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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출발선에서
이제 7시간 뒤에는 우리 세 식구가 뉴욕행 KE081편에 탑승을 완료하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잠이 안오는 건 뭐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글을 남길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키보드를 무의식적으로 두드리고 있다.
나는 왕복 티켓이고, 둘은 편도 티켓. 오늘 아들 장난감과 책들을 사촌 동생네에 전해주는데 무심코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월은 참 빠르다. 앞으로의 2년도 그렇게 지나가겠지. 그와 동시에 하루하루, 한 달 한달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다.
항상 출국 전날이면 밤에 운동을 한다. 오늘도 짐싸다 말고, 결국 크로스핏 마지막 수업에 가까스로 출석했다. 불법 유턴까지 해가면서. 코치님이랑 뉴욕 이야기를 수업시간 내내 했더니, 샤워장에서 다른 분이 물어본다. 뉴욕에 자주 가시냐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결국 “퇴사”가 부럽다는 코멘트를 하셨다.
뉴욕, 외교관, 롱디, 아들, 창업, 의료, 외국인...등 수많은 키워드 중에 하필 퇴사라니. 취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윽고 퇴사를 꿈꾸는 청춘. 이것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현주소인가 하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이 “일”이 아닌 경우가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래도 다니는 직장에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지바카케어가 그런 직장이 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포츈 500 컴퍼니가 된다는 어마무시한 정량적 목표가 있지만, 그보다 저 중요한 정성적 지점은, 퇴사를 꿈꾸는 청년의 부재다.
앞으로 2년, 또 잘 살아보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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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man 70.3 Finland 후기
후기를 쓰기가 너무 힘들다. 하염없이 길어질 것만 같은 이 글. 짤막하고 담백하게 쓰는게 목표다. 자, 한번 시작해 봅시다.
작년 속초에서 철인3��에 입문한지 거의 정확히 1년만에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대회인 하프 아이언맨에 도전했다. 결과는! 5시간 38분의 기록으로 무사히 완주하였다. 올해 1월만 해도 정말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어찌어찌 무사히 끝냈다!
<두 팔을 번쩍 들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모습. 일주일 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여튼,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세 손가락에 꼽을만큼 성취감이 드는 활동이었고, 준비과정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연이 많았기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입문에 대한 상담은 언제나 환영!
핀란드 Lahti에서 열린 Ironman 70.3
Part 1, 시합 후 개인적인 소회(시합에 대한 정보 없음, 개인적인 감상 위주)

<피니시 직후 Jonatas, Timur, 나, Janne와 함께>
이번 시합을 준비하고 또 본 시합을 치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도 여러 번 했고, 스스로 답하고 반문하는 과정을 여러번 겪었던 것 같다. 아직도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takeaway를 공유해본다.
1. comfort zone을 넘어선 도전에서는 뭔가가 upgrade 되기 마련이다
- 작년에 올림픽코스를 입문하면서도 분명 같은 것을 느꼈지만, 이번에 하프 아이언맨에 도전하면서 또 한번 이 과정이 있었다. 연초에 대회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평소라면 생각도 하지 않았을 새벽 6시 철인3종 훈련에 등록했다.

<2월부터 6월까지 인스타그램 피드의 90%를 차지했던 나의 모습이다.>
- 정말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 6시면 와츠로 출근했다. 기억에 가장 남는 날은 2월 중순 어느날. 회사에서 일일 워크샵을 앞두고 남산을 20km 달린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어두컴컴한 남산 산책로를 달리다보면 어느새 신라호텔을 배경으로 동이트고 곧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저 위에 고정식 로라를 1시간 반씩 타고 출근하면 8시반. 기분이 말도 안되게 상쾌하고 좋았다. 회사에서 먹는 아침은 어찌나 꿀맛이던지. 내가 지난 5년간 거의 매일 먹은 요거트+무슬리 조합인데, 평소보다 3배쯤 맛있었다. 그렇게 넉달을 보내니 뭔가 달라지긴 달라졌다. 아마 잦은 출장만 아니었다면 더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2. 철인 3종은 정말 정직한 운동이다
- 나를 사회생활 이전에 만난 친구들은 알겠지만, 나는 정말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운동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항상 뭔가 의지는 있었지만 재능이 없었던 터라, 별로 안했다. 20대에는 흡연을 즐기고, 음주도 꽤 했고, 다른 취미가 많았기 때문에 운동은 특별히 관심이 없었다. 그 전에는 학창시절 내내 체력장 5급의 공식적인 기록이 있다.
- 철인 3종 입문 전에는 크로스핏을 열심히 했다. 2년간 꾸준히 했는데, 크로스핏을 하면서 운동에 재미를 붙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잘하지는 못했다. 근육이 워낙 안붙고, 근력 자체를 타고나지 못한지라, 어느 시점에서는 정말 늘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게를 많이 드는 것 자체에 흥미를 많이 못느껴서 한계에 봉착했다고 느꼈다.
- 철인 3종은 달랐다. 정말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 이것도 똑같이 어느 시점이 되면 기록 향상에 어려움을 느끼겠지만, 적어도 어느정도까지는 훈련량에 비례해서 기록이 향상되는것 같다. 그래서 생활습관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어마어마한 훈련량을 꼭 소화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5회는 달리기/자전거/수영 가운데 하나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 올해 훈련량을 보면, 자전거가 가장 많았고, 수영이 가장 적었다. 이에 비례해서 이번 시합 기록도 나왔다 :-)
3. 운동으로 만나는 새로운 커뮤니티
- 본업 이외의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이냐? 가 결국에 어떠한 취미 생활을 가질 것이냐와 직결되고, 나아가서는 본업 바깥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류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번 시합에 참가한 핀란드의 전임 총리 Alexander Stubb이 멋진 말을 남겼다. “Triathlon is new golf for middle-aged professionals.” 사실 정말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회사 일에 언제나 100%를 쏟았다. 이미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여기에 더해졌다. 친구나 다른 취미생활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
- 달리기를 하고, 수영을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낼 수 있다. 특히 새벽이나 밤 늦게라면 더욱 가능하다. 술을 마시거나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대신 새벽에 만나서 조깅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또 시합에 같이 나가서 교류를 한다. 물론 시합이 끝나고 마시는 맥주는 정말 엄청나게 맛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
-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당장 앞으로 몇 년간은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최근에 들어서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니 새벽까지 무언가를 하다보면 새벽 운동은 물건너가기 일쑤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이런 분들과 같이 교류하고, 함께 활동하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 아마 이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을 것 같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자전거 덕분에 소비에 대한 욕구도 꽤 충족시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

