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杏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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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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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이렇게 나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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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21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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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편지
저는 참 편지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편지를 많이 썼던 적도 있었어요. 군대에 있을 땐 선임, 동기, 후임의 이름으로 대신 편지를 써주거나, 부탁을 받아 내 이름으로, 제 3자로서 그들의 연인이나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 반응이 좋았기에 나는 나름 편지를 잘 쓰는 편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편지는 두 번째이지요. 첫 번째는 기억할 겁니다. 오목눈이가 그려진 엽서와 해돋이가 그려진 엽서. 그 엽서를 줄 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긴장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긴장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하지만 고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그 이후로 계속 고민만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힘이 드네요. 편지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여러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매 번 편지의 내용은 달랐어요. 당신의 태도와 그에 따른 나의 기분도 매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편지의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언제는 밝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어떤 때는 침울했지요. 
저는 당신이 특별하다고, 그동안 생각했습니다. 천진난만하면서 배려심 있고 귀여운 수줍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표정에서 확인할 때마다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표정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는 모든 눈이 그렇듯, 판단이라 하는 것은 자신 내면을 근거로 하기 마련이라 나의 감정이 소모되기 시작하면서 인식도 생각도 변하더군요. 아마 당신의 천진난만함과 배려심, 수줍음이 저에게 해당되지 않음을 깨닫고 조급해졌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애정한다는 것은 때로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네요. 누구와는 쉬웠던 것도 같은데 어떤 사람과는 너무 어려워요. 
별난 짓거리도 많이 했지요. 당신을 애정하는 내 마음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당신이 나를 보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더군요. 
그동안 당신이라는 이름의 마음 속 돌을 이리저리 들고 다녔습니다. 아, 이제는 너무 무겁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멋대로 불타올랐다가 멋대로 꺼져버렸다���는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충분히 마음을 전달했고, 너의 서늘한 대우도 받았습니다. 동의하실 거예요. 이제 귀찮게 안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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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2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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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당신을 애정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더 이상 애정하지 않겠어' 하는 말을 믿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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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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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5.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기분이 알딸딸한 것이 무언가 올라오는 것 같다.
올라오는 무언가. 그것은 무엇일까.
속이 더부룩한 것은 아니야. 뭐 더부룩하다면 더부룩한 것이겠지.
아마도 마음이 더부룩한 것일 게야.
괜찮은 듯 괜찮지 않은 사람. 내가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대답했지.
그런데 아무리 봐도 괜찮은 것 같지 않은 거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지. 아무래도.
마음의 전가를 바라지 않은 너는 그 간격만큼이나 나를 밀어내는 것 같고.
위로하기 위해 애써 했던 나의 말들은 가식적으로 느껴져 거북해지고
내가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될 때,
나의 하찮은 존재감을 실감할 때,
나는 너로부터 멀어지고.
말하지 않은 너도 멀어지고 그런 너를 보는 나도 멀어지고.
우리는 그렇게 우주 공간에서 서로 다른 힘의 작용으로 관성을 이기지 못해 서로 멀어지기만 하고.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 어떤 물리적 힘이 아니므로.
내 마음으로 내 몸을 아무리 몸부림친들 멀어지는 너를 향해 다가갈 수 없고.
너를 향해 내 등을,
너의 등을 나를 향해,
누군가 무언가 밀어줬으면.
그런 기적이 내게 벌어졌으면.
그런 내 마음이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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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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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이름의 내 마음 속 돌을 이리저리 들고 다녔다가 아, 이제는 너무 무겁구나 해서 내려놓았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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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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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편지를 쓰려했다. 다가올 누군가에게 어서 오라고 재촉할 편지를 쓰려고 했다. 무더위 뙤약볕에 익은 목덜미와 젖은 등줄기를 에어컨 바람에 식히며 얼음을 가득 채운 컵에 물을 따라놓고는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지 생각했다.
처음 본 그때에 대해? 나를 매료한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대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 나라고 하는 사람의 과거에 대해?
