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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ik3377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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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정법]13572강 좌파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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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ktkfkd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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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위 현장에 중국 공안이 있다? 경찰청은 즉각 해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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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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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드 발은 고전이 된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정치(폴리틱스)’라는 용어를 처음 영장류학에 도입했다. 그는 이 용어를 ’마키아벨리적 지능‘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비인간 영장류들도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통제하고자 사회적으로 복잡한 술책을 부리곤 한다는 뜻이다. 책에는 침팬지들이 그런 계략에 얼마나 천재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들이 나와 있다.
인간 사회에서도 ‘정치’의 고전적 의미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좀더 이상적이고 제한된 의미로 이 용어를 쓰겠다. 정치란 ’공익 추구 방식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가진 강자들이 겨루는 일’이다. 보수주의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비난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잊자. 타락한 진보주의자들이 가족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난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잊자. 이런 언동은 무시하고서, 우리는 그들 모두가 사람들이 최대한 잘살기를 바라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 견해가 다를 뿐이라고 가정하자. 지금부터 우리는 세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다.
a. 정치 지향은 내적으로 일관된 편인가(예를 들어 자기 동네의 쓰레기 정책에 관한 의견과 어느 먼 나라에서 실시되는 군사작전에 대한 의견은 이데올로기적으로 한 세트일까)? 빠른 답변: 보통 그렇다.
b. 그런 일관된 지향은 특정 정치 현안과 거의 무관한, 뿌리깊고 암묵적인 요인들에서 생겨나는가? 그렇다.
c. 과학자들은 이런 요인들의 바탕에 깔린 생물학을 조금이라도 밝혀내기 시작했는가? 물론이다.
앞 장에서, 우리/그들 가르기 지향성이 놀랍도록 일관되다는 것을 보았다. 특정 외집단을 경제적 이유에서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집단을 역사적 이유에서 싫어하고, 또다른 집단을 문화적 이유에서 싫어하고······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치 지향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 경제적 · 환경적 · 국제적 현안들에 관한 어떤 사람의 정치 지향은 한 세트일 때가 많다. 이 일관성을 희 화한 만화가 『뉴요커』에 실린 적 있다(정치심리학자 존 조스트 덕분에 알게 된 만화다). 한 여자가 몸에 걸친 드레스를 남편에게 보이면서 묻는다. “이 드레스를 입으니까 나 공화당원처럼 보여요?“ 또다른 예는 생명윤리학자 리언 카스의 ���화인데, 인간 복제는 상상만 해도 ’역겹다‘는 보수적 의견으로 관련 정책에 영향을 미쳤던 그는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고양이 같은 행동’도 역겹다고 말한 적 있다. 아이스크림 핥기를 비롯하여 여러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는 뒤에서 더 살펴보겠다. 이런 내적 일관성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그보다 더 폭넓고 근본적인 이데올로기의 한 표출일 뿐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이 사실은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침실에 청소 도구를 두는 경우가 더 많은 현상도 설명해준다.
당연히, 사람들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늘 엄격하게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사회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보수주의의 혼합이다. 거꾸로, 흑인 침례교회는 전통적으로 경ㅈ적으로 진보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이다(동성애자 권리를 부인하고, 동성애자 권리가 인권 문제라는 생각도 부인한다). 정치 이데올로기의 양극단들이 획일적인 존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나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화하여, ’진보주의자‘와 ’좌파’를, ’보수주의자’와 ‘우파‘를 각각 동의어처럼 쓰겠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의 정치 지향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체로 안정성과 내적 일관성을 갖고 있다. 공화당원처럼 옷을 입고 민주당처럼 아이스크림을 핥는다는 게 말이 된다는 얘기다.
정치 이데올로기가 침실에 청소용품을 두는 문제부터 아이스크림 섭취 방식까지 온갖 행동에 관여하는 더 큰 내적 영향력들의 한 표출에 불과하다면, 좌파와 우파는 심리적 · 감정적 · 인지적 · 내장감각內臟感覺적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을까? 연구자들이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매우 흥미로운 발견들이 따라 나왔다. 그 발견들을 몇 가지 범주로 묶어보았다.
지능
아니, 뭐라고? 참으로 도발적인 주제부터 살펴보자. 1950년대의 테오도어 아도르노를 필두로, 낮은 지능이 보수 이데올로기 채택을 예특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후 연구들은 이 결론을 지지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보다 더 일관관 관계는 낮은 지능과 보수주의의 한 하위 형태인 우파권위주의성향(위계 애호)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1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사하여 이 결론을 아주 철저하게 보여준 연구가 있다. 이때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통제하더라도, 낮은 IQ와 우파권위주의성향과 집단 간 고정관념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었다. 이 관련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우파 권위주의성향이 단순한 대답을 제공하기 때문에 추상적 추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알맞다는 것이 표준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지적 양식
이 문제에 관한 연구들은 크게 두 주체를 살펴본다. 하나는 우파가 좌파보다 애매함을 지적으로 불편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밑에서 하자. 다른 하나는 좌파가 우파보다, 뭐랄까, 더 열심히 생각한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정치학자 필립 테틀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합적 복합intergrative complexity’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더 낮다는 ��이다.
한 연구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가난의 원인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양쪽 다 보통 개인 귀인으로 대답했다(“그 사람이 게을러서 가난한 거죠”). 하지만 즉각적 판단일 때만 그랬다. 시간을 더 주면, 진보주의자들은 상황적 설명으로 의견을 바꿨다(“잠깐만, 환경이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기는 해요”), 요컨대 보수주의자는 직감으로 시작해서 직감으로 끝나지만, 진보주의자는 직감으로 시작해서 머리로 끝난다.
