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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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재난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1000여건의 산사태와 홍수가 우리나라 곳곳을 휩쓸고 지나갔다. 도시지역에서는 빗물 배수 불량으로 인한 하수도 역류현상을 비롯해 싱크홀과 공··· 보고싶은 마음 / 이름모를 소녀 김정호의 솔로 가수 데뷔 과정 전라남도 광주 출신인 김정호(본명 조용호)의 외가는 국악 명가였다. 동일창극단원이었던 어머니 박숙자는 명창 김소희와 활동했던 창의 명인이고, 판소리 창작에 큰 업적을 남긴 외조부 박동신은 국악계의 거장이다. 또한 국립국악원 수석단원인 외삼촌 박종선의 아쟁 연주 소리는 그에게 음악적 관심의 뿌리이자 시작이었다. 학업을 포기한 김정호는 서울 북한산에 들어가 음악 공부에 몰두했다. 당시 동고동락했던 어니언스 멤버 임창제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북한산 등성이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공부도 많이 못해 무식한 우리가 음악으로 세상에서 1등을 한번 해보자’며 맹세한 생각이 난다”고 회고했다. 1973년 발표한 임창제와 이수용의 어니언스 데뷔 앨범에 수록한 김정호의 곡은 크게 히트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서울 비원 옆 꽃밭에서 노숙 생활을 했던 김정호는 남성 듀오 4월과5월의 리더 백순진을 만나, 탈퇴한 김태풍 대신 3기 4월과5월 활동을 시작했다. 김정호의 재능을 간파한 지구레코드는 가수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전속 계약 아래 그를 묶어두려 했다. 계약 조건에 반발한 김정호는 두 달 만에 팀을 탈퇴했고, DJ 이종환의 소개로 유니버샬레코드와 계약한 후 솔로 가수로 독립했다. 포크송의 향유 계층을 넓힌 김정호의 데뷔 앨범 보고싶은 마음 / 이름모를 소녀 앨범 뒷면 1974년 9월 유니버샬레코드에서 발매한 김정호의 데뷔 앨범에는 [이름 모를 소녀], [작은새] 등 자작곡 9곡과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까지 총 10곡을 수록했다. 호소력 짙은 그의 노래는 학생층에 국한됐던 포크송의 향유 계층을 전 국민으로 넓히는 데 기여했다. 가슴을 후려치는 김정호의 절창은 강력한 반응을 불러왔지만, 발표 당시 일각에서는 곡이 너무 어둡다며 배척했다. 하지만 이전의 포크송이 단순한 통기타 반주로 일관했던 것과 달리, 김정호는 현악기와 오르간이 주도하는 세련된 사운드로 편곡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편곡자 안건마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김정호가 부른 처절하고 슬픈 노래에는 강한 중독성이 있었다. 화제의 인물이 된 김정호는 TBC 패티김의 스페셜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는 감수성 예민한 소녀 팬들을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든 노래들을 선보이며 청소년의 우상으로 급부상했다. 총각 시절의 짝사랑 연정을 담은 [이름 모를 소녀] 당시 CBS 김진성 PD는 2면 타이틀곡 [이름 모를 소녀]를 듣고 “한국의 모차르트 탄생”이라 극찬했다. 히트곡 [이름 모를 소녀]는 김정호가 총각 시절 아내 이영희를 애타게 짝사랑하면서 품었던 사랑앓이의 감정을 스케치한 명곡이다. 김정호는 교동초교 선배의 사촌동생인 이영희를 중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다. 자신의 일상과 심정을 담은 연애편지를 수차례 보내고 집으로도 찾아갔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무명 가수였던 그를 못미더워한 탓에 두 사람의 사랑은 쉽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정호가 싫지 않았던 이영희는 그가 만든 [이름 모를 소녀]를 듣고 자신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라는 것을 직감했다. 1974년 봄, 서울 명동 쉘브르에서 노래하던 김정호를 찾아간 그녀는 이후 3년간의 연애 기간을 거쳐 1977년 결혼했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이름 모를 소녀]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당대 청소년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1974년 11월에는 김수영 감독이 동명의 영화도 제작했다. 김정호는 출연료 30만 원을 받고 영화에 직접 출연까지 했다. 