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철학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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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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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크샬크 (Gottschalk der Sachse, 806?-868?)
고크샬크 (Gottschalk der Sachse, 80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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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크샬크 (Gottschalk der Sachse, 806?-868?)
고크샬크는 814년 풀다(Fulda)에서 태어났다. 오르바이스에서 수도자와 선생으로 활동했다. 그는 우리의 행위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을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구원 대상으로 예정된 이를 위하여 죽었다고 했다. 이는 당시 카를로스 대제의 제국의 종교 정책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알퀴누스의 제자들은 신은 선하고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즉 신은 선하며 모든 인간의 구원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당시 카를로스 대제 시대의 학자들과 고크샬크는 대립했다. 그는 단죄되었다. 그���게 그는 채찍으로 구타를 당하게 된다. 이루 힌크마르(Hinkmar) 교구장의 손에 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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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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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사람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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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사람만이 한다. 학생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먼젓번에는 실패했다. 군인도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도 군인이 혁명하려해서는 반드시 실패한다… 혁명은 민중의 것이다.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한다> 중 발췌)
누군가 자신의 마음으로 혁명을 이야기한다. 잘못된 군인은 사람에 고개 숙이고 그 이득으로 살아간다. 그런 군인은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울 뿐이다. 이런 군인이 어떻게 혁명을 하겠는가? 종교인은 자기 종교의 정신으로 혁명을 하려 한다. 그러면 그 종교의 정신 밖은 아프다. 그리스도교의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듣기 좋은 말이 아프게 할 때도 있다. 바로 그 누군가 정한 그 정신의 밖이 아프기 때문이다. 학생도 그 순수함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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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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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선도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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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당연히 오캄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복수의 시선들이 존재한다. 나는 그런 복수의 시선들이 존재하는 곳을 좋아한다. 하나의 시선만이 강요받는 곳에 고전에 대한 학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전은 고전이란 사고의 장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들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나름의 논리 구조물을 만드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세철학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서로 다른 시선들이 당연히 존재하고, 그 당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시선들은 저마다 나름의 합리적인 논리 구조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를 논박하면 그만이다. 나도 나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 시선 속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도 오캄도 그냥 철학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누군가를 절대적인 승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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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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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다. 지금이 사진 속 파출소 바로 옆에 새건물에 있지만 그조차 항상 경찰이 있진 않은듯 하다. 이 구파출소는 이후 어린이센터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어린이 자체가 없어 어느 순간 이리되었다. 농촌의 미래같기도 하고... 앞으로 비워지는 농촌을 어찌할지... 토마스철학학교 영덕 강학원으로 임대해주면 좋지만 그 역시 불가능할 것이고... 하여간 오가는 차도 없는 한산 농촌... 과거는 서점도 있고 슈퍼도 몇곳이나 있었는데... https://www.instagram.com/p/Chwb7d8p7yX/?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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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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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대학’과 ‘철학과의 쇠퇴’ ‘독일대학’과 ‘철학과의 쇠퇴’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근대 독일의 대학은 중세 대학을 따른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대학은 파리대학이다. 파리대학은 의학부와 법학부 그리고 신학부와 인문학부로 나뉜다. 중세 모든 대학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파리대학의 형태는 근대 독일대학의 본이 된다. 이러한 가운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6세기 멜란히톤은 새롭게 등장한 개신교회의 교육에 대하여 깊이 고민하였고. 이를 실천하였다. 무엇인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는 열정은 개신교회의 노선을 따르는 당시 대학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적인 변화와 함께 외적인 변화가 생긴다. 이제 국가권력자인 군주가 대학을 설립하기 시작한다. 대체로 국가권력이지만 더 정확하게는 지방의 권력자들이다. 지방 세력이 대학을 세웠기에 이들은 당연한 지신의 지방에 필요한 이, 즉 지방의 목회자와 법률가 등을 양성하려했다. 당장 지방이 필요한 인재들은 철학으로 무장한 이들은 아니라고 상관없었다. 쉽게 말해 철학은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종교 개혁 이후 대학은 구교와 신교로 노선이 나뉘어 신입생 역시 그 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1720년 4400여명이 있지만, 1790년엔 3400여명으로 줄었고, 1800년엔 2900여명으로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가운데 철학과 역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법학부와 의학부 그리고 신학부와 같은 상위 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배우던 인문학부로 철학부가 힘을 잃어간다. 더 이상 상위 학부를 위한 사전 준비 과정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1750년 예나대학엔 아예 철학부 신입생이 없었다. 괴팅엔대학에선 665명의 신입생 가운데 60여명이 철학부를 지원하였다. 교수에 대한 임금도 다른 학부에 대하여 적었다. 신학부와 법학부 그리고 의학부가 각각 338-557 탈러, 200-500탈러 마지막으로 100칼러에서 200탈러를 받았다. 그러나 철학부는 100-175탈러를 받았다. 경제적 지원도 줄어드는 학생만큼이나 대단하지 않았다. 새로운 연구 환경을 위한 지원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대학 교육의 방식도 달라져야했다. 중세 토론식 수업은 사라졌다. 그저 교수가 강의록은 읽으면 학생이 이를 따라가는 식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일방의 강의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형태의 강의로의 전환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18세기의 문예운동도 동적이지 않고 정적인 당시의 독일대학의 모양새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것 이외에도 대학 자체의 내적인 구조들도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교수 세습이 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연구가 있어도 교수의 딸과 결혼하는 길이 빠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지경이었다. 이렇게 대학이 무너지고 철학과가 무너지는 가운데도 국가는 대학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프로이센은 해결의 의지가 없었다. 대학은 운영하는 지방 권력, 즉 지방 정부는 그저 지방이 필요한 실용적 지식인들, 미사를 위한 신부, 법을 위한 법률가 구릭호 치료를 위한 의사 정도가 필요할 뿐이었다. 철학자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운데 다른 지방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있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가는 것은 어느 정도 제한하였다. 