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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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wayfromme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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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야지 원래대로! 하던대로! 어떤 일 앞에서도 덤덤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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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nproject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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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의심
꿈을 꾸었다.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함께 내게 지금이 무엇인지 되묻는 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과거를 온전히 놓았다고도 못하였고 현재에 충실한 것이라고도 못했다.
과거는 날 붙잡고 캐물었다. 어째서 너는 끝맺지 못하였느냐고,
나는 답하지 못했다.
현재도 날 붙잡고 반문했다. 그럼 너에게 중요한것은 어느쪽이냐고,
나는 고르지 못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의뭉스러운 생각이 일었다.
나는 어디��� 누군가에게 속해있나, 나는 누구를 종속하고 있나, 나라는 존재는 나로써 충분한가.
의문 뿐인 꿈이었다.
-Ram
*의심
1. 지난여름 한창 잎사귀가 가득하고 몇 개의 꽃대가 창문 앞에서 하늘하늘 흔들렸었는데 겨울이 되자 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많던 잎사귀들도 모두 갈색으로 변해 시들어버렸다. 이제 이 스파티필름이 죽어버린 걸까, 이 화분의 생명이 정말 끝난 걸까,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줄 모르던 찰나에 갑자기 집에 놀러 온 엄마가 멋지게 다크호스처럼 가위를 들고 와 시든 잎의 줄기들을 몽땅 잘라내버렸다. 푸르던 스파티필름은 어느새 줄기의 아랫부분만 삐죽삐죽 남아 볼품이 없어져 버렸다.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괜찮다며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원래대로 물을 주면 금세 큰다고 하고 쿨하게 돌아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따뜻해지니 어느 날 갑자기 그 삐쭉이 같던 스파티필름이 초록색 줄기들을 마구 뿜어냈다. 정말 말 그대로 줄기들을 뿜어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줄기들의 키가 커지고, 끝에 돌돌 말이(그냥 내 표현이다)의 형태를 띠더니 그게 펴지면서 잎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거실로 뛰어나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보는 게 즐거웠던 순간들이 반복되자 작년 여름처럼 어느새 다시 잎이 무성해지고 기특하게 꽃대까지 생겨 꽃 한 송이를 만들어냈다. 역시 엄마의 행동은 의심할 것 하나 없다.
2. 삶에서 무엇이 행복이고 만족감인지 명확하게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먹구름 속에만 갇히게 될 것만 같다. 언제 해가 뜰까 고민만 하고 걱정만 하는 나날들만 가득하다면 현재에 살고 있는 '나'의 행복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리거나 잃어버려 결국 영영 찾지 못하는 행복들도 많을 것 같다.
-Hee
*의심
1. 샤모니라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일, 피켈, 크램폰 따위를 가방에 매단 채 각자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걸어 올라가기도 힘들었던 고개를 자전거를 탄 채 올라온 사람들도 많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서 나를 지나쳐간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나처럼 비박을 하며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만났다. 그런 광경은 과연 내가 성지에 오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감동은 걸으면서부터 금세 무너지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오랜 시간 이 취미를 즐기면서도 몇 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간에 모두 경험했다. 텐트 심실링이 다 떨어진 걸 모른 채 챙겨왔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침낭을 포함한 짐들이 죄다 젖어버렸고, 며칠을 연이어 쏟아지는 폭우에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길을 속옷까지 다 젖은 채로 종일 걷다가 저체온증에 걸렸고, 영하로 떨어지는 예상치 못한 기온 탓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설쳤고, 이런 상황들에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 동반자의 저열한 인성에 질려버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이 길에 어떠한 의미도 없을 거라 단정 짓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대단치 않았던 힘겨움인데도 걷는 내내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스스로를 자꾸만 돌아보게 됐었다. 삶이 산에 아주 바짝 닿아있는 듯 거창했던 말과 달리 산을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두지는 않았던 걸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목을 옥죄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던 걸까. 이 길을 끝까지 다 걸을 수는 있을까. 의심과 의심이 걷는내내 지독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비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비온 뒤 땅 굳는다고, 중간중간 맑게 갠 날씨와 함께 드러나는 굉장한 산군의 아름다움을 간헐적으로 맞이하며 지루할 틈 없이 감격했고, 걸으며 내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감격을 나누면서 내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지영과 힘을 합치고 배려해가며 환경을 극복해 내는 방법을 깨달았고, 끝끝내 나만의 길을 꾸준히 걷기만하면 된다는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거나 얻기 위해 떠나온 길은 아니었으나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종교인이 성지를 순례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2. 사실 그곳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터전일 뿐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상업적인 요소들이 군데군데 깊이 자리 잡아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고, 광활한 자연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뒤부터는 그리 대단치도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체력과 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내 실력과 오만한 마음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다 지나서야 알게 됐다. 어쩌면 다시 한번 그곳에 ��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Ho
*의심
의심을 언제 하나 생각해보니 주로 어떤 정보를 볼때 이게 사실인가?를 생각 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섞이게 되면 진실하기 힘드니까.
