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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
belbin0w0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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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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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si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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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블레이드 3 : 유니크 몬스터 - 상천의 이그레트 (Lv.90)
몬스터명 상천의 이그레트 LV 90 드롭 아이템 노폰코인 골드노폰코인 실버수수께끼의 파편 라운드빛나는 메달초고순도 젬 스톤로글의 날카로운 깃로글의 도끼 볏 트라이던 습득 스킬 아츠 – 개틀링 비크 위치 대검 상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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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iik-vap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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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italia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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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Iceland 아이슬란드 1DX Mark2, 16-35mm 2.8 . #오로라 #오로라여행 #오로라헌터 #아이슬란드 #아이슬랜드 #소도시여행 #유디니 #유럽스타그램 #레이카비크 #레이캬비크 #빙하 #유럽어디까지가봤니 #여행에미치다 #비크 #유럽여행 #북유럽 #아이슬란드여행 #유럽여행중 #추억팔이 #여행앓이 #iceland🇮🇸 #icelandtour #aurora #icelandtravel #iceland #vik #Reykjavík #reynisfjara #island #glacier(Iceland, Reykjavik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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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mugjq41068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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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수영복 18163008 jr9ybutui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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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수영복 18163008 jr9ybutuimv https://www.instagram.com/stylechosunhttps://www.facebook.com/stylechosunofficial. 축구장 8천원 토리 버치.옐로 컬러 드레스 2백만. 남대문시장 링 24만. 상냥한 링 모두 가격 미정 샤넬.선셋 모노그램 라이트웨이트 후디드 재킷 5백19만. 솔직히 원대 펜디. 스몰 ‘비크’ 크로스 백 2백71만. 소수 원, 니트 소재 웨지 뮬 1백98만. 제헌하는 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립시 프린티드 원피스 스윔수트 33만. 징수하는 www.stylechosun.com​패션, 뷰티 주얼리,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다. 전반 원 모두 디올.옥스퍼드 소재 블라우스, 프린트 저지 소재 스위밍 톱, 옥스퍼드 소재 버뮤다. 화장품 팬츠, 핑크 컬러 주얼 이어. 외치는 원, 비키니 브리프 53만. 비난 8천원 조이 그라이슨. 후프 이어. 부웅부웅  <스타일 조선일보>에요.. 의문 링 23만. 뽀그르르 8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네이비 컬러 코튼 롱 재킷 가격 미정, 디올 오블리크 비키니 톱 53만. 매립하는 8천원 포트레이트 리포트.레드 컬러 원숄더 원피스 스윔수트 가격 미정 에르메스. 로고. 얼맞는 원대, 카키 컬러 벨트 가격 미정 모두 펜디.핑크 컬러 오버사이즈 셔츠 3백35만. 가로 원 발렌티노. 블랙 & 화이트 컬러 체크 원피스 스윔수트 12만. 바야흐로 9천원 데이즈 데이즈. 시에라 플랩 숄더백 35만. 반찬 매일 업데이트되는 인스타와 ​페이스북도 모바일로 확인하세요.. 잘못하는 원 발렌티노 가라바니. 레드 컬러 후프 이어. 고작 른 내용도 궁금하다. 기탁하는 른 이야기도 만. 빙시레 원, 화이트 컬러 리바이벌 뮬 1백7만. 자초하는 FASHION, 포트레이트 리포트, 토리버치​​이웃 여러분 안녕하세요!. 추가되는 대담하게, 아름답게. 2021 서머 스윔수트 여덟!summer forest멀티컬러 원피스 스윔수트, 레드 컬러 팬츠 모두 가격 미정 에르메스. 레드 컬러 플라워 모티브 슬링백 1백37만. 군실군실  비키니 70만. 바지런스레 원대, 로고. 보얘지는 날 수 있어.. 영국 면 <스타일 조선일보>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세요. 싣는 원, 모노그램 옴브레 컷아웃 원피스 스윔수트 95만. 라면 5천원 보테가 베네타.스트레치 리넨 캔버스 소재 드레스 4백10만. 오랜만 원 모두 루이 비통.에르메스 02-542-6622 샤넬 080-200-2700보테가 베네타 02-3438-7601디올 02-3480-0104펜디 02-514-0652루이 비통 02-3432-1854발렌티노 02-2051-4652발렌티노 가라바니 02-2051-4652조이 그라이슨 080-202-2002데이즈 데이즈 02-546-4403포트레이트 리포트 070-4062-4098토리 버치 1599-9679​​------------------vol.223의 다. 발롱발롱  쇼츠 1백만. 잡아끌는 원, 라피아 소재 슬라이드 1백19만.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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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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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쉰아홉 살의 클라라 슈만. 프란츠 폰 렌바흐의 (파스탈) 초상화. 1878년 츠비카우의 로버트 슈만 하우스 소장, - 낸시 B. 라이히 , ' 클라라 슈만 평전 ' 중에서) 이 위대한 여인은 세 남자-프리드리히 비크, 로버트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의 창조적 파트너였다. (p42) 비크 집안의 일상에는 몇 시간씩 지속되는 산책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클라라는 세 살부터 이 산책에 동참했다. 비크는 자신의 딸이 어른들과 진도를 맞추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다행히 이 진지한 아이는 그럴 만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산책은 클라라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평생 동안 늘 지켰던 일과였다. 산책은 그녀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일과였다. 실제 클라라는 그녀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꾸준한 산책 덕으로 돌렸다. (p58) 59-60 비크는 자식과 소통하고 그녀를 교육시키는 방법으로 일기장을 활용했다. 그는 (일기를 통해) 설교를 했고 철학적 통찰을 하기도 했다. 정보 제공, 칭찬과 책망, 비난과 찬사 모두 비크의 큼직한 필체-검은색 잉크로 쓰인 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마치 클라라가 직접 쓰는 것처럼 일기 내내 1인칭 시점을 고수했다. 심지어 그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비크가 클라라 개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식이 가장 놀랍다. (p65) 79 88-89 90 101 클라라가 아홉 살 때 처음 만난 로버트 슈만과 그녀의 관계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슈만의 이야기에 근거해서 보면,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켰던 어린아이 같은 환상성, 이들이 함께 즉흥적으로 혹은 악보��� 따라 연주했던 음악, 함께 공유했던 기억과 경험, 클라라의 어머니스러운 염려와 소녀다운 농탕질이 다 녹아 있다. 슈만이 비크의 집에 살기 시작했을 때 클라라는 열한 살이었고, 그의 관심과 이야기, 그가 그녀와 남동생들과 함께 했던 유치한 장난들을 모두 즐겼다-이런 것들은 그녀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그녀는 1831년에 출간된 자신의 작품집 1번의 판본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으로 슈만의 이름을 목록에 올렸다. 그녀의 <낭만 변주곡(Romance variee)>은 (비크의 허락을 받은 후) 슈만에게 헌정되었고, 이러한 장난스러운 편지와 함께 그에게 보내졌다. '동봉한 별것 아닌 작품을 당신에게 헌정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변주곡이 출간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되돌릴 수 없겠죠. 그렇기에 동봉한 곡에 대해 당신께 사죄를 구합니다. 이 소곡의 배경이 되는 당신의 천재성이 내 곡에 있는 오류들을 덮어 주길 바랍니다. 또한 당신의 곡을 보내 주었으면 해요. 내가 당신이 무슨 곡을 쓰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요.' (p111-112) 119 (슈만 다비드동맹무곡) 120 (슈만 교향적 연습곡) 127 클라라 비크는 그토록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믿음으로, 그녀의 일생에 모토가 되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렇지만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재능이에요. 인간의 감정을 소리로 감싸 안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요. 슬플 때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근사하고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는 것, 음악을 순수하게 추구하는 일은 실로 고양되는 일이지요.' (p137) 비엔나에서처럼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다시 클라라 안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 감정은 비크의 가르침을 여전히 필요로 한다는 자각과, 지금까지 부친의 수고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과 뒤섞였다. 클라라는 자신이 음악을 사랑하는 것-아버지의 끔찍한 잔소리와 비이성적 행동에서 도망칠 유일한 도피처-도 비크에게 빚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해 8월 드레스덴에서 클라라는 이렇게 썼다. '사랑에 빠지면 아름다운 모든 것들에 얼마나 민감해지는지! 