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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nore the sketchy link - coyote vs acme bts reel and LOOK AT WHAT THEY TOOK FROM US!!! THE DUST CLOUD THE PRACTICAL SETS THE HADN PAINTED “THAT’S ALL FOLKS” SIGN!!!! Zaslav needs to be killed with hammers and I’m not joking

I think that Zaslav needs to be killed with hammers and I’m not jo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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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29 extmcommunity: #스윙키즈 관람한 익스트림무비 회원들의 궁금증에 대해 도경수, 박혜수, 오정세 배우가 직접 답해주었습니다. https://buff.ly/2CEPq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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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190622 - 익스트림무비 website update with EXO KAI & SUHO
➡️ https://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47954570
~Er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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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표지.
출처/ 익스트림무비

그림체 와우.
출처/ 인사이트

1권 표지.
출처/ 캐시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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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이 악플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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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이 악플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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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와 제제, 대중은 스스로 욕망을 거세했다 – 익스트림무비
우리나라 사람은 참 착한 사람이다.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고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중교통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우리…
extmovie.maxmovie.com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한민국의 혁명과 태극기까지 동원될 논쟁인가? 링크된 글을 먼저 읽으시길!!
해당 커뮤니티에서 정면으로 반박한 글 복붙!!
우리나라 사람은 착하지 않다. 전국민이 경악과 비탄에 빠져야 했던 조두순 사건은 고작해야 대한민국 아동의 위태로운 입지를 드러내는 단편이다. 90년대를 휩쓸었던 혼성 그룹의 한 멤버에게 “나이 어린” 여자는 “더 군침 도는” 대상일 뿐이다. 아슬아슬한 노출 수위의 핫팬츠와 탱크탑을 입은 미성년자 아이돌은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춤사위로 간신히 연명한다. 일반인들의 장기 자랑을 늘어놓는 쇼에서는 미취학 아동들이 섹시 댄스를 자랑한다. 하루 최고의 유머를 가리는 사이트에서는 보전깨, 삼일한 같은 말들이 패시브 언어다. 현직 국회의원이던 누군가는 아나운서를 성적 거래가 필요한 직업이라 말했고 검사, 행정부 고위 인사들은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를 “딸 같이 여겨” 주무른다.
우리나라 사람은 착하지 않다. 부조리한 정부를 두고 미학이나 가르치는 교수 나부랭이가 트위터 따위로 씹어대면, 거기에 대고 옳소를 외치며 저마다 풍자와 비판을 더한다. 꽁트는 꽁트일 뿐이라는 휘장 뒤에 숨어있던 개보녀 발언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혜를 상징하는 그리스 신의 아이디를 빌린 누군가가 잡혀가고 간첩이 위조되는 시국에 움츠릴 지언정 역사의 왜곡과 각종 비리에는 비꼬고 반항한다. 판사님, 이 글은 제가 쓴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착하지 않다. 공자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리 양보하라는 노인네의 꼬장에는 굴복하지 않는다.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 청소년들의 성적 충동을 부추긴다는 어느 방송심의위원의 말을 비웃는다. 그 못된 심보는 픽업 아티스트라는 직업군에 조소를 날리고 어느 잡지가 뽐���는 나쁜 남자의 포스에 딴지를 건다.
높으신 분들은 늘 착하라고 외치지만 정작 이 말을 따르는 사람들은 ��고 어린 것들보다 어르신 분들의 비율이 더 높다. 먹고사니즘과 자본주의 욕망이 윤리를 잡아먹는 게 바로 대한민국 사회다. 이 속에서 착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든 적지 않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착하지도 못한다. 착할 수 없게 만드는 대한민국에 지치고 질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하라 – 고 강요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를 부르짖는다.그 과정에서 익숙하고 무감각하게 넘어가던 많은 것들은 가치충돌을 일으키며 변화를 촉구한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한번도 켜지지 않았던 전구는 필라멘트에 불을 밝힌다.
