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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인생의 주인공은 나! 주도적인 삶을 살기위해 충분히 공부하고 내가 선택한 신념을 지킵시다^^ . #인생사진 #주인공 #주도적 #삶 #공부 #신념 #생각 #일상 #사는대로 #마음 #소통 #감동글 #명언스타그램 #디자인 #그림연습 #취미생활 #손글씨릴레이 #사나 #리더 #응원 #누구나가능 #겸손 #고객 #갑 #을 #세상 #라이프 #크로스 . #유사나강석호01071878888 https://www.instagram.com/p/ByHF3U-gnvb/?igshid=1rj84261x59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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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l_biche_ 님에게 이어받아 #손글씨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손글씨 5개당 환경미화원, 경비원분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핫팩이 전달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모여 추운 겨울날에도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 . 이 따뜻한 온기를 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gyu___jung , @tjsgml3607 , @hwangyang0 @unjeong_fish , @dawn_ch97 , @geulvit_tree 님께서 이어가 주시겠습니까?💜 (본인 이름으로 변경한 손글씨, 해시태그달기, 다음 릴레이주자 지목하기 꼭 부탁드려요🙏) #어둠만들기프로젝트 #iamyourenergy #손글씨릴레이 . . . 나랑 유일하게 놀아주는 태그된 내 칭구들아 남치니랑 남표니랑 햄볶는 쿠리수마수 되길🙊 인친님들도 즐거운 성탄절 되세요!❣❣❣ . . . #릴레이 #부탁 #드립니다 #부담주기#ㅎㅎ #메리크리스마스 #리포스트 #손글씨그램 #글귀 #공감 #취미 #캘리그라피 #art #글 #시 #calligraphy #힐링 #좋아요 #design #calligraphyart #일상 #글스타그램 #퍼플레인 #lettering #좋아요그램 #handwriting #끄적끄적 (Gyeongsangbuk-do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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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적 링크 : 오혜진 님 (https://www.facebook.com/hyejin.oh.140) 글 펌.
저는 ‘판관’이 아니므로, <참고문헌 없음> 사태에서 벌어진 수많은 각각의 사건들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힐 필요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 세대 페미니스트들과 문학공동체 구성원들 모두 함께 깊이 생각해봤으면 하는 지점들이 있어 조금 적어봅니다.
1.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혹은 ‘돈은 페미니즘이 된다?’
보통 어떤 ‘기금’이 ‘정의 구현’을 표방한 일종의 사회운동으로서 전개될 때, 기금을 모으는 주체, 혹은 기금의 성격과 용처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갈등과 시비가 생기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모금주체의 도덕성을 심문에 부치려는 시도도 왕왕 일어나죠. 특히 ‘도덕성’을 심문에 부치는 계기로서 ‘(성)폭력’ 같은 문제가 제시될 때, 서로가 더 ‘심각하고 진정한 피해자’의 위치를 선점하려는 양상도 자주 나타납니다. 불행을 전시·경쟁하는 식으로 자신의 진정성과 배타적 발언권 및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그간 페미니즘 역사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됐죠.
얼마 전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현상을 일컬어 ‘상이군인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더군요. (물론 이 용어는 ‘정치적 올바름’과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최근 페미니스트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삼가고 있는 줄 압니다) 요컨대, ‘누가 정말 진정한 가해자/피해자인가’를 판별하려는 욕망에 휘말리기에 앞서, 이런 방식의 갈등과 전략, 그 의미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숙고해온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부딪친 현상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 새로운 현상은 ‘텀블벅’이나 ‘굿즈’ 등으로 만들어낸 ‘돈과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 결합인 듯합니다. 최근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소비를 통한 주체화’가 익숙한 ‘신자유주의적 자아’들, 즉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이 행하는 ‘소비자운동’이 정말 페미니즘의 새롭고도 유효한 ‘전략’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는 강력한 입장들이 있죠. ‘소비능력’이 주체화의 유일한 기준이 될 때, 이는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만을 위한 전략이 될 것이라는 염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너머를 상상하지 않음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을 ‘자본-제국’의 안전한 시민/소비자로 순치시킬 뿐이라는 비판*1 등을 ���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담론장을 휩쓸었던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라는 구호에서 보듯, 사회적 지위와 발언권이 취약한 여성들에게 ‘소비’는 여성들의 세력화를 가시화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남성의 소비는 손쉽게 정치적 자원으로 의미화돼온 반면, 여성의 소비는 언제나 허영과 사치라고 평가절하돼온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만큼, ‘여성의 소비’를 ‘파워’ 혹은 ‘연대’의 징표로 재의미화하기 위한 맥락을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했습니다.*2
그런데 저는 이번 <참고문헌 없음> 사태를 보며, 우리가 ‘돈과 페미니즘’의 결합에 있어 충분히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한 또 다른 지점이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구매·입금을 통한 연대’의 진정성과 전략적 유효성보다 더 먼저 고민했어야 하는 것은, ‘구매와 입금의 대상’, 즉 ‘상품의 내용’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구매’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무형의 이념 혹은 신뢰체계가 아니라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고통’일 때, 우리가 결국 구매하게 되는 건 뭘까요?