프로이센 정부 역시 타지역으로의 인재의 유출을 막아야한다는 위기감에 의해 대학에 개입하였다. 하지만 근본적은 개혁은 없었다. 위대한 철학자라는 칸트가 살아가던 그 시간, 막상 독일의 대학은 이러한 위기에 있었다. 더 이상 그렇게 있을 수 없었다. 18세기 독일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1694뇬 할레 대학이 문을 열었다. 라이프치히에서 학생들을 다시 프로이센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세운 대학이다. 하지만 할레대학은 당시 시대의 요구에 ���느 정도 반응하였다. 당시 많은 인재들은 대학에 실망하고 귀족학교 등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할레대학은 귀족학교의 영향을 받아 당시 실용적인 학문들과 새로운 분위기의 철학을 중시하고 연구 교육되었다. 예를 들어, 자연법과 볼프의 철학 등이 그러한 것이다. 할레의 주요한 세 교수가 있다. 크리스티안 토마지우스와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 H. Franke, 1646~1727) 그리고 크리시티안 볼프다.  프랑케는 경전주의를 대학에 도입했다. 볼프는 볼프주의라는 새로운 스콜라학을 독일대학 내부에 구축하였다. 그리고 볼프에 의하여 더 이상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철학을 제대로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할레대학의 성공은 독일 전체로 확대되어갔다. 독일의 많은 대학은 경건주의를 수용하고 자신들의 언어로 된 철학 교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할레대학이 이와 같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여전히 대학에 대한 시선은 좋지 않았다. 여전히 대학의 교육엔 역사와 프랑스 그리고 독일 문학이 없었으며, 고전어 교육과 같은 과거의 산물이 남아있다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건주의와 볼프주의는 고착화되어 버렸다. 또 다시 정적인 모습으로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1750년에 이르러서는 할레대학의 명성도 과거와 같지 않았다. 할레대학이 이렇다면 또 다른 시도가 있어야 했다. 바로 괴팅겐대학이다. 괴팅엔 대학은 1737년에 문을 연다. 귀족학교와 같이 귀족들이 모이는 대학으로 명성이 높았다. 유능한 교수들을 데려왔으며, 하노바 왕국에 의하여 잘 관리되었다, 이러한 귀족학교의 모양을 가진 괴팅겐대학의 장기는 고전문헌학이다.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여 독일 고전학과 고대학 발전이 초석이 될 인물들을 양성하였다. 하지만 귀족학교와 유사하다는 점은 이 대학은 약점이기도 하다. 괴팅겐 대학은 귀족색이 강했고, 국가의 권리 사이 연고주의가 강했다. 그러나 독일의 다른 대학들이 괴팅겐대학과 같을 수는 없었다. 독일의 다른 대학들은 재정적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독일의 다른 대학들은 괴팅겐대학과 같이 많은 지원을 받으며 존재할 수 없었다. 괴팅겐대학의 성공은 독일전체 대학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도 한국이란 땅에서 5년 간 시간강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간들이 과거형이고 앞으로 다시 나란 사람이 대학이란 공간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날은 없을 것 같습니다.저는 무능하고 무력하여 좋은 선생이 되지 못했지만 이 땅에 많은 좋은 연구가들이 철학과에서 제대로 철학 강의의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아래 사진은 저의 생예 마지막 시간강사로의 강의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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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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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13세기 스콜라 자연철학
르네상스와 13세기 스콜라 자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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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13세기 스콜라 자연철학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머독의 독창성을 보이는 부분은 13세기 스콜라 철학과 15세기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사이에 14세기 스콜라 철학에서 자연철학을 삽입하고, 르네상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14세기가 아닌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주의로 돌아갔다고 해석했다는 점이다.
14세기 자연철학은 분석적인 언어(analytic language)을 사용함으로 진행되었다. 언어를 중심으로 자연에 대한 사색을 했다는 것, 그것이 14세기 자연철학의 특징이다. 이러한 자연철학은 파리와 영국에서 매우 섬세한 언어에 대한 사고로 발전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발달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근거한 자연철학은 이러한 방식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욱 더 보수적인 해석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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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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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우주의 시작을 설하다
(Aggañña sutta)
<세기경>(世紀經)은 고전이다. <아함경>(阿含經)의 한 부분이다. 다양한 전승이 있지만, 여기에 그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려 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시작에 대한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싯다르타의 우주론이다. 그렇다고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는 현대천체물리학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은 아니다. 그러한 우주론에 익숙한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허��맹랑(虛無孟浪)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현대생물학의 관점에서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도 않으면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이 고전은 무가치한 글인가? 그렇지 않다. 이 고전은 매우 가치가 높은 글이다.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읽는 방식에 따라서는 과연 어떠한 삶이 행복을 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가능하다. 또 읽기 방식에 따라서는 물리적 우주가 아닌 우리네 삶 속에 느끼는 온갖 아픔의 기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상을 만들기 위하여 읽는다. 그러면 한번 이 고전에 다가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 보자.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엔 신분제 사회였다. 예를 들어, 조선엔 양반이란 권력 계급이 있었다. 반면 백정과 같은 천민 계급도 있었다. 미국엔 백인과 흑인이 주인과 노예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싯다르타가 살던 시간과 공간에서도 신분제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두 명의 제자가 싯다르타에게 신분제 사회에 대하여 질문한다. 스스로 사제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들을 두고 비난하는 주변의 시선에 힘 들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이들은 스승 싯다르타에게 질문을 한다.
신분에 대한 문제, 신분이란 아집의 결정체다. 내가 귀족이니까 귀족으로 존재해야한다는 그 욕망은 싯다르타에겐 하나의 아집이다. 귀족이 수도자가 된 것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 아집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함이다. 싯다르타는 귀족 신분임에도 수도자가 된 자신의 처지로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주 자체가 아집으로 우울한 공간이 되어 버린 우주 슬픔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결국 신분이란 것도 아집의 결정체임을 보이려 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크다. 그 한 질문에서 우주의 시원을 다루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고전적인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황과 같은 조선 선비들의 글도 그렇다. 이들은 인간을 우주와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사의 문제들도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방대하지 않은가? 우주의 성립에서 중생들이 보이는 집착, 그 집착에서 아집이 생기고 그 아집을 통제하기 위하여 왕과 같은 사회의 신분들이 생긴다.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작은 행위와 한 사회의 일면도 거대한 우주론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번 읽어보자.
“붓다는 사밧티 시 근처의 풉바라마 동산에 있는 미가라마타의 강당에서 지내셨다. 하루는 노천을 거닐고 있으신데, 바라드바자와 바셋타라는 어린 두 제자가 다가와 자신들의 고민을 여쭈었다. 그 고민이란 사제출신으로 출가하였거니와 사제계급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범신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높은 종족이 가장 비천한 신분을 ��택하였다고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붓다는 출생이란 그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스스로가 지은 업에 의하여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설하였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것은 법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우주의 역사를 찬찬히 알려주시며 제시하셨다.