귀인 양식 차이는 정치를 한참 넘어선 영역에도 미친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의자에게 어떤 남자가 춤 연습을 하다가 딴 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 말해주고 즉각적 평가를 요구하면, 둘 다 개인 귀인으로 대답한다. “서투른 사람이네요.” 하지만 시간이 주어지면, 진보주의자는 상황 귀인으로 넘어간다. ”진짜 어려운 춤인가봐요.“
이 이분법은 당연히 완벽하지 않다. 르윈스키 스캔들 때 우파는 개인 귀인으로 설명했고(”빌 클린턴은 썩은 놈이야“), 좌파는 상황 귀인으로 설명했다(”우파의 음모야“).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태 때는 거꾸로였다. 그래도 이 이분법은 상당히 믿을 만한 편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직감적 개인 귀인을 넘어서 섬세한 상황 귀인을 떠올리는 능력 자체에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에 차이가 없다. 양쪽에게 감정을 접어두고 상대 진영의 관점을 묘사해보라고 요구하면, 양쪽 다 문제 없이 해낸다. 다만 진보주의자는 상황적 설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동기를 더 크게 느낄 뿐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진보주의자가 생각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쓸모없는 동어 반복이 되기 쉬운 해석이다. 일리노이대학교의 린다 스키트카는 즉각적 개인 귀인이 진보주의자에게는 자신의 원칙에 어울리지 않는 견해로 느껴지므로 더 열심히 생각해서 더 조화로운 견해를 떠올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시간이 더 주어져도 상황적 귀인으로 넘어가지 않는데 부조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이기는 하나, 이 해석은 그렇다면 왜 애초에 진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부조화를 일으키는가 하는 질문을 낳을 뿐이다. 뒤에서 보겠지만, 이 문제는 인지 양식과는 무관한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런 발견들을 고려하자면, 보수주의자를 진보주의자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보다는 진보주의자를 보수주의자처럼 생각하도록 만드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더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인지 부담이 늘어나면[*이 현상은 부담이 보다 장기적으로 가해지는 상황에도 ���같이 적용된다. 그런 시기가 양국화를 부추긴다는 통념이 있지만, 사실은 좌파 중에서도 드문 일부만이 그런 시기에 암묵적으로 더 좌파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더 보수적인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즉각적 판단에 따르는 시간 압박은 일종의 인지 부담 가중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피곤할 때, 아플 때, 다른 인지 작업에 정신이 팔렸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을 때 평소보다 더 보수적인 견해를 보인다.
도덕적 인지
이 또한 지뢰밭이다.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정치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도덕적 사고가 빈곤한 인간들이라며 비난한다. 이때 비난의 한쪽 방향은 7장에서 보았던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 이론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듯하다. 시민 불복종에 열광하는 진보주의자는 법과 질서를 애호하는 보수주의자보다 콜버드 단계에서 더 ‘높은‘ 단예에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우파에게는 더 발전된 콜버그 단계에서 추론하는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럴 동기가 적은 것일까? 후자로 보인다. 상대의 관점을 묘사하는 능력에는 우파와 자파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뉴욕대학교의 조너선 하이트는 견해가 전혀 다르다. 그는 도덕에 여섯 가지 토대가 있다고 본다. 배려 대 피해, 공정성 대 부정, 자유 대 압제, 충성심 대 배신, 권위 대 전복, 고귀함 때 추함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첫 세 목표, 즉 배려와 공평성과 자유를 우선시한다는 것은 실험에서도 현실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상대적으로 충성심과 권위와 고귀함을 낮잡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후 관습적 사고에 해당하므로, 콜버그 도식과 겹치는 데가 있는 셈이다). 대조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충성심과 권위와 고귀함을 아주 중시한다. 이것은 명백히 큰 차이다. 당신이 속한 집단을 외부인들에게 비판해도 되는가? 우파: 안 된다, 그것은 배신행위다. 좌파: 된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법을 어겨도 되는가? 우파: 안 된다, 권위를 훼손하는 짓이다. 좌파: 물론 된다. 악법이라면. 국기를 태워도 되는가? 우파: 절대 안 된다. 국기는 고귀한 것이다. 좌파: 뭘 그래, 천 쪼가리일 뿐인걸.
이런 상이한 강조점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일례로, 진보주의자의 고전적 견해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행복추구권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고전적으로 공정성보다 권위 집행의 편이성을 중시하므로, 어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세상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대가로서 감수할 만하다고 본다.
하이트의 관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도덕의 토대를) 여섯 개까지 꼽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세 개만 꼽는다는 사실은 무슨 뜻일까? 바로 이 대목에서 인정사정없는 상호 저격이 시작된다. 보수주의자들은 하이트의 묘사를 받아 들여서, 진보주의자를 도덕의 토대 중 절반이 위축된 인간이라고 비난한다.[*하이트가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를 보면 ��� 점에서 그가 바뀌고 있는 듯하다.] 조스트와 하버드대학교의 조슈아 그린은 견해가 다르다. 그들은 진보주의자들이 더 세련된 도덕의 토대를 갖고 있다고 본다. 덜 중요하고 역사적으로 해로웠던 토대들을 진보주의자들은 폑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여태 집착한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는 1에서 3까지 고려하고 보수주의자는 사실상 4에서 6까지만 고려한다고 보는 해석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왜 충성심, 권위, 고귀함처럼 우파권위주의와 사회지배지향성으로 건너가는 징검돌일 때가 많은 ‘결속의 토대‘에 더 신경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야 한다.
감정적 심리 차이
좌파와 우파가 정서 면에서 일부 겹치기는 하지만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연구자들이 일관되게 확인하는 사실이다. 요약하면, 평균적으로우파는 애매성을 더 불안하게 느끼고, 종결하고픈 욕구를 더 크게 느끼고, 새로움을 싫어하고, 구조와 위계를 더 편하게 느끼고, 상황을 위협적인 것으로 더 쉽게 인식하며, 더 편협하게 감정이입한다.
보수주의자가 애매성을 싫어한다는 것은 여러 비정치적 맥락에서(가령 시각적 환영에 대한 반응, 오락 취향 측면에서) 확인된 바로, 이것은 그들이 새로움을 진보주의자와는 다르게 느낀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상이다. 새로움이란 속성상 애매함과 불확실성을 일으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대한 견해 차이는 진보주의자들이 적절한 개혁으로 미래를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는 데 비해 보수주의자들은 옛날이 더 나았으며 우리가 그 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서 다시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는 것을 설명해준다. 이런 심리적 차이는 비정치적 영역에서도 발휘된다.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보다 여행책을 더 많이 갖고 있는 편이다.
