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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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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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Our_Gang_(novel) )
트리키: 음, 애슬릭 기자, 마틴 루서 킹은 물론 매우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우리 모두 그 점을 반드시 인정해야죠. 킹은 평등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동족을 이끈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저는 그가 역사에 한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하지만 그가 저와는 달리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점, 저와는 달리 헌법에 의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이 중요한 차이점을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는 저는 킹 박사가 헌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미 세상에 태어난 하나의 종족을 위해 성취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 나라 전체의 태아들을 위해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킹 박사를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사실을 밝히는 겁니다. (p26)
트리키: 그러나 그것 말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폭력적인 오 개월짜리 아이들이 배 속에서 미국 여성들에게 발길질을 해대는 상황을 미국 정부가 가만히 앉아서 두고 보기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미국의 태아들이 대체로 그 어느 나라의 태아들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통령이 언급한 폭력적인 소수가 문제입니다. 부통령이 그들을 특유의 열렬한 표현으로 '골칫거리'라거나 '불평분자'라고 말한 것이 부당한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법무장관에게 그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p29)
트리키: 따라서 선거가 다가왔을 때, 더 인기 있고 멋진 이슈들을 다뤄온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이 나라의 배아들과 태아들을 위해 투쟁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 자신이 잘 기억할 겁니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면 솔직하지 못한 거겠죠. 해외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국내에서는 인종위기에 직면한 와중에 이 나라를 태아들이 자랑스럽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데 헌신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들은 기억할 겁니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그들을 위해 성취한 모든 일이 향후 언젠가 종족이나 신념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두가 태아가 되는 세상에 기여하기만을 바랍니다. 만약 제게 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인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기자 여러분.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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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키: 이해를 못 하겠군. 그 젊은 녀석들은 어떻게 나에 대해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어떻게 나에 대해서 그런 구호를 외치고, 그런 피켓을 흔드느냔 말이오. 모든 보고에서 녀석들은 시시각각 점점 더 퉁명스럽고 무례해지고 있소. 아침이 되면 역사상 가장 터무니없는 격변을 맞게 될지도 몰라. 미국 보이스카우트의 혁명!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자신감과 단호함을 되찾기 위해 헬멧을 쓰며) 그 베트남 불평분자들이 여기 의사당까지 와서 훈장을 반납한 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놈들이 팔이나 다리를 잃은 불평꾼에 불과하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남아도는 시간에 자기연민에 빠��서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놈들이잖소. 그놈들이 전쟁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놈들 중 절반이 전쟁 때문에 휠체어 신세가 됐으니.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그냥 은혜를 모르는 오합지졸이 아니오. 보이스카우트라고! (p45-46)
트리키: 목사, 이건 내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요! 미안하지만 저 친구는 정치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야. 목사가 종교를 업으로 삼았듯이. 만약 저 친구가 이런 상황에서 진실과 개 등을 써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가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한 말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오. 위대한 지도자의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의 편견과 선입견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한 의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니오. 다들 잘 알다시피 나는 퀘이커교도이니. 목사처럼 영적인 세계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하지만 사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어요. 목사와 내가 보기에 더 훌륭한 퀘이커교도가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어린 녀석 무리는 무시무시한 거짓말에 오염되어 있소. 그들의 정신을 깨우면서 동시에 대통령직의 위엄과 신망을 회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만약 이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동성애자라고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소. 옛날에 나는 앨저 히스가 공산주의자라고 용감하게 말했어요. 흐루쇼프를 가리켜 약자를 들볶는 불한당이라는 말도 용감하게 했고.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도 나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용감하게 말할 수 있소! (p59)
트리키: 그렇군…… 그렇군……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래 위기 때는 이렇게 해야지. 단호하게! 내가 내 책에서도 포파파워 장군의 심장 발작을 보면서 배운 것을 이렇게 요약하지 않았소. "단호한 행동은 위기 때 쌓인 긴장을 해소한다. 개인이 오랫동안 단호한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가장 피곤한 위기가 될 수 있다." 알겠소? 중요한 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가 아니야.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놈의 긴장이 지속되니까. 긴장이 너무 쌓이면 사람이 무너질 수 있소. 나야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무너지지 않겠지만. 이 점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오. 내 책을 읽어보면 내가 다른 것 못지않게 무너지지 않는 데에도 내 정치 경력 전부를 바쳤음을 알 수 있을 거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너질 수는 없지. 냉철하고, 자신감 있고, 단호하게. 그렇게 하겠소. 내가 동성애자라고 말할 거야! (p62-63)
트리키: 하지만 이걸 묻고 싶소, 장군. 녀석들을 체포한 뒤에 쏴야 할까, 아니면 그 전에 쏴야 할까? 물론 이건 우리가 항상 해결해야 문제지, 그렇지 않소? 군사 코치: 체포한 뒤라면 이번에도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똑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p64)
법률 코치: 장군의 전술적 지혜에 대해서는 당연히 제가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 또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인권에 환장하는 그놈들과 싸우는 것에 대해 단 한 순간도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만약 우리가 그 보이스카우트들을 체포해서 감옥에 넣기 전에 거리에서 총부터 쏜다면, 이미 말씀드렸듯이 제직원들이 불필요한 업무를 너무 많이 떠맡게 될 겁니다. 최고의 능력을 지닌 그 젊은 직원들을 그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 일에 투입할 수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전이든 뒤든, 대통령님이 어느 쪽을 선택하시든 저는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이 텔레비전에 나가 고백을 하거나 사과를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하신다면, 제가 보기에는, 대통령님의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더할 나위 없이 손상되고 법과 질서에 큰 위협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대통령님이 이 문제에 대해서, 아니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뒤로 물러나는 것 처럼 보인다면,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복지주의, 패배주의, 평화주의, 타락, 포르노, 성매매, 군중통치, 약물중독, 자유연애, 알코올 의존증, 국기 모독에 문을 열어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무단횡단만 따져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증가할 겁니다.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나라에는 우리 지도자가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움직이려고 기다리는 범죄자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트럭 E. 딕슨이 자신과 국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낌새가 조금만 있어도, 그 뒤에는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 법률 코치: (하던 말을 이어서) 아시다시피 피가 어느 정도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젊은이들을 죽이자는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말이죠. 총을 전에 쏘든 뒤에 쏘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사람을 죽일 때는 항상 피라는 요소와 맞닥뜨리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수반되는 현실이니 그냥 감수하며 살아야죠. 목사님, 지금 고개를 젓고 계시네요. 피를 흘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런 젊은이들을 죽일 때도? 그렇다면 그 방법을 말씀해주십시오. (p67-68)
군사 코치: 대통령님, 시시각각 제 분노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모든 장비가 갖춰진 이 화려하고 편안한 지하 로커룸에서 우리가 미식축구 휘장을 모두 장착하고 앉아 정의에 대해 세세한 토론을 하는 동안, 저 보이스카우트들은 제 부하들을 상대로 전투에 나설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수에게 이곳은 상아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상아탑에서야 이 사람의 권리가 어쩌고, 저 사람의 권리가 어쩌고, 바늘 끝에 올려놓을 수 있는 권리가 몇 개고 하는 이야기를 얼굴이 파래지도록 떠들어댈 수 있죠. 하지만 지금 저 밖에는 성난 보이스카우트 폭도들이 있고, 개중에는 이글스카우트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분노는 시시각각 커지고 있어요. 저는 지금 당장 놈들에게 발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트리키: 장군은 용감한 군인이고 충성스러운 미국인이오. 하지만 장군의 말에서 헌법의 기본적인 자유를 다소 무시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진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소. 나는 취임선서 때 그 자유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사람이오. 군사 코치: 대통령님, 저는 헌법을 무엇보다 존중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헌법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평생을 바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는 시한 폭탄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스카우트뿐이지만, 아침이 되면 그들 사이에 방종한 브라우니와 모험을 찾는 컵스카우트가 끼어들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제 부하들에게 이글스카우트를 쓰러뜨리라고 말하는 것과, 몸 크기가 절반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를 상대하라고 말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그 아이들은 제멋대로 뛰어다닐 거고 게다가 몸도 작습니다. 그러니 지금 같으면 그냥 평범한 거리의 학살이 될 일이, 그 아이들 때문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싸워야 하는 위험한 일로 바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 병사들이 서로를 향해 오인 사격을 하는 바람에 심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p76-77)
트리키: 아, 짐수레! 가두시위! 그런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소. 그런 방식은 실패가 없지. 워싱턴에서 가두시위가 시작되면, 여길 떠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난 대통령이야. 여기가 내 집이고. 그런데도 전국에서 시위대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방을 챙겨서 헬리콥터에 올라 떠나야 하는 사람은 나라고! 솔직히 여기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집이 있는데, 나는 인생의 절반을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며 보내고 있소. 대통령이 사실상 오 분 대기조처럼 연락이 오자마자 필요한 걸 전부 서류가방에 넣으려고 애쓰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소? 창밖에서는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모두 "빨리, 빨리요. 얼른 여기서 나갑시다. 저들이 흥분해서 우리 문 앞으로 대표단을 보내기 전에!"라고 외쳐대지. 아, 정말 끔찍한 일이오. 한번은 내가 미식축구 유니폼을 깜박 잊고 가방에 싸지 않았고, 또 한번은 스파이크 운동화를 깜박했고, 또 한번은 아예 공을 깜박 잊었소. 그래 서 그 주말이 아주 통째로 망가졌어요. 그런데 저 시위꾼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쓰지! (p88)