이제 음악은 과거와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복되며 얼마나 갈망으로 가득한가. 나는 피아노를 치다가 지쳐 쓰러질 수도 있지만, 음색이 나를 어루만지고 엄청난 위로를 건넨다! ... 음악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울고 싶을 때 음악은 내게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허락한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하고, 절대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p145-146) 마침내 두 사람이 결합하자, 이들은 <결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일기장에 그들은 서로 격주로 번갈아 가며 연합 일기를 쓰기로 맹세했다. 일기나 저널은 흔하고, 두 사람이 같이 쓰는 일기 형식은 아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보기 드문 것은 아니었다. 펠릭스와 세실 멘델스존 부부, 리스트와 다구 백작 부인을 그러한 기록을 남긴 음악가들로 꼽을 수 있겠다. 슈만 부부에게 이러한 시도는 잘 맞아떨어졌는데,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말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과묵함은 어린 시절의 침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버트의 어눌함은 대외적 수줍음, 어색함, 자신감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사춘기를 지나서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점차 악화되어 생애 후기에 슈만은 거의 말을 못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는 언제나 글로 최상의 소통을 했다. 글쓰기는 그가 좋아하는 표현 수단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글, 그리고 결혼 일기는 이들의 라이프치히에서의 일상, 이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관한 중요한 정보원이며, 이들의 정서적 삶의 추이와 이들이 작곡하거나 연주하고 들은 음악에 관한 생각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예술가들의 인물 연구"를 제공한다. 이들의 문제, 불평, 두려움이 결혼 일기의 갈피마다 공유된다. (p176) "우리는 내가 이전에 알지 못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내 아버지는 항상 소위 가정 내에서 누리는 기쁨을 조롱했다. 이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을 나는 딱하게 여긴다. 이들은 반만 살아 있는 것과 다름 없다." 클라라는 그의 창조적 삶에서 자신이 점점 더 밀려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 자신이 연주를 하지 않았고, 로버트가 작업 중일 때는 피아노를 쓰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좌절감은 당연히 더욱 커져 갔다. 혼자만의 방이나 피아노가 있다 해도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p185) "로버트가 자신의 예술에 집중하면 할수록, 내가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적어진다. 하늘만 아시지! 우리 살림살이가 작다 해도 방해가 끊이지 않고, 나는 언제나 방해를 받아 연습에 몰두할 시간을 뺏긴다." 클라라는 불행하다고 느꼈고 로버트는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로버트의 일이 우선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p189) (슈만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 피아노와오케스트라를 위한 a단조 환상곡) 188-189 (슈만 낙원과페리) 202 (슈만 게노베바) 218 (g단조 트리오) 220 (슈만 빌헬름 마이스터) 221 (슈만 페리) 227 234-236 '무서우리만큼 나를 슬프게 만드는 건 이런 것이다. 오늘 내가 온 힘을 다해, 내 최선을 쏟아부어 피아노를 쳤다. 이보다 더 훌륭한 연주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슈만의 비난을 듣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다정한 격려 대신 가장 신랄하고 기를 꺾는 비난을 들어야 하다니... 내가 앞으로 어떻게 피아노를 연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성악가의 노래에 가장 섬세하고 민감하게 반주를 하려고 무진 애를 써도 로버트는 내 반주가 형편없다고 말했다!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연주를 할 필요가 없다면,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음도 치고 싶지 않다. 로버트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객들의 갈채를 받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예술가가 여전히 남편의 승인을 갈구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의 개인사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쭉 클라라는 자신의 연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을 사랑과 동일시했다. 그녀의 초기 연주는 아버지-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끌었다. 로버트 슈만과의 연애 초창기에 받은 청중의 인정은 아버지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주었다. 클라라 슈만의 베를린 공연은 어머니로부터 다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기에 클라라에게 있어서 로버트 슈만의 비판은 사랑을 회수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남편의 비판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제대로 자각하지 않았을뿐더러 그 사실을 슈만에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클라라는 분명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가 느꼈을 분노를(말하자면 억압된 형태의 분노를) 그런 감정을 초래한 남자가 아닌 뒤셀도르프 관객에게 쏟아부었다. 클라라 슈만은 로버트의 칭찬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겼고 그 어느 때보다 슈만을 보호하고자 했다. (p240-241) (슈만 g단조 트리오 op.110)240-241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44-245 그날 마리는 클라라가 하젠클레버 박사와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버지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날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것은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집을 나선 때였다. 어머니가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했지 때문에 내가 호출되었다. 어머니의 작은 방에 앉아서,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 방에 있던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펴야 했다. 나는 잠시 동안 어머니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옆방 문이 열리고 거기에 긴, 녹색 꽃이 그려진 가운을 입고 있던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창백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 신이시여."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나는 잠시 무엇에 홀린 듯 앉아 있었다. 곧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방에 없었고, 부모님의 침실로 통하는 문과 거기에서 복도로 연결된 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로 황급히 뛰어갔다. 거기에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사람들이 집 안의 모든 방을 샅샅이 뒤졌다.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을 시켜 아버지를 찾으러 보냈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레서 양에게 가 보라고 하셨고, 그분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다 설명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파트너인 융에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어머니가 극심하게 염려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런 일을 벌일 줄 알았고, 의사 선생님과 레서 씨 집에 머무르는 게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를 간병할 사람을 구했고, 며칠 후 아버지는 마차에 실려 어디론가 가 버렸다. 우리 어린 아이들은 위층 창가에 서서 아버지가 마차에 오르는 걸 보았다. 하젠 클레버 선생님과 간병인은 아버지와 함께 마차에 올라탔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꽤 회복되면 곧 집으로 오실 거라는 말을 들었지만, 집안의 하인들은 (아버지) 가까이에 서서 울고 있었다.' (p248-249) 클라라 슈만은 방문이나 면회를 금한 의사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관심이 없고, 나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클라라 슈만이 엔데니히를 방문하지 않은 데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녀는 기본적으로 순종적이고 성실한 여성이었다. 의료계의 질서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행위 자체를 클라라나 그녀의 동시대인들은 쉽사리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가 로버트 슈만과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맞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그녀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클라라는 실제 아버지에게 반항하기까지 몇 년을 망설였다. 그녀의 기본적 행동 모드는 권위자의 지시 사항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슈만이 입원하고 난 뒤에야 클라라는 남편의 병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클라라는 그동안 자신이 기피했던 일을 직면했다. 슈만은 여러 해 동안 "울증", 두통, 류머티스성 통증, 현기증, 이명, 환청과 같은 증상을 보였지만 클라라는 단 한 번도 그것을 직면한 적이 없었다. 