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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6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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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무슨 인간관계가 다 지 필요할 때만 찾는 것들이네…. 내가 무슨 고민 상담소야? 니들은 내 기분은 처물은 적 있어? 사람 다 지겨워 죽겠다 모두가 다 남에게 기대려고만 해 잘 못 기댄다고 말하는 사람마저도 그런 사람이니까 기댈 사람을 더 신중히 찾고 있는 것 같지 니들이 나랑 있을 때 편하다고? 그래 어쩌라고 나는 누구를 만나서 한 번도 편한 적이 없었다 나는 초예민해서 남들 바뀐 표정이나 숨소리마저도 파악해서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애쓴다고 대화의 공백 메우려고 내 과거를 다 불싸지른다고 비밀 같은 건 없지 그리고 j야 나를 불쌍하게 보려고 하면서 외로운 사람이라고 가스라이팅 하는 거 거기에 감동하는 건 너무 어렸을 때 끝낸 건데… 드디어 나의 상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같잖은 감동이라도 받을 줄 알았니? 니가 사람한테 줄 수 있는 게 부모 돈 말고 뭐 있는데? 경제적 지원? 뭐 얼마나 줄 수 있니? 돈 받���면 내 마음은 편할 거라고 생각하니? 영원히 그 관계에서 을이 되는 기분을…. 느껴 본 적 있니? 이래서 대가리 꽃밭인 애들이 싫은 거야 그래 꽃밭은 아니어도 더러운 꽃밭이겠지 근데 니가 친구들한테 너로 존재할 수 있는 게 니가 뿌린 돈 덕분이라는 것도 솔직히 알고 있지 너 나는 아빠 돈 싫다는 가증스러운 소리 하면서 돈으로 사람 호감 매수하는 사람들 혐오합니다 앞뒤 다른 사람이 너무너무너무 싫어 좋은 사람인 척하려고 하는 거 토 나와 니 추구미가 뭐인지 보여서 토 나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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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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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꿈에 니가 나왔어. 이름 모를 집에서 술 취한 채로 도망쳐서 닿은 곳이 너희 집 안이었어. 남의 집에 습관마냥 처들어왔다니. 좆됐다고 느껴서 튀려고 했는데 내가 부산스러웠는지 그 새벽에 니가 깼더라. 근데 나를 보자마자 니가 멍한 표정을 짓다가 개죽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에게로 와서 키스를 퍼붓는데.... 꿈속에서는 그게 어찌나 현실 같던지. 10분 동안 눈을 붙였을 때 니가 꿈에 나와 버려서... 꿈속에서도, 꿈인 걸 인지하고도 존나 눈물이 났어.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술 처먹고 니 얘기를 많이 했더니 니가 꿈에 나와 버려서 망했다. 갑자기 또 슬퍼짐. 아무튼 꿈에서 나눈 뜨거운 입맞춤이 여간 생생한 게 아니었어. 나는 니가 보고 싶은 걸까? 얼굴 보고 좋은 마무리를 짓고 싶긴 해. 근데 그건 내 욕심 같다. 떠나간 연인에게까지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개수작 같잖아.... 근데 내가 퍼부은 독설을 해명하고, 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나는 이제 나의 모든 지나간 연인들이 나를 성장하게 한 걸 알아. 더 이상 도덕적인 판단으로 그들을 좋다/나쁘다로 규정할 수는 없겠지. 근데 너한테 받은 다정한 것들이 되게 좋았나 봐, 나는........ 잘 지내라. 나쁜놈아. (모순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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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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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최인훈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동물적 세계가 가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쌓아 올려진 세계는 동물의 본능적 세계와는 다르다.  인간의 위치는 대부분 사회적 환경과 배경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지만 이는 고정적인가?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추할 수 있다. 반성의 힘은 인간을 변화로 이끈다. 변화는 세계를 바꾼다. 이성의 세계는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는다. 어떤 것이 절대적인 시대는 시간이 지나면 가물고, 새로운 것은 꾸준히 등장한다. 니체에게 약자는 강자의 반동으로 인한 원한을 강자를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처단하려 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인간 세계에서 강자는 얼마든지 약자가 될 수도, 약자 또한 얼마든지 강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첫째, 강자는 언제나 자신이 약자일 가능성을 내포해야 하며, 둘째, 약자는 자신의 위치에 제약되지 않고 뻗어 나갈 의지를 다져야 한다. 그렇다면 평등의 전제는 당연해진다. 평등을 위한 길은 합리적이다. 약자의 움직임은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 주는 증표다. 약자는 단합으로써 강자에 대응한다. 약자는 변화를 이끌어 낸다. 약자와 강자는 각자의 고정된 위치에서 존재해야 하���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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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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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의 이미지에 대하여
오늘날 '동정심'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동정의 사전적 정의를 차치하고, 현대에서의 동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왜 동정은 천대받게 되었는가. 현대인들은 동정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함부로 동정하기를, 동정받기를 꺼린다. '너 나 동정하니?'와 같은 미디어 속 대사들은 동정의 이미지를 함축하는 듯하다. 동정은 동정받는 이에게 수치감을 주는 단어로 변질됐다. 그러나 나는 동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현대 사회로 재이미지화해서 들여오고자 한다.