예컨대,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참고문헌없음 손글씨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쓴 문구는 왜 “문단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합니다” 혹은 “문단성폭력과 싸우는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투쟁을 지지합니다”가 아니라 “참고문헌없음을 지지합니다”였을까요? 이때 “참고문헌없음”은 우리가 구매하는 상품인 ‘책’의 이름입니까, 문단성폭력과 싸우는 피해자·연대자들의 이름입니까. ‘페미니즘적 정의를 위해’ 돈을 지불한 것인지, 아니면 ‘돈을 지불하는 방식’을 통해 특정 현상이 ‘페미니즘적’이라고 규정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손글씨릴레이 프로젝트 기획자들의 문구 선정이 부주의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상품에 대한 소비’를 통해 페미니즘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페미니즘적 소비자운동’의 전략 자체가 이런 모호성을 내장하고 있다는 걸 환기하고자 합니다. <참고문헌 없음> 사태는 아직 우리에게 ‘돈과 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 결합양상, 그 딜레마를 요령 있게 다룰 능력이 별로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2. ‘연대’와 ‘연좌제’ : ‘도덕공동체’에서 ‘가해공동체’로
이 문제를 숙고해봐야 하는 이유를 좀 더 말해보겠습니다. <참고문헌 없음> 텀블벅이 애초에 설정한 1000만원이라는 목표액을 단 몇 시간 만에 초과달성해 7000여 만원이라는 잠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동력은 이 ‘구매행위’가 ‘지지’와 ‘연대’라는 ‘도덕적 행위’로 의미화되면서, 이것이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수용됐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이를 견인한 것은 “참고문헌없음” 손글씨릴레이와 같은 캠페인이었습니다. ‘손글씨’는 두말할 것 없이 ‘진정성의 ���식’이었고, 우리는 그 형식을 통해 “참고문헌없음을 지지합니다”라는 모호한 문장을 적었습니다. 물론, 이 문장의 내포는 “문단성폭력과 싸우는 피해자·연대자들의 싸움을 지지합니다” 정도로 이해됐으리라 짐작합니다.
저는 일전에 독립잡지 <더 멀리>에 기고한 「‘페미니스트 혁명’과 한국문학의 민주주의」라는 글에서, 이처럼 ‘윤리적 당위’를 ‘선언·다짐’하는 방식에 내장돼 있는 비정치성 혹은 탈정치성 대해 적은 바 있습니다. 그것이 질서회복적·도덕주의적 캠페인에 그칠 가능성, 그것이 선언주체의 자리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선한 권력자’의 장소로 놓게 될 가능성 등을 염려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단성폭력’ 담론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고 문화적 재인식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각종 해시태그운동과 손글씨릴레이의 의의는 작지 않았고, 바로 그 의의를 존중하기에 저도 그 이벤트들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해시태그운동-손글씨릴레이-입금’ 등의 형식으로 만들어냈다고 생각한 ‘연대’의 네트워크는 이제 순식간에 ‘가해’의 네트워크로 운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문헌 없음>에 대한 지지/후원을 철회하기로 결정한 분들이나 철회하지 않기로 결정한 분들이나 모두 나름의 판단과 기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판단과 기준이 보다 타당한지의 문제는 페미니즘 담론장에서 논의될 만한 일이고, 그 논의 자체가 페미니즘 지식과 전략의 업데이팅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태의 지배적 흐름 중 하나는, 이 문제를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넘기기보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또 다른 ‘가해자’로 간주함으로써 그 ‘연대’의 행위들을 ‘범죄화’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없음>의 출판사인 봄알람이 데이트폭력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을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이 공표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단성폭력 피해자인 자신에 대한 2차가해이며, 이런 상황에서도 <참고문헌 없음>에 기고하거나 후원하는 방식으로 책 발간에 원조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에 대한 2차가해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걸 봤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종의 ‘도덕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연대네트워크’는 이제 순식간에 누군가의 ‘2차가해(자)’와 연루됨으로써(사실, 그 누군가의 행위가 정말 ‘2차가해’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한)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가해’가 되는, ‘가해네트워크’로 화하게 된 셈입니다. 이는 ‘선의와 도덕심’으로 연결된 ‘연대’ 네트워크는 언제든지 ‘연좌제’가 적용될 수 있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런 현상이 초래된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현재 잘 지적되고 있는 대로, 그간 반성폭력운동의 대표적인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2차가해’ 혹은 ‘피해자중심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무분별하고 탈맥락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데 있을 겁니다.*3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있는 ‘편 가르기’와 ‘여론선동’이 페미니즘 담론장에서의 대화와 토론을 대신하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양적 재단과 계량의 대상이 된 윤리와 정의’, ‘규모화한 금전적 가치를 통해서만 가시화·의미화되는 페미니즘 세력화’ 전략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선언·입금’과 같은 탈정치적 캠페인과 도덕적 제스처를 통해 만들어낸 ‘21세기적 연대’의 불안한 현 주소를 점검해볼 때가 온 것이죠.