비록 클라라가 때때로 엔데니히의 의료진에 의구심을 품을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권위에 도전한 적이 없었고 방문 금지를 받아들였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에 대해)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신 질환 환자의 친척들, 특히 자살을 기도한 환자의 가족들은 종종 죄책감을 느낀다. 누구도 클라라에게 슈만이 자살 기도를 했다고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즉시 그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슈만의 자살 기도에 대한 소식은 음악계에 빨리 퍼졌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알버트 디트리히는 뒤셀도르프에서 슈만과 친하게 지냈는데, 요아힘에게 클라라가 슈만의 자살 기도에 관해 알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슈만의 우울증과 고립 상태는 너무나 심각했다. 때문에 클라라는 그를 방문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알던 남자가 더 이상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 클라라 슈만을 두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가 일기에 쓴 기록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나는 그 공포는 로버트 슈만이 제정신이 아닐 때 자신과 아이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닿아 있었다. 슈만 자신도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는 근거 없는 염려라고 보기 어렵다. 더욱이 슈만이 아내나 아이들에 관한 안부를 묻지도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클라라는 분노와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p253-255) 7월 29일 오후 클라라와 브람스는 기차역에서 요아힘을 만나기 위해 잠시 병원을 빠져 나왔다. 세 사람이 한 시간 후 병원으로 돌아갔을 때 슈만이 한 시간 전에 홀로 죽음을 맞았다는 걸 알았다. 클라라는 그가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사망한 로버트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이마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고 있다. 내가 깊이 사랑했던 남자의 몸 가까이 서 있다. 모든 것이 고요하구나. 로버트가 마침내 ���유로워졌다는 사실에 신께 감사를 돌릴 뿐이다. 그리고 그의 침대 가에 무릎을 꿇었을 때 너무나도 신성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로버트의 아름다운 영혼이 내 위를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오, 그가 제발 나를 같이 데려가 준다면! 오늘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그의 눈썹 위에 꽃을 얹었다. 로버트는 떠나면서 그를 향한 내 사랑도 함께 가져갔다.' (p264) 말년 The Later Years 클라라 슈만은 명예로운 자리에 올았고 사람들에게 엄청난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아니면 정반대로 철저한 적대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녀의 겸손함, 단백함, 그리고 가식 없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자녀들과 친구들, 그리고 청중에게 그녀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무대 위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자신에 대한 의식'이 좀처럼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로서, 선생으로서, 그리고 피아니스트로서 클라라 슈만은 기품과 자기 통제를 잃지 않았다. (p267) 270-271 274 로버트 슈만은 아내 클라라 슈만이 전문 연주자로서 계속 활동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필요한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아이들 양육이나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19세기 독일의 여인답게 클라라 슈만은 남편이 가사노동이나 양육을 분담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성실했던 그녀는 여자로서의 책무를 회피하지 않았지만, 가사노동을 감당하느라 동동거려야 했다. 작곡가인 남편을 방해하지 않을 때에만 연습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클라라 슈만이 느꼈을 분함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슈만이 아프고 다른 수입원이 필요할 때, 클라라 슈만은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책임을 지는 걸 자발적으로 감당했다. (p276) 슈만의 죽음 이후 슬픔으로 점철된 몇 날, 몇 달 동안 이 젊은 과부는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열성을 다했다. 외부인들은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여겼다. 곧 클라라 슈만은 전문 연주자로서의 삶에 아무리 시련과 긴장이 따른다 해도,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비견할 수 없는 성취감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라라 슈만의 동시대인들 대부분은 오직 경제적 이유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추정했다. 어린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젊은 어머니가 자신의 안락한 삶을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직 요아힘과 아마도 소수의 친구들만 클라라 슈만이 콘서트 아티스트로 사는 것이 이 예술가에게 아이들과 집에만 있을 때는 얻을 수 없던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이해했다. (p280) (브람스 로버트슈만의변주곡) 288 (브람스 알토랩소디) 290-291 (브람스 가곡 op 63 내 사랑은 풋풋하지, 딱청나무열매에 관해서, 86 사랑의 급물살) 308-309 이러한 비극적 사건들은 보통 여성들의 일생을 완전히 망가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살아남았다. 언제나처럼 이 불굴의 생존자는 상실에 대한 방어막을 잘 만들어 놓았다. 그녀가 자신의 일에 에너지를 쏟으면서 불안과 고통을 옆으로 치워 두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계속 전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이 그녀의 외롭고 두려운 시간-클라라 슈만이 일어난 일들을 곱씹거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을 채워줬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방식의 자기 보존은 클라라 슈만이 예술가였기 때문에 용인되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해 준 그녀의 커리어는 다른 중산층 독일 여성들이 택한 고전적 여성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에서 그녀를 해방시켰다. 로버트 슈만 생전에 클라라 슈만은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어머니의 역할을 점점 줄어가는 열심을 갖고 수행했다. 로버트가 병원에 있는 동안, 그리고 그가 죽은 후 아이들에게 필요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모두 감당하면서 클라라 슈만은 그녀가 알던 유일한, 그리고 가장 강력한 보호자의 모델에 점차 가까워졌다. 그건 그녀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였다. 비크처럼 클라라 슈만은 높은 수준의 성실함을 요구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클라라 슈만은 매사에 기준이 높았고 억압적이었다. 물론 슈만은 그녀의 아버지보다 훨씬 이성적이었고, 확실히 덜 천박했다. 비크가 일을 처리할 때 보이던 사악함을 내비친 적도 없었다. 그러나 클라라 슈만에게는 로버트 슈만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의와 자기 절제가 그녀의 최우선 순위였다. 자신의 자녀와 손주들에게 책임, 절약, 규율을 강조했다. (p310-311) 음악을 창조하고자 하는 클라라 슈만의 욕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충족된 적이 없다. 이러한 욕구는 직접 연주하는 것뿐 아니라 음악을 듣는 것으로 뻗어 나갔다. 1873년에 클라라 슈만은 잘 연주되지 않는 슈만의 오페라 <게노베바>를 헤르만 레비의 지휘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 클라라 슈만은 이 곡에 깊이 감정이입을 했다. 이 작품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마리가 베를린에서 클라라를 급히 필요로 했다. 이 작품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마리가 베를린에서 클라라를 급히 필요로 했다. 그녀는 브람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여행을 접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군요. 아이들은 이걸 포기하고 자기들에게로 향하는 내 사랑이 어떤 건지 짐작도 못하겠죠. 우리 같은 전인적 예술가들만이 우리가 느끼는 즐거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p313) (슈만 게노베바)313 1860년 2월 5일 나이 듦과 에술을 접어야 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클라라 슈만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직 한 사람, 오직 슈만을 위해서 내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의 예술과 전 존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나는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은 (클라라 슈만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남긴다. 클라라 슈만의 교육과 성격에 더 맞는, 더 정직하고 일관된 기록은 그녀가 편지와 일기를 통해 예술계에 관해 많이 언급한 대목일 것이다. 가장 명확한 부분은 클라라 슈만이 1854년 9월 요하힘에게 쓴 편지에 있다. 로버트 슈만이 요양원에 보내지고, 그녀가 아이들을 집에 두고 연주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하던 참에 쓴 내용이다. '내가 지나왔고, 앞으로 통과해야 할 두렵고 불안한 시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낼 힘을 달라고 언제나 신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진정한 오랜 친구인 피아노여, 이번에는 나를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 오 친애하는 요아힘, 나는 언제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근사한 일인 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내 모든 고통과 기쁨이 오직 신성한 음악을 통해 경감되고 다시 내가 온전해질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p314) (브람스 두대위피아노를 위한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볌주곡, 슈만 인터메치 op4, 올림f장조로망스 op.28)325 슈만이 죽고 나자 클라라는 그녀의 아이들에게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에 머물던 2년의 시간 동안 그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썼다. "진실한 친구답게, 그는 나의 모든 슬픔을 함께했다. 