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7301 · 6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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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그믐달 달빛의 유려함은 마치 당신의 다리와 닮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 중 하나인 플라타너스와 그 플라타너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월을 담은 공기는 당신의 사려하고 차가운 뇌리와 닮았다.
고공에서 바라보는 작디작은 인간의 형상은 무척 구슬프지만 당신이란 유한하게 찰랑이는 존재는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다.
칭송 같은 것이 아닌 내가 내린 결론 비슷한 것이다.
어제저녁, 죽으려고 했다. 요즘 들어 그저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미워져서, 그래서 죽으려고 했다. 남길 말 따위 끝내 부끄러워서 적지 못했다. 결국 죽진 않았고 또 똑같이 멍하게 제대로 표정 하나 짓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른 누군가와 얽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펼쳐질 거라는 허무한 기대 따위도, 어느 순간 정말이지 할 수 없게 되었다. 의식해서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닌, 우울의 흑철이 요 몇 개월 간 나의 삶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우울증 약을 하루에 9알을 먹어도, 왜인지 점점 의식만 몽롱해져 가고 극한의 자극이 아니고선 아무것도 내 자아를 일깨우고, 놀라게 해 줄 것이 없어졌다.
이 문장의 어순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그것도 이젠 됐다.
사랑을 하고 싶다. 뒤틀린 사랑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다.
누군가를 안고 싶다. 안고 싶어서 참을 수 없다.
진심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영원도 현실도 전부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고 싶지 않다.
나는 잘 가고 있는 것일까요?
틀린 질문.
나는 서 있긴 한가요?
이것 역시 틀린 질문.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요?
최소한 당신의 삶에서 나의 삶은 무엇인가요?
나는 기어코 영원에 도달했고 그 속에 있는 지금은 그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바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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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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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아아, 당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애처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당신이란 말을 하면 내 영원은 계속해서 이어져가고 또 새롭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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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지속됩니다.
이 세상은 ‘이기심’이란 게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 수록, 초심이 한 칸 움직일수록 더욱이 체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이기심을 인간 본연의 권리 같은 당연한 것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떠나면 왠지 그 이기심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야속하고도 비겁한 이유로 당신을 떠났고 버렸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더 이상 없습니다.
영원의 색을 띤 저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이전에 씁쓸한 말투로, 제게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가치를 알아봐 줄 사람이 늘어난다고 말했었는데, 저에겐 참을성이 없는 것인지 그런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가 않았습니다. 당신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저의 이 결락의 찬미를 받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요. 당신은 이전과 이후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저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유일한 인격체입니다.
그런 당신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으면, 어쩌면 나 자신이 갈구했고 염원했던 영원은 당신이란 존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그런 소녀 같은 생각도 듭니다.
쿠니키다 돗포의 「무사시노」에 투고되어 있는 「쇠고기와 감자」라는 소설을 읽어본 적 있습니까? 한 번 읽어보시길 바라요. 당신도 그 소설을 읽으면 무척 고양되고 흥분할 것입니다.
아무튼간에, 이 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저는 그 소설의 ‘놀라고 싶다’라는 부분에서 탄복하여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을 멈췄습니다.
이 세상엔 「금각사」라는 책도 있고, 「인간실격」이라는 책도 있고 쇠고기와 감자라는 책도 있는데, 저의 글은 정말이지 그 작가들의 반도 못 미칠 문체이고 또 한 편, 그들은 정녕 제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모조리 예쁘게 말해 버려서, 저는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이 부분에선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옳았을까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저는 그토록 스스로와 닮았다 여긴 오바요조도, 오카모토도 사실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되려면, 무의식과 백치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여야만 그들이 될 수 있는데, (여기서 백치는 바보가 아닌 청신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는 그들 치곤 너무나 속물입니다. 놀라고 싶지만 아직도 감자당의 면모를 버리지 못하고, 여자와 바람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놓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있습니다.
소설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그들의 모습엔 당신만이 겹쳐 보입니다.