<피니셔 티셔츠와 메달, 배번...보기만해도 설레는건...>
여튼, 정말 지난 6개월동안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미 아는 분들은 알고 계시지만, 이제 곧 4년간 몸담았던 사랑했던 직장을 떠나게 된다. 험난한 창업 전선에 곧 뛰어들 예정이다. 이번 시합은 그래서 더욱 뜻깊었다. 나에게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남기는 추억이었다. 지겹게도 갔던 핀란드였지만 새로운 장점들을 또 발견했고, 그간 이곳에서 만났던 소중한 인연들도 유효했다. 핀란드도 잠시 안녕, 그리고 철인3종은 안녕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큼의 애정은 쏟지 못할 것 같다. 이제 모든 애정은 정말 갓난아기와 같은 우리의 새로운 회사에 온전히 보내져야 한다. Goodbye for now!
(Part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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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시합 전/시합날 (사진 위주의 정보)
<시합 전>
작년에 회사에서 단체로 핀란드���서 최초로 열리는 공식 아이언맨 대회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했다. 이미 철인3종에 입문했던 나로서는 피해갈 수 없었던 기회였다. 솔직히 그때만 해도 하프 아이언맨에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올림픽 코스만 해도 충분히 힘들었고, 그 2배라니,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어쨌든 시간은 후딱 흘러갔고, 결국 6월이 찾아왔다.
6월 25일 헬싱키행 핀에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헬싱키 출장이었기에 부모님을 설득해서 어머니와 아들은 나랑 함께, 아버지는 며칠 뒤에 합류하셨다. (결국 시합 응원은 오지 않으셨다 ㅠ)

<대낮같은 아마 이때가 저녁 8시. 공원에 여전히 사람이 많다. 매일 저녁 퇴근하고 놀이터와 공원에서 아들과 시간을 보냈다. 여름 북유럽은 정말 천국이다.>
다들 핀란드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유럽에서 가장 서울과 가까운 도시가 헬싱키다. 핀에어 직항을 이용하면 갈때 9시간, 올때 8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천에서 아침 출발 비행기가 헬싱키에 오후 2시면 도착하고, 헬싱키서 오후 5시반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인천에 다음날 아침 8시면 도착한다.

<이번 대회가 열린 Lahti에서 2016년 6월에 회사 워크샵이 있었다.>
보다시피 잔잔한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날은 게다가 날씨까지 따뜻해서 기온이 30도에 육박했다. 신청할 당시에는 이런 날씨를 상상했으나, 시합주간 일기예보는 기온 14도에 초속 8미터의 강풍, 게다가 호수 온도는 16도. 정말 악조건의 대회가 될 조짐이 보였다.

<대회 전날 모습. 강풍에 소나기. 다음날도 이럴까봐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대회가 오후 4시에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핀란드는 여름에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 이러한 특이점을 잘 살려서 오후 4시 시작, 자정 컷오프인 유니크한 일정이 탄생했다. 그래서 전날 오후 늦게 헬싱키를 출발하여 대회장에 가서 선수 등록을 하고, 그날 다시 헬싱키로 돌아와 1박,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라티로 넘어가 자전거 체크인 및 바꿈터 셋팅을 했다.
<이번에 참가한 우리 회사 팀원들. 5명을 제외하면 모두 철인3종 최초 경험자. 1명빼고 모두 완주를 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시합전날에는 레이스 브리핑과 파스타파티가 있었다. 나는 열심히 파스타를 먹느라 저 사진을 찍는 것을 깜빡했다. 여러번 참가한 시합이지만, 그래도 공식 70.3은 처음이라 열심히 레이스 브리핑을 들었다. 특이한 점은 트랜지션이 꽤 길다는 점, 그리고 사이클 중간에도 보급을 3회나 한다는 것이었다. 꼼꼼하게 보급 관련 사항을 체크하고 나오자마자 파스타를 꾸역꾸역 먹었다. 이번에는 카보로딩을 제대로 했다. 시합 3일전부터 삼시세끼 밀가루와 밥을 열심히 먹었다. 저녁에는 숙면을 취하고자 꼬박꼬박 와인도 한잔씩. 시차적응이 여전히 잘 안되서 새벽에 계속 깼는데,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가니 아침 7시까지 푹 잘 수 있었다.

<아들도 덩달아 함께 카보로딩 중. 헬싱키 역시 북유럽 특유의 살인적인 물가에 외식으로 특별히 먹을만한 음식은 없다. 그나마 피자를 먹는걸 추천한다.>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유럽 원정, 특히 핀란드나 북유럽이라면, 주저없이 음식을 싸들고 가서 드시는 것을 추천. 식도락이라 할만한 음식도 없고, 가격도 비싸다. 여행지에서 큰맘먹고 비싼 돈 주고 외식했는데 맛없는것 만큼 속상한 일도 없다!

<공식 “파스타 파티" - 파티라고 해서 뭔가 있나했는데, 그냥 부페를 차려놓고 먹는 것이었다. 맛은 없었지만, 그냥 꾸역꾸역 먹었다.>

<이번 시합 회사 공식 유니폼, 바바리안 트라이수트>
사실 6월 초 열흘간 출장을 다녀온 뒤로, 운동 의욕이 사라져 훈련을 매우 게을리했다. 1월 중순부터 5월까지 빡빡하게 새벽마다 훈련을 하다가 6월 들어 스케줄이 망가지니 정말 복귀하는게 힘들었다. 데상트 듀애슬론은 좋은 기록으로 들어왔지만, 마지막 토요일에 혼자 떠난 90km 양수라이딩에서 생각보다 저조한 평속으로 상심을 했다. 헬싱키 도착해서도 여전히 몸이 무거웠는데, 화요일에 다녀온 오픈워터 연습 덕분에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헬싱키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Oittaa 호수에서 오픈워터 연습>
다음날은 팀원들과 싸이클 30km를 가볍게 탔는데, 역시 컨디션이 좋았다. 내친김에 8km를 4분30초 페이스로 전력질주.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월요일에 도착해서, 화요일에 오픈워터 수영, 수요일에 싸이클 및 달리기. 목요일에 가벼운 조깅을 하고, 훈련은 생략했다는 것.