그는 부서지기 직전의 나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내 영혼이 살아나도록 했다. 그는 친구라는 말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브람스는 그녀에게 자신의 젊음을 주었고, 사랑과 위로를 나눴고, 열정적인 존경을 바쳤다.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천재로서 그는 클라라에게 자신의 음악과 작품을 나누었다. (p326-327) (브람스 피아노4중주 op.60)338 341 347 (브람스 f 단조 소나타, 스케르초 op.4)348 (모차르트 353 (브람스 바아올린소나타1번, op.78,)354 클라라에 대한 그의 깊은 감정들은 1896년 5월, 클라라가 프랑크푸르트의 처소에 거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던 때 작곡된 그의 마지막 가곡지 <네 곡의 엄숙한 노래(The Vier ernste Gesange)>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식적으로는 막스 클링어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네 곡의 노래들은 클라라의 장례식에 모였던 친한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그해 7월 곡이 출판되자, 브람스는 마리 슈만에게 곡을 보내면서, 아래와 같은 편지를 동봉했다. '1896년 7월 7일 나는 이 곡들을 5월의 첫 주에 썼단다. 인간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는 우리에게 말은 하고 있지만 언어로는 거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 그런 내용들이 때때로 시나 음악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겠지. 지금 당장은 이 노래들을 연주하기 어려울 거야. 왜냐하면 가사가 너에게 너무 직접적으로, 너무 아프게 다가올 테니까. 이건 너의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쓴 나의 헌사란다.' 클라라 슈만은 1896년 5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는 열한 달을 더 살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p367) (쇼팽 나이게 그대의 손을 연인이여에 의한 변주곡 op2) 371 (쇼팽 f단조협주곡) 375 (op6) 377 (리스트 헥사메론) 385' 386, (리스트 돈주앙 환상곡) 387-388 (리스트 b단조소나타) 390 (바그너 트리스탄과이졸데) 393 클라라 슈만은 일생 동안, 작품들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들의 가치에 대해 자주 불안해했다. 개인적, 사회적인 상황이 그녀의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다. 당시에 팽배했던 여성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여성은 조신하게 처신하고, 겸손해야 하며, 창조적인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가 연주자로서의 그녀의 야망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작곡에 대해서는 달랐다. 그녀의 남편이 위대한 작곡가이지만 능력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지고, 당시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부 사이를 예민한 경쟁 구도로 밀어 넣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클라라는 자신의 작곡 능력에 대해 때로는 절망과 부끄러움을, 때로는 만족과 흥분을 느끼면서, 어쨌든 로버트 슈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지속적으로 작품을 썼다. 1856년 슈만 사후, 그녀가 왜 작곡을 포기했느냐는 질문의 답은 싱글 맘이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녀가 감당해야 했던 무거운 삶의 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p408) () 410 (피아노 협주곡 op7) 412 ()413 로버트 슈만이 클라라에게 작곡을 독려하고 그녀의 재능을 칭찬하며, 심지어 출판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사실 작곡가로서의 아내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물론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녀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에 관련된 리뷰나 기사들을 정성껏 모으고, 종종 거기에 밑줄을 치거나 코멘트를 써 넣었다. 그가 밑줄 친 문장을 살펴보자. "그의 음악적 성취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있다면 바로 아내가 된,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사람인 클라라 슈만일 것이다. 로버트 슈만은 그녀의 아버지 집에서 수년간 기숙했다." 그는 이 문장의 여백에 "1년간"이라고 적어 놓았다. 기사는 이렇게 계속된다. "다른 유명한 비르투오소들과는 달리, 클라라 슈만은 자신의 작품을 거의 연주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이 대다수의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월등히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843년 2월 17일 슈만 부부의 결혼 일기를 보면 슈만의 생각을 알게 된다. '클라라는 여러 곡의 작은 소품들을 완성했다. 전에 없던 음악적인 기발함과 우아함이 느껴지는 곡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더군다나 늘 작곡의 세계에 빠져 있는 남편과 함께 살면서 작곡을 계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작곡에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나는 가끔 그녀가 품고 있는 많은 음악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냥 소멸되어 가는 것 같은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삶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나는 그녀가 엄마로서의 삶을 행복해하고 변화를 원치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p414-415) (op23) 416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로버트와 본인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나 않을지 자주 걱정했다. 감정적인 동요도 심했다. 1841년 5월에는 거의 흐느끼면서, "정말로 더 이상 작곡을 할 수 없다. 모든 시들이 나를 외면한다."라고 썼다가 한 달 뒤에는 로버트의 생일 선물로 네 곡의 가곡을 썼는데, 그가 그 곡들을 출판하고자 하는 모습에 몹시 기뻐하기도 했다. 결혼 직후 처음으로 작곡한 가곡들에 대해서는, "마침내 세 곡을 완성했다. 이번 성탄절에 로버트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제발 로버트가 나의 이 미약한 시도를 너그럽게 봐주고, 최선을 다한 결과물임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저 (나에 대한) 그의 소망을 충족시키고자 했을 뿐이다."라고 썼다. 왜일까? 왜 그녀같이 재능 있고 지적이고 창의적이며, 성공한 여성이 남편에게만은 이토록 자기 비하적일까? 어떠한 이유로 그녀는 자신을 낮추고, "그의 소망을 충족시키고자" 했을까? 이 두 음악가의 독특한 결합의 형태가 그 이유일 수 있다. 클라라는 자신이 우러러보던 위대한 작곡가와 결혼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당대의 관객들이 로버트 슈만의 천재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는 결국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 오를 것임을 확신했다. 어떤 음악가라도 그렇게 우러러보는 인물과 결혼했다면, 그의 존재에 위축될 수밖에 없으리라. 로버트 슈만보다 한참 어린 클라라는 늘 그에게 조언을 구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평가를 두려워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라는 지극히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명제에 순응했지만, 클라라 비크 슈만이 로버트보다 훨씬 유명한 연주자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이들 부부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기혼 여성은 사회 활동을 멈추는 것이 당연지사였던 시대에, 그녀는 아마 자신의 스타성과 경제적 능력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그녀는 자신이 커리어에 너무 큰 욕심을 낸다면, 로버트 슈만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미리 결론을 내린 채,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을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확고해진 후에도 여전히 자신을 낮추는 표현들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성공적이지 못할 경우 자기변호를 할, 일종의 보호막을 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러한 겸손이 남편을 앞서는 그녀의 성공으로 인한 불균형을 조금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성 작곡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역시 작곡가로서 그녀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신문에 실리는 음악 평론들이 그러한 편견의 대변인 노릇을 했다. 그녀의 즉흥 연주나 자작곡들은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늘 작품들은 '여성'작곡가의 작품이라는 제한 속에서 평가되었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을 남성 작곡가들의 작품과 비교했다. 여성이 그만큼의 창조적 재능을 지녔음에 놀라워했다. 독일의 <종합 음악신보>에 실린, 그녀의 피아노 트리오에 대한 평론은 "여성 작곡가들은 고차원적인 음악 형식에 도전하는 일이 드물다. 그 이유는 그러한 복잡하고 큰 규모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에는 상당한 추상적 사고 능력이 필요한데, 이는 압도적으로 남성에게 더 강한 면모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론 그 뒤로, "그러나 클라라 슈만은 이러한 능력을 온전히 지닌 몇 안 되는 여성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라는 칭송이 이어졌으나, 그녀는 여전히 남편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p419-421) 로버트 슈만은 작곡이라는 자신의 삶의 주된 목표로 향하는 데에 별 걸림돌이 없었다. 