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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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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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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전파와 세계
나라의 민낯
독일 유학생 네트워크의 흐름
사재기
바이러스와 휴지
오늘 4일만에 장을 보러 나갔다. 외출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나는 장 보러 가는 것이 전부다. 일부러 한산할 것 같은 시간대에 마트를 가서 사람이 적었고, 드럭 스토어는 인원 제한을 하여 줄을 서고 한 두명씩 들어갔다.  여전히 휴지나 손 소독제(세정제는 듬성듬성 있었음),라텍스 장갑, 쌀은 텅 비어 있었다. 알디를 갔는데 카세에 서로를 위한, 불투명한 유리 벽이 병풍처럼 설치 되어 있었다.  손님과 직원은 대면하지 않고 밑 쪽으로 현금이나, 영수증을 주고 받는다. 차라리 마스크를 쓰지 설치하기 너무 귀찮게 보였다. 아무튼..거리두기와 콘탁트로스를 행하고 있는 독일. 
날이 너무 좋다. 조금 쌀쌀하지만 볕이 좋아서 걷기 아주 좋은 날씨다. 지나가는 버스는 텅 비어있고 거리도 한산하다. 거리라고 해봤자 그냥 동네지만 쨌든 차분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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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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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월 초 부터 중국 우한을 중심으로 감염이 심해지면서 가끔 라디오나 뉴스에 코로나 라는 단어가 들렸다. 이후 한국에도 퍼지면서 여기 나와있는 사람들은 한국을 걱정했다. 
동시에 여기서는 코로나를 언급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는 사례가 늘었고 괜히 외출하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유럽  프랑스도 감염자가 나오면서 이제 독일도 감염자가 나올 것 같았다. 그때 까지만 해도 코로나=아시아 바이러스 라는 인식이 강했다. 
마스크 쓰는 것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인종 차별적 언행과 폭력이 일어났다. 
2월 초까지만 해도 체감상 평화로웠다. 뉴스에는 코로나 얘기뿐이지만 실제 거리에서는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트,드럭스토어 특정 물건들 이를테면 마스크 손 세정제 손소독제 기한이 긴 음식들 등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2월 중순만 하더래도 감염자 순위 1위 중국 2위가 한국이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 감염자 그래프를 보면 오히려 다른 아시아 국가들 보다 유럽의 감염자 사망자 수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금은 거의 국가적 비상 사태다. s반은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열리고 버스의 승하차는 뒷문으로만 가능하다. 운전기사의 건강을 위해. 
식당은 18시에 문을 닫아야 하고 그 외 오락,유흥점, 미술관, 도서관 등 모두 닫는다. 
하루종일 코로나에 대해 떠든다.
학교의 개강은 미뤄지고 사실 독일은 점점 더 심각해져서 미뤄진 개강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개강을 하더래도... 
알바하는 가게 까지 버스를 타고 17분 정도 걸리는데 그 짧은 사이에 마스크 쓴 사람들과 손에 장갑을 낀 사람들이 전보다 눈에 띄였다.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노천 아이스크림 카페에서 옹기종기 앉아 볕을 쬐며 즐긴다. 뭘까?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질타한다. 유럽국가의 시민의식 /선진국/ 의료 시스템.....사재기/인종차별/마스크를 쓰지 않는 문화/안일한 사람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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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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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다. 추위는 많이 풀렸다. 날이 좋은 날 외출을 하게 되면 기분이 이상하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공포와 화창한 날씨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마트에 가면 사재기로 현재 상황을 느낄 수 있지만 그냥 길거리에 걸어다닐 땐 딱히 와닿지 않는다.  날도 좋고 이렇게 평화로운데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괴리감. 휴우
오늘 부터 베를린은 버스 앞문을 이용하지 못한다.  보이는 버스 마다 앞문에 안내문을 붙여놨고 운전자석 부분은 안전선?을 걸어놨다.  개강도 조금 미뤄졌다.  독일은 이제 시작이다. 실제로 하루에 100명씩 늘어난다.   사는게 참 퍽퍽한 요즘.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뭐가 문제일까...하루가 너무 빨리 끝난다. 
사람들은 다들 내가 부지런하다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게으른데?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 몹쓸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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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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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나.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저녁에 함께 먹을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식탁 가운데에 생일 케이크를 두고서 마주보고 앉았다. 나는 초에 불을 붙였다. 그걸 보며 베시시 웃어보이는, 그리고 촛불에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너의 눈동자.