당신과는 줄곧 진짜와 가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부끄러운 말만 번지르르 했었던 감각이 남아있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진짜입니다. 저에게 몸을 허락했을 때 저는 알아봤어야 했었습니다. 저의 심미안은 그 당시 너무나 좁았고, 뻔한 낙천가이기만 했었습니다.
번뇌, 저는 지금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전에 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끄러운 몸 덩어리만 가지고, 이 세상을 목적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늘 그렇듯 알려 주세요. 어째서 당신이 모든 것에 겹쳐 보일까요? 저를 잊으신 건 아니죠? 저는 줄곧 생각해 왔어요. 당신과 커피를 마셨던 겨울, 차가운 여름, 전부는 아니지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
그 겨울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저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내게 주었던 사려한 손짓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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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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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공상만을 먹고사는 나로서는, 눈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것이 가끔은 가소롭게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절망적이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에 벌벌 떨 때도 있지만, 역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스스로가 어떻게 되어버린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다.
의심이 들면 공상가로서 실격이다. 그런 법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매일 밤 수면이란 것과 싸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진정한 몽상가라 하면 무(無)를 갈고닦아 그것이 달을 대로 달은 진정한 무의 경지에 이른 송장이라던가, 감정이 초월한 어느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 초인뿐이다. 그런 류의 인간이 되기에는 그릇이 작은 나라는 인간으로선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감정과 이성의 선을 스물이 넘었지만 아직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겠지만, 나만큼 어지럽고, 계산적이면서도, 감성과 이성을 넘나드는 공상 속에서 분주히 살아가고 있는 녀석도 그리 흔치 않다.
언젠가, 세상이 나를 향해 음침한 계략을 짰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무엇 하나 두렵지 않게 되어서, 마치 예수의 사랑을 처음 영접했을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진정한 자유로움에 도달했을 때도 있었고, 아무도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았음에도 혼자 멋대로 병들어 터덜터덜 거리를 걸으며 패배자 흉내를 낸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보다 공상 속에서 일어난 비극을 갖고서 실제로 몸이 더 고양되었고 슬펐던 것 같다.
아무튼 간에, 내 속 좁은 인생은 진정한 공상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또 봐준다면 ‘비열한 공상가’는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말을 거추장스럽게 한 것 같은데, 어쨌든 이 ‘공상’과 ‘과거의 미화’가 없었다면 나는 이제까지의 나의 삶을 도저히 증명할 수 없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쩌면 내 작디작은 삶은 전부 공상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공상이라 하면, 필히 인간의 본능에 연결되지 않겠는가.
저지르면 안 되는 일들, 혹시나 이것만큼은? 아 역시 아니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한 욕구. 망상이라 부르는 거짓 평화, 나태를 멋들어지게 포장한 반쪽짜리 안도감, 바보 같은 희비극, 일어나선 안 되는 사랑의 도피, 추악한 밤놀이…그저 그런 것들.
그리고 공상가들은 인생에서 인문학을 그다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법이라, 가끔 무책임하게 막말을 할 때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주변에 거하게 한바탕 민폐를 끼쳐 한순간에 방랑자 신세로 내쳐질 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이라는 말을 듣기엔 이 세상의 많은 민족들 중 가장 동떨어진 족속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이 사회에 너무도 자연히 팽배하게 덮여있는 순리라는 것에 보호받고 자랄 수 없는 가여운 난민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묻고 싶다. 순수와 날것은 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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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아침의 경우에는,(똑같은 공상을 한 적은 없다. 매일매일이,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선 깨자마자의 자세를 유지한 채로 눈만 멍하니 떴다. 분명 나는 제대로 된 숙면이 아닐 경우가 훨씬 다분하기에 조금의 두통과 이인감도 함께한다.
그러고 나선 흐트러진 머리 스타일을 상상하고 영혼이 몸으로부터 천장으로 쏙 빠지는 것을 시작으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이른바 3인칭 공상이 시작된다.