과거. 잔 속 얼음이 달그락거렸다. 과거라는 단어와 함께 얼음이 녹는 소리는 기억과 관념으로 출발하는 신호음으로 울렸다. 그 범주 안에 연상되는 수많은 순간과 대상이 있다. 과거의 그녀. 그녀는 과거라는 낱말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을 말이다. 나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성격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결정하는 많은 사건들. 그 사건 사이사이에 그녀가 곁에 있었다.
지금은 그저 기억 속에만. 그녀가 현재 어떤 모습이고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지인을 통해 그녀는 여전히 혼자이고, 작년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을 뿐이다. 그것도 참 슬픈 이야기를 말이다. 나에게 그녀가 중요한 존재였듯이 그녀에게도 나는 중요한 존재였겠지. 그녀의 불행 속 심정에 나와의 과거가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보다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녀가 날 떠나지 않았을테고, 그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건 내 오만일지도 몰라.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현재에 대해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자. 그렇지만. 과거에는 모든 일에 감정을 서로 기대었던 만큼 지금은 영영 떨어져 그렇지 못한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왼쪽 가슴에 스며들면서 허탈함인지 죄책감인지 모르는 통증으로 왔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어떤 편지를 쓰기로 했다. 연쇄된 상념으로 변덕스럽게 편지의 수취인을 바꿔버렸다. 물론 보낼 수 있는 편지인지는 모르겠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런 점에서 이건 편지가 아닌 것 같아. 그녀를 향한 어떤 기도나 주문이겠다. 내 가슴의 통증을 진정시켜줄 혈전제에 불과하겠다.
과거의 기억을 회기하여 그녀가 시련을 이겨내기를 바라고 행복해지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혹시라도, 만약, 어쩌다가, 그녀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나의 하소연과 사정은 걷어내고 과거 그녀가 얼마나 귀한 사람이었는지, 나는 그녀의 앞날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그러고 나서 아름답게 과거를 접은 다음에 다시 오고 있는 다른 이에게 다음을 펼치는 어떤 편지를 쓰고자 한다. 제대로 된 안녕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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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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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포키 발에 난 종양을 제거했다.
긴 연휴를 계기로.
영 불편해하긴 하지만 수술은 잘되었다고 한다.
종양이 워낙 커 발가락 하나를 절단해야 했다.
일상생활엔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했다.
붕대 안은 아직 한번도 못봤지만.
당분간 밤산책은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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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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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13.
포키와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 비가 거세게 내렸다. 예고가 있었음에도 쏟아지는 빗줄기가 어색하고 요상한 밤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에도 그 어색한 여운이 차갑고 세찬 바람으로 느껴졌다.
하루 산책을 건너뛰었다고 안달난 포키가 나에게 걸음을 보챘다. 공원 중턱에 조성된 소나무숲 길이 있는데 포키는 그 울퉁불퉁한 흙길이 재미진가보다. 그 길 초입부터 잔뜩 흥분�� 머금고 나를 끌어당겼다. 뒤뚱뒤뚱 움직이는 엉덩이가 참 경쾌해 보인다. 응달이 가득한 소나무 숲길을 지나 동그란 잔디밭 공터로 나가니 여운처럼 남은 어색한 바람이 나를 밀어냈다. 내가 있는 곳 반대쪽 사면에는 자줏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 살구나무에는 꽃잎도 한참 떨어져 흔적도 없다. 푸릇한 봉오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다시 한번 찬바람. 포키는 낮은 잔디 위에서 코를 박고 나 같은 인간 따위는 알 수 없는 봄의 채취를 만끽한다.