동정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살펴보자. 동정(同情)의 한자 뜻을 풀어 헤치면, '남과 같은 마음을 가짐.' 이라고 쉬이 알 수 있다. 영어에서의 sympathy 또한 희랍어 synpatheia에서 파생된 용어로, 타인의 고통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특히 인간의 고통, 아픔을 함께 느끼는 정념이다. 루소 또한 '동정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으며, 관대, 자비, 인간애를 동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동정이 위선이 된 현대 시대에는 공감이라는 언어가 새로이 등장했다. 공감은 동정과 다르게 더 포괄적인 감정을 다루면서, 타인의 입장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긍정적 이미지를 가진다. 하지만 감정의 포괄성을 뒤로 하고, 공감과 동정은 왜 서로 다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가? 나는 이 둘의 개념이 사회의 발전 이전 시점에서 보면 꽤나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동정의 속성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실천적 의지를 포함하지 않는 순간의 동요이다. 맹자가 말하는 '측은지심'은 물에 빠진 아이를자연스럽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그 아이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의식적 차원에서 동요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면 모두 본성적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서 '실천'은 포함되지 않는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은 동정의 필요 조건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곧 동정과 같다. 동정은 인간의 본성이며, 모든 인간이 가진다는 정념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왜 동정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경계하는가?
이는 동정의 두 번째 속성에서 비롯된다. 동정은 수직적인 이미지, 즉, 계급을 내포하는 의미로 변질되었다. 고통받는 이에게 동정하는 자는, 고통받지 않는 자신의 계급 안에 있다. 부유한 이는 가난한 이를 동정하면서 우월감과 안도감을 느낀다. 동정하는 이는 자신의 위치를 고통받는 이��� 동등한 '인간'으로써의 위치로 두지 못하고, 그들과 다른 계급임을 상정한다. 동정받는 이는 그들이 동정받을 만큼 낮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지각하게 된다. 따라서 동정은 평등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같은 현상은 계급의 출현과 함께 동정의 개념이 오염되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이 인간으로써 평등하고 자유롭게 존재했던 자연 상태와 달리 문명 사회는 인간을 계급화했다. 계급의 출현은 신분에 따른 인간의 환경을 뒤바꿔 놓았다. 다같이 초원을 떠돌며 식량을 찾던 시대와 달리 상속받은 유산으로 풍족한 의식주를 누릴 수도, 그런 이에게 종속되어 쉼없이 노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동정이라는 보편적 기능은 실천적 움직임을, 그러니까 계급이 발생한 사회에서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 때문에 강자의 것이 되었다. 진정한 평등이 전제된 사회에서 동정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지 못한다. 현대 사회는 자연법의 평등을 표방하는 듯 보이지만, 야수의 자본주의, 경쟁주의,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계급을 낳는다. 평생 불로소득으로 돈을 벌어 온 이는 노동으로 고통받는 이의 고통을 자신의 입장처럼 느낄 수 있는가? 백인 남성은 유색 인종 여성의 처우를 자신의 입장처럼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계급 사회에 살고 있다. 동정은 여전히 수직적 이미지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정을 재조명하려 한다. 우리는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이곳저곳에서 다양화된 고통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들을 쉽게 묵인하는 듯 보인다. 고통을 토로하면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요즘 시대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냐'는 냉소적 반응이 되돌아온다. 타인들의 냉소적 반응으로 말미암아 고통의 표현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더 이상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비가시화된다. 진정한 고통을 가르는 건 어떤 이의 기준인가? 어떤 고통이어야 사회적 단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 강자라고 대변되는 인물들에게 인정되어야 그것은 고통으로 기능하는가? 우리는 싸구려 동정마저 타인에게 건네지 못한다. 경쟁 사회에서 고통은 약점이 되고, 고통을 토로하는 것은 나약함이 되며, 이러한 토로는 고통받는 이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고통을 토로할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역설적으로 고통은 경쟁 사회에서의 필연적 조건이므로, 고통 또한 경쟁의 대상으로 놓인다. 고통은 노력으로 치환되며, 누가 더 많은 고통 속에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었는지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가 된다. 결국 고통의 토로는 사회적 강자만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는 자서전에서, 강연에서, 인터뷰에서 가능한 것이며, 약자의 고통은 성공할 수 있는 발판으로 도구화된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로하게 하며, 고통은 누적되어 간다. 화려한 인생은 온갖 미디어에서 화제되지만, 가엾은 인생은 가엾은 이들의 현실 안에만 존재한다. 동정이 그 부정적인 이미지에서도, 내포하고 있는 긍정적 개념을 나는 이렇게 주장하겠다. 동정은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인정한다. 