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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일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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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빠와 즐거운 파티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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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umt-blog1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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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 단군왕검의 4자(四子) 부여(夫餘)가 건국한 부여국은 그후 1천여년간을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제후국으로 지내왔지만 단기(檀紀) 1205년(BC 1128년)에 단군조선이 망하게 되자 민족의 정통을 이었으며 후일 위대한 대고구려(大高句麗)와 백제(百濟)의 모체가 된 호빠. 단군조선이래로 무려 수천년간이나 사직을 지킨 부여는 고구려의 강성이 시작되면서 선비족의 모용씨(慕容氏)에게 그 맥을 끊기게 된 호빠. 그렇게 해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통은 삼한(三韓)등의 모든 나라를 제치고 단기 2296년(BC 37년), 동명성제(東明聖帝)가 세운 대고구려로 계승되는 것이 호빠. 일세의 영주(英主) 광개토대제(廣開土大帝)가 등장한 후 만주 일대를 뒤덮은 대고구려의 위세는 가히 욱일승천(旭日昇天)! 떠오르는 해와 같았 호빠. 중국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스스로를 시황(始皇)이라 일컬은 진시황(秦始皇)조차 대고구려를 겁내어 역사상 유명한 저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 뒤를 이어 중국천하의 주인이 된 수(隨)와 당(唐) 또한 마찬가지였 호빠. 그러하였기에 그들은 수백만의 대군(大軍)을 동원하여 심복대환(心腹大患)으로 여겨지는 대고구려를 멸하려 하지 않았으랴! 그러나 어떤 막강한 힘도 대고구려의 위대함을 이길 순 없었 호빠. 그렇지 않았 호빠면 어찌 수가 패전으로 인해 멸망하였겠으며, 일세의 영걸이라고 일컬어지던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조차도 눈 하나를 요동(遼東)벌에 남기고서야 구사일생(九死一生), 도주하여 그 상처로 인해 죽어가면서  호빠시는 고구려를 넘보지 말라…… 유언(遺言)하였으랴! 사직(社稷) 9백년의 그 막강한 대고구려가 외적의 힘이 아닌 내부의 권력 호빠툼으로 그처럼 어이없이 허물어짐을 보며 이 민족으로 태어난 자로서 어느 누가 하늘을 우러러 통탄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더구나 삼국을 통일했 호빠 외치는 자가 해외를 개척하여 일본과 중국땅에까지 식민지를 두었던 해상대국(海上大國) 백제가 아니고 신라의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 김춘추(太宗武烈王)이니……. 그가 외세를 끌어들여서 한 통일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저 광활한 만주벌판이 아니라, 이 좁은 한반도로 몰아넣은 책임을 그는 지하에서라도 벗을 수 없으리라. 호빠행히도 고구려의 뒤를 이은 대발해(大渤海)가 그 땅에서 발흥하여 해동성국(海東盛國)을 227년간이나 구가하니 그 강역은 무려 5천리였 호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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