또, 내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노력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열심히 했는데 내가 계획한 대로 안되거나 변수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다. 그래도 분명한건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경험상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 자주 생각나는 말이 위로가 된다. 우리는 과거의 숨을 지금 다시 쉴수없고, 미래의 숨을 당겨 쉴수 없다. 지금 순간 순간의 이 숨만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현재에 집중하고 정신을 여기에 두자.
의심은 날숨에, 행운은 들숨에.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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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yongchul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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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요예배를 위해 교회에 가다가 신호대기중 사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무심코 보는데 ..
오잉..?
벼락대신 ... 작두.. ?
순간 뇌리를.스치는 생각..
아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이젠 벼락대신 작두로 응징하시려나..?
작두로 혼내시려면 좀 무겁지 않나..?
손잡이는 있지만 .. 덜렁거릴건데..?
그냥 원래대로 벼락으로 뿌지지지지직 하시는게 .. 나을거 같은데 ..
전자�� 때문에 핸폰에 지장이 있어서..?
그냥 신호대기중에 생각해봤어요 ㅋㅋㅋ
벼락대신 ..작두라 ..
포청천이 잘하던 말이 있는데 ..
" 개에~~ 작두를~ 대령하르아~~~~ "
개작두 ..
#광명전통시장 #광명시장 #전통시장 #추천맛집 #광명왕족발 #광명할머니왕족발 은 #광명소셜상점 #광명8경 #광명동굴 #광명시 #LocalGuides 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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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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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관한 짧은 고찰"
몸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영양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순 없어, 여러가지 식이요법을 두루두루 주워 듣고 일부는 직접 내 몸에 적용해봤다. 그 결과 현재 내가 실천하고 있는 방법은 양에 있어선 칼로리, 질에 있어선 GI지수와 존(Zone) 다이어트 법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할 수 있다.
존 다이어트는 전적으로 신뢰한다기 보다 각자 몸에 맞는 '탄수화물 : 단백질 : 지방' 비율을 알아서, 가급적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게 상당히 중요하단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된 거.
칼로리와 관련해선 내가 40대 초반까지 소비한 열량을 100이라고 할 때, 지금은 70~80선으로 줄여야 체중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도 두 가지 원인 때문 아닐까 싶은데 우선 나이를 변명삼아 매일 소화하던 운동량을 줄이자 당연히 근육 감소가 일어났고, 설상가상 기초대사량마저 줄었을 게 뻔하지 않나.
삼시세끼를 기준으로 하면 평소엔 2.5끼를 먹고, 저녁 약속이 있는 경우에만 부득불 과식을 한다. 과식한 다음 날은 어김 없이 1kg 정도 체중 증가가 일어나고, 3~4일 후 원래대로 돌아온다.
'점심'은 한자로 '點心'이라 쓴다. "마음에 점 찍는다"는 의미. 옛날의 점심은 소식이 기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글 검색했더니 농경 사회에선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은 새참처럼 먹었던 모양이다.
저녁을 많이 먹는 전통도 있다. 대표적으로 라마단이 그렇다. 다석 류영모도 식사를 저녁에 한 끼만 먹었기 때문에 호를 '多夕'이라 했다 하고, 제자인 함석헌 역시 스승을 따라 그리 했다고.
