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birthdayblue · 11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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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6. 10.
아무 생각이 없따.
벤 생일이라고 옆에 계신 분이 되게 조아하셨다.
곧 잘릴 것 같고 그치만 기분이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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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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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6. 16.
파도에 휩쓸리고 남은 것들을 보고 있다. 아래로도 위로도 갈 곳이 많아서 좀 버겁다. 평생 모든 게 변하지 않길 바라는 건 아닌데. 변하는 게 나쁜게 아닌 걸 안다. 변하지 못하는 게 나쁜 걸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평생 변하지 않고 살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조금씩 변해야 하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건 좀 공포다.
기대하는 게 버겁다. 바라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한데 그럴 수 없어 불편하다. 똑같이, 혹은 그 이상을 줄 수 없어서 적게 받고 싶은데 적게 받으면 막상 아쉽고 서운한... 걍 존나 이기적인 거지~ 근데 다들 이러고 살지 않을까. 정말 잘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내면에 너무 빈틈이 없다. 응 변명! 그니까 난 너무 나한테만 골몰하는 사람이다. 그게 편하고 쉽고 음... 아오 썅.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서 자꾸 무심해진다. 무심해지다보면 무감해진다. 내가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착하면 쉽게 살고 착한 척하면 어렵게 살게 되지.
내가 생각하는 나아짐이란 게 쫌 한심하다.
사람은 언제부터 안 변하기 시작할까? 벌써 대가리가 굳어서 별 생각이 들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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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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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04.
가끔 미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발악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그런 때에 나는 내가 슬퍼서 문드러지고 있다는 걸 티내고 싶어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들락거리며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결국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채 시간을 죽였다. 베개를 패고 머리를 쥐어뜯는 상상을 하며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다. 눈으로는 끝없이 활자를 읽어댔다. 생각의 공백이 오면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쿵 쿵 쿵 명치가 울렸고 그걸 듣지 않기 위해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를 찢어서 내 소리로 귀를 막아서 귓구멍이 찢겼으면 했다. 뭔갈 부수고 싶었고 부서지고 싶었다. 그러다 하염없이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울 때의 숨소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커졌다. 자주 울지 않으니 우는 김에 다 우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을 만큼 점점 큰 슬픔이 닥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는데 동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심장소리가 귀에서 울려서 아무것도 못 들을 것 같았는데 창밖에서 남녀의 대화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떠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죄책감을 느끼지 말랬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또 괜찮아질거고 괜찮아진 뒤에는 안 괜찮아질 거다. 그렇게 대체적으로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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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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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6.
몇 살이었더라. 아무튼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대구의 아파트는 조용했고 이른 낮의 해는 쨍쨍했다. 주말이었을까?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눈을 뜬 그대로 누워 불을 켜두지 않았다. 천장은 그늘이 됐고 난 티비도 켜지 않은 채 혼자였다. 몸을 돌려 누우면 베란다가 시계방향으로 270도 꺾여 보였다. 방충망은 얼룩덜룩 더러웠고 난 다시 가물가물 잠을 자려다 베란다 앞의 분무기를 기어오르는 빨간 개미를 봤다. 얇은 샤프로 콕 찍어놓은 점만한 작은 벌레. 벌레는 바쁘게바쁘게 분무기를 오르고 나는 그걸 비스듬히 보다가 내가 자는 사이 일하러 간 엄마가 보고싶었다. 난 엄마에게 시덥지않게 전화해 집에 불개미가 있다고 말했다. 불개미는 물리면 많이 아프다던데 물려서 잔뜩 부어오르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엄마는 그냥 놔두면 개미가 도망칠 거라고 했고 전화는 금방 끊겼다. 전활 끊고 불개미는 잊혀졌다. 사실 별로 무섭지 않았다. 나는 일하러 간 엄마가 나를 잊지 않았단 걸 확인하고 싶어서... 지금 와선 일하다 시덥잖은 전활 받은 엄마의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난 오늘 그 날의 생각을 했다. 오늘 엄마가 했던 말에 화가 나고 억울하고 눈물이 났다.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해야하는 말만, 당신이 몰라서 서운하지 않을 것들만 말하게 된 건... 나의 기분을 정말로 잘 설명하기 위해선 그 기분의 기원까지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우스워질 거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글도 대충 30줄 정돈데. 내가 생리 직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너무 감정적이지만 그걸 티내지 않고 싶어해서 이렇게 우스워진다. 그리고 몇 시간 전 생리를 시작했고 아직까지도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난 왜 엄마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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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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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2.
방은 엉망이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이직 기회가 왔을 때는 그저 어버버한 상태로 일단 만나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넘어갈 걸 알고 그랬다. 어쨌든 거기서나 여기서나 나는 아직 애새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바보 취급하지 않는 곳이 필요했다. 내 정서적 자존감은 아집으로 높아졌을지 몰라도, 부족한 체력과 피해의식이 자존감의 멱살을 잡고 아래로아래로 끌어내렸다. 결국 퇴사와 이직 날짜를 잡았다. 퇴사 날이 다가오고, 회사는 나를 더 꽉꽉 조이고, 친절과 배려가 넘치는 분위기에서(ㅋㅋㅋ시발..) 이 주 동안 야근을 했다. 손톱이 텁텁했다. 사만원을 들여서 바른 손톱이 아까워 그걸 자르지 않았다. 타자를 칠 때마다 손톱 끝이 자판의 끝에 눌려 아팠는데도 그랬다. 짐을 싸고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와 원치 않는 커피를 대접 받고 혼자 지하철에 올라탄 후에야 퇴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난 곧바로 아아아아주 짧게 가능한 한 짧게 손톱을 잘랐다. 그리고 반 년 넘게 하고 있던 조악한 파란색 소원팔찌를 내 손으로 끊었다. 닭갈비 집에서였다. 아 그거 진짜 안 끊어지더라...