이 영화에는 석찬, 홍민, 혼성 듀엣 원플러스원, 포크 록 밴드 들개들 등 당대의 젊은 포크가수들이 대거 출연했다. 당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정애정이 김정호의 히트곡 제목에서 착안해 자신의 예명을 ‘정소녀’로 정했을 만큼 이 노래의 대중적 파급력은 대단했다. 세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 음반 김정호의 데뷔 앨범은 세 가지 버전이 있다. 초반과 재반의 수록곡은 동일하지만 재킷 앞뒷면에 등장하는 김정호의 사진이 다르다. 모두 거대한 고목나무를 배경으로 했지만 나무 사이로 김정호의 모습이 작게 나온 앨범이 초반이고 나무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이 재반이다. 희귀한 초반 뒷면에는 재반에 없는 편곡자 안건마의 사진과, 고목 위에 올라가 미소 짓는 김정호의 진귀한 사진을 실었다. 초반 커버 사진은 재반의 뒷면 배경이 되었다. 이듬해인 1975년 발매한 「KIM JUNG HO GOLD」는 타이틀곡을 히트곡 [이름모를 소녀]로 바꾸고 커버 사진도 부감으로 찍은 사진으로 교체해 언뜻 보기엔 베스트 앨범 같지만, 실은 데뷔 앨범의 세 번째 버전이다.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된 김정호의 창법 1970~1980년대의 대중은 김정호의 처연한 멜로디와 가슴을 적시는 슬픈 노랫말에 사로잡혔다. 그리움, 슬픔, 이별의 정서를 토해내듯 노래한 김정호의 창법은 특히 한승기 등 언더그라운드 계열의 후배 가수들에게 지대한 음악적 영향력을 끼치며 롤 모델이 되었다. 2011년 조관우가 MBC 예능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서 불러 화제를 모은 [이름 모를 소녀]는 양희은, 김의철, 태진아, 강승모, 최진희 등 무수한 가수들이 장르를 초월해 리메이크했다. 그러나 김정호의 노래는 오직 김정호가 부를 때 명곡으로 빛을 발한다. 이 앨범으로 김정호는 당대 대중가요계에 일대 지각 변동을 몰고 온 돌풍을 일으켰다. 수록곡 SIDE A No.제목노래작사작곡편곡시간녹음번호네이버 뮤직1 보고싶은 마음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2 꿈을 찾아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3 저별과 달을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4 밤은 가고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5 외기러기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SIDE B No.제목노래작사작곡편곡시간녹음번호네이버 뮤직1 이름 모를 소녀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2 작은 ���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3 잊으리라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4 사랑의 진실 김정호 김정호 김정호 노래듣기 5 행복의 나라로 김정호 한대수 한대수 노래듣기 참여자 크레딧 김정호 작곡집안건마 편곡녹음담당 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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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무실, 무감한 님, 성령의 바람
http://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theologry&wr_id=569
- 바람과 나 (한대수, 작사, 작곡, 노래)
https://youtu.be/hpTAtsnErQM
가을의 쓸쓸함
완연한 가을입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붑니다. 제 아내는 가을을 가장 좋아합니다.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고 계절이 짧아서 좋다고 합니다. 저 역시 같은 이유로 가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제가 가을을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쓸쓸함 때문입니다. 이 쓸쓸함은 저로 하여금 지나 온 삶을 들춰내서 반추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의 반추는 제 자신을 보다 더 겸손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어찌 되었건 가을 하면 가을바람을 빼놓을 수 없고 선선한 바람이 있어서 가을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바람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서 가을바람에 대한 말씀을 엮어가 보겠습니다.