군사 코치: 미국 땅에 빨갱이가 2억명이나 생긴다고요? 내게 권한이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소. (p92)
교양 코치: 독창적인 분석입니다. 그래도 나는 ��신이 할리우드의 의도를 잘못 읽었다고 봅니다. 만약 베리건 형제가 전기의자에 앉게 된다면, 할리우드는 틀림없이 대규모 뮤지컬 제작에 즉시 착수할 겁니다. <나의 길을 가련다>와 비슷한 작품으로요. 그러니 그들을 죽이면 안 됩니다. 대신 그들을 감옥에 가둬두면, 대중과 영화계 거물들이 그들의 존재를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p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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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으면 아마 여러분 모두 안도하실 것 같은데, 미국의 보이스카우트는 여러분이나 저와 마찬가지로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수의 열성적인 불평분자와 혁명가 무리의 먹잇감이 된 미국 청소년 집단 중 하나일 뿐입니다. 불평분자와 혁명가 무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 즉 이 나라의 훌륭한 청소년들을 파괴해 이 나라 전체를 파괴하려고 나선 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마음으로 암에 반대합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의 구분이 없죠. 우리가 몸에서 암 덩어리를 잘라낼 때처럼 최대한 빠르고 철저하게 이런 오염원을 사회에서 잘라내지 않는다면, 심지어 보이스카우트에까지 퍼진 이 질병은 더욱더 독해져서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를 감염시킬 겁니다. 여러분의 자식들도 거기 포함될 테고요.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저는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암, 백혈병 등으로 쓰러지는 것을 한가로이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근이영양증도 여기에 추가해야겠군요. 문제는 미국의 보이스카우트가 아니라 그들을 선동해 이렇게 폭동을 일으키게 만든 자입니다. 아이들의 도덕에 손을 댄 그 자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려 하는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미국 국민 여러분, 그자는 덴마크의 친포르노 정부가 현재 피난처를 제공해주고 있는 바로 그 도망자입니다. (p154-155)
"위대한 미국인인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다수 국민이 그의 연임을 막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절대." "그렇다면 대통령님의 사망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저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만약 지금부터 대선 시기 사이에 대통령이 사망한다 해도, 그 죽음이 이 나라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사실 여러분이 언제라도 대통령을 죽은 사람 취급할 기세였던 것이 처음도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치적 죽음을 말한 거였습니다." (p169-170)
"여러분과 구문론을 놓고 고급스러운 토론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제 말은,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우리의 선거운동 계획에 눈곱만큼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뜻일 뿐입니다. 심지어 저는 대통령이 정말로 시신으로 발견되더라도, 1972년 선거에서 우리가 1968년 선거 때보다 더 큰 폭의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의장님?" "음, 우선, 이 나라의 언론이 비록 무책임하고 사악할지라도 이미 죽어서 땅에 묻힌 사람을 그가 살아 있을 때처럼 악의적으로 뒤쫓으려 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유권자들을 생각해보면, 딕슨이 살아 숨 쉬고 있을 때는 딱히 불러낼 수 없었던 연민과 온기를 죽은 뒤에는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에서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대통령님이 사망했을 경우, 그것이 대통령님의 이 미지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빈도를 따진다면, 살아 있을 때 못지않을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던 활력소인 것 같습니다. 특히 민주당에서 테디 카리스마를 내세운다면 말이죠."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의장님?" "음. 만에 하나 트릭 E. 딕슨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카리스마의 매력이 크게 깎일 겁니다. 대통령 후보의 형제 두 명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도 중요하지만, 현직 대통령 본인이 사망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경험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이 사망 이슈와 관련해서 이제 여러분이 어떻게 대통령을 능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170-171)
"이봐요, 저는 미합중국 부통령의 두운법을 비판할 생각 이 없습니다. 헌법에 따라 부통령은 모든 미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두운법을 쓸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어디까지나 우리 당의장으로서 말하는 겁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죽음까지 포함해서 그 어떤 이유로도 경쟁에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죽음이니 뭐니 하는 이유로 대통령을 열외 취급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겁니다. 이 나라가 자신의 배짱을 싫어하고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를 선언해버리는 린 B. 존슨과는 다릅니다. 트릭 E. 딕슨을 그냥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평생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익숙해요. 또한 딕슨을 죽인다 해도 그가 선거에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전에도 우리는 딕슨이 재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정확히 똑같은 광경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굳게 기대하고 있어요. 딕슨은 유골함 안에서 전당대회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해도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딕슨은 그 정도로 헌신적인 미국인입니다." (p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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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왜 연설 도중 비밀리에 취임선서를 하셨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딕슨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들이 이 나라의 적이 퍼뜨린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시지만, 사실은 부통령님이 이미 이 나라의 새 대통령이라고 하던데요."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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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제가 그의 거짓말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짓말을 발판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위에 다른 것을 구축해야지요. 인간이든 악마든 과거에 아무리 대담한 거짓말을 했더라도 그 거짓말이 지금도 현실을 왜곡시키는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극적인 변화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대를 살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어제의 거짓말로 오늘의 문제에 혼란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백만 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겨우 일 년 전에 사람들을 현혹했던 방식으로 내년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상대 후보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지옥에 새로운 정부가 필요하다고 제가 말하는 겁니다. 새로운 뿔, 새로운 반쪽짜리 진실, 새로운 공포, 새로운 위선을 보여주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악에 대한 새로운 헌신, 완전히 타락한 세상을 실현하겠다는 꿈을 위한 계략과 책략이 필요합니다. (p239-240)
아마 사탄은 이런 행동을 '악마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어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행동이 항복이라고 봅니다. 아마 천국의 지도자들도 그렇게 보고 있을 겁니다. 오해하면 안 됩니다. 제가 그쪽을 잘 압니다. 그들의 대변자와 만난 적이 있거든요. 그들이 얼마나 가차 없고 광신적인 사람들인지 압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들의 의지에 굴복한다면, 그렇게 해서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그들의 올바름에 굴복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슬픈 오해입니다. 그런 행동은 그들의 욕망을 더 자극할 뿐입니다. 이 평화의 하느님은 그저 욥 하나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욥을 원합니다. 우리가 매번 그를 저지하지 않는다면, 그가 지옥의 문을 쾅쾅 두드려대는 날이 올 겁니다. 그래서 평화의 하느님을 달래는 일을 이제 그만둘 때가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우리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서, 인간의 마음과 가슴과 영혼을 노리는 이 전투에서 새로이 공세를 펼칠 때가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이념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자신의 이상을 지킬 의욕과 능력이 있는 대악마가 필요합니다. 뿔의 크기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뿔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은 우리의 삶 전체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주장, 우리의 신념에 대해 판정을 내려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입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계속 우리 편으로 묶어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편이니까요. 우리가 악의 편이니까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만약 제가 대악마로 선출된다면, 악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할 겁니다. 우리 자녀들, 자녀들의 자녀들은 올바름과 평화의 끔찍한 고통을 결코 모르게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p249-250)
필립 로스 , ' 우리 패거리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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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kyoto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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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 중에 민청의 활동에 참여했지만 형식적이고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해 얼마 못가 관두고, 1968년 베트남 전쟁 반대 모임 결성 관��� 강연 기획 등으로 평화주의 학생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었다. 즉 제1세계의 전형적인 68세대였던 셈. [4] 이듬해(1969년) 9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본부를 전학공투회의가 점거한 지 3주가 지나서 기동대에 의해 봉쇄가 풀렸는데, 보름간 학교에 있었던 것 때문에 여러 죄목이 적용되어 경찰에 체포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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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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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상의 적들
글· 샤를 앙데를랭 Charles Enderlin
“우리는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이런 변화의 핵심 원인은, 이스라엘 사회 일부에 뿌리내리고 있는 종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다. 현재 이런 흐름을 이끄는 주요 인물 중 하나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요람 하조니로, 미국과 유럽의 극우파 세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하조니의 『The Virtue of Nationalism 민족주의의 미덕』은 2018년 9월에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돼 전 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특히 미국 보수주의 진영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1) 하조니는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민족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껴 2년 전에 이 책을 기획했다”라고 밝혔다. 하조니의 이 저서는 전 세계 민족주의자들의 교과서로 떠올랐으며, ‘트럼프 독트린’의 외교정책 노선을 결정했다.(2) 헝가리에서도 빅토르 오르반 대통령이 이 책의 내용을 주기적으로 인용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조니의 이론은 샤를 모라스의 통합 민족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반유대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보편주의의 거부, 계몽주의 사상,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 원칙 등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하조니는 유럽 연합에 대해 신성로마제국을 재건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의 한 형태이며, 히틀러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제국주의자였다고 주장한다.