<싸이클 훈련 후 헬싱키로 돌아오는 길에. 이 날도 날씨가 정말 좋았다.>
자 이제 시합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문제의 일기예보가 우리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렸었다.>
날씨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위에서 봤던 아름다운 사진과 달리 토요일 날씨는 정말 드라마틱하게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다행히 시합날에는 저정도는 아니었다. 비가 예상보다 일찍 그치면서 바람도 약간은 잦아들었지만, 그래도 춥고 쌀쌀한 날씨였다.

<결승점에 가서 사진을 미리 찍었다. 이때가 오후 3시 경. 7시간 뒤에 돌아올 것을 다짐.>
오후 4시 10분 스타트인 특이한 일정이었기에, 아침에 헬싱키에서 9시30분에 출발해서 11시가 채 되지않아 라티에 도착했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을 싸서 내려왔더니 12시. 자전거와 물품백 체크인을 완료하니 1시가 채 되지 않았다.

<자전거 체크인 전 “공식 출정 사진”. 원피스 수트가 몸매는 확실히 더 좋아보인다.>
원래는 아침에 허겁지겁 일어나서 비몽사몽간에 짐챙겨서 잠이 덜 깬 상태로 수영을 해야하는데, 오후 4시까지 기다리려니 뭔가 좀 어색했다. 1시반에 팀원들 대부분이 식사를 한다고 했는데, 왠지 제대로 밥을 먹는건 내키지 않아 혼자 방���서 커피와 빵을 충분히 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고, 3시에 웻수트를 챙겨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생전 안하던 수영연습도 참가하기로 했다.

<대회본부 및 출발/피니시가 있는 Sibeliustalo. 라티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클래식 콘서트 홀이다.>
이번에는 단체로 왔으니 출발하기 ���에 단체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처음 참가하는 분들이 많은지라 웻수트를 입으면서 다들 헤매는 모습이었다. 결국 뿔뿔이 흩어져서 사진은 찍지도 못하고 삼삼오오 수영 스타트로 향했다. 수영 스타트 대기하는 30분동안 소나기가 2번 왔고, 햇빛이 쨍쨍하기도 하고, 강풍이 갑자기 불기도 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 시합이 시작되었다.

<함께 수영 스타트에 섰던 Timur와. 항상 이 자리, 이 시간에 가장 많은 대화를 하고, 추억을 쌓는것 같다. 우리는 내년에 함께 또 다른 시합에 참가하길 꿈꿨다.>
자, 이제부터는 거의 6시간 동안 끊임없이 움직이기만 했다. 피니셔픽스에서 또 고맙게 사진을 남겨주었다.
<시합>

5시간 30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유일하게 어긋난 부분은 딱 하나 “수영". 그리고 굳이 더한다면 트랜지션 타임. 트랜지션이 길기도 했지만, 바구니 형태가 아닌 백 형태의 바꿈터에 대한 적응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도 2차로 목표한 회사 5위안에 들어서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수영, 싸이클 후에 하는 하프마라톤에서 5분 페이스 안쪽으로 계속 유지를 못한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전체 기록은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수영 49:49
정말 처참한 기록. 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위 사진으로 봐도 뭔가 잘못된 표정을 알 수 있다. 혼자서 한참 바깥으로 돌았다. 지난 대만 대회 이후 두번 연속으로 발생한 문제. 우측 호흡만 가능한 내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을때 계속 바깥쪽으로 도는 경향이 관측되고 있다. 시계방향으로 돌때는 부표나 라인이 계속 보여서 큰 문제가 안되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반시계 방향. 그리고 초반에 수경에 물이 들어가는 문제로 한번 패닉, 그리고 중간에 파도가 어마어마해서 한 번 또 멘붕. 오픈워터 연습이 거의 전무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음. 역시 철인 3종은 정말 정직한 운동이다.
싸이클 2:51:44
개인적으로 이번 시합에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이다. 물론 달리기 기록이 상대적으로는 더 좋지만, 싸이클은 중간에 한번 무너진 것 이외에는 잘 타서 기뻤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끝까지 잠바를 입을지 말지 고민했는데, 입기로 하길 잘했다 싶었다. 처음에는 햇빛에 바람도 적었지만, 중간 40km지점에서 엄청난 맞바람이 불어와 평속 30km가 5km 구간 세번 연속 무너졌다. 그때까지 평속 33km를 유지하고 업힐도 쌩쌩 잘 올라가고 있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 1/4 구간은 다시 아주 힘을내서 열심히 탔다. 그러나 또 한번의 실수가 있었다. 다운힐에서 또 욕심을 내다 커브에서 낙차. 다행히 속도가 거의 줄어있던 상황이었고, 바로 도로 옆 잔디밭으로 넘어진터라, 넘어진 즉시 일어나 자전거에 올라서 다시 내려왔다. 아마 자전거에서 떨어진 시간은 15초 정도 밖에 안되었던 것 같다. 아마 낙차가 없었다면 2시간 50분 이내로 들어왔을 것 같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보급품 섭취 스킬. 자전거 위에서 양손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해서 보급품으로 받은 에너지바를 여는데 애를 먹었다. 이것 때문에도 아마 몇 분은 손해를 본 것 같다. 그래도 평지/업힐에서는 여러 명을 추월하며 나름 좋은 퍼포먼스를 냈던 것 같다.
런 1:44:29
표정이 또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정말 힘들었다. 사실 바로 전 시합인 데상트 듀애슬론에서는 완벽하게 페이스조절을 하면서 여유있게 뛰고도 4분 40초대로 10km를 달린터라, 그 때랑 비교해보면 정말 서너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싸이클 끝나고 런 시작전에 먹으려고 코오롱 리커버리를 물에 타서 준비를 해놓았는데, 이게 말도 안되는 실수였다. 500ml를 어떻게 T2에서 먹겠다는 계획이었는지...잠깐 들고뛰다가 1km 지점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미 다리가 무거웠다. 4분 40초대 페이스가 힘겹게 느껴졌다. 그래도 5분 이내로 뛰려고 계속 안간힘을 다했다. 지난 하프마라톤 시합에서는 10km 지점에서 에너지젤 이외에는 물만 마시고 달렸는데, 이번에는 거의 5km마다 젤을 섭취했다. 그래도 힘이 부쳤다. 그래도 역시 런이 재미있는건 이때부터 어느 정도 순위를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팀 top 5를 Janne, Miguel, Jonatas, Timur, 나 이렇게 예측하고 있었는데, Timur가 내 앞에 있고 Jonatas가 내 바로 뒤에 있는 것이 보였다. 의외로 다른 Janne와 릴레이 주자인 Laura가 내 앞에 있는 것이었다. 처음 5km는 얘네는 무조건 잡자는 생각이었는데, 내 페이스대로 뛰는 것도 버겁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결과적으로 Timur가 2번째 랩에서 급격하게 처졌고, Jonatas는 꾸준하게 따라와서 결국 마지막 5km를 남겨놓고 우리 셋 중에 선두로 올라갔다. Jonatas보다 내가 늦게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마지막 1km 지점을 앞두고 콜라를 한잔 마시고, 스퍼트를 시도했으나, 다리가 너무 무거워 힘이 나지를 않았다. 결국 그와는 20초 차이로 아깝게 4등을 했다. 뛸때는 힘들었지만, 결과는 역시 런이 가장 상대적으로 좋았다. 회사에서도 Jonatas와 내가 독보적 1, 2위였다. 아마 날씨가 더웠다면 더욱 상대적으로 기록이 좋았을 것 같다.

