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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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하루종일 울고 있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놀랍도록 말이다. 환한 대낮에도, 버스 안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거짓말처럼 말그대로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듯이 우수수 쏟아진다. 사람은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한다. 나는 지금 벌 받고 있나��다. 그래서 그냥 함께 삼켜버린다. 숨 쉬기도 힘들만큼 꺼이꺼이 나는 눈물이랑 같이.

가을이 오니 익숙한 냄새들이 떠올라 나를 더 괴롭게 하고 비눗방울처럼 기억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금새 사라졌다가 몽글몽글 다시 떠오른다. 차라리 증발하면 좋으련만.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데 앞으로는 이 계절이 오는게 두려워질 것만 같다. 코 끝을 스치는 찬 바람때문에 자꾸만 기억들이 떠올라서 나를 갉아먹으니까.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숨겨도 팅팅 부은 눈과 빨개진 코는 숨길 수 없어 자꾸만 자꾸만 찬물로 세수를 한다. 아까는 마스크 덕분에 가까스로 눈물을 숨겼다. 강렬한 해가 나를 자꾸 쪼아봐도 눈에 맺힌 물은 더 반짝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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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만 귀를 긁는 까만 밤, 나는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다른 마음들을 생각하다가 그만 눈물을 흘러버렸지. 난 행복해를 읊조리다가 더 울어버렸지. 그래서 일어나 남은 맥주를 마셨다. 그걸론 모자라서 냉장고 안에 있던 마지막 한개를 더 꺼냈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외로움. 나는 원래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초6때 간 수학여행에서 엄마가 보고싶다며 벽에 웅크리고 울던 친구를 보며 그 때부터 나는 외로움에 무딘 아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는게 좋고, 그 외로움은 한순간의 감정일 뿐이라고. 그건 오산이었다. 나는 내 외로움을 외면하고 있었을뿐 항상 외로움을 품고 있던 아이였다. 그 외로움의 덩치가 너무 커서 더 강인한 척하던 아이, 혼자 이불 속에 들어가서 숨죽여 울던 아이.

오늘 밤은 그 외로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가끔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날 덮칠 때면 난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이 밤이 지나가길 기다릴 뿐이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웃고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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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그의 과거를 여행한다. 그 눈빛과 손짓과 표정 그리고 함께 있었던 사람들을 상상한다. 이상하게도 상상 속 그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다른 존재처럼 느껴진다. 혹은 스스로 그렇게 믿고싶은걸 수도. 그리고선 다른 한편에서는 그 때의 나를 데려온다. 전혀 다른 세상에 있던 우리는 어떠한 끈으로 지금 함께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던 얇은 실들이 끈이 되어 연결된 것일까.

하늘도 현철이의 죽음을 애도하는지 몇주 째 비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고있다. 얼마 전에 지하실에서 발견한 현철이를 마당에 묻어주었다. 이것은 더이상 보지 못하는 슬픔도 아니고 특별한 정이 들어서도 아닌데 왜인지 무기력함이 우릴 덮쳤다. 이게 다 기나긴 장마때문이다. 올 여름 이 지긋지긋한 우기는 절대 잊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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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기억하기로 가장 찬란했던 봄- 청'춘'의 때에 맞게 싹을 틔운 감정의 봉우리들을 간직하며 이제 뜨거운 날들을 맞이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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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 할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시단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는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어서 손쓸 틈이 없다고- 우리는 모두 왜 할머니가 안아프실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지난 설 때 요즘 소화가 잘 안된다며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계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당연한 존재라고 여기고 방심하던 우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늦은 때였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전화를 받으니 바로 무너져내렸다. 서둘러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갔고, 영정사진 속 할머니는 무척이나 젊으셨고 고왔다. 3주 전 그토록 마르고 힘들게 숨 쉬던 할머니의 모습은 흐릿해질만큼. 우리가 온다고 하면 전날 밤부터 감주를 만드시던, 손녀들이 좋아한다고 꼭 밥상에는 자작한 된장을 올려주시던, 창고에서 오래된 사과를 주섬주섬 가지고와 깎아주시던. 그 모든 사소한 할머니의 모습들이 눈물과 함께 차올랐다. 헤어진 후에야 관계의 골이 생각보다도 깊었음을 깨닫는 여전히 멍청한 생각때문에 더-

처음 경험해본 모든 장례 절차와 영원한 이별의 준비가 너무나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수많은 감정이 오갔고 생각들이 둥둥 떠나녔다.

늙는다는 것, 아름다운 때를 잘 누리는 것,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때에 따라 떠나보낼 줄 아는 것- 김창완밴드의 '시간'을 반복하여 들으며 모든 것들이 허무해보이려는 마음을 붙잡고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다시 중심을 잡고.

평생 고생만 하다 가신, 그 굽은 허리를 이제는 펴시고 천국에서 평안히 평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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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땃한 볕에 기대고 앉아서 책읽기 좋은 계절이 왔다. 생에 처음으로 어서 지나가길 바랬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음을 실감하니 두꺼운 코트를 벗어버린 것처럼 가볍다.

