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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벤트리 브리스톨 분석 1월 15일 잉글랜드 FA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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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다, 망설였다…그리고 위대해졌다 #독일 #Germany #메르켈 #Merkel #앙겔라메르켈 #AngelaMerkel 기사입력2017.09.22 英정치학자가 분석한 獨총리 메르켈 통찰력보다는 신중함이 武器 세계 금융위기 등 長考 끝 결단으로 풀어 앙겔라 메르켈 매슈 크보트럽 지음 | 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 | 452쪽|2만원 #1. 1980년대 중반 베를린. 맏딸을 보러 상경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명문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논문은 영문학술지에 실렸으며 국가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27세에 이혼하고 빈집에서 불법 거주 중이었다. 교구민들이 딸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는 말을 흐렸다.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은 아니겠지?" 아버지의 물음은 딸에게 상처가 되었다. #2. 2006년 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52세의 독일 여성을 선정한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그녀는 2006년 정계의 수퍼스타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질세라 그녀를 '올해의 인물' 1위로 선정했다. 실업률은 낮아지고 국민은 독일인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독일은 유럽 대륙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소심해서 위대한 여자 4연임을 노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평전을 읽어가노라면 한 인간의 현재를 규정하는 건 결국 그의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코벤트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독일 밖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메르켈의 인생 전반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메르켈은 위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 그녀는 통찰력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력에서 빛을 발했다. 메르켈 전에 'Zaudern(망설이다)'이라는 동사는 국정 운영을 논할 때 흔히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이 단어를 '정치 예술'로 바꿔놓았다. 메르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교사가 3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했다. 교사는 겁 많은 그녀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주저하며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로 돌았지만 내려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웃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는 순간 그녀는 다이빙했다. 상황 분석이 끝나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44년 후인 2008년, 독일 총리가 된 그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난제와 맞닥뜨린다. 경제 문제란 어린 시절의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낯설었다. 시간 끌며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노련한 정치인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기한이 끝날 무렵 그녀는 놀라운 결단을 내린다. 독일 정부는 독일 은행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독일 경제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메르켈은 존경을 얻었다. 메르켈은 말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상당히 용감해집니다. 하지만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매사에 다음 상황을 예상합니다. 소심해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본보기 지난해 9월 기독교민주연합 선거 회의에서의 메르켈 독일 총리. 24일 독일 총선에서 그녀는 4연임을 노리고 있다./연합뉴스 기독교와 세계시민주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세계시민주의도 이 책이 메르켈을 해석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2015년 말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수용 정책을 밝힌다. '난민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저자는 그녀의 난민 정책을 종교적 신념의 결과라고 풀이한다. 메르켈은 빈곤에서 탈출한 아프리카 난민을 독일이 다 받아줄 순 없다고 했지만 시리아 난민은 다른 문제였다. 잔혹한 IS로부터 도망친 이들을 수용하는 건 기독교인의 도리였다. 저자는 적었다.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대신 지금껏 쌓아온 정치적 자산과 호의를 잃었다."(422쪽)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 동쪽 템플린에서 목사의 딸로 자랐다. FDJ(청년공산주의연맹)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독교 신념이 자리했다.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2015년 10월 말 EU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여달라는 헝가리 총리의 제안에 대한 답이���다. 메르켈이 꿈꾼 '강한 독일'은 제국으로서의 강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본보기가 되는 나라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쇼비니즘(배타적 민족주의)으로 변질된 '독일 정신'의 순수성을 회복할 희망의 증거로 보기도 한다. "몇 달 전 나는 EU정상회담에서 보라색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의 형태로 의인화된 '세계의 정신'을 보았다."(425쪽) 메르켈에 대한 저자의 믿음에 독일은 과연 부응할 것인가. 24일 총선 결과가 그 답이 될 것이다. [곽아람 기자 [email protected]]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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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쵸콜릿 고디바(GOD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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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쵸콜릿 고디바(GODIVA)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다… 그래서… 이때까지 기다리며 아껴왔던 고디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회사에서도 쵸콜릿을 얻어 먹을 수 있는 날이련만… 물론 요즘엔 늙었다고 직접 주는 사람은 별로 없고 후배사원들꺼 뺏어먹는 게 주로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나 둘 먹어보는 재미는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발렌타인데이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쵸콜렛 하면 스위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유럽 어느 나라이던지 간판 쵸콜렛은 있기 마련이고 각 나라별로 쵸콜렛 공장이나 쵸콜렛 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어서 기념품으로 쵸콜렛을 구입하는 것은 어디서든 상당히 쉽다… 제주도에도 쵸콜릿 박물관이 있어서 한번 들렸던 기억이 있는데… 그 정도하고 이곳 쵸콜렛 본 고장하고는 차원이 다르니깐… 제주도 얘긴 빼고..
