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번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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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600번째 주제부터 NOVA님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
*부적
무속신앙 같은 걸 잘 믿나요? 네. 그런편이죠.
나는 지금도 종종 혹은 꽤 자주 사주팔자를 본다던가 점을 보곤 한다.
뭐랄까, 종교가 없어서 마음 기댈곳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당한 핑계가 되려나.
맹신하진 않지만 꽤 의지하는 편 인것 같다.
나쁜 점괘도 좋은 점괘도 걸러듣는 편이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걸 어쩌겠나.
예전에 취준생 때 엄마랑 사주를 보러 갔는데 거기서 취업해결은 아니고 운의 기운을 높여주는 부적 같은걸 받았었다.
그 해에 취업이 되진 않았지만 다음 해에 되었다. (사실 그 해에 인턴은 두번이나 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인지는 알 수없지만 그냥 살아가는 데에 내 영향이 아닌 것에 핑계를 두고 싶을 때가 오거들랑 찾고 싶어진다.
얼마 전 그 부적을 이젠 안쓰는 지갑에서 보게되어서 기분이 묘했거든,
내 인생이 어디로 흐를지는 모르지만 사주팔자가 좀 알려주면 어떠나,
나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는걸, 부적이라도 붙들고 핑계대고 싶은 어느 30대의 나날.
-Ram
*부적
1. 정우가 새 직장에 취업을 하고 한 달이 되었으려나. 무심코 지갑을 열었는데 못 보던 종이가 보였다. 꺼내보니 '내 첫 번째 명함은 우리 연희꺼지. 우리우리 연희 제일 좋아하지'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둔 본인의 명함이 들어있었다. 이런 깜찍한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 자체가 너무 기뻐서 정우가 준 그 명함은 처음 발견한 고대로 늘 내 지갑에 모셔두고 있다. 하지만 미니백을 즐겨 쓰기 때문에 카드지갑만 들고 다니므로 결국 명함이 들어있는 지갑은 지금 방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다. 언젠가 다시 원래 지갑을 들고 다니는 날이 오겠지.
2. 어릴 적부터 나는 약간 이런 마음이 있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박이나 혹은 믿음, 피할 수 없는 루틴 같은 걸 만들어두면 훗날 그 무언가가 나를 실망시키거���,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허탈함과 혹은 더 나아가 자책까지 느낄까 봐 뭔가를 만들어두고 거기에 의지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더 많이 열어두고 많은 것들에 대해 유동적으로 생각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싫다'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싫을 수 있지만 말의 힘이 무섭기 때문에 그게 싫다고 입을 내뱉어서 내 의견을 고착해버리면 나중에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여전히 별로야.
-Hee
*부적
1. 특별히 지니고 다니는 부적 같은 건 없다. 몇 번인가 갖고 다니라며 부모님이 줬던, 절에서 써 온 부적들도 지금 다 어디있는지 모른다. 께름칙해서 버리진 않았다만 굳이 가까이 지닌 채 살아가는 건 더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닌가. 되도록이면 귀신, 재앙, 복과 같은 미신은 멀리하고 싶다. 영적인 것들 모두를 부정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사도 손 있는 날을 골라 했고, 집에 걸어두라던 달마도 액자, 액막이 명태 같은 것들은 정중히 거절했거나, 받은 뒤 바로 당근에 올렸다. 그런 것들에 기댔다가 갑자기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무서워져서 멀쩡히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2. 최근에 늘 몸에 지닌 채 갖고 다니게 됐던 게 하나 있는데, 자동차 키에 달아 둔 (자동차 키보다 열 배 정도는 더 긴)뱀 인형이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게 왜 그런 걸 갖고 다니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뱃속에 있는 아이가 뱀띠라 아내가 뱀 인형을 사서 달아줬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부적같이 나를 지켜달라고 달아둔 건 아니고 자주 보며 아이를 떠올리고 생각하라는 것인데, 이런 이유라니 납득이 되어버려서 계속 들고 다녔더랬다. 실제로 귀엽기도 했고..
-Ho
*부적
처음엔 글쎄, 믿지 않았다. 미신따위 믿어서 뭐하나. 어차피 다 허황된 거짓말.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뭘해도 안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푸라기 같더라. 사람이 간절해지면 뭐라도 잡고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절박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낭떠러지 끝에 메달려 잡초인지 지푸라기인지 뭐라도 잡아보겠다고 허둥대는. 너무 절실해서, 그것밖에 잡을 게 없어서 간신히 잡아본다. 잡은 순간 마음은 편했다. 떨어지진 않았구나. 순간은 안도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니 투둑. 내가 잡은 것이 힘���는 풀쪼가리인 걸 깨달았다.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더이상 의지할 데가 사라졌으니. 차디찬 바다에서 못헤어나오겠지. 이렇게 죽는구나. 떨어지고나서야 밑을 봤다. 떨어진 곳이 차디찬 바다인지 갈대밭인지 몰랐다. 정신차렸을 때 난 갈대밭 위였고 죽지 않았다.
이게 아니면 안돼, 이게 아니면 세상이 끝날거야. 라고 느낄 때 부적을 찾게 된다.
부적은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을 때 간절해야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부적은 다를 것이다. 사람이 될 수도, 공간이 될 수도, 물건이 될 수도 혹은 진짜 부적일 수도. 그 부적이 내 인생에 사라진다 해도 그 끝이 내가 생각한 차디찬 바다가 아닌 갈대밭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끝은 내 마음 먹기에 달린 걸수도.
-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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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600번째 주제 "부적"
"부적"
도란도란 프로젝트의 600번째 주제부터 NOVA님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
*부적
무속신앙 같은 걸 잘 믿나요? 네. 그런편이죠.