고통은 비교의 도마 위에 올라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필요한 연대의 손길은 동정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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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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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다‘라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함의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르겠지. 건조한 듯 부푼 뺨을 어루만지는 일이 좋아. 살결을 맞대고 호흡을 나누는 일에 가슴이 달아올라. 당신의 안부가 곧 나의 안부가 되고, 무기력한 당신의 어깨를 안아 주고 싶어. 나는 당신을 이끄는 선봉자가 되어 사막 속에 오아시스를 맛보게 해 주고 싶어. 당신의 언어로 나를 발음하고 싶어. 당신의 눈물을 핥고, 물기 어린 얼굴을 주무르고 싶어. 느릿느릿한 당신의 행동을 따라 하고 싶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으로, 당신이 당신을 바라봤으면 좋겠어. 당신이 당신의 세계 속에서 안전했으면 좋겠어. 더 이상 책망하지 않고,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과의 기억을 소중히 여길 거야. 그렇게 밀어내도 다시 밀려오고야 마는 당신을 사랑해. 계속 떼를 쓰고, 어리광을 부리고, 나만의 언어로 당신을 언제나 괴롭히는 나를 용서해 줘서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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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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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친구와 오랜만에 술을 한잔했다. h는 꽤나 화통한 성격을 가졌다. 좋은 애다. 다만 요새 h를 볼 때마다 마음속 한 켠에 불편함이 쌓인다. 그 애는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한 데 모아 친해지기를 소망한다. 나는 종종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 이 날도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더니 자기 친구를 불렀다. 그럴 수 있지. 그런데 h의 친구를 불러다 술을 마시면, 그녀의 친구와 우정 대결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와 저 친구 중에 '진짜 친구'는 누구일까? 이런 내 기분이 그저 과대 망상에 의한 것이면 좋겠다. 종종 h는 그런 대결을 붙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새로 등장한 친구의 얘기다. 나는 h 친구와의 교집합이 희미하다 보니, h와 그 친구의 돈독한 대화로 이어진다. 이런 광경을 목격할 때면 맨살에 싸구려 보세 니트를 입은 구린 기분이 든다. 그 자리를 빠르게 뜨는 것이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외로움의 잔상이 남는다. 이런 좆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가 친화력이 없어서일까? h가 네 손가락을 꼽으며 자신에게 내 사람이라고 칭할 만한 그룹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리고 그 속에 내가 4번째로 끼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런 분류조차 다분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나는 정말로 꼬인 인간인가? 나는 이 친구의 퍼스트 친구이길 소망하는 걸까? 하지만 생각해 봤을 때 그건 아니다. 다만 다닥다닥 떨어져 있는 조각들을 억지로 붙여 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 하는 작위적인 짓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는 h와 맞지 않는다. 사실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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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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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가까운 이의 여과없는 맨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의 심장과 두뇌를 헤집으며 그의 근원적 에너지를 탐닉한다. 사실 이런 짓은 내가 받고 싶은 종류의 것이다. 내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사람.... 이 회색 도시에서 아무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궁금해하지 않는데, 어떤 이가 문득 찾아와 나를 물음표로 난도질해 주었으면 하는 갈망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기대를 거두거나, 모두에게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중적인 면모가 있어서 나는 결국 완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갖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궁금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희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번뜩이며 영원한 기다림의 시간을 갖는다.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아무도 믿지 않고 싶지만 이 지구 어느 누군가만은 믿을 만한 인간일 것이라고 되뇌인다. 실망에, 실망을 낳는, 이 실망의 연쇄 안에서 끊임없이 신대륙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 신대륙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지. 나는 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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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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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s에 자궁이 짓눌리는 듯하다. 