물론 이번 오스트리아 구경할때는 모짜르트가 그려진 쵸콜렛을 실컷 구경하고 왔는데… 짤츠부르크며 빈 까정 거의 대부분의 도시가 모짜르트의 얼굴로 가득차 있다… 얼굴을 외울 정도…ㅋㅋ(모짜르트 쵸콜릿은 오스트리아 여행기에서 보여드릴 예정임.)
옷에도, 신발에도, 구두에도, 시계에도 명품이 있듯이 쵸콜렛도 명품 쵸콜렛이 있다….. 그게 고.디.바…..밤톨만한 쵸콜릿 한 개당 가격이 1유로를 훨씬 넘으니… 20개 들이 하나 사려면 보통 할인 기간이 아니라면 40유로 이상을 들여야만….허걱….
회사의 후배사원이 올때 고디바 사달라고 졸랐을때만 해도 ‘허허 그래…’ 했는데 막상 실체를 확인한 순간 턱 빠지는 줄 알았다…. 괘씸한넘… 이 비싼걸…T.T
솔직히 이곳에 와서야 ‘고디바’라는 쵸콜릿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통 길리언이나 페레로로세 같은 쵸콜릿은 그리 비싸지 않아서 공항이나 기내 면세점에서 흔히 살수 있는 것이고,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선물로 가져다 주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고디바 쵸콜렛은 그 존재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고디바를 처음 접했을 때는 느끼는 황당함은 무지에 대한 원망 보다는 고디바 먹기위해서는 본토에 와야만 한다는 것의 서글픔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비싼 제품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선물로 가져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라고 느껴서……사가지고 가더라도 아까워서 자기 혼자 몰래 먹고 말지…ㅋㅋ.\
고디바(GODIVA)…. “그게 뭔데?”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가서 그런말 하지 마셈… 챙피해…ㅋㅋ
벨기에는 코트도르(Cote d’Or), 고디바(Godiva), 노이하우스(Neuhaus), 길리안(Guylian), 레오니다스(Leonida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쵸콜릿이 생산되는 이른바 쵸콜릿 왕국이다. 브뤼셀이나 브루게에는 편의점보다 더 많은 초콜릿 가게가 있고, 웬만한 도시나 시골에 가도 초콜릿 공장이나 가게를 찾아볼 수 가 있다. 물론 마트나 공항에도 널린게 쵸콜릿이고…
블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쵸콜릿은 코트도르(Cote d’Or)이다… 위의 것들중 가장 저렴한 넘인데… 저렴하다 하더라도 맛 하나는 기가 막히다… 쵸콜릿이 무작정 달기만 한 줄 알고 단 것을 싫어하는 나는 쵸콜릿 먹는 걸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벨기에 쵸콜릿은 그렇게 달지가 않다… 먹으면 먹을수록 고소한 맛이 강해지고.. 한번 먹으면 계속 손이가는… 역시나 중독성이 강하다… 중독성이 강한 넘들이 유명해 지는 것이니까….
암튼 딸기와 딸기맘이 한국에 돌아갈때도 가지고 온 옷을 두고 갈 망정 가방 가득 쵸콜릿 선물상자를 채워서 갔을 정도이니…
오늘은 다른 쵸콜릿 보다 그 가치나 맛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고디바의 기원을 함 디벼볼까 한다…
물론 naver에 ‘고디바’라고 딱 치면 엄청나게 많은 자료가 올라오지만…. 벨기에에 살고 있는 사람이 고디바 얘기를 안 쓸수도 없고 해서… 고디바 회사 홈페이지도 뒤져보면서.. 몇자 적어본다..
고디바의 쵸콜릿의 로고는 말을 탄 여인이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바로 “Lady GODIVA”
외설적 사진이라고 뭐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내용을 들어보면 이해를 ���실듯…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의 부인이었던 고디바는 주민들의 세금이 과중한 것을 동정하여 남편에게 세금을 감해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영주는 부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위해 조건을 하나 내세웠다.