이 변화는 대중문화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오히려 구시대적이고 야만적인 어둠 속, 뾰족하게 솟아있는 차별적 문화가 바로잡히는 것은 대중문화 속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 힙합이니까 여자가 bitch로 불리는 건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다. 남자를 보조하는 “섹시 여전사” 대신 숨쉬고, 울고, 남자의 어깨를 빌려 총을 쏘는 “인간 여자”가 이야기를 이끄는 액션 영화가 나온다. 노조의 투쟁을 그리는 만화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재벌2세는 구원자가 아니라 물리쳐야 할 폭군이다. 피규어를 부술 뻔하고서도 돈타령하는 개그맨은 댓글창에서 두들겨 맞는다.
이 대중 말고….
대중의 집단 지성은 신뢰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의 지표를 향해 발자국을 찍어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소비자로서 대중은 분개하고 비판할 줄 안다. 그래서 어떤 우유회사는 아직도 불매 운동에 시달린다. 써갈겨 내린 사과문에서 없는 진실을 읽어내줄만큼 대중은 더 이상 멍청하지 않다. 대중이라함은 통시대적인 윤리관념의 집합이다. 그것은 획일적이고 다수의 폭력에 앞장서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편적이며 뒤쳐진 무언가를 이끌어올리기도 한다. 대중과 가치관은 늘 협상관계에 놓여있고 어느 한쪽이 압도적으로 다른 한쪽을 짓누르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매 경우 대중은 서태지의 시대유감과 동의어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아이유의 신보에 수록된 “제제”라는 곡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 곡을 두고 아이유 개인의 윤리 관념을 해부하고 싶진 않다. 그런 시도는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시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그런 함정에 빠져서 삿대질에 중독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은연중에 정답을 강요하는 획일주의의 채찍질도 숨겨져 있다. 그런데 제제라는 곡에 반감을 표하는 모든 사람이 모두 이런 해석에 쏠려있는가? 그 비판의 방향이 아이유가 아닌 “제제”라는 창작물로 향한다면, 그리고 그 비판에 합리적 해석이 곁들여져 있다면 이것은 건전한 비판이며 문화의 다양성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상호반응이다. 대중들 안에서도 싸구려 윤리를 등에 업은 비난은 구분하려고 한다. 비판의 촉은 이를 가려내고 구체적으로 그 대상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자정작용과 건전한 비판을 무시한 채 “대중”이라는 항목으로 모든 비판을 범주화하고 그것을 단순화하는 것은 아이유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쉴드치는 입장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싫어욥
모든 창작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창작이 대중들에게 언제나 다른 작품과 동일하게, 상대주의라는 명목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대중들에게는 감상의 자유가 있고 이를 표출할 수 있는 발언의 자유 또한 있다. 지금 대중의 반응은 아이유의 제제를 불태우자는 것도 아니고 저 가사를 고치자는 것도 아니고 제제를 대신해 아이유에게 형사 고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은 화폐 권력을 가진 주체적 지성으로서 “싫어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유의 표현의 자유는 침해당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유의 창작물 뒤에는 소비자의 반응이 있을 뿐이다. 대중들이 창작물을 싫어할 수 있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며 그것이 모두 합리적이거나 철학적 완결성을 가진 것도 아니다. 에프엑스의 NU ABO는 가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탈탈 털렸고 에이핑크는 각설이 춤 한번 잘못췄다가 그룹 존폐의 위기에 쳐했었다. 뭐가 됐든 대중은 소비자로서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제를 싫어하고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충분히 이치에 맞다. 5살짜리 “소아”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노래를 대중이 관대하게 받아들여야 할 당위가 있을까? “소아성애”와 많은 부분이 겹쳐지는 노래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 무슨 “거세”씩이나 된단 말인가. 꼬맹이한테 흥분하는 것이 무슨 당연한 생리적 반응도 아닐텐데.
