 끝까지 봤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는데, 이런 책은 보통 목적이 있어서 읽는다. 사랑의 기술이 필요할 때.
사랑의 기술에서는 상대에 대한 얘기가 별로 기억에 남지 않고 그 사랑을 대하는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을 형성시킨 부모에 대해서 쓴 부분이 인상 깊었다. 스스로에 대한 신앙이 필요하고 자신의 삶에서 생산적이어야 하고 탐욕스러운 사회의 정신에 동조하지 않아야 하고 홀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하고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되고 갈들응ㄹ 피하지 말아야 하고 환상적 기대에 따라 살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양쪽으로부터 배워야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존재로서 성숙해질 수 있다.
엄마로부터의 연락이 부담스러운 요즘 홀로서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것인가라는 자괴감이 드는 시기였는데, 짧지만 오랜만의 독서로 홀로 집중하며 배움의 의욕이 생기는 시간을 즐겼다
20240411-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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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sseh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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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vocab list :
사업의 성공 요소 // business success
밑거름 [믿꺼름] 어떤 일을 이루는 데 기초가 되는 것. foundation 한석봉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밑거름은 어머니의 희생이다.
설립(設立)하다 [설리파다] 기관이나 조직 등을 만들다. to establish 빌 게이츠는 1975년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했다.
기여(寄與) 도움이 되도록 함. contribution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 평화에 큰 기여를 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확보(確保) [확뽀] 확실히 가지고 있음. securement 광고와 마케팅에서는 정보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굴지(屈指) [굴찌] 손꼽을 정도로 매우 뛰어남. outstandingness 그는 자동차 회사를 세워 20년 만에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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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mzi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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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요일에 태어났다.
1998년 7월10일 금요일. 오후 1시 55분. 그 해는 윤달이었고 어머니는 안개비가 내리는 흐린 오후에 나를 낳았다고했다.
태몽으로 어머니의 꿈 속에 커다랗고 새까만 나무 한 그루가 나왔다고 했다. 어른들은 내가 남자일거라고 했다. 그러나 유독 새까만 머리칼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 별다른 삶의 힌트같은 것은 없었다.
매년 생일엔 비가내렸다. 그래서인지 장마의 풍경이 유독 나와 가깝게 느껴진다. 그 언젠가부터 나는 생일이 오면 이유도 없이 종종 울고싶었다. 소리를 죽여 내리는 안개비처럼 울고싶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어머니가 떠난 후였다.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가버렸다니. 조금은 서운했다.
오늘 따라 유난히도 기승을 부리는 외로움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었다. 왜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선명하게 다가오는건지. 이유를 알면서도 모르는척 외면하고싶었다.
P의 티셔츠가 걸린 방문, N이 좋아하던 책. 권선생님의 자필 따위가 자꾸 눈에 밟혔다. 열어둔 창문으론 온통 성가신 매미의 울음 소리 뿐이었고, 집안은 적막했다. 나를 기다린 개 만이 내 심정을 이해하는지 나보다 더 축 쳐진 모습을 하고서 내 옆을 지켜주었다. 이 집에는 외로운 개와 외로운 내가 있다.
*티비를 켜면 좀 나을까 싶어 티비를 켜고 무작위로 채널을 돌리다가, 아버지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나왔다. 아버지는 내게 말했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있을 때면 티비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고. 아무도 모르는 저 지구 반대편으로 가고싶다고.
나는 이미 늦은 것 같으니까, 지현이 너는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고. 그런 말을 내게 해놓고.. 정작 그 말을 한 그가 먼저 떠났다. 지구 반대편 보다 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그가 갔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있자니, 그가 정말 멀리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서울 내집에 그대로 있는데 자꾸만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들과 함께한 기억은 이제 외로움 뿐이다.
언제부터 이런 생일을 보냈는지를 떠올리다가, 기억의 끝은 결국 나를 떠나간 누군가로부터 멈춰버렸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그들은 웃어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 사실 만으로도 그들이 있었을 땐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으니까.
*오늘은 빗줄기가 너무 거칠다. 어제부터 모든게 비대칭이다. 이런 날은 정말이지, 누군가 선택해서 내가 태어났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하자. 사랑을 할게. 사랑을 줄거고, 생일축하해. 그런 말도 시원하게 철철 쏟아주면 좋겠다. 내가 더이상 외로움 속에서 나이를 먹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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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2su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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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능을 마친 여동생을 끝으로
결국 어머니의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더이상 희생당하던 어머니의
정신과 몸은 무너져왔고 한계점에 도달했다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하고 바깥일만 한 아버지의 탓에
여동생은 물론 나도 그의 존재를 부정했고
반대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며 사랑마저 아끼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를 향한 존재부정의 감정이 혐오로 바뀌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게 싫었고
미안한 척 하는 듯한 몇마디들과 표정들이 정말로
미웠다
더이상 어머니는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나 보다.. 그야 동생마저 졸업을 앞두었으니.