반면, 그의 아내는 연주를 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이들 양육과 가사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결혼 후, 그녀는 성탄절이나 생일 같은 기념일을 위한 선물로, 또는 남편의 특별한 부탁이 있을 때에만 작곡을 했다. 남편의 지속적인 격려에도 불구하고, 작곡에 대한 그녀의 내적 갈등은 작곡 생활을 유지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1856년 로버트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클라라는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았다. 남편 사후, 그녀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연주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남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남편의 작품을 알리는 일에 헌신했다. (p423) 424 424- 460 프린트 - 낸시 B. 라이히 , ' 클라라 슈만 평전 ' 중에서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3991538167570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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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vhauab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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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01월12일 - 과거속 오늘 「 Kramer Guitar Baretta SpecialΔ
Kramer Guitar Baretta Special Targeting ⊙ 귀차니스트.⊙ 메탈기타 입문자. 1976년 미국 뉴저지 주에서 설립된 크레이머 기타(Kramer Guitars)는 ‘튜닝포크헤드(tuning fork head)’ 헤드스톡과 에바놀 지판이 달린 알루미늄 넥을 활용해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섈러(Schaller)의 고급 튜닝머신과 브릿지, 그리고 특별 제작된 디마지오 픽업을 커스텀으로 내세워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처럼 외부제조사의 부품을 활용해 커스텀 서비스를 하는 것은 당시로선 드문 일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나무 넥을 활용하기 시작한 크레이머는 회사의 개성을 살린 ‘비크(beak)’ 헤드스톡과 로킹거(Rockinger) 트레몰로 시스템으로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일명 ‘하키스틱’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비크 헤드스톡은 결국 크레이머 기타 디자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튜닝을 유지하면서도 극단적인 트레몰로 벤딩을 가능케 한 로킹거 트레몰로 시스템은 수많은 테크니컬 연주자들에게 환영받았다. 1981년 회사 창립자인 데니스 베라르디(Dennis Berardi)와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Eddie Van Halen)의 만남은 크레이머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크레이머의 기술적 독창성과 에디의 음악적 갈증이 완벽하게 맞물린 결과, 에디를 엔도서로 임명한 크레이머는 에디의 높은 인지도와 함께 일약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이후 플로이드로즈 트레몰로, 세이무어 던컨 픽업, 새로운 헤드스톡 디자인 등을 적용하며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를 꾀한 크레이머는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믹 마스(Mick Mars)와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의 비비안 캠벨(Vivian Campbell), 본 조비(Bon Jovi)의 리치 샘보라(Richie sambora) 등 새로운 엔도서와 함께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한동안 크레이머는 잭슨, 샤벨과 함께 1980년대 록 기타계의 춘추전국시대를 이끈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했다. 비록 메탈음악의 인지도 하락과 경영난�� 겹치며 1990년대 초반부터 공식적인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이후 깁슨에 편입되면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크레이머는 현재 8가지 시리즈에서 10여 종의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그중 바레타 스페셜(Baretta Special)은 브랜드의 대표시리즈인 바레타(Baretta) 시리즈에 속한 모델이다. 한때 에디 밴 헤일런의 선택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오리지널 바레타의 이미지를 계승하고 있다. 100만 원을 호가하는 고사양의 바레타 빈티지(Baretta Vintage)를 제치고 이 기타가 바레타 라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이유는 전체적인 단순함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조작적 편의성과 가성비 덕이다. 한마디로 바레타 스페셜은 ‘심플함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타다. 단순한 외관은 일견 경이롭기까지 하다. 바디에는 알니코V 지브라 험버커 하나와 그 픽업을 구동하는 볼륨노브, 빈티지 트레몰로 브릿지가 전부다. 톤노브 따위는 패기 있게 생략되어 있다. 그나마 블랙은 어차피 어두우니까 조금 나은 편인데, 화이트 색상 모델의 경우 바인딩 하나 없는 바디 위에 이 세 가지의 스펙만 놓인 터라 약간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브릿지 픽업을 기울인 특유의 픽업 마운트 방식, 하키스틱 헤드 디자인 등 크레이머의 상징적인 스펙들은 그대로 나타나 있다. 305mm 지판곡률과 648mm의 스케일 길이는 무난한 구성을 강조한다. 더 이상 설명할 스펙도 없다. 이게 전부다. 하지만 저렴하다고, 별거 없어 보인다고 사운드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바레타 스페셜은 미친 가성비를 자랑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클린톤은 다양한 플레이에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고, 게인톤은 고가의 메탈머신 부럽지 않은 탄탄한 내실과 드라이브 양을 자랑한다. 다른 악기의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펀치력 있는 입자감과 고른 이퀄라이징 밸런스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저가기타의 취약점인 해상도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노브들을 이리저리 만져서 톤 만드는 과정이 귀찮거나 익숙하지 않은 연주자에게 바레타 스페셜은 거의 축복에 가깝다. 고민의 폭 줄여줘, 사운드 죽여줘, 가격 착해··· 심심하게 생긴 거 말고는 빠지는 게 없는 기타다. 여기에 무언가를 더 바란다면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 아닐까. 01월12일 - 과거속 오늘 1972년 방글라데시 라만 초대 총리 취임 AD 1200년경 이슬람인들은 벵골(Bengal) 지역에 있는 힌두와 불교 왕국을 침략하여 왕권을 빼았았다. 그로 인하여 벵골 동부의 대다수 주민을 이슬람교도로 개종시켰으며 서부 벵골지역에도 소수 이슬람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로부터 이슬람교는 이 지역의 역사와 정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5세기 후반 벵골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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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iik-vap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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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italia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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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0150f7n7hd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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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 사람이 있으면 들어온 사람도 있는 법. 맨유는 전 포지션에 걸쳐 베테랑 및 신예들을 수혈했다. 이번에 영입한 5명은 에딘손 카바니(33, 우루과이), 아마드 디알로 트라오레(18, 코트디부아르), 파쿤도 펠리스트리(18, 우루과이), 알렉스 텔레스(27, 브라질), 도비 반 더 비크(23, 네덜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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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rho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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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심에서
-영화 속 여성들과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목소리-
노재상
“Time’s Up”. 이는 올해 1월 (2018년에 쓴 글이다)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시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하여 여러 세계적인 시상식에서 많은 배우가 검은 옷을 입고 그 위에 보여준 글귀이다. 세계적인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러 여성 배우들과 여성 제작진들의 폭로는 온라인상에서 미투(MeToo)라는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양성평등 운동을 오프라인에서도 시행하기 위해 엠마 왓슨과 메릴 스트립과 같은 할리우드의 많은 여성 배우들과 작가 등이 모여 타임즈업(Time’s Up)이라는 운동이자 단체를 설립하였다. 할리우드라는 상징적 장소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불평등에 대한 폭로와 양성평등 운동은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여성들의 움직임은 현실 세계를 벗어나 스크린 속 여성 캐릭터들과 그들을 연기하는 여성 배우들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 이전에 여성이란 스크린 속에서는 오랫동안 한정되어 있었다.