도발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위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나는 지금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도발이든 창작의 자유는 존중받을지라도 대중의 호의가 반드시 뒤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사람이 교집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준점은 당연히 그 시대의 통념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제 아무리 예술적이고 신선할 지언정 이 급진적인 변화를 냉큼 소화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소수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지드래곤이 닭벼슬 머리를 하고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이돌이 무슨 미친 컨셉이냐며 비웃었다. 류승범이 롤업 팬츠를 입고 시상식장에 나타났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팔바지와 상반되는 그 스타일에 난색을 표했다. 그 때로부터 미래에 있는 우리는 뒤늦게서야 그 튀어보이는 소수�� 문화를 유행으로 편입시켰다는 걸 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많은 수의 사람은 아이유가 쓴 제제의 가사를 마음 편하게 소비할 수 없을 뿐이다. 대중을 기준으로 하는 대중 가요에서 아이유는 조금 멀리 (조금 덜)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예술가의 진보와 이를 소비하는 대중이 만나는 지점을 수로 이야기했다면, 다음으로는 예술과 현실 그 자체의 결합과 분리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예술은 현실과 늘 분리되지 않는다. 껍질을 깨고 나온 예술의 결과물이 놀랍도록 비현실적이고 새로울지 몰라도 결국 그것이 부화되기까지는 현실의 자양분을 얻는다. 현실을 뒤틀고, 현실을 덜어내고, 현실을 부정하고, 그 정도와 방식이 어떻든 간에 예술은 결국 현실을 기준으로 맺히고 태어나는 것이다. 예술은 현실로부터 도피처를 제시하는 동시에 현실을 다시 비추고 현실을 명확히 상기시키며 그 안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은 아이유의 제제를 픽션의 영역으로 간주하려 해도 결국 논픽션의 세계와 겹쳐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현실이 누군가의 상처와 아픔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면 감상 도중 현실로 귀환하는 발걸음을 서두를 수 밖에 없다.
발튀스
이 자연스러운 반응은 우리가 초월하거나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버려낼 수 있는 미개한 퇴화작용도 아니다. 그렇기에 “소설과 영화, 만화, 음악을 포함한 창작의 영역은 도덕 위에 있어야 한다” 라는 문장은 보다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그 가치관은 상위 하위로 계층화할 것이 아니다. “소설과 영화, 만화, 음악을 포함한 창작의 영역은 도덕과 무관할 수 있다” 라고 수평적 관계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어느 가치관이 다른 가치관에 종속되고 배제되어도 된다는 논리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전부 다 이해시키지 못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다 존중받을 때도 있고 아동의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가 보다 존중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발튀스의 그림을 예술로 이해하면서도 아동포르노를 소유만 해도 작살내는 미국의 사법 조치를 이해한다. 이것은 아마 인간이 멸종할 때까지 계속해서 논의를 거쳐야 하며 예술 작품마다, 그 작품의 주제와 내용, 형식이 다를 때마다, 창작자와 제작 여건과 소비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표현의 자유를 위에 놔두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그 누구라도 단순에 욕지거리가 튀어나올만한 예시를 바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 글은 올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표현의 자유란 이렇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중을 무지몽매하다고 욕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창작과정까지만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며 소비되는 과정에서는 딱히 변론거리가 되지 못하기에 창작자가 고민해야 하는 책임이다.
Anything goes. 과학의 영역뿐 아니라 그 어느 영역에서건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처럼 들리는 문구다. 그렇다면 해당 영역에서 이 말을 곱씹어보자. 그 무���이든 된다고 했으니 우리는 인간 복제도 신나게 하고 난자 적출 및 판매도 시장 경제의 자유에 맡기며 인체실험도 뒤따르는 비판을 쌩깐채 진행하는가? 저 말은 그 반대의 위험성을 함축하고 이를 경고하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과학이라 함은 그 무엇이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에, 이를 손에 쥐고 있는 인간은 이에 대한 성찰을 멈춰서는 안된다. 그래도 되는가? 그렇게 한다면 이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그럴 수 있음에도 포기하면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를 예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상상력이 이끌어낸 몇몇 긍정적 결과에만 도취되어 그 모든 부작용과 반작용을 장애물 취급해서는 안된다. 창작이 도덕의 위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는 “사진작가 이동식”이라는 끔찍한 결론을 도출하기도 하는 법이다.
