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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EC%B6%9C%ED%87%B4%EA%B7%BC-%EC%97%AC%EA%B0%9D-%EB%8F%85%EC%84%9C-%EC%B1%85-%EC%97%AC%ED%96%89-775335/ ) <프레디의 사생아>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는 요즘도 노래를 부르나요?" 나는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그런데 그는 왜, 자꾸 노래를 부르는 걸까요, 저 집에서." 남자는 뭐 그런 성가신 일이 또 있겠느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를 좋아하니까요." (p37) <알로하> 하와이를 낙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가진 곳이 ��로 여기라고. 그건 하와이를 수식하는 습관적인 문장이지만, 여기 사는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잊는다. (p43) 실제 일어난 일과 기록될 일 사이에는 그 규모의 차이가 있어서, 서류 위에 몇줄로 남을 때는 삶이 약간의 변형을 거치게 된다. 육하원칙에 따른 몇줄의 기록은 누군가의 삶을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압축해버리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꽤 평범하게 포장해주기도 한다. 그 몇줄은 초라해지기에도, 홀가분해지기에도 적절하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는 신문은 좀더 많은 이야기를 요구한다. 지역 내의 누군가가 죽으면 나는 그 사람의 삶에 대해 타블로이드판 두 페이지를 할애해야 한다. 내 담당 페이지 사이사이에는 장례식 화환이나 운구차 광고들이 실려 있다. 병원이나 경찰서, 구급차나 경찰차, 때로는 가해자나 피해자, 목격자 사이를 오가는 일도 생긴다. 가끔은 우연히 듣는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에서 어떤 감정을 읽게 될 때도 있다. 구급차는 피곤한 듯 울기도 하고, 두려워서 울기도 하고, 당연하다는 듯 울기도 하고, 정말 슬퍼서 울기도 한다. 이제 어떤 거리는 떠올릴 때 구급차 소리로 재생되기도 한다. 이건 정말 업무의 영향인 것 같다. (p47-48) 전날 어떤 독자가 '넥스트 호놀룰루의 부고 기사는 거짓'이라고 항의 메일을 보내왔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해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얼마나 진실에 가깝게 쓸 수 있는지 회의를 느끼던 참이었다. 이 부고기사가 죽은 이와 남겨진 이, 그들 중 누구를 위한 거냐는 물음에 부딪쳤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나는 당신의 말에 끌리고 있었다. 당사자가 요약하는 부고는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이 줄곧 옆에 두던 노란색 써핑보드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예고하기엔 너무 다부진 몸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러 이유로 나는 당신이 궁금해지고 있었다. (p50) 누군가의 유언을 듣다가 중간에 말을 끊는 사람은 없다. 같은 이유로, 나도 당신의 말을 끊을 수는 없었다. 당신과의 만남은 그렇게 지속됐다. 처음에는 몇시간 취재로 끝나겠거니 했는데 어느새 우리는 매일 오후 세시에 바다에서 만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처럼, 당신의 말은 계속 다음을 기약하게 했다. 이 만남에는 당신의 죽음이 전제가 되는 셈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죽어야만 끝나는 건지도 몰랐다. 죽음은 예고가 없는 것이니, 어쩌면 늘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었고, 그게 내가 매일 당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였다. (p55) 당신이 내게 말해준 이야기들은 정작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의 이야기는 대부분 당신의 겪은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었다. 당신이 읽은 이야기들은 모두 거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신문지 위에 몇줄로 남은 인생들을 당신은 덮고 자다가, 깔고, 앉다가 읽게 되었고, 읽은 말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말은 말과 만나 더 크게 몸을 부풀렸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그 말이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 불분명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 말들은 다시 당신의 것이 되었다. (p64) 나는 먼 거리에서 그 집을 다시 보았다. 그 집은 비루한 현실들 위로 거짓말처럼 덮여버린 하나의 문짝이었다. 잘못 고정되었어도 다시 떼어낼 수 없는, 단단한 이야기였다. (p70) <월리를 찾아서> "여기 월리가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전 고민입니다. 게다가 그 월리들 사이에서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요." "조용히 티셔츠 벗어." 나는 이십오년간 한번도 이 옷을 벗어본 적이 없으므로 그럴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런 대화는 무의미했다. 나는 결국 줄무늬 티셔츠를 빼앗기고도 흠씬 두들겨맞았다. 