예측 가능성과 구조structure를 원하는 보수주의자의 성향이 충성심, 복종, 법과 질서를 강조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 사실은 미국의 정치 지형에서 한 가지 수수께끼 같은 속성을 이해하게 해준다. 지난 50년 동안 공화당은 어떻게 가난한 백인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득에 반하는 투표를 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을까? 그 사람들은 자신이 곧 복권에 당첨되어 미국의 불평등 구조에서 특권을 누리는 쪽으로 옮겨갈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걸까? 아니다. 보수주의자에게 익숙한 구조를 원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볼 때, 가난한 백인들이 공화당에게 표를 주는 것은 암묵적인 체제 정당화 및 위험 회피 행동이었을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잘 아는 악마를 상대하는 편이 낫다는 심리다. 보수주의적 동성애자들이 진보주의적 동성애자들보다 암묵적 반反동성애자 편향을 더 많이 품고 있다는 사실은 앞 장에서 이야기했다. 체제의 안정서과 예측 가능성에서 위안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체제를 부정하느니 자신을 미워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런 변수들과 얽힌 또다른 현상은, 어떤 상황을 위협적인 것으로 보는 성향 면에서 좌파와 우파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에 기반한 보수주의가 그런 성향이 크다. 삶은 애매한 일투성이고 무엇보다 늘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애매성과 새로움을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는 아닌 게 아니라 온갖 것이 위협으로 보일 것이다. 이때 ‘위협‘은 가령 자부심에 대한 위협처럼 추상적일 수 있는데 그런 위협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는 정치적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차이는 구체적인 신변상 위협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이 사실로 정치적 입장을 설명할 수도 있다. ”내게 국무부에 침투하여 일하고 있는 공산주의자 스파이 200명의 명단이 있습니다“라는 말은 가상의 위협이 무엇인지 아주 잘 보여주는 예시다.[*메카시가 실제로 위협을 느꼈는지는 (혹은 자신이 뱉은 말 중 한마디라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토론해볼 만한 문제이지만, 그가 그런 경향성을 지닌 사람들을 이용해먹을 줄 알았다는 점에서 좌우간 의문의 여지가 없다.] 위협 인식의 차이는 비정치적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화면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단어를 보면서 어떤 작업을 빠르게 수행하도록 했다. 이때 진보주의자들과는 달리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은 위협적이지 않은 단어(’망원경‘ ’나무‘ ’매점’)보다 위협적인 단어(‘암’ ’뱀’ ‘강도‘)에 더 빨리 반응했다. 게다가 그런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arms’를 (’팔’로 읽어서 ‘다리와 짝짓는 게 아니라) ‘무기‘로 읽어서 ’총기‘와 짝짓는 경우가 더 많았고, 애매한 표정을 위협적인 표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부정적 자극을 중립적 자극과 연합하는 조건화를 더 쉽게 익혔다(긍정적 자극은 그렇지 않았다). 자가 보고에 따르면, 공화당원은 민주당언보다 악몽을 세 배 더 많이 꾼다. 특히 자신이 힘을 잃는 상황에 관련된 악몽을 많이 꾼다. 보수주의자는 강도를 당한 적 있는 진보주의자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이와 관련하여 ‘공포 관리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보수주의의 심리적 기원을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라고 보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사실로서, 자신의 필멸성을 떠올리도록 하는 암시를 받은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보수적인 견해를 드러낸다.
위협 인식의 차이로 정부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역할로 볼 수도 있고(좌파의 견해로, 사회 서비스와 교육 등을 강조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로 볼 수도 있다(우파의 견해로, 법질서와 군대 등을 강조한다).[*보수주의자들이 위협에 더 민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이 겪는 위협에 감정이입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자는 타인이 겪는 육체적 고통의 타당성을 더 많이 의심하고, 그것을 꾀병이자 의존적 조작으로 더 많이 해석한다.]
공포, 불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 우파로 산다는 것은 피곤한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다국적 연구에서 우파가 좌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왜일까? 어쩌면 우파가 단순한 대답에 만족하고 구태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해석으로서 보수주의자들이 체제 정당화를 통해 불평등을 합리화함으로써 불평등에 덜 좌절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우파와 좌파의 행복지수 차이도 더 커진다.
앞서 말했듯, 정치 이데올로기는 그 사람이 가진 지적 사고 양식과 정서 양식이 표출된 한 측면이다. 훌륭한 예로, ���떤 사람이 네 살 때 새로운 장난감에 얼마나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는가 하는 것은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가령 미국이 이란이나 쿠바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보일 것인가를 잘 예측한다.
물론, 약간의 생물학적 설명
정치 지향은 보통 안정적이라는 것, 그리고 서로 상이한 문제들에 대해서 일관된 입장을 보인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정치 지향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 및 정서 양식의 한 표현이라는 것도 알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이런 정치 지향의 차이를 설명하는 생물학적 차이는 무엇일까?
다시 섬겉질을 떠올리자. 섬겉질은 포유류에서는 미각적 · 후각적 혐오를 중개하고 인간에게서는 추가로 도덕적 혐오까지 중개한다. 앞 장에서 말했던 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내장감각적으로 혐오스럽다고 느끼게 만든다면 틀림없이 그들에 대한 적대감을 지필 수 있다. 사람들이 그들을 떠올릴 때 섬겉질이 활성화하게 만들 수 있다면, 당신의 대량학살 작업 목록에서 한 항목을 완수한 셈이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놀라운 발견이 있다. 피험자들이 있는 방에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함께 넣어두면, 피험자들의 사회적 보수성이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다. 썩은 생선 냄새 때문에 섬겉질이 구역질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그저 우리와 좀 다를 뿐인 타자의 사회적 관습을 말짱 틀린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또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발견이 있다.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혐오에 대한 문턱값이 낮은 편이라는 사실이다.[*부정적 이미지로는 사람이 벌레를 먹는 모습, 변기에 똥이 떠 있는 모습, 피투성이 상처, 구더기가 들끓는 상처 등이 쓰였다. 재밌군.]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정서가 깃든 이미지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피부전기반응(교감신경계 각성 수준을 알 수 있는 간접적 지표다)을 측정해보았다. 이때 부정적 이미지에 가장 큰 자동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동성혼이나 혼전 성관계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었다(자유무역이나 총기 규제오 같은 비사회성 주제들은 피부전기반응과의 관련성이 없었다). 위생과 순결함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분명 고귀함을 중시하는 견해를 갖기가 쉽다.
그 연장선에서, 뭔가 내장감각적으로 불쾌한 것을 접했을 때 보수주의자들은 재평가 전략을(가령 피투성이 이미지를 보았을 때, ‘이건 진짜가 아니야, 연출된 거야’하고 생각하는 전략이다) 상대적으로 덜 쓴다. 그렇지만 재평가 기법을 써보라는 지시를 받은 경우라면(“초연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이미지를 보려고 애써보세요”), 보수주의자들은 평소보다 덜 보수적인 정치적 정조를 드러낸다. 진보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차이가 없었다. 대조적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억압 전략은(“이미지를 볼 때 당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마세요”) 소용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 진보주의자는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급하거나, 정신이 산만하거나, 혐오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더 보수성을 띤다. 보수주의자는 뭔가 내장감각적으로 불쾌한 것을 더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더 진보성을 띤다.