“생일 축하해“
촛불을 불고나서 소원을 빌겠다는 그녀에게 덩달아 나도 같이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했다. 
들리지 않을 만큼 중얼거리는 작은 소리에 한쪽 눈을 살짝 뜨고 힐끔 너를 보았을 때, 그 때가 난 너무 좋았다.  넌 눈을 질끈 감고 두손을 꼭 쥐고서 소원을 빌고 있었지.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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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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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r dem Schlafen kam der Marienkäfer ins Zimmer. Ich musste ihn wegräumen um ruhig zu schlafen. Mit dem Handyblitz leuchtete ich auf Marienkäfer im Dunkeln und versuchte ich zu fangen. Plötzlich flatterte er. Aus Überraschung ließ ich mein Handy fallen.  Ich fühlte mich lächerlich, dass ich über die Bewegung des kleinen Lebewesens so überrascht war.
Ich hörte, dass Marienkäfer das Symbol für Glück. Trotzdem schloß ich ihn in der Glasflaschen wie ein Kind ein. Und gleichzeitig verspürte ich schwache Angst, weil ich das Gefühl hatte, dass in dieser Nacht ein riesiger Marienkäfer in den Traum kommen würde.
Nachher erschiene der Marienkäfer eine Zeit lang ungewöhnlich im Zi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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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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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생활
10월7일. welcome meeting에 다녀왔었다.
65개국에서 지원을 했고 1위가 한국이였다. 그 다음은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오스트리아..?정말로 한국에서 독일로 특히 예술공부하러 많이 오는 것 같다..
오후 1시는 빌덴데 쿤스트 미팅에 참여했다. 학업플랜과 중요한 정보들 (시험/세미나 등등..)을 알려주었다. 한국인은 나 포함 3,4명 있는 것 같다. 의외로 많이 없었다. 참..들어가기 힘든 학교를 극적으로 합격을 했으니 아직도 신기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 날,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지금까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매일 같이 만보 이상은 걷는 듯 하다. 집에 가는 시간엔 너무 피곤하고 어깨 등이 쑤신다. 
학교 정보들이 넘쳐 나고 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학교도 학교지만, 베를린에 살게 되었으니 그 만큼 유용하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싶다. 알바도 구해야 한다. 내년 2,3월엔 한국도 가고 싶다. 
브레멘에 있던 시간들을 실패의 무기력한 시간이였다고 해버리면 그 자체로 그냥 모든게 허무해지니까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 곳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베를린에 온 이후로 뭔가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어디든 나가서 전시를 보든, 유용한 이벤트에 참여를 하든...뭘 하고 싶다. 시간이 아깝다. 푸...작업도 중요. 해야할 것들이 많다. grund분위기가 어떨지...괜히 긴장된다. 눈치보지 않고 열심히 다녀봐야지. 근데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바뀔랑가 모르겠다. 노력해야겠지.
오늘은 베를린 도서관 카드를 만들었다. 믿기지가 않고 너무 좋다. 헿..미디어랑 책 많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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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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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
베를린에 오자마자 암트에 가고 행정업무를 보고나니 머릿 속에서 폭풍이 휩쓴 느낌이다.
6일에는 기숙사 문제로 다시 브레멘에 가야하고 그 다음 주에는 학교 o.t가 시작된다.
wg에 산지 4일차...역시나 여러가지로 신경이 쓰인다. 집 주인 안나는 62살?인데..자비나가 그립다. 독일어 늘려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 사는 중국애도 많이 늘었다면서 독일어독일어 한다. 그리고 특유의 말투와 표정이 있는데 ��써 질릴려고 한다. 친절과 간섭 사이에 왔다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다. 내가 미니잡을 구해야 한다고 하니까 맞은 편에 빵집이 있는데 거기에서 항상 누군가를 찾는다고 한번 가보라고 했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자기가 그 빵집에 가서 물어봤는데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서 나한테 말해주었다. 나는 속으로 뜨악했고 난 빵집에 kein Lust라고 했다. 뭐야 이 할머니..그리고는 어린이집에서 hilfe하는 거 어떻냐고 (안나는 유치원 원) 해서 난 얘들 별로 안좋아한다 고 딱 잘라말했다.
흠..?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리버랄 해보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막혀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다면 현금 영수증은 써주겠지... 존나 짜증나는 부분.