어느 순간 구름 그림자를 쪼개고 밝은 빛이 포키에게 떨어졌다. 구름에 감춘 볕이 드러난 것이다. 햇빛에 바삭해진 포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몸을 낮추고 쓰다듬었다. 이제 나이가 든 포키는 몸 여기저기에 좁쌀만한 혹과 발에 제법 큰 종양을 달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활달하다.' 하고 속으로 뇌이고 내리쬐는 볕을 가늘게 뜬 눈으로 마주했다. 반쯤 감긴 눈꺼풀 위에 뜨끈한 볕이 붉게 물들었다. 그새 어색한 냉기는 사라지고 봄의 익숙한 기운이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 그늘진 나의 등줄기에도 온기가 도달하였다. 저 멀리 떨어진 태양을 상상하니 그는 정말 강렬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너무 뜨거운 마음은 먼 거리에서나 감당할 수 있는 법이야.
봄이 지나가고 있다. 대나무밭 옆 둘레길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서 봄의 소리가 들린다. 복작거리는듯 보이지만 한가롭게 지나가는 사람들. 힘차게 지면을 차며 몸에 활기를 넣는 사람들. 진달래와 푸릇한 젖니 같은 잎사귀를 내민 나무를 배경으로 봄의 장면을 연출하는 사람들. 그 장면이 내 시선에 놓이니 나는 포키 몸에 돋아난 혹과 발가락의 커다란 종양,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삼촌의 노쇠한 목소리, 철든 동생과 생기를 잃어버린 K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엔 꽃잎이 아니라 낙엽이 지고있다. 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들과 다르게 수북하게 쌓인 기억의 낙엽 위에서 입을 꾹 다문 나의 모습. 많은 것이 저물고 있다.
봄이 지나가는 가운�� 나에겐 가을이 왔다. 최승자 시인이 말한 개 같은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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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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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그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그가 나를 보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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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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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6.
점심 식사 약속이 있었다. 호텔에서 얼마 전에 퇴사한 친구다. 그 친구와 그 친구가 근무했던 호텔 카페에 갔다. 그의 전 동료들이 그를 반겼다. 나도 반겨주었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차갑고 냉랭한 표정과 목소리. 참았던 외로움이 싹을 내밀었다.
커피를 마셨고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집으로 왔다. 무료한 지하철 풍경과 역 밖으로 나왔을 때 공사 중이던 도로의 모습. 바람이 세게 불었다. 집에 돌아가 포키 산책을 시켜야지. 포키는 날 반겨주었다.
포키와 산책 도중, 손을 잡고 걷는 중년부부를 보았다. 손을 꼭 잡아 떨어질 틈이 안 보였다. 반대편 손을 서로 흔드는 것도 박자가 딱딱 맞았다. 참 좋아 보였다. 나에겐 저런 순간이 올 것 같지 않아 부러웠다. 오후에 싹 튼 외로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어스름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 세게 불었다. 귀가 시려 목에 걸친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틀었다. 바람 소리가 세게 들어온다. 딱히 노래를 듣기 위한 것 아닌지라 바람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전에 만난 친구는 노캔 기능에 대해서 격렬한 애정을 보였다. 세상과의 격리라나. 세상이 고통스럽다면 격리는 나쁜 조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게 되었다. 외로움은 허리만큼 자라 빽빽하게 나를 둘렀다. 절대 원하지 않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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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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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쓴 노트를 뒤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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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만 되면 난 그 나무에 집착한다. 벚꽃나무보다 붉고 곧은 나무, 살구나무.
춤추듯 굽은 나뭇가지를 펼친 벚나무, 매화나무와는 다르게 혼자 곧게 서 있는 그 살구나무.
화사하게 웃는 듯한 벚나무와는 다르게, 무덤덤한 얼굴을 가진 살구나무.
지그시 눈을 떴다가 감은 듯 짧은 봄보다 서둘러 자신들의 꽃을 떨어뜨린다.
고독 속에 열매 하나 맺지 않는 저 살구나무처럼.
어떤 과실 없이 그저 꽃만 피우다 지는 것을 반복하는 삶.
꽃은 어떤 수분도 얻지 못한 채 열매없이 외롭게 저문다.
새벽이 피어나는 순간, 은밀히 나무에게 다가가 수피 위로 손을 올린다. 수피를 더듬더듬 만지면서 나무를 한 바퀴 돌자, 살구나무는 나에게 속삭인다.
