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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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잘못해서 보풀이 묻었는데
빨래를 잘못해서 보풀이 묻었는데 집에 보풀 제거기가 없었다. 별수없이 박스테이프를 꺼내 손으로 한 톨 한 톨 뜯어내다가, 그 티셔츠가 무슨 티셔츠였는지를 잠시 곰곰이 들여다본다. 명절에 동그랑땡 부치다가 읽는 신문 기사처럼, 그 활자 하나하나 역시 유난히 선명히 뜻깊게 읽힌다.
캠퍼스워십. 당신을 예배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갑니다. YWAM: 하나님을 알고 그를 알리자.
그걸 몇 번이고 위로 아래로 다 읽고 그쪽 면 보풀을 다 뜯고 티셔츠를 뒤집어 다른 쪽 보풀을 뜯으려던 찰나에, 무심코 생각하고 말았다. 그간 참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해 왔다고.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처음부터 천천히 생각 나는 대로 풀어보고자 한다.

나는 내가 YWAMer임이 자랑스러운 편이다. 한국예수전도단 서울대학사역은, 내가 아는 기독교 선교 단체 중에서는 가장 건전하게 재미있고 감정 친화적이면서도 행동과 메시지가 급진적이어서, 정확히 20대의 날 위한 곳이었다. 신사도운동 문턱을 간신히 안 넘은 리추얼이며 "마음이 어렵다", '정서가 막힌다/풀린다" 같은 사투리가 있(었)고, 당시 "캠워"는 심형진 간사님이 현역이었으며, 매년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돈을 "재정싸움"으로 모은 대학생들이 전세계로 1달간 떠난다. 나도 그 '해외전도여행' 프로그램 덕에 도대체 어떻게 모았는지 알 수 없는 돈을 모아서 대만으로 싱가폴로 말레이시아로 필리핀으로 다녀본 적이 있다. 심지어 2012년의 "필-싱-말" 전도여행 팀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붙어 있었다. 그 나라에서 대학 사역을 창설할 수 있겠는지 조사하라! 팀은 설문지와 볼펜을 한무더기 싸들고 그 "사역지"에 가서 그걸 전부 다 쓰고 왔다. 그 여행은 참말 그보다 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중차대한 미션이었다.
헌데 정작 나는 겉돌고 있었다. '중보기도 job'이었던 내가 어디 갈 때마다 "이곳을 위해서 축복��시면서 기도하십시다"라고 하면 모두가 정말로 그걸 위해 기도하면서 각자 비전을 보았는데, 나는 비전은커녕 주어진 세상을 보느라 바빴던 것이다. 이를테면, 노선 안내가 안 붙어 있는 지프니를 용케 골라잡아 집으로 가는 필리핀 사람들, 똑같은 세제와 똑같은 과자를 파는 똑같은 판잣집 점빵이 한 마을에 몇 개고 몇십 개고 줄줄이 늘어선 흙길 골목, 비와 더위의 문제를 에어컨과 쇼핑몰로 해결해 버린 싱가포르, 밥을 집에서 해먹지 않고 사서 먹는 사람들, 겉보기엔 이게 대학이냐 싶은 곳에서도 어엿한 대학생으로 멋있게 성장하고 있던 히잡을 두른 대학생들, 아무리 봐도 새 "미션스쿨"이 필요한 것 같진 않은 민다나오 섬 어딘가의 논밭, 가도 가도 야자나무뿐인 "조호르바하루"의 고속도로,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세상 만사 다 몰라도 좋겠구나 싶던 "페낭"의 아찔하게 아름다운 해변 석양 같은 것들.
그건 그 자체가 굉장한 광경, 관찰, 감상, 경험이었을지는 모르되, 그 여행의 의의와 의미에서는 가장 동떨어져 있던 것들이다. 오죽하면 개인적인 사진도 변변히 안 찍었겠는가. 하지만 그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그 이후 내 삶 내내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자기 주장을 해 온 시간들이기도 했다. 아니지 실은 오히려 반대다. 그 여행에서 내게 남은 것은 그렇게 딴청 피우며 뜻없이 맛봐 둔 멋적은 순간들이었지, 그 설문지며 그 미션 등등이 아니었다. 사실 "선교보고회" 이후로 이 여행의 미션의 성과를 서울대학사역이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건 일단 9명쯤 되는 2030 남녀들을 한 달간 타지에 "비전트립" 보낼 구실이긴 했는데, 그밖에 부여된 그 숱한 의의들, 거창한 의미들은 과연 그 트립과 정말 관계가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지.
