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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 묘사한 천사의 모습. 마지막 사진은 현대적으로 다시 재해석한것.
이사야서 6장 2절: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사랍’은 최고위 천사를 뜻한다. 중세시대때는 성경을 쓰여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했다. 성체성사를 통해 진짜 예수의 살과 피가 된다는 카톨릭의 신앙도 그렇다.
미술가들이 천사를 성경에 나온 그대로 묘사하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하며 작가의 관점을 투영한게 15세기 정도라 한다. 15세기는 중세시대가 끝날 무렵이다.
모든학문이 초기에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개인의 해석이 반영되는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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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통해 디자인 싹 틔우기
제일 최근학기, 그러니까 2016년 2학기, 정확히 말하면 10월20일에 쓴 글이다. 고작 몇달이 지났지만 그 짧은 시간 중에도 생각이 계속 변했다. 내가 얼마나 미숙하고 배워야 할게 많은지 알수 있다.
1. 디자인 10계명.
솔직히, 대한민국 입시 시스템 아래 있는 학생들이 디자인과를 진��할때 디자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래서 학과에 입학하고 첫 학기 수업을 할때 많은 이가 적지 않게 혼란스러워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길을 잃은 정도가 더 심하다면 심했다. 신입생 시기에 난 아무 목적도 방향도 없이 떠 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있을때, 수업 시간에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에 대한 것을 배웠다.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 좋은 디자인은 아름답다. /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한다. /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 / 좋은 디자인은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으로 디자인한다."
입시 그림만 죽어라 그렸던 나에게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끼게 한 말이다. 이 이후에 내가 완전히 바뀌거나 한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에게 무언가 작은 기준이 세워졌다. 그 기준은 나의 가장 큰 이정표가 됐고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까지 유효하다. 정직함, 명료함, 중립성, 세밀함, 간결함. 지금도 나는 이런 가치를 따라 생각하고, 또 길을 찾고 있다.
2. 디자이너는 친절해야 할까?
소통은 디자인의 근본 목적이다. 때문에 디자인은 대화와 같아야 한다. 겉과 속이 다른 대화, 진실되지 않은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정직함과 명확함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친절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이런 관점은 ‘디자인 10계명’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비전공자와 대중의 시선을 체감한 것이 더 큰 계기가 됐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예술과 디자인’에 대해 의문이 있다. 함께 즐기고 향유하고자 하는 예술과 디자인이 많은 지식이 있어야 알수 있는 분야가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시각 언어에 파 묻혀 살고 있는 나는 시각 언어를 인식하고 배우고 탐구하는게 익숙해 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제대로 모르니까 이해 못한다.’라고 하거나 ‘대중을 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하고 받아 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단지 그들은 알지 못하는것 뿐이다. 내가 그들이 예술과 디자인을 어떻게 바라 보는지 몰랐듯이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훈계하듯이 왜 알지 못하냐고 다그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보수적인 역활을 하는 디자인, 일상적인 대화처럼 삶을 채우는 디자인의 필요성을 느꼈다. 때문에 나는 디자이너로서 ‘친절함’을 계속해서 마음에 새긴다.
3. 다른것 인정하기.
개인이 원칙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타인에게 방식을 지나치게 요구할 수는 없다. 디자인 철학과 신념은 마치 종교와 같다. 종교는 서로 다른 신을 믿으며, 서로 다른 교리를 따른다. 하지만 각자의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이유는, 종교에서 믿고 추구하는 것은 결국 선행과 봉사, 사랑과 용서와 같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종교에 다양한 교리가 있듯이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철학을 통해 다양한 방식을 쓴다. 직접 말하거나 은유하기도 하고 명확하게 보여주거나 모호하게 숨겨 놓기도 한다. 그리고 종교의 궁극적 믿음이 비슷하듯 그런 방법론은 결국엔 소통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이어진다. ‘기독교인은 모두 태워 죽이겠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하고 말하는 종교인을 우리는 미개하다고 한다. ‘그리드 시스템을 따르지 않으면 디자이너 자격도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디자인은 다 버려야한다.’고 말하는것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생각보다 흔하다. 신념이 고집이 되고, 고집이 아집이 되고, 아집이 독선이 된다. 오죽하면 경직되어 가는 모더니즘 디자인을 보며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이너들이 파시즘을 연상했겠는가. 나는 그렇게 되는 걸 피하려 한다.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쉽지는 않다. 말로는 ‘그래 그 말도 맞아.’ 하면서 마음 속으론 ‘그래도 도무지 좋아 할 수가 없어.’하는 말을 삼킬 때가 많다. 그래도 약간이라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면, 다른 것을 향한 관점이 조금씩 너그러워지는 걸 느낀다. 다른 것을 인정하는 건 내가 디자인을 계속 하는 한 끊임없이 노력하고 신경써야 할 일이다.