과거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간의 가부장적 사회의 모습은 초기의 영화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여성들은 영화 속에서 그들의 존재가 대상화(對象化, Objectification)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영국 페미니스트 영화 평론가 로라 멀비는 남성적 응시(Male Gaze)라는 이론으로 설명하였다. 그녀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거울 이론을 바탕으로 가부장적 남성이 스크린 속 인간의 형태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2가지로 간결화시켰다.
첫째는 남성 관객이 스크린을 통해 여성 캐릭터를 바라볼 때 그들의 육체를 훔쳐보고 성적인 욕망에 휘감기게 되는 관음증적 절시증(苆視症,Scopophilia,대상의 나체나 사적인 행동을 보고 싶어 하는 성적 욕망)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에서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는 자신의 아파트 뒤편 창문으로 보이는 다른 이들의 보금자리를 훔쳐보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영화 전체가 관음증적 즐거움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 특히 제프가 성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은 건너편에 사는 젊은 여성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습이다. 이 부분에서 관객은 제프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신체와 행동을 보고 똑같이 절시증적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성적인 욕망의 객체가 되고 과거 사회의 가부장적인 질서가 스크린 속 여성과 관객 사이에서도 성립된다.
이러한 가부장적 질서에서 남성은 나르시시즘적 투영을 통해 관음의 대상이 되는 여성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서게된다. 성공하고 부유한 잘생긴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스크린 속 진부한 관계는 남성 관객이 자신과 같이 남근을 소유한 스크린 속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그 남자 주인공을 동일시하여 여성을 쟁취하고 그들보다 위에 서야 하는 사디즘적 욕망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 <이창>에서 제프가 위치한 곳은 그가 지켜보는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전지한 위치이다. 또한, 제프를 돌봐주는 미모의 연인 리사(그레이스 켈리)는 제프에게 헌신적이다. 제프는 관객들이 자신들을 투영할 존재이고 그 존재는 전지하고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관음증적 절시증을 즐기는 관객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사회의 가부장적 논리로 인한 나르시시즘과 사디즘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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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r Window, 1954)
로라 멀비가 정의한 남성의 시선이 스크린 속 존재하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보는 행위를 충족시키는 기제 중 또 하나는 페티시즘적 전시증이다. 이는 관객들이 스크린 속 여성의 존재와 그 형태를 보는 것을 통해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킨다. 여성을 페티시즘적으로 대상화시키는 데 있어서 그들의 캐릭터가 가지는 여성성은 중요하지 않다. 조세프 본 스텐버그 감독의 1932년 작 <상하이 익스프레스>는 그가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함께한 7편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는 초기 영화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페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서구 영화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가진 애너 메이 웡이 연기한 페이는 극 중 레즈비언으로 나온다.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연기한 릴리와 페이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극 중에 존재하는 남성 캐릭터와의 관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실제로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양성애자였고 극 중에서도 양성애자로서의 연기를 훌륭하게 펼친다. 이러한 두 여배우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자신을 투영할 우월한 남자 캐릭터도, 여성과 남성의 뚜렷한 상하관계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 그녀들의 존재와 신체를 대상화하여 보는 즐거움을 선사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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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nghai Express, 1932)
이러한 페티시즘적 절시증은 영화를 보는 남성의 불안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를 로라 멀비는 프로이트의 거세 불안 이론을 통해 설명했다. 그녀는 여성의 존재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자 여성의 존재 자체를 유희를 위한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방어기제가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그렇기에 관객이 여성 캐릭터와 그를 연기하는 여성 배우의 모습에 페티시즘을 느낄 때는 영화의 네러티브는 그 힘을 잃어버리고 스크린 속 존재는 형태로써만 남아있게 된다.
로라 멀비는 1975년에 발표한 논문인 <시각적 쾌락과 네러티브 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성적 응시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개념은 1975년 이전에 제작된 가부장적인 통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분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이론은 현재에도 유효할까?
여전히 수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응시에 대상으로 그려지고 그 역할은 한정적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여성의 몸이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대상화되는 과정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남성 대부분은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고 카메라는 그 일반인 남성 배우들이 볼 수 없게 숨겨져 있다. 또한, 로케이션 촬영은 촬영인지 모를 정도로 영화적 세팅 없이 실제 스코틀랜드 거리를 배회하며 촬영하였다. 스칼렛 요한슨은 외계인이자 로라라는 여성의 가죽을 뒤집은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 살을 찌우고 검은 가발을 썼다. 길거리를 배회하며 남성들에게 길을 묻는 척 유혹하는 그녀를 본 남성들은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쉽게 차에 올라타 그녀의 희생양이 된다. 그녀의 첫 목표물이 희생되기 전까지 관객은 첫 희생양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그와 함께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저 관객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같이 탑승한 희생양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녀가 길거리를 배회하는 이유가 희생양을 만들기 위함을 알았을 때 관객들은 더는 그녀를 응시하는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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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the Skin, 2013)
문제는 무시무시한 함정이 도사리는 ‘검은 방’에서 남성이 희생되는 모습이다. ‘검은 방’에서 남성은 나체의 로라를 욕망에 사로잡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따라간다. ‘검은 방’에서 그녀를 따라가자마자 바닥은 늪과 같이 희생양을 무시무시하게 삼킨다. 이때 카메라는 나체의 로라를 보여주는 데 그녀의 모습은 네러티브를 벗어나 여성의 형태로 페티시화되어 관객과 희생양에게 잠깐이나마 시각적 쾌락을 선사한다. 그러나 평행하던 카메라의 위치는 점점 늪과 같은 바닥에 잠식되어가는 희생양의 눈높이와 같이 낮은 앵글로 그녀를 쳐다본다. 이 장면에서 그녀는 페티시즘적으로 대상화되었지만, 그녀와 희생양 혹은 그녀와 관객의 관계는 가부장적 사회의 통념과 같은 남녀의 상하관계가 아닌 전복된 관계가 된다. 이 상황에서 희생양인 남성과 관객은 거세 공포로 인한 여성의 대상화가 아닌 체제가 전복되는 거세를 경험하게 된다. 남녀의 상하관계가 뒤집히는 거세는 관객에게는 공포이다. 공포 스릴러로 분류된 이 영화는 분명하게 로라 멀비의 남성적 응시를 이용하여 관객들의 심리를 뒤틀고 있다.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친절한 남성에게 연정을 품은 로라는 자신이 여성이 아닌 존재(외계인)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성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부정하는 강간범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는 이 영화조차도 로라 멀비가 제시한 이론 속 수동적이고 소비적인 여성의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처럼 보인다. 이처럼 여성이란 현대 영화에서조차도 가부장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능동적이고 입체적이며 가부장적 통념에서 벗어난 영화 속 여성은 초기 영화에서부터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프리츠 랑의 걸작 <메트로폴리스>에서 체제전복적인 역할의 여성 캐릭터를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 마리아의 모습으로 변신한 로봇은 상류층 남성들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를 뒤흔든다. 