우주가 시작할 때, 중생들은 빛을 내며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그 우주가 깨어지게 될 때, 화신(Abhassara)이 하늘에서 떨어져 어떤 중생들은 이곳에 오게 되고 여기에서 또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때 이곳을 태초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고, 온통 물로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지난 뒤 물 위에 평평하고 맛있는 땅이 나타났다. 어떤 침착하지 못한 중생이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는 그것에 집착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는 맘이 들어갔다. 이어 모든 중생들이 손으로 흙덩어리를 만들어 땅을 먹었다. 그러자 중생들에게 스스로의 빛은 사라지고 달과 해 및 별이 나타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맛있는 땅은 사라지고 조금 맛이 덜한 땅이 나타났다. 또 그런 식으로 더 맛있는 나쁜 땅이 나타났다. 또 집착하여 먹기만 하자 먹을 수 있는 땅은 사라지고 맛있는 쌀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베어 먹으면 저녁에 자라서 익어있고, 저녁에 베어 먹으면 아침에 또 자라서 익어있었다. 이 쌀을 오랫동안 먹자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자 탐욕이 생겼고, 몸에 열이 생겼고 성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옳지 않게 여겨 음행을 행하는 자는 한두 달 마을에서 추방하였다. 그러자 음행을 숨기기 위해 집을 지어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그리고 수고를 덜기 위하여 쌀을 저장하게 되었다. 그러자 좋은 쌀은 사라지고 나쁜 쌀이 나타났다. 나쁜 쌀이나마 나누어 먹기 위해 경계를 설치하였다. 그러자 도둑질하는 놈들이 생기고 사기 치는 거짓말쟁이들이 생겼다. 정확한 처벌을 위해 보다 강하고 잘 난 자가 왕으로 선발되었다. 여기에서 왕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나쁜 법을 스스로 없애기 위하여 걸식하고 이치에 맞고 바른 일을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사제들이다. 그리고 음행을 계속하면서 떨어져서 생업에 종사하는 무리가 생겼다. 그들이 서민이다. 그리고 작고 잔인한 일만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노예이다.
이러한 네 가지 무리들 중에 자기 스스로의 방식을 싫어하여 출가 수행하는 자가 생겼다. 이들이 수행자이다. 이들 다섯 무리는 출생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짓는 업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 그리고 일곱 깨달음의 인자를 닦아 열반을 얻으니 이렇게 하여 해탈한 붓다의 제자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설하셨다.”
우주에 중생들은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런데 집착하고 애착이 생기면서 빛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땅에 내려와서도 집착하고 애착하며 살아가다가 온갖 ���회의 악행이 생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계층도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과 애착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 수행자들이다. 싯다르타의 우주론, 우주는 아집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빛을 내려 날아다니던 중생은 그 아집 때문에 지금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 서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게 되었다. 신분이 생기고 사회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이 글은 무슨 의미일까? 물리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시제로 이 글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적 시제는 여전히 현재형일 수 있다. 과연 모든 우리 사회의 악행이 아집과 무관한가? 소유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어쩌면 이 고전과 함께 생각해 볼 것이 많을지 모르겠다.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유지승 씀
싯다르타, 우주의 시작을 설하다 싯다르타, 우주의 시작을 설하다 (Aggañña sutta) <세기경>(世紀經)은 고전이다. <아함경>(阿含經)의 한 부분이다. 다양한 전승이 있지만, 여기에 그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려 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시작에 대한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싯다르타의 우주론이다. 그렇다고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는 현대천체물리학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은 아니다. 그러한 우주론에 익숙한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현대생물학의 관점에서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도 않으면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이 고전은 무가치한 글인가? 그렇지 않다. 이 고전은 매우 가치가 높은 글이다.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읽는 방식에 따라서는 과연 어떠한 삶이 행복을 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가능하다. 또 읽기 방식에 따라서는 물리적 우주가 아닌 우리네 삶 속에 느끼는 온갖 아픔의 기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상을 만들기 위하여 읽는다. 그러면 한번 이 고전에 다가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 보자.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엔 신분제 사회였다. 예를 들어, 조선엔 양반이란 권력 계급이 있었다. 반면 백정과 같은 천민 계급도 있었다. 미국엔 백인과 흑인이 주인과 노예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싯다르타가 살던 시간과 공간에서도 신분제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두 명의 제자가 싯다르타에게 신분제 사회에 대하여 질문한다. 스스로 사제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들을 두고 비난하는 주변의 시선에 힘 들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이들은 스승 싯다르타에게 질문을 한다. 신분에 대한 문제, 신분이란 아집의 결정체다. 내가 귀족이니까 귀족으로 존재해야한다는 그 욕망은 싯다르타에겐 하나의 아집이다. 귀족이 수도자가 된 것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 아집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함이다. 싯다르타는 귀족 신분임에도 수도자가 된 자신의 처지로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주 자체가 아집으로 우울한 공간이 되어 버린 우주 슬픔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결국 신분이란 것도 아집의 결정체임을 보이려 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크다. 그 한 질문에서 우주의 시원을 다루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고전적인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황과 같은 조선 선비들의 글도 그렇다. 이들은 인간을 우주와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사의 문제들도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방대하지 않은가? 우주의 성립에서 중생들이 보이는 집착, 그 집착에서 아집이 생기고 그 아집을 통제하기 위하여 왕과 같은 사회의 신분들이 생긴다.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작은 행위와 한 사회의 일면도 거대한 우주론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번 읽어보자. “붓다는 사밧티 시 근처의 풉바라마 동산에 있는 미가라마타의 강당에서 지내셨다. 하루는 노천을 거닐고 있으신데, 바라드바자와 바셋타라는 어린 두 제자가 다가와 자신들의 고민을 여쭈었다. 그 고민이란 사제출신으로 출가하였거니와 사제계급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범신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높은 종족이 가장 비천한 신분을 선택하였다고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붓다는 출생이란 그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스스로가 지은 업에 의하여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설하였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것은 법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우주의 역사를 찬찬히 알려주시며 제시하셨다. 우주가 시작할 때, 중생들은 빛을 내며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그 우주가 깨어지게 될 때, 화신(Abhassara)이 하늘에서 떨어져 어떤 중생들은 이곳에 오게 되고 여기에서 또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때 이곳을 태초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고, 온통 물로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지난 뒤 물 위에 평평하고 맛있는 땅이 나타났다. 어떤 침착하지 못한 중생이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는 그것에 집착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는 맘이 들어갔다. 이어 모든 중생들이 손으로 흙덩어리를 만들어 땅을 먹었다. 그러자 중생들에게 스스로의 빛은 사라지고 달과 해 및 별이 나타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맛있는 땅은 사라지고 조금 맛이 덜한 땅이 나타났다. 또 그런 식으로 더 맛있는 나쁜 땅이 나타났다. 또 집착하여 먹기만 하자 먹을 수 있는 땅은 사라지고 맛있는 쌀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베어 먹으면 저녁에 자라서 익어있고, 저녁에 베어 먹으면 아침에 또 자라서 익어있었다. 이 쌀을 오랫동안 먹자 ��성과 여성의 구별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자 탐욕이 생겼고, 몸에 열이 생겼고 성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옳지 않게 여겨 음행을 행하는 자는 한두 달 마을에서 추방하였다. 그러자 음행을 숨기기 위해 집을 지어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그리고 수고를 덜기 위하여 쌀을 저장하게 되었다. 그러자 좋은 쌀은 사라지고 나쁜 쌀이 나타났다. 나쁜 쌀이나마 나누어 먹기 위해 경계를 설치하였다. 