하조니는 자신의 저서가 큰 인기를 얻자, 그 여세를 몰아 워싱턴에 에드먼드 버크 재단을 설립했다. “서구권과 그 외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족주의와 보수주의를 강화”하고자 설립한 단체다. 영국의 정치인이었던 버크는 1790년에 프랑스 혁명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 재단의 공동 대표인 데이비드 블로그는 1,000만 회원을 보유한 미국의 기독교 단체 ‘이스라엘을 위한 기독교인 연합’의 대표를 역임했다.
2022년 6월에 버크 재단은 재단이 표방하는 사상을 정리한 ‘민족주의와 보수주의의 원칙 선언문’을 발표했다.(3) 프랑스 독자들은 이 선언문을 읽으며 페탱주의를 떠올릴 것이다. 페탱이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선언문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국민 국가의 전통이란, 애국주의, 용기, 명예, 충성, 종교, 지혜, 가족, 남성과 여성, 안식일(Shabbat), 이성, 정의를 올바르고 공적으로 지향하는 데 필요한 원칙들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런 미덕들이 우리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는 보수주의자다.” ‘신과 공공 종교’라 ���명된 제4조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곳에서는 공공 생활이 기독교에 기반해 이뤄져야 하며, 국가와 공공기관 및 사설기관들은 기독교의 도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유대인과 기타 소수 민족은 보호돼야 한다.”
하조니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학부 시절부터 종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4년 봄의 어느 날 저녁, 랍비 메르 카한은 250명의 유대인 대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유대인방위연맹(JDL)을 창립한 카한은, 미국에서 테러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준비했다는 혐의로 이스라엘에서도 몇 차례 투옥된 인물이다. 카한은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제 막 이스라엘 국회(Knesset)에 입성한 참이었다. “우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중략) 랍비 카한은 우리의 삶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유대인 지도자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야 하는지 알려줬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4) 
그러나 하조니는 JDL의 폭력적인 정치적 성향에 동조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JDL의 창립자 카한은 1990년 암살당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카한의 신메시아주의는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땅에 온 것은 서구적인 국가가 아닌 유대인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서구의 일시적인 가치가 아닌 유대인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이른바 진보주의적인 사상도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해줄 수 없다.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유대 신비주의 전문가인 게르숌 숄렘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감히’ 시온주의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활동에서 메시아적인 요소를 약화시키라고 조언한 것이다. 하조니는 숄렘의 조언에 대해, 메시아적인 요소를 약화시키면 시온주의자들의 정치적 주장에서 유대교적인 모든 기반이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하조니의 다음 타깃은 텔아비브대학교의 철학과 교수 아사 카셰르다. 카셰르는 다음과 같은 주장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대 국가를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시민들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사회적 성격이 우선시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에서, 국가의 성격은 군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 엘리 정착촌에 거주하기도 했던 하조니는(현재는 예루살렘에 거주) 분노했다. “카셰르는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란 국민은 유대인이고 국가는 보편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대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는 결국 유대교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하조니의 논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이스라엘의 유대교적인 특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셈이다. 하조니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적’은 그밖에도 많다. 우선 대법원 판사인 애런 버락이 있다. 버락은 헌법 개정의 책임자이자, 유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인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다.”
이스라엘 출신의 유명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조니는 이들이 유대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평화주의 작가 아모스 오즈는 민족주의가 인류의 불행이라고 주장했고,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A. B. 예호슈아는 이스라엘이 정상 궤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그로스만은 “결함은 국가를 고결하게 만들고 따라서 국가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이스라엘 국민에게 강조했다.
미국 내 공화당원과 우파 유대인들과의 인맥을 바탕으로, 하조니는 최근 몇 년간 메시아적 랍비들과 국수주의 단체들로 구성된, 종교적 시온주의를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적 생태계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1998년에 조성된 티크바 기금(Tikvah Fund)은 부유한 미국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이런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2012년에 설립된 코헬레트 정책 포럼(Kohelet Policy Forum)은 종교적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싱크탱크로, <하레츠>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회(Knesset)를 배후에서 은밀하게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10) 이 단체의 로비 활동의 결과로 이스라엘 국회는 2018년 7월 19일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차별적 법률을 제정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유대 민족으로 구성된 국민 국가로, 유대 민족은 자주적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자연적,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권리를 이행한다.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 자주적 결정에 따라 이런 권리를 이행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유대 민족뿐이다. (중략) 국가는 유대 민족의 지역(locality) 개발을 국가적인 가치로 여기며, 지역의 조성과 강화를 촉진하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샬렘 센터가 생긴 지 24년이 지난 지금, 요람 하조니의 사상이 곧 이스라엘의 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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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olystory-blog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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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저자 : 스탠리 하우어워스
-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1940년 6월-)는 성공회 신학자이자 기독교 윤리학자이다. 사우스웨스턴 대학교를 나온 뒤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과 윤리학을 공부해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틀담 대학교를 거쳐 듀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2013년까지 신학과 윤리학을 가르쳤다. 2000-1년에는 기포드 강연을 했으며 2014년에는 애버딘 대학교의 신학적 윤리학 교수가 되었다.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미국 신학자로 꼽히며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자유주의적 그리스도교에 모두 비판적인 노선에 서 있다. 이야기 신학(narrative theology)과 후기 자유주의신학(postliberal theology)의 영향 아래 기독교 평화주의, 공공 윤리, 정치신학, 철학적 신학 분야에서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전쟁을 비롯한 모든 폭력을 죄로 규정하여 반대하는 기독교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그 실례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윌리엄 헨리 윌리몬 감리교 감독과 같이 쓴 《십계명》에서 기독교계에 기도를 부탁함으로써 진보적인 지식인들로부터 인도주의적 제국주의, 종교적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비평을 받은 이라크 전쟁을 하느님의 뜻에 의한 전쟁이라는 종교적 논리로 정당화하려고 한 감리교도 조지 부시에 대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신성모독자라고 비판하였으며[3],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을 위한 기도문을 작성함으로써 이라크 전쟁에 동조한 기독교 우파들에 대해서도 잘못된 전례(Liturgy)는 잘못된 윤리를 낳는다고 비판함으로써,미국 보수 기독교계의 폭력성과 부도덕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 "나는 기독교 신학자다. 사람들은 내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른다. (중략) 그러나 내가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사는 법을 배울 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 된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하나의 아이 375쪽)
—— 책 요약과 질문
1. 변한 세상
- 콘스탄틴누스식으로 교회와 세상을 하나로 묶었던 낡은 통합은 힘을 잃게 되었다.
