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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문학에 유사종교적 기능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종교의 거울이다. 인간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고,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떤 사람들 눈에 보이는 문학의 광채는 거기서 말미암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승우의 산문집 ‘고요한 읽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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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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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나는 그런 인간인가? 호불호를 따지는 일 없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왔던 사람이라 자신이 정말 그것들을 좋아하는 건지, 선택지가 그뿐이라 그걸 고를 수밖에 없었던 건지 뒤늦게 헷갈렸다.
김지연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 속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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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나즈 주라브치안, 모하마드레자 주라브치안 감독 '침묵의 집'
2025년 4월 4일을 어떻게 보냈는가는 모두들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지난 123일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를 모두 겪어본 것 같다. 그 날,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영화를 봤다. 그것은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외워버릴 것 같은 114쪽 짜리 결정문을 여러번 고쳐서 읽은 후, TV로 눈을 돌리자 EBS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반쯤 누워서 초반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20분이 지나자 자세를 고쳐잡았다. 영화 중반부부터는 할 말을 잃었고, 종반부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영화는 내가 본 다큐멘터리 영화중 최고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란 테헤란에 있는 100년 남짓된 저택이 주인공인 이 다큐멘터리는 실제 그 집에서 거주했던 남매 감독이 감독, 촬영하였다. 할아버지가 레자 샤로부터 이 저택을 구입했다는 도입부의 내레이션과, 그 때 할아버지가 찍었다는 흑백 사진은 순식간에 관객을 휘어잡는다. 그로부터 이란의 파란만장했던 현대사가 이 집을 배경으로 색을 더하며 캔버스를 채워나간다. 실제로 영화는 79년 혁명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란-이라크 전쟁부터 피의 11월까지, 과거로는 팔레비 왕조의 이야기까지 절묘하게 씨줄과 날줄이 얽혀진다. 역사가 각 개인의 삶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에 대해 우리도 우리 나름의 굴곡진 현대사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소설과 영화에서 이런 흉터를 제거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이란 영화 감독들이 왜 그리 출중한지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극적인 모먼트들은 역사 그 자체에 빚지고 있다.
그럼 무엇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감독인 남매와 그 가족이 남긴 기록 그 자체이다. 영화를 전공한 누나와 사진을 전공한 남동생은 각자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기록한다. 혁명의 와중에 캠코더를 내려놓지 않았던 엄마는 자식들에게 기록을 삶의 방식으로 물려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혁명에 가담했던 당사자가 그 후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아이러니를 체험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남매가 망상에 사로잡힌 삼촌으로부터 CCTV로 감시당하는 아이러니를 목격할 수 있다. 쾌활하던 한 남자가 전쟁에 의해 어떻게 내파되는지를 볼 수 있다. 혁명 후 수십년간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지내던 한 남자가 집에 돌아와 겪는 쓸쓸한 죽음을 볼 수 있다. 이란에서 개혁이 왜 여성의 삶에 밀착되어 있으며, 어떻게 그 움직임이 좌절되는지를 목도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의 아카이빙은 그 자체가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보는 이를 압도한다. 보는 내내 전혀 장르는 다르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작업 방식이 떠올랐다. 누적된 시간이 스크린을 통해 흐르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할까. 어떤 영화들은 형식에서 이미 보는 이를 압도한다.
영화의 마지막 두 씬은 인상적��다. 특별히 의도된 움직임이 보이지 않던 카메라가 일제히 줌아웃을 시작한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공들여 줌아웃한다. 이어 집의 전경이 마지막으로 비치고 나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CCTV 화면이 하나씩 꺼지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눈을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다 되어 간다. 방금 본 영화로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린다. 하여, 그 날은 내게 잊을 수 없는 날로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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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사방이 비린내로 가득한 동네에 살면서 굴이 비려서 싫다는 여자가 굴을 까고 있었다.
김지연의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속 ‘굴 드라이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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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어찌되었든 날을 더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입버릇 같은 혼잣말을 거듭했다. 누구나 더이상 새날이 주어지지 않을 때까지 날을 더해가며 산다. 그뿐이다.
야단을 떨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경망스러운 자들이나 달리 굴 것이다.
일어난 일들, 일으킨 일들 모조리 품고 견디면 된다. 그럴 수 있다.
말하다보면 믿기는 날도 더러 있었다.
정세랑의 장편소설 ‘설자은, 불꽃을 쫓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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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남겨진 우리를 보호하소서.
천국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고 여기 남은 우리에게는 영원 같은 시간이 있으니.
2025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 속 최진영의 ‘울루루-카타추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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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옳은 일만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비틀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세랑의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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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이 책에 나오는 통계 수치에 담긴 가장 중요하고 어쩌면 가장 놀라운 함의는 폭력 치사 발생률이라는 전염병의 증감을, 그리고 그것과 긴밀하게 얽힌 실업, 불평등, 전반적 번영(경제 성장률) 같은 경제 현상을 대통령 개인의 특성보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더 잘 예측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 따라서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 때는 개인이 아니라 사실은 그가 속한 정당을 찍는 것임을, 좋든 싫든 그 정당과 결부된 모든 이념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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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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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안토니오 그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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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
어떤 정당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끝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지도자도 혼자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없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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