로리를 향한 안전한 욕망
예술은 인간탐구의 목적을 가진다. 그런데 목적이 언제나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이는 바로 윗문단의 이야기와도 겹친다. 인간탐구를 위해서 아무 소재나 가져와 썰고 튀기는 것을 대중이 참아줄 이유는 없다. 추악한 진실을 알리고 가혹한 현실에서 다쳐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인 “도가니”는 아역배우들에게 너무 혹독한 연기와 사후 치료의 미진함 때문에 비판받았다. 집단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흉터를 지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인간을 담담히 들여다보는 “한공주”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강간씬 수위 때문에 지적을 받았다. 인간 탐구는 우리 모두가 떠받들어주고 무언가를 감내하며 존중해야 할 가치관이 아니다. 그것은 결국 무언가를 찾고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욕망”에 불과하다. 그 욕망은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 사랑받거나 이해받을 수는 없다. 나는 <트라이브>가 인간을 탐구하는 영화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표현 과정에서 느끼는 끔찍함을 모두가 참아주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인간탐구라는 목적은 당위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자의 욕망과 표출이라는 인과관계이지 수용자에게 어떤 의무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용자는 이해할 수도, 이해해 줄 수도, 이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탐구라는 목적은 공유되어야 할 절대적 가치관이 아니다.
이성 이전의 인간을 들여다보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그 탐구가 인류 역사에 어떤 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하다 할 지라도 소비자에게 모든 과정을 참아주라고 할 수는 없다. 도덕과 윤리가 장애물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창작자” 자신의 문제다. 소비자가 왜 그 모든 벽을 뛰어넘고 이성 이전의 인간을 들여다봐야 할까? 대중이 부탁이라도 했던 적이 있던가? 예술은 대다수가 창작자 자신의 의지와 선택 아래에서 형태를 갖추었고 “소비”라는 협상과정을 통해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수의 문제를 떠나, 예술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최종적 승인은 결국 수용자의 손에 쥐어져있다. 팔아주고, 감상해주고, 알아주고, ��껴주고, 기억해줘야 어떻게든 존재하고 남는다는 이야기다. 그 얼마나 시대의 한계에서 멀리 떨어져있건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몇몇 사람들이라도 알아차린 덕택에 존속될 수 있다. 이는 생태계 속 생존의 논리다. 살든지 죽든지, 그리고 살아남는 것들은 어떻게라도 기억 속에 자신을 각인시켜서. 그런데 왜 대중이 “살려줘야 한다”고 엉뚱한 의무를 스스로 지게 하는가?
이 분은 뭐 한국인이 아니니까
이 전체적인 논리도 동의하기 마뜩치 않은데 이 현상을 “대한민국”이란 지리적 조건으로 구분하고 “검열”이라는 행위로 정의내리는 것은 더더욱 동의할 수 없는 소리다. 먼저 대중문화와 이를 둘러싼 논란은 대한민국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마일리 사이러스의 퍼포먼스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마릴린 맨슨의 자위, 자해 퍼포먼스가 모든 미국인들에게 사랑받았던가? 스눕독은 왜 자신의 과거 랩을 반성하는가? 친엄마를 까대는 에미넴의 랩은 박수갈채만을 받았던가? 두번째로 아이유의 제제를 두고 한국의 대중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게 어떻게 “검열”씩이나 된다는 것일까. 