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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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ng00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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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손정의 ㅇㅣ 개보지같은 샹년이 왜놈보닫 ㅓ무서운 변절자 짓으로 우리나라 유통1위 해뭇네 이 쩍바리일본 왜놈들이 얼마나 이짓거리로 우리꺼 거덜내려 멧돼지친구바리개근ㄹ헤개명박 앉혓을지 이찢어죽일년 손정의와 사업하는 십알년들은 트럼퍽 메론꼴 났다생각해라 너도 애플 엔비디아 꼴날테니까마리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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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lygood21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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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한설장군
25-02-21 이재명, 586 및 주사파의 전향, 새로운 시대를 위한 진통 아닌가?
시국이 매우 혼란스럽다. 윤석열은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을 당하고 구치소로 갔다.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이 중도보수라며 이준석 한동훈과 연대하자고 한다. 그런데 노무현의 이광재는 이재명이 옳은 방향을 가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이재명을 떠받들던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이재명의 중도보수 진영으로의 전환을 지지하고 있다. 진보당도 그런 이재명과 손을 잡았다. 연대한단다. 탄핵연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스운 연대다. 이재명과 손을 잡고 있는 김재연을 보면서 그가 왜 인생을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변절자 아닌가?
이재명의 뒤에는 경기동부가 있다. 경기동부는 주사파로 알려져 있다. 그런 주사파 출신이 민주노총을 장악하고 있다. 이재명이 중도보수로 전향을 선언한 것은 주사파 출신들이 모두 중도보수로 전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00년대 소련이 붕괴한후 한국의 운동권들의 상당수가 우익으로 방향전환했다. 마치 1990년대와 같은 상황이 2025년 탄핵정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주사파들의 전향은 매우 이상하다. 북한이 망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북한은 미국과 협상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사파 출신들이 갑자기 뜬금없이 중도보수로 변신한 것이다. 민주노총의 양경수도 중도보수로 전향했나? 양경수도 주사파 출신이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민주노총도 중도보수로 전향한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2국가체제를 선언한 배경에는 주사파들을 위시한 586 세력의 이런 이중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차에 걸쳐 언급한 바 있다. 현재 주사파와 586은 매우 반동적이다. 그들은 1990 소련 붕괴이후 전향했던 김문수를 위시한 운동권과도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당시 운동권은 소련 붕괴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에 항복했다. 그러나 지금의 주사파와 586은 북한이 비로소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에 전향했다. 미국이 더 이상 일극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 전지구적 전선에서 물러나고 있는 상황에 전향을 했다.
586과 주사파가 이재명을 선택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재명은 이념과 이상이 아���라 이익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물론 주사파와 586이 이재명을 선택한 것은 그들 자신들이 이념과 이상을 버리고 이익을 탐했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자신들이 탐하는 이익을 가장 잘 보장해줄 수 있는 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재명이 아닌 밤중에 중도보수로 전향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잘했다고 지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의 중도보수란 전체 인구의 30% 미만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수입을 본다면 말이다. 23년 기준으로 한달에 250만원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전체의 50%를 넘는다. 중도보수라고 한다면 한달에 500이상은 받는 계층에게나 해당될 것이다. 그러니 더불어민주당이 중도보수로 넘어가면서 한달에 250만원을 받지 못하는 계층을 옹호할 정치세력은 사라진 것이다. 중산층을 문화적 의식적 수준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개소리다.
한국의 중산층은 경제적 기준으로 볼 때 최소한 40%에서 30% 수준정도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청년들 여성 남성할 것없이 상당수는 중산층에 끼지 못한다. 하층민들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을 절대지지했던 계층은 중하위층이었다. 이제 한국의 중하위층은 정치세력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진보당?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재명의 사당이었다. 주사파를 중심으로 한 경기동부의 아성이었다. 민주노총, 진보당 모두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이런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상황이 혁명적 변화를 앞둔 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한국의 정치를 이끌었던 기존의 정치세력이 붕괴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같이 부르주아 세력이 계속해서 권력을 잡지 못했다. 정부수립이후 이승만과 친일세력의 권력을 잡았고, 그 이후에는 군부세력,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의 민주화세력, 이후에는 586이 권력을 잡았다. 보수세력은 군부세력이 빠지고 나서 법조계 인사들이 장악했다. 야권은 586과 주사파출신들이 손을 잡았고 그 전면에 법조계가 나섰다.
결국 현재 한국정치의 진통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586과 주사파의 연합, 그리고 그 전면에 나선 법조계가 더 이상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능력부족이다.