밤 새 걷어차 널브러진 이불 위에 자전거를 굴리는 것 같이 놓인 두 다리, 손은 위아래로 제각각, 얼굴은 의외로 깨끗하고 하얗다.
침대 위에 있던 내 몸은 어느새 봄바람이 잔잔히 흘러드는 드넓은 깨끗한 초록색 풀 밭으로 이동한다. 주위엔 인간이라곤 아무도 없다. 내 옆엔 커다란 메타쉐콰이어가 있고 그 나뭇잎이 천천히 내 주위에만 하나씩 떨어지고 있다. 그곳에서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새 지저귐을 듣는다. 새소리 속에는 가늘게 매미 소리도 있는 거 같고, 익숙해서 어딘가 울적한 [베토벤-비창 2악장]도 희미하게 함께 들린다.
그렇지만 난 전혀 웃지도 울지도 ���는다. 울기는커녕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 내 얼굴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버린다.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공상의 묘미이다. 현실에서 몹시 부정적이라 여겨지는 ‘나 이외의 인간을 단정짓는 행위’를 그 무엇보다 쉬운 일로 간주해서 한 번에 100명이고 1000명이고도 단정 지을 수 있다. 그것뿐이랴, 나의 다음 행동에 따른 세상의 변화도, 상대의 대답도 전부 주체자인 내가 멋대로 정할 수 있다. 곧 있을 다가올 꿈만 같은 순간이 오기 전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갑자기, <사상의 등불이 켜지는 순간>이라는 문구가 뇌리를 빠르게 스친다. 그렇지만 역시,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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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아이파크 몰 안에서의 오전, 아니 오후라도 좋다. 시간은 아무래도 좋다. 그곳에, 영풍문고와 유니클로를 잇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다. 밖에서 비가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 사람은 분명 많을 테니 전부 뿌옇게 비네트 처리를 한다. 오늘의 공상은 날씨와 시간보다도 장소가 중요한 모양이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백화점이라는 건물 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거 같다.
역시 혼자서, 영풍문고를 무심히 걷고 있다. 어째서 걷고 있는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 나는 결말까지는 몰라도 어째서 걷고 있는지, 그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보태어 말하고 싶지 않다. 기억해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그런 기분이다.
기나긴 검은색 코트를 입고 치마인지 검도복인지 헷갈릴 정도에 통이 큰 회색 바지에, 코트 안엔 청색 폴로 난방, 그 위엔 더 진한 코발트블루 가디건을 겹쳐 입고 있다. 평소 즐겨 자주 입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이렇게 입으면 바지가 바닥에 끌리기도 하고 내 신발에 내 바지가 밟히기도 하는 둥 여간 불편하다. 또 옷 그 자체가 굉장히 무겁기 때문에 금방 피로를 느끼기 마련인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나체 상태인 것처럼, 무척 편안하다. 거기서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무심히 서점을 한 바퀴 쭈욱 돌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코너 쪽에 멈췄다. 그러고 있으니 비네트 처리되지 않은 하나의 존재가 밖으로 이어진 문을 통해 영풍문고로 들어온다. 내 주위를 서성이는 주황 불빛과 조명들이 문득 주마등 같다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는 않고, 오히려 오물처럼 짙게 낀 마음의 사념들이 저 멀리 날아간 느낌이라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다.
나는 수많은 책들 중에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집었다. 그리고 ‘어릿광대의 꽃’을 펴서 읽는데, 집중하며 읽으면서도 동시에 찬찬히 다가오는 존재를 인식하고 기다린다. 반드시 나에게 온다. 그것은 알고 있다.
수수하게 입을 줄 아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수수하게 입을 수 있을 테니.
조숙하고 조신한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조신하게 있을 수 있고, 괜히 갖고 있지도 않은 허상을 자랑하지 않아도 될 테니.
수줍은 웃음 뒤에 아무런 거짓이 없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세상의 이면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아픔을 있는 여자,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려하게, 그리고 그것에 다시 아파하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테니.