그러자 도둑질하는 놈들이 생기고 사기 치는 거짓말쟁이들이 생겼다. 정확한 처벌을 위해 보다 강하고 잘 난 자가 왕으로 선발되었다. 여기에서 왕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나쁜 법을 스스로 없애기 위하여 걸식하고 이치에 맞고 바른 일을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사제들이다. 그리고 음행을 계속하면서 떨어져서 생업에 종사하는 무리가 생겼다. 그들이 서민이다. 그리고 작고 잔인한 일만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노예이다. 이러한 네 가지 무리들 중에 자기 스스로의 방식을 싫어하여 출가 수행하는 자가 생겼다. 이들이 수행자이다. 이들 다섯 무리는 출생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짓는 업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 그리고 일곱 깨달음의 인자를 닦아 열반을 얻으니 이렇게 하여 해탈한 붓다의 제자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설하셨다.” 우주에 중생들은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런데 집착하고 애착이 생기면서 빛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땅에 내려와서도 집착하고 애착하며 살아가다가 온갖 사회의 악행이 생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계층도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과 애착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 수행자들이다. 싯다르타의 우주론, 우주는 아집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빛을 내려 날아다니던 중생은 그 아집 때문에 지금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 서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게 되었다. 신분이 생기고 사회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이 글은 무슨 의미일까? 물리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시제로 이 글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적 시제는 여전히 현재형일 수 있다. 과연 모든 우리 사회의 악행이 아집과 무관한가? 소유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어쩌면 이 고전과 함께 생각해 볼 것이 많을지 모르겠다. 토마스철학학교 허수당 유지승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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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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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
사상(思想)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생각이 담긴 고전(古典)이란 것을 읽고 또 읽는다. 심지어 라틴어로 쓰인 고전을 독일어 번역으로도 읽고, 영어나 프랑스어 번역으로 다시 읽으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기도 한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그 글이 쓰인 시점은 과거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체로 그로부터 수 천 년 혹은 수 백 년 적게는 수 십 년 후대의 사람들이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너무나 다른 시간과 장소를 살아간 이의 고민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고 있는가? 왜 지금 우린 공자(孔子)와 노자(老子)를 읽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플라톤(Platon)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윌리엄 오캄(William Ockham) 등의 글을 읽는 것인가? 이게 무슨 도움이 되다고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살던 시대는 인터넷이란 존재 자체를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길을 걸으며 연인이 키스를 하고 서로의 엉덩이에 손을 올리며 애정을 확인하는 시대도 아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섹스도구를 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주식(株式)이나 자본주의 혹은 후기자본주의… 등에 대한 고민이 있지도 않은 시대였다. 공자와 노자의 시대도 다르지 않다. 대의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이러한 체계 자체를 상상도 하지 못 하던 시대이며, 남여의 법적 평등이 지금과 같이 상식이 되어 버린 시대도 아니었다. 이렇게 이들이 살던 시대는 우리의 지금과 너무나 다르다. 도덕에 대한 입장도 다르며, 자본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상황에서 쓰인 고전을 굳이 왜 읽는가? 그냥 과거의 생각이라면 고생물학자들이 공룡화석을 보듯이 그렇게 고전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오랜 과거의 유적을 탐구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고전을 보는 것인가? 과거에 이런 생명체가 혹은 이런 건축이 있었다는 것을 연구하려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으로 고전을 보는 것인가? 즉 과거의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것인가? 그것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 이유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읽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왜 고전을 읽는가?
고전은 일종의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그 고전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은 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소개한다. 그리고 독자는 나에게 묻는다. 동의하느냐고 말이다. 동의한다면 어떤 식으로 동의하는지 거부한다면, 왜 거부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독자인 나는 그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한다. 때론 ���하게 싸우기도 한다. 나의 생각과 많이 다르기에 때론 감정이 상하며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고전을 읽어간다. 그리고 고전을 다 읽으면 그 고전은 나에게 무엇인가 하나를 남긴다. 바로 나의 입장이다. 나의 생각이다. 고전을 자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우리의 생각이 대립하고 싸우고 수긍하고 부정하면서 독자 자신의 생각을 만들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절대 그저 과거 이야기를 아는 차원에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수동적으로 고전에 쓰인 지식을 받아드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매우 능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고전 독서란 바로 이러한 지적 생산 행위다.
조선의 한 선비가 주희의 글을 읽는다. 주희는 중국인이며 수 백 년 전에 이미 죽은 인물이다. 조선 선비들에게도 주희는 과거 인물이며, 다른 공간의 인물이다. 그러나 주희의 글을 읽는다. 하지만 절대 그냥 달달 암기하기 위하여 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 성리학’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치열하게 읽었다. 주희에게 밀리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그렇게 힘들게 그러나 매우 생산력 높은 작업을 이어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조선의 선비는 자신의 사상을 마련했다. 이렇게 이황이 가능했고, 이이가 가능했으면, 권근과 정도전 등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많은 사상들이 거대한 흐름을 구성하고 이것이 조선 성리학을 이룬다.
중세 무슬림 철학자인 이븐 시나(Ibn Sina)와 이븐 루쉬드(Ibn Rushd)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종교도 다르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고전을 너무나 철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읽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중세 무슬림 철학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서유럽에 전달되어 서유럽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서유럽의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무슬림 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이 역시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다. 암기용이나 칭송을 위하여 읽는 것도 아니다. 치열하고 철저하게 읽었다. 밀고 밀리면서 읽었다. 그 힘겨운 과정을 걸쳐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다. 이것이 중세 스콜라 철학이다.
이처럼 고전 읽기는 수동적 읽기가 아니다. 고전 읽기는 휴대폰 사용 설명서를 읽듯이 그렇게 수동적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암기하기 위하여 읽는 것이 아니다. 고전 읽기는 새로움을 낳기 위함이다. 그 새로움은 자신만의 사상 혹은 세계관 혹은 철학이다. 고전! 결국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틴어를 배우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라틴어라는 언어 ��체에 대한 관심과 언어학적인 호기심에서 라틴어를 익힐 수도 있다. 하지만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또 한문은 고전어다. 고전어란 고전에 사용된 언어를 말한다. 그렇기에 대체로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기 위해 고전어를 익힌다. 라틴어를 익히는 것도 고전을 읽어 스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에 참여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굳이 라틴어를 학습하지 않아도 번역서를 통하여 고전을 접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어를 알지 못했다. 그들도 번역어를 통하여 고전을 접할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고전어 자체라기보다는 고전을 대하는 태도다. 고전을 그냥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읽는 책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며 인문학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과정이다. 생산적인 창조 행위다.