이처럼, 사회적 현안에 관한 정치 지향은 그 사람의 내장감각적 혐오에 대한 민감도와 그 혐오에 대처하는 전략을 반영한다. 게다가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혐오감이 무언가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데 좋은 기준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스크림 핥기를 싫어하는 생명윤리학자 리언 카스가 이 대목에서 재등장한다. 카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생명윤리 전문가 위원회를 이끌었고, 위원회는 카스의 임신중지 반대 이데올로기에 힘입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큰 제약을 가했다. 카스는 ’거부감의 지혜the wisdom of repugnance’라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복제 등에 대한 혐오감은 “우리의 심오한 지혜가 정서적으로 표현된 것으로서, 지혜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후적으로 합리화를 하든 말든, 내장감각적 차원만 있으면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무언가가 내게 구토를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것을 비난해도 좋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는 명백히 어마어마한 흠이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것에 혐오를 느낀다. 그런데 누구의 구역반사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게다가, 옛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느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느낀다(일례로, 흑인 노예에게도 백인과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 1800년경 미국의 백인 중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혐오스럽다고도 느꼈을 것이다). 옛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이 요즘은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혐오는 움직이는 표적이다.
… 섬겉질 외에도 몇 가지 신경 생물학적 차이가 더 확인된 바 있다. 진보주의는 띠다발 겉질(감정이입에 관여하는 영역이다)의 회색질 부피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과, 보수주의는 편도체(익히 알겠지만, 위협 인식의 주역이다) 확장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보거나 위험한 작업을 수행할 때,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들보다 편도체가 더 많이 활성화한다.
하지만 모든 발견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보수주의자들은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볼 때 편도체 외의 다른 잡다한 뇌 영역들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활성화한다. 바닥핵, 시상, 수도관주의회색질, (인지적) 등쪽가쪽이마앞엽 겉질, 중간/위관자이랑, 전보조운동영역, 방추상얼굴영역, 아래이마이랑. 이 발견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지는 아직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히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유전자가 정치 지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행동유전학자들이 밝혀낸 바가 있을까? 쌍둥이 연구에서는 정치 지향의 유전율이 약 50%라는 결과가 나왔다. 게놈전체연관분석에서도 정치 지향과 연관성이 있는 다형성 유전자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유전자의 대부분은 기능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거나, 이전까지 뇌와는 무관하다고 생각된 것이었다. 뇌와 관련된 기능이 알려진 유전자라도(일례로,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의 수용체를 암호화한 유전자가 있었다) 정치 지향에 관해서 그다지 알려주는 바는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유전자/환경 상호 작용이 있기는 하다. D4 도파민 수용체 유전자 중 ‘위험 감수’ 성향과 관련된 변이체가 진보성과 ���관된다는 것인데, 단 친구가 많은 진보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또 정치 지향과는 무관하지만, 사람들이 투표를 할 가능성에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들도 있었다.
(540~552쪽)
행동 - 로버트 새폴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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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lygood21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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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사무관 출신으로 선관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배명수 (주)도시산업개발 대표가 최근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관위는 호남자치단체가 아니라 중앙부처인데도 마치 호남향우회라도 되는 것처럼 중간간부 이상의 80%가 호남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영삼 때부터 이 나라는 선관위와 국회가 야합하기 시작했고 김대중 노무현 이후 선관위는 호남과 좌파가 장악하기 시작해 오늘의 불의한 선관위에 이르렀다”고 폭로했다.
만약 선관위 중간간부 이상의 80%가 호남 출신이라는 배명수 대표의 충격적인 이번 폭로가 사실에 근접한다면 이는 정말로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전체 인구 구조를 감안할 때 외부의 감시나 견제가 없이 온갖 특권을 누려오면서 부정 세습채용 등 복마전으로까지 물리는 선관위에서 호남 출신이 중간간부 이상의 80%가 아니라 40%나 50% 이상만 되더라도 극히 비정상적이고 편향된 인적 구조라고밖에 할 수 없다.
배명수 대표의 주장처럼 선관위 중간간부 이상의 80%가 호남 출신인지는 제3자로서는 단언하긴 어렵다. 80%는 워낙 높은 수치, 노골적인 편중인사 수치라서 설마 그 정도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관위 외부의 누구보다도 선관위 사정을 잘 아는 전직 선관위 공무원의 폭로다. 또 배 대표는 그동안에도 선관위의 변질과 오염 과정에서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후 양적, 질적으로 선관위 내 호남 및 좌파 인맥이 급증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 선관위에서 정상적 구조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당한 수준의 호남편중과 이에 따른 여러 가지 폐해와 부작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따라 선관위 공무원들에 대한 전수(全數)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현재 대한민국의 어떤 공무원 조직보다 책임은 작고 권한과 특혜는 막대한 복마전 선관위에 배 대표의 주장처럼 호남 출신이 인구비례보다 유난히 많다면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그 구체적인 경위도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명수 대표는 또 “감사원 감사도 안 받고 국회 견제도 없고 사법부와 한 몸이라 사실상 무법지대에서 노는 선관위가 무슨 짓을 못할까”라면서 “이런 선관위를 그냥 두고서는 한국은 분명히 부정선거로 망하고 만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이와 함께 “선관위 공무원은 국가 공무원인 선관위 공채보다 커트라인이 현저히 낮은 면사무소 등 다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후 선관위 친인척의 빽으로 경력직 특채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며 “특채로 많이 뽑으니 공채��� 정원이 얼마 안 되고 공채에 합격해 선관위에 들어가도 특채보다 승진이 늦다”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헌법기관이라는 선관위 공무원 집단이 다른 부처보다 수준이 낮아 다들 놀라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 공무원 출신인 배명수 대표는 과거 자신의 선관위 근무 경험 및 선관위 인적 네트워크 등을 토대로 한국 사회에서 복마전 선관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부터 선관위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부정부패 문제를 일찍부터 지적해 우리 사회의 깨어있고 눈 밝은 이들로부터 주목받아온 인사다.