직역으로 따지면 법조계가 가장 국가운영 능력이 떨어진다. 차라리 군부보다 못하다. 한국정치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런 집단들의 무능력이 바로 현재와 같이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통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한국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586과 주사파, 그리고 법조계가 뒤로 물러나야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은 바로 현재 한국을 이끌고 있는 정치세력들의 무능력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들이 모두 물러나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어떤 세력들이 새롭게 등장해야 할까? 그냥 상식적이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면 좋겠다. 나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거짓말 밥먹는 것처럼 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 존��할 만한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하찮은 경제적 이익 때문에 나라를 말아먹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능력이 있어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앞으로 한국의 정치는 주사파와 586 그리고 법조계처럼 어떤 집단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사람들이 모여서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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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ochi88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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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에서 '윤석열 김건희 부부 한방멕인 학교까지 공개한 중학생 핵사이다, 전국 어른들 정신 차리게 했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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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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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1권 1922년 대사 · 21 해안으로 떠밀려 온 영국 국교도 · 36 예약 · 54 아는 사이 · 66 어쨌든…… · 81 여기저기 · 89 집회 · 106 고고학 · 125 크리스마스 시즌 · 143 2권 1923년 여배우, 유령, 벌통 · 175 뒷이야기 · 207 1924년 정체불명 · 211 1926년 안녕 · 236 1930년 · 275 아라크네의 기술 · 277 오후의 밀회 · 305 동맹 · 324 압생트 · 339 부록 · 361 1938년 도착 · 363 적응 · 374 상승, 하강 · 392 부록 · 432 1946년 · 433 소동, 응수, 사건 · 438 부록 · 496 4권 1950년 아다지오, 안단테, 알레그로 · 507 1952년 아메리카 · 532 1953년 사도와 변절자 · 536 5권 1954년 갈채와 환호 · 595 전장의 아킬레스 · 610 안녕 · 619 성년 · 629 발표 · 638 일화들 · 649 제휴 · 660 적들의 대결 (그리고 용서) · 665 절정 · 682 그 후 그 후…… · 701 때때로 · 714 옮긴이의 말 ·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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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swook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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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변절자들은 정치권에서 사라져야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정치가 새로워지고 희망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적폐청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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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hyunnn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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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レー🍛 カレー🍛 カレー🍛 最近カレーが好きになってきた🤣 人生であんまりカレー食べた事ない田舎男😅 카레에에에🍛가 요즘 좋아졌다🤣 인생에서 별로 카레먹지않던 촌놈이😅 #やはり #人って #変わっていく #辛い #カレー #好きやで #역시 #사람은 #변하는 #매운카레 #맛있다😋 #완전짱 #야유는 #아직 #모를꺼야 #카레 #매력 #🤣 #변절자 #타협인생 #불려져도 #어쩔없음 #빠져버렸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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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rotherwatingu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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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청명 17 1-4 大兄의 눈동자
예언보다야 예고에 가까운 언행 쏟아진다. 기필코 꺾이리라. 풍파며 외길이며 저울따위에 승기 쟁취할 수 없을 테다. 꼬박 노출되며 피폭에 금세 시들 거라고. 목청 너머로 잘게 다듬어 삼키고야 만다. 어차피 받든 난제의 해설지일랑 제 손아귀 쥐인 적 전무하였고, 운명은 대개 우연의 목소리 대여하였으며, 기어코 둔중한 몸덩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인영에게 시련이며 고난 안기지 않았는가. 닦인 평길에 흐드러진 잔재 상단 짓이겨 밟으며 나아가면 이 감각에 어떠한 감정 맞붙이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골몰 휩싸이게 되었다. 가엾게 여기어 줄까. 실상 해갈하여야 할 죄악 존재 않는데 꾸역꾸역 답습이다. 전야에는 어떠한 상망에 허덕였더라. 곯은 환상은 재생 가속될수록 늘어져 제 역할 수행하지 못한다. 비정한 순환 고리란 불연하였으므로 멋모를 찌꺼기가 잔류하여 ��구멍 죄었다. 단편적이고 밀도 낮은 꿈결에 목숨줄 걸었다 하여도 기어코, 또, 다시금, 속절없이 지나가 붙잡을 수 없도록 사라진다. 생을 갉아먹고 비워진 곳은 공허하게 남아 흉흉하게도 삶의 허망만을 증명한다. 그 공허 견딜 수 없어 자꾸만 눈길 돌린다. 겨우 붙들어 당기는 것만이 처방전이다. 항변일랑 들어밀어진 표목에 제쳐질 수밖에 없다. 거듭하여 본성에 코 처박는다. 그래, 열일곱. 촉루수髑髏水가 고약하여. 세계는 암흑이다. 그러므로 들이켜는 모든 정체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않아도 되겠다. 끝내 혼탁할 종래에는 잃은 자와 곯은 자만이 움킬 것이므로. 아, 무운이 부대껴 헛구역질이 난다.