검열의 정의에는 어떤 작품의 발표 “이전” 이라는 시간적 배경과 그 발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한”과 그 액션인 “통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대중이 아이유에게 뭘 했는가? 아이유의 제제는 이미 발표되었고, 그 후에 대중은 이를 어쨰라 저째라 하는 것 없이 “나는 싫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라며 감정을 표출할 뿐이다. 이게 어떻게 검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대중이라는 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명백한 프레임 짜기용 단어다. 세번째, 이는 비판하는 사람 스스로가 자신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방법일 뿐이다. 어떤 기준에서 어느 누가 스스로를 “탈조센스럽다”고 분류하고 나머지를 “미개한” 사람으로 치부하며 이들이 “검열”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결국 대중의 갈래 속에 있다. 여기에서 대중이라 함은 정보, 이슈거리를 생산하는 자 의 대척점에서 정보, 이슈거리를 소비하는자 라는 의미를 지닐 뿐이다. 그 안에는 빠릿빠릿하게 뭔가를 알아채는 그룹도 있고, 무관심한 그룹도 있고, 적당히 시류에 휩쓸려가는 그룹도 있다. “대중”이라는 단어를 쓸 때 자신 역시 이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는 가인을 무시하지 마라
이건 예절교육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성욕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놀랄 정도로 개방되어가고 있다. 성욕을 부끄러워 하는 대한민국이라니. 남자의 복근은 초콜릿으로, 여자의 허벅지는 꿀벅지로 대중의 눈과 입으로 달콤한 맛을 내며 핥아지는 이 사회가 성욕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건 아이유의 제제에 대한 비판을 보수성과 무리하게 연결시키려는 데서 오는 오독이다. 아직 못 따라가는 소수의 계층이 있지만 대다수의 대중은 무대 위에서 ���군가가 망사 스타킹을 입고 다리를 벌리며 허리를 흔드는 안무에 쌍수를 들고 환호한다. 욕은 먹었을지언정 여자 칼럼니스트가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남자 연예인을 평하고, 여자 개그맨이 가슴을 가지고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성생활과 성적 취향을 가지고 떠드는 토크쇼가 생겨날 정도다. 게스트가 출연하면 진행자가 묻는다. 어느쪽이세요, 낮져밤이? 낮이밤져? 이런 세상에서도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재를, 그리고 그 소재의 변형을 아이유는 시도한 것이고 실패했다. 수많은 발칙함이 재치로 소비되고 솔직함과 쿨함으로 선망받는 이 시대에서 아이유의 도발이란 매우 구렸을 뿐이다.
유명인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마녀사냥과 강도질의 프레임을 대중에게 씌우는 것이다. 이 프레임 안에서 아직도 어떤 개그맨은 대한민국의 절반에게 모욕감을 줬지만 열심히 방송생활을 이어나가고 수많은 여자를 희롱하고 다니는 노가수는 아직도 “늙을 줄 모르는 플레이보이” 기믹으로 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를 기만한다.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의 활동과 그 결과물을 파는 대중예술인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도 아니고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비즈니스의 한 축일 뿐이다. 아이유의 제제를 대중들이 싫어하면 이건 생업의 파괴라고 할 수 있는가? (아이유가 그렇게 절박했나?) 대중들이 싫어서 안 듣고 안산다는데. 대중이 아이유의 제제를 싫어하면 욕망을 거세하는 게 되는가? 여전히 다른 청순, 섹시 컨셉의 다른 아이돌들을 소비하면서 욕망을 마음껏 해소할텐데? 윤리적으로 논란이 일어나는 “소아성애”컨셉에 대한 거부가 무슨 거세씩이나 되는가.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저 “안꼴리니까”, “안젖으니까”, “피쏠리고 야릇한 거 다 식으니까” 안듣겠다는 것 뿐인데.
가자!! 제제에 대한 혁명이다!!