누구보다 아름답고 기품 있는 얼굴에 따스한 날카로움이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지금까지 지켜온 나의 동정과 정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비웃음과 무시를 모르는 듯한, 아가페의 미소를 갖고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진정한 사랑을 믿을 수 있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그저 특별한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서 당신을 기다렸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테니.
절망이 세상을 덮는 날에 그것만큼은 사소한 일이라 여기는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 앞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싶을 테니.
공상, 시작.
그녀는 내 옆을 지나가려는 찰나에 어째서인지 딱 하고 멈춰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엔 악의나 놀림이 없다. 조소도 계산도 없다. 진정으로 순수한 감격과 세월이 묻어난 태고의 감탄이다. 사실 이때부터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이상 바란다면 괴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나를 배려해 책을 들지 않은 내 왼팔 팔뚝에 그 깨끗하고 하얀 손가락으로 귀엽게 몇 번 쿡쿡. 노크하듯 살포시 찌른다. 나는 그녀의 존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심지어 나에게 말을 걸 것이라는 것을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거처럼, 처음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모든 것이 계산된 간사하면서 어딘가 살가로운 옅은 미소를 띄운다. 그리고 “네?”라고 침착하게 대답한다.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사실은 누구보다 영악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닐까. 그리고 누구보다 세상에 기대하는 것이 많은 인간. 아닐까. 의미 없는 내면의 아우성이 나왔다.
“혹시..”
그녀는 이 단어 하나만을 말하고 말을 멈췄다.
나는 이 말에서조차 그녀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한두 번 배려�� 해본 솜씨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어폰을 빼자 이내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영원을 넘어 영원.”
[영원을 넘어 영원]은 내가 만든 곡 중에 하나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앨범으로 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들려준 적도 말한 적도 없다. 이른바 이 세상엔 나밖에 모르는 음악이라는 것인데,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제목을 내게 말했다.
역시 나에겐 이 여자는 과분하다. 처음에 나를 그렇게 배려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 여자는 나랑 같이 있기엔, 너무 아까워. 그래. 초인인 진정한 공상가들. 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여자야. 이 여자는 깨끗해. 깨끗해도 너무 깨끗해. 아직까지 나처럼 더러운 녀석을 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 거야. 만약 나랑 사귄다면, 아니 사귀는 건 애초에 바라지도 않아. 같이 있기만 해도 이 여자의 순백은 하루아침에 깨질 게 분명해. 시커먼 결락으로. 어두운 사상으로 이 여자 또한 의도치 않게 나의 길동무가 되고 말 거야.
도망치자. 그래 도망치고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이 공상이 끝나면 아주 착실하게 살아가자. 감정? 사랑? 쓸모없어. 사상? 이성? 더할 나위 없는 꿈? 전부 진부한 것들 투성이야. 여자든 남자든 결국 돈이라고. 내가 돈이 많았다면, 저 여자 앞에서 이렇게 쫄지도 않았을 테고 자신감 있게 술을 먹자 하든 뭘 하자 하든 있는 힘껏 밀어붙였겠지. 아. 나는 공상에서조차 이리 쩨쩨하구나. 바보 같은 녀석. 이제 두 번 다시 공상 따위는 하지 않겠어. 바보. 바보. 바보 같은 녀석.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스스로가 너무 짠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마침표를 찍는 버릇은, 도무지 전부터 고칠 수 없었기에 허겁지겁 떠오르는 말을, 아무런 말을 횡설수설하며 해댄다..
“[영원한 피날레]는?”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만년 속에 사는 남자]는?”
“당연히 알고 있어요. 아니 그것보다 듣고 있어요.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답하는 여자의 말을 듣자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분노도 감동도 치욕도 절실도 아니었다.
단지 애증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애처럼, 차라리 떼쓰기로 마음먹었다.
“당신, 나를 놀리려 하는 건가? 뭐야 도대체, 갑자기 찾아와서 불러놓곤.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군. 가던 길이나 계속 가세요. 더 이상 난 할 말이 없군.”