겨울이 됐다고 온몸이 가렵다. 계절이 오고감을 리터럴리 피부로 체감한다. 그래도 엄청난 고통이던, 말할 수 없는 간지러움은 피부과 한 번 갔다왔더니 훨씬 나아졌다. 너무너무 괴로웠지 모야. 이것만 나으면 나의 예민함은 많이 덜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없어진 지 꽤 된 지금은 그게 있었던 건지 잊을 정도다. 그니까 예민함은 그냥 내 성정이었던 것... 내가 좋아하는 여름은 짧고 우울한 겨울은 길다. 그래도 매일이 맑으면 세상은 사막일 거라는 작자미상의 구절을 생각하며 겨울 옷을 샀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겨울이 있어서다. 입을 꾹 처닫고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은 날들이 종종 오겠지. 그래도 손가락으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라 다행이야~
요즘 말고 오늘의 이야길 해보자면 흰발이를 보러 본가에 다녀왔다. 흰발인 이제 많이많이 아파서 곁에 누가 없으면 안 된댔다. 엄만 나를 위해 알러지 약을 사다놨고, 하루에 두 알씩 그걸 먹으며 이박 삼일을 있었는데 기억이 별로 없다. 밥 먹고, 흰발이 밥 주고, 걔를 번쩍 들어서 쉬야 시키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너무 쏟아져서 이상하다 했는데 알러지 약이 항히스타민제라고 했다. 난 어쩐지~... 라고 생각하며 오래오래 잠을 잤다. 그래서 기억이 별로 없다. 퇴사 시점에도 항히스타민을 일주일간 먹었다. 이번 겨울은 자꾸 깜빡깜빡 잠에 들었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엄만 본가에 와서 흰발일 봐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했다. 난 그 얘길 들으면서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가 그 짜증을 느끼는 내가 싫었다가 미안했다가 안쓰러웠다가 어느 정도의 죄책감이 생기고...나이 들어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 엄마가 좋고 싫고 고맙고 미안하다.
현실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은 꿈을 자주 꾼다. 죄다 아주 현실적인 것들이라 새벽에 눈을 뜨고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면서 아이고 아이고 싶은데, 반대로 생각하면 돌아올 안락한 현실이 있어서 다행인 거겠지. 꿈은 공포영화다. 난 환상에서 돌아와 안전한 현실에 있을 수 있다는 걸 확인 받는다. 아니 시발 꿈에서 자꾸 퇴사한 걸 까먹고 전 회사에 출근하잖아ㅠ 그냥... 냅다 소주나 먹고 잠들고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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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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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16.
바쁘고 힘들 땐 그리운 것들이 더 생각난다. 그리운 것들을 추억하면서 힘내라는 뇌의 뜻일까-내가 어쩔 수 없는 전기신호와 호르몬의 뜻일까? 아님 컨디션이 바닥을 기면서 자연스레 내 깊은 바닥에 있는 것들이 드러나는 걸까. 있었지만 이제는 없는 것들에 슬픔을 느끼면서.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누워서. 뿌연 눈으로 천장을 보면서.
그런 순간을 단순히 슬픔이라 생각하지 않으려면 슬픔 속에서 기뻤던 것들을 파내는 체력이 필요해. 바닥나버린 체력을 끌어올려 파내고 파내고... 아래로 아래로... 바닥의 뭔가를 건드려 물이 솟아오르기 직전까지.
오늘 새벽엔 콩이가 온 집안의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걸어다니는 영상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주쳤다. 알 수 없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다시 볼 용기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대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없었던 것들로만 슬펐던 걸로만 남겨두기엔 그 안에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기쁨이 섞인 슬픔이 넘실대는 너나 나나. 하나 같이 찰랑찰랑
어젯밤에 네가 꿈에 나와서 울면서 깼어 따위의 말로 자고 있을 '너'에게 깨자마자 연락했던 때도 있었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너'는 너와 내가 함께 나오는 꿈을 꿀 수도 없어 내가 부럽다고 했다. 이제 나는 울면서 깼다고 새벽에 연락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고, 연락 받을 너도 없고, 울면서 깨는 일도 없어졌고, 대부분의 것들에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타인 앞에서 쉽게 울지 않으려 혼자 우는 사람이 된 걸까. 이건 강해지고 있는 걸까 약해지고 있는 걸까.
//약한 듯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내일은 그렇게 또 변할 수 있는 건가봐//
음. 조금 약한 모습으로 쬐끔만 울다가 잠들면 내일은 변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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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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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7. 27.
에어컨 아래에선 현실감을 잊는다. 어느 날 한비가 퇴근하고 와선 에어컨 틀어봤자 전기세 얼마 나오지 않으니 집에 있을 땐 펑펑 틀어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정속형 에어컨과 인버터 에어컨의 차이점을 명시해둔 블로그 글을 읽었다. 그리고 에어컨을 켰다. 검은색과 흰색을 분리해 빨아둔 옷은 에어컨 아래에서 금방 마른다. 나는 여름의 햇빛과 아지랑이와 공기 중의 물방울을 잊어버린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마다 어지럽다. 그게 내 살갗에 닿는 몇 안 되는 여름의 증거다.