만�� 지금 자기만의 세상을 살고 싶다면! 당장 고전을 집어 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것이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다.
싯다르타, 우주의 시작을 설하다
(Aggañña sutta)
<세기경>(世紀經)은 고전이다. <아함경>(阿含經)의 한 부분이다. 다양한 전승이 있지만, 여기에 그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려 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시작에 대한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싯다르타의 우주론이다. 그렇다고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는 현대천체물리학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은 아니다. 그러한 우주론에 익숙한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현대생물학의 관점에서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도 않으면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이 고전은 무가치한 글인가? 그렇지 않다. 이 고전은 매우 가치가 높은 글이다.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읽는 방식에 따라서는 과연 어떠한 삶이 행복을 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가능하다. 또 읽기 방식에 따라서는 물리적 우주가 아닌 우리네 삶 속에 느끼는 온갖 아픔의 기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상을 만들기 위하여 읽는다. 그러면 한번 이 고전에 다가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 보자.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엔 신분제 사회였다. 예를 들어, 조선엔 양반이란 권력 계급이 있었다. 반면 백정과 같은 천민 계급도 있었다. 미국엔 백인과 흑인이 주인과 노예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싯다르타가 살던 시간과 공간에서도 신분제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러한 사회에서 두 명의 제자가 싯다르타에게 신분제 사회에 대하여 질문한다. 스스로 사제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들을 두고 비난하는 주변의 시선에 힘 들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이들은 스승 싯다르타에게 질문을 한다.
신분에 대한 문제, 신분이란 아집의 결정체다. 내가 귀족이니까 귀족으로 존재해야한다는 그 욕망은 싯다르타에겐 하나의 아집이다. 귀족이 수도자가 된 것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 아집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함이다. 싯다르타는 귀족 신분임에도 수도자가 된 자신의 처지로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주 자체가 아집으로 우울한 공간이 되어 버린 우주 슬픔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결국 신분이란 것도 아집의 결정체임을 보이려 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크다. 그 한 질문에서 우주의 시원을 다루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고전적인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황과 같은 조선 선비들의 글도 그렇다. 이들은 인간을 우주와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사의 문제들도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방대하지 않은가? 우주의 성립에서 중생들이 보이는 집착, 그 집착에서 아집이 생기고 그 아집을 통제하기 위하여 왕과 같은 사회의 신분들이 생긴다.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작은 행위와 한 사회의 일면도 거대한 우주론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번 읽어보자.
“붓다는 사밧티 시 근처의 풉바라마 동산에 있는 미가라마타의 강당에서 지내셨다. 하루는 노천을 거닐고 있으신데, 바라드바자와 바셋타라는 어린 두 제자가 다가와 자신들의 고민을 여쭈었다. 그 고민이란 사제출신으로 출가하였거니와 사제계급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범신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높은 종족이 가장 비천한 신분을 선택하였다고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붓다는 출생이란 그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스스로가 지은 업에 의하여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설하였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것은 법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우주의 역사를 찬찬히 알려주시며 제시하셨다.
우주가 시작할 때, 중생들은 빛을 내며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그 우주가 깨어지게 될 때, 화신(Abhassara)이 하늘에서 떨어져 어떤 중생들은 이곳에 오게 되고 여기에서 또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때 이곳을 태초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고, 온통 물로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지난 뒤 물 위에 평평하고 맛있는 땅이 나타났다. 어떤 침착하지 못한 중생이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는 그것에 집착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는 맘이 들어갔다. 이어 모든 중생들이 손으로 흙덩어리를 만들어 땅을 먹었다. 그러자 중생들에게 스스로의 빛은 사라지고 달과 해 및 별이 나타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맛있는 땅은 사라지고 조금 맛이 덜한 땅이 나타났다. 또 그런 식으로 더 맛있는 나쁜 땅이 나타났다. 또 집착하여 먹기만 하자 먹을 수 있는 땅은 사라지고 맛있는 쌀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베어 먹으면 저녁에 자라서 익어있고, 저녁에 베어 먹으면 아침에 또 자라서 익어있었다. 이 쌀을 오랫동안 먹자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자 탐욕이 생겼고, 몸에 열이 생겼고 성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옳지 않게 여겨 음행을 행하는 자는 한두 달 마을에서 추방하였다. 그러자 음행을 숨기기 위해 집을 지어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그리고 수고를 덜기 위하여 쌀을 저장하게 되었다. 그러자 좋은 쌀은 사라지고 나쁜 쌀이 나타났다. 나쁜 쌀이나마 나누어 먹기 위해 경계를 설치하였다. 그러자 도둑질하는 놈들이 생기고 사기 치는 거짓말쟁이들이 생겼다. 정확한 처벌을 위해 보다 강하고 잘 난 자가 왕으로 선발되었다. 여기에서 왕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나쁜 법을 스스로 없애기 위하여 걸식하고 이치에 맞고 바른 일을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사제들이다. 그리고 음행을 계속하면서 떨어져서 생업에 종사하는 무리가 생겼다. 그들이 서민이다. 그리고 작고 잔인한 일만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노예이다.
이러한 네 가지 무리들 중에 자기 스스로의 방식을 싫어하여 출가 수행하는 자가 생겼다. 이들이 수행자이다. 이들 다섯 무리는 출생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짓는 업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 그리고 일곱 깨달음의 인자를 닦아 열반을 얻으니 이렇게 하여 해탈한 붓다의 제자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설하셨다.”