아이유의 제제를 싫어하는 게 이다지도 위험하고 국가전복적이며 반달리즘에 가까운 일로 받아들인다는 데 아연실색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가수를 비판하고 어떤 곡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건 이승복의 공산당 안티 선언만큼이나 대의를 거스르는 사건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 알았다. 제제를 놔둬라…..대한민국의 혁명이 멈춘다!!! 나는 정말 조심해야겠다. 가사를 비판하고 어떤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곧바로 누군가의 상상력을 옥죄고 억압하는 SF적 기능까지 하며 한 국가를 민주정치에서 후퇴시키기까지 한다. 정부도 비판 못해 기업도 비판 못해 내 돈주고 내가 듣는 가수의 가사도 비판 못해. 누군가에게 매혹적이고 이쁜 노래가 왜 누군가에게는 별로고 촌스러우며 외설스럽기만 한 노래라는 사실을 말하는 데 이렇게 재갈을 물어야 하는지. 아이고 비평죽는다!! 마이너��티 리포트씩이나 안가도, 그냥 구려서 안듣고, 좋아하는 소설을 상스럽게 바꿔서 싫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와전되고 새삼스레 진중한 권고씩이나 붙어야 한다면 나는 내일 광화문 광장에라도 나가야겠다. 국정교과서 반대!! 제제 반대!!! 나의 고막을….대한민국이 유일하게 허락한 마약을…. 아이유의 제제로부터 지키게 허하라!!!
@ 참고로, 나는 시무라 히로아키와 오구레 이토의 작품을 토하지 않고 잘만 즐기는 면역력을 지녔으며 Justice의 Stress 뮤직비디오를 아주 즐겁게 시청하고 욕이 줄기차게 쏟아지는 212를 흥얼거리고 다닌다.
@ 아이유의 롤리타 컨셉 사랑. 성적 코드는 노골적이고 전형적일수록 싸진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42172911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4217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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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 맛살라] Alisha (from Pyaar Im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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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데이 맛살라] Alisha (from Pyaar Impossible)
토요일에 만나는 상큼한 인도영화 새터데이 맛살라입니다.
어제 너무 여기저기서 시달려서 올리려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아서 하루 늦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이해를…
오늘은 8월 특집으로 꾸며본 ‘한여름의 맛살라’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2010년으로 올라가 봅니다.
제 인도영화 덕질의 중심에 있는 배우 프리얀카 초프라는 미스 월드로 시작해서 다양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저음의 목소리에 소탈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죠.
우리나라 배우로 따지면 몇몇 영화에서 보이는 그녀의 연기들이 약간 엄정화 씨가 하는 연기톤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차가운 도시여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여성의 모습이랄까요.
지난주 ‘새터데이 맛살라’ 코너에서 소개해드린 《도스타나》에서도 프리얀카가 극중에서 맡은 네하는 일과 사랑을 모두 놓치려 하지 않는 캐릭터입니다. 이처럼 프리얀카는 자신감 있는 현대 여성상을 인도영화에서 많이 보여준 배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사실 익히 알고 있는 인도영화의 ‘맛살라’ 시퀀스라 하기엔 되게 심심한 시퀀스입니다. 떼춤도 없고 해서 제 지인은 이런 영상을 보고 ‘노래방 영상’이라고 낙인을 찍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유는 이게 왠지 여름 분위기하고도 어울리고 또한 미국 ABC의 드라마 ‘콴티코(Quantico)’의 방영일이 9월 27일로 확정되기도 해서 프리얀카 입덕하실게 없나 주섬주섬 찾다 보니 이걸 올리게 되었습니다. (때리지 마세요… 아파요… Xb)
그래서 오늘 소개할 영화와 맛살라 시퀀스가 뭐냐 하면 《삐야르 임파서블(Pyaar Impossible)》이라는 영화의 ‘알리샤(Alisha)’라는 노래입니다.
영화 《삐야르 임파서블》은 막 추천하고 그럴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인도영화임을 숨겨야 하는 영화죠. 내용이 정말 시대착오적이긴 하거든요. 이 영화가 인도에서 개봉될 당시, 2009년 말에 개봉했던 《세 얼간이》의 열풍에 ���냥 다른 영화들은 속된 말로 다 나가리가 되었고 이 영화도 그런 수순을 따랐죠. 그런데 그 당시 영화들을 보면 그럴 법도 했어요.
