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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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claphat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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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 clap, hat : 위상 전환_시청각의 분절과 충돌, 그리고 전복의 순간으로부터
시각의 체계는 형태와 개념을 토대로 대상을 식별, 구분, 명명에 이르기까지 여타의 감각에 비해 선명한 작업이 가능하기에 압도적으로 방대한 목록을 구축할 수 있었으며, 그런 연유에서 적어도 서구의 합리적 근대성을 구축하는데 가장 적화된 감각이었다 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의 감각 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청각은 대상을 분명하게 규정하는 능력에서는 시각보다 다소 뒤떨어지지만, 동시에 망막의 일방향적 프레임 너머를 감각하게 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시각은 이미지의 정밀함으로 대상에 신뢰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그 선명한 해상도는 프레임 안에 국한됨으로 형태 바깥의 존재를 감지할 수는 없다. 반면, 시각적 명료함에 비한다면 모호한 청각적 경험은 화각 밖의 상황이나 환경, 또 다른 존재를 감지하게 함으로 대상을 그 형태 너머 문맥 안으로 위치시키고 프레임 바깥의 확장된 서사로 인도한다. 
안정주는 시각 중심의 문화가 주를 이루는 오늘날 ‘소리’라는 청각적 경험에서 비롯된 시감각 너머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주로 영상 매체의 형식을 취하곤 하지만, 작업의 서사를 추동하거나 표피적 이미지를 초월하여 정서를 충동하는 장치로 시각이 아닌 청각을 중심에 놓곤 한다. 이를테면, 4개의 채널에 싱크를 맞춰 상영되는 허물어지는 건물의 모습은 말미에 잔해를 뒤덮는 희뿌연 먼지 위로 풍경을 잠식하던 공사판의 소리만을 공허하게 남기며 특정한 정서를 유발하거나(Breking to Bits, 2007), 어지럽고 빠르게 돌아가는 소주 공장의 제작 공정에서 특정한 규칙을 찾아내어 그 위에 병과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편집, 재생함으로 공장 시스템의 반복과 규율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압도감의 틈새로 특별한 운율을 주입하며(Bottles, 2007), 통일된 행동 양식을 훈련함으로 집단의식과 소��감을 함양하고자 하는 제식 훈련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자의적으로 쪼개고 단위화하여 편집함으로 절도와 규율의 강박 사이 독특한 리듬의 공간을 창출한다. (Drill, 2005) 그리고 작가는 근래에 들어올수록 사운드가 가진 속성을 통해 기존의 체제나 시스템의 균열을 읽어내고 사회/정치적 맥락 아래 소리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원히 친구와 손에 손잡고>(2016)에서는 1988년과 1992년 개최된 서울 올림픽과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를 리믹스하여 만든 노래로 교차 편집된 두 음악의 뮤직비디오를 장식한다. 국가 주도 하의 민족성 고양 및 결속을 다지기 위한 노래(들)는 영상이 나오는 오래된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저해상도 이미지나 노이즈, 글리치와 맞물리며 감각적 균열과 긴장을 생성하고, 국가적 차원의 이벤트 저변에 깔린 갈등과 모순의 현실을 환기하게 한다. 또한 <Smoke>(2018)는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일곱 편의 영화를 선정하여 사건에서 이탈한 인물들의 사적 대화를 추출하고 이를 인지하기 어려운 사운드로 편곡하여 광주의 역사적 장소를 배경으로 플레이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서사와 장면으로부터 벗어나 정치적 이해 안에서 집단을 대변하기 위해 개인화된 목소리를 빌리는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공식적 역사로부터 소멸된 개인의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안정주의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대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지만, 작품의 중심에 사운드를 두고 정치적인 가능성을 모색하며, 비판적 사유를 촉발한다는 점만큼은 그의 작업이 일관적으로 견지해온 태도라 할 수 있다. 