나는 현실에서 이렇게 화 내본 적이 없다. 애초에 화는커녕 말 수조차 거의 없다. 지금 낸 화도 결국 어딘가에서 본 누군가의 화를 따라 한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후폭풍이랄까, 이미 다 말해놓고서 그녀의 얼굴과 대답이 대뜸 두려워졌다. 원래 비겁한 인간이란 것은 이리도 줏대가 없고 나약한 법이다.
7초 정도 지났을까, 그녀로부터 아무런 말도 제스쳐도 없길래 되려 조바심이 나 참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예상외로, 그녀는 씽긋 웃고 있었다. 이 미소도 아까의 감탄과도 같이 아무런 꾸밈도 해함도 거짓도 없는, 마치 순수하게 뻗은 하나의 불꽃놀이 줄기의 터지기 직전 같은, 그런 아련함이 묻어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관록이 담긴 미소, 요즘 사람들이라면 도무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고귀하고 신성한 태고의 미소.
나는 흠칫 놀랐다. 그녀를 보고 놀란 것인지, 자신의 추악함을 보고 놀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 방도조차 없었다. 단지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그 순간 그저 넋을 놓고 만 것이다.
앞머리가 있는 검은색 긴 머리에 신장은 165cm 정도, 회색의 긴 나뭇잎 잎맥 무늬 코트를 그녀는 입고 있었고 단추가 전부 채워진 코트 목부분 너머로 흰색 목폴라가 살짝 삐져나와있었다. 주먹만큼 작은 얼굴에 코와 입은 얇고 가늘었으며 무척 조화로웠다. 그리도 애처롭고 애수로운 쌍꺼풀 아래로 영혼은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듯한, 아름다운 눈동자를 갖은 양쪽 눈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모든 인간과 사회의 이상의 결실과도 같은 순백의 웃음을 그 작품에 그리면서, 자신의 팔에 걸치고 있던 회색 목도리를 나의 목에 손수 씌워주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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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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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너무나도 예민한 이 감각을 남들이 이해해주지 못해서 화도 났고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 과연 이렇게 감정으로 가득찬 이런 인생을 그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남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내 유일한 긍지가 되었다. 더 다르고 싶고, 더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특별한 인간이 되고싶다. 매순간 내가 겪어보지 않은 남들의 지독한 아픔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내가 그 고통을 느끼고 있었고 같이 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누구보다 상냥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구보다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가능하면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애매한 사람이 되고싶다
昔は、僕だけが感じられるあまりにも敏感なこの感覚を他人が理解してくれなくて腹が立ったし、僕も彼らを理解できなくて果たしてこのように感情に満ちたこんな人生を彼らと混ざって生きていけるのかと思ったが、今は他人に理解してもらえないという事実だけが僕の唯一の誇りになった。 もっと違っていたいし、もっと理解できない一つの特別な人間になりたい。
毎瞬間、僕が経験したことのない他人のひどい痛みの話を聞くと、なぜか僕がその苦痛を感じていて、一緒に痛がることができた。
それで僕という人は誰よりも優しい人になることもでき、誰よりも悪い人になれる人間であることを悟った。
できればみんなに愛される曖昧な人になりたい
사려한 숲속에서 아무런 이익과 명성을 벌지 못한다 할지라도 웃으면서, 단지 그것에 미치고 사무쳐서 어떤 깊은 자연과 인간의 깊은 곳에 흐르는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다. 누구도 본적도 느낀 적도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 나는 시간과 세대를 초월한 어떠한 영원을 내 삶을 바쳐 일궈내고 싶다.
思慮した森の中で何の利益と名声を稼げなくても笑いながら、ただそれに狂って染み込んで、ある深い自然と人間の深いところに流れる原初的な感覚を刺激する、そんな美しい音楽を作りたい。 誰も見たことも感じたこともない音楽を作りたい。 私は時間と世代を超えた永遠を自分の人生を捧げて成し遂げ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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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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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알 수 없는 곳에 접어들었다.