내용은 참 발로 썼는지 괴랄한 시나리오입니다. 아베이라는 대학생은 같은 학교의 알리샤라는 여학생을 짝사랑 합니다. 외모 때문에 고민하던 아베이는 어느 날 위험에 빠진 알리샤를 구해줍니다. 그리고 그걸 인연으로 삼아 잘 해보려고 했으나 갑자기 보수적인 알리샤의 아버지가 알리샤를 인도로 데려가는 바람에 소원은 이뤄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는 아베이는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제 사기꾼에게 탈탈 털리고 싱가포르로 복수를 하러 갔다가 운명적으로 알리샤를 만납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알리샤의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시나리오의 영화를 보고 있는 내 맴이 아파… 짠해…
온갖 설정들이 난무하는 참 답 없는 영화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에서도 소위 하드 캐리를 하는 프리얀카의 모습은 괄목할만 합니다. 이를테면 프리얀카가 극중에서 맡은 인물인 알리샤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인데, 인도를 좀 많이 아시는 어떤 분이 보수적인 인도사회에서 톱스타가 영화 속에서 미혼모 역할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뭐가 대수인가 싶었는데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하더라고요.
그 밖에도 사람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인다든가 중간에 오덕스러운 분장을 한다는 그런 것들을 꽤 잘 연기합니다. 문제는 그런 순간 순간 가지고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는 거죠.
각설하고 오늘 소개해드릴 곡 ‘알리샤(Alisha)’는 태국 방콕(그러나 극중에서는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한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촬영했습니다.
안무 감독은 아메드 칸이라는 감독인데 90년대부터 안무가로 활약하던 감독입니다. 올 해는 살만 칸이 출연했던 영화 《킥(Kick)》으로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안무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빠져든다 빠져든다
음악은 살림, 슐라이만 머천트 형제로 구성된 살림-슐라이만 팀이 맡았습니다. 이들은 고 야쉬 초프라가 수장으로 있던 야쉬 라즈사의 영화들의 음악을 주로 맡았는데요. 매번 느끼시는 것이겠지만 인도에는 샹카르-에산-로이나 비샬-셰카르 같이 콤비를 이루어서 활동하는 팀이 많은데 또한 이들은 보컬로서 서로의 음악에 참여하면서 나름 음악적인 교류도 하고 있지요.
살림 머천트는 또한 이 곡에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데 사실 이 곡은 남성 보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성 보컬이 더 부각이 되는 곡이죠.
아누쉬카 만찬다라는 보컬리스트가 곡을 불렀는데 예전에 디피카 파두콘이 아이템으로 출연했던 영화 《둠 마로 둠(Dum Maaro Dum)》을 소개하면서 언급했던 가수였는데요. 이 가수의 목소리가 디피카 파두콘보다는 프리얀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저음의 목소리와 더 잘 어울리지 않았나 합니다.
입덕한다 입덕한다
익스트림무비 트위터에 픽업 된다면 ‘프리얀카 초프라의 사랑스러운 망작’이라는 문구 추천합니다. (덕질하세 덕질하세 당신은 이 영화를 보게된다…)
그러면 마지막 더위까지 잘 날려 보내시고 9월에는 새로운 주제로 뵙겠사옵니다.
youtube
야쉬 라즈사 오피셜인데 화면비가 엉망이네요
제대로된 화면비는 아래 사이트를 이용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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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Daum tv팟]”Alisha” (Pyaar Impossible O.S.T.)
프리앙카 초프라 주연의 Pyaar Impossible 중 “Alisha”입니다.
tvpot.daum.net
안무감독: 아메드 칸
음악: 살림-슐라이만
노래: 아누쉬카 만찬다, 살림 머천트
출연: 프리얀카 초프라, 우다이 초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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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은 막혀있지만 그외는 (심지어 데이팅 앱도 ㅎㅎ) 짱짱하게 접속되는 곳이었구나. 기다림이 길어질땐 이따금씩 환자-보호자 직계가족 커플 얼굴 맞추기 놀이를 은밀하게 해왔는데; 오늘은 익스트림무비 훑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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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구인 #잠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에베레스트 #슈퍼플렉스G관 #2D #익스트림무비 편집장 다크로드님과 함께!ㅎ 이제 좀있음 시작하겠네요. 듀근듀근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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