모든 감각의 우위에 시각을 두고 재편을 시도하는 동시대 예술의 (전시) 형식 안에서 청각의 주도 아래 의미를 획득하려는 작가 고유의 작법은 본 전시 <kick, clap, hat>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먼저 대중 매체나 방송, 일상 등으로부터 네 개의 소리를 선별, 추출한다. 이는 휴대폰을 통해 서로 다르게 반복되는 일상에 공동의 메시지를 전송하는, 어쩌면 오늘날 가장 익숙한 소리가 되어버린 재난 문자 경고음, 정상 회담이 이루어지던 어느 날 방송을 통해 송출되던 도보 다리 위 각국 정상의 소거된 음성을 대신하던 새소리, 국가적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 사이렌이 내뿜는 일정한 음높이의 소리, 마지막으로 물리적 실체가 부재한 공포 영화 속  유령의 소리가 그것이다. 작가는 이 채집�� 사운드를 기반으로 음악을 작곡하고, 이를 다시 다른 작곡가와 협업하여 또 다른 음악으로 변형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이 소리는 안무로 번역되고, 영상으로 기록되며, 3D 시각 환경인 VR로 다시 옮겨짐으로 기존의 영상 언어가 갖는 화면의 밖-크롭된 화각 너머 공간과 무용수,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와 이 모두를 촬영하는 촬영자에 이르기까지-을 다시 화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새로운 형식과 형태로의 연쇄적 번안과 함께 중요한 것은 외화면의 존재, 즉 사운드의 위치와 역할인데, 안정주는 전시 안에서 시각이 선사하는 극적으로 선명한 서사보다는 그것을 교란하는 청각적 경험을 통해 프레임 너머로 확장하는 가능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2층의 메인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VR은 초현실적 감각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시각에 의존하는 기계 장치로서 온전히 눈을 통해서만 현상을 관찰하게 될 뿐이다. 작가는 기기 안에 펼쳐지는 가상의 공간에 또 다른 레이어의 장소와 균열을 삽입하며, 눈앞의 이미지와 어긋나는 소리는 그 기원을 확인하기 위한 관객의 수고를 부추긴다. 게다가 이는 다시 또 외부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리에 의해 흐트러짐으로 시야에 잡힌 풍경은 붕괴되고 안과 밖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감각의 전이 한가운데 관객을 위치시킨다. 또한 3층의 메인 공간에는 빛을 투과하는 구조물에 영사, 산란하고 있는 다채널의 영상 작업이 있다. 구조는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으로부터 저항하는 동시에 영상의 서사를 계속해서 분절시킴으로 마치 빛의 조각을 꿰는 듯한 사운드만이 온전한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와 함께 별관에 위치한 작업 역시 장막 뒤 소리의 근원, 시각화되지 않은 그림자 존재를 환기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복 재생하는 움직임의 영상에 어디선가 흘러들어와 개입하는 음향으로 소리 고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렇게 전시는 이미지-외형의 바깥에 다가서기 위해 근원과 출처를 밝히지 않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시각에 포착된 대상이 무엇인지 인지하기 어려워질수록 화각의 바깥, 외화면의 음성 존재(acousmatique)는 우리가 딛고선 공간과 장소를 독창적으로 입체화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 처음의 사운드에서 시작해 시각적 이미지의 옷을 입기까지, 그리고 그것이 다시 분절되고 해체되어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감각을 변주하여 공간과 공간을 연결해내는 전시의 방식은 이를 더 극대화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크게 네 개의 공간과 그것을 잇는 복도와 계단으로 이루어진 전시장의 물리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하는데, 플롯과 플롯 사이, 그러니까 이 전시에서는 공간과 공간 사이 (이동) 시간의 기장을 넓히고 이미지의 잔상을 흐릴수록, 외화면의 존재는 내화면을 압도하게 된다. 그렇게 전시는 전주곡prelude과 같이 추상적 이미지의 포스터와 공간을 울리는 음악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로 관객을 맞이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이미지 작업들, 그리고 그사이를 메우는 계단과 외부 통로 –프롬나드promnade-로 이어지는 구조, 즉 외부(내부)에서 내부(외부)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소리와 이미지가 충돌하고, 침투하며,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감각의 흐름 안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렇듯 <kick, clap, hat>에서 사운드는 매체에서 매체로 번안되는 과정에서 물리적 신체를 가진 존재나 시각적 이미지와 매끄럽게 연동하기보다는 분절되어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눈앞의 상황은 출처와 문맥을 계속해서 변이하는 청각적 경험을 통해 심상을 자극하는 사건이 된다. 여기서 전시를 깨우는 감각의 추동은 작가가 추출한 소리와 공간의 반향 안에서도 작동하지만, 동시에 이미지와 사운드의 관계, 그 탈주와 번역의 연쇄 속에서, 그리고 그것과 조응하는 관객의 움직임에서도 발생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안정주는 주된 시청각 매체인 영상 내에서 소리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고, 이를 전복함으로 가능해지는 음향 고유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는 시각 이미지-현상 주변을 부유하며 해석의 경로를 다각화하는 진입로로서 소리를 제안하거나, 특정 이미지-서사로부터 떨어져나와 소리 그 자체에 내재하는 다층적 맥락, 즉 사회, 문화, 정치, 역사적 사유를 촉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시에서 사운드는 이미지와 함께 하나의 장소, 그리고 거기에 존재했던 신체와 도구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이 둘은 서로를 배신하고 불화함으로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 모종의 균열로 가시화한다. 이는 이미지를 보완하고 현장을 서술하는데 동원되는 사운드가 아닌 ‘소리’를 ‘소리’의 성질에 입각해 사고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미지가 음향을 뒷받침하는 상황에서 서사를 추동하는 주권을 획득한 사운드에 귀 기울이며, 청각에 의해 교란되는 이미지를 마주하는 전복적 감각의 경험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시각을 넘어서는 청각의 우위는 이성과 지식을 토대로 대상을 판단하기보다는 정서와 감흥의 방식으로 대상과 온전히 조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본 전시는 시청각의 분절과 연동, 미끄러짐과 보완, 개입과 충돌, 조화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과정에서 개인의 기억과 지식, 현재의 경험과 감정을 자유롭게 충동하여 현재를 새롭게 감각하기 위한 태도를 묻고, 범람하는 시청각 이미지로 조율되는 ‘오늘’이란 거대한 슬로건 아래 함몰된 다양한 명제를 확인토록 한다.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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