<밝은 표정으로 멋진 피니시 포즈 중인데, 이번에도 하필 내가 들어올 때 응원하는 친구들이 놓치는 바람에 피니시 사진은 물건너갔다. 언제쯤이면 하나 건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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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 준비 후기 + 팀 홍보
“7월 2일 일요일 오전 10시 경. 1시간 20분동안 쉬지 않고 페달을 돌린 끝에 마침내 반환점 도착. 헬멧을 던져놓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고 첫번째 2km를 도는 순간, 3시간 안에 들어올 것을 예감했다.”
연초에 예고했던 철인3종 경기에 출전했고, 목표했던 완주를 넘어, 2시간 53분의 기록으로 처녀 출전에 “sub-3″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회사원들이 잘 하지 않는 활동이다 보니, 주변에서 궁금한 점이 많으신 것 같아, 상세한 후기를 공유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 4-5회 하루 1시간씩 운동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
요약 (TLDR)
지난 6개월 간 평균 수영 주 2회, 달리기 주 2회, 자전거 월 1회 / 매주 저렇게 지킨 건 아니고, 어떤 주는 1회~어떤 주는 4회로 편차가 컸다. 특히 출장을 거의 매월 10일 이상 다녔기 때문에 아주 규칙적일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신경썼던 포인트 몇 가지.
1. 어떤 상황에서든 운동을 한다 - 개인적으로 런닝머신에서는 집중을 못해서 달릴 수가 없다. 동남아 출장,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야외에서 조깅이 불가능. 아침이나 오후에 짬을내서 30분씩 수영을 했다. 유럽이나 미국에 출장을 가면 호텔에 수영장이 딸려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경우에는 반대로 달리기를 최대한 했다. 거리와 시간은 그때 그때 형��대로. 어쨌든 일주일 분량을 채우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렇게 하다보니 결국 많은 준비가 필요한 자전거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 또한, 어디 멀리 운동을 하러가지 않고 모든 활동을 집과 회사 근처에서 했다. 달리기는 집 근처에서, 수영은 회사 바로 옆에서.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고 가족이랑도 보낼 시간이 항상 부족한데, 운동에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이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 따라서, 운동 자체 이외에 드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비도 정말 필요한 것 이외에는 관심 조차 가지지 않았다. 한때, 자전거 클릿에 대한 욕심이 생겼으나, 현명한 우리 팀 멤버들 덕분에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2. 잘 하는 것에 집중하고, 과락을 면한다 - 아마 철인 3종을 고려하는 분 모두 자신있게 느껴지는 운동과 자신없는 운동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평소에 운동을 하는 성인 남성이라면, 자전거 40km와 달리기 10km는 개별적으로는 어떻게든 완주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평소에 수영을 하시는 분은 드물기 때문에 수영 1.5km가 큰 벽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달리기에 자신이 있었고, 수영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수영을 어떻게든 완주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에 먼저 집중을 했다. 출전 결심하고 가장 먼저 수영강습을 끊고, 나중에는 개인 레슨도 신청해서 몇 번 받았다. 대략 3-4개월 만에, 완주할 수 있는 상태까지는 끌어올린 것 같다. (대회에서는 엉망으로 했지만...) 달리기는 우리 팀 멤버중에서도 훈련 시에 항상 1등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고, 5분대 페이스에 만족하지 않고 같은 코스를 계속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꾸준히 끌어올렸다. 실제 대회에서 수영/사이클 이후에도 평소와 같은 4분 40초대 페이스를 기록할 수 있었고, 덕분에 3시간 이내로 결국 들어올 수 있었다.
3. 패턴과 성향이 비슷한 팀원들을 2명 이상 만난다 - 황준호 형과 허진호 군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다. 두 분다 이미 철인3종 경험자이고, 여러가지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번과 중복되는 내용이지만, 일단 셋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평소에 일정이 너무 바쁜 분들이 아니라서 당일에 편하게 결정해서 운동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3명이 필요한 이유는, 1명이 못오더라도 다른 1명이 백업을 할 수 있어서, 혼자 운동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진호 군이 합류한 이유로 활기도 많이 돌았고, 그래도 일주일에 적어도 1번 이상은 같이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의 가장 특이점은 모두 알뜰한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특히 완주자 2명이 이것도 필요없고 저것도 필요없다고 할 때마다, 초보자인 내가 혹시나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사려고 했던 것들을 사지 못하게 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연습이지 장비가 아니다. 참고로 나는 웻수트는 가장 저렴한 200불 대, 자전거 역시 100만원 이하의 로드바이크를 클릿없이 사용했다. 트라이애슬론 수트 따위도 입지 않고, 집에 있던 옷들을 입고 완주했다.
Next Step
내년 여름, 핀란드에서 열리는 70.3, 즉 half ironman에 참가하는 무모한 결정을 했다. 이 대회는 수영 1.9km, 자전거 90km, 달리기 21km다. 수영은 30% 추가, 자전거와 달리기는 2배 이상 더 해야 한다. 시간도 3시간에서 6시간으로. 완주할 거라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앞으로 1년간 꾸준히 준비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 셋도 광화문을 기반으로 꾸준히 훈련을 해나갈 예정이다. 2-3달에 1번씩 대회 참가가 예정되어 있고, 내년 3월에는 대만에서 열리는 해외 대회에도 참가해보려고 한다. 같이 운동을 하시고 싶은 분은 [email protected]으로 메일 혹은 페북 메시지, 카톡 등 다양한 채널로 연락을 하시면 된다. 다만, 사교활동 혹은 정말 빡센 훈련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랑은 맞지 않을 것 같다. 최대한 캐주얼하게, 효율적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다음 대회는 10월 서울에서 열린다. 지금 바로 준비를 시작한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서울 대회의 장점은 집에서 푹 자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 돈도 시간도 훨씬 적게 든다.
팀 홍보에 사진이 오히려 역효과일 것 같아서 맨 마지막에 넣었다. 간지라고는 전혀 안나는 아저씨 3명. 허진호 군은 아직 꽃다운 20대인데 왜 여기 껴서 세트로...팀 이름은 허진호 군이, 단체복은 황준호 형이 협찬함 :-) (Team SM Fever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는건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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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을 앞두고
올해는 유독 페이스북에서 한해를 정리하는 글이 눈에 많이 띈다. 우리 집은 신정을 쇠는 지라, 항상 연말은 부산에 내려와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에 나는 차분하게 한해를 정리해볼 기회가 없다. 특히 올해는 무리한(?) 업무를 연말에 벌여서 더더욱 정신없이 연말이 지나간듯. 오늘 의외로 시간이 나서 오후에 등산 및 달리기를 하면서 짧게나마 올 한해를 돌이켜 봄.
다음은 2014년에 회사 옮기면서 썼던 글에서 발췌: “호기심, 용기, 에너지 이 3가지가 앞으로 남은 +50년 동안 고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2년반동안 대명제는 크게 바뀌지 않은 듯. 다행히 지금도 100% 같은 마음이다.