내 경우는 아침은 가볍게, 점심은 충분히, 저녁은 아침보다 더 적게 먹는 생활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점심을 마음에 점 찍듯 먹는 거는 좀 아닌 거 같은 느낌이…
개인적 취미이면서 동시에 몸공부 일환으로 땅고 추기 위해 출입하는 밀롱가는 보통 저녁 8시 이후 시작해 12시 넘겨 끝나기 일쑤다. 나는 전철 막차 끊기면 곤란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끼린 뒷풀이를 자주 하는 모양이던데, 인맥 확보라는 장점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체중 관리에선 치명적일만큼 좋지 않을 거 같다.
사교성 없고 '덕후의 언어'를 구사하는 나 같은 사람은 관심 가는 정보 교환이 계속 일어나지 않는 대화엔 적응을 잘 못하기 때문에 뒷풀이에 못 끼는 게 딱히 아쉽지도 않고.
첨부한 사진은 본문과 별 관계는 없고, 최근 일하는 사무실 직원과 함께 점심 먹을 때 찍은 거. 낙지찜, 해물탕 시식 후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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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happy · 27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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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가들은 소외를 논할 때 심리현상으로서의 소외와 사회현상으로서의 소외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경향이 있다. 그 둘은 물론 연관은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동떨어진 현상이다. 심리적 소외는 직장, 결혼생활, 생활 환경 등에 대한 태도, 감정, 느낌에 관한 것이며 불만, 분개, 비애, 우울 등의 증상이 전형적이다. 
이에 반해 사회적 소외는 우리가 불행하냐 억울하냐 하는 ���제보다는 우리가 발붙인 사회, 정치, 경제의 구조 및 제도와 관련된다. 사회적 소외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들이 처한 환경이 요구하는 규범이 서로 불일치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도심의 높은 범죄율은 교회 주차장에서 스케이트 보드를 타려는 청소년들을 경찰이 쫓아버리는 데서 기인할 수 있다. 그러면 청소년들은 도심환경이 자신들을 소외시킨다고 여길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한 대기업의 높은 결근율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에 적대적인 천편일률적인 칸막이 사무실에 사원들을 구겨 넣는 기업 문화의 결과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소외든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소외감을 느꼈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문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심리적, 사회적 소외는 둘 다 일정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전자는 개인의 상황을 묘사하고, 후자는 개인, 집단, 제도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다시 노동의 세계를 설명해보자. 파티션으로 가득한 현대적 사무실 (캐나다 소설가 더글러스 코플런드는 이를 가리켜 “송아지를 살찌우는 축사”라고 불렀다)을 채운 고만고만한 일벌 같은 모습의 사원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을 간신히 삭이며 일하는 모습은 현대 소외현상의 은유로 되풀이해 사용된다. 관료 조직의 익명성과 노동의 기계적 속성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와 전면 배치되는 양 보인다. 그런 환경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약물에 의존하든지, 제정신이 아니든지, 아니면 멍청한 게 분명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가? 노동이 만족감과 성취감을 준다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일은 일이라 부르는 것이고, 고되니까 고용주가 당신에게 일한 대가를 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사실에서 당위를 끌어내는 일을 금지하는 흄의 단두대 논리다. 하지만 이것을 소외 현상에 적용하면 이상해진다. 어떤 제도의 소외성을 언급할 때 그에 대한 도덕적 반감이 함께 표현되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누군가 소외되고 있다고 말할 때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있다. 그래서 소외 현상에 대한 고찰이 흄의 단두대를 우회해 사실과 당위의 간격을 메울 방법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질병에 대해 생각해보면 된다. 의사의 진단은 질병에 대한 단순한 상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암에 걸렸다면 그것은 어느 신체 조직에 제어되지 않는 세포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말라리아에 걸렸다면 어떤 원생 기생충이 적혈구 세포 내에서 증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어한다. 질병은 단순히 신체의 상태만 묘사하지 않는다. 건강하냐 아프냐의 차이는 머리가 갈색이냐 금발이냐 혹은 지금 서 있냐 누워 있냐의 차이와는 별개다. 우리는 때로는 서 있고 싶고, 때로는 눕고 싶지만 그 선호는 그 시점에서 우리의 욕구와 목적이 무엇이냐에 의존한다. 서거나 눕는 것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다. 반면에 아프다는 것은 (질병은 어원상 dis-ease, 즉 편안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자체로 뭔가가 잘못됐다, 몸이 지금 정상이나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며 원래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소외 이론은 소외를 질병처럼 보고 사실과 당위의 간극을 메우려고 시도한다. 소외 이론은 상태를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상태를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그 속에는 암묵적인 당위적 판단과 회복되어야 할 자연스럽고 소외 없는 상태에 대한 선호가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소외 이론은 신체의 건강에 비유되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의학에서 무엇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건강인지를 설명하듯, 소외 이론은 무엇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특정 지역과 문화, 특정 시점의 개인의 욕구에 따라 바뀌지 않는 인간 속성 및 자기 성취 이론이 필요하다. 