Q: 변한 세상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옛신학과 옛관습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Q: 변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저항/타협/진보의 분별과 실천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가?
2. 올바른 신학적 질문들
- 설교자란, 고대의 낡은 세상인 성서와 새롭고 실제적인 세상인 현대 사이에 가로놓인 넓고 깊은 공백을 영웅적으로(���언자적으로) 연결하는 사람이다.
Q: 나는 어떤 설교자(메신저)인가? 어떤 설교자이고 싶은가?
3. 새로운 이해인가, 새로운 삶인가
- 바르게 산다는 것은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전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도전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일어난 큰 변화에 동조해 사는 새 백성을 세우는 것이다.
Q: 정치적으로 도전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Q: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의 정치적 과제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가?
4. 불신앙의 정치
- 세속적 휴머니즘에 맞서기 위해 공립학교에서 기도소리가 울려 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사고들은 콘스탄틴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며, 역설적이게도 불신앙의 문화를 승인하는 것이다.
Q: 한국 기독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신앙의 정치는 무엇인가?
Q: 그것들은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5. 사회 전략인 교회
- 나치 독일 때, 교회는 너무나 자발적으로 “세상에 봉사”했다. 나치즘 앞에 교회가 굴복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랐어도, 최소한 참된 것을 말해야 한다는 소명을 품었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백교회였다.
(1) 행동주의 교회 - 교회 개혁 보다는 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회 구조를 인간화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 회심주의 교회 - 개인 영혼에 초점을 맞추며, 오직 내적인 변화만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세상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자체의 사회 구조라든가 개인적인 사회 윤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3) 고백교회 - 개인의 정신을 바꾸거나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도록 결단케 하는 데 힘쓴다. 고백교회가 말하는 회심이란, 세례를 받아 새로운 백성, 즉 대안적인 폴리스이자 교회라 불리는 대항문화적인 사회 조��체에 접붙여지는 긴 과정을 의미한다.
Q: 우리 교회는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Q: 몰락해 가는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 싸워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결론 : 성경은 일차적으로 한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인간 실존에 관한 기록이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조각난 부분들을 모으시고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무엇인가 의미를 지니는 일관된 이야기로 만드시는 것을 본다. 흥미롭게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육신의 형이상학에 관한 교리적 사변으로, 즉 복음서 기사에서 추론된 기독론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와 그의 삶에 매혹되어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복음서 저자들은 그들이 몸소 실천한 삶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고 훨씬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방식을 사용해 우리가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훈련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지 않고서는 그를 알 수 없다.
Q: 나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Q: 성경읽기의 진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Q: 나는 예수를 어떻게 따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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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felllov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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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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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기권: 이것들은 프리스크가 진엔딩, 즉 평화주의(모든 사람이 살아남는) 루트를 달성한 후의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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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라색 언더펠, 너무 좋아요!!! 더 하실 건가요? 더 안 한다고 하신다면 당신을 이해하고 진정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보라색과 검은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건 정말 신나네요! A: 네, 나중에 더 많이 진행할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게 최종 디자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디자인이 기존의 언더펠 디자인과 너무 가깝지 않은지 연구하고, 또 확인해봐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 디자인을 위해 다른 창작자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고, 단지 언더펠의 등장인물들이 인간 세상에 올라간 후에 그들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저만의 표현을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느끼는 중요색은 "인디고/ 마젠타/ 라벤더와 유사한 색상들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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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는... 이해가 안 돼요. 보라색 언더펠은 모든 캐릭터를 위한 영원하고 새로운 디자인인가요? 아니면 그냥 당신이 만들어낸 변형인 건가요? A: 보라색 언더펠은 "언더펠 프리스크가 진짜 평화주의자 루트를 달성한 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언더펠AU 전체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만 "영원히 행복한" 환경에서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제 아이디어일 뿐이죠. 기존의 빨간색 언더펠 디자인은 새로운 보라색 언더펠 디자인(최종은 아님)과 공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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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평화주의자 루트 디자인은 최종 디자인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제가 나중에 연구하고 싶은 영역의 일부 개념일 뿐입니다. 그 디자인들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게 "공식"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FAQ(원문/번역)를 읽어 주세요. 이 블로그에서 "공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입장을요. 마지막으로 참고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 저는 커플링에 대한 질문이나 어떤 커플링에 관한 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블로그에서 커플링을 언급하지 않을 거거든요. 저는 단지, 조금 관대해지고 싶었던 마음에 소소한 포스트를 올렸을 뿐이에요. 유일한 """"""""공식"""""""" 커플은 알파인(알피스x언다인) 뿐입니다. 같은 말을 5번 넘게 한 것은 저도 알지만, 제가 빨간 언더펠 디자인을 최근의 보라색 디자인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오해를 풀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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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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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의 공동체주의? 『3.1 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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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기념 한일공동연구
이태진, 사사가와 노리카쓰 공편
지식산업사, 2019
- 사건은 언제나 가능성의 지평 위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발생한 사건은 그 사건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모든 이들의 내면에 의미 시스템을 변형시키고, 다시 새로운 사건을 위한 가능성의 한 계기로 작동한다. 역사는 그���서 언제나 가능성과 우발성 위에 자리잡은 구체성이다. 거대 담론은 이 가능성과 우발성의 공간에 ‘합법칙성’을 놓음으로써, 영원히 안정된 ‘혁명의 대수학’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구체적 사건과 마주할 때마다 이 대수학은 어떤 답도 못 내놓는 공소한 기념비임을 확인한다. 기념비는 되새김을 위해 필요하지, 대책을 위한 지침이 될 수는 없다.
- 3.1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풍부해지면서, ‘역사적 사건’으로써의 구체성은 풍부 해진다. 한국역사연구회의 『3.1 민족해방운동 연구』는 3.1 민족해방운동을 민중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33인에 의한 상층 지도부의 운동, ‘평화주의 운동’이라는 관점에 머물렀던 3.1 민족해방운동이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대중 투쟁이며, 이 투쟁을 통해 성장한 이들이 이후 독립운동의 중요한 방향을 결정지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왜?’라는 부분에서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었다. 계급 운동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조건에서 민중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왕조에 반대하는 18세기 반봉건투쟁이 어떻게 반외세 투쟁으로 이어지는가 등등. 민중 운동이기는 하지만, 민중이 주체이면서 동시에 아직 계급적 각성이 아닌, 민족적 각성에 따른 운동으로 이해해야 적절할 것인데, 많은 연구 작업들이 사실 그 부분에서 공백이다. 18세기 폭발적인 민중운동을 ‘반봉건 투쟁’으로, 3.1 민족해방운동은 ‘반외세 투쟁’으로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투쟁의 주체들이 과연 그런 인식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다. 오히려 ‘반봉건투쟁’으로 18세기 민중운동을 이해하기에는 당시 요구했던 중요한 내용이 ‘국가의 공동체적 성격을 해치는 지방 수령과 중앙의 관료들에 대한 처벌’이며, 이는 오히려 ‘조선이 지키고 있던 고유 가치의 회복’ 요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민중운동이 갑신정변 등 개화파의 활동에 대해서 극히 적대적이었다는 점은 이런 ‘반봉건/근대’라는 개념 설정 방식을 의문시하게 한다. 만일 ‘반봉건적 성격’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이로부터 연결해서 자연스럽게 민중운동이 ‘반제 반봉건적 투쟁’으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이전 연구들 역시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 그렇게 볼 때 이태진 교수와 사사가와 노리카쓰 교수 등 한, 일 연구자들의 이 공동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접근의 단서를 제공한다. 이태진 교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종’의 재조명 작업에 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역시 고종의 ‘대한제국’ 건국과 이어지는 외세와의 대립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3.1 민족해방운동 연구의 출발점으로 작동한다. 고종의 계몽 군주로서의 노력은, 영, 정조의 개혁에서 제기된 조선 건국의 본연의 가치인 ‘民惟國本’, 즉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가치를 다시 세우려는 것으로 집중된다. 그는 사대부인 ‘대민’과 대비되는 평민인 ‘소민’을 보호하는 것이 군주의 역할이라 주장하며, 그를 위한 제도적 개혁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소민이 교육해야 나라가 강성해질 수 있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공교육 기관을 만들어 낸다. 영, 정조 이래 이런 의미에서 ‘민국’이라는 개념이 널리 사용되는데 이것은 ‘민주주의’적인 의미에 ‘민국’은 아니지만, 나라의 본에 백성이 있고, 군주는 백성이 편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그 역할이 있다는 조선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를 집약한 표현이었다.
