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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8 -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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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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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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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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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덫_밖_oil on canvas_130x162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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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hooked_arcylic on canvas_27x22cm_2017
장윤희_hanging_oil on canvas_164x223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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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hooked_arcylic on canvas_27x22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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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덫_oil on canvas_80.3x116.8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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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paradise of 옥탑1,2_oil on canvas_90.9x72.7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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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paradise of 옥탑2_oil on canvas_90.9x72.7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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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paradise of 옥탑_oil on canvas_90.9x72.7cm_2017
장윤희 [email protected] 010.52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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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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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덫_oil on canvas_80.3x116.8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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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hanging_oil on canvas_164x223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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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희_덫_밖_oil on canvas_oil on canvas_130x162cm_2016
장윤희 [email protected] 010.520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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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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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의 비밀(HAL's Secret)_single channel video_6'53"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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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Entitled)_singe channel video_8'21"_2015
iida.kr
+82 10 728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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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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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oil on canvas 100.0x80.3c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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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등 oil on canvas 116.8cmx91.0cmX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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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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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빈_The imperfect tense_mixed media_dimensions variable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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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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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인_Kandinsky's Writing_Typewriter on Paper_29.7x21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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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인_Painting_Denim_27.3x45.5cm_2016–17
언젠가 회화의 화면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형과 색을 뺀 점, 선, 면에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고, 그 생각엔 내가 자각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에 점과 선이 존재하긴 할까란 자문이 처음 존재했다.
나는 벡터―정확히 말하자면 Adobe사의 Illustrator―안에서 점, 선, 면을 인식하는 것이 익숙했고, 출력이라는 기능적 목적을 기반으로 그러한 점, 선에 대한 절대적 귀착지를 면으로 두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일단 plane-ize라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내가 주목한 ‘선의 작동방식과 비슷한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문자도구(text)이다. (중�� 생략) 문자도구로 쓰여진 타이프는 선처럼 임시 상태―PBT에선 가상의 상태라고 지칭하는 것과 유사―에 있지만, 확장(Expand)의 방식과 윤곽선 만들기(Create outlines)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면으로 치환된다. 점, 선에 덧붙여 문자도구까지 모두 최종 귀착지로 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면화(面化)된 텍스트 계보의 전성기―혹은 마지막―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찾게 된다면 PC통신 시절―2000년대의 전화선 인터넷 시절이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8살 터울 형의 컴퓨터 Windows 95를 사용했다―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하기 힘든 현실적 여건은 텍스트 문자와 ‘그림 문자’라고도 하는 아스키 부호를 활용해 현재의 상황, 감정, 이미지를 알기 쉽게 표현한 아스키 아트(Ascii art)로 파생되었다. 특히 이 사례는 텍스트가 들어가는 프레임의 제약이 있는 상태에서 이미지 그 자체로의 치환을 꾀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타이프 혹은 상징으로써 내용을 전달함을 포기하고 각 글자와 부호의 공간 대비 면적 비를 명도 삼아 면으로서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방식이 점, 선, 면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전통적인 회화론과 모종의 비슷면서도 다른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텍스트는 인터넷 속도 향상과 무선통신의 발전으로 이모티콘(emoticon)형태로 많이 나타나게 되었고, 현재 이모티콘은 이모지(emoji)―이모지는 수화자의 상에 맺히는 방식이 텍스트~면(이미지)의 과정이 아닌 면~면의 직접적인 방식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까지 발전되었다.