천청명天淸明 ◦ 050404 ◦ Anemone ◦ Gem silica ◦ 馬家木 ◦ RH+B ◦ 181 / 67
1. 淸明에서 寒食까지   1-1.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봄의 개화 시기 탄생하였다. 일자 따라 명명 붙였다. 나아가 세상에 맑게 도래하라는 염원 담아서. 아평군 읍내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탯줄 자른 뒤 산후조리원까지 아평군 소재의 곳에서 보내었다.   1-2. 태몽은 설산에 돋은 새싹 따라 걸음 옮기다 보니 발견한 말라비틀어진 고목 아래에서 잠드는 꿈. 잉태의 뜻이라기에는 모호하였다.   1-3. 태어난 이후 열두 살 무렵까지 아평군에 거주하였으나, 학군 및 모종의 사유로 인하여 서울로 돌연 전학하였다. 서울 강서구 일대에서 등하교하였으나 방학 기간 되돌아오면 꼬박 아평군으로 홀로 되돌아와 조부모의 자택에서 시간 보내어 급박한 이사의 이유에 대한 의심 줄었으나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1-4. 2019 년 12 월 22일, 동지冬至에 사고로 인하여 조실부모하였다. 유일한 생존자로 이후 아평군으로 되돌아오겠다 선언하여 조부모 소유 읍내 소재의 아파트로 돌아와 영성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2. 永成, 진리 추구는 참된 길로 가는 지름길이니   2-1. 1 학년 4 반     2-1-1.전교권. 중학교 시절부터 열성이었으며, 가장 일찍 등교하는 학생 중 하나다. 17-3 번 버스의 첫차를 타면 무조건 천청명 목격할 수 있다는 낭설 돌았다.     2-1-2. 과거 초등학교 때까지 아평군에 살아 마냥 외부인 취급을 받지는 않는다. 허나 천진하였던 과거와 꽤나 달라진 탓인지 이질감 느끼는 이들도 꽤나 존재하는 듯.     2-1-3. 교탁에서부터 정면으로 두 번째 자리.   2-2. 영성진리클럽     2-2-1. 입학 이후 돌아오는 사월의 둘째 주 금요일, 시간에 지목되어 특별 수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활동하였던 독서감상 동아리 단번에 탈퇴 신청한 후 영성진리클럽 한 곳에만 소속되었다. 해당 사건 이후 기존 소속되었던 소속 학생들의 곱지 않은 눈초리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2-2-2.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 선택받은 자라는 우월감 표출도 일절 않으며 일과 해결할 뿐이다. 기도 단 한 번도 지나친 적 없다. 아평군 거주 중인 세 번째 세대라는 점 감안하더라도 과한 신실함으로 보일 때 잦다.     2-2-3. 가끔 믿음에 관련하여 의문점 표출하거나 불만 제기하는 자 있다면 시선 한참이고 머문다. 가끔 잇속말로 이름이나 학년을 중얼거리는 행위 목격한 이들 다수였다. 꺼림직하다는 평판이 대다수다.     2-2-4. 대복회 소속으로 소문 자자한 선생님들과의 잦은 상담. 혹자 이르기를, 혹시 변절자 감시하여 보고하는 것 아니냐 의문하였다. 3. 갈음하지 말지어다   3-1. 부러 발화하여 언급하지 않지만 신실한 신도라는 사실 교내 확산되어 있다.   3-2. 평소 예민한 기색 전무하나 실질적으로 신경 곤두세우고 있는 탓에 흰자 핏발 서 있을 적 잦다. 따라 대개 피곤한 행색이다.     3-2-1. 다들 감기로 고생하며 앓는 겨울에는 멀쩡하다가도, 봄으로 전환되어 날이 푹 익기 직전 열병 얻어 한참 앓는 연례행사 치른다. 따라 이 시기에는 평소 피로감 절어 있는 행태보다 형형한 기척이다.   3-3. 교칙 철저히 지킨다. 액세서리 전무.   3-4. 아이폰SE2 실버. 케이스 미착용.   3-5. 호불호가 모호하였다. 드러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MPC 주옥빈 대리자의 입 빌어 명언하시니 기어코 따르겠습니다 일방적 맹목의 발현 양아립 동족과 반골과 미세한 감각마저도 벗어나지 않으셨으면 좋겠을지도 모릅니다 기이한 감각의 학습 온미제 기어코 엇나갈 궤도가 다행일까 불행일까 우리는 앓고 있어 어쩌면 영영 나는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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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vastasqrqxd-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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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카지노 최대 규모의 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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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카지노 與野 개편대회 이모저모|金대표 "국민배신 지도자 심판하자"   (서울=聯合) 0... 서울 수유동 한신대 강당에서 14일 오후 열린 민주당  道峰乙지구당(위원장 金元吉)개편대회는 金大中대표를 비롯한 당직자와 당원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호가 쏟아지는 등 유세분위기속에서 진행.