젊은 날의 초상
제가 살던 곳은 지금은 강북구가 된 북한산 자락 아래 공기 좋은 도봉구 우이동이었습니다. 그 우이동 구석 버스 정류장 근처에 형제 목공소라고 하는 작은 목공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집에 저보다 너덧 살 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형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목공일을 도왔습니다. 가끔 교회에 나오는 그 형은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이 소위 “은혜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렸고 그 소문 이후에 그 형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형을 찾아 집에 가 봤더니 그 형의 아버지는 그가 기도하러 산에 간다고 나간 뒤 두 달째 소식이 끊겼다고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두 달쯤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학교에서 돌아오다 길에서 우연히 그 형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반갑고 궁금해서 후다닥 뛰어가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는 그 형은 제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얼굴이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의기소침하고 열등감까지 엿보이던, 그래서 수줍고 어둡기만 하던 그 형의 얼굴. 예전의 그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 그 형의 얼굴은 밝은 빛이 났습니다. 제가 놀라서 말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자 그 형은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집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형을 교회에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나서 그야말로 ���기는 일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이동은 유원지를 끼고 있어서 늘 껄렁껄렁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토박이 깡패들”이었지요. 동네 불량배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태호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너덧 살 많았던 태호는 술만 먹으면 주정이 심했습니다. 싸움질은 그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습니다. 워낙 말썽을 많이 피우니 동네 사람들 그 누구도 상대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웃기는 일이란 것은 바로 이런 태호가 자기보다 어린 목공소 형에게 사로 잡혀서 자기의 쓰레기 같은 생활을 청산하고 목공소 형을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태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민이는 저와 동갑이었는데 자기 집에 불을 질러 방화범으로 교도소까지 다녀온 불량배였습니다. 그런데 그 성민이도 회개하고 목공소 형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다니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들이 저렇게 바뀔 수 있었을까 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더 웃기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우이동 구석에는 행락객들을 상대로 하던 싸구려 술집들이 모여 있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늘 시끌벅적 했습니다.(우리들은 그 술집들을 매미집이라고 불렀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젓가락을 두들긴다고 해서 11사단 계집애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태호나 성민이가 소개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술집여성들까지 목공소 형을 따라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깡패, 술집 아가씨,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 바로 옆에 있던 물가에 모여들었습니다. 우린 이 곳을 폭포수라고 불렀는데 웃기지도 않은 애들이 매일 모여서 그 형의 설교를 듣고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 세상에…
또 다른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평생을 류마티즘으로 고생하던 시장 아줌마가 목공소 형의 안수기도를 받고 싹 나았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 소문이 나기 무섭게 목공소 형이 아픈 사람에게 안수하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온 동네에 만발했습니다. 저는 이제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폭포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에 몇 안 되는 교회들이 교파를 막론하고 목공소 형의 폭포수 집회를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 형의 폭포수 집회에 각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 둘씩 몰려가기 시작한 후에 일이었습니다. 대부분 가난하고 배움이 짧았던 시장 상인들, 노점상들, 여관주인들 주로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대신 폭포수 집회로 갔습니다. 그러니 가장 난감한 곳은 당연히 교회들이었습니다.
”이단이다” “종교집회를 가장한 의식화 학습이다” “음란행위를 한다” 등 별별 말들이 많았습니다. 지역의 목사님들이 그 형을 찾아가서 설득과 협박을 했지만 목공소 형을 따라 다니는 한심하고 무식한 것들의 숫자는 ���어만 갔고 그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목공소 형이 버스정류장에 내려오면 서너 명씩, 많을 땐 열 명 가까이 주르륵 그 형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교회들은 어수선해졌습니다. 폭포수는 그들이 점령을 해버렸고, 우리들은 목사님의 경고 때문에 그곳에 갈 수 없었지만, 밤이고 낮이고 폭포수에는 사람들이 몰렸고,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까지 들것에 실려 올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당시 모 신학대학교 교수이자 목사인, 한 때 정부요직에서 고위직을 맡았고, 우이동에 몇 안 되는 별장 같은 집에 사는 50대 중반의 그분이 늦은 밤 목공소 형을 찾아 불량배의 소굴인 폭포수로 올라갔습니다. “낮에도 부족해서 이 밤까지 협박을 하러 오십니까? 절대 못 만나시니 돌아가 주세요.”