‘너도 아는구나.’
나 역시 나무에게 속삭인다.
‘내가 안다는 걸 알아줘서 고마워.’
멈춰선 나는 유난히 주름진 옹이 밑 수피를 어루만지면서 그동안 이해받지 못한 설움을 하나씩 손끝으로 새기며 살구나무에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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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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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8.
너의 향기
며칠 동안이나 내린 눈은 녹아 아스팔트로 된 길바닥에 얼룩으로만 남겨졌다. 시간이 흐르면 그 얼룩도 말라 원래 없었던 것마냥 사라지겠지. 그 길이 얼어붙었고 흠뻑 젖어있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채 발걸음을 조심할 필요 없이 무사히 걸어 다니겠구나. 마음이란 게 그런 게다. 한 때는 유난스럽고 흔적으로 남을 땐 아련했다가 사라지니 없는 것과 같은. 
그러니 이 들이부은 향기의 얼룩도 분명히 잊혀질 것이다. 기억할 ���요 없는 조각이 되어 해마나 대뇌피질 어딘가에 스며들어 숨어있겠지. 다시 같은 향수의 냄새를 맡고는 이게 뭐였지 하고 정체를 묻다가 그대로 지나치는 상념 취급받는, 그런 것이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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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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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고 있다. 세 번째인데 20년 전 고등학교 때 허영심에 읽은 것, 군대 전역 후 그보다 조금 더 분명한 허영심에 읽은 것 이후이다. 이 책을 읽고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실존과 본질 같은 개념을 나 따위가 노트에 끄적거렸던 게 생각난다. 무엇보다 이 소설 속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세 번째인 지금 읽는 이유는 그런 어려운 것 따위가 아니다. 실존은 실존이겠으나, 나 개인의 실존을 위해 이 책을 다시 펼쳤다. 그만큼 지금의 난, 매우 위태롭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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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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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경이였다가 분노로 불타올라 모멸이 되고 남은 것은 잿더미 뿐인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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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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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6.
그에게 나에 대해 설명하고자, 지난 몇 주 동안 나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린 만화가 파일철로 스무 권이 넘었다는 것부터 많이 반항적이어서 길거리에서 잦은 싸움을 했고 한때는 고고학도를 꿈꾸었던 것까지, 제일 좋아하는 문학부터 들었던 음악, 열광했던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과 경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응달에 천천히 눈 녹은 잘팍한 지면을 밟으면서 내 삶에 대해 총체적으로 반추했다. 평소보다 길게.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나에게 더 이상 그와 대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사라진, 그야말로 허무였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내 안은 허무로 가득 차버렸다. 그래서 요 며칠 동안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고작 그 때문에.
초라하다. 초라하다. 초라하다.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견디기 힘들다. 나 자신에게조차 말도 못 걸겠다. 돌이켜 본 내 삶 역시 비루해 보였다.
이제 그 길로 가지 말아야지. 원래 안 다니는 길이었잖아.