애초에 면이었던 미디엄―가령 사진이나 출력물, 이모지 등―이 면화한 텍스트의 방식으로 다시 면화하게 된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나는 일단 re plane-ize라 부르기로 했다. 나는 이러한 재-면화한 타이프를 특징적 레이어로 삼고 비교적 젊은 세대의 구성원으로서 앞뒤로 바라볼 수 있는 뒤섞인 시대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종이에 타이프를 담을 수 있는 기계의 발전 과정의 역순, 즉 컴퓨터와 같은 디지털기기의 스크린을 베이스로 타자기, 그리고 캔버스의 형식에 전통적인 착색의 방식을 이용해 위태롭게 쌓는 레이어를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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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pp-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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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수족관 파이프
벽돌 수족관 파이프
opening / 2017. 04. 07(금) 6pm–8pm 2017. 04. 08–04. 15 11am–7pm 서울특별시 마포대로 19길 12 행화탕
김은수, 이정은, 임지원, 장윤희, 정서윤, 정지, 지호인, 최수빈, 최이다
화면 보호기/스크린 세이버는 어원적 의미를 따져볼 때 스크린의 화소를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그럼으로써 그 수명을 연장시키도록 고안되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사실 스크린 전원을 끄는 것보다 에너지 절약이나 화면 보호에 있어 매우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만약 정말로 화면 보호기에게 화면 보호라는 목적이 최우선이라면, 가령 윈도우 98의 ‘3D 미로 탐험’과 같은 현란한 이미지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저 스크린에 지속적으로 다른 이미지들이 떠다니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능이 충분하다면, 무엇하러 유저가 이 미로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게끔 만들었던 것일까? 화면 보호기에는 보호라는 목적 외에도 기왕이면 보기 좋으면서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다소 불필요하고 잉여적인 장식과 재미가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흥미롭고 예쁘다 한들, 화면 보호기는 임시적이다. 스크린이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순간 화면보호기는 사라진다.
행화탕은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는, 본체로부터 희미한 전원만 공급받는 스크린이다. 그럼에도 행화탕은 어떤 면에서 탕으로서 건재하다. 이 공간은 제 목적을 잃었지만 다시금 어떤 목적이나 형태에 의해  ‘새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탕이었음을 상기시킬 것이다. 행화탕의 구조가 갖는 울퉁불퉁하고 뒤죽박죽인 모양새, 시간이 덧칠한 벽돌들과 물이 왕래하며 깎아낸 외관은 탕으로서 이 공간이 기능했던 시절을 끊임없이 불러온다. 아무리 이 공간을 그것의 시간과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새로운’ 공간으로 마주하겠다 한들―어차피 행화탕을 탕으로 이용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이지만―본기능과 역사성/시간성에 대한 부정은 반대로 그것을 불러올 뿐이다. ‘폐허’라는 용어는 행화탕을 편리하게 분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공간과 잘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행화탕은 버려진 공간보다는 그 이전의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보다 넓은 가능성을 품은 소우주에 가깝다. 그것이 현재는 경험하지 못하는 지난날에 대한 판타지이건, 씻어내고 싶은 낡은 속성이건 행화탕은 애초에 하얀 캔버스나 화이트 큐브 마냥 중립을 지향하며 의미나 이미지를 부여받고자 한 곳이 아니었다. 탕이었던 덕분에 행화탕이 가질 수 있었던 매력들이, 더 이상 탕일 필요가 없는 이 공간―탕으로서 체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재해석 거리로 가득찬 곳으로 만든다. 행화탕이 지닌 저만의 기능과 역사가 없었더라면 이 공간은 오히려 관심을 덜 받았으리라. 결과적으로 전시라는 화면 보호기는 스크린이 예전에 충실했던 기능들을 잠시 가리기만 할뿐, 아예 지워내지는 못한다. 잠시동안 행화탕이라는 스크린을 차지하는 작가들은 오직 임시적으로 작동할 화면 보호기, 일종의 스킨을 제작한다. 작가와 작가들, 나아가 행화탕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를 잇는 희미한 연결고리는 잠시나마 공유되는 스킨이라는 표면이다. 여기에는 파편적인 이미지가 부유하며 그리는 불안정한 형태의 성좌가 있다. 이 불안정성은 행화탕이 공간으로서 갖는 잠재성 혹은 가능성, 즉 언제든 이 스크린이 다른 스킨으로 표면을 갈아입을 수 있음을 비춘다.
글: 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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