- 이런 10여년에 걸친 ‘대한제국’의 개혁과 발전에 대한 노력은 군사력에서 압도적인 일본에 의해 점차 좌절되고 말지만, 이런 노력이 당시 조선인에게 반영됨으로써 조선 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식민지 시기 일본에 의한 동화 교육이 수용될 수 없었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책에 실린 ‘안중근 열사’에 대한 식민지 시기 소비 양상에 있어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자긍심은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치러진 고종 장례식과 맞물려 3.1 민족해방운동이 폭발적으로 전국민에게 확산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전문학교와 보통학교 등 일본이 식민지 조선의 동화정책을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에서도 3.1 민족해방운동에 폭발적인 대중 동원이 일어난 것은, 앞서 지적한 민족적 자긍심이 아니라면 쉽게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이런 작동을 생각해 볼 때, 모든 이들이 고종을 증오했다는 윤치호 계열의 독립협회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 책에서는 고종이 대중 계몽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니셔티브를 쥐고 창설했던 ‘독립협회’가 일본의 영향권에 있는 이들에게 포섭되어 오히려 왕정을 부정하는 운동을 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어, 윤치호, 이승만 등 주로 기호지역의 개신교 세력이나 개혁 세력들이 갑신 정변 이후 지속적으로 친일 세력의 핵심으로 활동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 반면 고종은 마지막 순간까지 함경도, 평안도 지역의 인물들에게 독립 투쟁의 뜻을 밝히고 있다는 점도, 이후 이동휘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의 출발을 이해하는 데도 흥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다만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
- 이상의 연구 작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지금까지의 3.1 민족해방운동 연구가 보여주었던 ‘당위론’적 접근, 민중이 왜 폭발적으로 투쟁에 나섰을까,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이후 투쟁의 방향을 결정해 나가게 되는가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인 방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민중’이라는 전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투쟁의 구체적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민중과 만날 수 없다. 이건 ‘진보적 노동자 계급’이라는 초기 노동자 운동에 대해 ‘라쌀레주의’를 비판하며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와 구체적 존재 양상인 ‘노동자’를 구분했던 마르크스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우리나라 진보 진영은 여전히 이것을 착각하고 ‘국민’이라는 존재 양상과 ‘노동자’라는 존재 양상이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국민을 비난하며 노동자를 옹호한다고 하면서, 정작 추상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위를 주장하지만.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주목할 것은 어떻게 짧은 위기의 시기, 그리고 점차로 나라가 타국에 의해 점령당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빠르게 ‘민족적 각성’을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 고종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외교적으로 해석하여 평화 운동을 통한 독립 청원의 노력도 일부 정파, 주로 미국을 이상화했던 기호지역 개신교, 개혁파들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더욱 강력한 투쟁을 조직했던 젊은 독립운동가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고종에 의해 각성된 민족적 자긍심을 통해 일제와 단호하게 맞섰던 민중들이 존재했다. 이런 복합적 양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3.1 민족해방운동이 다음 단계의 민족해방운동으로 진화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 이런 구체성의 강화 뿐만 아니라 또 하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18세기 민중운동, 특히 동학 농민전쟁과 고종의 대한제국을 통한 개혁의 방향이 사실상 동일한 사고 틀에서 벌어진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양자 모두 “백성-신료-군주”의 맹자 이래의 적극적 공동체주의에 기반한다. 그리고 양자 모두 백성이 백성답지 못하고, 군주가 군주답지 못했던 것은 ‘신료와 지방 수령’의 전횡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들이 ‘공동체’가 아닌 ‘사적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백성을 착취한다고 주장한다. 민중운동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들 관료를, 그리고 장사치들을 몰아낼 테니 군주가 그것을 인정하길 요구했고, 군주는 백성들이 교육받고 힘을 길러 ‘신료와 지방 수령’을 징치하기를 요구한다. 근대적 개혁을 서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들 민중운동과 고종의 방향은 반봉건이라 부르기 보다는 오히려 봉건 시스템의 재건에 가깝다. 그만큼 조선의 ‘공동체주의’는 사람들의 삶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는 근대적 개념을 통해 ‘근대적 주체’로서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주체로의 자립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등장과 함께 자리잡았다고 본다면, 오히려 생활 경험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삶을 희구했던 이들을 그렇게 비교해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민중 사관에서는 과도하게 스탈린 시대의 사적유물론, 역사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찾고, 생산력을 시대에 따른 근로인민에게서 찾는, 그래서 자본주의의 등장을 봉건제에 대한 농노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역사관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얼굴의 민중보다 생산력 주체인 민중을 내세운 것 아닐까. 하지만 이미 아날학파의 다양한 작업이나 아니면 G. A. 코헨 같은 연구자들에 의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가지는 복잡한 양상과 우발성 등은 충분히 지적되어 왔다는 걸 생각하면 이런 역사관, 즉 반봉건 투쟁으로서의 18세기 민중운동 혹은 동학 농민전쟁은 적확한 개념은 아닐 것이다.  
-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처럼 3.1 민족해방운동기까지 작동하던 조선의 공동체주의를 주목할 때, 서구적 개혁을 주장했던 친일적 개화파를 제외한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생겨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19세기 중반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유학의 급진적 해석이 등장하고 20세기 초에는 ‘대동’이라는 개념이 널리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젊은 유학자 그룹이 빠르게 사회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은 조선의 ‘공동체주의’라는 의미론적 시스템의 기반 위에서 ‘사회주의’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내 사회주의자들이나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민족해방투쟁’을 위한 ‘통일전선’ 구축을 당연시한 것은 어쩌면 이런 인식론적 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태진 교수의 이런 작업이 전적으로 3.1 민족해방운동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들에 구체성을 더해주는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의 건국 이념으로서의 ‘공동체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어떤 형태로 작동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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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ed0722-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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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열 #태양광 #친환경 더워서 #난닝구 차림에 식구들한테 짜증 내는것 보다는 #전기세 #세금 아니고 #전기요금 더 내고 #에어컨 시원하게 틀면서 가족이 화목 하자는게 제 생각 입니다 #평화주의 이번에 설치 했는데 얼마나 #절약 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의식 있어 보이지 않나요?ㅋㅋ #프리우스 타는 #안젤리나졸리 #헐리우드 #스타 느낌 한달에 단돈 5천원이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그게 어디에요 #미니멀리즘 #무성욕 #비건 #요즘아빠 #요즘아빠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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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lor-moons-tmblr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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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더 이상 펑크는 없다아!!!! 라는 구호를 외치며....^^;;; 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이상 평화주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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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bumsun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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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을 이끈 청년들의 신사상
“삼일운동”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유관순, 태극기, 만세운동, 일제의 탄압. 작년 삼일절, 문재인 대통령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임시정부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안중근과 이봉창, 김구와 윤봉길이 등장했고, 항일무장독립투쟁의 고난을 상기했습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짚었고, 마지막엔 김구의 소원인 문화강국을 내걸었습니다. 저는 역사학도로서 의아했습니다. 물론 하얼빈의 총성과 홍커우의 폭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1919년 3월 1일과 정확히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어째서 삼일운동의 진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여운형과 김규식 등의 신한청년당이나, 실제로 선언문을 작성한 이광수와 최남선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기억해야할 삼일운동의 하이라이트는 과연 유관순의 순국 밖에 없을까요?