학생이라면 무릇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씻는 행위가 귀찮다. 나는 만 원짜리 닭강정에 벌벌 떨면서 바로 옆 롯데리아에서 7천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먹으면서도 내 통장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배달 음식을 시켜 주겠다던 말을 무르고 싶을 정도다.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뱉은 말들이 뇌 속에 잔상처럼 남는다.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을 부르짖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미래에는 전쟁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생각만이라도 평화를 좇아야 한다. 남보다 더 행복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종자들. 끊임없는 경쟁 사회 속에서 남보다 나은 재능을 가져야 안심하는 사람들. 그 차이를 벌어지게 하려고 애쓰는 기이한 현상.... 오로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는 인간들. 직업 의식 없이 의대에 진학한 이들에게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맡겨도 되는 것인가? 그들이 우릴 환자로 보겠는가? 그저 돈줄로 볼 것이다.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더 빛을 보는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그냥 대충 이런 말들이다. 내가 하던 생각들이랑 비슷하다. 교수님의 환멸 난 표정과 말투가 생각난다. 철학은 역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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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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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혐오를 멈출 수 없는 병에 걸렸었다. 나는 어릴 적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에 진출했고, 내성적인 나는 사람들한테 휘둘리고, 관심을 얻으려고 애써도 나한테 돌아오지 않는 이 굴레 속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나의 학교 생활은 개판이었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나는 친구에게 친구다움을 바라지 못했고, 그저 속으로 소망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넓은 지대가 되어 주지 못했다. 나는 받은 사랑이 없어 줄 줄을 몰랐고, 이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항상 사람들 다 그러고 살아, 라고 말했다. 이 생각은 나를 내면화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유독 예민하고 바보 같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나는 커뮤니티 속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으며 다 이렇게 사는구나, 하며 안심했다. 나는 내가 정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상 비정상에 집착하는 게 사실 더 이상한 상황이다. 나는 나 자신을 나 자체로 보아야 하고, 뒤틀린 게 있으면 고쳐야 하는데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자꾸만 형편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나를 착취했다. 그리고 나처럼 속이 고장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대가리 꽃밭인 사람들을 혐오했다. 나와 비슷한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을 계속해서 갈구한다. 지금도 갈구한다. 나를 이해할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사랑을 주고, 상대에 대한 '감정'만을 파악하는 게 올바른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거늘.... 나는 상대가 주는 감정을 누리지 못하고,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이 사랑이라는 관계에 목매다는 인간이 되었다. 사랑이 모든 걸 치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나 자신의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다시 키워야 한다. 우리 엄마는 못했던 걸 나는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엄마를 너무 원망하거나 하는 건 나의 마음의 감옥을 생성하는 것이다. 방어적인 태도... 상대가 나와 똑같다고 생각하면 좋겠다는 이 마음을 없애야 한다. 관계를 늘리는 게 맞을까? 친구를 새로 만드는 게 좋을까? 새로운 만남을 해 보는 게 좋을까? 나는 혼자 있을 때 이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가라앉아 있다. 내가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은 건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 스무 살 때는 혼자 영화 보는 것도 즐겼는데.... 나는 왜 이ㅓㅎ게 된 거지? 잘 모르겠다. 근데 모르겠다고 퉁 치지 말고, 모르겠어도 해 봐야지. 나는 지금 일단 이 우울감에서 벗어나야 내가 진짜 언니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상대방도 나의 이러한 투정을 받아 줄 여유가 없는 사람인 것을 마음에 고이고이 생각하자. 사람들은 다들 각박한 삶을 산다. 나 자신이 나를 치유해 주어야 한다. 운동은 재���가 없어. 난 땀 흘리는 걸 너무너무 싫어해. 그래서 운동으로 치유는 못 해. 여름이 싫어. 지금 여름이라서 덥고 습해서 더 우울한 걸지도 몰라. 자꾸 우울의 늪에 빠지려고 하지 마. 우울을 인정하고, 나 자신과 친해져야 돼.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거? 사실 지금은 식욕이 없어. 그리고 성욕도 없어. 그리고 갖고 싶은 것도 없어. 