인류 번성에 관한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근대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정말로 일종의 질병이라면, 불화에 종지부를 찍고 잃어버린 일치와 조화를 되찾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소외 이론이 쓸모 있으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진정성 이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낭만주의가 남긴 짐이다. 낭만주의는 근대 세계가 야기한 소외를 초월하고 완화하고 인생에서 옳고 가치 있는 것들을 복구하고자 했다. 그 핵심 인물이 철학자 장 자크 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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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ason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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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판금 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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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chstory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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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호르몬 불균형, 이렇게 하면 잡힙니다! 자연스럽게 균형 맞추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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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ng00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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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인류의 바람이자 원하는대로 국모원화 천사코인말고는 그 어떤 화폐도 이세상에 통용안될테니까 사탄코인 킬러화 니 마음을 다독여주며 위안이 되지못한채 빻원영원이 되어버린 영원화같은 사탄돈은 이제 휴지조각 조각 쪼개지고나노지ㄹ끼야아마데우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니들이 전쟁까지일으키고 ㅗㄴ갖 아즈라엘 피국영국짓으로 빼앗은 모든것들은 원래대로 인류에게 귀속시켜주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뭐 수백년 사탄짓으로 한 모든걸 일망타진 인구빨로 맞불 맞짱뜨면 니들은 뭐 껌씹지 더 껌EASY ㅉㅉㅉ이건 뭐 껌씹는거보다 더 쉽네쉬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트럼퍽 이사탄앞잡이넘 딴따라출신아니랄까라 조작극 딴따라개통령짓거리하느라 니가 참 고생고생 헛고생이 참많다 그래본들 뭐 인류빨로 니가족손주딸마누라 한마리도안남기고 731행일테니까 염산은 서비스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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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playeehee-life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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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시작부터 꼬인 사이인 걸 어쩌나,.,
디스코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다시 원래대로 동거시작....이긴 한데, 돌아왔을 때 솔직히 서로 실감 안 나서 크루즈는 바닥에, 디스코드는 소파에 앉아 쳐다보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그날은 서로 눈앞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했다고 함...아마 요때가 서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눈에 생기(라 부르고 안광)를 보였을 때일거임 (다시 죽은눈으로 컴백-)
이후에 크루즈는 사고를 치긴 쳤으나, 수습 가능한(가끔은 수습 불가능한) 사고들을 쳤고, 디스코드는 제 나름 기준대로 너무 막 나간다 싶으면 말리고, 아니면 같이 하는 그런 형식으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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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drblee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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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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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yongchul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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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날 말이쥬 봉사를 마치고 집에 오려고 차에 타려는데 앞범퍼에 왠 대형 기스가 쭈우우우욱 ..
어떤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시고르자브종 스러운 피플이 내 차를 " 꽈직 " 하고 갔더라구요
그것도 뺀지 몇개월 않되고 아직 4천키로도 안탄 브랜뉴카 인디 말이쥬
가만보니 시커먼 자국에 범퍼도 까져서 속살이 드러났더라구요 ( 오메오메 환장하것쏘 )
일단 마님을 태우고 오면서 속은 상했지만 ( 차에 기스나면 내 마음에도 기스난다 ㅠ ㅠ ) 마님에게 이야기는 안했는뒈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열받아 씩씩거리면 그것이 사단의 권세에 넘어가는 것이라 일단 마음을 다스려 깊은 빡침을 내려놓고 ..