저는 오늘 2019년 대한민국 청년의 시각으로 1919년 삼일운동을 이끈 청년들을 기억하려 합니다. 삼일운동은 청년운동이었습니다. 1880년대생부터 00년대생까지가 주축이 되어 기획하고, 행동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기성 세대의 봉건적 사고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구한말부터 선교사들을 통해 유입되고, 유학생들을 통해 수입된 근대 사상이 드디어 물꼬를 튼 것입니다. 서구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다분히 국제주의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세계관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그 시작부터 국제적이었습니다. 신한청년당은 상해에서 탄생했고, 대표단을 파리로 파견했으며, 이에 호응하여 도쿄 유학생들이 2.8 독립선언을, 천도교와 기독교가 3.1 독립선언을 주도한 것입니다. 당시까지 주류였던 유림이 이렇다 할 참여를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광수의 2.8 선언과 최남선의 3.1 선언에 담긴 언어는, 여전히 사서삼경에 익숙한 6, 70년대 생이 받아들이기에는 낯설고 불쾌했을 것입니다. 서재필 등 몇몇 선각자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삼일운동 백주년인 올해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피부로 느끼기에 아주 좋습니다. 저는 1991년생이라 이제 29살입니다. 최남선은 1890년생으로 기미독립선언문을 쓸 당시 30살이었고, 이광수는 92년생이라 28살이었습니다. 여운형은 86년생, 김규식은 81년생이라 여전히 “청년"이라 부를 수 있는 30대 중후반이었고, 유관순은 02년생 17살이었습니다. 박헌영, 허정숙 등 러시아 혁명의 세례를 받은 공산주의 청년들도 각각 00년, 02년 생으로 채 스무살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일찍이 해외 유학을 했거나, 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유교적, 봉건적, 가부장적 질서와는 다른, 과학적, 민주공화주의적, 여성주의적 미래를 지향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일운동은 조선 청년들의 사상적 근대화에 힘입은 일대 정신 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삼일운동을 이끈 청년들의 신사상이 크게 두 가지 의미에서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국제법에 기반한 평화운동이었다는 점, 둘째는 비폭력 평화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모두 19세기 말에야 세계사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었습니다. 그것을 19세기 말 조선에 태어난 청년들이 온몸으로 습득하여, 전국민의 10%가 참여하는 거국적 운동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그 동시대성이 경이로울 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특기할 만합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배경을 밝히고 의미를 논하는 것이 오늘 방담회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우선 삼일운동의 도화선인 신한청년당으로 가보겠습니다. 86년생 여운형은 몇몇 동지들과 1918년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세웁니다. 터키청년당 동지들에게 영감을 받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때 1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파리 강화회의로 이목이 집중됩니다. 여운형은 김규식을 파리로 보냅니다. 81년생 김규식은 어릴 적 언더우드 학당에서 공부했고, 서재필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프린스턴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귀국했다가, 다시 중국과 몽고를 돌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몽골어까지 능통한 인재였습니다. 그는 파리 강화회의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 자결주의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지배 민족이 독립하여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아주 이상주의적인 주장이었습니다. 윌슨은 국제법에 기반한 영구 평화를 꿈꿨고, 그 장치로 국제연맹을 제안했습니다. 비록 그 꿈은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와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승전국들의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국제연맹은 이후 국제연합, 즉 유엔의 모태가 됩니다.
​이때 김규식과 함께 파리에 간 선배가 있습니다. 바로 63년생 미국인 호머 헐버트입니다. 86년에 육영공원 교사로 처음 조선에 온 헐버트는 이후 배재학당에서 이승만, 주시경 등을 가르쳤고,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었습니다. 1905년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자국 대통령인 루즈벨트를 찾아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렸고, 조미통상수호조약에 근거해 미국이 조선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1907년 헐버트는 또 다시 고종의 부탁으로 이위종, 이준, 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제의 방해로 실패합니다. 베르사유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 헐버트에게는 처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1905년과 1907년, 1919년까지 헐버트의 논리는 일관되었습니다. 일제의 조선 침략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행위이니,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개입하여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엔의 도움으로 국가를 보전한 우리에게 지금은 너무도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새로운 논리였습니다.
​우리는 이 논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영구평화론입니다. 서양에서는 토마스 페인이나 임마누엘 칸트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처음 말하고, 조선에서는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에서 펼친 이 주장은 근대 전쟁의 잔학성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고대부터 전근대까지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습니다.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 준비 기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인류는 전쟁의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독가스와 기관총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도입된 세계 1차 대전은 경종을 울렸습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아니된다, 국제법에 기반한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헐버트는 국제법에 입각해 한국을 변호했습니다. 워싱턴에서도, 헤이그에서도, 파리에서도 번번히 무시당했지만, 그 신념은 한결같았습니다. 힘의 논리 앞에서 법과 도의를 외쳤다는 점에서 헐버트는 윌슨과 같았고, 삼일운동을 이끈 조선 청년들과도 한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삼일운동의 시작을 신한청년당의 파리 강화회의 파견으로 볼 때, 그것은 반드시 헤이그 평화회의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헐버트와 서재필과 김규식 등 조선 개화 청년들 사이에 퍼져 있던 국제주의적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광수의 2.8 독립선언문 논지는 간단합니다. “한일합병은 조선민족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고, 동양의 평화를 헤치기 때문에 무효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우리에게도 적용해달라.” 최남선의 3.1 독립선언문은 조금 더 나아갑니다.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 장양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하야 만물의 회소를 최촉하는도다.” 위력의 시대를 보내고 맞이하는 도의의 시대. 바로 국제법과 인도주의에 기반한 평화체제입니다. 윌슨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이광수와 최남선의 선언문은 그들의 사상과 언어가 얼마나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줍니다. 기미독립선언문은, 모든 독립선언문이 그렇듯이,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의 후예입니다. 최남선의 사상은 단군의 홍익인간 뜻이나 정약용의 실학사상보다도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 정신에 가깝습니다. 육당은 아주 계몽주의적인 심상으로 선언문을 마칩니다. “다만, 전두의 광명으로 맥진할 따름이다.” 어둠을 벗어나 빛을 향해 돌진한다. 서양의 진보주의적 역사관을 열렬히 끌어안은 조선 청년의 다짐입니다.
​이처럼 삼일운동을 이끈 청년들은 계몽주의적 사상으로 국제법 질서를 옹호할 만큼, 이미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20세기 초 식민지배를 받았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이와 같은 논리로 독립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일운동은 그 방법론에서도 아주 독보적이고 선구적이었습니다. 비폭력 평화주의를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비폭력 평화주의 내지 시민 불복종 운동의 역사는 국제법에 기반한 평화운동의 역사 만큼이나 짧습니다. 19세기 중반 철학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미국의 멕시코 침략과 노예 제도에 반대하여 납세를 거부한 것이 시민 불복종의 시작입니다. 그 작동법은 이렇습니다. 정부의 불의에 저항함에 있어 폭력을 쓰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다. 그렇게 확보한 도덕적 정당성을 세계 시민에게 알려 연대를 꾀한다. 이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여 원하는 개혁을 도출한다. 이것이야말로 봉건 사회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철저히 근대적이며 자유주의적인 운동 방식입니다. 소로우가 착안한 이 개념이 톨스토이를 통해 ��디에게, 간디를 통해 마틴 루터 킹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이 비폭력 평화운동사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인도 독립운동이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철학인 ‘사티아그라하'를 본격 채택한 것은 1920년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전국민의 10%가 넘게 동시다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습니다. 1960년대 마틴 루터 킹의 민권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삼일운동이 시기로나 규모로 보았을 때 세계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여태껏 그렇지 못했습니다. “인도인이 이토록 평화적인 자세로 독립을 원한다"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한 게 간디의 독립운동이라면 그 똑같은 이야기를 더 먼저, 더 크게 한 것이 삼일운동 아니겠습니까? 삼일운동이 제대로 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일단 서양 중심적인 역사관이 클 것이며, 간디나 마틴 루터 킹처럼 대표적인 지도자를 꼽기 힘들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전자는 고쳐야 하겠지만, 후자는 그 자체로 삼일운동의 민주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부각시켜야 합니다.