항상 내게 학교에 다시 돌아가 청춘을 즐기고 꿈을 찾아보라던 어머니가 오늘 끝내 참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자신이 하던일을 이어서 할 생각이 없냐고….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해야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남아나는게 없을 것이다
이젠 내가 희생해야 할 차례이고
누군가는 해야한다
그래야 지금만큼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지난 세월간 부족함없이 살아온것은 넓은 캔버스를 무리해서 가지고 온 아버지와 그 위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 어머니 덕분이다
회사를 모르는척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 청춘을 버리긴 아깝다라는 생각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뭐가 최선일까 죽고싶었던 작년의 감정이
다시 피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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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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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새벽에 걸었다. 매번 똑같이, 포키와 같이.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엔 걸으면서 노래를 꼭 듣는다. 그래야 머릿속에 말들이 줄어든다. 정확하게는 머릿속 생각들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 줄어든다. 요즘 정우라고 하는 포크 가수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재미있고 특이한 가사와 단순한 구성이 고요한 새벽을 걸으면서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오늘 건너편 업장에, 몇 달 전에 퇴사한 ㄴㅇ씨가 오랜만에 왔다. 반가웠다. 물어보니 아르바이트하러 왔다고 한다. ㄴㅇ씨는 항상 해맑게 웃고 있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다. ㄴㅇ씨가 퇴사하기 몇 달 전에 부친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일면식만 있는 사이라서 빈소는 찾아가기는커녕 묻지도 못했다. 당시 한 해 전에 나 역시 부친상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일터에서 대부분 혼자 일해 내 사정을 아는 아주 적은 사람만의 위로만 받았다. 그곳에선 별다른 인간관계도 없어 연락처 또한 없다. 난 나의 아버지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경멸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위로받을 것도 ���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ㄴㅇ씨는 참 밝고 잘 웃는 사람이라 아버지를 눈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 후에 다시 출근한 ㄴㅇ씨에게 흰 봉투에 작은 마음을 전했다. 항상 활짝 웃던 얼굴에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난 그 일그러짐이 참 예뻐 보였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각자 통화를 한 번씩 했다. 어머니는 과거의 병력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서는 모든 수치가 너무 좋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는 나를 또 걱정한다.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어놓으셨다. 그래야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오늘도 나의 재정상태를 걱정하신다.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예전 우리 삼촌은 참 재미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온갖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지식을 뽐내면서 나의 동경을 받았다. 우리 삼촌은 글쟁이였다. 나 역시 꿈이 글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 커서 보니 우리 삼촌의 지식은 엉터리인 게 많았다.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책 읽기에 진심이 되면서 내가 동경하던 삼촌의 지식들이 가볍고 오류투성이인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삼촌은 노화 탓에 예전 지식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난 삼촌의 무지에 화가 나서 심술을 부렸다. 하지만 그 심술에 삼촌은 슬쩍 기분이 나빠하면서도 그저 건방지다는 말 한마디 하고는 느린 말투로 허허 웃는다. 나를 놀리는 말은 잘하지만 심한 말은 하지 않는다. 삼촌에게 가장 크게 배울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런 태도였나 보다. 
난 다시 어머니의 말을 되뇐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포키와 매 번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걸으면서, 정우의 노래를 뚫고 육성으로 어머니의 말에 대답한다. 무엇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까? 엄마, 왜, 무엇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진짜 고독이 내게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되바라지게 '사람은 모두 고독한 거야.' 라고 너스레를 떨며 생각했던 것들이 실물로, 아주 검고 큰 모습으로 오고 있는 걸 느낀다.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아니, 한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슬픈 것일까. 알지 못하겠다. 어쨌든 난 포키와 같은 방향의 같은 길을 걷다가 소리내며 울었다. 
난 매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노화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수화음이 느려지고 목소리에 힘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다. 옆에 걷고 있는 포키도 벌써 10살이다. 연인 사이였던 ㄱㅎ가 6개월 밖에 안 되는 똥강아지를 맡아달라며 부탁한 게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어머니가 말한 어떤 미래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직감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준비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삼촌 역시 나의 아버지처럼 쇠약해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 상실을 마음깊이 보듬어 줄 사람도 없다. 나에겐 그저 고독만이 남아있다. 즐길 수 있는 고독이 아닌 그저 견뎌야 하는 고독이다. 그에 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정우의 종말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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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yun84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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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스로에 대해 크게 성찰하게 해주었던 어머니의 한 마디:
"너 원래 공부 안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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