그 조건이란 것이 벌거벗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고디바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거리에 나서 결국 시민들의 세금을 줄이는데 성공하였다.
고디바는 이 여인의 전설을 기념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최고의 명품 초콜릿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옷 벗는 장면이나 성행위를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을 일컬어 ‘peeping Tom’이라고 하는데(사전에도 있다) 이는 세금 감면을 위해 나체로 시장을 지나가는 고디바 부인이 자신을 보지 말아달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리 부탁을 하여 마을 사람들이 커튼을 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딱 한넘… 양복 재단사인 톰이 그것을 참지 못하고 호기심을 못이겨 고디바 부인을 엿본 것을 계기로 영어 사전에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근데.. 위의 그림에서 처럼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말을 타고 있어서… 딱히 보일건 별로 없었다는 얘기도…ㅋㅋ
17세기 말부터 국가 산업으로까지 발전한 쵸콜릿 강국인 벨기에 브뤼셀에서 1912년 프랄린(praline)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랄린(praline)는 아몬드, 호두 등을 넣은 사탕과자를 의미하는데 견과류, 신선한 크림, 버터 등으로 속을 채운후 쵸콜릿으로 봉인하여 만든 제품으로 쵸콜릿 전문점 에서 볼수 있는 고급 핸드메이드 쵸콜릿의 효시다.)
프랄린은 주로 몰딩을거쳐 대량으로 생산되어 고디바(Godiva), 레오니다스(Leonidas), 노이하우스(Neuhaus), 길리안(Gilian)등의 이름으로 공급되고 있다는데… 1946년에 설립된 고디바(Godiva)는 벨기에에서 생산된 프랄린중 50%를 수출하고 있으며, 도쿄와 뉴욕에도 공장이 있고 세계적으로 고급 쵸콜릿 마케팅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쵸콜릿 뿐 아니라 포장이나 디스플레이의 상품화도 눈에 띄는데… 화려한 포장으로 매우 유명하며 그 안에 들어가는 쵸콜릿도 종류가 무수히 많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정도…
아래의 예쁜 쵸콜릿 포장은 2008년도 성 발렌타인 데이의 상품으로 출시된 것인데… 총 18가지 모양의 쵸콜릿이 들어있다…
가격대는 거의 50유로에 육박을 하는데….. 달랑 한개씩….
포장 제품안에 들어가 있는 쵸콜릿 하나하나의 이름이 다 정해져 있고….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그 맛을 짐작할 정도로 매우 화려하고 맛있게 보인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쵸콜릿을 다시한번 쳐다보게 된다…. 쩝… 저거 사 먹을껄…
고디바는 기념품점이나 일반 쵸콜릿 가게에서는 구입할 수 가 없는데… 반드시 전용매장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고디바 파는 곳이 이곳 루벵시내에도 한 곳 있는데… 고급 옷가게 저리가라로 꾸며놓은 가게 인테리어 또한 멋지다… 사진을 못 찍어와서… 여름과 겨울에 한달씩 진행하는 할인 행사 기간(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가 거의 모든 제품에 대해서 이 기간에 세일을 한다.)에는 이걸 거의 50~60% 가격에 살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할인된 가격도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다른 쵸콜릿에 비하면… 지난번에 고디바 쵸콜릿 한 개를 먹어봤는데… 딱 한마디만 나왔다…. “우~와~!”
발렌타인 데이에 쵸콜릿 못 받으신분 손들어 보삼……………… 나중에 직접 사 드세염…ㅋㅋ\
아참… 여긴 한국처럼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서 상점 가득 쵸콜렛 쌓아놓고 판촉행사 하고 그러지 않는다….
물론 쵸콜렛 상품들이 계산대 근처에 까지 와서 진열이 되어 있긴 하는데… 반드시 쵸콜릿을 선물하기 위하여 마구마구 사거나 선물로 주고받거나 하지는 않나보다…. 하여튼 짝퉁들이 더 요란하다고… 우리나란 왜이래? 이것도 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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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가 잘어울리는 스포츠카 애스턴마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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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가 잘어울리는 스포츠카 애스턴마틴 이야기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영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카 메이커 애스턴 마틴
오랜 세월을 이어온 만큼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었는데요.