나는 이 문제로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 근데 그게 애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너무 의지할 것 같아서.... 동생한테도 이런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부담감을 주기가 싫어. 그리고 엄마도 투정 부리기 싫어. 그러면 애인한테 해야 되는데 못해. 내가 너무 먼저 이상한 문제로 선빵을 쳐놨거든. 정신병자라고 생각할걸? 아니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건 상대방을 위하지 않는 거야. 이게 맞아. 기대고 싶지 않아. 그래도 애인한테 나의 상태를 말했어. 이건 큰 발전이야. 아무한테도 이 얘기를 하지 않았거든. 내가 곰곰히 생각했을 때 난 헤어질 때 항상 연인 탓을 하고, 헤어지고 나서도 연인 욕을 해.... 문제가 있지. 나를 정당화하고 싶어해. 자기애가 강한 건가? 나는 자기 혐오를 하면서도 자기애가 있는 사람인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별로 사랑하지 않아. 나에 대한 만족감을 얻는 게 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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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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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또 고장 남
병신 됨
사람이 제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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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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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연민에서 해방되어 나아가는
거대한 세상 앞에서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일은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가. 이제 더 이상 나를 글자로 쓰다듬지 않으려 한다. 내가 행위하는 것들이 나를 규정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일일이 하나씩 붙잡으며 오래 복기하지 않으려 한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넘어, 바깥의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안에서 곪지 않고, 확장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말로 뱉지 않고, 행위하지 않으면 모르는 나의 생각들. 나에게 더 이상 죄의식을 심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자체로 충만하다. 더없이 아득한 이 세계.... 이 세계를 앎으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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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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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뜨거운 물집이 있는 것 같아. 내 뇌는 그것에 짓눌려서 온통 멍하다. 모든 자극들에 무감각해지고, 오직 촉각만이 곤두세워진다. 나는 미각을 상실했으면서도 속이 허해서 무언가 입에 넣을 것을 찾는다. 돈을 쓰고 싶다. 나 자신에 치장하는 데 돈을 허투루 쓰고 싶다. 설령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 해도.... 그렇다면 제일 아까운 건 역시 식비 아닌가. 그렇지만 내 소비의 팔십 퍼는 식비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자 친구의 즐거움은 곧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기에. 사실 나는 생산적인 짓을 하고 싶다. 덜떨어진 쇼츠 채널들의 짜치는 10초짜리 영상을 무표정으로 넘기는 것 말고, 무언가를 촉진하는 행동.... 사람들은 그걸 운동으로 치부하고 살겠지. 나에게 운동이란 너무 고된 영역이다. 왜 돈 주고 고생을 할까? 영화도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의 몰입이 끝나면 공허해진다. 어떤 취미를 가져야 나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사진 찍는 취미를 들일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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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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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휘감는 거대한 떨림의 불안을 인식할 때 나는 그 속에서 오히려 안심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깨닫는 것이다. 가슴께가 갑갑하고 쉬이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은 연애할 때마다 찾아오는 고질병이다. 나는 사랑을 하면 할수록 유치하게 굴고, 더없이 촌스럽고 찌질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나를 채찍질하면 할수록 달라지는 건 사실 별로 없다. 나는 그 순간순간마다 감정의 노예로 전락한다.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서 이성적인 인간으로써 대처하려 애써도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 앞에 나는 무력한 개돼지가 된다. 머리가 영 아프다. 항생제를 투약하는 기간 동안 금주해야 한다는 약사의 ���침서가 떠오른다.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나는 온 힘을 다해 나에 대해 무심하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그녀가 날 이만큼이나 사랑하지 않는다니까, 라고 합리화하기 위해 갖가지 애를 쓴다. 모든 매커니즘이 한 목표를 향해 다다르면 스스로 처형을 내린다. 항상 그런 식이다. 그렇지만 이 방식은 너무 구식이고 나를 괴롭힌다. 필요 이상으로 사랑에 대해 진심인 것은 항상 이럴 때 나 스스로에게 탄로 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지껄인다. 