이번 여름은 어쩐지 나에게 쌀쌀맞다. 엄마는 내 인생의 장르를 흔한 노란장판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쉽지가 않다. 오컬트가 섞인 글을 읽었다. 악귀를 막으려 덕지덕지 붙인 부적을 묘사하는 텍스트. 난 부적 대신 덕지덕지 붙은 빨간 딱지를 떠올린다. 난 그 현장에서 도망쳤고 엄만 조수석에 앉은 내게 차라리 내가 도망쳐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괜찮다가 가끔 울컥울컥 죽고 싶어진다. 엄마를 걱정하는 나, 그게 그냥 모순이다.
담밸 피러 나왔는데 비가 쏟아진다. 비를 보면서 늦은 새벽 퇴근할 한비를 떠올리고, 한비가 어제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글을 떠올린다. 한비는 담담하고, 생각이 많고, 그 점이 귀엽다. 나는 행운아다. 노골적이고 야트막한 질투를 드러내도 친구들은 나를 내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들도 그렇고, 그랬고, 그럴 거라고 말한다. 내 엉덩이를 두드리고 너에게 아직 행운이 찾아오지 않은 거라 말한다. 이 말은 자신들이 해낸 것에도 행운이 따른 거란 겸양이 들어간 말이라 나는 인정할 수가 없다. 너희들이 해낸 건 행운이 아니야. 뚝딱뚝딱 만들어낸 수레바퀴야.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듣고 싶은 말을 돌려주고 싶다.
아빠랑 안양 실개천을 걷는데 갈매기를 봤다. 빙하님과 춘천에서 북한강을 지나면서도 갈매기를 봤다. 나는 강에 사는 갈매기를 바보갈매기라고 불렀다. 바다에 사는 갈매기가 강에 있으니 그건 바보라고. 아빠는 갈매기가 바다에만 사나? 하고 되물었고 난 그 날 밤 자취방에 돌아와 갈매기를 검색했다. 갈매기는 바다에만 살지 않는다. 강에 사는 갈매기는 바보가 아니라 그냥 살아온 대로 사는 거였다. 큰 물에 나가지 않아도 바보가 아니다. 큰 강과 바다가 뭐가 다르다고. 나는 바다에 사는 갈매기가 되고 싶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그 다른 날.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힘들다고 말한 아빠와 대화하며 웃으면서 울다가 흰발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흰발이를 보고 있으면 행복한데 머리가 아프다. 쟤를 어쩌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 생각에 그 애를 사랑하는 걸 깨닫는다. 걱정이 돼서 그냥 그 애가 내 눈 앞에서 끝을 봤으면 좋겠다고 파괴적인 생각을 한다. 누굴 사랑하는 건 다 그런가보다. 내 손에 쥐고 터뜨리고 싶은데 또 그냥 하염없이 놔두고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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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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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2. 22.
간만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기록하고 싶어 텀블러를 켰다. 그리고 며칠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야 나 존나 생각 없이 사는구나ㅋㅋ 하고 혼자 킥킥댔는데 스스로도 그건 아닌 걸 안다. 나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냥 자고 일어나서 일하고 밥 먹고 똥 싸고 씻고 다시 자면 살아진다. 내가 단면적일 거라 굳게 믿으며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대부분이 실은 입체적이었다. 그래서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하나도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지금의 난 똥멍청이 같다. 어떤 근거로 뭔가를 확신하고 살았는지 예전의 내 멱살을 잡고 짤짤 털며 물어보고 싶다. 그냥 그게 맞으니까 맞다고 생각했겠지. 뭐가 좋은 건진 모르겠다.
요즘은 사람이란 본질적으로 다정한 건지 냉정한 건지 판단할 수 없어 슬프다. 가끔은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 같고 가끔은 너무 차가워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본질을 하나로 뭉개는 게 의미 없는 건 알지만... 다정에도 냉정에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하염없이 매사에 뚝딱대고 있는 거다. 언제쯤 나는 다정에도 냉정에도 익숙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매사에 다정한 사람도 매사에 냉정한 사람도 없는데 한 사람의 태도가 변하는 지점이 좀 어렵다. 나는 뭐 하나라도 능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물며 손톱 하나 너무 바짝 깎지 않는 법도 능숙하지 못한데. 뭔갈 말하고 행동하고 그게 누웠을 때 생각나지 않는 밤들이 생길까...
내가 힘들 때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서 남을 위로할 줄도 모르겠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싶어 버스에 타 주변을 둘러보아도,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를 잡아드리려 몸을 일으켜도 나는 엉거주춤하다. 별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자리에 앉으려 돌아가보면 그 자리엔 이미 타인이 앉아있다. 그래서 귀로 열이 쏠린다. 민망해서 뜨끈뜨끈한 귀를 한 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걷는 동안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어야했는지를 떠올린다. 그래도 돕지 않고 모른 척한다는 선택지를 지우려고 한다. 나는 결국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받고 싶은 다정의 종류를 내 선택지에서 지우고 싶지는 않아서.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눈밑이 뜨끈해진다. 막상 그게 모여 흐르지는 않지만 하루에도 세네번 그렇다. 나는 이제 웬만한 일에 잘 울지 않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게 좋은 건진 모르겠다.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을 모르겠다고 해버리는 건 내 안 좋은 습관이다. 정말 슬퍼서 울었을 때, 그리고 그렇게 울어야 하는게 맞았을 때의 울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게 싫다. 근데 부끄러워서 종종 생각난다. 어쩌라는 건지~... 그 순간에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했을까. 어떻게 사랑한다고 했어야, 세상을 뜨는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옆에 있어줬어야, 어떻게 화를 냈어야, 어떻게 적당히 다정했어야 했을까. 어떻게 하면 후회로 남지 않을까... 음. 근데 그런 방법은 없다. 후회와 회한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만들고... 웅앵웅...
