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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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diska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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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지나버린 전시회에 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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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참 많이 갔었다. ‘참'이라고 하기엔 조금 적을 수도 있겠다. 제주도 곳곳을 가봤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그중에 가장 열망하게 하는 곳은 가파도다. 가파도라는 곳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름부터 ‘파도가 더하다'라는 말. 섬 전체가 평평한 독특한 한국의 섬이다. 
 인구가 줄어든 우도가 테마파크화된 것 과는 달리 가파도가 테마파크가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써서 지속가능한 섬의 양상을 추구하고자한 기업이 있었다. 현대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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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낱 카드사가, 그것도 가장 한 푼씩 따져들것만 같은 신용카드 회사가 진행하는 지역경제 사업이라니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 싶었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갔다.
이태원에 유명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옆 건물 골목으로 내려가며 건물 사이의 먼 시야를 마주하자마자 우와 한번 하다가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현대카드 스토리지라는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직원분들께서 침착하게 맞이하여 주셨다. 생각보다 꽤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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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는 아름다웠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원시 제주의 모습이라 할 만큼, 아니 사실 원시 제주를 본적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는 제주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기에 어폐가 있지만, 왠지 그럴 감성이 도졌다.
 제주도 뿐아니라 우리는 많은 ��전논리 속의 관광지들이 어떤 프로세스로 빛을 잃어갔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이슬란드처럼, 여기가 볼거리가 있어요~ 라는 팻말 하나. 그 팻말 하나면 될 것을.. 과유불급의 사자성어가 제격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가파도는, 아직 그렇게 볼 게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루 잡고 가기에는 우리네 삶의 속도, 유럽여행도 한달에 다 주파해버리는 한국인이 자랑하는 여행 속력으로는 한 참 못마땅한 곳이다. 애매하게 작고, 느린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대카드 가파도 프로젝트 팀은 굉장히 깊은 고민을 한 것이 느껴진다. 가파도가 실질적 수치로 드러나는 위기는 우도처럼 상주인구가 줄어들고 관광인구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상주인구의 경우 흔한 어촌의 고령층이며 여느 시골처럼, 어업과 농업을 이어갈 후손들이 도시로 떠나버린 것이 주된 문제였다.   본 팀은 이 문제를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본 것 같다. 현실적으로 카드회사가 현지 주민들의 어업을 이어가게 강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삶의 방식을 일종의 볼거리로 지속시키기 위해 강제적으로 부탁한다 한들, 관광객이란 기회를 두고 업종전환의 가능성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속도 역시 지속시키면서, 가파도의 자연과 식생 그리고 삶의 현장들을 영감으로 한 예술을 위해 ‘레지던스'를 만들었다. 본 전시장에서도 레지던스 참여 작가들의 인터뷰,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대체로 나와 느낀 바가 비슷했고, 함께 한 자연을 보고 느낀 부분을 어떻게 풀어내었는가 아티스트의 작품을 통해 재해석 하는 것이 정말 여타 미술관 전시보다도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예술가들과 비평가들의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도 많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하나의 삶의 양식과 수면 밑에 흐르는 문화와 공기가 ‘가시화’되려면 예술가들의 시선과 표현을 통해서, 혹은 비평가들의 통찰력과 논리적 의견을 통해서 꽃으로 펼 수 있다 생각한다. 1920~30년대 사회의 혼란한 모습을 역사로만 본다면 혼란기이자 암흑기였겠지만 명동 거리를 산책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보며, 미쓰꼬시 백화점을 네모와네모와네모로 그린 시인 이 상의 위대한 작품을 보며 그들이 향유하던 문화였음을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그 가시화된 ‘문화’는 매 시대�� 담론과 충돌하며 새로운 비평의 길이 열린다. 통시적으로 유의미한 단계가 되면, 이는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한다. 오늘날 마주하는 문화유산들이 소위 그랬다.