오늘은 007 시리즈의 본드카로도 유명한 애스턴 마틴의 굴곡진 역사를 되짚어 볼까 합니다.
l 역사
<로버트 뱀포드와 라이오넬 마틴>
애스턴 마틴의 역사는 1913년 라이오넬 마틴(Lional martin)과 로버트 뱀포드(Robert bamford)가 BAMFORD & MARTIN LTD 사를 설립하여, 싱어(Singer)사의 자동차를 개조하여 판매하며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다른 자동차 브랜드 설립자들 처럼 라이오넬 마틴 역시 자동차 경주에 굉장히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애스턴 힐에서 열리는 경주에도 참rk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경주에서 쌓은 노하우로 독자적인 자동차 제작을 꿈꾸던 이들은 1915년 이소타 프라스키니의 섀시에 코벤트리 심플렉스 엔진을 얹은 첫차를 대중에 공개를 합니다.
그들이 만들었던 첫 차의 이름이 바로 ‘애스턴 마틴’
라이오넬 마틴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애스턴 힐 스피드 힐클라임’ 대회명과 본인의 이름을 합쳐서 애스턴 마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애스턴 힐 스피드 힐클라임>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던 그들의 자동차 사업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잠시 중단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뱀포드가 회사를 떠나면서 홀로 회사의 경영을 맡게된 마틴은 회사의 운영 방침을 독창적인 디자인과 고성능 모델 제작으로 정하게 됩니다.
레이싱 대회에 얻은 노하우와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한 애스턴 마틴은 점점 명성을 쌓아 갔지만, 회사의 이윤보다 완성도 높은 자동차 제작을 추구했던 뱀포드 & 마틴은 1924년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뻔한 애스턴 마틴은 2년이 지난 1926년 엔진 회사인 렌윅&베르텔리사를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모여 되살아납니다. 이들은 영국 펠트 헴에 있는 시트로엥 공장에서 ‘애스턴 마틴 모터스(Aston Martin Motors LTD)’를 설립하고 스포츠카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을 발전시켰고,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등 모터스포츠를 통한 인지도와 경험도 쌓아 갔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싼 차 값은 판매부진으로 이어지고 1933년 아더 서더랜드 경에게 매각됩니다.
서더랜드 경은 애스턴 마틴의 주인이 되자마자 경주차보다는 승용차 제작에 집중, 수익에 포커스를 맞추기 시작합니다. 1934년엔 MK ll, 1936년엔 15/98 등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여 약 140대라는 당시로써는 엄청난 판매량을 거두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의 애스턴 마틴을 만들어준 데이빗 브라운>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온 애스턴 마틴 모터스는 다시한번 영국의 사업가 ‘데이빗 브라운(David Brown)‘에게 인수되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Aston Martin DB4 GT ZAGATO, 1960>
데이빗 브라운의 애스턴 마틴 모터스는 1948년 데이빗 브라운의 이니셜을 딴 DB1을 런던 모터쇼 공개를 시작으로, 몇 년 후 DB2, DB4와 같은 모델이 생산하고 1951년도에는 르망대회 2,3회 우승컵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1960년엔 자가토와 협작하여 DB4 GT ZAGATO와 같은 명차들도 만들어 내었죠.
youtube
1963년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불렸던 DB5가 대중에 공개됩니다.
이 자동차는 영화 007 골드핑거에 등장하면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고, DB5로 인해 형성된 팬덤은 이후의 007시리즈에 애스턴 마틴의 차량이 꾸준히 등장하게 되는 커다란 역활을 합니다. (물론 중간에 BMW가 본드카 역할을 하긴 했었지만…)
DB5가 큰 성공을 거두자, 애스턴 마틴은 1965년 DB6와 DB6 볼란테를 론칭, 이후로도 DBS, DB6 MK2 DBS V8의 다양한 차종들이 꾸준하게 제작되어 인기를 얻지만, 판매부진으로 인해 1972년 컴퍼니 디벨롭먼츠(Company developments ltd)로 주인이 바뀌었다가 3년 만에 북미의 사업가들에게 팔려갑니다.
<Aston Martin Lagonda ,1975>
이렇게 미국 회사의 손에 넘어간 애스턴 마틴은 1975년자동차 한대를 선보입니다.
라곤다(Lagond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치량은 미국차의 색깔이 짙은 디자인과 심한 잔고장에 엔진의 성능도 좋지 못해 애스턴 마틴 최악의 자동차로 불리게 되었죠.