그가 그동안 지적한 선관위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권순활TV를 포함한 시사 유튜브 채널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소개되면서 선관위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깨우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임계점을 넘어선 시점에서 배 대표가 이번에 구체적 수치를 거론하면서 지적한 선관위의 극심한 비정상적 지역편중 인사 실태가 사실인지, 그리고 만약 사실이라면 배 대표의 표현처럼 특정 지자체도 아닌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중앙부처에서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는지를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이제 쉬쉬 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선관위에 대한 국민들의 총체적 불신이 커진 만큼 모든 선관위 공무원들의 출신 지역(원적 및 본적 포함)과 출신 중고교, 선관위 공무원 임용 경로 및 특정 가산점 혜택 여부 등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 조사와 결과 공개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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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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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와 삶의 시간,특히 5장, "민주주의의 자가면역: 데리다와 라클라우"
내가 정치적 좌파의 입장을 갖는 것이란 이러한 데리다의 텍스트 아래에서의 논지를 통해 좌파 이념을 취하는 것이지
결코 한국 민주당 정의당 운동권 같은 것과는 관련이 없음이다
한국에는 좌파가 존재하지 않으며, 우파 민족주의 또한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적 재정립, 정치의 의미, 정치 사회적 개념의 재탈환 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한국인들을 세뇌시키고 정서적으로 혹사시키는, 한국 뉴스(이슈)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와 함께 공부하고 그의 지도 아래서 논문을 썼던 학자들인 스티글러, 말라부, 라바테와 같은 사람들, 혹은 코프만 낭시 라쿠-라바르트처럼 데리다 연구를 한 프랑스 학자들은 모두 해체주의를 발전시켰고, 확고한 좌파 주의를 고수했다
해체되지 않는 것들은 대부분 덩어리가 되어 입장을 내세우고 존중을 원하며 원칙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하나의 정치적 존재로 변모한다
이러한 형태는 단순히 '정치'라고 불리어지는 현상적 '정치' 뿐만 아니라, 삶에서 정치적인 조건과 형태를 가진 모든 것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LGBT...(LGBTQ)들이 주장하는 '존중'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존중을 요구하는 그들은, 존중의 이유로 '젠더적 소외'를 말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소외해서는 안되는 PC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음이다. PC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사회와 사람들은 그 어떤 퀴어에게보다 더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소외'는 이미 소외로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권력의 장이 되었다는 지젝의 말처럼, 나는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대변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는 경우 매우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껴지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란 '덩어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깨달음 뿐이다
'나'는 해체 되어야만 한다는 아득한 목표 같은 것, 나는 명확한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다. 나는 무엇도, 뭣도, 누구도, 몇 살도, 아닌, 누구도 아닌 그런 것에 대한 판타지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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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35824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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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동문들 "野김준혁 사퇴하라"…
미군 성상납 발언 논란 확산
🗣毒舌
왜 이런일에는
더불어 만진당은
발벗고 나서지 않나?
왜 후보 사퇴
또는 공천 취소를 하지 않나?
이화여대 출신인
서영교는 왜 입을 다물고 있나?
왜? 왜? 다 똑같은 것들이거든.
성비위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터지는 곳이 민주당이잖아?
여성에 대한
인식이 아주 저질이고
���급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런 문제가 나오는 것이다.
개같은
딸들은 반성해라.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개거품을 물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라. ㅋㅋㅋ
좌파
개딸들이
그럴리는 만무하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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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tv7004 · 5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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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공개했던 그 때 그 사진의 의미 | 모스탄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 못하는 좌파 진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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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공개했던 그 때 그 사진의 의미 | 모스탄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 못하는 좌파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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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icpersonatriumph · 17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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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 좌파 아저씨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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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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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美연대(2469)
20세기 국제정치사에서 주요한 흐름 중 하나가 '반미(反美)연대'다. 냉전 시기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기구는 미국과 나토(NATO)에 맞서는 군사동맹을 구축했다. 이란 이슬람혁명(1979년) 이후엔 이란을 축으로 반미 이슬람 세력이 확산됐다. 남미에서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로 대표되는 좌파 민족주의가 미국 주도의 질서에 저항했다.
이른바 신(新)반미연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1기 집권기를 기점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동맹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일방주의 외교를 펼쳤다. 이로 인해 많은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회의를 품게 됐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은 글로벌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위기의식을 느낀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 복원에 나섰으나,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반미연대는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에 맞서 중국과 전략적 접근을 가속했고, 이란·북한도 생존을 위해 반미 공조 체제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중국 주도의 반미연대는 이념보다 실용에 무게가 실려 있다. 냉전 시기 소련 중심의 반미블록이 이념을 기반으로 했다면, 현재는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모양새다. 이는 경제적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중국의 일대일로(BRI) 추진과 디지털 위안화 확산, 러시아·이란·중국 간 에너지 협력, 브릭스(BRICS)·상하이협력기구(SCO) 확대 등은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질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려�� 움직임이다. 더욱이 결제 시스템과 원유 거래에서 탈(脫)달러화 시도는 미국의 경제 제재를 무력화하려는 공동 전략으로,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적 패권에 대한 도전이다.
반미연��는 실용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우선 내부 결속력이 공고하지 않다. 각국의 체제와 이해관계가 달라 일관된 공동 전략을 수립하기 어렵다. 인도는 브릭스의 일원이지만, 중국을 견제하며 미국·일본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일부 개발도상국들에게 '신(新)식민주의'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대일로를 통한 경제적 의존 심화는 채무 함정이나 주권 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이란은 서방 제재에 따른 경제적 난관에 직면해있어 장기적 대항블록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세계 질서가 단일 패권에서 다극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반미연대가 촉매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재집권과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반미연대의 부상은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게도 험난한 파고 속에 이를 헤쳐나갈 과제를 제시한다. 전통적인 한미 동맹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다층적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5/20/25/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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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jesus-jesus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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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로 환생한 박정희》 方山
어려서 박정희 대통령을 보며 살면서 아버지가 그리웠던 나는 박정희를 내 아버지처럼 생각했다. 그는 촌스런 얼굴이지만 동네 아저씨마냥 푸근했다. 내게 맛있는 빵을 먹게 해주었고 흰 쌀밥을 맘껏 먹게 해주었다. 지금도 그 얼굴이 그립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번 국힘의 대선후보 김문수를 보면서 자꾸 박정희 얼굴이 오버랩된다. 어딘지 꾸미지 않고 욕심 없이 나라를 의한 소신과 청렴함이 느껴진다.
그는 학생 때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항해서 싸웠다. 그리고 5.18 유공자도 되었다.
5.18 민주화 포상금 10억을 준다는 걸 거절했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돈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라는 소신이다. 김동길 박사도 10억의 포상금을 거절했다.
당시에 김동길 박사와 김문수는 민주화 투쟁의 같은 동지였다.
그러나 이후 민주화 운동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공산이념 투쟁으로 반정부 활동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두 분 모두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우국 전사로 거듭났다.
두 분은 생각이 같아 가깝게 지냈다. 때때로 김문수는 김동길 박사 댁을 찾았다.
반면, 이재명을 볼 때마다 이완용이 오버랩 된다. 이재명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면 나라라도 팔아먹을 자이다.