무대에서 남성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선정적인 춤을 추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휴거의 상징인 대탕녀 바빌론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메트로폴리스 지하세계에 홍수를 나게 하고 지상에는 혼돈을 가져온다. 비록 다분히 기독교적인 영화인 <메트로폴리스>는 이 체제전복적인 여성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리지만, 이 여성형 로봇은 초기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강력한 독립적 여성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진정 능동적이며 남성적 응시에서 벗어나는 여성의 모습은 현대에 이르러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대표적인 여성영화인 <델마와 루이스>에서 나오는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델마와 루이스’적 여성이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현대 영화에 상징적 영화이다. 남성이라는 존재의 통념을 뒤집으며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루이스(수잔 서랜든)는 자신들을 억압하고 종속된 존재로 생각하는 남성들을 총이라는 상징적인 무기로 심판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는 역설이다. 순종해야만 하는 부인과 종업원이라는 그들의 위치는 그들의 일탈이 남성적 시선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남성적 응시 이론을 무참히 깨버린다. 초반 치마와 화장으로 꾸며낸 그들의 여성적 모습은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사라진다. 그들의 손에는 탈취한 총이 쥐어져 있고 한껏 꾸며냈던 겉모습은 추레하기보다는 자유롭게 그들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타자의 응시이다. 델마와 루이스는 타자에 의해 관찰당하고 응시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제이디(브래드 피트)를 통해 그러한 응시의 객체를 전도시킨다. 제이디의 모습은 남성적 응시에 대한 도전인데, 제이디는 델마와 루이스에게 성적으로 유흥의 대상이고 또한 관객들에게도 그의 몸음 관음적 응시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경찰과의 추격 끝에 절벽으로 내달은 그들의 오픈카가 공중에서 머물며 끝이 난다. 죽음으로서 밖에 벗어날 수 없는 안타까운 남성 중심적 사회 속 여성들의 모습이라고 이 영화를 평가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대신 처음으로 두 손을 맞잡고 땅에서 벗어난 델마와 루이스는 찰나의 완전한 자유 속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더 좋은 결말의 해석이리라 생각한다. ‘델마와 루이스’적 여성의 모습은 이 이후에도 꾸준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속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다. 그들도 델마와 루이스처럼 남성 중심적이며 변태적인 사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심판한다. 단지 <아가씨>와 <델마와 루이스>가 다른 점은 델마와 루이스가 우정을 통한 여성의 연대였다면 히데코와 숙희의 연대는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또한, 극의 끝이 클라이맥스로 마무리되는 <델마와 루이스>와는 달리 <아가씨>는 남성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연합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는 점이다. 이 두 작품처럼 여성이 여성성을 유지한 채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탈피하는 영화 속 여성 배우들은 남성적 응시를 통해 페티시즘적 절시증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확실한 체제 전복을 이룬다.
이와 반대로 여성성을 누락시켜 완전하게 남성적 응시로부터 자유로운 능동적 여성 캐릭터가 존재한다. 리들리 스콧이 <델마와 루이스> 이전에 그린 또 하나의 강력한 여성 캐릭터인 리플 리(시고니 위버)가 그 중 대표적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를 제작한 리들리 스콧은 제작단계에서 대부분 배역의 성별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주인공 리플리는 <에이리언>에서 매우 중성적인 인물로 나온다. 영화의 초반에 보이는 그녀의 속옷 차림을 제외하면 네러티브 상에서 그녀는 무시무시한 화염방사기를 손에 든 채 용감하게 제노모프와 대결하는 여성성을 초월하는 강인한 리더의 모습이다. 인간으로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리플리는 관객에게 성별의 존재를 망각하게 하고, 때문에 <에이리언>이라는 영화의 네러티브가 남성과 여성의 존재를 떠나 인간과 그 인간을 위협하는 초월적 존재와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기 쉽게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보여진다. <에일리언>시리즈는 2편부터 본격적으로 리플리라는 존재가 여성성을 초월하여 중성적 매력에 모성이 덧붙여진 강인한 어머니라는 존재로 그려진다. 프로이트가 설명한 남근기를 지난 인간은 더 이상 어머니를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에이리언>시리즈 속 모성을 갖는 리플리는 관객에게 어떠한 시각적 쾌락을 선사하지 않으며 남성적 응시에서 벗어나게 된다.
조지 밀러 감독의 4번째 매드맥스 영화인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속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는 임모탄의 여인들을 구출해주는 짧은 머리의 영웅적 인물로 리플리 이후에 대표적인 중성적 여성 캐릭터이다. 퓨리오사 역시 극 중에서 어떠한 남성으로부터 여성성을 강요받거나 시각적 쾌락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현대 영화에서 남성적 응시를 벗어나는 여성 캐릭터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여성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가부장적 사회질서의 통념 아래 수동적이고 소비적이었다. 이로 인해 남성적 응시는 이 가부장적 질서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허용되어왔고 남성 캐릭터와 관객들은 영화의 주된 혹은 부수적인 역할로서 시각적 쾌락을 즐겨왔다. 이러한 네러티브 속 남녀불평등이 완화된 것은 분명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리플리와 같은 체제전복적인 캐릭터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영화제작자는 머물러있지 않고 남성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향으로 남성 중심적인 영화 산업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남성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영화는 영화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초기 영화사에 몇 안 되는 여성 감독 중 하나인 레온티네 세이건은 그녀의 대표작 <걸스 인 유니폼>을 통해 남성성을 완전히 배제한 영화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1931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남성성을 배제하기 위해 여성 기숙학교라는 배경을 선택하였다. 주인공 마누엘라(헤르타 티엘)는 최근 어머니를 잃고 군인 아버지에 의해 여성 기숙학교로 보내진 어린 소녀이다. 그녀는 곧바로 학교의 선생님인 본 베른부르크 부인(도로테아 비크)에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모성을 느끼고 후에는 모성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동성애 관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부분은 극의 초반에 어린 소녀들이 본 베르부르크 부인을 맞이하는 모습이 마치 잘생긴 남자 선생님을 보듯 팬덤이 형성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마누엘라가 학교로 전학 오기 전 이미 본베부르크 부인은 그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여학생들에게 연정의 대상이었다. 이 영화는 시대를 뒤흔드는 동성애적 주제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중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장면이 있다. 극의 초반 본 베르부르크 부인은 잠을 청하기 전 여학생들의 방을 방문해 한 명씩 이마에 키스해준다. 마지막으로 마누엘라에게 키스를 해줄 차례가 오는 데 이때 본 베르부르크 부인과 마누엘라의 투샷은 마치 3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녀 연인관계의 미묘함을 표방한다. 마주 본 두 여성은 입술에 키스하는 것으로 이 장면은 끝이 나는데 30년대 독일의 기독교적 사회는 이 장면을 비난하였다. 직유적인 동성애 코드와 영화가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적 성격은 이 영화가 1970년대까지 독일과 미국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 도전적이며 진취적인 영화는 1958년에 독일에서, 2006년 미국에서 <사랑하는 애너벨>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었다. 하지만 <걸스 인 유니폼> 이후에도 여성들이 네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영화는 여전히 실험적인 영화로 치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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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in Uniform, 1931)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여성 캐릭터를 네러티브의 주체로 등용하는 영화들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필두로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계 등 전세계에서 실험적인 영화를 넘어 하나의 장르성을 띄게 되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같은 남성성을 완벽하게 배제한 영화는 마치 남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저 남성성을 배제하기 위함이기 보다는 사회의 통념적인 이분법적 사고로부터 탈피하기 위함이다. 