우주에 중생들은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런데 집착하고 애착이 생기면서 빛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땅에 내려와서도 집착하고 애착하며 살아가다가 온갖 사회의 악행이 생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계층도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과 애착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 수행자들이다. 싯다르타의 우주론, 우주는 아집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빛을 내려 날아다니던 중생은 그 아집 때문에 지금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 서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게 되었다. 신분이 생기고 사회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이 글은 무슨 의미일까? 물리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시제로 이 글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적 시제는 여전히 현재형일 수 있다. 과연 모든 우리 사회의 악행이 아집과 무관한가? 소유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어쩌면 이 고전과 함께 생각해 볼 것이 많을지 모르겠다.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유대칠 소장
(수 년 전의 글입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유대칠 씀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 사상(思想)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생각이 담긴 고전(古典)이란 것을 읽고 또 읽는다. 심지어 라틴어로 쓰인 고전을 독일어 번역으로도 읽고, 영어나 프랑스어 번역으로 다시 읽으며, 이런 저런 고민을 하기도 한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그 글이 쓰인 시점은 과거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체로 그로부터 수 천 년 혹은 수 백 년 적게는 수 십 년 후대의 사람들이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너무나 다른 시간과 장소를 살아간 이의 고민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고 있는가? 왜 지금 우린 공자(孔子)와 노자(老子)를 읽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플라톤(Platon)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윌리엄 오캄(William Ockham) 등의 글을 읽는 것인가? 이게 무슨 도움이 되다고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살던 시대는 인터넷이란 존재 자체를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길을 걸으며 연인이 키스를 하고 서로의 엉덩이에 손을 올리며 애정을 확인하는 시대도 아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섹스도구를 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주식(株式)이나 자본주의 혹은 후기자본주의... 등에 대한 고민이 있지도 않은 시대였다. 공자와 노자의 시대도 다르지 않다. 대의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이러한 체계 자체를 상상도 하지 못 하던 시대이며, 남여의 법적 평등이 지금과 같이 상식이 되어 버린 시대도 아니었다. 이렇게 이들이 살던 시대는 우리의 지금과 너무나 다르다. 도덕에 대한 입장도 다르며, 자본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상황에서 쓰인 고전을 굳이 왜 읽는가? 그냥 과거의 생각이라면 고생물학자들이 공룡화석을 보듯이 그렇게 고전을 보는 것인가? 아니면 오랜 과거의 유적을 탐구하는 고고학자의 마음으로 고전을 보는 것인가? 과거에 이런 생명체가 혹은 이런 건축이 있었다는 것을 연구하려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으로 고전을 보는 것인가? 즉 과거의 무엇인가를 확인하려는 것인가? 그것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 이유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읽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왜 고전을 읽는가? 고전은 일종의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그 고전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은 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소개한다. 그리고 독자는 나에게 묻는다. 동의하느냐고 말이다. 동의한다면 어떤 식으로 동의하는지 거부한다면, 왜 거부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독자인 나는 그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한다. 때론 격하게 싸우기도 한다. 나의 생각과 많이 다르기에 때론 감정이 상하며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고전을 읽어간다. 그리고 고전을 다 읽으면 그 고전은 나에게 무엇인가 하나를 남긴다. 바로 나의 입장이다. 나의 생각이다. 고전을 자신의 지식을 우리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우리의 생각이 대립하고 싸우고 수긍하고 부정하면서 독자 자신의 생각을 만들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절대 그저 과거 이야기를 아는 차원에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수동적으로 고전에 쓰인 지식을 받아드리기만 해서도 안 된다. 매우 능동적으로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고전 독서란 바로 이러한 지적 생산 행위다. 조선의 한 선비가 주희의 글을 읽는다. 주희는 중국인이며 수 백 년 전에 이미 죽은 인물이다. 조선 선비들에게도 주희는 과거 인물이며, 다른 공간의 인물이다. 그러나 주희의 글을 읽는다. 하지만 절대 그냥 달달 암기하기 위하여 읽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 성리학’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의 선비들은 치열하게 읽었다. 주희에게 밀리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그렇게 힘들게 그러나 매우 생산력 높은 작업을 이어갔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조선의 선비는 자신의 사상을 마련했다. 이렇게 이황이 가능했고, 이이가 가능했으면, 권근과 정도전 등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많은 사상들이 거대한 흐름을 구성하고 이것이 조선 성리학을 이룬다. 중세 무슬림 철학자인 이븐 시나(Ibn Sina)와 이븐 루쉬드(Ibn Rushd)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종교도 다르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중세 무슬림 철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고전을 너무나 철저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읽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중세 무슬림 철학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서유럽에 전달되어 서유럽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서유럽의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무슬림 철학자들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이 역시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다. 암기용이나 칭송을 위하여 읽는 것도 아니다. 치열하고 철저하게 읽었다. 밀고 밀리면서 읽었다. 그 힘겨운 과정을 걸쳐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다. 이것이 중세 스콜라 철학이다. 이처럼 고전 읽기는 수동적 읽기가 아니다. 고전 읽기는 휴대폰 사용 설명서를 읽듯이 그렇게 수동적으로 무엇인가 배우고 암기하기 위하여 읽는 것이 아니다. 고전 읽기는 새로움을 낳기 위함이다. 그 새로움은 자신만의 사상 혹은 세계관 혹은 철학이다. 고전! 결국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틴어를 배우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라틴어라는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과 언어학적인 호기심에서 라틴어를 익힐 수도 있다. 하지만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또 한문은 고전어다. 고전어란 고전에 사용된 언어를 말한다. 그렇기에 대체로 많은 이들이 고전을 읽기 위해 고전어를 익힌다. 라틴어를 익히는 것도 고전을 읽어 스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건설하는 과정에 참여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굳이 라틴어를 학습하지 않아도 번역서를 통하여 고전을 접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어를 알지 못했다. 그들도 번역어를 통하여 고전을 접할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고전어 자체라기보다는 고전을 대하는 태도다. 고전을 그냥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읽는 책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며 인문학적인 세계를 만들려는 과정이다. 생산적인 창조 행위다. 만일 지금 자기만의 세상을 살고 싶다면! 당장 고전을 집어 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것이 내가 고전을 읽는 이유다. 싯다르타, 우주의 시작을 설하다 (Aggañña sutta) <세기경>(世紀經)은 고전이다. <아함경>(阿含經)의 한 부분이다. 다양한 전승이 있지만, 여기에 그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려 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시작에 대한 싯다르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싯다르타의 우주론이다. 그렇다고 빅뱅 이론을 이야기하는 현대천체물리학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은 아니다. 그러한 우주론에 익숙한 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이야기일 뿐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현대생물학의 관점에서 싯다르타의 이야기는 말이 되지도 않으면 과학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이 고전은 무가치한 글인가? 그렇지 않다. 이 고전은 매우 가치가 높은 글이다.