그에게 정직이라든가 솔직이라는 건 전혀 없다. 그의 혀는 두 개이어서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 틀린다. 자기의 아버지 직업도 14개나 된다. 가는 곳마다 그곳에 맞는 아버지 직업을 말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껏 진보이고 좌파 이념으로 살아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갑자기 자기는 보수란다. 대기업 총수들을 만날 때는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 전폭 지원하겠다 약속하고 뒤로는 민노총과 한노총과 연합해 선거 운동하고 상법개정법, 노란봉투법 같은 노조만을 위한 법안만 발의한다.
사람을 죽이는 DNA가 있어 자기로 인해 죽은 사람에 대해선 눈 깜짝도 안 하고 자기는 죽을까봐 벌벌 떠는 겁 많은 넘이다. 누가 총으로 쏴 죽일까봐 두툼한 방탄복을 입고 누가 칼로 찌를까 봐 악수도 안 한다.
장소도 광화문에서 한다 하고 청계천으로 바꾸고 단상에는 폭탄이라도 설치했을까봐 경찰개까지 동원해서 수색한다.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 넘이 무슨 지도자가 꿈을 꾸나!
잔인한 피를 가진 자에게서 무슨 포용과 통합을 기대하나? 김정은보다 더 포악한 자일 뿐이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내자!
김문수로부터 박정희의 환생을 보았다.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아침에
方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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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cs51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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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 몰카 공작 최재영 하늘의 벌 받았나?/좌파 유튜버에서 전해진 최재영 위급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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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ktkfkd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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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뉴스] 좌파 농민 시위대 경찰 폭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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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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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유물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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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조금씩 회복하면서, 이전에 살펴보았던 '사회 성격' 문제에 이어, 이제 그 '사회구성체 논쟁'의 출발이 되는 '사적 유물론'에 대한 책들을 정리해보고 있다. 이 개념이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 본인은 사용하지 않은 개념이라는 것. 그나마 디츠켄이나 플레하노프에 의해서 처음 사용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에 비해서,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는 엥겔스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점이 그나마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만, 마르크스가 단서적으로 정리한 역사 발전의 일반적 '묘사'가 <자본> 이후에도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기는 하다.
- 사적 유물론은 출발부터 두 가지 내적 긴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것이 역사를 바라보기 위한 도구적 개념들에 대한 집합적 설명인가, 아니면 역사에 유지될 수 있는 인과적 법칙인가의 대립에서 발견되는 긴장. 둘째는 역사가 합법칙적 발전 과정을 겪는다는 접근과 역사는 주체의 활동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접근 사이의 긴장. 이 긴장은 마르크스의 저작들 사이에서도 파편적으로 나타나고, 그 파편들 사이에서 동요하게 되는 이후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저작 속에도 발견되는 사항들. 아마 이번에 책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점이 이 파편들을 어떤 형태로든 봉합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의 한계 였을 것 같다.
- 가령 이후 이진경의 <사사방>이나 이후 다양한 변증법적 해석을 중시했던 PD 계열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던 Ferenc Tokei의 <사회구성체론>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농민전쟁의 요소, 즉 혁명 주체의 역동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던 포르시네프의 입장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등장했던 코스민스키 중심의 소련 아카데미 입장을 반영하는 <봉건 사회의 기본법칙>이나 <자본주의 이행논쟁의 새로운 전개> 등은 봉건사회의 기본적 생산관계의 내적 모순을 강조하는데 집중한다. 결국 긴장의 어느 한 편에 매달리게 된다. 그래도 예전에 봤던 Robert Brenner 논쟁을 다시 읽으면서, 이전에는 욕을 했던 글들에서 오히려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기술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즐겁다. 포스탄이나 라뒤리의 연구 작업이 얼마나 안병직 사단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까를 역으로 되새겨 보는 것도 흥미. 당시에는 큰 관심 없었던 Guy Bois의 책은 한 번 찾아 봐야 할 듯.
- 이런 연구들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스스로의 가능성을 좁혀 나갔는가를 보는 것은 조금 안타깝다. 그런 면에서 호르헤 라라인의 <역사 유물론의 재구성>이, 마르크스의 내부 긴장을 긴장으로 유지하는 것이 알튀쎄리언이나 분석 마르크스주의의 과학 중심적 해법이 보여주는 것보다 바람직하지 않냐는 해석은 지금 시점에서는 새롭다. 당대 그 문제의식을 볼 수 없었던 것 역시, 6~70년대까지의 폭압적 정세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 이라는 존재 때문에 경험해야했던 세계 좌파 운동으로부터의 강제적 단절이라는 역사적 상황 때문이니 '지성사'의 관점에서 흥미 있는 일일 듯. 한 때 윤소영이 소련 학문 사정에 대해 놀랍도록 많은 이해를 가졌던 것처럼 굴었던 것이 바로 이 책 때문이라고 알려졌던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역시 지금 관점에서 보니 흥미진진하다. 마르크스부터 존재했던 내적 긴장을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소련의 이론적 시도가 소련 정치 권력의 이데올로기적 요구와 맞물리면서 발생하는 공소하고 추상적 개념, 용어로 환원되는 과정은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의 이론 버전으로 보이기도.
- 이래서 때로는 시간이 많은 것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할 수 있는, 즉 다른 퍼스펙티브에 기반한 관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지도. 사적 유물���이라는 허구가 무너지면서, 더 많은 관찰과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면 그 방향은 무엇인지 또 즐겁게 찾아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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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lygood21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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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승 칼럼 : 옥중 윤석열 대통령의 울분
"김홍일·이동관·이진숙 쫓겨나는데, EBS 유시춘은 왜 그 자리에 있나"
이양승 객원 논설위원 / 군산대 무역학과 교수
면회 후 나경원 의원이 전했다
이재명 유시춘 건재 vs. 대통령 감옥
거짓말 유시춘 쫓아낼 방법, 정녕 없는 건가?
《EBS는 지금 ‘마더’ 영화 상영중이다》
■ 문재인 알박기 공직자들, 대놓고 싱글벙글
“김홍일·이동관·이진숙이 계속 탄핵소추되면서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제대로 앉아 있던 분이 없었다.
(반면) 유시민 전 의원 누나인 유시춘 씨가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됐는데, 아직도 EBS 이사장이다."
- 윤석열 대통령
2월 3일 면회를 마친 나경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이렇게 전했다고 <문화일보 >가 보도했다.
김홍일·이동관·이진숙은 쫓겨나는데, 유시춘 은 왜 그 자리에 건재하느냐는 울분을 전한 것이다.
감옥 속 현직 대통령이 불의의 사례로 콕 꼬집어 거명한 EBS 교육방송 유시춘 이사장(이하 존칭 생략)의 거짓말 시리즈가 화제다.