성민이가 그 교수님에게 볼멘 목소리로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형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분에게 텐트 속에 있던 목공소 형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로 들어오시죠.” 목공소 형 앞으로 인도된 그분은 형을 붙잡고 간절하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선생, 난 당신을 믿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당신이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참 진리를 전한다는 것을 나는 아오. 그런데 내 삶은 행복하지도 평안하지도 못하오. 마음은 갈급하고 공허하오. 이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하고 무모하오. 그러니 나도 당신처럼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진리를 좀 알려주오.” 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읊조렸습니다.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그분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소굴을 찾아왔을까 싶습니다. 그는 아마도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영적 갈급함을 감지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진지하고 갈급한 심정으로 예수와 대화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니고데모였습니다.
바람-거듭난 바람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는 요한복음에 단 세 번의 대담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 대담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의 정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더군다나 대담은 선문답처럼 거의 동문서답식입니다. 니고데모의 말이나 질문에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매우 중요한 한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듭남에 대하여 수없이 많은 말씀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 제 가족, 제 학생들에게 거듭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고 완전히 죄를 회개한 사람, 죄를 용서받은 사람, 천국을 소유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성령이 충만하여 능력이 있는 사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 등입니다. 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약점이나 잘못된 성품이나 행동이 완전히 변화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그럼 거듭나지 않은 것 같다는 가시 돋친 농담을 했다가 많이 혼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직접 거듭난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잘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강단에서도 잘 선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에 대답들은 99점이지 100점이 될 수 없습니다. 100점은 바로 예수님의 설명 그 자체겠지요. 그럼 예수님의 정답표를 들쳐보겠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 3:8)
그렇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바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른 의외의 정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니고데모처럼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어찌 되었건 우리가 거듭나길 원한다면 우린 복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시인도 바람이 되고 싶고 바람과 같은 생을 살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후기 버전)
노래하는 철학자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적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지만 노래를 즐겨 듣다보니 요즘은 똑같은 사랑을 노래하는 노래라도 음란한 노래와 맑은 노래를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잘난 척을 한다면 노래에 미쳐 3개월 간 고기도 먹지 않을 정도의 음악광이었던 공자께서 정(鄭)나라 노래는 음란하다고 하신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여하튼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대수의 노래는 정말 맑은 노래들입니다. <바람과 나>를 듣다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그가 거듭난 자에 대하여 더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대수의 대표곡은 아무래도 찌그러진 보컬로 유명한 <물 좀 주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적어도 저에겐 아직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생경하지 않은 그의 절규는 목마른 모든 사람들에게 해갈을 위한 욕망을 인식시켜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목마른 자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목마른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대수의 물 좀 달라는 절규 한가락에 갈급한 자신들의 영혼을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만큼 이 곡은 저에겐 정치적은 물론 종교적으로도 큰 충격을 주었던 곡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에게 한대수의 최고의 곡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물 좀 주소> 보다는 오늘 소개할 <바람과 나>를 주저 없이 선택할 것입니다. 두 곡 모두 한 대수의 첫 앨범, 『멀고 먼 길』에 수록된 곡들입니다.