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읽는 방식에 따라서는 과연 어떠한 삶이 행복을 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가능하다. 또 읽기 방식에 따라서는 물리적 우주가 아닌 우리네 삶 속에 느끼는 온갖 아픔의 기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은 배우려고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상을 만들기 위하여 읽는다. 그러면 한번 이 고전에 다가가 우리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 보자.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엔 신분제 사회였다. 예를 들어, 조선엔 양반이란 권력 계급이 있었다. 반면 백정과 같은 천민 계급도 있었다. 미국엔 백인과 흑인이 주인과 노예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싯다르타가 살던 시간과 공간에서도 신분제가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두 명의 제자가 싯다르타에게 신분제 사회에 대하여 질문한다. 스스로 사제계급으로 태어났으나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들을 두고 비난하는 주변의 시선에 힘 들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이들은 스승 싯다르타에게 질문을 한다. 신분에 대한 문제, 신분이란 아집의 결정체다. 내가 귀족이니까 귀족으로 존재해야한다는 그 욕망은 싯다르타에겐 하나의 아집이다. 귀족이 수도자가 된 것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아직도 그 아집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함이다. 싯다르타는 귀족 신분임에도 수도자가 된 자신의 처지로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신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주의 시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주 자체가 아집으로 우울한 공간이 되어 버린 우주 슬픔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결국 신분이란 것도 아집의 결정체임을 보이려 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크다. 그 한 질문에서 우주의 시원을 다루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고전적인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황과 같은 조선 선비들의 글도 그렇다. 이들은 인간을 우주와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사의 문제들도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한다. 참으로 스케일이 방대하지 않은가? 우주의 성립에서 중생들이 보이는 집착, 그 집착에서 아집이 생기고 그 아집을 통제하기 위하여 왕과 같은 사회의 신분들이 생긴다.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어찌 보면 한 인간의 작은 행위와 한 사회의 일면도 거대한 우주론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한번 읽어보자. “붓다는 사밧티 시 근처의 풉바라마 동산에 있는 미가라마타의 강당에서 지내셨다. 하루는 노천을 거닐고 있으신데, 바라드바자와 바셋타라는 어린 두 제자가 다가와 자신들의 고민을 여쭈었다. 그 고민이란 사제출신으로 출가하였거니와 사제계급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범신의 입에서 태어난 가장 높은 종족이 가장 비천한 신분을 선택하였다고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붓다는 출생이란 그 자체로 가치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스스로가 지은 업에 의하여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설하였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것은 법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우주의 역사를 찬찬히 알려주시며 제시하셨다. 우주가 시작할 때, 중생들은 빛을 내며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그 우주가 깨어지게 될 때, 화신(Abhassara)이 하늘에서 떨어져 어떤 중생들은 이곳에 오게 되고 여기에서 또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때 이곳을 태초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있고, 온통 물로 되어 있었다. 오랜 세월 지난 뒤 물 위에 평평하고 맛있는 땅이 나타났다. 어떤 침착하지 못한 중생이 땅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는 그것에 집착하였다. 여기에서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는 맘이 들어갔다. 이어 모든 중생들이 손으로 흙덩어리를 만들어 땅을 먹었다. 그러자 중생들에게 스스로의 빛은 사라지고 달과 해 및 별이 나타났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맛있는 땅은 사라지고 조금 맛이 덜한 땅이 나타났다. 또 그런 식으로 더 맛있는 나쁜 땅이 나타났다. 또 집착하여 먹기만 하자 먹을 수 있는 땅은 사라지고 맛있는 쌀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침에 베어 먹으면 저녁에 자라서 익어있고, 저녁에 베어 먹으면 아침에 또 자라서 익어있었다. 이 쌀을 오랫동안 먹자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러자 탐욕이 생겼고, 몸에 열이 생겼고 성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것을 옳지 않게 여겨 음행을 행하는 자는 한두 달 마을에서 추방하였다. 그러자 음행을 숨기기 위해 집을 지어 그 가운데서 행하였다. 그리고 수고를 덜기 위하여 쌀을 저장하게 되었다. 그러자 좋은 쌀은 사라지고 나쁜 쌀이 나타났다. 나쁜 쌀이나마 나누어 먹기 위해 경계를 설치하였다. 그러자 도둑질하는 놈들이 생기고 사기 치는 거짓말쟁이들이 생겼다. 정확한 처벌을 위해 보다 강하고 잘 난 자가 왕으로 선발되었다. 여기에서 왕족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나쁜 법을 스스로 없애기 위하여 걸식하고 이치에 맞고 바른 일을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사제들이다. 그리고 음행을 계속하면서 떨어져서 생업에 종사하는 무리가 생겼다. 그들이 서민이다. 그리고 작고 잔인한 일만 하는 무리가 생겼다. 이들이 노예이다. 이러한 네 가지 무리들 중에 자기 스스로의 방식을 싫어하여 출가 수행하는 자가 생겼다. 이들이 수행자이다. 이들 다섯 무리는 출생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짓는 업대로 과보(果報)를 받는다. 그리고 일곱 깨달음의 인자를 닦아 열반을 얻으니 이렇게 하여 해탈한 붓다의 제자는 가장 높은 것이라고 설하셨다.” 우주에 중생들은 빛을 내고 날아다녔다. 그런데 집착하고 애착이 생기면서 빛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땅에 내려와서도 집착하고 애착하며 살아가다가 온갖 사회의 악행이 생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계층도 생긴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과 애착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수행하는 이들이 수행자들이다. 싯다르타의 우주론, 우주는 아집 때문에 온갖 문제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빛을 내려 날아다니던 중생은 그 아집 때문에 지금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 서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게 되었다. 신분이 생기고 사회의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싯다르타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에게 이 글은 무슨 의미일까? 물리학적 그리고 생물학적 시제로 이 글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어쩌면 철학적 시제는 여전히 현재형일 수 있다. 과연 모든 우리 사회의 악행이 아집과 무관한가? 소유욕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어쩌면 이 고전과 함께 생각해 볼 것이 많을지 모르겠다.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유대칠 소장 (수 년 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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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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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다바노(Pietro d’abano)에 대한 단상 피에트로 다바노(Pietro d'Abano, 1257-1316)는 동시대와 후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그 작품 『철학자와 의학자의 차이들에 대한 조정자』(Conciliator differentiarum philosophorum et medicorum)을 살펴보는 것은 후기 중세와 르네상스 의학사와 이탈리아의 학풍을 이해함에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의학 이론과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사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순들을 그리고 충돌들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매우 권위를 가진 입장으로 받아드려졌다. 15세기, 정확하게는 1420년에서 40년까지 피에르 다바노의 영향이 크다는 평가가 확립되었다. 『철학자와 의학자의 차이들에 대한 조정자』가 세상에 나온 1310년 직후 이탈리아 학계는 그의 책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이를 위해 동시애 두 명의 학자인 젠틸레 다 폴리뇨(Gentile da Foligno, 1272?-1348)와 디노 델 가르보(Dino del Garbo, 1280-1327)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 둘은 모두 피에트로 다바노의 사후 그의 책을 자신의 서재에 두고 연구한 인물이다. 디노 델 가르보는 아비케나의 『의학전범』을 따라 갈레노스로의 회귀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피에트로 다바노와 아베로에스 등의 아비케나에 대한 비판을 다시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당시는 갈렌-아비케나 노선이 이탈리아 대학 의학부의 주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피에트로 다바노는 단순한 내과의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점성가로 알려졌다. 마술 역시 문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고소되었다. 이러한 의사 외부적인 요소들도 그의 의학을 있는 그대로 평가 받기 힘들게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피에트로를 어떤 식으로 아베로에스주의자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현재 다양한 입자이 있다. 그는 지성단일성론을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경우 파두아 아베로에스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것이 여러 오해가 있다 해도 말이다. 여러 이유에서 1420년에 이르러 그리고 16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그의 책이 세상에 널리 펴지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1316년 그는 이단으로 옥중에서 세상을 떠난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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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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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의사들의 병에 대한 접근...진지하지 않은 나의