金대표는 이날 치사에서 "이번 선거에서는 날치기꾼과 변절자,  사이비국회의원들을 철저히 물갈이하고 국민을 대변할 민주적이고 정직한 국 더킹카지노회의원들을 당선시키자"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과거의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출신들을 모조리 낙선시키고 국민을 배신 한 지도자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그는 물가문제도 거론, "全斗煥정권은 그래도 물가는 잡았는데 현정권은 물가도 못잡는다는 불만이 국민들 사이에 터져나오고 있다"면서 "민주당이 과반수를 얻으면 예산및 입법조치를 통해 물가를 잡을테니 민주당을 밀어달라"고 호소.水西사건에 대해 金대표는 "떡을 해서 시루채 청와대에 들어갔는데도  국회 더킹카지노의원들만 고물좀 주워먹었다고 잡혀 들어갔다"고 꼬집은뒤 6.29선언  주체문제와  관련, "어떤 사람은 누가 먼저 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가 실천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 더킹카지노지만 문제는 盧대통령이 처음에는 그 선언에 반대했으면서도  더킹카지노그로인해 당선됐다는 점"이라고 주장.이날 대회장에는 서울시 선관위단속반이 무비 카메라를 동원, 혹시 있을지 모를 탈법사례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였으며 주최측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비교적 차분하게 대회를 진 더킹카지노행.       눈빛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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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moomu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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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감도장2 - 변절자
- 인감도장[人感圖章, 내가 느낀 삶의 증거]
이번 에피소드는 안건우편에서 넌지시 스포했던 그 남자 성종환이다.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 많아서 뭘 적어야 할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지만, 마침 티비를 보던 중에 나온 'jtbc 신년토론'의 훈훈한 엔딩 장면을 보며 끄적인다.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다. 평소 '우리조국의미래는없다'라는(특정인 비판 아님) 비관적인 생각과 더불어, 정치 뉴스만 나오면 1년 치 욕을 몰아서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나는 평소 까다로운 현실을 무시하고 애써 외면했다.
그럼에도 썰전은 매우 좋아했다. 논객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그래도 죽을 거 같이 논쟁하다가도 끝나면 멋있게 악수하고 마무리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참 마음에 들었다(그게 진의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아무튼 정치 이야기는 재껴두고 사실 종환이의 잔혹한 별명이 하나 있는데 바로, '변절자'이다. 이름만 들으면 무슨 숨겨진 친일파 자손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절대 아님) 그에게 이러한 별명이 부여된 이유가 있다. 
그는 이상하게 특정 포인트에 자신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곤 했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둘다. 예를 들어, 한번은 갑자기 잘 운영되고 있던 축구팀을 나가겠다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촌동네 조기축구회였지만 그때는 나름 학창 시절의 자부심을 영혼까지 갈아 넣은 상징적인 존재였다. 더군다나 그가 탈퇴를 선언한 이유는 뭔가 팀원에 대한 문제도 팀에 대한 불만도 아닌 '새로운 도전'이었다. 
새로운 도전, 이 말은 사실 음 예를 들자면 손흥민이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할 때 정도의 무게감에나 어울리는 말이지..촌동네 급식들의 조기축구단 이적에 어울리는 말은 아닌 거 같았다. 각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도전'을 강행했다. 물론 그가 이적한 그팀은 후에 공중분해되었지만, 
그 후에도 그는 가끔 주체되지 않는 감정을 참지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강행하기도 했으며 그때마다 주로 카카오톡 단체톡에는 '알 수 없음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라는 멘트가 동반되었다. 도전과 카톡탈퇴의 공변성은 사실 어떤 이유인지 잘 모르겠으나
뭐 때마다의 도전은 대게 실패했으며 그는 몇 달뒤 '안녕 ㅎㅎ 잘 지냈나?'라는 어색한 카톡과 함께 단체톡에 합류하곤 했다.
우리는 그 '변절'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나는 그를 변절자라고 가끔 놀린다. 