4. 비우기 위해 채움.
불필요함이 없는 디자인을 추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겪는 것이 있다. 내 디자인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간결한 디자인을 하려고 곁가지들을 다 쳐 내도, 내 디자인은 명확해 지지 않았다. 그냥 미완성 같아 보였다. 뭐라도 집어넣으면 나아 질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우겨 넣는 일은 인지부조화를 겪게 했다. 최소한의 디자인을 추구하는데, 그대로 두면 좋아 보이지 않아 결국 이것 저것 넣어야 한다는데서 모순을 느꼈다. 그래서 한동안 내 작업은 덜 완성된 느낌으로 계속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하라 켄야는 비어있는 디자인은 마치 빈 그릇과 같다고 했다. 가득 담긴 메세지를 보이는 것이 아닌, 빈 그릇을 내보여주면서 그걸 보는 수용자가 그것에 상상하고 의미를 담으며 커뮤니케이션하게 한다. 좋은 그릇을 만드는 수고는, 무언가를 채워 넣는 수고에 뒤지지 않을것이다. 최소한의 디자인이라 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 논리가 적게 적용 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의미 없이 공허한 것과 방법론을 통해 설계한 여백을 혼동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 '최소한의 디자인’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방법론과 논리를 세련되고 우아하게 함축시키는 것은 아직 서투르기에, 내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많은 디자인을 공부하고 연구하면 여백을 통해 논리를 보여주는 때가 오지 않을까. 어쨋든 지금은, 비워내기 위해 채우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5. 신념 잃지 않기.
여러가지 디자인을 접하고 디자인 철학이 바뀔수도 있다. 실제로 경험이 적었던 저학년 때에 비해 지금 나의 관점이 바뀌었 다는걸 느낀다. 아마 지금 보다 더 많은걸 경험하면 바뀌는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그런 변화는 마치 기후와 토양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나무의 변화와 같다. 많은 디자인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나무에 비추는 햇살과 내리는 비처럼 내 '디자인 나무'의 결을 단단하거나 부드럽게, 또는 녹음을 짙고 무성하게 하거나 단풍의 색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그 결실의 근원을 찾아 가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1학년때 마음속에 심어졌던 씨앗 하나, 디터 람스의 가르침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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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분명 모더니즘이 우리나라 그래픽디자인의 주류였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자리에 있었을까? 수업시간에 그 질문을 받았을때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성재혁 교수님과 그 제자들 정도 아닐까요?’ 하는 식으로 밖에..
우리나라 모더니즘 디자인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안그라픽스’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안그라픽스를 통해 소개되는 디자인 서적은 활력소였고, 자연스레 안그라픽스의 디자인�� 추종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런데 안그라픽스가 설립된것은 1985년. 그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모더니즘 디자인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다른 방법의 모색한 일은 없었던걸까? 그건 분명 아닌것 같다. 하지만 숨가쁘게 한 방향 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한국 사회에서 대중, 기업, 학생에게 친숙한 모더니즘 스타일을 벗어 던지는건 아무리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더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이 나라에서)
그냥 내 추측인데, 2000년대 초반에 ‘포스트모던’한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조금씩 나타난게 아닐까 한다. 그러니까, ‘스타일’ 말고, ‘사상’이 포스트모던한 사람들. 예를 들면 김기조 디자이너. 탈네모틀 한글꼴이 글꼴디자인의 활로처럼 여겨지고 글자의 속공간과 여백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세울때, 그는 ‘난 공간을 주는 것보다 네모틀 안에 채워 넣는게 좋다.’면서 독창적인 레터링 작품을 만들어 냈다. 또 하위문화로 여겨지며 디자인에 좀처럼 활용되지 않던 복고와 키치에 대한 그의 애정 또한 ‘포스트모던’ 하다. 그가 붕가붕가레코드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5년이니까, 이런 식의 움직임이 그 해 전후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뭐 김기조 디자이너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스타일이 아니라 사상이라는 내 지식에 비추어 봤을때 그는 굉장히 포스트모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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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석한 더치디자인
더치디자인은 정말 애증의 대상이다. 모더니즘에 대해 알아보는건 좀 지겨워도 고전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들지만 더치 디자인은....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아이돌 히트곡을 계속 듣는 기분이다. 아이돌의 예시를 들어서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아이돌을 모르는 만큼, 더치 디자인에 대해 썩 잘 아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더 싫다.)
