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했다. 그 해부터 나는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1 note
·
View note
Text
1. 며칠 전에는 거실에 앉아 무더운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려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시끄러운 나머지 고요했고, 모든 것이 팽창하기 직전까지 꽉 차 있어서 오히려 어떤 공허처럼 보였다. 옆 사람의 존재를 견뎌내기가 몹시 힘겨웠고, 또 그렇게 인식하려는 내가 ���그러웠다. 이번 여름을, 이번 것을 잘 견뎌내면 나에게도 주어지는 성장의 감각이 있을 것이다.
2. 단지 필요에 따라 배우고, 굶지 않을 만큼을 벌되 그것으로 자신을 연민하거나 혐오하지는 않는 일. 타인의 그러한 태도와 마주할 때 감득할 수 있는 (그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응원이 있다. 삶에 드리우는 촉박을 견뎌내게 한다.
3. “흐리고 오후 한때 진눈깨비가 날린 날, 오늘도 저는 긴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한달 전부터 같은 페이지가 접혀 있는 전공 서적과 뜨거운 커피를 담은 보온병, 그리고 대충 자른 훈제 햄을 끼워넣은 식빵 두조각을 챙겨서요. 산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늘 그렇죠. 그저 걷는 것입니다.”
4. ‘나는 그 아픔을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피해자의 심정을 헤아릴 수 없고, 따라서 그를 위로할 수도 구원할 수도 없다. 나는 당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이해는 곧 오해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저녁 여덟시가 되면 한 곳에 모여 서로를 이야기해보려 하는 것이다. 서로가 되어, 서로와 싸워보는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당신을 온힘으로 사랑해보기 위하여. 그래서 연극은 이다지도 우리의 사랑하는 법이다. 매일의 실패를 전제로 하는, 바보 같고 무한한 사랑의 시도이다.’
4-1. 나는 아름다움을 찾고 싶다. 나는 그것을 찾아서 다닌다.
0 notes
Text
일 년 내내 비가 내리는 땅 귀를 씻고 이곳에 왔어요 구두를 벗고 맨발로 왔어요 낯선 언어들이 음악처럼 들리는 곳
당신들은 왜 나를 잡으려고 했을까요 이해하고 싶어라는 징그러운 거짓말의 덩굴 가위로 덩굴을 자르는 대신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고 빠져나왔죠
당신들의 입맛대로 내 이름은 노랗다가 파랗다가 한 번도 진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거울 속 나는 그때그때 달라서 말하기 곤란했을 뿐인데
우리들은 모두 번쩍번쩍한 태양을 머리통에 박고 살지요 죽은 엄마는 달의 감정을 내 가슴에 달아주고 떠났어요 나는 달의 눈물을 말하고 싶었으나 태양의 빛이 너무 강렬하기에
일 년 내내 비가 내리는 이곳 빗소리가 아름다워요 푸른 앵무새는 고맙게도 매일 축축한 흙냄새를 물어와요 나의 달은 매일 울어요
비밀은 없죠 이곳의 언어가 하나둘 글자로 굳어지자 오해도 큼지막하게 쌓여 대문을 틀어막았네요 이제 나는 눈물이 되어 흘러나갈까요 가슴의 달은 둥둥 떠서 언제까지고 흐르겠죠
갈래머리를 땋았다가 올렸다가 거울에게 물어봐요 나의 몸은 납작하지만 등뒤는 깊고 깊은 세계 그리고 울고 있는 나의 달 울고 있는 나의 달
1 note
·
View note
Photo


1. "왜 우리는 자신 속에 ��물러 있을 수 없는가? 왜 우리는 내면에 품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버리려고 표현을 찾는가? 왜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과정을 체계화하고 형태를 찾는가?"
1-1.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까닭이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2.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 뿐이어도 좋은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름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나, 여름은 사랑하지 않기도 어려운 시절이 아니던가.
3. 머잖은 마감에 쓰려고 쓰려고 앉아는 ���는데 종국에는 기어이 하루를 실없는 것들로 보내고 만다. 호흡이 길건 짧건 매주 몇 편씩 써내던 게 오래지도 않지만 길지도 않은 문장만으로 숨이 찬다. 대단한 것을 읽는 것도 아닌 터라 마땅히 괜찮은 흉을 내기도 어려운 꼴이 된다. 게으른 자의 종말.
4. 그나마도 몇 번 날렸다.