내가 갈색 크로스백에 무엇을 넣고 다녔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가방 안에서 말 인형을 꺼내 내 입에 쳐넣었다. 말 엉덩이는 내 입에 꼭 들어맞았다. 내가 으악 소리를 내도 말의 엉덩이가 모든 말을 다 먹어버렸다. 그는 내 뒤에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본 건 구타의 시간이 끝난 후 리버씨티 측에서 CCTV를 공개해줫을 때였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나는 그를 분간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나와 너무도 똑같아서, 누가 맞고 누가 때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냥 월리였다. 마틴 핸드포드의 책에서 내가 없는 페이지는 의미가 없지만 나만 있는 페이지도 의미가 없긴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은 결국 휘발될 것이다. (p99-100) <사분의 일> 두달 전 우리 가족은 네등분되었다. 그건 그냥 케이크 자르기 같은 거였다. 둥근 케이크를 네개의 숟가락이 두서없이 퍼먹든, ��로 네등분을 해서 한조각씩 나눠 먹든, 케이크 맛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남이 아니었기에 아주 균등한 나눔은 아니었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갔다. 내 몫은 학교 앞의 다섯평 원룸이었다. (p105) 손님을 포함한 다섯명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무늬가 새겨진 식기 위에서 같은 규격의 숟가락과 젓가락을 움직였다. 같은 무늬 식기가 우리를 한가족으로 보이게 했다. 즐거웠다. 연극이었으므로 가능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남자는 몰랐을 것이다. 이 화목한 가정이 시한부라는 것을. 우리의 신발장 안에는 각자의 신발이 딱 한켤레씩만 들어가 있고, 우리의 옷장에는 단지 오늘 입은 외투만 한벌씩 걸려 있으며, 비상용 우산이나 상비약 따위는 없고, 냉장고 안에는 밑반찬이 하나도 없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집의 약도일 뿐, 번지수나 우편번호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으로 어떤 고지서도 편지도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남자는 아마도 몰랐을 것이고, 우리도 어쩌면 그 순간에는 잊고 있었을지 모른다. (p126-127) <해마, 날다> 당신이 술을 마시고 해서는 안될 전화를 하는 것은 알코올이 쎄로토닌을 죽이기 때문이다. 쎄로토닌이 죽으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지나치게 들뜨고, 우울해지거나 외로움을 느낀다. 알코올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을 건드린다. 알코올은 측두엽의 해마를 건드린다. 해마 안의 기억입력장치가 고장나면, 당신의 끊어진 필름은 후에 최면을 건다 해도 재생되지 않는다. 입력조차 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p137) 알코올로 손상된 당신의 기억만큼, 내 기억도 과로로 손상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당신은 한숨을 쉰다. 안도인지 실망인지 구분되지 않는 한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난다. 당신은 전화한 목적을 이루었지만 통화를 얼른 끝내지는 않는다. 당신은 느닷없이 오늘 먹은 안주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는 전화선을 타고, 주먹고기에서 광어 까르빠초, 땅콩과 한치, 그리고 여명808로 이어진다. 그 안주들을 먹고 자란 것처럼 당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당신은 아마 통화가 끝날 즈음 내 이름을 물어볼 것이다. 내 이름을 기억했다가 다음번에도 나를 찾을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내 이름을 말하는 중이니까. 해마8. (p139) 당신들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 시작과 종말에 관한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회사생활의 시작과 종말, 연애의 시작과 종말, 결혼생활의 시작과 종말, 그외에도 아주 사소한 시작과 종말들이 밤과 낮의 경계를 가르고 달린다. 그렇게 달려가다가 아침이 오기 전에 당신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몸이 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시작도 종말도 어떤 것도 마무리 짖지 못한 채. (p146) <요리사의 손톱> 놀라운 것은 그 가느다란 건물에 모두 팔십세대가 들어가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은 그곳에 사는 동안 한번도 이웃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지하는 모든 것을 너그럽게 삼켜 층간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정은 비로소 자신이 살았던 곳이 이 도시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의 소음에 무감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어느정도 소음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려준 곳이었다. 그런 점에서 떠날 때쯤, 정이 통과한 첫 집으로 적합했다. 