《게임이론》시각에서, 거짓말을 하는 이는 그 거짓말을 통해 뭔가를 얻는다.
얻는 게 없이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정신질환이다.
■ EBS는 흙수저들을 위한 것
한국은 참 황당한 나라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교육열이 뜨거운 나라도 없을 것이다.
‘교육 백년지대계’, ‘동방예의지국’.
《주자학적 위선자》들이 입만 열면 하는 말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 사기범죄 평균 빈도수 가 가장 높다.
그 빈도수 면에서 한국은《동방의 등불》같은 나라다.
EBS는 교육을 위한 공영방송이다.
그 존재 근거가 있다.
사실을 짚자면, 한국에서 교육은 출세 수단이다.
목표는《점수 따기》와《등수 올리기》다.
해마다 사교육으로 몇십조를 쓰는 건《윤리와 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비싼 돈 들여《윤리와 덕》을 공부할만큼 한국인들은 한가하지 않다.
게다가 전교조가 장악한 공교육 현장에서는���권리》만 가르친다.
《책임과 의무》는 잊혀진지 오래다.
한국은 자본주의 나라다.
유교 정신도 잃지 않았다.
‘맹모삼천지교’.
지방의 금수저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닌다.
《‘일류 학원’, ‘명문 학원’》은 서울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 말로는,《입시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이 아니라 대치동에 가야 한다》고 한다.
지방의 흙수저 자녀들에게 사교육은 사치다.
그들은 교육 경쟁에서 열위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세금걷어 공영방송 EBS를 운영하는 이유다.
감히 주장하지만《 EBS는 흙수저들을 위한 것》이다.
■ 문재인 알박기 유시춘의 거짓말 전성시대
그런 EBS에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오로지《내란 몰이》에만 가 있다.
EBS는《거짓말 성공시대》와《거짓말쟁이 전성시대》를 열어가는 중이다.
EBS 유시춘 의 행태는 지극히 반교육적이다.
그는 거짓말을 퍼트려 한동훈 을 모함, 유죄 판결을 받은 좌파 정치인 유시민 의 친누나다.
실은 유시춘 도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선거 운동을 위해《꽃 할배 유세단》을 운영할 만큼 정치 욕망을 과시한 바 있다.
그렇게 편향된 이가 교육방송 이사장직에 오른다는 거 자체가 문제다.
그는 취임 전부터 부적격 논란이 있었다.
이른바《호적세탁》의혹 때문이었다.
《'성'도 '나이'도》 분명치 않다.
한 술 더 떠, 그의 아들은 마약 범죄를 저질러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제 자식 교육도 제대로 못한 이가 남의 자식 교육하겠다고 나선 격이다.
물론 아들의 비행을 모두 부모 책임으로 돌릴 순 없을 것이다.
■ 가짓말, 거짓말, 거짓말
하지만 문제는 태도다.
책임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거듭하는 유시춘 은 비겁하다.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특히 청소년 교육에 좋지 않다.
교육방송의 주된 수요자는 청소년 계층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기 자식이 마약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이었다.
자신이 EBS 이사장이 되고나서 아들 마약 문제가 불거지니, 제 아들이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거짓 해명했다.
하지만 이사장 취임 직전에 그 아들은 2심에서 징역 3년형에 처해져 법정구속된 상태였다.
취임 이후 있었던 대법원 3심도 징역 3년형이었다.
■ 영화 《마더》속 주인공 닮은 유시춘
이쯤에서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일그러진 모성을 그린 영화 《마더》(김혜자 주연)다.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더’ 는 “사실은 우리 아들이 안그랬거든요!” 하며 절규한다.
결국 그 ‘마더’ 는 제 아들의 무죄 방면을 위해 다른 지적장애인�� 범인으로 만들고 만다.
그리고 그의 면회를 가서 하는 대사.
“(너는) 엄마 없어?”
소름끼치는 장면이다.
자식 사랑은 본능일 것이다.
하지만 남의 자식을 희생시켜 제 자식만을 위한다는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그 ‘마더’ 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 유시춘, 이재명 법카 사용 판박이
영화같지만, 그 마약사범의 ‘마더’ 는 교육방송 이사장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 신 모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확정판결을 받자 “아들의 결백을 믿는다” 며 “엄마의 이름으로 범인을 찾겠다” 고까지 했다.
대법원 판결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건 자식 사랑이 아니라 위험한 자기애다.
슬프지만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그는 이사장 재직 중《업무상 배임》을 저질러 현재 기소된 상태다.
이 또한 황당한 일이다.
지난해 10월15일 검찰이 유 이사장을《업무상 배임》으로 기소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교육방송 법인카드로 가족 식사용 장을 보는 등 2천만원 가까이 유용했다는 혐의였다.
그러자 그는 이틀 뒤 교육방송 이사회에서《업무상 배임》과 관련해《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해당 보도를《가짜뉴스》로 지목,《법적조치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발언은 교육방송 이사회 회의록에 남겨져 있다.
그 또한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법원에 따르면 유시춘 의 죄명은 정확히《업무상 배임》이고, 그렇게 《가짜 뉴스》운운하던 날 공소장이 송달 완료된 상태였다고 한다.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거짓말로 일관한 것이다.
■ 거짓말쟁이는 법카 계속 쓰고, 대통령실 전체 법카 한도는 "빵"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교육은 위선이다.
그건 허구만도 못하다.
지금 EBS를 통해 비쳐지는 건 출세지향 교육이다.
출세도 좋지만, 교육은 사람의 혼과 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EBS 교육방송 주 수요층은 청소년들이다.
교육방송 이사장 유시춘 의 거짓말 시리즈.
이래도 되는건지 묻고 싶다.
한국은 참 황당한 나라다.
우파가 거짓말 한마디 하면 온 나라가 뒤집힐 듯 하는데, 좌파는 거짓말 시리즈를 만들어가도 태연하기만 하다
유시춘 은 건재한데, 현직 대통령 차디찬 감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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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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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던 피터슨을 나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Woke Dystopian Future에서 우리를 구하겠다고 약속하는 조던 피터슨이 이끄는 새로운 글로벌 협의회가 있다. 좋은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그 배후는 누구인가?