올해 가장 개인적인 성취는 2015년 봄에 시작한 크로스핏을 아직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 게다가 내년에는 철인3종경기 도전이라는 더 큰 목표가 생겼다. 운동을 가장 큰 성취로 꼽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재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중고등학교 내내 체력장 5급에 평생 턱걸이는 못해볼 줄 알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더니 결국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여름에 퍼블리와 함께 했던 <칸 국제광고제 프로젝트> 역시 뜻 깊었던 순간. 대학시절 이후로 거의 처음 밤을 꼴딱 샜다. 그것도 4번이나. 분명 녹록치 않았고 다시 하라고 하면 망설이겠지만, 분명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자격미달 저자에게 기회를 주신 퍼블리에 감사 또 감사, 허접한 글을 구입하고 읽어주신 독자분들께는 큰절 100번.
본업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올해 여름에 답 안나오는 방송을 수차례 경험하고, 심지어 외부 행사에 가서, 성공 사례가 아닌 실패 사례를 발표했으며, 행사비 추가 지출이 아까워 직접 게임 해설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어서 너무 뿌듯하다. 연말에 모 행사에서 작은 상을 하나 받으면서 태연하게 행동했지만 실은 울컥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올해 추가하고 싶은 키워드는 “끈기"다. 호기심, 용기, 에너지 + 끈기. 어쩌면 올해는 지난 30여년간의 인생에서 몇 가지 일에 가장 끈질기게 매달릴 수 있었던 한 해라서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올해의 책,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글 역시 같은 주제다.
- 올해의 책: 그릿 (TED: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 기억에 남는 글: If It Doesn’t Suck, It’s Not Worth Doing
내년에도 뭐든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한해가 되었으면. 연초부터 거대한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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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 공항. 살다보면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미지가 있다. 2008년의 나리타 공항이 그런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그해 8월,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 가장 저렴한 스칸디나비아항공 나리타 경유편을 끊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온라인 체크인을 미리한다거나 하는 개념 역시 없었다. “호스텔월드"에서 찾은나리타 교외에 있는 “야마모토 상”의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는 공항에 도착했더니, 스칸디나비아 항공 스톡홀름행 비행기는 취소되었고, 대신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ANA 항공편을 대체편으로 제공하였다. 그 당시 55번 게이트 앞에 앉아서 한참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설렘으로 100% 가득차 있었던 20대 중반의 마음.
그리고 8년이 지나서, 오늘 나리타에서 샌프란시스코행 ANA 항공편을 타게 되었다. 출발이 지연되었고 게이트도 변경되었는데, 공교롭게도 55번이다. 게이트를 보자마자 어디선가 본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게이트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지만 모든게 신기하고 설레기만 했던 그 때와는 달리, 익숙한 발걸음으로 곧장 라운지로 직진한다. 이제는 공짜 음식,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구석에 앉아서 랩탑을 열고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2010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든 여권이 어느새 페이지가 다 차버렸다. 미리 알았더라면 완전히 다 소진되기 전에 페이지 추가를 할 수 있었지만 이미 늦어서 재발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앞으로 당분간은 심지어 지금보다도 더 많이 다니게 될 것 같다. 2008년의 설레임은 곧 일상이 되었다.
지금 여권과 함께하는 마지막 여정이다. 새 여권을 받으면 뭔가 다시 새로 시작하는 기분일 것 같다. 나리타 공항에서 잠시나마 과거의 나로 돌아가 설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 곧 또 오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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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완성
요즘 평일 오후에는 혼자서 혹은 와이프랑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이모님"께서 아기를 돌봐주시는 덕택에 누리는 호사. 대체로 강북 지역의 새로운 카페들을 발굴하고 있는데, 대학로 이화사거리에 위치한 <연건당>에서 <청년 김옥균>이라는 낡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1시간 반 정도 읽고 돌아와서는 종로도서관에서 같은 책을 빌리려다 실패. 결국 구한말 개화파들에 대한 다른 책 2권을 집어들고 와서 지난주 내내 읽었다.
2012년에 <중국의 붉은 별>과 <사카모토 료마>를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의 근대 국가 형성 과정, 구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혁명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난 3년간 틈틈이 살펴보았다. 이번에 비로소 우리나라의 동시대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니 그때의 동북아 시대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중국 공산당과 일본의 막부 타도파들이 결국 혁명에 성공한 데에 반하여 김옥균을 위시한 조선 개화파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외부 상황을 제외한 내재적인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디테일"에 있었다고 본다. 모택동과 주은래 등의 공산당 수뇌부들, 사카모토 료마와 조슈 번 지사들이 일으킨 거사와 정변들은 훨씬 더 치밀했다. 갑신정변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여러가지 구체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들이 결국 조선의 기득권 세력 혹은 외세에 의해서 저지되는데 막상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하나같이 준비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갑신정변만 하더라도 성공적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를 손에 넣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명성황후의 심복이 청군과 내통하는 것을 막지 못해 “삼일천하"로 끝나고, 아관파천 사건 역시 개화파 대신들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방비를 하지 않았던 대에 원인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는 성공한 혁명가는 없고 실패하여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애국 지사들만 등장한다.
중국과 일본의 근대 혁명가들을 칭송할 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의 성공은 역사적 사실이고 우리나라 선조들은 끝내 실패했는데, 약한 국력, 외세의 개입 등의 외부 요인을 차치하고라도 단순히 “준비”가 부족해서 실패했던 거사가 많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말로 어려운 일을 끝내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1%의 가능성까지 준비하는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리더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일어날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일에 대비를 했느냐, 무방비 상태냐에 따라 그 일의 성패가 걸려있다. 쉬운 일이라면 확률 게임이니 운좋게 한두번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면 오래 걸리기 마련이고 90/10의 확률이라도 10번 중에 1번은 나쁜 상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그 경우의 수에 대비를 해야하고, 10번이 아니라 100번 중에 1번 일어날 상황도 미리 예측하고 방비해야만 큰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러한 작은 가능성까지 대비하고 차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옥균은 천재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당시 개화파 리더들 한명 한명의 이력을 보면 다들 정말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으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혁명은 없다. 모택동과 료마의 여정에서 감동을 느꼈던 부분은 정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때로는 과감히 전진 혹은 심지어 후퇴 결정도 내리면서 꾸준하게 한발씩 내딛어 갔다는 점이다.