5. 흐린 하늘을 벗으로 삼는 이국의 이웃들도 끌어안지 못할 날들의 연속이다. 긴 비가 시작되고 있다.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습윤한 대기와 거기에 배어 있는 열기가 살갗까지 와서 닿는다. 아무개는 꼭 수족관에 들어선 기분이라 했다. 그런즉 나는 쉬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일찍부터 유월을 더워 했다. 나는 늘 뒤늦은 안녕을 묻는 사람이라 믿었는데, 더운 마음으로는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6. 볕이 센 날엔 자연히 달고 단단한 과육을 생각하는 밤이 온다. 수요일 오후마다 스테이션에 서는 장에서 손바닥 따위로 해를 가리고 오랫동안 줄을 섰다가 찢어지기 직전의 갈색 종이 봉투에 담긴 납작한 다홍의 복숭아들을 사오고 싶다. 그리고는 모퉁이를 돌아 순례자의 탑 맞은 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속도 없이 나를 아벨라라고 부르는 이태리 아저씨로부터 소르베 같은 것을 사자. 미술관을 지나 유대인의 집 가까이에 이르면 누군가 붉어진 낯으로 나를 마중나와 있지 않을까.
7. '우리 언제쯤 서로 미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충분히 노력하고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웃는 일은 있을 수 없어' 일몰 속에서 헤아리기에 알맞은 노래.
0 notes
Text
5월의 극들.
벚꽃동산. 딴생각 하지 않고 체홉을 볼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지구력 같은 것을 연마해야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본다. 그래도 졸지 않아서 다행. 아무개는 러시아 작가들이 긴 글을 쓰고 마는 것이 날씨 때문이라고 했다. 살아가는 속력 자체가 다른 것인가 싶고. 나는 언제야 체홉을 성공할까. 다른 결의 아름다움을 나도 희구할 수 있게 되기를.
죽음과 소녀. 지리한 극에 지쳐 있을 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이들의 귀환. 그런데 역할이 바뀌었음을 조명이 들고서야 인지했다. 시간과 맥락 사이를 유유히 오가던 양 배우의 무관한 걸음과 손짓이, 그래서 결말에 이르러 빠울리나가 목소리와 직면할 때의 전율이 그리웠는데. 손사모 회장임에도 아쉬움이. 그치만 이처럼 정돈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하다. 꺼져가는 빛, 다가가는 발걸음, 숨죽인 객석.
대심大心땐쓰. 비바람을 뚫고 세상의 끝 양재까지. 일전에 따라다니던 댄서 분을 만나 잠시 설레고. 이른바 '정상'의 몸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에게 무대를 되돌려준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나, 이 담론에 대한 다층적인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안은미 선생 특유의 미감은 여전히 보기에 기쁘고 즐겁다. 함께 춤추고저.
노란 봉투. 근래 나를 가장 크게 흔든 극. 엄밀히 말하자면 내 마음을 덥힌 건 공연이 아니라, 극 이후 예상치 못했던 노동자 분과의 만남. 동행한 선배는 이야기했다: 처지나 존재를 증명할 법적 언어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력하게도, 타인의 고통에 대답할 수 있는 마땅한 언어를 찾는 것. 정말 무력하게도, 당신의 아픔에 함께 울고 있음을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
세일즈맨의 죽음. 지난 달 한태숙 선생의 깊이감 있는 드라마에 감탄(내지 회의)했다면, 이번 달엔 성북동비둘기만의 색채를 맛보다. 한남동으로 이사 갔다는 이야길 듣고 출세한 비둘기라고 농을 했는데, 구도며 구성이며 한결같다. 미국식 서브텍스트의 현명한 개입이 돋보였고, 무엇보다 제 전부를 무대에 내거는 노년의 배우를 바라보며 보는 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 무얼지 고민하여 보았다. 아무개의 말마따나 작품을 '봐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어두운 밤과 거기 높은 달과 빛나는 해변과 사랑, 아아 눈부신 말로 사랑을 노래해줄 이가 있다면 코가 긴들 짧은들. 연극과 사랑 그리고 연극 사랑을 보여주러 데리고 간 아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오래도록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거면 되었다.
생각은 자유. 김재엽의 이야기는 다름아닌 김재엽의 것이기에 귀하다. 이런 식의 미시 서사가 기실 가장 큰 담론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동의하려 한다. 영국에서의 체류 시절을 연상시켜서 괜스레 요란한 마음이 되었다. 여러모로 부러웠다. 비자 걱정이 없어 보여 부러웠고, 그이의 삶이 연극인 것 그리고 연극이 또 삶인 것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어떤 오만도 없이, 나를 전시할 수 있게 될까.
킬 미 나우. 좌석이 ���어서 그랬는지 추석 특선으로 틀어주는 철 지난 슬픈 영화를 본 것 같았다. 퍽 울었고, 그게 다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다'인 극들이 주는 어떤 종류의 멀끔함이 이제는 그렇게 기쁘지 않다.
보도지침. 반가운 이들의 출연과는 별개로 극이 그리 아름답지가. 그럴싸한 대목들이 있기야 있었으나 극작과 연출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주지된 말들의 향연. 옳은 말을 한다고 그것이 늘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제 객석은 새로운 정치 경험을 살아가는 집단의 단면이다. 이전의 테제들로는 충족될 수 없는 메시지를 요구한다. 젠더적으로도 여성 배우에게 역할 하나를 줘버리는 식의 구성은 게으르고 비열하다. 더 많은 고민이 선행되어야 했다.