그의 몇 번의 변절은 앞선 에피소드에서 밝힌 우정의 '위기'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할 뻔 했으나, 우린 당장 손절할 듯이 열성적으로 다투다가도 결국 몇 달뒤에 토론이 끝나면 웃으며 악수하는 썰전 논객들 처럼 실실 쪼개면서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구미에 내려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얘다. 건우랑 별거하고 다시 만났을 때처럼 어제도 뭐 그냥.. 오랜만에 만난 사람은 고사하고 너무 익숙해서 약간 징그러웠다. 다만, 요즘은 이두박근의 무게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거 같지만(찐헬창)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양심의 무게가 누구보다 무거운 사람이며 일탈은 했어도 탈선은 하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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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fuhrer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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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요즘 애들은...(계속 투덜거림)
베른하르트: (수신기를 내려놓더니) 카나마 근방에서 무장한 이슈발아 2명이 잡혔답니다. 변절자 위치를 알고있지 않을까요?
(바에 한잔하러 찾아온 로이)
세레나“어서 오십시요.” 그를 맞이하는 웨이스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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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silkang-kb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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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김성주 저격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17-09-17 14:59:41, 수정 2017-09-17 23:34:42 [스포츠월드= #최정아 기자] 김성주는 ‘변절자’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누군가는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불렀다. 지난 2007년, 김성주는 MBC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해보겠다며 사측에 사표를 제출했다. 응원보다 질타가 쏟아졌다. 그땐 그랬다. 아나운서가 사표를 쓰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취급을 받을 때다. 2012년 전현무가 KBS에 사표를 쓸 때도 그랬다. 정확히 10년 전, 36세의 김성주는 울타리를 넘어 야생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꿈을 펼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전문 스포츠캐스터가 되고 싶었고 예능 MC��� 되고 싶었다. 하지만 MBC는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MBC 측, 아나운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송국에서 차지하는 아나운서의 현 위치와 몸값 등을 논했다. 김성주는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간 탕아 정도로만 보였다. 이 익명의 관계자들은 ‘더이상 김성주는 우리 식구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흘렸다. 그럼에도 김성주는 MBC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복귀는 친정 MBC에서 하고 싶다며 간간히 들어오던 방송계 러브콜도 마다했다. 김성주에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새 출발을 응원해준 ‘식구’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의리를 말하며 파업 때 동조하지 않는다고 돌을 던진다. 친정이라 부르지만 소속감을 느끼기엔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그 곳. MBC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나온 사람, 김성주는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이 들까. 주진우 기자는 지난 13일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현장을 찾아 김성주를 저격했다. 주 기자는 “(2012년 파업 때) 많은 아나운서, 진행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스포츠 캐스터들도 내려놨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며 “김성주가 특히 빈자리를 자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밉다. 진짜 패고 싶다”는 과격한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성주는 MBC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2012 런던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5년 만에 MBC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엔 회사 직원이었고 아나운서국과 스포츠국 선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면서 “아나운서국이 중심이 돼서 올림픽 중계를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파업이 타결되면 언제든 흔쾌히 물러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제안을 어렵게 수락하게 됐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김성주가 아니였어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대체 했을 것이고 파업 실패의 이유를 김성주에게 몰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반면 비판하는 이들은 지금의 논란이 동료를 뒤로 하고 마이크를 잡은 죄라 한다. 주 기자는 남다른 통찰력, 행동력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발언이 낳는 파급력을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이번 김성주 저격은 더 아쉽다. 그의 의견에 반하는 이를 ‘때려 죽이고 싶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분노 발산의 대상을 찾은 듯 폭격을 퍼붓는 행동은 과연 정의일까. 주범으로 향해야 할 시선은 왜 아직 김성주에게 머물러 있나. MBC의 파업을 지지한다. 언론의 독립과 공정을 회복하기 위한 이들의 절규가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아마 올해 파업을 바라보는 대대수의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김성주 이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이 앞선 폭력적인 발언은 논란을 위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아직도 댓글창은 전쟁통이다. [email protected] http://www.sportsworldi.com/content/html/2017/09/17/20170917001590.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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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yroadxyz-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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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협동조합운동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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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협동조합운동 현황
[협동담론]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조합원교육 프로그램​)
미국에서 귀한 손님이 한국을 찾아주셨습니다.
Humanitarian center for workers의 지민선 이사님
현재 미국 Denver Univ.에서 국제정치경제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십니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셨다고 하니
IMF도 미국에서 경험하셨고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시네요~
한국에 계실때는 노동자 야학을 오랫동안 했었고,
미국에서도 우연히 진보적 노조 단체를 만나서
노조를 조직하는 일을 하다가 불법 체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관련된 석사논문까지 쓰셨고 지금도 불법 체류자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에는 박사 논문을 준비 하시면서
한국의 협동조합/노동자자주기업의 전환사례를 조사하러 오셨구요~
우진교통, 달구벌버스, 해피브릿지 등을 인터뷰하고 계시다네요.
처음에는 미국과 한국, 아르헨티나를 비교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르헨티나는 제외하게 되었다고 하시네요.
