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필름
Explore tagged Tumblr posts
Photo

새벽에 잠깐, 깊은 잠을 잔 날이었다.
호라이즌 하나 달랑 들고 뚝섬에 내렸다.
흐릿한 하늘 아래 낯선 한강이 눈을 뜨고 있었다.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이 강을 향해 앉아 있었다. 독하게 추운 날만 아니면 이렇게 온종일 해바라기를 하겠지. 빛나는 강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무심했다. 날마다 보는 하늘, 날마다 보는 사람들에게 새삼 경이로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삶은 무료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견뎌내는 힘을 이들은 어디서 찾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것은 나의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호라이즌에 첫롤을 장전했다. 러시아에서 먼먼길을 달려와 한강의 아침빛을 만난 장난감 같은 이 카메라가 신기했다. 빼꼼 열린 렌즈의 창 안에 조그만 눈이 반짝거렸다. 셔터를 누르니 후닥닥 한강을 스캔해버린다. 1/250초... 카메라를 받쳐든 손바닥 위로 여릿한 스키드 마크라도 남기는 듯, 이동하는 렌즈의 느낌.
해는 높아지고, 머리 꼭대기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몽롱한 눈꺼풀이 힘에 겨웠다. 항복하고 돌아섰다. 여름 아침은 참 짧았다. 그래도, 호라이즌이 첫 롤을 토해낸 날이었다...
5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