 나도 이들 가파도 프로젝트의 솔루션과 접근방법이 완벽히 이해가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현대카드는 모든 것을 대화로 푸는 방법을 시도하였다. 대자본의 대기업이 한 섬을 갱생시키겠다고 들어가면, 흔히 기대하는 것은 자본을 통한 현대화, 관광사업의 본격화일 것이다. 이에 “우리를 제발 그냥 놔두라"는 반발도 있을 것이고, “차라리 돈으로 뭔가를 해 줘라"라는 목적의 몰이해도 있었을 것이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핵심은, 가파도의 자급자족적 삶의 모습을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피폐한 한국인들에게 위로가 되는 아지트로서의 공간적, 시간적 가치를 발견하였다는데에 있다. 대놓고 써놓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느껴졌다. 그 증거로 지하 전시장으로 걸어내려가보면 거대한 스크린에 가파도 자연을 촬영한 영상을 초-고화질로 무한 상영중이다. 아무 나레이션도 없고, 그저 보여준다. 파도, 노을, 물의 잔상, 드론 촬영, 어부들의 일상 등. 그거만 보고 있다가 30분이 지나버렸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이걸 눈으로 보고 그 속도에 몸을 담아야겠다는 충동만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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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이지만, 우리네 제주는 SNS로 너무 도배되었다. 내가 숨쉬는 공기층이 20대의 층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핑크핑크한, 달달한 공기의 포장에 굉장한 답답함을 느낀다. 어딜가던지 인생샷, 인스타 인증 시 서비스, 로컬스럽게 꾸민 푸드트럭. 센스있어 보이는 네온사인. 건대 홍대 강남 부산 다 똑같은 관광지여서 다를 게 없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출발은 ‘나'라는 존재를 사이버 공간에 옮겨 놓기 위함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있는 그대로 복사하려는 자는 없다. 인스타그램은 처음에는 같은 관심사,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해주고 소통하게 하는 목적으로 해쉬태그를 선보였으나 오늘날에 해쉬태그를 진정 소통으로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강남”이라고만 올려도 강남 네일아트, 강남타투..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계정들만 팔로워 늘릴 목적으로 접근해온다.
 그렇지만 서로 살을 부비고 살수 밖에 없는 좁은 생활권의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인스타에 좋아요가 몇 개인지, 내가 올린 사진이 좀더 특별해보이고 ‘인싸'스러운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 속에 빠져 산다. 누군가 올린 제주도 위미리 동백꽃군락이 이쁘다면, 나 역시 그 캠페인에 동참하지않을 수 없다. 이왕이면 남들보다 빨랐으면 좋겠다. 나만 알고싶은 곳이지만, 나만 알고 있음을 자랑하고싶다.  라는 마음에 다들 SNS를 놓지 못한다. 기댈 것이 없고 쓸쓸한 우리네 사회의 집단 자존감이 낮다. 피드를 올리다 남들받은 10~20개의 좋아요보다 내 게시물의 100개의 좋아요는 상당히 본인을 우쭐하게 만드는 소확행이기 때문이다. 여행도, 그렇게 어느샌가 변질되었다.
이러한 인스타적 감성에 실증나다 못해 혐오의 단계까지 발전하려던 차, 가파도 프로젝트는 “그래! 이게 진짜 살아가는 것이고, 진짜 여행이지!”라는 원초적 탐구의 본능을 되새겨준 고마운 프로젝트였다.
 아직도 빠른 속도감 속에 즐기는 사람이 몇 있을 것이고, 몇은 튕겨져 나왔을 것이고, 무작정 눈 질끔감고 따라가나 이제 반쯤 포기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피로한 사회(한병철, <피로사회>, 2009)를 살고 있다. 만성 피로에 걸려버렸다. 일본에서 유행하던 <리틀포레스트>라던지, <심야식당> 등의 무자극 힐링 컨텐츠들이 최근 한국에서 꽤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그 증거라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전시는 가파도를 소스로 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삶, 그리고 그 삶의 터전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면서 여전히 영위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소위 ‘인문학적 고민'이 중심이 되면서도, 훌륭한 마케팅 회사다운 아카이빙의 노력으로 잘 포장 해놓은 종합선물세트였다. 결론적으로 현대카드를 다시보게 만들었다. 더불어 나에겐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 더 절실히 다가왔다. 폭포 하나를 두고 수많은 모텔과 카페와 먹거리촌이 무작정 생기는 지방 관광 산업의 현실, 그리고 인스타 인증샷, 인생샷이란 한국 젊은 층의 병적인 집착에 희생된 관광지의 재포장을 타파할 새로운 경험적 관광 모델이라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당위성은 충분했다. 또 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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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파도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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