암튼, 해피브릿지를 방문하신 김에 또 그냥 보내드릴수는 없기에,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에 대해서 들어보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아무래도 외부인사가 오셔서 강연을 하시다 보니
외부에서도 해피브릿지를 많이 찾아서 함께 자리를 해주셨습니다.
해피브릿지의 관계사인 스파이더 분들도 함께하셨고,
한국협동조합연구소, icoop상담지원센터,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 등…
약 2시간 동안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의 현황 및 최근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추가적으로 질의응답을 통해서 지민선선생님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한국에는 의외로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습니다.
주로 미국의 농협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고,
노동자협동조합과 관련해서는 주로 유럽의 자료들이 대부분인 상황이죠.
미국은 상대적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의 오지로만 알려져왔는데요.
국내에서도 관련해서 읽어볼만한 자료는 아이쿱연구소에서 번역한 자료밖에 없습니다.
Hilary Abell (2014)
Workers Cooperative: Pathway to Scale, The Democracy Collaborative
번역된 자료는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의 홈페이지에서 다운이 가능합니다.
1권(http://icoop.re.kr/?page_id=1282&uid=880&mod=document)
2권(http://icoop.re.kr/?page_id=1282&uid=1128&mod=document)
지민선 선생님의 강의 내용은
사실 이 보고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죠.
Green cleaning for life
 Green worker cooperatives
Ariznedi Bakery
Equal Exchange
CHCA
New Era Windows
하지만, 보고서가 아닌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지민선 선생님을 통해서 미국의 노동자협동조합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8년 이후 미���에서도 부의 불균형과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 노동자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노조가 노협운동에 적극적이라는 점입니다.
흥미롭게도 노조와 노협은 양립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존재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몬드라곤에서도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큰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죠.
노동자가 주인인데, 왜 굳이 노조를 따로 만들어야하냐는 것이였습니다.
반대로 노조에 입장에서는 노협으로 전환하면 노조는 사라져야하기에
노동자협동조합은 우리와는 다른 약간의 별종 또는 약간의 변절자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노조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노조인 철강노조는 몬드라곤과 MOU를 채결했습니다.
몬드라곤에서 배워서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굉장히 획기적인 발상입니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협동조합에 대해서
타협주의자 또는 변절자 취급을 하면서 자본주의 모순을 못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라는 바다에 있는 섬’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사용했죠.)
하지만, 미국의 노조들은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독특하게 협동조합으로 전환 이후에는 노조가 그 밑으로 들어갑니다.
노조는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단체 교섭권과 대정부 투쟁만 한다고 합니다.
기존의 노조와도 다르지만, 노협과도 다른 독특한 구조가 되는거죠.
암튼 이러한 움직임들은 굉장히 신선했고,
1100명의 노조원들이 한 번에 다른 협동조합에 가입한 이야기 등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
미국에서는 1970년대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면서
ESOP(노동자자주관리기업)이 급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노동자를 부유하게 만들자는 노동자 자본주의의 관점이였으며,
결정적으로 세금혜택이 활성화를 부추긴 측면이 강했습니다.
ESOP에 대한 세금혜택이 줄어들면서,
ESOP의 활성화는 한 풀 꺾였고 현상유지만 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슷한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협이 최근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입니다.
자본보다는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산업과 식품 산업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는 아무래도 자본조달의 방법이나 일자리 창출과 연결이 되는 듯합니다.
미국에서도 자본조달은 한국처럼 항상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크라우드 펀딩이나 사립 재단의 도움을 받기 용이합니다.
몬드라곤처럼 사내유보금을 통한 자체 조달방식이 어려울 경우
크라우드 펀딩은 거버넌스 구조를 흔들지 않으면서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에도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시스템은 이미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이 기부나 크라우드 펀딩에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텀블럭, 와디즈, 굿펀딩 같은 사이트 들이 존재하죠)
미국의 시민NGO가 성장해왔던 루트를 이제는 협동조합들이 활용하는 듯한데,
지민선씨의 협동조합도 결국은 기부를 통해서 건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암튼 이외에도 뉴욕이나 캘로포니아에서는 시정부차원에서
노동자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는 법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미 뉴욕시를 중심으로 많은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교육 아카데미를 활용한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새로운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원동력이 된다고 하네요.
노조와 노협의 공존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들
협동조합 교육 아카데미를 통한 네트워킹
참~ 미국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이 점차 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빨리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들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될 듯합니다.