큰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오직 그 뜻에만 심취하여 정작 실행은 대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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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politan
서양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이메일 주소를 보통 자신의 실명과 아주 비슷한 형태를 차용하는데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개성 넘치는 이메일 주소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KBS 박대기 기자라는 분의 [email protected]도 떠오르고 내 친한 친구의 stoneheadfe도 생각나고, 어찌됐든 다들 10대/20대 시절에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듭 고민끝에 아이디/이메일 주소를 만들곤 했었다.
나는 2004년 예일에서 미국시스템을 파악하고 재빨리 [email protected]을 선점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수많은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사용했다가 바꿨다가 했었다. 그 중에서 하나가 “cosmopolitan”이라는 단어를 포함했었다. 이 이메일은 잠깐 사용하다가, 여성잡지 코스모폴리탄 좋아하냐? 하고 어떤 친구가 놀린 뒤로는 다시는 쓰지 않았던 것 같다.
cosmopolitan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던건 2003년, 대학교 1학년 시절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성인으로서 첫 해외여행을 여름에 인도네시아 방문으로 경험하고, 겨울에는 태국으로 가서 카오산로드에서 1개월을 보낸 뒤,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운이 좋게 영어도 이미 습득을 했었고, 해외 문화에 관심도 많고 아주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좋아했던 SF시리즈는 한국에서는 다소 마이너했던 (지금은 또 대세처럼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스타워즈 시리즈였다. 왜 이 시리즈를 그렇게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항상 대답은 같았다. 각기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생명체들이 소통하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것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지구를 넘어서 화성에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되고 화성인들과 소통하고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도 곧잘 했었다.
갑자기 왜 이런 추억에 잠겼나하면, 2015년,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진정한 cosmopolitan의 시대가 된 것 같아서이다. 다른 말로는, 전세계가 동일한 소비행태/선호체계를 가진 사람들로 통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에서는 요즘 millennial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 같고, “힙스터"들의 세계 정복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는 최근 서울에서, 혹은 대한민국 주요 도시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들을 나열할 수 있다.
크래프트맥주, 아이폰, 해시태그,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 크로스핏, 자전거, 플랫화이트, 로스팅전문커피숍, 페이스북, 셀카, 필터, 조각피자, 친환경과일, 필라테스, 디자인소품, 미러선글라스, 클럽, 파티, 킨포크, 바베큐, 공동주거, 동성애에대한관점......
물론 문화권마다 다소 극복하기 어려운 차이점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10년전이랑 비교해보았을때는 엄청난 속도로 각 문화권의 젊은 세대가 동질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 1-2학년 시절, 우리는 1학기 내내 녹두에서 술을 마시고 밤새 당구장, 피시방, 노래방, 만화방 등지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보냈었다. 클럽이나 파티에서 사람을 만나는 대신에 3:3, 5:5 심지어 15:15 미팅에서 타 대학의 여대생을 만났었다. 더러 교환학생이나 해외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친구를 사귀고 온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캠퍼스에도 외국인은 드물었고. 아 그리고, 그 때는 여전히 식사후에 원두커피 대신 자판기 커피나 요구르트가 통용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스타벅스 된장녀"가 사회 이슈가 될 정도였으니...
이러한 변화는 대도시를 위주로 일어나기 마련이고, 어떤 면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의 대도시들이 이 중심에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 베를린, 런던 등의 도시에서 많은 것을 빌려오고 있지만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더욱 빨리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들을 섭렵한다고나 할까. 최근 몇 년간 여러번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나 핀란드 헬싱키만 해도, 서울에 비하면 촌스럽다는 느낌이 많이 들고, 미국 역시도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는 같은 느낌이다.
전세계 대도시에 살고 있는 이 cosmopolitan들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그 1세대인 80년대 생들이 이제 대부분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게되고, 최근 국내 스타트업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녹두에서 노래방에서 밤새 놀고, 미팅에서 이성을 만나던 사람들이 서양 언니 오빠들과 함께 파티에서 어울리려고 하니 힘들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어색하지가 않다. 커피도 곧잘 마시고, 같이 조깅도 하고 요가도 다니고,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사진들을 공유한다. 먹방과 셀카는 이제는 전세계 공통이다.
해외 기업에서 찾는 인재도 이러한 사람들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어울리는게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기반이 아닌 새로운 글로벌 서비스들을 만들어나갈 리더들도 결국 이 pool에서 나올 것이라고 본다. 바야흐로 cosmopolitan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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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역할
오랜만에 아무데도 안나가고 집에 있었던 일요일. 덕분에 책도 한권 뚝딱 해치웠다.
무라카미 류의 산문집 <무취미의 권유>. 이 분은 하루키와 달리 티비 출연도 자주하고, 여러모로 비즈니스에도 관심이 많은 분인듯.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지녔어도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리더는 조직을 위험에 빠뜨린다. 리더는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중략> 어떻게 바꿀 것인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와 같은 물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밝히지 않는 리더는 신뢰할 수 없다.
결국 리더가 명확한 전략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많은 공감이 간다. 충분히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어느 쪽으로든 결정하고 달려나가야 하는데, 막상 조직원들이 스스로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이 꼭지 이외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정말 몰입해서 즐겁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휴가가 필요가 없다던가, 취미 생활은 노인을 위한 것이며 젊은 사람들은 결국 ‘일'을 통해서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 등등 아주 직설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따끔한 조언을 제시한다.