흔히들 김민기, 양병집, 한대수를 한 그룹으로 묶어서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성장과정이나 한국정치사에 끼친 영향 등을 고려해볼 때 이 세 분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다소 성급할지 모르겠습니다. 김민기와 양병집의 노래가 사회의식에 많이 경도되었다면 적어도 한대수라는 가수의 노래는 사회의식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감성을 짙게 풍기는 곡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더 문화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래하는 철학자, 한국의 밥 딜런. 음유시인, 유일한 한국히피, 한국포크의 창시자, 영원한 보헤미안 등으로 불리는 한대수는 그의 많은 별명만큼이나 다양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온 예술가이자 고독한 선구자였습니다. 1948년에 부산에서 출생하였으니 영원한 청년 같던 이 분의 나이가 벌써 환갑을 넘었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와 연락두절로 인해 조부모 슬하에서 성장하던 소년은 10세에 미국으로 간 후 1968년 초 직장과 음악활동을 위해 귀국하기까지 한국과 미국을 들락거리면서 초, 중, 고를 마칩니다. 제 생각에 한-미간의 모호한 정체성과 이중 왕따는 한대수의 예술에 큰 원천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젊은이들에게 불려지는 <행복의 나라로>, <옥이의 슬픔> 등도 고교 때 작품이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가 통기타에 청바지, 가죽부츠를 신고 귀국한 1968년은 가요 평론가들에게 한국가요사를 다시 쓰게 한 해였습니다. 군복무, 3급 공무원, 코리아 헤럴드 기자 등을 거치면서 1975년까지 음악활동을 했던 한대수는 69년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매되자마자 수거령이 떨어진 두 번째 앨범 『고무신』 등 한국가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그는 금지곡, 방송출연금지, 음반판매금지, 기피인물, 강제징집 등 그 시대에 익숙하던 일들에 처절한 좌절감을 안고 1975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그 님(처녀) 만나 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물 좀 주소)
17세 소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물 좀 주소>는 영혼의 목마름을 시대적인 갈급함으로 승화시킨 명곡입니다. 곡과 가사 뿐 아니라 일그러진 목소리는 당시 민중들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한대수의 소식은 간간히 연예주간지 구석을 통해 들려왔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사진 작품 활동, 음악활동, 앨범제작 등을 하며 꾸준히 자신의 창작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간간히 일시 귀국하여 작은 콘서트를 열거나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일본공연을 기점으로 언더그라운드 가수 한대수는 더 이상 주변인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그에게 쳐진 장막은 걷혀지고 늘 암울하게 드리워졌던 고독과 슬픔(8집 <Eternal Sorrow>)대신 희망과 행복이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행복의 나라)
아예 거주지를 국내로 옮겨온 그는 2008년엔 환갑에 딸까지 얻었습니다. 그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매년 실험적인 공연들을 계속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 년에 한 장 꼴로 앨범을 발표하는 성실함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 주제곡 작곡, 라디오 방송 진행, 사진전, 수필 및 자서전 발표, 대학강연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자세한 소식은 그의 공식홈페이지(http://hahndaesoo.co.kr)에 가면 들을 수 있습니다.
바람, 바람 - 시작도 끝도, 안도 밖도 없는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시인의 노래처럼 바람은 끝이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바람은 시작도 없습니다. 아마 물리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무한으로 연속되는 선을 유한의 지점에서 관찰하면 부분을 잘라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한한 끈이 있다면 그 끈의 두 점을 잡아서 시작과 끝으로 만들어보고 싶어도 그 지점의 위치표시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바람은 마치 이런 무한대의 연결된 끈과 같아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우리 인생이 이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유한한 안목으로 보면 태어날 때 우리 인생이 시작되고 이 땅을 이별하는 날이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시작하는 것도 없고 끝나는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현재인 시간을 따라 우리 삶도 무감각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한대수는 “느낌 없이 시간을 따라 여행하는 그대여”라고 바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 곡에서는 “바람은 미래, 시간은 현재, 먼지는 바람 속의 나” (10집, <상처> 속에 ‘먼지’ 중에서)라고 노래합니다. 문제는 항상 집착에 있습니다. 어차피 구획될 수 없는 것이 시간이고 인생이라면 굳이 이곳에서 듣고, 보고, 알고, 즐기던 것들을 연장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시작도 끝도 없는데 연약한 우리는 이판사판인 이 세상에 집착하고 ���련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짧디 짧은 생을 연장하기 위하여 우리의 가진 에너지를 집중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 명확히 머리에 들어옵니다. 바람과 유사한 거듭난 사람은 영원을 사는 사람이기에 이 땅의 삶에 집착을 갖고 있지 않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명무실 무감한 님
두 번째 바람은 그냥 흐름이기 때문에 안도 없고 바깥도 없습니다. 안이 없으니 지극히 작고 밖이 없으니 무한히 큰 것이 바람입니다.(至大無外 至小無內) 안이 없으니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으니 누가 어떤 이름을 붙여버리면 그것은 바람을 잘못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린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안도 있고 바깥도 있고 이름도 있습니다.