 *해피브릿지 홈페이지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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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silkang-kb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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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김성주 저격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17-09-17 14:59:41, 수정 2017-09-17 23:34:42 [스포츠월드= #최정아 기자] 김성주는 ‘변절자’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누군가는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불렀다. 지난 2007년, 김성주는 MBC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해보겠다며 사측에 사표를 제출했다. 응원보다 질타가 쏟아졌다. 그땐 그랬다. 아나운서가 사표를 쓰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취급을 받을 때다. 2012년 전현무가 KBS에 사표를 쓸 때도 그랬다. 정확히 10년 전, 36세의 김성주는 울타리를 넘어 야생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꿈을 펼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전문 스포츠캐스터가 되고 싶었고 예능 MC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MBC는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MBC 측, 아나운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송국에서 차지하는 아나운서의 현 위치와 몸값 등을 논했다. 김성주는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간 탕아 정도로만 보였다. 이 익명의 관계자들은 ‘더이상 김성주는 우리 식구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흘렸다. 그럼에도 김성주는 MBC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복귀는 친정 MBC에서 하고 싶다며 간간히 들어오던 방송계 러브콜도 마다했다. 김성주에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새 출발을 응원해준 ‘식구’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의리를 말하며 파업 때 동조하지 않는다고 돌을 던진다. 친정이라 부르지만 소속감을 느끼기엔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그 곳. MBC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나온 사람, 김성주는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이 들까. 주진우 기자는 지난 13일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현장을 찾아 김성주를 저격했다. 주 기자는 “(2012년 파업 때) 많은 아나운서, 진행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스포츠 캐스터들도 내려놨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며 “김성주가 특히 빈자리를 자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밉다. 진짜 패고 싶다”는 과격한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성주는 MBC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2012 런던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5년 만에 MBC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엔 회사 직원이었고 아나운서국과 스포츠국 선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면서 “아나운서국이 중심이 돼서 올림픽 중계를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파업이 타결되면 언제든 흔쾌히 물러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제안을 어렵게 수락하게 됐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김성주가 아니였어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대체 했을 것이고 파업 실패의 이유를 김성주에게 몰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반면 비판하는 이들은 지금의 논란이 동료를 뒤로 하고 마이크를 잡은 죄라 한다. 주 기자는 남다른 통찰력, 행동력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발언이 낳는 파급력을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이번 김성주 저격은 더 아쉽다. 그의 의견에 반하는 이를 ‘때려 죽이고 싶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분노 발산의 대상을 찾은 듯 폭격을 퍼붓는 행동은 과연 정의일까. 주범으로 향해야 할 시선은 왜 아직 김성주에게 머물러 있나. MBC의 파업을 지지한다. 언론의 독립과 공정을 회복하기 위한 이들의 절규가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아마 올해 파업을 바라보는 대대수의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김성주 이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이 앞선 폭력적인 발언은 논란을 위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아직도 댓글창은 전쟁통이다. [email protected] http://www.sportsworldi.com/content/html/2017/09/17/20170917001590.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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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silkang-kbs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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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김성주 저격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17-09-17 14:59:41, 수정 2017-09-17 23:34:42 [스포츠월드= #최정아 기자] 김성주는 ‘변절자’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누군가는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불렀다. 지난 2007년, 김성주는 MBC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해보겠다며 사측에 사표를 제출했다. 응원보다 질타가 쏟아졌다. 그땐 그랬다. 아나운서가 사표를 쓰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취급을 받을 때다. 2012년 전현무가 KBS에 사표를 쓸 때도 그랬다. 정확히 10년 전, 36세의 김성주는 울타리를 넘어 야생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꿈을 펼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전문 스포츠캐스터가 되고 싶었고 예능 MC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MBC는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MBC 측, 아나운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송국에서 차지하는 아나운서의 현 위치와 몸값 등을 논했다. 김성주는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간 탕아 정도로만 보였다. 이 익명의 관계자들은 ‘더이상 김성주는 우리 식구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흘렸다. 그럼에도 김성주는 MBC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복귀는 친정 MBC에서 하고 싶다며 간간히 들어오던 방송계 러브콜도 마다했다. 김성주에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새 출발을 응원해준 ‘식구’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의리를 말하며 파업 때 동조하지 않는다고 돌을 던진다. 