내가 더치디자인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음에도 더치디자인에 관해 계속 듣게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그래픽디자인 트렌드 중에서 가장 핫한 스타일 중 하나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돌 노래는 전혀 듣지 않지만 트와이스는 어찌저찌 알게 된 것처럼, 더치디자인은 좋든 싫든 짚고 넘어 가야할 것이 됐다.
더치디자인이라는 개념 역시 정확히 규격화된것은 아닌듯 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규격화된 형식과 자유로운 사고가 혼합된 양식이다. 예전에 더치디자인에 대해 김의래 교수님에게 질문했을때 ‘더치 디자인은 모더니즘에 네덜란드의 지역성이 결합된 스타일이다.’ 라는 답변을 들었다. 여기서 모더니즘이란 50-60년대에 이미 규격화되 시스템화를 의미한다. 더치디자인은 모더니즘의 그리드 시스템과 같은 규격을 충실히 준수한다. 하지만 그 시스템에 개인의 해석과 개념을 적용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역성을 드러내는 개인의 아이디어와 유머감각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네덜란드’의 지역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네덜란드는 유럽의 중요한 사건들에서 조금씩 비껴 나갔다. 예를 들어 ‘데 슈틸’의 움직임은 1차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이었던 네덜란드의 상황탓에, 격동하던 국제 미술 세계의 흐름에서 고립된 상황에서 나름대로 공조를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렇게 네덜란드는 유럽의 주류의 한발짝 밖에서 그 흐름을 견지하던 입장이었다. 때문에 스타일을 받아 들임과 동시에 지역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또한 네덜란드는 인적 자원 발전을 크게 장려한다. 주변 유럽국가, 또는 신흥 강대국에 비해 떨어지는 기술과 자원을 인적 자원으로 만회 하고자 한다. 또한 제품 판매 전략을 위해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상황이 맞물려 네덜란드는 높은 수준의 디자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환영한다. 이런 국가 상황은 더치디자인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다.
이 지점이 우리나라 그래픽디자인이 더치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이유라 유추했다. 디자인의 주류라 볼수는 없지만, 주류를 (특히 모더니즘) 지향하던 분위기, 그리고 인적 자원 육성에 대한 노력. 그런 상황에서 모더니즘 디자인의 규격과 시스템에 개인의 개성을 매력적으로 결합한 더치 디자인은 상당히 좋은 대안이었다. 물론 더치디자인을 소개한 ‘슬기와 민’이라는 디자이너 개인에 대한 모방과 신봉 역시 간과할수 없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간에 여러 디자인 스타일이 소개되었지만, 유독 더치 디자인이 독보적인 영향을 미친것은 네덜란드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유사하다는게 상당히 큰 요인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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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디자인 - 데슈틸
데 슈틸 (네덜란드어: De Stijl, 네덜란드어로 ‘양식’이라는 의미.)은 신조형주의로도 불리는 1917년 시작한 네덜란드의 예술 운동이다. 좁은 의미에서 ‘De Stijl’이라는 단어는 1917년에서 1931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데 슈틸’은 또한 네덜란드의 화가와 디자이너, 작가, 비평가 테오 판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 1883-1931) 등이 출판한 잡지의 이름이며, 이 모임의 이론을 전파시켰다. 판 두스뷔르흐 다음으로 이 모임의 주요 멤버는 화가인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빌모스 후사르(Vilmos Huszàr, 1884–1960), 바르트 판 데르 레크(Bart van der Leck) 등과 건축가인 헤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 1888–1964), 로베르트 판트 호프(Robert van’t Hoff, 1887–1979), 야코뷔스 아우트 (J.J.P. Oud, 1890-1963) 등이 있다. 이 모임의 작품들의 기초를 이루는 예술철학은 ‘신조형주의’(혹은 네덜란드어 Nieuwe Beelding)로 알려져 있다.