이 후에도 애스턴 미틴은 1980년에 빅토르(Victor Gauntlett)와 페이스(Pace Petroleum)라는 오너에게 인수되었다가, 1993년에는 포드가 애스턴 마틴을 인수해 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애스턴 마틴을 만들어준 울리히 베즈 사장이 취임하게 됩니다.
울리히 베즈(Ulich Bez)사장은 과거 대우 자동차에서 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활약하며 마티즈, 라노스, 레간자, 누비라 등의 자동차를 출시했었던 이력이 있습니다. 2000년부터는 애스턴 마틴의 CEO로 부임하여 애스턴 마틴을 가장 섹시한 스포츠카 브랜드로 이미지 변신을 시킨 대표적인 오너이죠.
그 후 데이비드 리처드가 이끄는 투자회사에서 지금은 이탈리아의 사모펀드로 회사의 주인은 바뀌었고, 울리히 베즈 사장은 꾸준하게 애스턴 마틴을 이끌다 70세 정년퇴임을 하고 현재는 엔디 팔머 사장이 애스턴 마틴을 이끌 고 있습니다.
l 007과 애스턴 마틴
과거 힘들었던 애스턴 마틴을 파산의 위기에서 끌어올려 준 것은 바로 007이라는 영화에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지금까지 영화에 등장했던 애스턴 마틴들의 모델을 나열해 봤습니다.
<애스턴 마틴 DB5>
<애스턴 마틴 V8>
<애스턴 마틴 Vanquish>
<애스턴 마틴 DBS>
l 에필로그
현재의 애스턴 마틴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강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기술 개발이 늦어 다른 메이커에 비하면 한 템포 정도 늦은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영국의 슈퍼카인 애스턴 마틴은 다른 유럽의 슈퍼카와는 달리 수치 또는 하이테크 기술력을 보고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력 모델들이 모두 2004년 개발된 10년 넘은 VH 플랫폼 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되는 만큼, 새로운 플랫폼의 도입이 시급해 보이는군요.
국내에서도 최근 론칭한 애스턴마틴 서울의 상표권을 가지고 두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속히 해결되어 조금이라도 빨리 서울 도심에서 애스턴 마틴이 달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늘 저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더 섹시하고 럭셔리한 자동차 브랜드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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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다, 망설였다…그리고 위대해졌다 #독일 #Germany #메르켈 #Merkel #앙겔라메르켈 #AngelaMerkel 기사입력2017.09.22 英정치학자가 분석한 獨총리 메르켈 통찰력보다는 신중함이 武器 세계 금융위기 등 長考 끝 결단으로 풀어 앙겔라 메르켈 매슈 크보트럽 지음 | 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 | 452쪽|2만원 #1. 1980년대 중반 베를린. 맏딸을 보러 상경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명문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논문은 영문학술지에 실렸으며 국가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27세에 이혼하고 빈집에서 불법 거주 중이었다. 교구민들이 딸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는 말을 흐렸다.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은 아니겠지?" 아버지의 물음은 딸에게 상처가 되었다. #2. 2006년 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52세의 독일 여성을 선정한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그녀는 2006년 정계의 수퍼스타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질세라 그녀를 '올해의 인물' 1위로 선정했다. 실업률은 낮아지고 국민은 독일인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독일은 유럽 대륙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소심해서 위대한 여자 4연임을 노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평전을 읽어가노라면 한 인간의 현재를 규정하는 건 결국 그의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코벤트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독일 밖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메르켈의 인생 전반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메르켈은 위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 그녀는 통찰력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능력에서 빛을 발했다. 메르켈 전에 'Zaudern(망설이다)'이라는 동사는 국정 운영을 논할 때 흔히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이 단어를 '정치 예술'로 바꿔놓았다. 메르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교사가 3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했다. 교사는 겁 많은 그녀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주저하며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로 돌았지만 내려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웃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는 순간 그녀는 다이빙했다. 상황 분석이 끝나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44년 후인 2008년, 독일 총리가 된 그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난제와 맞닥뜨린다. 경제 문제란 어린 시절의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낯설었다. 시간 끌며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노련한 정치인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기한이 끝날 무렵 그녀는 놀라운 결단을 내린다. 독일 정부는 독일 은행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독일 경제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메르켈은 존경을 얻었다. 메르켈은 말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상당히 용감해집니다. 하지만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매사에 다음 상황을 예상합니다. 