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모택동 사카모토료마 김옥균 갑신정변 개화파 디테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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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완성
요즘 평일 오후에�� 혼자서 혹은 와이프랑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이모님"께서 아기를 돌봐주���는 덕택에 누리는 호사. 대체로 강북 지역의 새로운 카페들을 발굴하고 있는데, 대학로 이화사거리에 위치한 <연건당>에서 <청년 김옥균>이라는 낡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1시간 반 정도 읽고 돌아와서는 종로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빌리려다 실패. 결국 구한말 개화파들에 대한 다른 책 2권을 집어들고 와서 지난주 내내 읽었다.
2012년에 <중국의 붉은 별>과 <사카모토 료마>를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의 근대 국가 형성 과정, 구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혁명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난 3년간 틈틈이 살펴보았다. 이번에 비로소 우리나라의 동시대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니 그때의 동북아 시대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일본의 막부 타도파들이 결국 혁명에 성공한 데에 반하여 김옥균을 위시한 조선 개화파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외부 상황을 제외한 내재적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디테일"에 있었다고 본다. 모택동과 주은래 등의 공산당 수뇌부들, 사카모토 료마와 조슈 번 지사들이 일으킨 거사와 정변들은 훨씬 더 치밀했다. 갑신정변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여러가지 구체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들이 결국 조선의 기득권 세력 혹은 외세에 의해서 저지되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하나같이 준비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갑신정변만 하더라도 성공적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를 손에 넣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명성황후의 심복이 청군과 내통하는 것을 막지 못해 “삼일천하"로 끝나고, 아관파천 사건 역시 개화파 대신들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방비를 하지 않았던 대에 원인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성공한 혁명가는 없고 실패하여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애국 지사들만 등장한다.
중국과 일본의 근대 혁명가들을 칭송할 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의 성공은 역사적 사실이고 우리나라 선조들은 끝내 실패했는데, 약한 국력, 외세��� 개입 등의 외부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단순히 “준비”가 부족해서 실패했던 거사가 많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말로 어려운 일을 끝내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1%의 가능성까지 준비하는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일어날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일에 대비를 했느냐, 무방비 상태냐에 따라 그 일의 성패가 걸려있다. 쉬운 일이라면 확률 게임이니 운좋게 한두번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면 오래 걸리기 마련이고 90/10의 확률이라도 10번 중에 1번은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그 경우의 수에 대비를 해야하고, 10번이 아니라 100번 중에 1번 일어날 상황도 미리 예측하고 방비해야만 큰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러한 작은 가능성까지 대비하고 차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옥균은 천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당시 개화파 리더들 한명 한명의 이력을 보면 다들 정말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혁명은 없다. 모택동과 료마의 여정에서 감동을 느꼈던 부분은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때로는 과감히 전진 혹은 심지어 후퇴 결정도 내리면서 꾸준하게 한발씩 내딛어 갔다는 점이다.
큰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그 뜻에만 심취하여 정작 실행은 대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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