나는 매번 알 수 없는 곳에 놓이곤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그 어느때보다도 새로운 장소로, 갑자기 내 몸이 무언가에 강하게 이끌리듯 빨려들었다.
이곳은 때론 너무 눈부셔 제대로 사물과 형상을 인식할 없고, 아픈 사람처럼 계속 등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공기 자체가 어딘가 굉장히 긴장되어 있는 듯한 공간이었지만 또 그 긴장과는 정반대로 그 어떤 장소에 갔을 때보다도 더 마음의 流れ가 안정되는 신묘한 공간이었다.
무엇인가를 매만지고 있다.
굉장히 익숙한 손끝의 감촉. 그러나 정오의 태양빛이 너무 강해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는 상황이니 이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에서 유추만 할 뿐 어떠한 가닥도 실마리도 잡을 수 없다. 그저 이 세상에서 이것이 영원한 미궁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이 감촉을 가능한 마음 속��서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 여름의 냄새가 몸 속으로 들어와 순환하고 다시 밖으로 나간다. 쾌청한 공기가 코 속을 야릇하게 만들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의해 서로 부딪혀 진동하는 소리가 또 몸 속으로 들어온다. 아파트 5층보다 높이 솟은 수 없이 많은 교목들과 조경용 회양목, 바닥에 깔린 오래된 흙, 노후화된 하얀 벽에 나 있는 담쟁이덩굴, 그런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이 어느샌가 마음의 구석진 곳에서부터 점점 마음의 겉면까지 크게 넓혀지면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그림을 내면 속에서 필사적으로 쫓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은 그것을 붙잡지 못할 거 같아 위태로운 감정을 띄면서도 또 한편으론 붙잡지 못해도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미쳐버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드니 한순간만에 이 공간이 다함없이, 무엇보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사무치도록 어둡게만 느껴졌고, 공사장 주변의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고, 어디로 가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가 그런 당연한 생각조차 들지 않을만큼 정신이 혼탁해졌다.
그러나 내면은 여전히 그 그림을 쫓고있었다. 그것에 내면의 손가락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는가하면 일순간에 멀어져버려 손을 쓸 수 없는 거리에 놓이는 허무함이 반복되었다.
이곳을 떠날 수도 없고(애초에 방법조차 모르지만) 만약에 떠난다면 그 그림을 제대로 보지 않고 떠나버린 것에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갈팡질팡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져서 갑작스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우울해져 움츠러들고 자책했다. 그러곤 뭔가 현실같지 않은 이 현실에 체념 하며 몇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온통이 까맣기만 한 시야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4시간쯤 지났을까,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이성만이 남은 짐승의 모습처럼 변해가고 있을 때 문득 마음 속에서 엄청난 사실을 깨달았다.
눈 앞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의문을 처음으로 품었다. 정오의 태양의 위력만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야, 사실은 난 이곳에 왔을 때부터 태양이 떠 있는 것인지 확인도 못할 정도로 눈을 세게 감고 있었지. 어째서 여태 눈을 뜨지 않은 것일까? 어두운 시야에 익숙해져서? 그렇지는 않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나는 마음 속에서 화창한 어느 여름 날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내 눈을 뜨지 못 하게 하는 것인가?
아! 기억났다. 어째서 이 두 눈을 온갖 고집을 부리며 감고 있던 것인지를!
바보같은 웃음을 띄며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눈은 뜨지 못한다.
눈물이 흐르지 않은 세월이 벌써 5년도 넘었다. 이제까지 지켜왔던 모든 것들을 눈물로 흘려보���고 싶지 않다. 간직하고 싶었던 욕심.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진심으로 말한 것은 또 얼마나 지났는지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람인척 하는 짐승.