소심해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본보기 지난해 9월 기독교민주연합 선거 회의에서의 메르켈 독일 총리. 24일 독일 총선에서 그녀는 4연임을 노리고 있다./연합뉴스 기독교와 세계시민주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세계시민주의도 이 책이 메르켈을 해석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2015년 말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수용 정책을 밝힌다. '난민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저자는 그녀의 난민 정책을 종교적 신념의 결과라고 풀이한다. 메르켈은 빈곤에서 탈출한 아프리카 난민을 독일이 다 받아줄 순 없다고 했지만 시리아 난민은 다른 문제였다. 잔혹한 IS로부터 도망친 이들을 수용하는 건 기독교인의 도리였다. 저자는 적었다.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대신 지금껏 쌓아온 정치적 자산과 호의를 잃었다."(422쪽)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 동쪽 템플린에서 목사의 딸로 자랐다. FDJ(청년공산주의연맹)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독교 신념이 자리했다.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2015년 10월 말 EU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여달라는 헝가리 총리의 제안에 대한 답이었다. 메르켈이 꿈꾼 '강한 독일'은 제국으로서의 강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본보기가 되는 나라였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쇼비니즘(배타적 민족주의)으로 변질된 '독일 정신'의 순수성을 회복할 희망의 증거로 보기도 한다. "몇 달 전 나는 EU정상회담에서 보라색 정장을 입은 중년 여성의 형태로 의인화된 '세계의 정신'을 보았다."(425쪽) 메르켈에 대한 저자의 믿음에 독일은 과연 부응할 것인가. 24일 총선 결과가 그 답이 될 것이다. [곽아람 기자 [email protected]]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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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다, 망설였다…그리고 위대해졌다 #독일 #Germany #메르켈 #Merkel #앙겔라메르켈 #AngelaMerkel 기사입력2017.09.22 英정치학자가 분석한 獨총리 메르켈 통찰력보다는 신중함이 武器 세계 금융위기 등 長考 끝 결단으로 풀어 앙겔라 메르켈 매슈 크보트럽 지음 | 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 | 452쪽|2만원 #1. 1980년대 중반 베를린. 맏딸을 보러 상경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명문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논문은 영문학술지에 실렸으며 국가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27세에 이혼하고 빈집에서 불법 거주 중이었다. 교구민들이 딸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는 말을 흐렸다.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은 아니겠지?" 아버지의 물음은 딸에게 상처가 되었다. #2. 2006년 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52세의 독일 여성을 선정한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그녀는 2006년 정계의 수퍼스타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질세라 그녀를 '올해의 인물' 1위로 선정했다. 실업률은 낮아지고 국민은 독일인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독일은 유럽 대륙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소심해서 위대한 여자 4연임을 노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평전을 읽어가노라면 한 인간의 현재를 규정하는 건 결국 그의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코벤트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독일 밖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메르켈의 인생 전반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메르켈은 위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 그녀는 통찰력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능력에서 빛을 발했다. 메르켈 전에 'Zaudern(망설이다)'이라는 동사는 국정 운영을 논할 때 흔히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이 단어를 '정치 예술'로 바꿔놓았다. 메르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교사가 3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했다. 교사는 겁 많은 그녀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주저하며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로 돌았지만 내려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웃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는 순간 그녀는 다이빙했다. 상황 분석이 끝나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44년 후인 2008년, 독일 총리가 된 그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난제와 맞닥뜨린다. 경제 문제란 어린 시절의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낯설었다. 시간 끌며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노련한 정치인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기한이 끝날 무렵 그녀는 놀라운 결단을 내린다. 독일 정부는 독일 은행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독일 경제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메르켈은 존경을 얻었다. 메르켈은 말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상당히 용감해집니다. 하지만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매사에 다음 상황을 예상합니다. 소심해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본보기 지난해 9월 기독교민주연합 선거 회의에서의 메르켈 독일 총리. 24일 독일 총선에서 그녀는 4연임을 노리고 있다./연합뉴스 기독교와 세계시민주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세계시민주의도 이 책이 메르켈을 해석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2015년 말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수용 정책을 밝힌다. '난민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저자는 그녀의 난민 정책을 종교적 신념의 결과라고 풀이한다. 메르켈은 빈곤에서 탈출한 아프리카 난민을 독일이 다 받아줄 순 없다고 했지만 시리아 난민은 다른 문제였다. 