삼일운동이 어떻게 해서 이토록 선진적인 시위 방법을 택하게 되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당시 청년들이 소로우나 톨스토이의 사상에 감화된 것인지, 아니면 도저히 일제에 폭력으로 대항할 엄두를 못낸 것인지, 결론짓기 어렵습니다. 다만 당시 군중들이 미국과 프랑스 공사관을 향해 행진했다는 사실에서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국제법 질서 위에서 열강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끌어오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비폭력적인 시민 불복종의 모습을 보여야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고, 열강들로 하여금 일본을 압박하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적어도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전봉준보다 소로우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2019년 오늘, 저는 삼일운동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기억하면서 촛불혁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삼일운동의 정신이 곧 촛불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백만이 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혁명을 꾀하는, 이토록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한 대한민국 백년의 시작이 삼일운동인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삼일운동의 정신 만큼은 결국 청년들이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보았듯이 삼일운동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당시 조선에 처음 등장한, 80에서 00년대생 청년들의 국제주의적 안목이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자란 윗세대에게 그들은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대 차이는 100년 뒤 지금, 또 다른 양상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60년대생, 속칭 386 세대는 청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를 정도로 밀레니얼 세대를 두려워 합니다. 386이 가난과 독재를 딛고 일어섰다면, 밀레니얼은 부유하고 민주적이고 세계화된 대한민국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헬조선”이다, “꼰대"다, “빻았다", 하는 말들로 기성세대를 공격합니다. 그 간극이 조금은 걱정스럽습니다.
정부는 삼일절 백주년을 맞아 항일의식을 고취하여 남북 화합을 꾀하고, 김구로 대표되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려 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삼일운동의 키워드는 민족, 임정, 나아가 항일무장투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국제주의와 비폭력 평화주의를 또 다른 키워드로 제시합니다. 삼일운동을 이끈 청년들의 신사상에 주목할 때, 비로소 삼일운동의 세계사적 의미와 대한민국의 사상적 뿌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다른 분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 자리를 계기로 삼일운동의 청년정신이 더 널리 논의되고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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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urakun-lov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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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이상 평화주의 였습니다.
늘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펑크는 한번만 내는 작가가 되겠습니다....라는 쿨?nbsp
드래곤 남매 16화 여행의 시작은 고블린 퇴치부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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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gibaby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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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下鐵> 不知多少個年頭 不曾在清晨的地下鐵穿梭 擦過人來人往的肩膀 擠進密封混濁的車廂 生活就這樣開始 不知多少個年頭 不曾在黃昏日落前踏上歸家的路 趕上急促的步伐 追上擠擁的人群 工作就這樣結束 由香港區到新界南 約30-45分鐘的車程 車卡上堆滿過千人群 默默凝望發光的手機 除了疲憊的眼神 便只有沉重的呼吸 不知還有多少年頭 我還能安然地搭上地下鐵 #偽文青#有感而發#香港人#瘋人瘋語#lifestyle#stories#photoshop#creation#hker#weary#gloomy#sadface#hopefully#peaceful#beautiful#ライフスタイル#ストーリー#フォトショップ#作成#疲れた#暗い#悲しい顔#うまくいけば#美しくて悲しい#아름답고#슬픈#실루엣#모델#평화주의#창조 (at Central District, Hong Kong Island) https://www.instagram.com/p/B0Am67ihrJK/?igshid=1ayr76u6u5w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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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zukabi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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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sangseek_kim: 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당 기업은 배상금 주고 넘어가려고 한 걸 지가 일본 전범들 커버치려고 못 하게 해놓고는 뭔 얼어죽을 적극적 평화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베, 패전 75주년 행사서 '적극적 평화주의' 주장 | 다음 뉴스 https://t.co/iazZbMpvdG
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당 기업은 배상금 주고 넘어가려고 한 걸 지가 일본 전범들 커버치려고 못 하게 해놓고는 뭔 얼어죽을 적극적 평화주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베, 패전 75주년 행사서 '적극적 평화주의' 주장 | 다음 뉴스 https://t.co/iazZbMpvdG
— 김상식: 사회적 거리두기 (@sangseek_kim) August 15, 2020
via Twitter https://twitter.com/zizukabi August 15, 2020 at 03:5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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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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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종말, 『一九七二』
- 「はじまりのおわり」と「おわりのはじまり」
 坪内祐三
文藝春秋, 2006
 - ‘매일 매일이 언젠가 의미 있는 날’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이 인생을, 역사를 바꾼 거대한 변곡점이라는 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 수 있을 뿐이다. 쯔보우찌 유우소우(坪内祐三)가 쓴 이 책은 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깨달음에 대한 책이다. 부제인 “‘시작의 끝’과 ‘끝의 시작���”인 1972년에 대한 책이다.
 - 책은 우리 나라로 따지면 ‘썬데이 서울’과 ‘월간 조선’을 합쳐 놓은 듯한 ‘주간 문춘’ 등의 주간지에서 상황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를 통해 1972년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시작은 잡지 특성상 ‘성’에 대한 것에서 시작한다. 당시까지 ‘그레이 존’에 있었던 영상, 스트립쇼, 소설 등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외설 단속’을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이 잡혀갔다는 사건들, 그리고 이것에 이어져서 당시 ‘학생 운동’에서의 성 도덕에 대한 가십성 기사들, 그리고 정파간 내부 폭력, 그리고 연합적군이 벌인 ‘숙청’이라는 이름의 조직원 살해, 경찰과 부딪힌 ‘아사마 산장’ 전투, 2차 대전 패잔병의 귀환, 2차 대전 참전자의 천황 암살 기도, 해외 락 밴드의 공연 러쉬, 동계 올림픽, 좌파 펑크 밴드와 평화주의 포크 그룹들, 가정 내 범죄, 닉슨 방중, 프로 레슬링 협회의 분열 등등.
 - 정신없이 펼쳐지는 이 사건들의 궤적은 패망 이후, 일본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 일본인이 처해야 했던 수없이 많은 변화의 종점으로 이어진다. 지하에서 확산되었던 상업화된 성 문화는 ‘외설 단속’이라는 마지막 시도 이후에 전면화된다. 반면 초국가주의를 넘어서 건설하려던 사회주의의 비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투쟁의 실패 이후에 점차 폭력적 방법을 통한 해법을 찾게 되고, 이런 마지널한 변화의 끝은 ‘공산주의 인간형’으로 스스로를 개조하겠다는 명목하에 내부 숙청에 이르게 된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움직임은 ‘개인적 자유’라는 영역에 대한 위계적 통제라는 면에서는 서로 다른 주체에 의해 권력이 행사되지만, 토폴로지적으로는 동일한 구조였고, 결국 두 움직임 모두 권력 행사 주체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운동이 있다. 개인의 자유, 그리고 몸의 해방을 외쳤던 ‘락’은 해외 대형 그룹들, CCR, 핑크 플로이드, BS&T 등이 차례대로 일본을 방문하면서, 락 페스티발을 만들어 냈던 대형 회사들의 손에 의해 관리된다. 이에 대해 일본 자신의 목소리로 해방을 외치려는 시도들, ‘두뇌경찰(頭脳警察)’ 같은 펑크 밴드들도 등장했지만, 이들은 소수화한다. 반면 이런 새로운 자유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끝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무한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폭력적이 되고, 부모는 자유의 짐인 아이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개인의 자유’는 권위로부터 해방이지만, 동시에 자본에 의해서만 용인되는 ‘해방’이다.