오늘 처음으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내 전용 냉장고 칸에 오이가 없는 것이다. 그 아래 안나 칸에 조금 베어진 오이가 떡하니 있었다. 내가 오이가 없다�� 찾는 시늉을 했다니. 코미쉬 하고 기묘한 일이라면서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응 너 칸에 있는 오이가 내거야 ㅎ) 자신도 어제 오이를 샀고 냉장고에 있던 오이를 가리키며 이건 내 오이인데..신기하네..하고 오이가 랩에 싸져있었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더니 자기는 랩에 싸여져 있어서 그걸 벗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자기 것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존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한 거다. 착각을 했겠거니 했고 앞으로 내가 뭘 샀는지 사진을 찍거나 리스트를 작성해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가 중국애가 주방으로 왔는데, 안나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면서 나도 오이를 샀고 자신도 오이를 샀는데 내 오이가 없어졌다면서 말했다. 중국애가 식탁위를 가리키며 저기 오이 있네 했다. 식탁에는 파프리카 무화과 오이 등등이 있었다. 안나가 나보고 너 오이 저기있네. 해서 어처구니가 없었고 나는 오이 냉장고에 놨다고 또 딱 잘라 말했다. 안나는 아 그럼 내거구나 내가 착각했나보다 어제 viel arbeiten해서 anstrengend해서 정신이 없었나보다 하고 머쓱해 했다. 어쨌든 안나도 오이를 산건 사실이니 착각한 것으로 넘길 수 있었다. 
아무튼 지금까지 느낀 안나는 조금의 오버액션과 과잉친절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무심한 척 하지만..실은 매의 눈으로 살펴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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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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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네
허어. 정말 오랜��의 글이다. 텍스트전용 텀블러를 만든 이유는 아무 글이나 꾸준히 올리기 위해서였는데, 꾸준히 뭔가를 기록하기란 정말 어렵거구나...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1. 3개월전 미리 퀸디궁을 해야하는 레겔을 지키지 못해서 하마터먼 2달 치 월세를 책임질 뻔했다. 다행히 혹은 운 좋게 임대자가 바로 나타나서 모면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10월1일 자로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었다. 그날 밤 바로 메세지가 와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사람은 현재 기숙사에 살고 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집을 옮기고 싶어했다. 걸어서 22분 정도가 걸리지만 같은 동네라 신기하기도 했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뭐..결국엔 나는 다음 임대자가 이미 있었고 그 사람이 입주하는 것은 물건너 갔지만 그렇게 해서 괜찮은 인연이 생겨났다. Y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기상천외하다. 소음문제로 시작해서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런저런 고충을 털어놓고 이사준비를 하는 내가 몇가지 물건들을 주기도 했다. y는 택배 부치는 것을 도와주고 그 외 여러가지면에서 신세를 많이 진 것 같다. 아직 어떤 사람인지는 감을 못잡겠지만 나쁘지 않다. 집 문제도 해결되고 좋은 일이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2. 베를린으로 이사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베를린 wg로 이사를 왔다. 택배도 노말로 잘 도착했고 하룻밤을 지냈다. 안나는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었다. 내멋대로 상상했던 중년의 안나 모습이 아니였다.
그녀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가끔 쎄-한 느낌은 들지만....
-내가 한국에 가족들을 못본지 2년이 되간다고 하니까 오...가엾어라 하면서 슬퍼해줬다(?)
자신도 자식을 해외에 보내봤어서 심하게 공감을 하는 것인지..나를 아주 딱하게 여겼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비자청에서 아주 암담한 통보를 듣고 식욕이 싹 사라지고 모든 의욕이 사라진 상태에서...모든것이 처참했다. 이미 걱정 태산인 나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친 것이다. 여하튼....안나에게 나 지금 완전 schlecht하고 큰일 났다고 하니 잘 될거라며 또 (?) 안아주었다. 나는 이런 모든 친절함이 익숙치가 않다....