두려웠고 두려웠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아서 두려웠고 시도하려고 하는 순간이 두려웠고 시도하는 인간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두려웠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니 점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어째서인지 내 모습보다 그림자의 형태가 더 그럴듯하게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어느 장소에 이끌려가도 결국 나는 그곳이 어떤 형태인지 오로지 감각으로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그곳에 추악함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는 죽어가는 것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낙화하는 신록을 본 것이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이자 그 한 장의 가녀린 초록색 잎이 떨어진 순간 ��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이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며, 내 감고 있는 두 눈에 상냥히 키스를 해 줄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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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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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것이 없는 사람은 무척 행복한 인생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누군가에게 “사랑해”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도 그리고 그 상대방도 그 말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부턴 사람들이 모여 행복해서 웃는 소리가 오직 나를 향한 비웃음으로만 들린다. 자신감이라는 녀석이 사라져서 가끔 길을 걸을 때도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대다수다. 감정의 흐름과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무엇 하나 믿을 수 없는 녀석이 되었다.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하면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다.
죽고 싶다 결심한 것도 이제는 흐릿해져간다.
아름다움을 죽음으로서 결착시키려 한 내 탐미적이고 이상적이자 순수했던 마음가짐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살고 싶어져서, 그 사실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얼핏 보기에 상냥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그 상냥한 사람들이 터지지 않은 활화산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겁쟁이인 나로서는, 언제 어느 곳에서 내게 타오르는 그 용암을 분출해댈지 몰라 두려움에 애써 먼저 웃음을 짓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헌신해댔던 내 가련한 웃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안타까움이라는 말로를 맞이한다.
사랑은 언제나 나보다 우위에 있는 녀석들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을 반신반의한다. 도무지 내게 언제 그 사랑을 거둘지 의심스러워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느낀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나에게 준 사람들의 마음조차 나는 헤아릴 수 없다. 제대로 된 의견조차 남한테 건네기 위해 전날 밤까지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당일에 마는 그런 한심한 역마 같은 존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것일까?
배신과 배신, 의심과 혈투 속에서 늘 헤엄쳐댔다.
근사한 순간도 분명 있었겠지만 이제는 손에서 힘이 빠진다. 그런 근사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도 전부 내가 상대방을 속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순간이었다.
살아가자. 부끄럽지만 한 마디 내뱉고 나면 나는 길을 잃고 만다.
23살 5월 4일
돌아켜 보면, 육체의 안위를 바란 적은 딱히 없다. 항상 마음속에선, 절대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굳건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또 키는 자연히 클 것이고 손톱도 제대로 붙어있을 것이고 눈도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감았다 뜰 것이라는 것을 언제나 되새기며 믿고 있었다. 실제로 눈은 나빠지지 않았고 키도 클 만큼 컸으며 손톱도 갈라지지 않은 채 살아왔다.
가끔씩은, 백일초가 12월에 만개한 상상을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12월에 꽃 따윈 필 수 없다. 그러나 たまに、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어떤 보이지 않는 기억 같은 것이 허리를 주무르고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거기에 가미해 침대에 눕고 야한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도 언젠가 열기가 식어 멍하니 기억에도 없는 기억을 만들어낸다. 혹은 원래 있던 기억을 각색하고 미화해 새로운 결말이 놓인 인생을 그려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귓속에선 참새들이라던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분명 12월인데도 그런 소리가 귀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홀린 듯이 약이라도 한 듯 침대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고, 어릴 적 콩쿠르에 나가 입상을 했던 소나티네 9번을 대여섯 번 친 다음 피아노 커버를 닫는다.
왠지 무한히 피어나갈 것 같은 담배연기를 뿜어본다. 답답함을 해소하려 피우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점점 더 갑갑해져서 윗옷을 찢고 싶어지는 경지에 이른다. 세상만사는 역시 형통치 못한 것이다, 이런 통념을 한순간 다시 차가웠던 겨울 속으로 미끄러지듯 안착한다.
다시 그 백일초를 찾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다시 잠들고, 예의 믿음을 다시 갖춘 다음 입수. 피곤함 따위는 전부 던져버리고 그 환각을 찾아 탐험한다.
이미 두고 떠나버린 시간의 궤.
바닷속에는 비로 된 눈물만이 가득차다.
바닷속에는 비로 된 눈물만이 애수를 놓고 있고, 나는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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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1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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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오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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