프로이트(S. Freud)는 아마 인간이 태어나서 입에 엄마의 젓꼭지를 무는 순간 인간에게 안과 밖이 발생한다고 본 것 같습니다. 라캉(J. Lacan) 역시 유사한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이 옳건 그르건 간에 어찌되었던 우리에게는 “나”라고 믿고 사는 안쪽이 매우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나”에 이것저것이 덕지덕지 붙어서 허망한 “나”는 과장되어 버리고 맙니다. 초기 불교사상이 오온(五蘊)과 육근(六根)이라고 구별하여 놓은 것들을 보면 이렇게 덕지덕지 붙은 쓰레기 덩어리들을 아마 직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붙어 있는 것들을 “나”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나이가 더 할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강력해 집니다. 이때부터 우리 삶은 얽매이는 삶이 되고 고통이 동반됩니다.
저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최근 막내 녀석의 권유로 주말마다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 나오는 장남은 40이 넘어서도 장가를 못가는 노총각이었는데 다행히 좋은 규수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모든 가족들이 그의 결혼을 기뻐하는 와중에 그 총각의 어머니는 술을 마시고 슬피 웁니다. 그 마음을 읽어보니 첫 자식, 첫 정, 첫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습니다.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아들이나 딸을 결혼시킬 때 유사한 감정을 느끼나 봅니다. 그 놈의 정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약 내면에 정을 많이 쌓아두지 않았다면 그런 감정을 느끼지도 않고 서글프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또 어떠합니까. 사랑이 좋다고들 하는데 사실 저는 사랑을 해본 사람으로서 그게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감정이 강렬해지면 사랑과 더불어 소유욕, 서운함, 질투가 생겨나고 이런 마음이 생겨나면 미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의 잘못된 점이나 오류들을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교정해야만 하는데 상대방 역시 견고한 “나”를 갖고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랑은 항상 미움을 동반하고 다니고 이렇게 양극단으로 찢어진 마음은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사랑이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좋은 예만 들었지만 사실 나쁜 예들이 더욱 많습니다. 나의 물���에 대한 집착, 나의 사람에 대한 집착, 나의 취미와 기호에 대한 집착, 나의 생각과 사상에 대한 집착, 나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집착 등 이러한 집착들이 실제로는 “나”를 괴롭히고 “나”의 평안하고 풍성한 삶을 어긋나게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바람처럼 안도 바깥도 없습니다. 그래서 무명무실 합니다. 자아라고 믿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세세한 세상의 감정, 느낌, 고민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저 그 성령의 바람에 함께 흘러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한대수가 노래하는 것처럼 춤추듯이 말입니다.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바람, 바람, 바람-구별이 없는 바람
학생들에게 창조된 이 세계를 존재의 측면에서 보는가 아니면 흐름의 측면에서 보는가를 설명하기 위하여 저는 대양에 치는 파도의 예를 자주 들려줍니다. 거대한 바다가 고요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완벽히 있습니다.(empty-being) 모든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 속에 수다(數多)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파도가 칩니다. 드디어 그 무엇인가가 생겨났고 다른 것들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파도들은 다시 거대한 대양 속에서 자기를 잠재태(virtuality)로 감추고 맙니다. 제가 이런 비유를 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혹시 저런 파도 정도의 일시적 존재인데 우린 우리 자신을 강하게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거대한 대양에 함몰되어 하나(합일)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서입니다.