자, 다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일기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단면적일 거라 굳게 믿으며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대부분이 실은 입체적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다 후회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거다. 내가 그러하듯. 그래서, 그들이 온갖 후회를 겪고나서 행한 행동들이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내가 알 수 있는 게 더 이상하다. 그 사람 딴에는 그게 맞을 거니까. 혹은 그게 후회로 남아서 그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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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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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칼 세이건과 나누었던 죽음에 관한 대화
https://newspeppermint.com/2014/04/20/carl-sagan/
(역자주: 아래는 칼 세이건의 딸 사샤 세이건(Sasha Sagan)이 뉴욕매거진에 기고한 에세이입니다.)
당시 내 아버지 칼 세이건은 코넬대학에서 천문학과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했고, 자신의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수백만 명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부모님은 미신과 신비주의, 그리고 맹목적 믿음이 가득한 영역에 과학적 사고를 불어넣기 위한 책과 수필,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의 공동작업은 곧 이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작업 중 하나가 1980년대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던 코스모스(Cosmos)입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부모님은 저녁식사 시간마다 회의적 사고와 우주의 역사에 관련된 한 가지 주제를 잡아 나와 대화했습니다. 우리는 끈질기게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주고 받았고, 절대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또는 “그건 원래 그런거야”라고 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모든 질문에는 설사 그것이 답이 없는 질문이라 하더라도, 깊은 생각과 솔직한 의견이 따라왔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때까지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나는 아버지에게 그 분들이 어디 계신지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세상을 떠났단다.” 그는 슬프게 말했습니다.
“그럼 아빠는 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수 없나요?”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보고 싶지만, 자신은 죽음 뒤에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왜요?”
그는 매우 부드럽게,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에게, 그리고 권위 있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게 될 거야.” 그는 오직 진실만이 비판을 견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가 내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순간입니다. 그 뒤로, 어린 내가 존재의 두려움에 빠지려 할 때마다, 부모님은 내게 그들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너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단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야.” 그들은 한 사람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운명의 갈림길이 있는지를 이야기했고, 내가 지금 바로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시고, 가까운 별이 내는 따스한 온기를 즐길 수 있게 진화했다는 사실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유전자를 통해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더 멀리는 우주와, 곧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은 항성들의 핵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유명한 말인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We are star stuff)’는 말을 내가 어린 시절부터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바로 우리가 깊이 감사해야 할 이유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심오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존재는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기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희귀한 혈액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가 최고의 의사로부터 진료받을 수 있도로 시애틀로 이사했습니다. 병은 호전되었고, 다시 재발했으며, 골수 이식을 받았고 또 재발하고, 두 번의 골수이식을 더 받은 후 내가 14살이던 1996년 겨울,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살던 옛 집에는 아버지가 남긴 수천 종류의 노트와 자료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는 이들을 보존하고 정리하고 싶어했지만, 어떤 학교나 기관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수 년간 홀로 이를 정리하던 어머니는 코스모스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4년 동안 여러 후원회와 관련 기관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패밀리 가이를 만들었고, 아버지의 열렬한 팬인 세스 맥팔렌(Seth McFarlane)을 만났습니다. 세스의 도움에 의해, 그리고 어머니와 닐 디그라스 타이슨의 노력으로, 이제 수천만 명이 다시 과학의 경이로움과 비판적 사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이렇게 어떤 형태로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입니다. 특히 나는 다음 세기의 학생들도 어쩌면 아버지의 글을 읽고 그의 삶을 생각할 지 모른다는 것을 가끔 상상하며, 이는 죽음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께 배웠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몇 십억 년 뒤 태양은 수명을 다할 것이며, 아마 그보다 훨씬 전에 인간의 문명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멸과 필멸의 수수께끼를 떠올리는 순간, 나는 아버지와 나눴던 그 때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내 마음속에서 살아있는 아버지를 느낍니다. (NYmag)
https://www.thecut.com/2014/04/my-dad-and-the-cosmo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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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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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1. 07.
2021년 일주일 째. 자취 10일 째. 생리 끝난 날. 폭설이 내린 날. 등등. 수식어를 붙이자면 매일이 특별한 날이겠지. 나는 일상적인 것들이 싫어서 일상을 반복해야하는 일을 하기 싫었다. 비일상을 살 수 있는 일이 뭘까, 어떤 일을 하면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한 결과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뭐. 작가도 엉덩이 힘으로 되는 거라고 한다. 결국 비일상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비일상을 반복하면 그것도 일상이 되니까. 나의 비일상은 누군가의 일상이고 누군가의 비일상은 나의 일상이겠지.
요즘은 긍정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은 모든 상황에 해맑게 대처하는 사람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과 만가지 감정을 그 감정 그대로 받아들이고 슬플 땐 그 곳에서 빠져나와야겠다고 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슬픔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우울을 즐기지 않는 것도 꽤나 어렵지. 한 때는 우울을 즐기는 게 멋져 보였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슬픔도 우울도 끝이 있다는 걸 알고 헤쳐나오기로 맘 먹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다. 당장의 슬픔이나 우울을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밖에서 눈보라가 몰아친다. 누구 한 명 죽어가도 아무도 모를 날씨. 잔뜩 쌓인 눈이 빛을 반사해 어느 때보다 밝다. 평소보다 잘 보이는 천장을 보며 이제는 두근거리지 않는 좋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대부분의 좋았던 것들엔 무감해져버렸고 몇몇 좋았던 것들만 간만에 봤을 때 두근거리지. 똑같은 크기의 애정을 쏟아부어도 남는 건 다르다는 게 신기하고 이상하고 허무해. 그렇지만 싫어했던 것들을 좋아하게 되는 건 매번 묘하고. 어떤 기뻤던 것들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고 대부분의 슬픔은 바래지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덮이고 덮여서 지금 내리는 눈처럼. 밟아서 회색이 된 블랙아이스는 운전에 방해가 되고 누군가가 시린 손으로 다듬은 눈사람은 다시 봐도 기쁜 것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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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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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3.