불안의 똬리가 단단히 자리를 잡은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혼자 덜컥하는데 이 기분이 아직도 적응이 되질 않아서 숨을 자꾸만 크게 들이마시게 된다. 그럴 때면 햇살에 위로받고 활자에 생각들을 고무시키려 책을 손에 쥔다.

오늘도 그런 오후가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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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마지막 날 밤,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를 다섯 개의 포크로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전등 아래에서 그들의 눈동자색을 처음 보았다. 웃을 때 두 볼이 동그랗고 방긋해지는 것도 내가 닮았구나.

언제까지나 든든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내가 강요해온거였다. 속에 숨겨진 말랑한 살과 깊은 곳에 남아있는 흉터들이 드러난다. 나는 케이크 한 입에 부지런히 슬픔을 삼켰다. 이제 내가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기쁜 밤. 동시에 아픈 밤.

기차에서 시집을 읽다가 또 그 장면이 떠올라 눈물을 삼킨다. 입 안에는 어제 먹었던 케이크 맛이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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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이 좁아졌다. 여기서 생활하면 더 넓어질줄 알았는데 사는건 다 똑같은거다. 그래도 좋아하는거 원없이 보고 좋은 곳 틈만나면 뽈뽈거리며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한 해가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다. 근데 1월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올해가 징글하게도 길다.

2020년 달력을 벽에 걸고 정돈된 숫자들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저 숫자 안에 한 해의 일들과 감정들이 다 들어간다는게 새삼 놀랍고 요상하다. 아직 나는 2019년을 보낼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 해는 자꾸 지고 달은 자꾸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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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풍경과는 다르게 냉기에 손발은 차고 추위에 몸을 오므리는 날씨지만, 나는 겨울이 너무 좋아서 몸이 짜르르 떨리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계절이 금방 떠나가버릴까봐 벌써 아쉽다.

올해의 생일은 가을이 아니라 겨울에 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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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흡족했던 연주를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 나는 한 곡에 꽂히면 한곡반복으로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그 곡만 듣는 버릇이 있다. 연주 때 피아니스트가 쳤던 Poulenc 의 곡에 갑자기 꽂혀서 그 곡만 40분째 들으며 자꾸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낙엽으로 가득찬 길 위에서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무수한 낙엽이 흩날리도록 밝은 스텝으로 춤을 추며 걷는 장면이 자꾸만 그려졌다.

버스를 내려서도 이어폰을 빼지 않고 한동안 계속 들으며 걸었다. 나도 모르게 왈츠 스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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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깬 후, 바로 잠에 들지 못한 어제 새벽에 쓴 글을 아침이 되어서 다시 꺼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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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향한

소중한 마음을 볼 때면 그 대상이 누구인지 몰라도 내 마음이 다 흐뭇해진다. 친구와 맥주 한 병을 후다닥 마시고 집으로 걸어가는 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자전거를 탄 한 남자가 가방에 꽃다발을 넣은 채 지나간다. 누굴 위한 꽃이든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그려져서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 온기가 내게 전달 되어서인지, 맥주를 마셔서인지 살짝 달아오른 두 볼과 가벼운 발걸음에 더없이 기분좋은 밤. 그 모습이 스틸컷처럼 내 머릿속에 박제되어 시간이 지나도 떠나질 않는다.

나는 이런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보면 순식간에 행복해져버린다. 갑자기 힘이 솟고 삶의 희망이 생긴달까. 오늘 낮에 불쾌한 일들에 마음의 송곳이 뾰족하게 솟아오르던 순간들이 생각났지만.. 아름다운 진심을 마주하면 금세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걸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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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본다. 짧디 짧은 가을의 어여쁜 하늘을 조금이나마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감각이 무뎌진건 아닌데 요즘따라 혀가 둔해진 듯한 느낌이다.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말을 쉽게 뱉는 사람이 싫어 스스로 조심하다보니 겁이라는게 생겨버려서 혼자 입만 뻥긋거리다 이내 닫아버리는 일이 많이졌다. 덕분에 생각은 더 많아졌지만.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감정의 표정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밤이 길어졌으니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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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의식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무의식적으로 자꾸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생각 생각 생각-

이제 소음을 막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전거도 타고 정처없이 걸을 수 있다. 날씨가 갑자기 선선해졌는데, 겨울이 오는건 너무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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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러 자주 가는 카페, 좋아하는 동네, 그리고 보금자리를 찾아 이사도 했고 이제 동네도 꽤 익숙해졌다. 집 근처 도서관도 이뻐죽겠다.최근에서야 그토록 하고싶었던걸 배우기 시작했다. 베이비 스텝으로 조금씩, 천천히 나가지만 그래도 나름은 만족하는 날들이다.

가끔 숨이 턱하고 막히거나 권태로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 속 먹구름들을 걷어낸다. 바람 사이로 내가 좋아하는 가을 냄새가 느껴지면 아무런 걱정도 없었다는 듯 금세 행복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