답은 / ARC와 억만장자이다. 그는 우파 억만장자를 위해 일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조던 피터슨은 UN의 2030 STG 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지침"을 작성하는데 조력했다. 이것은 피터슨이 개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UN의 실제 어떤 기관인지에 대해, 역시 우리나라에는 대부분 정보가 없다. 나는 학교에서 UN의 하부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장래희망인 학부생들을 많이 마주쳤고, 그들은 그것이 선행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그 기관에 대해 여기에다 설명할 수 있는 기력이 없다. 알아서들 찾아봤으면 한다. 세계에는 엘리트 기관들이 있다. UN은 그런 기관이다. 유엔의 하부 기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 동양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실체의 기관��다. 그들은 실제 전쟁에 개입하며, 주관하고, 평화에 관심이 없으며 사람들의 학살에 무관심하다. 이것은 나의 생각, 혹은 어떤 인터넷 기사 따위에서 읽은 것을 작성한 것이 아니다. 대학원에서 세계 정치학 수업을 들으며 배운 사실에 근거한 역사이다.
조던 피터슨은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와 같은 극도로 엘리트 주의적인 삼국 위원회에 초대되어 대통령들, 총리, 저널리스트, 경제학자들에게 <남성이 사회에서 퇴출되고 생산을 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강의하게 된다. 역시 그가 주로 강의해왔던 내용이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도 왔지만 그는 또 울고 갔다. 3분에 한 번씩 우는 조던 피터슨은 한국 남자를 보고 또 울었고 기가 맥힌 현실에 이번에는 침대 정리하고 청소하라는 말조차 못하고 돌아간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철학적으로 무지한 청중에게 포스트 모던 철학자를 피하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비록 그들이 디지털 장치 및, 미디어, 물리적 현실을 통해 인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조작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던 피터슨은 현실을 알고 있는 학자이다. 그는 1950년대 후반에 캐나다 정신의학 협회를 운영했던 CIA 요원 도날드 케매런 덕분에(?) 정신의학 부서에서 시작하여 MK울트라 계획 에 대해 맥길 대학교에서 악의적이고 정치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슬레보예 지젝과는 완전히 길이 다른, 결이 다른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정치적이고, 정부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이야기들, 백인 인셀들이 환영하는, PC주의자들이 질색하는 그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싫어하지 않는다.
조던 피터슨이 뭐 미국에서 CIA랑 뭘 하고 어쨌든, 한국을 개발 도상국 이하의 문화 수준과 처참한 능지로 파괴하고 있는 무슨 메일 호소인들, (레드필 코리아, 배슬기 남편 등등) 과 다르게 올바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선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남성성과 인류애에 대해 말하기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youtube
그러나,
기쉬 갤럽(gish galloping)의 개념을 이해하면 조던 피터슨의 말들이 어째서 엉망 진창인데에도 설득력을 갖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언쟁적 파이터' 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는 점이란 그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슬레보예 지젝과의 대담에서 맑시즘 조차 이해하지 못하여 폭행당한다. (하지만 그 영상에서 한국인들은 조던 피터슨의 승리라고 말한다. . 나는 그 사람들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그의 이론들을 말하자면, 그는 편협하고, 인간의 다양성을 억압하며,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이를 테면 아이큐가 높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직업과 아이큐가 낮은 사람들이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을 구분했던 일전의 강의에서 그는 19세기 식의 인종 분류 방식을 전달하며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그러한 행위로서 붙혀진 나치 라는 자신의 별명을 알고 있다.
계속하여 피터슨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류학 용어를 사용하며 '전통적 백인 남성'의 가치와 명맥에 대해 이야기 하며, 그로 인해 인종적 차별 및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크게 비판받는다.
그런데 조던 피터슨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점이 있다. 그가 정말 정치적인 지식인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번 대선를 치룰 무렵
한국에서는 젠더 갈등을 통한 언론 조작, 20대, 30대 남성(이대남) 선동을 통한 언론 조작을 위해 정치권에서 유튜버들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영상들을 제작한 바 있었다.
그 중, 선동을 위해 이용된 학자 중 한 명이 '조던 피터슨' 이었다.
재미있지 않나?... 정말 재밌지 않아?... 조던 피터슨은 전통적 백인 남성의 정신에 대해 말하는 학자이고, 그들의 삶을 계승하는 이론, 백인들의 정상적 결혼생활과 사랑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아시아인, 가부장제 유교국가 한국에서 그의 이론이 '지식인'의 모습으로 사용된다. 클립으로 조각조각 난 채로..
반면에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슬라보예 지젝의 틱이나 모습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대조되어...
대선 즈음하여 그가 페미니즘, 혹은 남성우월주의자 등으로 한국에서는 굉장히 파격적으로 부상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유튜버들에게 뒷돈을 주고 조던 피터슨의 강의를 필요한 방식으로 편집하고, 클립에 자막을 넣어서 정치에 사용했다.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당이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고, 페미니즘을 말하는지, 어떤 당이 이대남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지에 대해, 정부와 유투버들은 보수와 좌파 등의 고리타분한 단어들을 ���워넣기 시작했다.
당시 조던 피터슨은 이미 예전에 매트 월시(Matt Walsh)와 같은 전형적인 우파 파시스트과 동맹을 맺은 상태였고, 그와 걸맞는 일 들을 하고 다니기 바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작은 동방 국가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위상에 그다지 상관이 없었거나 아니면 이미 정치적 동의가 구해진 상황이었을테지만.
그의 일조 덕분에 우리 나라는 건국 이래 최악으로 남녀가 서로를 혐오하고 싫어하는 세대를 맞이했고, 가장 어리석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세대를 맞이했다.
하하... 재미있다.
한국에서 피터슨의 명성이 한참 높을 당시 '나는 솔로'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조던 피터슨의 책을 선물하던 여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리석음이, 그 무지들이...
그는 여전히 '정권의 지적인 얼굴' 이다.
그는 우매한 사람들이 열광하고 좋아하는 가장 '똑똑한 지식인' 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은 철학자를 포함하여 지식인이 하는 말 중 알아듣기 가장 쉽고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던 피터슨의 이야기는 너무나 정확해서, 어떠한 근거나 인용을 떠나서 그의 말은 대부분 '옳게' 들린다. 즉 그의 이야기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사용되는 공식>과 같다.
나는 그것들에 위험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ARC와 손을 잡은 그가, 극우 파시스트가 되어버린 변절 앞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피터슨은 민주당의 구호와 같은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썩어빠진 민주당의 가짜 구호가 내려가자, 한국은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돈이, 내가, 섹스가 먼저인 나라가 되었다.
즉 우리에게는 상징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라는 민주당 따위의 심볼일지라도, 어떤 선을 이야기하는, 선동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정치적 지식인의 상징이다. 그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그의 그 불행한 삶 속에서 나름대로 애쓰며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신을 믿기를 바란다. 그가 나치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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