시간 존나게 빠르다! 라는 말을 매일 입에 달고 살지만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방법도 다 기록할 방법도 기억할 방법도 찾지 않은 채 그냥 흘려 보내는 중. 근데 뭐 하루하루를 다 기억하고 살면 그것도 나름 고통일 듯. 12월은 주변 사람들 덕에 여러모로 깨달은 게 많았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만나서 얘기하는 것 이상의 정서적 교류를 한 것 같애. 물론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이걸로도 좋아.
일주일 쯤 전에 내 마음 속 응어리였던 분들과 전화 통화를 했다. 혼자 쌓아둔 죄책감으로 쓸데 없는 고민만 많았는데 확실히 해소된 기분이었고. 역시 변명을 주절대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는 게 어떤 상황에서든 더 낫다는 걸, 적어도 내 장기적인 멘탈 관리를 위해서는 훨씬 낫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피디님이 그래도 돼 그럴 때도 있어 그냥 네 소식이 희소식이지, 하고 말해주셨을 때 갑자기 눈물이 퐁퐁 솟아나서 와 씨바 이게 뭐지?! 이게 무슨 감정이지? 나 지금 왜 울지? 했는데... 걍 나 나도 모르게 힘들었구나. 몰랐는데 쫌 외롭고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쫌 외로웠고 외롭다. 그리고 이럴 땐 사실 누구 만나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라는 건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나와 함께하는 감정이었다. 모든 순간이 외롭다거나 즐거웠던 감정들이 거짓이었다거나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매번 입 안에서 턱 막히고 마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구나. 내가 특출나게 스스로의 감정에 예민한 사람은 아닌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한 이후로 그냥... 내 일상에 당연하게 존재하는 감정으로 자리잡게 할 수 있었다. 특히 계절성 우울을 매년 경험하는 나로선 겨울에 그게 극대화되곤 하는데... 매년 나는 담담해지고 능숙해지고. 점점 역치가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언젠가에는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어쩌면 그런 감성적인 면에서는 내가 남들과 다르게 특출나다는 생각을 하고 싶었던 듯. 근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그 사실만으로 어떤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중2병을 이겨내가는 걸까!
원래는 막학기라도 오프로 제대로 다니고 싶어서 휴학을 한 학기 더할까 했으나, 집을 나가게 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복학을 결심했다. 아쉬움에 젖은 목소리로라도 어제는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하지. 4학년 동안 온라인 오프라인 대학 다 다녀본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 몇몇 친구들은 졸업하고 친했던 누군가들은 소식도 모르게 됐다. 그래도 누군가는 5년차가 되는 내내 함께 해서 다행이야. 다행인 일들은 찾아보면 참 많고 열심히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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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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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0.
콩아. 언닌 정말 네가 가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했어. 막연하게 힘들겠지 슬프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거나 슬프지 않아. 너에 대한 일기를 쓸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어. 이 얘길 들은 너는 기뻐할까 슬퍼할까?
밥도 심각하게 잘 먹고 친구들 만나서 잘 놀고 술도 꽤 마셨어. 오늘은 일어나서 글을 쓰고 한비언니랑 또 집을 보러 갈 거야. 생각했던 것보다 본가를 일찍 나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맞아. 사실 나 도망치는 걸지도 몰라...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에 계속 고여있을 것 같아서 무서워. 고여있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그래. 여기엔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아. 영원히 잊을 수 없더라도 덮어놓고 싶은 것들이 있어.
괜찮다고는 했지만... 너는 나한테 좁고 깊은 상처로 남아서 가끔 생각나면 그게 또 되게 깊다. 부슬부슬하던 털이나 햇빛 밑에서 등이 간지러워서 뒹굴던 네 신난 드르렁 소리. 미용한지 오래 되면 정수리에 솟아나던 털 가닥. 나중에 만나면 언니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얘기해줄게.
사실 나 그렇게 괜찮지 않은 것 같아... 그냥 글이라면. 말하고 생각하고 휘발되는 것보다 억지로라도 어딘가에 고여있게 둔다면 너한테 닿을 것 같아서... 내생이고 하늘나라고 그런 거 안 믿는데 너한텐 모든 게 예외였음 좋겠어. 너를 위한 게 아닐지도 몰라. 내가 덜 슬퍼하기 위해 하는 생각일지도 몰라. 그래도... 그래도. 콩아. 어디까지 갔어? 너무 보고싶어. 많이 많이 보고싶어. 너를 잊고싶은데 잊을까봐 무서워.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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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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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1.