그리고 나서 오전에 한꺼번에 도착한 나의 택배들을 내 방에 두니 더욱 카오스처럼 보였다. 이에 대한 안나의 반응은 나에게 약간 호들갑 처럼 보였다. 이미 수납공간도 많은데.....이걸 언제 다 정리하냐는 식으로 본인이 더 갑갑해했다.  완전 viel arbeiten 해야겠다면서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실제로도 ��� 전혀 갑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너 trinken 많이 안했다면서 티를 갖다준다. 뭐지.??? 아니야 나 원래 물 많이 마셔 하니까 어딨어 물병 이러면서 ......헥...암튼 챙겨주니 고맙긴 하지만 뭐..신경껐으면 좋겠다ㅠㅠ
- 요리 했던 음식을 나 먹으라고 부엌 한 켠에 둔 것을 짐 정리 하다가 먹으려고 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으라고 해서 전자레인지에 넣었는데. 버튼도 많고 걍 대충 자동조리 처럼 보이는 것을 눌렀더니 데우는 음식의 종류를 선택하는 설정들이 보였다. 안나가 오더니 뭐 만졌냐면서 평소와 다른 설정이 되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일단 데우라고 했다. 이어서 왜 자기를 부르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뭘 불러 전자렌지 사용법이 다 거기서 거기지..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뭐..그런걸 물어보지? 나는 속으로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서 좀 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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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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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자.
지난 주 토요일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일요일 오전에 알바 때문에 나가려고 하는데 가방에 지갑이 없는 것이다. 앞이 캄캄했다. 그때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가방에 없는 것이면 100% 밖에서 흘린 것이다. 내 핸드폰 요금은 통화 불포함이라 알바하다가 얘들 핸드폰을 빌려 그제서야 카드 정지를 했다. 어차피 현금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고.. EC카드에도 5만원이 전부였다. 돈이 없으니까 이럴 땐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일 빡치는건 commerzbank 카드 정지였다. 사람이 아니고 자동응답기에 내 IBAN을 말해야하는데 계속 인식을 못한다. 독일인이 아니여서  그런가보다. 포기했다. 
문제는 내 학생증(+교통권)과 비자카드인데..재발급 받으려면 8만원 정도가 들고 경찰서가서 신고를 해야하고 여러모로 귀찮은 일 투성이였다. semesterkarte도 그냥 보내주는게 아니라 verlustmeldung을 하고 Bescheinigung 따위를 제출해야한다. 그리고 2주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스트레스의 연속. 듣기로는 또 인터넷 사이트에 경찰서의 진술서가 있으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해당 암트에 물어보니 Nein이란다. 역시 직접 확인해야한다. 
월요일에 그러니까 오늘 deutsche bank에 가서 일단 현금을 찾고 commerzbank에 가서 카드 정지를 시켰다. 전자에서는 eckarte 못 찾을 거라고 하고 후자에서는 대부분 일주일이나 보름정도 기다리면 찾을 수도 있어서 새로운 발급은 일단 보류하라고 했다. 
비자카드 재발급 비용과 소요시간, 경찰서를 가야하는 귀찮음...
토요일에 나의 행방을 살펴보면,,
 자주가는 netto에서 카드를 마지막으로 사용했고 마지막으로 봤다. 그리곤 바로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환승 없이 집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 흘린 건 아니다. 그렇다면 netto kasse에 두고 왔다거나 netto ausgang어딘가에 흘렸거나 정류장 가는 길에 길바닥에 그냥 흘렸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론 netto에서 계산을 하고 카드를 분명 지갑에 넣었다. 그럼, 그 지갑을 kasse 주변에 뒀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netto로 향했고 그 곳에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뭔가를 가져온다. 내 지갑이였다. oh mein gott이 저절로 나왔다. 계산 후에 kasse혹은 netto에서 나오기 전에 흘렸나보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는 ec카드도 한개만 비자카드도 안 넣고 다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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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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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그리고 탐폰.
최초의 월경의 기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같은 반 아이가 앉았다 일어난 나무 책상 의자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아이들은 그 의자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나는 이게 뭐지? 하고 손을 뻗었고, 내 손가락엔 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아마 중학교 1학년. 가을 혹은 겨울에 초경을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팬티에 갈색의 무언가가 마구 묻어 있었다. 보자마자 조금 “헉” 했지만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영문을 모른 채  별 생각 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피가 흐릿한 갈색이여서 놀라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면 무서워서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 온 엄마에게 이거 보라며 팬티에 묻은 것을 보여줘 버렸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약간 한심 했는지  “어유~!” 거리며 생리가 시작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각 종 생리 팬티들과 생리대를 하는 법을 알려줬다. 저녁에는 아빠가 꽃바구니를 사서 나에게 주었다. 평소에 무뚝뚝한 사람이라 나는 그 상황이 정말 난데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엄마는 이제 “정말 여자”가 된거라며 스스로 몸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 초경을 하면 저런 말을 듣는다. 그 말인 즉슨 나는 이제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것들이 교차되는 부분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신비로운 것 동시에 임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뭔가 항상 여자가 몸 처신을 잘해야 하고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항상 마음 조리며 뭔가 큰 짐은 여자만 지게 되는. 자기 몸은 스스로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저런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부정적 시선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쨋든...