나는 지금도 종종 혹은 꽤 자주 사주팔자를 본다던가 점을 보곤 한다.
뭐랄까, 종교가 없어서 마음 기댈곳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당한 핑계가 되려나.
맹신하진 않지만 꽤 의지하는 편 인것 같다.
나쁜 점괘도 좋은 점괘도 걸러듣는 편이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걸 어쩌겠나.
예전에 취준생 때 엄마랑 사주를 보러 갔는데 거기서 취업해결은 아니고 운의 기운을 높여주는 부적 같은걸 받았었다.
그 해에 취업이 되진 않았지만 다음 해에 되었다. (사실 그 해에 인턴은 두번이나 했지만)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인지는 알 수없지만 그냥 살아가는 데에 내 영향이 아닌 것에 핑계를 두고 싶을 때가 오거들랑 찾고 싶어진다.
얼마 전 그 부적을 이젠 안쓰는 지갑에서 보게되어서 기분이 묘했거든,
내 인생이 어디로 흐를지는 모르지만 사주팔자가 좀 알려주면 어떠나,
나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는걸, 부적이라도 붙들고 핑계대고 싶은 어느 30대의 나날.
-Ram
*부적
1. 정우가 새 직장에 취업을 하고 한 달이 되었으려나. 무심코 지갑을 열었는데 못 보던 종이가 보였다. 꺼내보니 '내 첫 번째 명함은 우리 연희꺼지. 우리우리 연희 제일 좋아하지'라는 포스트잇을 붙여둔 본인의 명함이 들어있었다. 이런 깜찍한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 자체가 너무 기뻐서 정우가 준 그 명함은 처음 발견한 고대로 늘 내 지갑에 모셔두고 있다. 하지만 미니백을 즐겨 쓰기 때문에 카드지갑만 들고 다니므로 결국 명함이 들어있는 지갑은 지금 방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다. 언젠가 다시 원래 지갑을 들고 다니는 날이 오겠지.
2. 어릴 적부터 나는 약간 이런 마음이 있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박이나 혹은 믿음, 피할 수 없는 루틴 같은 걸 만들어두면 훗날 그 무언가가 나를 실망시키거나,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 느끼는 허탈함과 혹은 더 나아가 자책까지 느낄까 봐 뭔가를 만들어두고 거기에 의지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더 많이 열어두고 많은 것들에 대해 유동적으로 생각하고, 유연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싫다'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싫을 수 있지만 말의 힘이 무섭기 때문에 그게 싫다고 입을 내뱉어서 내 의견을 고착해버리면 나중에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여전히 별로야.
-Hee
*부적
1. 특별히 지니고 다니는 부적 같은 건 없다. 몇 번인가 갖고 다니라며 부모님이 줬던, 절에서 써 온 부적들도 지금 다 어디있는지 모른다. 께름칙해서 버리진 않았다만 굳이 가까이 지닌 채 살아가는 건 더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닌가. 되도록이면 귀신, 재앙, 복과 같은 미신은 멀리하고 싶다. 영적인 것들 모두를 부정하진 않지만 적어도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사도 손 있는 날을 골라 했고, 집에 걸어두라던 달마도 액자, 액막이 명태 같은 것들은 정중히 거절했거나, 받은 뒤 바로 당근에 올렸다. 그런 것들에 기댔다가 갑자기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온 세상이 무서워져서 멀쩡히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2. 최근에 늘 몸에 지닌 채 갖고 다니게 됐던 게 하나 있는데, 자동차 키에 달아 둔 (자동차 키보다 열 배 정도는 더 긴)뱀 인형이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게 왜 그런 걸 갖고 다니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뱃속에 있는 아이가 뱀띠라 아내가 뱀 인형을 사서 달아줬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다. 부적같이 나를 지켜달라고 달아둔 건 아니고 자주 보며 아이를 떠올리고 생각하라는 것인데, 이런 이유라니 납득이 되어버려서 계속 들고 다녔더랬다. 실제로 귀엽기도 했고..
-Ho
*부적
처음엔 글쎄, 믿지 않았다. 미신따위 믿어서 뭐하나. 어차피 다 허황된 거짓말. 될 일은 될 것이고 안될 일은 뭘해도 안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푸라기 같더라. 사람이 간절해지면 뭐라도 잡고싶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절박함이 극한에 다다르면 낭떠러지 끝에 메달려 잡초인지 지푸라기인지 뭐라도 잡아보겠다고 허둥대는. 너무 절실해서, 그것밖에 잡을 게 없어서 간신히 잡아본다. 잡은 순간 마음은 편했다. 떨어지진 않았구나. 순간은 안도했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니 투둑. 내가 잡은 것이 힘없는 풀쪼가리인 걸 깨달았다.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더이상 의지할 데가 사라졌으니. 차디찬 바다에서 못헤어나오겠지. 이렇게 죽는구나. 떨어지고나서야 밑을 봤다. 떨어진 곳이 차디찬 바다인지 갈대밭인지 몰랐다. 정신차렸을 때 난 갈대밭 위였고 죽지 않았다.
이게 아니면 안돼, 이게 아니면 세상이 끝날거야. 라고 느낄 때 부적을 찾게 된다.
부적은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을 때 간절해야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부적은 다를 것이다. 사람이 될 수도, 공간이 될 수도, 물건이 될 수도 혹은 진짜 부적일 수도. 그 부적이 내 인생에 사라진다 해도 그 끝이 내가 생각한 차디찬 바다가 아닌 갈대밭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끝은 내 마음 먹기에 달린 걸수도.
-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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