요즘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콩이고 그런 콩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무섭고 어려워서 그간 일기를 쓰지 못했다. 콩이는 내가 10살일 때 4살의 다 큰 모습으로 온 개다. 인간과 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말이 무색하게 콩이는 생각보다 거의 늘 그대로였다. 빠르게 왔다가 간 까뮈에 대해 생각한다. 까뮈가 기어다니다 눈을 뜨고 걷고 뛰다 시들었던 그 모든 날들 속에 콩이는 그대로인 것 같았는데. 그랬던 그 애가 요즘 많이 아프다. 올해를 무사히 보내면 다행일 정도로. 이 애가 아프고나니 내 일상의 대부분이 콩이였던 적이 있나 떠올려 본다. 그리고 미안해. 미안해. 그랬던 적이 없어서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안아 올리는 걸 싫어하던 콩이는 이제 안겨서 가슴팍에 고개를 기댄다. 힘이 없어서 그렇다. 늙어 죽는 모든 죽음이 호상이냐고. 자다가 조용히 아프지 않게 죽길 바라는 수 밖에 없는 게 사랑이냐고. 그런 거면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사랑한다. 그래서 엄마가 개에겐 좋지 않아 지금껏 주지 못했던 것들을 맛보게 해주는 게 화가 난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괜히 웃으면서 얘기하거나 괜히 가벼운 척하며 얘기하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울 것 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죽음은 그러기 어렵다. 콩이가 조용히 잘 때엔 심장이 쿵 내려 앉는다. 그 애의 배가 얕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좀 안도하곤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괜히 그 배를 쓰다듬는다. 콩이의 나이 든 털은 예전보다 많이 얇고 부드러워졌다. 콩이를 좀 더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그런데 내가 이걸 나중에 볼 수 있을까? 콩이의 이름을 말하고 콩이와 했던 것들을 괜히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올까? 콩이 같은 무언가가 내게 또 생길까? 사람들은 모두 죽은 무언가의 부재를 채우지 않은 채 사는 걸까? 죽는다는 것은... 죽음을 옆에서 본다는 것은...
울다가 웃다가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서 눕고 자고 먹고. 모르겠다. 그냥 이러는 수 밖에 없는 건지 나와 콩이가 이별하는 과정이 이게 맞는 건지. 조금만 더 더 진짜 조금만이라도 더 같이 있자. 곡물 냄새가 나는 콩이의 이마와 조그만 발. 내가 지금 너에게 더 잘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어디가 아파 어떻게 해줬음 좋겠어. 대답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사람 앞에서의 슬픔보다 대답하지 못하는 아픈 나의 개 앞에서의 슬픔이 더 크다. 네 죽음을 나눠 줘 내 마음 어딘가가 죽고 실컷 슬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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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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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21.
지금에서야 택시 타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혼자 택시 타는 게 무서웠다. 어렸을 때 대구에서. 엄마는 야근 수당을 받으려고 늘 늦게까지 일을 했고 혼자 날 키웠기 때문에 난 이모네 집에 가있곤 했다. 가있곤 했다? 라기보다 거의 매일 갔다. 밤에 날 데리러 오고 우리 둘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일이 잦았다. 차가 끊긴 시간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택시를 모는 기사와 말다툼을 자주 했다. 주로 그 아재들이 길을 뺑뺑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젊은 여자가 어린 애 하나 데리고 다니면 받는 일상적 무시라고 엄만 말해주었다. 화가 난 엄마는 약해보이지 않기 위해 택시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출발하는 택시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그래서 나는 택시가 무서웠다. 엄마가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화내는 모습을 보는 게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들의 뿌리를 따라가다보면 으엥? 이거 때문이라고? 싶은 것들이 몇 개 있다. 나도 몰랐는데 난 웹툰 같은 데에 가정에서 벌어지는 언어폭력이 묘사되면 딱 싫증이 나더라. 왜 꼭 주인공이 불행하려면 가정에서부터 불행해야하는 건지. 지긋지긋하고 뻔하고 깊이 생각 안 한 것 같음. (근데 나도 그런 글 씀ㅋㅋ) 바퀴벌레도 너무너무 싫다. 그 쬐끄만 주공아파트에서 눈 감으면 들리던 사각사각 소리. 서울로 이사 가면서 짐을 정리하고 개수대를 뜯었는데 그 밑엔... 으. 사소한 건데 난 어둠 속에서 사람의 손을 보면 좀 무섭다. 비 오는 날에 버려져 있는 우산도. 이건 악몽에서 기인한 이미지들이다. 쪼그러 엎드려 있는 사람. 초등학교 때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미술학원에서 쪼그려 엎드린 동상을 문 앞에 세워놨었다. 그게 너무 무서웠음. 어떤 극의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고 그게 들키는 뻔한 시퀀스. 들킬 거 알고 픽션인 거 아는데도 과하게 쫄린다. 뭐, 이런 사소한 것들은 이제 센 척하지 않고도 노력하면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정서적으로 많이 나아졌다는 거겠지.
반대로 좋아하는 것들은 그 뿌리를 따라갔을 때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마음이 귀여워진다. 짧고 쬐끄만한 손톱에 알록달록한 매니큐어를 바른 사람. 엠앤엠 초콜렛 같아서 좋다. 다 함께 걸을 때 뒤로 처지면 왜 혼자 걷냐구 슬슬 뒤로 와주는 사람. 오늘 지은언니가 그랬지. 오늘 짱 피곤하다고 말하면 엄마가 욕조에 물 받아줄까? 하고 물어봐주는 것. 우리는 안양에 와서 처음으로 욕조를 가져보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지금. 걸으면서 입 모양으로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 타인의 보조개나 콕 박힌 예쁜 점을 알아보고 그 사람이 쑥스럽게 웃는 순간. 타인이 내 보조개를 알아봐주는 것. 운전하면서 담배 피우는 것. 라라랜드의 꽉찬 도로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어. 좋은 글을 읽는 것. 내가 봐도 재밌는 글을 쓰는 것.