그렇게 나의 월경은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전용 팬티도 챙겨 입으면서, 밤에는 오버나이트 용 생리대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아침에 일어나면 팬티에 묻어 있기도 했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듯이 제일 문제는 월경통이였다. 첫 째 둘 째 날은 하루 종일 전기장판에 배를 지지며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스무살 이후로는 월경통의 느낌 자체가 너무 싫어서 바로 약을 먹곤 했다. 화장실 배와는 차원이 다른, 기분 드럽고 찝찝한 고통이다. 그래서 기분이 잡치고 신경이 곤두 서는 것이다. 월경 초기때는 엄마에게 월경을 겪는 것이 미치도록 싫고 증오스러워서 임신 안 해도 좋으니까 (이 빌어먹을 )생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탐폰 첫 경험.
월경은 정말 좆 같다. 특히 여름에는 뒤질 정도로 습하고 땀차고 찝찝하고 아래가 그냥 피로 인해 더러워지고 버려지는 기분이다. 나는 생리 양이 정말 적음에도 불구하고 패드를 한 순간 오작동하는 로봇처럼 변한다. 밖에서는 정상적으로 걷지만 집에서는 엉거주춤 걸어 버린다. 똑바로 걸으면 뭔가 패드가 닿는 기분이 나서.   
더러운 피라 밖으로 배출해 버리는 것이 몸에 좋은 것이지만, 흔히 말하는 따뜻한 굴 나오는 좆 같은 느낌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항상 신경을 쓰고 있고 아래가 긴장 늦추지 않고 있다. 자세도 제한 되고 그래서 허리가 아프고. 나는 피가 묻는게 너무 싫어서(?)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자세도 굉장히 제한적이다.  월경을 해서 좋은 건 단 한가지도 없다. 야외 활동도 불편하고. 그리고 나는 휴지를 굉장히 많이 쓰게 된다.
나는 단 한번도 패드 이외에 것들을 써 본적이 없다.  탐폰을 써보고 싶긴 한데 많이들 그렇듯이 그냥 막연하게 꺼려졌다. 어떻게 저걸 쓰지? 어떻게 질에 플라스틱(어플리케이터)을 넣지? 아플까봐 혹은 뭔가 질에 억지로 넣는 그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생리컵이 나오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쓰기 시작했다. 이곳도 당연히 패드 보단 탐폰/생리컵을 쓴다.
탐폰에 대해 관심이 극대화 되어 있는 상태에서 엊그제 월경을 시작 했는데 패드를 하자마자 너무 더운 것이다. 엉덩이에 작은 기저귀가 있다니 여름만 되면 미칠 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패드에서 탐폰으로 갈아탄 사람들이 하나같이 신세계라 말한다. 폐경이 찾아 올 때까지 패드만 쓸 순 없었다. 쓰기도 싫고. 피가 묻은 축축한 느낌도 싫고, 나온 피가 피부에 닿는 것이 싫다. 탐폰을 써야 겠다고 결심 하고 열심히 구글링을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다(?..)
그렇게 탐폰을 샀고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한 후 도전 했다. 막상 탐폰을 보니 떨렸다. 그게 뭐라고...ㅋ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얇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넣을 때 아프면 사람들이 쓰겠어?라고 생각 하며 삽입 했다. 처음 부터 단박에 수욱 하고 들어가진 않았고 조금 더듬거렸다. 질은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비스듬히 천천히 넣었다. 그리고는 성공?했다. 이물감도 없다. 삽입을 할 때 딱히 엄청 이상한 느낌도 없었다. 당연히 아프지도 않았다. 
패드에 15년동안 익숙해져 버린 내 몸은 아직 뭔가 허전하고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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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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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담,,
태어나서 처음으로 담에 걸려보았다. 정말 느닷없이 허리,옆구리에 통증이 생겨서 거의 울다 시피 움직이며 삼일을 보냈다. 평소처럼 침대에 누워 2시간 정도 노트북을 했는데 걸린 것이다. 처음 경험해 보는 담의 느낌은...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
순간 날카로운 뭔가가 스쳐지나가는 느낌
시큰함
....