0 notes
Text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친 후 비를 목격했다. 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에
나는 너를 깨웠다. 너를 어디에 두었나 너를 깨우면서 너를 덧붙이는 장미들이 떨어져 내리고 장미의 연습으로 가늘어지는 손가락들
손가락을 버린 생각들이 있고 생각에 관계되지 않는 행위들이 흐르고 행위를 열지 못하는 너의 육체가 차례로 결성되었을 때에
몸이 되기 위해 너는 감각을 버리고 부동의 자세로 사랑을 했다. 사랑에 관계되지 않는 사랑의 자세들
이전과 이후가 사라지는 행위들의 최초의 균형
균형의 낭떠러지
내 머릿속에 있는 손들이 나를 떠나 너에게 날아가 앉았을 때 너에게 가서 비로소 너의 형식이 되었을 때
나는 그쳤다.
내가 그친 후 나를 목격했다. 내가 더 이상 너와 교환되지 않았을 때에
0 notes
Text
4월의 극들
목란언니. 산란한 빛과 목소리들 사이에 목란이 있다. 목란은 북녘을 노래한다. 우리로선 그 노래를 이해할 수 없다. 가난과 압제에의 염증이 아닌 것은 허락된 일이 없으므로. 그치만 목란은 압록강의 눈부심을 향수한다. 분명하게. 그런즉 우리는 더 이상 목란의 애환을 전시하지 말자. 타인의 고통에 감히 기립하여 눈물짓지 말자.
쓰릴 미. 어떠한 그리움 같은 것으로, 즉흥에 가까웠던 관극 결정. 수년 만에 보는 그 연인들의 모습. 어쩐지 나는 매번 ‘나’에게 골몰하여 도리어 ‘당신’만을 좇게 되는데, 당신의 예견된 좌절이 이토록 눈물겹던 밤이 있었던가 하여 본다. 어리석은 당신을, 나는 왜 기어이 사랑해버리고 마는가.
맨 끝줄 소년. 제 물음에 함몰되는 무대를 사랑할 수는 없다. 헌데 소년은 많은 물음들을 건네주기에, 나는 소년을 친애할 수 있다. 초연만큼 선생과 제자의 관계에 몰두하지만은 않으나,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을 보게 된다. 여인의 위태로운 어깨, 행간에 담긴 아버지에의 추억까지.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을. 맨 끝줄에 숨은 그 소년이 그러했듯. 더군다나 이 극은 한 사람을 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 고 김동현 선생을 그리워하며.
왕위 주장자들. (극장으로 가는 버스에서 어떤 배우와 동석하게 되었다. 우연하다 여기며 그의 이름을 되뇌이려고 애쓰다가 관두어야 했는데, 막이 오르자 그가 무대 위에 있었다.) 기대했던 열기와 깊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떠도는 텍스트, 목소리를 잃는 여성들. 공무원적 연기 때문도 같고. 어쨌건 입센에게는 입센만의 것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지금, 여기, 우리가 입센을 봐야 하는 이유라도 보여주었으면.
2017 이반검열. 목적의 명확함이 ‘구리'지 않기 어렵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두 가지 단상을 나쁘지 않게 엮어냈지만, 직접적인 발화는 늘 이런 식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의미야 알겠으나. 의의가 미지수다. 제작진은 누구를 위해, 혹은 누구 보라고 연극하는가 궁금하다.
흥보씨. 영리한 짜임새. 우습다고 실망이라는 감상도 있는 듯 한데, 그러면 안 될 것도 없지 않나. 가난에서 건져낼 이라면 모두 부모로 모시리라는 발상이 웃겨서 박수를 많이 쳤다. 그럼에도 조금 석연찮은 부분들을 마저 비틀지 않은 까닭은? (근래 pc하게 다시 쓰인 그림 동화를 읽은 일이 있었다.) 하여간 박장대소. 십자가를 지는 흥보. 외계인과 교신하는 흥보.
세일즈맨의 죽음. 기계적인 도식으로만 이해해왔던 밀러에서 예상 외의 감정선을 발견.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프가 필요 이상으로 아름다워서, 룸펜이 여즉 실존한다면 그건 이승주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고. 한태숙 다이어트는 너무 혹독한 것 같고. 토월극장은 9열까지도 괜찮은 것 같고.
가해자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 연극은 기록일 수 있지만, 연극은 기록만은 아니다. 극장을 나서며 풍자-하는 극에서 어떤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홀로 의심하여 보는데, 풍자의 논리를 극의 논리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아 유감이다. 하기야 오해를 빚기 쉬운 형식. 외려 조용히 물어왔다면 어땠을지. 어쨌건 모든 차원의 폭력을 규탄한다. 당신의 아픔에 연대할 수 있길 원한다.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