마침 차가 지저분해 세차를 했어요 ..
그리고 오늘아침 나오며 그것이 은혜를 까먹기 위한 사단의 위력이라면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 했으니 혹시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차에 내려가 살펴보니..
오잉..? 이거 어디간겨 ..? 분명히 주일엔 까져서 상처가 깊었는데 ..?
차가 원래대로 말짱말짱 깔끔깔끔 ..잇힝 ..^ ^
반갑다 마이카 다시 이뻐졌구낭 ㅎㅎㅎ
내가 봐도 신기한 주님의 은혜 오구오구 감사합니당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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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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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유튜브에서 연습용 플룻과 전공자용 플룻 소리 비교하는 영상을 보다 문득 며칠 전 내가 가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클라리넷 파트에 있는 분이 지휘자(=클라리넷 전공)께 "비싼 악기는 진짜 소리가 좋은지?"라고 묻자 "좋아진 것처럼 착각하다 약 1주일 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답변을 하심.
그래서 내가 "악기 잠재력을 끌어낼 실력을 갖춰야 비로소 의미 있단 말인지?"라고 재차 질문하니 맞다고 하심. 바꿔 말해 제아무리 비싸고 좋은 명기일지라도 연주자가 악기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란 거.
한국 사람 특징 중 하나가 뭐든 취미를 시작했다 하면 장비병에 걸린단 거 아닐까 싶은데 클라리넷도 500~600 만원 하는 전문가용 악기가 주인 잘못 만나 썩고 있은 경우가 꽤 많을 거 같다. (두어 번 목격도 했고)
내가 갖고 있는 클라리넷은 백만원 전후 중급으로 전문 연주자는 쳐다도 안 보는 대량 생산품이지만, 지휘자가 테스트하느라 잠깐 부는데 깜짝 놀랄 만큼 딴세상 소리 나는 거 보고 이거도 내겐 과분하다 느낌. (동영상에서도 전문 연주자가 입문용 플룻 불 때 똑같은 현상이…)
그래서 명품 클라리넷 구매욕은 접고, 용돈 모아 다른 악기(소프라노 색소폰, 코넷 등)를 사는 거로.
땅고판에서도 본인 실력 키워야 하는 이유는 리드를 잘해야 하는 남자로서 여성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밑천이기 때문 아닐지?
반대로 평소보다 유독 합이 잘 맞는다 느낄 때 본인 레벨이 올라간 걸 수도 있지만, 상대가 고수라서 잘 맞춰준 덕분일 수 있단 거 늘 염두에 둬야 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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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ulteam ·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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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체체 체인지~
🌟 새 기능
웹에서 팔로우한 태그 관리할 때, 마지막 본 태그 순서가 아닌 알파벳순으로 보여요.
검색 창 디자인을 개선해서, 창을 열면 다른 추천과 함께 커뮤니티 추천도 보여요.
제대로 구현 못 했던 ‘인기’ 탭, 기대만큼은 사용 안 되던 ‘발견’ 탭을 커뮤니티에서 일단 삭제했어요.
🛠️ 수정
삭제되거나 변경된 블로그 이름을 다른 회원이 즉시 사용할 수 없던 문제를 해결했어요.
‘불꽃 광고만 보기’로 설정한 프리미엄 구독자에게 불꽃 Pro 광고도 잠시 보였어요. 죄송해요. 지금은 고쳤답니다.