중세 의사들의 병에 대한 접근…진지하지 않은 나의
중세의사들의 병에 대한 접근… 잡소리…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중세 후기 의사들이 병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지를 흥미있는 질문이다. 어떤 병인지 진단하고 그 병의  원인의 규명함에 있어서 중세에서 15세기와 16세기까지 이어진 갈등이 있었다. 갈레노스의 주장에 따라 질병은 4가지 체앵의 불균형으로 발생한다는 것과 이와 달리 어떤 초자연적인 개인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두 가지 입장 사이의 갈등이다. 중세 후기 체코 지방의 의학서를 통하여 당시 의학자들이 질병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란 일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특히 대학의 의학부에서 교육되지 않은 의사들은 전체적인 건강 유지의 방법이 특정의 질병 증상을 찾고 검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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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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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주의자는? 1474년 비판의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들은 엄밀히 '유명론자'라는 이름이 아니라, '혁신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적절하다. 물론 이러한 혁신의 분위기를 주도한 인물들은 대체로 유명론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오캄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이 아닌 인물들이 뒤따라 거론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오캄주의자란 정말 존재했을까? 스스로를 오캄의 노선을 따라 철학한다는 사람이 존재했을까? 그러나 유명론자들 가운데도 오캄과 다른 존재론적 세밀화를 그리는 이들이 많았다. 유명론자라고 해도 그 세밀한 그림에서 그려진 모양은 달랐다. 그럼에도 단지 유명론이란 이름으로 싸잡아 오캄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고 해야할까? 그럴 수 없다. 오캄주의자라는 말은 사실 쉽지 않다. 1330년에서 1474년에 이르는 여정 동안 오캄 혹은 오캄주의자라는 말은 논박의 수단이 되었다. 오캄은 1317년에서 1319년 신학을 가르쳤고, 1319년에서 1324년 철학을 그리고 다시 1327에서 1330년 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의 평탄하지 않은 삶 처럼 그는 곧 단죄의 대상이 된다. 1330년 오캄은 단죄된다. 1339년 그의 이름은 파리대학에서 금지된다. 1346년과 1347년 그의 작품 일부는 금지된다. 하지만 그의 사후 오캄의 영향력은 확대된다.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 심지어 이탈리아로 확대된다. 그의 철학을 금지한 파리대학에선 15세기 초반 오캄주의자가 대학의 총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474년 다시 파리대학은 오캄의 노선을 금지한다. 1474년과 1481년에도 오캄의 노선은 금지에 목록에 올라가고 이때는 뷔리당도 명단에 올라간다. 또 가브리엘 빌의 <명제집 주해>는 오캄의 정신에 따라 작성된 것임을 표기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루터는 신학의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넓게 가브리엘 빌과 루터도 오캄의 노선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리고 분명 그 영향력은 있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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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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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t), 개신교 스콜라학자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t), 개신교 스콜라학자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t), 개신교 스콜라학자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정리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Petrus van Mastricht)는 위트레흐트(Utercht) 대학의 신학 교수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철학적 근거를 두면서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모색한 일종의 절충형 철학(philosophia eclectica)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신앙과 이성 사이의 관계 문제였다. 그는 성서는 인간 이성의 지침이 되면서 성서에서 채택되고 있는 신학으로 정비된 원칙을 다른 여러 학문이 원리 혹은 토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성의 역할은 없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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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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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가 생각한 성직자와 교회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가 생각한 성직자와 교회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
평화의 수호자 가운데 발췌 번역 유대칠(오캄연구소 & 토마스철학학교)
“주교 혹은 교회라는 것 자체가 성서의 말씀에 따라 다른 이들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이라거나 혹은 더 우월하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와 신앙의 근본은 신이 직접 만든 질서와 성서 혹은 진리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교 한 분 뿐입니다. 사도도! 주교도! 사제도! 그런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멋진 말이다. 나도 중세 정치학 저작들을 발췌 번역하고 풀이한 부분들이 많다. 나의 책에 뺄 것은 빼고 들어갈 것은 들어가겠지만, 중세 정치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될 때, 빼낸 부분도 활용되리라 믿는다.
지금 목사나 신부가 마치 신의 자리에 서 있는 듯이 군림하는 모습을 본다. 말은 봉사자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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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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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철학학교 유학장의 함석헌 읽기 1 "사랑은 구체적인 생명활동이요, 결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종교도 구체적인 것이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론 보편적인 진리이지만, 보편적이기에 반드시 추상적인 필요는 없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 몇 단어를 두고 제법 긴 시간 동안 함석헌을 이야기했었다. 유익하게 남았다는 학생들이 있어 다행이다 싶다. 구체와 추상, 개체와 보편이 나뉘지 않는 현상이 사랑이다. 추상으로 있을 뿐 구체가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한 구체만도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추상이 아닌 보편성, 그것이 사랑의 존재론적 특징이다. 대치리우스가 읽은 함석헌은 그랬다. 아래 사진은 광주 구 전남도청 1980년 5월의 슬픔이 머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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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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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YXBw9IUmQI에서)
오캄연구소 유대칠 소장이 짓다철학학교에서 시작한 중세철학 강의의 첫 시작입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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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aechilyus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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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1일
오늘 정 프란체스코 수녀님은 동촌 성모유치원으로 떠나셨다. 수녀는 정년이 없다는 말과 함께 70의 나이를 넘어서는 사랑을 한결이에게 보여주신 수녀님과의 이별이 있었다. 한결이에게 소중한 유치원의 기억을 남겨주신 수녀님과 선생님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기고 싶다. 2016년 3월 오캄연구소의 달빛 글방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나의 능력이 문제다. 최선을 다하자! 책도! 정말 최고의 책이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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