1-2시간이면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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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소설가
학창시절에 가장 즐겨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 미처 읽어보지 못했던 <하루키 일상의 여백>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득템하고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출장길 비행기에서 순식간에 완독.
가장 기억에 남는 꼭지는 제 1번. 세간에 유포된 파멸적 작가상. 당연히 본인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정말 단호하게 그것이 허상임을 강조한다.
소설을 쓰는 것은 대체로 검소하고 과묵한 작업이다. 일찍이 조이스 캐롤 오츠가 “조용하고 단정하게 작업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하지만 작가가 지나치게 건강하면 병적인 집념(이른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싹 사라져버려서 문학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하고 지적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 질문에 대답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얘기하겠다. “그 정도로 쉽게 사라져 버릴 정도의 가벼운 어두움이라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문학으로 승화될 수가 없습니다.”
막상 위와 같은 코멘트를 생각해 내거나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각 분야의 대가들의 강의를 듣거나, 실제로 주변에 꽤 훌륭한 사람이 많다면 “좋은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있다고 본다. (위 하루키의 코멘트에서 소설을 사업으로 치환해보자 -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정작 힘든 것은 내뱉은 말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스스로 조용하게 단정하게 작업을 하면서 건강한 삶을 사는 작가가 최고의 문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전히 몸소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키가 서른 살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날부터 새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상기하며, 나는 아직 시간이 있구나! 하고 위안을 삼았는데, 이제는 변명거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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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 출산 후기
5시간 전에 우리 첫 아이가 태어남. 3.76kg에 키가 56cm나 되는 큰 사내아이. 이 녀석 덕분에 우리 부부는 지난 며칠간 정말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냄.
수요일 밤 ~ 목요일 - 1차 유도 분만. 예정일이 지났는데 전혀 기미도 없고, 아이는 아주 컸기 때문에 유도 분만을 시도하기로 함. 통증도 없고, 큰 이슈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진통실에서 밤을 새는 건 고역. 목요일 아침부터 진행을 했으나, 차도가 없었고, 결국 목요일 저녁에 촉진제 투여 중단, 내일 다시 시도하기로 결정. 입원 24시간 경과.
목요일 밤 ~ 금요일 - 2차 유도 분만. 다음날 다시 시도. 진통은 훨씬 심해졌는데, 여전히 경과가 없음. 결국 오후에 역시 중단. 아직 자연분만의 가능성이 있다고 모두가 판단하여 일단 귀가 조치. 48시간 경과. 병원에서 2박함.
금요일 밤 ~ 토요일 - 48시간만에 아무 소득없이 집으로 돌아옴. 진통은 살짝 있었지만 큰 무리는 없는 상태. 기분전환하러 종로에 나가서 제임스치즈등갈비(?)라는 트렌디한 음식을 시도. 밤부터 진통이 시작됨. 와이프 제대로 못자고 나도 옆에서 계속 간간이 깸.
토요일 - 아침에도 진통이 꽤 있어서 결국 병원으로...하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진통이 약해짐. 주치의 선생님은 일요일까지 버텨보라고 함. 일요일 저녁까지 차도 없을 시 월요일 아침에 수술하기로 하고 다시 귀가. 점심먹고 집에 갔는데, 진통이 점점 심해짐. 최대한 버팀. 결국 밤 10시에 병원으로 감. 이번에는 진짜라고 함.
일요일 새벽 - 자연분만 의지가 강했던 와이프가 최대한 노력했으나 며칠 동안 너무 고생해서 그런지 결국 열도 나고, 도저히 분만이 어려운 상황. 제왕절개 하기로 결정하고 5시 반에 수술 진행. 5시 37분에 아기 출생.
안타깝게도 아이가 100% 건강한 상황이 아니라 바로 집중치료실로 입원해서 사진도 못찍었음. 큰 이슈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정말 별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기도함.
지난 5일이 인생에서 가장 긴 5일로 느껴짐. 이렇게 써놓고 보니 끔찍한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정작 나는 너무 기쁘고 행복한 심정...아무리 고생했더라도 아기는 예쁘기 마련이고, 아기 낳아본 사람 심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것도 맞는듯. 그리고 내가 괴로운 정도가 10이었다면 와이프는 거기에 x10000정도 된다는 것도 공감.
결국 아직 사진도 공유 못하고 아쉽지만, 아기가 건강히 집중치료실에서 얼른 퇴원할 수 있길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예비 아빠/엄마 되시는 분들께 자연분만/유도분만/제왕절개 세 가지를 한번에 모두 시도한 경험에 대한 조언이 가능할듯.
- 출산은 충무로에 있는 제일병원에서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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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앞두고
다음주에는 인생에서의 또 하나의 전환점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에는 아마도 지금으로서는 정말 짐작조차 안가는 커다란 사건이 다가오고 있고.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피곤하게 사는 인생이다. 이사도 여러번, 수많은 여권 도장, 은행 계좌 여럿, 명함도 여러개...등등. 와이프가 평생 직장에서 동기들이랑 오손도손 즐겁게 지내는 걸 보면 가끔은 "나는 참 복잡하게 사는군" 하는 생각이 역시 든다.
어찌됐든, 이렇게 변화가 많은 삶을 사는 이유는 생각하기 보다는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들면 우선 실행을 해보고 싶고, 직접 부딪혀 보자는 판단을 대체로 한다. 아마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확실하게 "실패"는 많이 했을 것이다. 성공률이 낮은 일들에 도전 횟수 자체가 많으니 실패가 많을 수 밖에...
용감하고 무모하게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실패에서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들도 가까이 하고 싶다. 호기심, 용기, 에너지 이 3가지가 앞으로 남은 +50년 동안 고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나는 너무 오래는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인류의 모든 문제는 수명 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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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ing growth is hard - there's only a few ways to do it When you study the most successful mobile/web products, you start to see a pattern on how they
"유저를 늘리는 방법"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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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IT 단상