좋아하는 걸 쓰는 건 쉽다. 좋아하는 걸 쓰면 마음이 좋아진다. 그냥 이렇게 살자.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으로 살자. 좋아하는 걸 확실히 좋아하면서. 순간순간 울어도 화나도 슬퍼도 좋으니 좋은 순간엔 확실히 좋다고 말하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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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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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8.
요즘 슈퍼엠 Big Chance를 많이 듣는다.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냐 물으면 글쎄...인데 손이 가장 자주 가는 곡이다. 나는 자칭 로맨티스트로서(ㅋㅋㅋ) 우리 그냥 모든 걸 던지고 사랑하자고 말하는 내용의 노래를 좋아한다. 연쇄흡연마들의 Closer나 Paris 같은 것. 우리는 젊으니까 그냥 다 제치고 사랑하자는 내용. 그것도 어떤 사랑에 대한 철학을 웅앵웅거리는 거면 약간 우웩 싶을 수도 있는데 화자가 특정 청자 ‘너’를 대상으로 말하는 거면 좋다. 그런 맥락에서 Big Chance가 좋다. 가사 모르고 그냥 들었을 때는 상쾌한 노래구나 싶었는데 주의 깊게 들어보고나니 일종의 쾌감이나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진다. ㅋㅋ.
So love across my mind But now I’m thinking thinking twice Oh tell me do ya, do ya, do ya, do ya Wanna make that big mistake big mistake
네가 나의 큰 실수일지 큰 기회일지 모르지만 너를 갈망만 하는 데에는 지쳤으니 이젠 그냥 사랑하자고 꼬시는 건데 그걸 이렇게 상큼한 목소리로 부른다. ㅋㅋ. 모든 걸 다 제치고 다른 걸 하자구 그러면 으이구 ㅉㅉ 할 것 같은데 사랑하자구 하는데 어케 안넘어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랑인데. I want a little bit more than nothing 이란 가사도 좋다. 이 구절을 부르는 텐의 목소리가 참 좋기도 하거니와 난 그냥 딱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조금만 더 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귀엽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뉘앙스가 죽는 느낌이지만...
그제부터 몸살 기운에 시름시름 앓았다. 열이 자꾸 오르고 콧물이 줄줄 흘러서 드디어 환절기 감기가 왔구나 싶었다. 깔끔하게 감기 몸살임을 인정하고 칩거했다. 방문을 꼭꼭 닫고 이불을 덮고 약을 먹고 최대한 많이 잤다. 옛날에는 많이 자고 일어나면 금방 똑 떨어지던 몸살이 이틀을 갔다. 오늘에야 일어나서 좀 나가 놀았다. 어렸을 땐 아프면 좋았다. 학교를 안 갈 수 있기도 했고 엄마가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조금만 아프다 싶어도 아픈 걸 많이 티냈다. 이젠 진짜 아파야 아프다구 인정하지만... 다 커서도 아픈데 엄마가 신경을 안 써주는 건 조금 서운했다. ㅠㅠ. 이젠 아프면 성가셔. 안 아프고 건강한 게 최고다. 아픈 것도 이젠 돈이야... 아직 다 낫진 않은 건지 자꾸만 잠이 온다.
잠을 많이 자니 자연스레 꿈도 많이 꿨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어제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또 꿈이 묘하게 다 현실적이어서... 내 꿈엔 자주 나오는 백화점과 놀이공원이 있다.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 곳인가 아무리 기억하려 해봐도 아무래도 가본 적 없는 곳인 것 같다.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공간인 듯. 백화점에서는 항상 누군가를 쫓거나 내가 쫓기고, 놀이공원에서는 항상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길을 잃는다. 꿈에 자주 나온 장소니까 꿈이구나 인식할만도 한데 매번 나는 그 꿈에서 헤맨다. 녹초가 될 때 쯤 꿈에서 깨어나면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같은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장소들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백화점과 놀이공원이 꿈에 나올수록 그 장소들은 구체화돼서 작은 지점까지 디테일해지고 현실적이 된다. 정말로 존재하는 장소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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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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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
순간의 감정은 ��으로 내뱉는 순간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말을 아끼는 편을 택한다. 내게 있어서 타인과 내가 비슷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이 그것이다. 타인과 내가 비슷한 사람인 게 좋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인 게 좋은 것도 아니다. 비슷하면 동족혐오가 생기고 다르면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하나씩은 생긴다. 나와 비슷해서 싫건 어떤 지점이 싫건 그건 그 사람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그런 면만 싫은 거다. 싫은 면이 있는 사람도 많이 사랑할 수 있다. 내가 엄말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내 주변 사람들은 나와 같은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좋은 점이 꼭 있다. 그 좋은 점을 싫은 점보다 더 많이 사랑하면 된다. 내가 나를 볼 때도 그렇다. 나는 내가 너무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안 죽고 살 수 있다. 좋아하려 노력했는데도 싫은 점이 좋은 점보다 큰 사람에겐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좋다는 감정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럼 왜 이혼을 하겠어?
평소엔 새벽 세네시는 돼야 슬슬 잠이 왔는데. 엄마랑 온 제주에선 열시만 돼도 잠이 온다. 아마 하루종일 기민하게 엄마에게 신경을 쏟고 있어서일 테다. 엄마와 나는 관심사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외모는 정말 닮았다. 꼭 딸인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처럼 그렇다. 손발부터 머리카락까지 비슷하게 생겼다.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서 집을 나가기 위해 세운 계획을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애월 해안도로가 엄마 쪽에 펼쳐져 있었다. 엄마가 착잡해하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랬다. 엄만 내가 없으면 외로울까? 그래서 내가 나가는 걸 착잡해하는 걸까? 그치만 난 엄마 옆에 있으면 외로운 걸. 엄마와 내가 사실은 외형 뿐 아니라 내면 또한 닮은 지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슬퍼지는 걸. 나도 이기적으로 굴어보기로 했다.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걸까? 애월을 지나가며 애월을 그린 노래가 생각났다. 이젠 그 가수가 씹새끼라는 걸 알기 때문에 흥얼거릴 수도 없었다.