그것이 꼭 나무의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쪼아대는 딱따구리마냥 상대방을 괴롭히는 형식이 된다. 그 모양새가 너무 지겨워서 눈물이 난다. 그들은 말이 없다.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한다. 나는 뭐라도 말 좀 해 보라고 소리치고, 뭐라고 말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거지같은 굴레 속에서 제 발로 다시 돌아왔구나. 나는 지금 괴로운 상태다. 외롭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뺨을 거세게 내려치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허벅지를 쥐어뜯고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싶다. 이렇게나 사랑은 자해구나. 나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나는 인간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는 것마냥 시니컬하게 굴면서, 결국은 늘 이렇게 인간을 도피처로 삼게 된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뿌리가 단단한 나무라고 믿는다. 그렇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원하는 바가 통하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게 이 사람은 아니란 걸 또 한 번 자각하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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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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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을 쉬이 믿지 못하고 갑자기 이유 모르게 불안해진다. 그게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좆같은 pms와 맞물려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는 내 애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면서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한다. 툭툭 내뱉는 말투에 애인은 이미 내 기분을 어느 정도 알 터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아는 척하려 들지 않는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다. 나는 가끔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상념에
빠져들 때가 있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렇지만 바라게 되는 게 사랑의 마력 아닌가. 바라기만 하고 나는.... 좋은 애인이었는지 항상 되묻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는 구제불능이란 소리다. 병신 같다. 나에게 남은 열정은 없고, 그저 이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릴 뿐이다. 시간을 죽이면서 죽는 시간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젊음, 열정, 대인관계, 가정 같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고깝다. 나는 그 정도로 열정도 없고, 대인관계는 거의 다 망쳐놨으며, 가정은 파탄났다. 나는 패배주의자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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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e100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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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나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대화 방식을 증오한다.
엄마는 딸의 고통을 자신이 딸을 기르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모든 고통과 비교 선상에 놓는다. 그리 하면 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참을만한 고통을 털어놓는 딸은 응석받이, 엄살을 떠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정작 그녀는 아프다라는 말을 달고 삶에도 불구하고 딸의 고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이기적이다. 이해와 공감은 너무 먼 이야기다. 그런 걸 배우자에게 받아 봤을지도 의문이다. 이 가정은 의무감으로 뭉쳐 있는 것만 같다. 서로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토로하고 끈끈해져야 하는데, 엄마는 그저 딸에게 타박만 준다. 설거지는 왜 안 했냐, 빨래 개라, 빨래 널어라, 청소기 돌려라, 밥 해라, 장 봐 와라, 쓰레기 버려라, 알아서 해야지 내가 일일이 알려 줘야 하냐, 니가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 내가 일하고 와서 집안일까지 해야겠냐, 그깟 거 얼마나 아프다고 그러고 있냐, 나도 힘들다, 오늘 피곤하다, 오늘 어디 아프다, 와서 안마 좀 해 달라, 내가 너희 때문에 돈 버는데 안마도 못 해 주냐, 직장에서 나한테만 거지 같은 일 시킨다.... 엄마는 딸과 대화를 원하는 게 아니고 그저 집안일하고 안마해 주는 기계를 원하는 것 같다. 가족 간의 대화의 80프로가 집안일이라니. 진절머리가 난다. 그놈의 집안일. 내가 집안일 못하는 불구가 된다면 나는 이 집안에서 쓸모없는 구성원일뿐인가? 엄마는 이러려고 우리를 길렀나? 엄마는 나한테 궁금한 게 없는 것 같다. 그저 자신 앞에 있는 생계 앞에만 매달려서 우리를 방임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쭉. 내가 사람에게 쉬이 내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삼켰던 건 순전히 엄마의 훈육 방식 덕분이었다. 엄마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저 내가 설거지를 했는지, 세탁기를 돌렸는지, 쓰레기를 버렸는지 따위에만 관심 있다. 엄마와의 대화는 항상 지치고 나에게 절망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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