지난 5일간 일본에 있으면서 2가지 포인트에 커다란 인상을 받았다. 1. 일본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는 구리다. 이번에 비즈니스 관련 미팅을 하면서 여기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실제로 좋은 인력들이 아이티 업계 전반에 많지가 않다고 한다. (일본 사회의 보수성과도 관련) 하지만 점점 변화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작년 이맘때는 구글 관두고 스타트업가는걸 일본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 일본에서도 점점 이런 친구들이 생기고 있다고 함. 야후 재팬을 가봐도 그렇고 요즘 뜨고 있다는 모바일 서비스를 사용해보아도, 식당 찾기 어플인 타베로그도 그렇고, 한국 서비스에 비해서 너무 유저 경험이 구리다. 단순히 "일본인이 다른 유엑스를 선호한다"로 얘기할 문제만은 아닌것 같다. 피쳐들도 많이 빠져있고 디자인을 넘어서서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이야기임. 2. 일본은 여전히 선진국인 것은 확실하다. 이번에는 일본 지방 소도시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인구 30만의 소도시 - 우리나라로 따지면 속초나 익산 정도 되려나? 암튼 해당 지방의 중심지는 아닌 두번째 가는 정도의 도시라고 치자. 티파니와 루이비통 매장이 있고, 백화점에는 도쿄에 뒤떨어지긴 하지만 웬만한 브랜드들이 있고, 프렌치, 스페니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즐비. 이러한 상류층 소비 인프라 이외에도 아기자기한 가게들, 동네 빵집, 주점 등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물론 대도시에 비해서는 유행에는 뒤떨어지는 느낌이지만, 서울 사람들이 지방에 가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 모두를 바꿔야 되서 힘들어하는 것에 비해 일본의 지방 도시는 이런 부분에서 훨씬 격차가 적다고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방에도 중소기업들이 많은 연유일까? 결론적으로는 일본에 확실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큰 시장인데 인터넷/모바일 서비스 종사자들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유저 한명 당 가치도 굉장히 높을 것이고. 5일간 받은 개인적인 인상이라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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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of it instead as a championship-winning team.
굉장히 공감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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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들
이제 정확히 넉 달 후면 우리는 아빠, 엄마가 될 것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서 한 번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아기가 생기면 한 번 더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원래 살던 방식을 정말 단 하나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달라지고 있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도보+대중교통 -> 택시+자동차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돈이 택시비” 혹은 “절대 서울에서 차를 사는 일은 없을 것” 등의 멘트를 내뱉으며 극단적인 도시생활자의 생활양식을 추구해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네비게이션”으로 불리는 본인의 특별한 능력과 시원한 음료수만 있으면 몇 시간도 걸을 수 있었던 지수의 체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하지만 이제는 30분만 걸어도 힘들어하는 임산부가 되었고, 그 뒤에는 대중교통과는 상극인 유모차가 생길 예정이므로 곧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2. 즉흥적(Spontaneous) ->계획적(Well-planned)
자유여행이라는 용어가 2000년대부터 대한민국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유여행을 넘어선 “즉흥 여행”을 즐겨왔다. 둘 다 일반적인 관광지를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남들이 잘 가지 않을 만한 곳들을 발견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예: 신혼여행지인 하와이에서 호놀룰루 시내의 차이나타운을 하루 종일 탐험) 그러나 이제 이에 대한 비용이 너무 커지고 있다.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헤맨다거나 여행객들이 별로 오지 않는 가게라 말이 통하지 않는다던가. 우리만의 특별한 곳을 발견하는 커다란 기쁨의 반대 급부를 더 이상 애엄마가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새로운 곳을 가더라도 실패 없이 갈 수 있도록 동선 하나하나까지 미리 계획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 이번 도쿄 나카메구로에서 찍어둔 식당에 자리가 없어서 결국 다른 데 아무데나 들어갔더니 교자를 시켰는데 냉동만두가 나와서 일그러진 지수의 표정을 본 순간 결심했다. 이제는 식당 하나가 아니라 플랜B, 플랜 C까지 철저하게 마련할 것이다.
3. 비용절감 -> 편안함+안전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항상 스스로는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돈을 아껴쓰는 편이었다. 오래 걸리는 완행열차와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급행열차가 있다면 급한 일이 있는게 아니라면 항상 전자를 택하는 편이었다. 먹거리도 사실 유기농이나 건강에 좋은 것들을 더 많은 돈을 내고 먹은적이 거의 없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게이 룸메들이 엄청나게 비싼 야채를 사먹는걸 보고 왜 저렇게 유난일까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근검절약형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참고로 고급아파트에 비싼 월세를 내고 살고 있다.) 이것도 이제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항상 편안한 환경에서 지내고 아프거나 다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제 예전보다 훨씬 “평범하게” 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혼자 살았던 지난 10년간은 내가 하고싶은 방식대로 결정하고, 그것이 잘되거나 잘못되었을때 그 결과에 영향받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했었고, 성공도 많이 했고 또한 실패를 혼자서 감당한 적도 많았다. 위에서 든 사소한 예들 말고도 직업 선택이라던가, 여러가지 중요한 의사결정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이 많이 커져버렸다. 특히 ��소한 것들은 더하다. 그냥 이렇게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모험을 했을 때 그것에 대한 실패를 가족 모두가 감당해야하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가장의 책임감이라는 것이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암튼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 앞으로는 덜 “재미있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일말의 두려움과 함께 더욱 “성공적으로” 많은 일을 수행하는 능력이 대신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안녕 청춘이여,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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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인물들에게 위험은 친구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
1982년,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사이를 연결하는 최초의 인터넷 네트워킹을 만드는 데 성공한 전길남 박사. 일본에서 태어나 오사카대학을 졸업했지만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국으로 향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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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mails that were found in our mailbox today. One from New Zealand and the other from Japan. (at 광화문스페이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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