나 때문에 내 주위 모두가 불행해진다느니 하는 말은 자의식 과잉이다. 내가 딱 사춘기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은 생각보다 남 때문에 말아먹기 힘들다. 자기 손으로 망치긴 쉬워두. 우리 엄만 막 걸을 줄 알게 된 나를 데려가겠다는 결정을 했고, 그게 자기 손으로 제 인생을 망친 꼴이 됐다. 엄마가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엄마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내 인생을 말아먹은 꼴이 되겠지. 여기서 생기는 아이러니. 엄마의 인생을 결국 망쳐져야만 했던 걸까? 요즘은 타임 패러독스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한다. 1997년으로 돌아가서 박**을 죽여버리기. 죽여도 벌 안 받는다. 내가 그 새끼를 죽여버리면 나도 없을 거거든. 불쌍한 엄마. 근데 엄만 자기가 불쌍한 걸 좀 잘 안다. 그래서 나도 불쌍해진다. 여기서 밝히는 나의 방어기제. 자기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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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blue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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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8.
나는 내가 거짓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 무서운 줄 알고 자라서 어른 말을 꽤 잘 듣는 애 집단에 속했다. 말은 잘 들었지만 어른이 좀 덜 무서워진 시점에는 그런 내 입지 덕에 오히려 거짓말하기가 쉬웠다. 원래 잘하던 애가 뻔뻔하게 그랬다고 말하면 어른들이 속으니까. 그래서 중학생부터 고등학교 이학년 쯤까지는 임기응변이 잘 먹혔다. 한 걸 안 했다는 거짓말과 안 한 걸 했다고 하는 거짓말이 있다면 난 안 한 걸 했다고 하는 쪽이었다. 했다고 미리 구라쳐놓고 집에 가서 졸라 했다. 선 거짓말 후 만회. Fake it till you make it. 그게 내 신조였다. 열심히 뻥치고 만회했다. 숙제 했니? 네. 근데 안 가져 왔어요. 내일 꼭 가져올게요. 그러고 밤 새서 다 하는 거다. 답지를 베끼든 진짜로 풀든. 그런 습관 때문에 원래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해내야 했고 그 때까진 그게 어느 정도는 먹혔다. 임기응변이 먹히지 않기 시작한 건 고삼 때 쯤이었다. 그 땐 수치로 나의 모든 것이 티났다. 점수. 등수. 등급. 부랴부랴 밤 새서 만회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때부터 거짓말을 관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임기응변의 맛을 이미 봤고 그 습관이 몸에 배여 몸이 힘들었다. 근데 오히려 마음은 좀 편해진 것 같다.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구나. 그걸 알게 됐다. 꽤 늦게.
나는 그 임기응변이 아직도 내가 버려야 할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계하게 된다. 임기응변은 일종의 허세다. 하지 않은 걸 했다고 하면 나중에 쓰나미처럼 돌아온다. 그럼 자괴의 고리에 빠진다. 난 왜 늘 이 모양이지? 왜 솔직하지 못하지? 왜 노력을 하지 않았지?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해야하는 노력은 솔직하게 말하는 데 필요한 노력보다 더 크다. 이젠 누가 채찍질하지 않아도 내 말은 내가 책임져야하는 때가 왔기 때문에 그게 더 크게 느껴진다. 아. 그래서 대부분의 어른들이 나보다 성실해보이는 걸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거짓말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해받을 때의 기분이 더 낫다.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꽤 많다. 더 크면 그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 지금 내 기분이 왜 이런지부터 그 때 나는 왜 그랬는지까지. 내가 잘못한 걸 인정하고 솔직하게 사과하고 싶다. 쿨해지고 싶다. 내 감정은 대부분 치졸하다. 뭐. 인간 대부분의 감정이 그렇지 않을까? 그런 것들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그 감정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다. 내가 일기를 쓰기로 결정했던 것도, 그리고 일기에서 내가 거짓말쟁이였으며 지금도 약간은 그렇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는 아직도 정말로...
엄마와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바로 내일 새벽에 떠난다. 엄마와 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인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나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 겁이 나기도 한다. 가서 엄마와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들이 꽤 있다. 사실 그걸 해낼 수 있을지 나는 아직 확신이 없다. 질문하고 싶은 건 있지만 내가 그걸 들을 용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해야지. 내가 좀 더 해야지. 참아야지. 웃어야지. 사랑해야지. 요즘 일기를 쓰며 새삼 느낀 거지만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이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보다 더 용감하다. 거짓말쟁이였던 나를 벗어나려면 제대로 부딪혀보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도 같다. 대신 너무 상처받진 말구. 상처받아도 예전보단 더 잘 나을 수 있자나.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다. 웃긴 건 자기가 한 거짓말에 자기가 상처받고들 있다는 거다. 우린 왜 이렇게 사냐고요. 자기방어. 무의식의 방어기제. 상대의 방어기제를 파악하고 있다는 오만. 파고들어졌을 때의 불쾌감. 왜 이렇게 사냐고요. 성가시고 복잡하고 사랑스럽다. 돌아왔을 때 엄마와 난 어떻게 달라졌을까? 최악과 차악을 생각하기. 솔직히 조금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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