바람은 대양과 같이 구별이 없습니다. 미국바람, 한국바람, 일본바람 구별하지 않습니다. 혹은 올 바람, 와 있는 바람, 왔다 간 바람도 구별하지 못합니다. 바람은 그저 하나의 일체로서 흐르기만 합니다. 그 바람 속에서 무엇인가 구별된 것을 빼낼 수도 없습니다. 무한에서 아무리 원소를 빼봐야 무한은 여전히 그 원소를 포함하여 무한이고 바닷물에서 아무리 물방울을 덜어내도 바다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 그리고 먹은 자를 또 먹는 자들을 유한의 시각에서 볼 때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적인 질량과 에너지엔 변화가 없고 우주적 측면에서는 그저 하나에 함몰되어 있는 것뿐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바로 이런 구별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학생 하나가 제게 그럽니다. “교수님, 이런 날은 공부고 뭐고 비 맞고 걸어 다니고 싶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은 핑계치곤 매우 감상적입니다. 매우 청명한 날 아내가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여보, 날씨 정말 좋다. 그냥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날이다. 강의실에만 있지 말고 나와서 하늘을 좀 봐”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날이 흐리면 울적해지고, 걷고 싶고, 날이 좋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저 마음들은 과연 내 마음인지 아니면 날씨의 마음인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 우리들도 부지부식간 자연현상과 우리 자신이 마구 겹쳐집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피조물들과 일체감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은 환경보호론자��� 되지 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온 존재와 일체감으로 있기 때문에 한 쪽에서 그 어떤 변화와 진동이 생겨나면 그 진동들을 온 몸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당에 있는 큰 나무가 잘려갈 때 나무처럼 고통을 함께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확장되면 사실 너와 나도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성자들의 삶을 읽어보면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성자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프란시스가 새들에게 설교를 했고 늑대를 꾸짖었는지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후기 버전)
그러므로 구별심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목적 없이 인생을 산다고 하니까 무책임한 것 같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멀리 떠나가면서 굳이 빨리 가야할 이유도 없고 급하게 가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와 교제하고 이야기 하면 되고 정말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싫증이 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그 경치를 완상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바람은 목적이 없이 그저 불기만 합니다. 강하게 불어서 건물을 무너뜨릴 목적도, 배를 파산시킬 목적도 없이 그냥 자기 있는 그대로 붑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배가 파산하는 것은 단지 표면적인 효과일 뿐입니다. 바람은 그저 무위(無爲)할 뿐입니다.
구별심이 없는 사람은 모든 존재들과 교류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넓혀서 교제한다면 참으로 재미있고 풍성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와 교류하고 그들과 함께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인간들처럼 그 어떤 이용가치나 목적이 있는 교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주는 피조물들과 교제를 하며 산다면 인생 그 자체는 그저 행복할 뿐일 것입니다. 이러한 행복 그 자체에 충만해 있는 삶은 이 외에 그 어떤 삶의 목표가 있기 어렵습니다. 재미있게 살면서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삶으로 치닫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대수는 그래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 구름, 달, 풀잎 사이사이로 목적 없이 유영하는 바람, 그렇게 유영하는 그 자체가 인생,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바람, 바람, 바람, 바람-절단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영원한 창조적 자유
모든 존재나 사고, 영과 육체는 절단되어 지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절단은 이중절단으로서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이원론 같은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외부적인 편의 상 남/녀, 영/육, 정통/이단, 정상/비정상, 합격/불합격, 친구/원수, 사랑/불륜 등으로 절단합니다. 아마 절단의 개념이 폴 틸리히가 사용했던 조직화(systemize)와 그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흐르는 흐름들을 이중으로 절단하는 것은 안정성을 위한 것입니다. 딱 부러지는 기준이 없고 각 항이 자유롭게 넘나들면 혼란 그 자체 일 테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절단이 깨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기구들이 생겨납니다. 권력과 국가는 이 절단을 유지하려고 노력��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은 차치하고라도 절단의 경직화가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억압입니다. 저렇게 이중으로 절단하고 체계화 해놓고 나면 그 밑에서 꿈틀거리는 그 어떤 힘들은 억압을 받게 마련입니다. 일례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이나 장애취급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절단하고 나면 시간의 흐름은 사라지고 식사 시간, 자는 시간, 일하는 시간으로 모든 힘들이 재단되어 버리고 맙니다. 신학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신학이 너무 경직되면 가장 밑바닥에서 부는 성령의 바람을 억압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학 안에 갇혀서 자유롭게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람은 어떠하겠습니까. 