친정이라 부르지만 소속감을 느끼기엔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그 곳. MBC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나온 사람, 김성주는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이 들까. 주진우 기자는 지난 13일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현장을 찾아 김성주를 저격했다. 주 기자는 “(2012년 파업 때) 많은 아나운서, 진행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스포츠 캐스터들도 내려놨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며 “김성주가 특히 빈자리를 자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밉다. 진짜 패고 싶다”는 과격한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성주는 MBC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2012 런던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5년 만에 MBC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엔 회사 직원이었고 아나운서국과 스포츠국 선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면서 “아나운서국이 중심이 돼서 올림픽 중계를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파업이 타결되면 언제든 흔쾌히 물러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제안을 어렵게 수락하게 됐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김성주가 아니였어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대체 했을 것이고 파업 실패의 이유를 김성주에게 몰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반면 비판하는 이들은 지금의 논란이 동료를 뒤로 하고 마이크를 잡은 죄라 한다. 주 기자는 남다른 통찰력, 행동력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발언이 낳는 파급력을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이번 김성주 저격은 더 아쉽다. 그의 의견에 반하는 이를 ‘때려 죽이고 싶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분노 발산의 대상을 찾은 듯 폭격을 퍼붓는 행동은 과연 정의일까. 주범으로 향해야 할 시선은 왜 아직 김성주에게 머물러 있나. MBC의 파업을 지지한다. 언론의 독립과 공정을 회복하기 위한 이들의 절규가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아마 올해 파업을 바라보는 대대수의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김성주 이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이 앞선 폭력적인 발언은 논란을 위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아직도 댓글창은 전쟁통이다. [email protected] http://www.sportsworldi.com/content/html/2017/09/17/20170917001590.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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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아의 연예It수다] #김성주 저격이 불편한 이유 입력 2017-09-17 14:59:41, 수정 2017-09-17 23:34:42 [스포츠월드= #최정아 기자] 김성주는 ‘변절자’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누군가는 그를 ‘기회주의자’라고 불렀다. 지난 2007년, 김성주는 MBC에서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을 해보겠다며 사측에 사표를 제출했다. 응원보다 질타가 쏟아졌다. 그땐 그랬다. 아나운서가 사표를 쓰면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취급을 받을 때다. 2012년 전현무가 KBS에 사표를 쓸 때도 그랬다. 정확히 10년 전, 36세의 김성주는 울타리를 넘어 야생의 세계에 몸을 던졌다. 꿈을 펼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전문 스포츠캐스터가 되고 싶었고 예능 MC도 되고 싶었다. 하지만 MBC는 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다수의 언론 매체에서 MBC 측, 아나운서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방송국에서 차지하는 아나운서의 현 위치와 몸값 등을 논했다. 김성주는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회사를 뛰쳐나간 탕아 정도로만 보였다. 이 익명의 관계자들은 ‘더이상 김성주는 우리 식구가 아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흘렸다. 그럼에도 김성주는 MBC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복귀는 친정 MBC에서 하고 싶다며 간간히 들어오던 방송계 러브콜도 마다했다. 김성주에게 어깨를 감싸 안으며 새 출발을 응원해준 ‘식구’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의리를 말하며 파업 때 동조하지 않는다고 돌을 던진다. 친정이라 부르지만 소속감을 느끼기엔 자신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그 곳. MBC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나온 사람, 김성주는 지금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이 들까. 주진우 기자는 지난 13일 MBC 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현장을 찾아 김성주를 저격했다. 주 기자는 “(2012년 파업 때) 많은 아나운서, 진행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겠다고 마이크를 내려놨다. 스포츠 캐스터들도 내려놨다. 그런데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았다”며 “김성주가 특히 빈자리를 자주 차지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더 밉다. 진짜 패고 싶다”는 과격한 말을 했다. 그의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김성주는 MBC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2012 런던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5년 만에 MBC에 복귀했다. 그는 “2006년엔 회사 직원이었고 아나운서국과 스포츠국 선후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면서 “아나운서국이 중심이 돼서 올림픽 중계를 이끌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파업이 타결되면 언제든 흔쾌히 물러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의 제안을 어렵게 수락하게 됐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김성주가 아니였어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대체 했을 것이고 파업 실패의 이유를 김성주에게 몰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반면 비판하는 이들은 지금의 논란이 동료를 뒤로 하고 마이크를 잡은 죄라 한다. 주 기자는 남다른 통찰력, 행동력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화두로 제시한다. 다수의 경험을 통해 현재 자신의 발언이 낳는 파급력을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이번 김성주 저격은 더 아쉽다. 그의 의견에 반하는 이를 ‘때려 죽이고 싶다’고 하는 것. 그리고 그의 손가락질 한 번에 분노 발산의 대상을 찾은 듯 폭격을 퍼붓는 행동은 과연 정의일까. 주범으로 향해야 할 시선은 왜 아직 김성주에게 머물러 있나. MBC의 파업을 지지한다. 언론의 독립과 공정을 회복하기 위한 이들의 절규가 허공의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아마 올해 파업을 바라보는 대대수의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번 김성주 이슈를 통해 알 수 있듯 감정이 앞선 폭력적인 발언은 논란을 위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아직도 댓글창은 전쟁통이다. [email protected] http://www.sportsworldi.com/content/html/2017/09/17/20170917001590.html?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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