잔혹한 IS로부터 도망친 이들을 수용하는 건 기독교인의 도리였다. 저자는 적었다.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대신 지금껏 쌓아온 정치적 자산과 호의를 잃었다."(422쪽)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 동쪽 템플린에서 목사의 딸로 자랐다. FDJ(청년공산주의연맹)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독교 신념이 자리했다.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2015년 10월 말 EU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여달라는 헝가리 총리의 제안에 대한 답이었다. 메르켈이 꿈꾼 '강한 독일'은 제국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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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다, 망설였다…그리고 위대해졌다 #독일 #Germany #메르켈 #Merkel #앙겔라메르켈 #AngelaMerkel 기사입력2017.09.22 英정치학자가 분석한 獨총리 메르켈 통찰력보다는 신중함이 武器 세계 금융위기 등 長考 끝 결단으로 풀어 앙겔라 메르켈 매슈 크보트럽 지음 | 임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 | 452쪽|2만원 #1. 1980년대 중반 베를린. 맏딸을 보러 상경한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은 집안의 자랑이었다. 명문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고, 논문은 영문학술지에 실렸으며 국가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27세에 이혼하고 빈집에서 불법 거주 중이었다. 교구민들이 딸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는 말을 흐렸다.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은 아니겠지?" 아버지의 물음은 딸에게 상처가 되었다. #2. 2006년 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52세의 독일 여성을 선정한다.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그녀는 2006년 정계의 수퍼스타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질세라 그녀를 '올해의 인물' 1위로 선정했다. 실업률은 낮아지고 국민은 독일인임을 자랑스레 여기고 있었다. '유럽의 병자(病者)'였던 독일은 유럽 대륙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소심해서 위대한 여자 4연임을 노리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평전을 읽어가노라면 한 인간의 현재를 규정하는 건 결국 그의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 코벤트리 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독일 밖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메르켈의 인생 전반부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이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어떤 이에게는 위대함이 맡겨진다." 메르켈은 위대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위대함이 맡겨졌기 때문에 위대해졌다. 그녀는 통찰력보다는 신중히 생각하는 능력에서 빛을 발했다. 메르켈 전에 'Zaudern(망설이다)'이라는 동사는 국정 운영을 논할 때 흔히 쓰이던 단어가 아니었다. 메르켈은 이 단어를 '정치 예술'로 바꿔놓았다. 메르켈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 교사가 3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했다. 교사는 겁 많은 그녀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주저하며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로 돌았지만 내려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웃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업 종료 종이 울리는 순간 그녀는 다이빙했다. 상황 분석이 끝나자 실행에 옮긴 것이다. 44년 후인 2008년, 독일 총리가 된 그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난제와 맞닥뜨린다. 경제 문제란 어린 시절의 다이빙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낯설었다. 시간 끌며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노련한 정치인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기한이 끝날 무렵 그녀는 놀라운 결단을 내린다. 독일 정부는 독일 은행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독일 경제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메르켈은 존경을 얻었다. 메르켈은 말했다.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면 상당히 용감해집니다. 하지만 약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해요. 매사에 다음 상황을 예상합니다. 소심해 보인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원본보기 지난해 9월 기독교민주연합 선거 회의에서의 메르켈 독일 총리. 24일 독일 총선에서 그녀는 4연임을 노리고 있다./연합뉴스 기독교와 세계시민주의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세계시민주의도 이 책이 메르켈을 해석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2015년 말 메르켈은 시리아 난민 수용 정책을 밝힌다. '난민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지지율은 급락했다. 저자는 그녀의 난민 정책을 종교적 신념의 결과라고 풀이한다. 메르켈은 빈곤에서 탈출한 아프리카 난민을 독일이 다 받아줄 순 없다고 했지만 시리아 난민은 다른 문제였다. 잔혹한 IS로부터 도망친 이들을 수용하는 건 기독교인의 도리였다. 저자는 적었다. "그녀는 자아를 되찾은 대신 지금껏 쌓아온 정치적 자산과 호의를 잃었다."(422쪽) 메르켈은 베를린 장벽 동쪽 템플린에서 목사의 딸로 자랐다. FDJ(청년공산주의연맹)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러시아어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독교 신념이 자리했다. "나는 오랜 세월 장벽 너머에서 살았습니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2015년 10월 말 EU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했다.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여달라는 헝가리 총리의 제안에 대한 답이었다. 메르켈이 꿈꾼 '강한 독일'은 제국으로서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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