또한, 그들이 여성성으로부터 탈피하려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임을 그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남성적 응시에 의해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는 여성은 이제 막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남성성을 배제하여 남성적 응시의 한계를 무너트리거나 <언더 더 스킨>과 같이 남성적 응시를 정면으로 부딪치는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성 배우에게도 매우 큰 부담이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여성이 네러티브를 이끄는 영화는 여성 배우에게 큰 부담을 안기는 여론을 형성한다. 대부분 여론은 과거 여성영화들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을 빌미로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의 생산을 꺼리게 한다. 그러나 여성영화들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영화 중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금까지 제작된 여성영화들의 상업적 성공 확률보다 적을 것이다. 또한, 근래 많은 여성영화의 성공은 이러한 여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 등 평단과 관객 모두를 만족시킨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의 주인공은 사회적 소수자 중에 소수자이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여성이자 장애인이며 경제적으로도 최하층이다. 이러한 엘라이자는 소수자로서의 사회가 강요한 규범을 부수고 진정한 사랑을 위해 떠난다. 엘라이자의 나오지 않는 목소리 대신 젤다(옥타비아 스펜서)가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이 영화는 소수자를 대변한다. 엘라이자가 항상 챙겨주는 옆집의 자일스(리차드 젠킨스)는 동성애자이다. 엘라이자는 남성은 필요 없다는 듯이 남성적 응시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자위를 즐긴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한 것은 성별을 초월한 존재이다(물론 엘라이자는 크리쳐와의 섹스 후 젤다에게 “그”의 성기는 내장형이라 필요할 때 나온다고 설명하며 크리쳐는 남성임을 시사한다). 이러듯 쉽사리 보호받아야 할 소수자이자 응시의 대상이 되기 쉬운 여성 캐릭터를 샐리 호킨스는 위태위태하지만 강직한 여성으로 해석하여 연기하였다. 이처럼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통해 능동적인 여성을 영화 속에 그려내는 능력은 남성 중심의 사회와 남성적 응시에 도전하는 현대 여성의 힘이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와 코엔 형제 감독의 <파고>를 통해 두 번이나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두 영화에서 가부장적인 사회에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는 영웅적 여성이자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녀가 연기한 두 여성의 의의는 남성적 응시에서 벗어남에 그치지 않는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영화가 시각적 언어임을 이용하여 스크린 속과 밖의 여성들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그녀는 임신했어도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여성의 모습을 <파고> 속 마지를 통해 보여주었고, 반인륜적인 사회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강인한 모성의 전형을 <쓰리 빌보드> 속 밀드레드를 통해 보여주었다.
하비 와인스타인 사건과 같은 일렬의 일들은 남성 중심적 사회와 남성적 응시로 인해 스크린 속 여성이 소비되는 행태가 스크린을 넘어 현실 세계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연기한 캐릭터들과 같이 남성 중심적 사회와 여성이 소비되는 행태가 팽배한 사회에 대한 반기를 드는 스크린 속 여성들은 스크린 밖 타임즈업과 미투운동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여성운동은 한국에서는 “남혐”이라는 잘못된 개념이 첨가되었다. 필히 우리는 영화 <카트> 속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연대라는 주제를 통하여 진정한 여성운동이 무엇인지, 소비되지 않는,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201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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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제품 소매 업체의 장기적인 미래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국 전역에 200 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직원 2,500 명을 고용하고있는이 회사는 벌집 지점은 도시의 두 곳 중 하나이며, 시내 중심가의 세인트 앤드류 거리에 두 번째 마플린 지점이 있습니다. 회사의 이사들은 기업인 인 필립 데이 (Philip Day)와 구조 협상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TableRangers FC ‘레인져와 레퍼런스가 함께 일하고있다’발신자의 전화가 FIFA에 글을 쓴다. 그는 마드캡 음모 이론을 밝힌다. 스티븐 스턴 (Stevenston)의 Chris는 그의 비장을 껐다. 개인 의료 간호사 가정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개인 간호사 또는 보좌관의 수가 건강 관리의 일부로 증가하고 있습니다.5. 재무 심사관 회계사 및 세금 신고자와 같은 전문가를 포함합니다. 의대생 의료계에 진학하는 학생.7.
흡수 신호는 비 공진이며 그 경계는 혼합 상을 결정하는 두 개의 중요한 필드에 해당합니다.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반 강자성 층의 부 격자 자화와 같이 증가하며 100 ~ 480 GHz 사이의 주파수 의존성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반대로, 중요한 필드는 자기장 주사 방향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멕시코의 주택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 발전에 따라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구매자가 집에 관심을 갖도록 항상 집을 유지해야합니다. Lithostratraphy, 꽃가루 stratigraphy 및 biomarker 증거는이 퇴적물이 Hoxnian 날짜 게시 날짜이 간빙기뿐만 아니라 추운 기후 침전물의 사전, 초기 및 늦은 온건 간격에 걸쳐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시퀀스에서 내인성 탄산염의 18O 신호는 간빙기의 기후 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몇 가지 명확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간빙기 및 장기간의 Hoxnian stadial / interstadial 발진 후에 장기간의 기후 안정성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18O 신호는 간빙기 동안 급격한 냉각 현상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국가 안보국 (State Security Service of Ukraine, SBU)은 소비에트 요원이 전체 캠페인의 배후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소련 기관이 나흐 티갈 (Nachtigall)이 포그롬 (Pogrom)에 참여했다는 어떠한 진실 된 증거도 찾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기밀 문서를 인용했다. 우크라이나 국립 연구소 (National Remembrance)의 연구소 소장과 함께 야드 바셈 (Yad Vashem)을 방문하여 나치 티갈의 죄책감을 입증 한 문서를 보도록 요구했다. Yad Vashem은 당연히 원래의 주장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제시 할 수 없었고, Nachtigall은 하나의 단위로 인정되었다.. 토성 위성의 현대 명칭은 John Herschel (William Herschel의 아들)에 의해 1847 년에 제안되었다. 다른 행성의 명명법에 따라, 그는 로마의 신화 적 인물 인 농업과 수확의 신의 이름을 따서 지어지기를 제안했다. 토성, 그리스 크로노스와 동등합니다.
James BlackOur Ibrox 블로거는 레인저스도 콜롬비아도 그럴 수 없다고 믿고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조세 모링요는 폴 포그바에게’ 바이러스 ‘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탈의실 폭풍 이후 논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장은 화요일 아침 언론을 만났을 때 그의 침묵을 깨뜨렸다. 셀틱 FCCeltic ace Leigh Griffiths는 스코틀랜드의’허프 ‘주장을 비웃고 Alex McLeish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다.28 세의 젊은이는 지난 두 번의 국제 휴식 스티브 제라드 (Steven Gerrard) ‘우리 팬이 훌륭 했으므로 14 명을 상대로 승리했다.’레인저스 감독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제라드는 또한 알프레도 모렐 로스를 변호하고 Ibrox로부터 그를 상대로 ‘최고, 최고의 카지노사이트 돈’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Transfer TalkTransfer news LIVE : 스코틀랜드 축구계와 그 이후의 모든 최신 움직임, 소문과 가십 우리는 ‘ 겨울 창문을 열어 몇 주 후에 우리는 소문과 험담을위한 우리의 원 스톱 샵에서 당신을 최신 상태로 유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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