왜 이렇게 돼버렸을까. 지금의 나는 필연적인 걸까. 그저 우연일까. 무엇이든 상관없지. 단 한 번 뿐인 우연이라면 필연과 다를 바가 있을까.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껍데기 같은 이유는, 날 설명하는 내용과 날 설명했어야 하는 이유인 치명적인 것들을 익명이 보장된 이곳에서조차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껍데기가 되기 싫었지만 알고보니 처음부터 난 껍데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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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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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
불행이 깊어지는 세상이면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생이 참으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인데. 지나치게 덧없어 애가 무너질 것인데. 침묵으로 슬픔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들의 불행이 그저 그들의 것만이 아님을 마음속에 아로새긴다. 이 엉터리 같고 작의적인 시작 앞에서 빌어야 할 것은 안식이라, 겸허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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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the-apricot ·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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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새벽에 걸었다. 매번 똑같이, 포키와 같이.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요즘엔 걸으면서 노래를 꼭 듣는다. 그래야 머릿속에 말들이 줄어든다. 정확하게는 머릿속 생각들이 말로 튀어나오는 것이 줄어든다. 요즘 정우라고 하는 포크 가수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재미있고 특이한 가사와 단순한 구성이 고요한 새벽을 걸으면서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오늘 건너편 업장에, 몇 달 전에 퇴사한 ㄴㅇ씨가 오랜만에 왔다. 반가웠다. 물어보니 아르바이트하러 왔다고 한다. ㄴㅇ씨는 항상 해맑게 웃고 있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다. ㄴㅇ씨가 퇴사하기 몇 달 전에 부친상이 있었다. 나는 그때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일면식만 있는 사이라서 빈소는 찾아가기는커녕 묻지도 못했다. 당시 한 해 전에 나 역시 부친상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나는 계약직으로 일터에서 대부분 혼자 일해 내 사정을 아는 아주 적은 사람만의 위로만 받았다. 그곳에선 별다른 인간관계도 없어 연락처 또한 없다. 난 나의 아버지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경멸했던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위로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ㄴㅇ씨는 참 밝고 잘 웃는 사람이라 아버지를 눈물로 떠나보냈을 것이다. 후에 다시 출근한 ㄴㅇ씨에게 흰 봉투에 작은 마음을 전했다. 항상 활짝 웃던 얼굴에 살짝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난 그 일그러짐이 참 예뻐 보였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외삼촌과 각자 통화를 한 번씩 했다. 어머니는 과거의 병력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서는 모든 수치가 너무 좋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는 나를 또 걱정한다.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병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어놓으��다. 그래야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오늘도 나의 재정상태를 걱정하신다. 미래를 준비해야 된다고 잔소리를 하신다. 
예전 우리 삼촌은 참 재미있고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온갖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지식을 뽐내면서 나의 동경을 받았다. 우리 삼촌은 글쟁이였다. 나 역시 꿈이 글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 커서 보니 우리 삼촌의 지식은 엉터리인 게 많았다.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책 읽기에 진심이 되면서 내가 동경하던 삼촌의 지식들이 가볍고 오류투성이인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삼촌은 노화 탓에 예전 지식들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난 삼촌의 무지에 화가 나서 심술을 부렸다. 하지만 그 심술에 삼촌은 슬쩍 기분이 나빠하면서도 그저 건방지다는 말 한마디 하고는 느린 말투로 허허 웃는다. 나를 놀리는 말은 잘하지만 심한 말은 하지 않는다. 삼촌에게 가장 크게 ���울 것은 지식이 아니라 그런 태도였나 보다. 
난 다시 어머니의 말을 되뇐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포키와 매 번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걸으면서, 정우의 노래를 뚫고 육성으로 어머니의 말에 대답한다. 무엇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까? 엄마, 왜, 무엇을 위해 미래를 준비해야 해요? 
진짜 고독이 내게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되바라지게 '사람은 모두 고독한 거야.' 라고 너스레를 떨며 생각했던 것들이 실물로, 아주 검고 큰 모습으로 오고 있는 걸 느낀다.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아니, 한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슬픈 것일까. 알지 못하겠다. 어쨌든 난 포키와 같은 방향의 같은 길을 걷다가 소리내며 울었다. 
난 매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노화를 확인한다. 어머니와 삼촌의 수화음이 느려지고 목소리에 힘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다. 옆에 걷고 있는 포키도 벌써 10살이다. 연인 사이였던 ㄱㅎ가 6개월 밖에 안 되는 똥강아지를 맡아달라며 부탁한 게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어머니가 말한 어떤 미래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직감했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다르지만, 준비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삼촌 역시 나의 아버지처럼 쇠약해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 상실을 마음깊이 보듬어 줄 사람도 없다. 나에겐 그저 고독만이 남아있다. 즐길 수 있는 고독이 아닌 그저 견뎌야 하는 고독이다. 그에 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정우의 종말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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