담이 걸린 지 둘째 날이였나, 새벽 4시쯤에 깼다. 뒤척이다가 아파서 저절로 일어났나보다. 
옴짝달싹, 미세하게 움직여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져서 울다 시피 얼굴을 찡그리며 비몽사몽 일어나 침대에 앉아 10분 정도 가만히 있었다. 그 때 정말 아차 싶었다. 정말 움직이지를 못했으니까.
담이 걸리면 숨을 쉬기도 힘든데, 나도 모르게 상체에 힘을 주고 있어서 자주 큰 숨이 쉬어졌는데 그때 마다 고통이 느껴졌다. 
삼일 째 되는 날 알바하기 전엔 상태가 무조건 호전 되었어야 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두알 정도 먹으니 80% 금세 나았다.
더 자주 스트레칭을 해야겠다. 정말 다시는 겪기 싫은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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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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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세대
An die Maus der Falle
“원을 긋고 달리면서 너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냐? 알겠느냐? 네가 달리는 것은 헛일이라는 것을. 정신을 차려. 열린 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
......
죽음을 내포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현명한 케스트너가 가르치듯 밖을 보지 말고, 즉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자기의 내부에 파고드는 것, 내적 관조에 의해서 어떤 체념적인 긍정을 얻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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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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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OO
2017년 8월부터 지금까지 medoo라는 식당에서  Mittag 타임에 주방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자세히 말하면 Spülschicht인데 하는 일은 설거지와, 음식 서빙/ 그리고 가끔 장을 보고 요리를 간단하게 도와주는 정도.
알바 초반에는  설거지와 음식 서빙을 했다. 그러다가 Salat을 기본으로 하는 음식을 만드는 법과 디저트류 나가는 법을 배웠다.  일주일에  두 번은 설거지, 한번은 샐러드를 담당했다. 그런데 올해 1월 부터 사장이 바뀌면서 나는 일주일에 fest로 두 번, (아주 가끔) 세 번. mittagstisch Spülschicht으로 일한다. Salat schicht는 육체적으로 덜 힘들다. 주방 salat bar에서 주문한 메뉴만 만들면 된다.  그런데 밤 늦게 집에 가는 점이 싫어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리고 밤 타임 Spülschicht은 지옥이다. 절레절레..
앞으로 이런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생각 들 정도로 사람들과 분위기가 최고다. 식당이 워낙 오래 되었고 vollzeit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기본 4,5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다. 식당 사장과 함께 다들 오래 된 사이라 분위기가 좋은 듯 싶다. 식당이 20년 이상 된 것 같은데 전 사장인 Martina는 나이도 있고 노후를 즐기려 은퇴를 했다. 올해 1월부터 같이 일하게 된 사장은 Martina뿐만 아니라 여기 사람들 모두가 오래 알고 지낸 거래하는 식료품 기사님이다. 아무튼, 같이 일하는 주방 사람들은 그냥 딱 일만 하지만 쨌든 모두 친절하고 퉁명스럽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주고 도와준다. 
메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서 일 초반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매 주 나타났다. 
서비스 쪽, 서빙) 얘들은 빡세게 2,3달 일하고 길게 쉬고 다시 돌아오는 얘들이 많았다. 아니면 그냥 여름에만 하거나 겨울에만 하거나 매우 유동적이다. 주방도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을 빼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대타를 할 누군가가 꼭 있기 마련이다. 눈치 껏 스스로 몇번 대타를 하기도 해야한다. 
주방은 총 4개의 ecke가 있다.
1. Anzeiger라고 해야하나,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사람.  주문이 들어오면 샐러드 담당과 보조 요리사 담당에게 알리고 지시한다.  그리고 Spülschicht에게 어느 테이블로 서빙 갈 것을 말한다. 음식 재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서비스에게 알린다.
2. Salater, 앞서 말했듯이 샐러드가 기본인 메뉴과 디저트를 담당한다. 크레페도 만든다. 
3. 보조 요리사 : 사이드 메뉴로 들어갈 음식들을 조리한다. 
4. Spülsch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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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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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글그림. 사진 말고 묘사하기. 녹음하기
가슴 뛰는 일 말고 잘하는 일을 하자
나의 만족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Getting lost in  ~.
예술가와 돈?
누군가 적은 돈이라도 나의 창작물을 지불하고 사는지 실험하기.