바람은 결코 절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자유롭습니다. 그 힘이 뭉칠 땐 강하고 무섭게, 그리고 그 힘이 흩어질 땐 따듯하게 유영합니다. 세상 모든 것들을 관통하고 스치고 건드리고 다닙니다. 아마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난 사람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바리새파니 사두개파니 열심당이니 하는 신학/이념적인 사고와 유대교적인 경직성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으로 유영하며 성령의 힘과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닐까요. 요즘 교회들은 매우 실천적이고 도덕적이고자 합니다만 오랜 동안 신학의 경직성 안에 갇혀 있어서 성령의 꿈틀거리는 힘을 담지할 능력은 약화된 듯합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거듭난 교회, 이것 역시 미래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또한 자유로운 바람은 결코 사멸되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사멸되어 없어진 것이고 바람이 분다고 새로운 바람이 창조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바람은 위의 파도의 사례처럼 거대한 충만성 안으로 자신을 잠재태로 흩어져 있다가 조건이 되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도 이처럼 사멸되지 않고 단지 흩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람은 창조적입니다. 바람이 수없이 불어도 그 어떤 바람도 동일한 크기와 효과를 가진 바람은 없습니다. 마치 지구가 창조된 이래 수억 겁의 파도가 쳐도 완벽하게 똑같은 두 파도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고로 바람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대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이렇게 바람처럼 창조적인 영적 역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지적은 바람과 같은 삶이 앎의 대상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 즉 물리학적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바람과 같이 살고 싶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별된 개체로 보지 않고 거대한 흐름으로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비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온 우주는 나와 한 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가치”를 지닌 생각들…철학들… 종교들… 이념들… 윤리들에 머물 뿐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단지 생각의 대상, 앎의 대상, 이해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니고데모에게 한 예수님은 “나는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을 전하는데 네가 믿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니냐?”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람과 같이 사는 것이 생의 목표나 윤리적 가치나 신학적 의미�� 아니라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물리학적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믿지 못하고, 그래서 더더욱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진상을 보지 못하고 미망 속에서만 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한대수라는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로 그 물리학적 세계를 언뜻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노래는 보이는 모습을 그저 묘사하기만 할 뿐이니까요. 자, 이제 한대수의 <바람과 나>를 다시 들으면 조금 더 이 노래가 좋아지실 것입니다.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너머, 물결같이 춤추던 님
무명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여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이충범 l 교수는 감리교회를 섬기는 목사로 연세대학교(B.A.)와 감리교 신학대학(B.TH.)을 거처 미국 드류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석사(M. Div.)를, 대학원에서 중세신비주의 연구로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역사신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세미시문화사, 문화신학, 일상신비주의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눙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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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The Wait / Tobias Jesso Jr.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OST 중) / 김연우
행복의 나라로 (For `Happiness`) / 한대수
파리에 부친 편지 / 장윤주
I Miss You / 소유
그 겨울로부터 (Duet With Tim) / 윤상
Call Me Now / 오왠 (O.WHEN)
When I Was Your Man / Bruno Mars
Skipping Stones (Feat. Jhene Aiko) / Gallant
흘러간다 / 이한철
스며들어 / 심현보
Skyscraper (SBS 케이팝스타 시즌4 릴리 M. 가창 곡) / Demi Lovato
Sugar / Maroon 5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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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로 - 작곡/사:한대수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 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 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봐요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 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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