의미가 부여된다고 해서, 의의가 있다고 해서 그게 꼭 달성되고 꼭 성취돼야만 하는 것은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좀 안 맞는 사례지만 지금 내가 보풀 떼고 있는 이 티셔츠가 꼭 그렇다. 나로서는 이 빨래에 이런 의미를 부여했었다. 이 티셔츠를 빤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산 목욕용 전신타올도 같이 빤다. 그래서 두 세탁물의 세탁을 한번에 끝낸다. 그걸 성취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잘 될 줄 알았다. 결과는, 뭐 세탁 자체는 되었는데, 좀 잘 안 됐다. 뭐 실은 좀 안 된 정도가 아니지 그��니까 오밤중에 팔자에도 없는 한 시간을 써서 티셔츠 두 장, 바지 한 장을 앞뒤로 안팎으로 뒤집어 가며 보풀을 뜯고 앉았겠지. 돌이켜 보면 이 꼴이 나는 게 당연했다. 모든 어른들이 "수건/걸레는 옷이랑 빠는 거 아니다" 하시던 게, 이제서야, 이해까지는 안 되더라도, 수용은 된다고 할까.
의미를 부여하는 일과 의미를 성취하는 일을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자체가 좀 얼레벌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안 맞는 의의였을 수가 있고, 될성부르지 않을 수 있으며, 성취가 된다 한들 정말 후손과 후속 조치에 도움이 되는지도 보장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더 성숙한 태도는, 일단 의의를 부여할 때는 하고, 그걸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는 하더라도, '이게 다 애초부터 글렀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걸 명심하면서, 너무 많은 기대나 너무 큰 자부심이나 너무 개인적인 사연을 가지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태도일 것이다.
좀 실천적인 적용을 해서 구체적인 교훈을 찾아 보자면.. 내 직업은 어찌 보면 코드베이스 여기저기에 의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소스는 그런 게 너무 부족한 게 흠이다. 물론 지금 당장 굴러가는 뭔가를 만들자면야 "싸공"과 덕테이프만큼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뭐가 어떤 원리로 왜 그렇게 작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물건을 만들면 그건 만든 사람만 손해이므로, 컴퓨터공학을 포함한 모든 공학은 필연적으로 이런저런 목적과 설계의도가 부여된 이런저런 컴포넌트 개념을 도입하면서 의의와 의미를 찾고 만들고 부여하며 그걸 성취하(게 하)려고 무진 애쓴다. 나 역시 그렇다.
특히 최근 2주는 새 기능 하나를 구현하면서 없던 싸움을 스스로에게 걸어 개싸움을 한 1인 그림자 복싱의 시간이었다. "스케줄"이란 "행"의 나열이고, 행이란 특정 날짜 특정 시간에 시작하는 "예약"들을 "테이블" 정보와 함께 갖는 자료이고, 예약이란 이런저런 데이터의 집합이고, 테이블이란 이런저런 데이터를 받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요소이고... 나 스스로도 이걸 정확히 12영업일 안에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심지어 잘 모르는 Promise chain이며 평생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심지어 일제인) jQuery 플러그인까지 붙잡고 싸워야 했다. 결과적으로 마감을 지켰고, 추가된 ��인의 수에 비하면 결함이나 블랙박스도 없는 편이며, 겉보기에도 잘 작동한다. 그런데, 내가 짠 코드에 내가 한껏 흐뭇해하고 나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생각을 애써 부정했다. "아니지 이게 맞지 솔직히 이렇게 안 짰으면 다른 코드처럼 이쪽에 d-none 클래스 붙어있는지 봐서 있으면 저쪽에 data-foo 값 읽어 붙여넣고 뭐 클릭될 때마다 뭐 하고 이 클릭 후에 저 클릭할 땐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if else 지루박 탔지 않았겠어? 어차피 지루박일 거 내가 잡은 방향은 옳았어, 이제 와서 돌아갈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망친 빨랫감의 수북한 보풀을 한 톨 한 톨 눈으로 확인하고 뜯기를 반복하면서는, 조금 생각이 바뀐다. "지금은 이게 옳았는데, 아무래도 조금 지나면 그렇게까지 옳지는 않은 일이 되겠지. 더 지나면 틀렸던 게 되겠지 아니면 쓸데없이 과했던 일이 되든지. 다음에는 더 보풀 안 묻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지 이번에는 내가 생각을 잘 못 해서 그렇게 깨끗하게는 못 했는지 몰라도."
인간은 의미를 찾는 동물인지라 나도 그렇고 한국예수전도단 같은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누군가가 무언가에 부여하는 의미와 의의를 덮어놓고 부정하지는 못할 일이다. 다만, 모든 의의와 의미가 덮어놓고 긍정돼야 하는 것도 역시 아니기는 마찬가지려니 싶다. 변절이 아닌 선에서, 이단이 아닌 선에서, 주객 전도가 아닌 선에서 조금은 딴청을 피워, 주어진 의의와 부여된 의미의 범위를 넘는 풍경을 봐 두면서, 너무 그 의의에 목을 매지 않으려고 할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최소한, 그럴 필요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정도는 해 보게 된다. 이러든 저러든 모든 의미가 부여된 대로 실현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다 써놓고 보니 오늘의 빨래 보풀과는 정말 관계 없는 얘기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때, 수건과 티셔츠를 한번에 빨겠다는 아차 싶은 아이디어보다야 이게 좀더 "의미있는"(ㅋㅋ) 논의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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