불과 얼마 전까지 ‘광장’에 나와 그야말로 ‘두려움 없이’, 여성들의 ‘연대’와 ‘비전’을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에 기입했던 우리 ‘헬페미’들은*4, 지금 다시 서로 ‘피해자의 위치’를 경쟁하며 골방으로 숨어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요?
3. 선택과 입장, 그 이상의 것
저는 <참고문헌 없음>에 기고하는 방식으로 문단성폭력 피해자와 연대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그것에 참여하겠습니다. 제 글은 앞서 언급한 대로 작년 12월에 <더 멀리>에 기고한 글인데, <미지의 세계> 사태와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운동을 목도하며 생각했던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의 운동전략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제 그 글이 <참고문헌 없음>에 실린다면, 그것은 지금 이 ‘<참고문헌 없음> 사태’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힐 겁니다. 저는 지금 이 사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담은 그 글이 <참고문헌 없음>이라는 프로젝트의 현 주소를 반영하는 하나의 ‘맥락’이자 ‘흔적’으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텀블벅을 통한 펀딩에 참여하셔도 좋고, 펀딩운동의 전략적 유효성이 의심스러운 분들은 또 다른 방식을 택하셔도 좋습니다. <참고문헌 없음>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이야말로 진정으로 ‘페미니즘적 윤리와 정의’에 부합한다고 믿으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 그 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선택’과 ‘입장’을 표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선택’과 ‘입장’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각각의 입장에 대한 나름의 합리적인 판단근거가 마련되어 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나누면 됩니다. 다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의 판단’이나 ‘무지에 기반한 무례’ 혹은 ‘실책’까지를 ‘가해’로 의미화하려는 ‘유사-사법적 레토릭’에 대한 유혹을 경계하면서, 이 대화를 우리 세대의 ‘페미니즘 지식과 전략’을 업데이팅하는 계기로 삼아봅시다.
* 끝으로, 현재 <참고문헌 없음> 프로젝트의 와해를 가장 신나게 관전하고 계신 성폭력 가해(혐의)남성들에게 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네요. 이때를 틈타 <참고문헌 없음>의 취지를 조롱·비아냥의 대상으로 삼거나, 이 사태에 대해 깊이 숙고하며 나름의 이유로 <참고문헌 없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필자 및 후원자들에게 트윗 멘션을 보내 <참고문헌 없음> 팀과의 갈등을 격화시키는 등의 비열한 짓을 당장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당신의 그런 짓조차도 그것이 ‘2차가해’라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개념의 ��정확한 적용대상이 된다면 그때 역시 비판적으로 개입할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사하는 페미니즘 전략에 대한 성찰과 갱신을 위해서요. 하지만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그 행동들은 ‘2차가해’라는 모호한 개념에 포섭되지 않을 수는 있을지언정, ‘온라인상에서 약자를 겨냥해 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사이버불링)’에는 명백히 해당되며, 당신이 문단성폭력 가해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당신이 가해 이후 일말의 ‘개전의 정’도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는 충분히 쓰일 겁니다.
여차하여 그 행위들이 간신히 사법적 조치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더라도,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인생은 ‘사법적 삶’으로 다 환원되지는 않지요. 어쩌면 당신은 이제 그냥 ‘개차반’으로 살기로 체념하듯 결심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혹시 미래에 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는 ‘사회적 시민권’에는 아무 관심도 미련도 없습니까? 물론 정말 ‘미련’이 없는 사람은 온라인상에서 그렇게 열렬하고도 교묘하게 약자 괴롭히기와 여론 선동에 몰두하지는 않겠지요.
요컨대, 악인이면 악인답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신중하게 플랜을 짜보세요. 당신의 ‘폭력’과 싸우는 것도 지루한데, 당신의 ‘멍청함’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건 너무 피곤하니까요.
** 텀블벅 홈페이지 대신, 현재 한국 성폭력 담론과 의제화에 대해 가장 진전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책 중 한 권을 링크합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2468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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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항 이런 릴레이 잘 안받는데... 왠지 이번엔 하고싶네요 :-) 릴레이 다음 타자는 올해 제 생일에 이쁘고 촘촘하게 생일 카드를 써준 @o_owisdom 와 흔들리는 2호선에서도 정갈한 글씨를 보여주는 @in_april_ 에게 넘기겠습니다🙋 _ #손글씨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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