 - 책에는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다. 어느 음악 담당 기자의 회고. 일본을 방문한 CCR 투어를 동행 취재하던 그는, 대기실에서 ‘아사마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합적군과 경찰의 대치를 보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있던 다른 이들은 경찰에 대해서 빨리 ‘연합적군을 죽여라’고 소리치면서 TV 중계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의문을 가진다. 왜 이들은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죽어라’라고 외쳤을까? 또 다른 장면은 ‘아사마 산장’에서 인질을 붙잡고 농성을 시작한 연합적군 멤버들은 산장에서 TV를 보며, ‘닉슨의 방중 외교’ 장면을 보게 되었다. 모택동의 ‘농촌 근거지 게릴라전’을 믿고, 제국주의 미국과 전쟁을 벌이기로 해서 수많은 동지들의 ‘희생’(?) 위에 경찰과 맞선 그들 눈앞에, 그 제국주의 미국과 모택동의 중국이 새로운 외교 시대를 열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 그래서 72년은 하나의 시대, 새로운 일본을 구축하려는 목적 의식적인 시도가 마지막 종언을 내린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의 끝’이다. ‘죽여라’라고 외쳤던 이들은 어쩌면 투쟁의 계속되는 패배 끝에 남은 마지막 단말마 같은 ‘연합적군’에 대해, 빨리 눈 앞에 사라지기를, 그래서 제국주의 전쟁의 패배를 잊듯, 또 다른 전쟁의 패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를 원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미타 무네스케(見田宗介)가 ‘시선의 감옥’이라고도 칭했던, 미디어를 매개로 한 새로운 소비, 자신의 자유란 그가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의 총량으로 결정되는, 공산주의자였으나 동시에 ‘세이부 백화점’을 경영하며 ‘소비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했던 츠지이 타카시(辻井 喬)의 전략을 거쳐, 90년대 『어쩐지, 크리스탈(なんとなく、クリスタル)』에서 완성된 물신성과 삶이 크로넨버그처럼 융합된 새로운 자본주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는 ‘끝의 시작’이기도 하다.
 - 많은 민중 운동이 지속되는 패배를 거친 후, 각기 다른 경로로 전화된다. 궁극적 승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패배는 쉽게 반복된다. 누구는 패배를 내재화하고, 누구는 배신한다. 일본은 ‘아사마 산장’이라는 스펙타클을 공유하고, 기억의 저편에서 삭제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도달했다. 우리는? 져도 또 싸우고, 또 져도 또 싸운다. 투쟁의 민족이라서 인지, 아니면 오구라 기조가 말한 것처럼 ‘리’를 저버릴 수 없는 민족이라 그런 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언젠가 수 없이 많은 젊은이가 절박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91년에서 지존파가 부자들을 더 죽이지 못해서 한이라고 외쳤던 93년 어딘가의 한국에 대해서 이 책처럼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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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ta03560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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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 IJ
IA 핵방사선  IB 고급직기술  IC 고급전자  ID 고급사회기술적  IE 마이크로소프트적  IF 테크공부  IG 의약학  IH 의문  II 2  IJ 허성인  IK 감탄  IL 인터루킨  IM 기업  IN 중소기업  IO 전자전산기업  IP 아마추어전산  IQ 혜택정도  IR 방사선조사정도  IS 문화수택정도  IT 전자문화수혜정도  IU 어렸을때방랑  IV 어렸을때아픔  IW 커서아픔  IX 9  IY 8  IZ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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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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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둘을 싸잡아 비판한 또 한 명의 천재 게임이론가가 있었다. 악셀로드의 반복 죄수의 딜레마 토너먼트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으로 두 번 우승한 래퍼포트가 그 사람이다. 그는 게임이론을 아무 데나 적용하는 게 아니며 전쟁에 이길 확률과 그 피해액을 누가 계산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링과 래퍼포트는 서로의 책에 대한 서평 형식으로 치졸한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평화주의 싸움꾼의 생각은 훗날 ‘핵 없는 세상’으로 발전했다. 억제에 기초한 평화는 차갑고 군비경쟁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따뜻한 평화는 어떻게 해야 올까? 그토록 오래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유럽 나라들 간의 요즘 평화는 분명히 공포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안보는, 특히 한반도 상황은 힘에 기초한 평화, 차가운 평화를 먼저 요구한다. 그러나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혹시나 해서 각각 총을 품고 사는 이웃이 어찌 행복할까?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술에 환호해서, 행여 실제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국내의 이런 반응은 감정의 에스컬레이션, 오인과 실수로 인한 전쟁의 확률을 높일 것이다. " https://en.wikipedia.org/wiki/Anatol_Rapoport?fbclid=IwAR1qzts_QRd_3JClt0cOP0OrDiNubzF61QqE_Z-B_aYUHBk2rto8hYfC5RI https://www.goodreads.com/book/show/819357.Certainties_And_Doubts?from_search=true&fbclid=IwAR0sLX6G41ixrbPG_kbzON1mEm_UphcEIDtD2hVSBcBNwz6bp-bbJVm5k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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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jfifpn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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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기대 않고 봐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자꾸, 풀고갈게 갠적으로 안녕하세요 찾아 헤매지 마세요 왜, 찾아보세요 영화감상 바로가기 속에서 엿 볼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은 나로 하여금 영화감상 약간의 안도감을 맛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고개 영화감상 를 돌렸다. divine destruction를 무리하게 써댄 성직자들은 이미 모 두 탈진상태로 기절하고 남아 있는 분들은 교황 님을 포함해 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아가씨와 세린 님만 고전하고 있었 영화감상 다. 마침내 젠트리라고 불린 남자가 몸을 날렸다. 하아압 양손에서 영화감상 빛이 발해지자 엄청난 스피드가 나타났다. 그는 분신술 을 쓴게 아닌지 착각이 들 듯한 잔상과 함께 아가씨에게 달려가 아 가씨를 상대하고 있던 하급 악마의 얼굴을 맞췄다. 하급 악마가 그 대로 날아가며 터져버렸다. 실로 엄청나지 않을 수가 없다. Do Dream. Life chapter 11 (9) 검은 성직자 저, 저 놈은 뭔가? 정말로 인간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하급 악마를 한 방에 터트리다니. 저게 정말로 인간인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마법 제국 시대 이후 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오 이게 영화감상 시작이었다. 바로 옆 나라요. 지금 그 일행이 여기 다 영화감상 와서 습격도 당했단 말이오. 강 건너 불이 아니요 뭐요? 나는 말일세,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경멸하오 도대체 발등에 불이 안 떨어지면...그딴 말뿐의 평화주의...그래, 그건 아는데, 자네가 설득을...못 한다? 아니, 영화감상 어떻게든 그들이 찬성하게만 만들어 주오. 나머지는 내 가 책임지고 영화감상 밀고 나갈 거니까... 각하, 부디 조금만이라도 도움을. 아르곤은 거의 구걸을 하다시피하는 심정이었다. 정말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절실하게 이사장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받고 있던 이사장의 말투는 계속해서 거칠어지고 있었다. 뭐, 뭐라. 다시 한 번 말해주오. 무...탄, 탄, 탄...그런 쓸데 없는 소리를 그 러니까 내가 확실히 책임을...아니, 이보게, 잠깐 이런 젠장...알겠네. 그래, 알 겠소. 고려만 좀 해 그러나 점점 갈수록 그 소리는 커져만 갔고 나는 누군가가 영화감상 장난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살을 찌뿌렸다. 누구냐 키득 키득 영화감상 키득 역시 잘못 들었던 것이 아니었어. 누군지 나와서 정체를 밝혀라 나오면 알아볼 수나 있어? 꼬마의 목소리는 울려 퍼져서 내게 들렸기에 왠지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닌 귀신이나 또는 계곡인이 그랬던 영화감상 것처럼 내 머리 속으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냐. 계곡인인가? 영화감상 계곡인? 오빠 계곡인을 만났어? 계곡인은 아닌가 보군. 사실 그 녀석이 내게 장난을 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거니와 설사 천지개벽이 일어나 서 내게 장난을 쳤다손 치더라도 절대 오빠라는 말은 안 할 터이기에 나는 다시 새로운 긴장을 하며 갑자기 내게 나타난 꼬마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인간이냐? 히잉 너무해. 그럼 내가 귀신인 줄 알았단 말야? 나 인간 맞아. 히잉. 꼬마는 마치 내가 엄청나게 심한 말을 했다는 듯이 울먹 울먹거렸고 그런 어린아이를 달래 느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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