그리고 그 집을 떠날 때쯤, 정은 창문이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창문은 집을 구성하는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p202) "웬 남자가 어떤 책을 아주 멋들어지게 보고 있답니다. 완전 푹 빠져서 가끔 웃기도 하고요, 그럼 어떻겠어요? 그 책이 뭔가 궁금하지 않겠어요? 이번엔 굉장히 지성적인 분위기의 여자가 책을 보면서 시선을 떼지 못해요. 왜 여자들, 지나가다가 향수 냄새 좋은 사람 보면 슬쩍 브랜드를 물어보기도 하잖아요. 너무 궁금하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이 책은 제목 물어볼 필요도 없죠. 제목이 잘 보이게끔 읽고 있으니까. 그럼 안 궁금하겠어요? 근데, 이름이 본명이에요? 정방배.... 허허, 2호선으로 배정해드려야겠네." (p206)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바퀴 돌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 "글쎄요, 두시간? 한시간?" "팔십칠분." (p216) 정은 더도 덜도 말고 보통, 그러니까 중간 정도로만 살고 싶었으나 그게 가장 어려웠다. 중간에 머물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래로 추락했다. 저 꼭대기를 보고 뛰는 사람들 중에 추락한 이들이 이미 중간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은 이제 중간이 되기 위해 유지해야 할 태도가 어떤 것인지 조금 알 듯싶었다. 일단 수족관 안에 들어왔다면 수족관이 요구하는 속도대로 돌아야 했다. 속도조절기는 정에게 없었다. 그렇게 정은 또 수족관 안에서 돌고 있었다. (p218) '민달팽이를 모아 굵은소금이 가득한 단지 안에 넣는다. 뚜껑을 닫았다가 오분 후, 다시 열면 그 안에 달팽이는 없다. 끈적끈적한 액체만 남아 있다.' 그 문장 위로 기어가는 동안, 공기와 시선이 굵은소금처럼 정의 몸을 수축시켰다. 스스로가 남의 책장에 무단으로 달라붙은 달팽이처럼 느껴져 정은 더 쪼그라들었다. 저만치 여전히 지하 3층 바닥으로 창문이 나 있는, 도시 안의 첫 집이 보였다. 집 잃은 달팽이만큼 작게 시작되더니 곧 까만 활자들이 돌처럼 쏟아졌다. 몇개의 활자가 그 집을 눌렀다. 어깨가 우그러지고 허리가 일그러지면서 모든 게 납작해졌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정방배는 행간으로 남았다. (p223-224) <콜럼버스의 뼈> 새 주소에 부합하는 골목. 그러나 그곳에서 십분이 채 지나기 전에 내가 느낀 것은 이 거리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었다. 내게 처음 문을 열어준 주소의 주인은 아버지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 해도 내가 그를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어떤 이는 내게 찾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나도 그게 누구인지 이젠 알 수가 없었다. 그 골목에서 나는 마치 이물질 같았다. 골목은 끝없이 이어져 이미 내가 처음 들어왔던 그 거리 이름은 사라진 후였다. 골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기엔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오후 일곱시. 하나둘 집집마다 오렌지빛의 불을 켜고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걷고 있었다. 이제는 시내로 나가고 싶어도 택시를 잡아탈 수 있는 어떤 곳으로 가고 싶어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멈춰 서서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도 신대륙처럼 융기하는 그런 길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노라, 단지 네가 지금 발견했을 뿐이라, 말해주는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 채로 기어코 해는 떨어졌다. (p278) 몇모금의 와인이 내 배꼽 부분에서 목구멍 쪽을 향해 다시 거슬러오르는 듯했다. 그건 함부로 뱉어낼 수 없는 뜨겁고 뜨거운 어떤 것이었다. 단지 그 감정 하나로 이 쎄비야 골목들과 내가 건넌 몇개의 바다와 낯선 국경들이 모두 합당한 것이 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숙제, 아니 차라리 연행에 가까운 어떤 행로였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를 듣는 동안 내 안에서 어떤 공기가 역류했고, 비로소 나는 편안해졌다. 노래가 끝나자, 콜롬 가족들은 나에게 아버지가 이 곡을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수첩 속 주소가 내게 온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p285) 마차는 잠들기 시작하는 골목 위를 성실하게 달렸다. 자동쎈서가 부착된 복도를 걸어가는 것처럼, 마차와 마차의 그림자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그 골목의 집들이, 휴식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도미노 쓰러지듯, 하나둘 오후의 잠에 빠져드는 도시에서 조금씩 말발굽 소리가 느려지고 있었다. 이 발과 저 발 사이에 간극이 점점 더 길어졌고, 마침내 말이 멈췄다. 고개를 떨군 말의 갈기를 촘촘한 햇빛이 빗질하기 시작했다. 곧 마차의 네 바퀴가 말을 따라 쎄비야의 오후에 순응했고, 그림자가 조금 더 길어졌고, 마차는 조금 더 느려졌다. 태양이 조금 더 지면에 가깝게 내려앉았고, 나에게도 도둑이 왔다. 나는 적당히 데워진 태양 속을 서서히 통과하면서 잠들기 시작했다. 이미 졸고 잇는 마차를 타고, 한없이 느리게. (p287) - 윤고은 , ' 알로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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