데 슈틸을 제안한 사람들은 영적인 조화와 질서가 담긴 새로운 유토피아적 이상을 표현할 길을 찾았다. 그들은 형태와 색상의 본질적 요소로 단순화되는 순수한 추상성과 보편성을 지지했는데, 수직과 수평으로 시각적인 구성을 단순화하였고, 검정과 흰색과 원색만을 사용했다. 특히 테이트 갤러리의 신조형주의에 대한 온라인 기사에 따르면, 몬드리안 자신이 그의 소고인 ‘회화에서의 신조형주의’에서 이러한 제안을 설정했다고 한다. 그는 ‘... 이러한 새로운 조형적 발상은 외형의 특성, 다시 말하자면 자연적인 형태와 색상을 무시할 것이다. 반면에 형태와 색상의 추상화, 즉 곧은 선과 명료하게 정의된 원색을 통해 고유한 표현을 찾아야만 한다.’라고했다. 테이트 갤러리의 이 기사는 데 슈틸 미술을 ‘오직 원색과 무채색, 오직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오직 수직이거나 수평인 직선’로 요약한다. 구겐하임 박물관의 더 스테일에 대한 온라인 기사 역시 비슷한 단어들을 통해 이 특성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준다. ‘데 슈틸은 강하게 비대칭적으로 복합된 직선과 정사각형, 직사각형의 기하학의 기초적인 원리 위에 위치한다. 또한 검정과 흰색과 순수한 원색을 주로 사용하며, 비사실적인 형태들과 선들의 배열을 통해 양적 요소와 음적 요소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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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디자인 - 정의
The term ‘Dutch Design’ was first coined in Milan in 1993. The Dutch platform Droog made a big impression at the international furniture fair and journalists spoke of a new wave of Dutch design. A new movement was born. The characteristics of Dutch Design are: minimalist, experimental, innovative, unconventional, and with a sense of humor. Futuristic designs reinterpret the function of design. Well-known Dutch Designers include Marcel Wanders, Piet Hein Eek and Maarten Baas. In Holland, cities like Eindhoven and Tilburg are considered the ultimate breeding grounds. The main source of inspiration: De Stijl art movement.
'Dutch Design'이라는 용어는 1993 년 밀라노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네덜란드 그룹 ‘Droog’ 는 국제 가구 박람회에서 큰 인상을 주었고 언론인들은 네덜란드 디자인의 새로운 시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로운 사조가 탄생했다. 네덜란드 디자인의 특징은 미니멀리즘, 실험성, 혁신성, 자유로움, 유머 감각이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은 디자인 기능을 재해석한다. 잘 알려진 네덜란드 디자이너로는 Marcel Wanders, Piet Hein Eek 및 Maarten Baas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인트호벤 Eindhoven과 틸 부르그 Tilburg와 같은 도시가 궁극적 기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감의 주요 원천은 De Stijl art movemen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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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석한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은 모더니즘 디자인을 정의하는것 보다 더 어렵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한다는것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애초에 형식에 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어떤 형식과 스타일을 정의한다는건 말이 안되는것 같다. 그냥 이 글은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점에 대한 서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굳이 스타일로서 정의 하자면, 네덜란드의 지역색을 띈 ‘더치 디자인’이 하나의 스타일을 가르키게 된것처럼 미국의 지역색이 드러난 ‘아메리칸 디자인을’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실제로도, 볼프강 바인가르트는 ‘미국 학생이 많았다.’라고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탄생은 자본주의의 질주 속에서 득세하고 있는 모더니즘의 경직과 획일화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모더니즘처럼 상위 문화의 위치에 올라서 짐짓 점잖은 체 하는 대신에, ‘키치’와 ‘대중문화’에 눈을 돌렸다.
어찌보면 엄청나게 극과 극이다. 주류문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수단 중 하나로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는것이 재밌다. 어떤 관점에서 대중문화와 키치만큼 자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미국 사회는 이런 모순이 넘쳐나는 사회다. 거칠고 지저분하고 저질스럽다 여겨지는 문화와 예술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걸 소화해낼 자본과 대중은 충분하다. 비주류였던 문화가 어쩌다가 주류로 올라서서 돈을 쓸어담고, 뭐가 주류고 비주류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지경이다.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 그런지 록이 그렇고, 힙합 음악이 그렇다. 때문에, 미국은 키치와 하위문화를 동등한 위치에서 주목하고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기반과 환경이 마련돼있다. 못생기고 어설픈것을 쓰는것 역시 표현 방식중 하나라는 것을 잘 이해한다.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지역색이 있다고 지금 내가 감히 말하는것이 웃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상에 가깝다. 미스터 키디의 칼럼에도 나온 내용이다. 대중문화 수용에 거리낌이 없고, 기술 발전에 호기심을 곤두세우며 굳이 예전 가치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애지중지할 필요도 없다. 다만 미스터 키디는 한가지는 지킬것을 당부한다. ‘형식적 분류와 기술, 매체를 넘어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것’. 이렇게 스타일과 시스템에 매이지 않고 계속 사고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중요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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