나는 누구이며 몇 개인가
다른 “나”들이 가장 소중한, 아끼는 “나”를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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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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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Juni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샤워를 한다. 얼마 뒤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나는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엄마는 친구들이 불러서 잠깐 나갔다 오겠다 한다. 기껏 씻고 나와서 다시 화장하고 옷을 입으며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나는 왠지 몹시 못마땅했다. 막무가내로 나가지 말라며 어린아이처럼 떼를 쓴다. 하지만 엄마는 나가 버린다.
엄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직 문을 연 어딘가가 있다고 하며 나를 설득 혹은 안심시킨다. 아마도 내가 의심을 한 모양이다.
나는 엄마를 몰래 뒤따라 나선다.
그녀는 어느 장례식장에 와있다. 많은 사람이 있고 장례식장은 푸르스름한 조명으로 가득 차 있다. 알고보니 친한 대학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둘은 각별한 사이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 장례식을 위해 금전적으로 도움을 준 것 같다.
곧이어 나는 이미 숨을 걷은 것 같은 모습의 한 노인을 본다. 노랗던 바나나가 시간이 지나서 검게 이곳저곳 물든 모습이다. 쪼그라든 한 인간. 미동도 없는, 죽은 줄 알았던 노인은 휠체어에서 조심히 일어난다.
놀랍게도 그 노인은 나의 할아버지였다. 나는, 그는 왜 두 번 죽는가 하고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그리운 나의 할아버지. 성나있는 채로 엄마를 뒤따라온 나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풀썩 주저앉았고 동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엎드린 채로 오열한다.
누군가가 죽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고, 힘겹게 일어선 할아버지는 그 상태로 마지막 식사를 한다.  그의 서서히 죽어가는 장기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지 죽 한번 삼키기 어려워 보인다. 그는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 죽을 위해 양손을 이용하여 목을 아래로 아래로 쓰다듬는다.
그러고 나서 신기하게도 곧 일어나는 나의 모습을 꿈에서 보았다. 새벽 3시에 알람을 끄는 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 순간 현실로 알람이 울렸고 정말로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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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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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굉장히 섹슈얼한 꿈을 꾸었다. 나는 종종 섹슈얼한 꿈을 꾸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것은 처음이다.
어떤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사람은 머리모양, 신체적 특징 �� 나와 닮아있었다.
그녀의 벗은 몸을 보았다. 우리는 왠지 모를 성적 흥분에 휩싸였고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오럴,
꿈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 수 없는 어려운 상황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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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olwww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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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보고싶다.
꿈에 김성재가 나왔다. 장소는 외할머니댁.
외할머니댁은 큰 도로가 옆에 있고, 그 도롯가에서 바로 이어지는 짧은 내리막길이 있다.
아주 늦은 밤. 아마도 자정이 넘은 시간. 늦은 밤도 이른 아침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사이의 시간.
나와 P는 김성재와 함께 그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우리는 미래에서 왔어.”
나는 그에게 어깨동무 비슷한 행동을 취하며 의미 심장하게 말한다. 그는 터무니없는 소리에 놀라긴 했으나, 이내 피식 웃어 보이며 그 사실을 믿어줬다.
나는 슬펐다. 그 이유는 , 그때가 바로 그가 떠나기 고작 1, 2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곧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될 거야“
나는 ‘말하자면’을 흥얼거리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꿈속에서 그는 똑같이 멋진 차림을 하고 있었다. 멋진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혀 놓고 링 귀걸이를 했고 하얀 면티에 검정 카고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의 미소를 정말 좋아하는데, 웃을 때마다 설렘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어딘가에 앉았고. 나와 p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담배 피우면서 얘기해도 되죠?” 
김성재가 말했다.
그가 나에게 담뱃불을 붙여줬고 나는 한 모금 들이마신다. 하지만 그가 실수로 담배를 쥔 나의 손을 쳐버려서 담배가 두 동강 난다. 나는 재빨리 다시 한 모금.
“우리를 떠나지 마..!”
나는 갑자기 한마디 툭 해버렸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소리냐 하며 미소 짓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툭 나와버린 말을 애써 수습하려 했다.
“아니,, 그냥.,사람을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면서 한 사람을 너무 믿어버리면, 안 좋지 않겠어…?”
주절주절 횡설수설하는 나.
나는, 그에게 당신이 이런 무대를 선보일 것 이라며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신기해하며 유심히 본인의 모습을 진지하게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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