꼬마 유령들이 Boop 배지를 훔쳤는데, 다행히 찾아낸 후 원래대로 가져다 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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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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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지원팀에 (영어로) 문의하면 최대한 빨리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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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oss11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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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원래 이런 사람인건지 누가 이렇게 바뀌게 했는지 누굴 탓하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그건 또 내 마음이 좋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과정에는 짧은 시간 무수한 감정들이 반복된다 갑자기 요동치는 감정들은 나도 처음이라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회피형인 나는 나만 참고 그 불편한 상황들을 피하면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까 싶어서 도망치는 겁쟁이다 그냥 다시 마음이 평온하길 기다릴 뿐이다 금방 또 익숙해지고 금방 또 평온해지겠지 내일도 눈을 감고 눈을 뜨고 또 그렇게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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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ori-kr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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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에 강력한 요구: "민희진 전 대표 복귀시켜달라"
뉴진스,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에 강력한 요구: “민희진 전 대표 복귀시켜달라” #뉴진스 #민희진복귀 #하이브논란 #어도어 #방시혁 걸그룹 뉴진스가 9월 1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에게 민희진 전 대표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뉴진스 멤버들은 “저희가 원하는 것은 민희진 대표가 경영과 프로듀싱을 맡고 있던 원래의 어도어”라고 밝혔으며,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지난 4월부터 이어져 온 민 전 대표와 하이브의 갈등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입니다. 1. 뉴진스의 요구 배경 이번 라이브 방송에서 멤버 민지는 “이 요청은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며, 그들이 민 전 대표의 복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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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ang00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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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에미 조각났다ㅣㄴ마리야 니 얼굴 족가빚으라니 니에미나 보지신이 조각조각내버리듯 이젠 조작까지 났단마리야 애초에 들어맞지않는 절대 퍼즐완성하ㄹ수없는 조작된 퍼즐판을 사탄이 만들었단말이야 넌 이 조작된 퍼즐판에 뭔짓을해도 끼워맞춰질수없음에 너를 투영시켰단마리야 애초에 조작난 이곳에 진리든 이치든 가치든 진실마저 다 조각조각쪼개지고나노져 뿔뿔희 흩어민 민들레홀씨와도 같은 조작시켯을���란건 개도 유추가능한건데 넌 개시추보다 더못한 개시츄에이션수준이란말이야 애초부터 절대 완성할수없는 조작퍼즐판에 니가 뭔 용을써바라 뭐가되냐 아물론 나야 실전자체를 못하는개수부처알라힌년관 달라도 넘라 달라 조작ㄴ년 머리끄댕이부터부여잡아 조잦난거 지가 원래대로 만들 능력 실력이잇지만 넌 이론안도모르는게 뭔 실력이어딧니 그똥머리로 아기고듀야듀야 넌 애초에 틀려먹은 절대 들어맞을수없는 조작퍼즐판에 뙇 그,수준그대러ㅗ 수메르와 ㄷ개도하면안될짓을 신이한느데 그걸진리라고한 그 액점과 불리함만 쏙빼고 니유리한것만 얘기하려들잖아 아니 사탄하는짓 그리 사악한거 뻔할 훤잔데 ���롣 사탄이 개수보지같은ㅇ래나 부처 실전자체도못하는얼뜨기같은애 이용해 만든 종교가 조작되고 감춰지고 암춰졋을거란 가정하나도 넌 안하려들어 제일불리하고 약점부터 니가 증명해야 정상적인 뇌ㄹ아냐 넌 뙇 그부분만 뺀옿고 얘기하려해 너도 은연중에 알고잇거든 그건 쥰내부릴하단걸 안그럼 니 굳게믿은 신념에 균열이 와 니모든 신념은 와르르 더 와장창 무너질거란걸 니ㅣ같은 여시가 알앗을까 진짜 똥머리라 것도몰랏을까 알아도 여시요 몰라도 무지라 이십련아 이런것도 하나하나알려주리 사탄이 조각도모자라 조작까지 내엇는데 성경이 진실이자 퍼즐완성될수잇단느 근거는 니에미보지에서하는거냐 넌 그게 구라즌 조작이든 염두해두질않아 넌 그 위선이든 구라든 그것마저 ㅇ벗으민 니 세계관인 이검을현으로 물든이곳에선 기댈곳하낭벗어 살아남을수없을테니까 넌 이무지와 나약 위선사악함과 공존을 여시같이 선택해 모르쇠햇을테지 개찢을 여시련아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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